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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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카나다 토론토에서 40년 정도 사시다가 80대 중반에 제주도로 혼자서 이민을 하신 어머니 일선 님의 이파트에 있던 책을 내가 집어 온 것이다. 어머니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사시다가, 2013년에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그런데 너무 늦게 발견되어 뇌를 반이나 잘라네는 대수술로 살게 되었으나, 전신마비가 되셨다. 1년 정도 제활 치료를 받으시다가 2014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여러 병원을 걸처 마지막 병원에 계실 때, 내가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찾아갔었는데, 어머니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서 살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에서 간병인 비용에 도움이 되라고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어머니 아파트에 가서 약 1,000권 정도 되는 어머니 책장의 책 중에 약 30권 정도를 뽑아와 호주 우리 집으로 부첬다. 이 30권의 책들은 대부분은 어머니의 관심분야였던 영성 관계의 책들이었는데, 그 중 이 책 한권 만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왜 이책을 내가 가저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호주로 보내려고 했을까? 다른 영성분야의 책들처럼 나의 관심의 책이었나? 이 책은 너무나 다른 책이어서 다른 이유에서 였다.
- 이 책의 저자 장정문 신부라는 분은 내가 토론토에 살았을 때 알게된 분인데, 내가 알았던 분의 자서전이라는 의미에서 집어 온 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집어오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책이 나뉘어질 때 책을 가지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은 아무 의미도 없는 책이 되어 버려지리라는 이해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아는 분이라는 것이 책을 집어온 나의 동기였다. 장신부님괴 나의 관계는 장신부가 북조선 출신의 이산 가족으로 나의 어머니 일선님처럼 북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이상의 관계는 뭔가 있었는데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토론토을 떠난 것이 1982년이었고,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 신부님을 만나서 뭔가를 같이 한 것이 있었고, 그것이 1979년이었던 것 같다. 이 자서전을 읽으므로서 기억이 난 것은 내가 무슨 일에서 장신부님을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70년대였으니 나의 어머니에게 일어났던 것 처럼 장신부님이 북조선을 방문한 것이 토론토 한인 사회에 알려지면서 작은 파문을 이르킨 것이었다. 장신부님의 경우는 성공회 신부로서 한인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북을 방문할때는 비밀히 갔다 왔지만, 돌아와서 그것이 알려지면서 목회를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교인들로 부터 용공이나 친북이리고 불리워지면서 였다고 보인다. 1970년대는 유신 시대였고, 토론토 교민사회에 까지 반공주의의 KCIA와 한국영사관의 손이 깊숙히 뻐처 있을 때 였다. 어머니나 우리 가족에게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제일 알만도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었다. 그런 관계로 어머니와 장신부님이 가까운 관계로 있었는데, 장신부님이 목회를 못하게 될 무렵 나에게 성공회의 토론토 지부의 누군가 높은 사람에게 내가 아는 장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편지를 하나 써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편지를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은 당시에 내가 토론토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과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일종의 character reference의 편지를 쓰면 조금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과연 그럴까 의문도 있었으나, 얼마나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한데도 없었다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겠느냐, 하며 생각하고 편지를 쓰기로 했던 것 같다. 당시에 한국인으로 장신부님에게 동적적이며, 동시에 영어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 것도 이유였겠다.
- 그렀게 해서 201년에 내가 장신부님의 자서전을 어머니 아파트에서 뽑아오긴 했지만, 읽을 책이 많으니 아직까지 읽을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뽑아들게 된 이유는 장신부님이 한국의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이란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페북 덕분이다. 얼마 전에 어떤 여성으로 부터 페북 신청이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받아주지 않았는데, 페북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자기가 장신부님의 딸이란 것이었다. 70년대 말에 토론토에서 몇번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대학 1학년 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서 H님과 페친이 되었는데, 얼마전에 H님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이라고 한국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서 한국 병원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올렸다. 그런 사정으로 장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이란 것을 알게되었고, 그것이 내가 장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의 자서전을 읽어 볼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 장신부님은 1930년 생이시고, 이 책은 1990년, 그가 60이 되던 해에 출판된 것이다. 지금은 92세가 되신다. 이미 32년 전의 책이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북을 방문하는 부분은 그리 길지 않고, 돌아온 후에 교인들과의 트라블에 관해서도 지극히 짧게 나오나 북에서 태어나 오래 만에 북을 방문하여 가족을 만난다는 점에서 비슷하난 조금 다르겠지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북을 방문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는 이미 옛날 이야기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몇가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1] 그 첫번째가 나이 20살에 당시 중(지금의 고등)학생으로 결혼을 했다는 것이고,
2] 두번째가 결혼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곳 중(고등)학생들이 졸업을 하면서 북측의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것이고,
3] 세번째가 북의 군대에 몇개월 있다가 도망처서 남쪽으로 오다가 북진하는 남측군인에게 항복하여 전쟁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유명한 거재도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거제도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다니 그 경험은 드라마에 나올 만한 것일텐데, 거기서의 경험이 또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고, 결국 포로 수용소에서 알게된 미국 신부의 경제적인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고, 나중에 미국유학까지 하게 되어, 미국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따고, 토론토로 오게된 것이었다.
- 책을 읽어보니 북을 방문하는 것보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경험이 어떻게 신부가 되는 길로 이어지게 된는가의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와, 이 글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그 부분에 대해서 만 다음 글에서 더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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