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5

생명의 존엄을 위한 문명전환의 기획(김규칠) - 자료실 - 연찬문화연구소

생명의 존엄을 위한 문명전환의 기획(김규칠) - 자료실 - 연찬문화연구소

생명의 존엄을 위한 문명전환의 기획(김규칠)
작성자남곡|작성시간1시간 59분 전|

4장: 생명의 존엄을 위한 문명전환의 기획

 

1절; 기획의 목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화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환원주의적 전체성 내지 강자지배 서열체제와 도구적 관리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제 근대화 ‧ 탈근대화 차원의 논의로서는 인간의 존엄을 제대로 보장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거의 모든 이념과 노선이 서유럽 근대사상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바탕의 사고는 마찬가지다. 21세기 선진민주국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근대적 사고에 근거한 국가와 헌법체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오늘날의 복합적 혼돈과 분쟁, 방향감각의 상실 등의 원인도 이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근대화의 원리를 전면적으로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근대화의 원리가 의존하는 사고의 원천들도 탈근대적 논의와 21세기적 현대화 과정에서 보이는 관계 속에서 이중적 성격의 연결성을 지니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공공의 질서와 안녕 및 공공복지를 위한 법률로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으며, 그 제한은 부득이한 경우 최소한에 그쳐야한다’는 선언적 헌법내용에 대해 공허하게 느끼지 않은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이 과연 침해당한 적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국책 실현을 구실로 대자연과 생활환경을 너무 심하게 파괴하고 절단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물량적 성장과 발전의 미장 아래에 일면 배곯는 일은 면하고 선진국 문턱 도달의 위상은 얻었으나 부작용이나 폐해도 얼마나 많은가?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환경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계층간의 양극화, 세대간 지역간의 이해갈등과 감정대립, 이를 기화로 생긴 이념적 갈등과 혼란의 심화 속에서 국민의 정신생활은 어지럽고 황폐화되지 않았는가?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외형적 물량적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권 행사와 보장의 현저한 곤란화 상황’ 속에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이 숱하게 침해되었다.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의 시행으로 어떤 국민은 졸지에 부(富)와 함께 황폐한 정신을 얻게 되었고, 어떤 국민은 정든 삶의 터전과 고향 산천을 잃었으며, 인생의 의미 와 꿈을 잃었다. 국민에 대한 충분한 정보의 제공도 없었고, 국민의 의 사를 묻고 경청하기 위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의 절차적 과정도 없었다. 모든 것이 형식적 제도와 절차만을 거친 정부와 국회의 다수결에 의해 졸속으로 처리되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는 21세기에 들어 온 오늘날에도 거의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좌우를 가릴 것 없이 진 행되고 있다. 환경운동 등 시민단체에 의해, 때로는 제도와 주민들의 이익집단적 행동에 의해 제동과 견제를 받기도 하지만, 그들과 권력이 한 편이 되는 순간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각종 신도시 건설, 각종 특구와 단지와 벨트와 클러스터의 조성, 대형 프로젝트의 추진, 게다가 남북한 관계의 진전, 국가안보 기반의 중대한 변경 등 무형의 사태까지 포함하면 위와 같은 사정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세계적 규모의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진행속도를 높이면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어 갔으며, 최근에는 중간층과 서민층의 몰락이 크게 증가한 우리의 경우에도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통합보다는 진영논리에 매몰되고 포퓰리즘에 이용되어 국가의 잠재력과 미래세대의 삶이 희생되고 있다. 일일이 길게 예거하지 않아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이나, 평등한 삶의 보장’ 어느 쪽도 크게 희망을 걸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다만 후발 빈곤국가들에 비해 외형과 통계상으로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혹자는 점차로 나아질 것이라는 말로 위안과 희망을 삼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나라도 이 복합적 세계 경제전쟁과 문화전장의 무대를 가지고는 승리와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현상유지도 위협 받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우리처럼 미 ‧ 일 ‧ 중 ‧ 러 같은 경제 ‧ 군사 ‧ 기술 ‧ 지식 ‧ 자원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치열한 무한경쟁을 벌려야 하고, 그러면서도 북핵 대처와 통일과업 및 국가적 안보과제까지도 챙겨야 하는 나라의 경우에는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주도면밀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지금의 남북한 및 한미동맹관계의 일대 역사적 변곡점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시스템을 준비해야할 절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치 등 각계 권력자들의 함량미달이 뚜렷하다. 여기서 근본적인 과제의 재설정 등에 있어서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 잠정적 현실적 이상의 청사진 · 잠재력 발휘의 문화와 문명

 

‘불교는 개인주의도 공동체주의도 아니다 ― 국가를 넘어설 때까지 지속적 업그레이드’

 

첫째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목표는 원대해야 한다. 인간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머리는 광활한 우주를 바라볼 줄 아는 존재이기 때 문이다. 우리의 국민적 이상(理想)과 목표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면서 전환해야 하고, 또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지배와 피지배’가 없어 질 때까지 상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고정되고 일정한, 그러한 개인도 사회도 없다. 따라서 고정된 개념으로서 전체 공동체란 것도 없다. 모두 다 과정상의 유동적 복합적 존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개인우선주의니 공동체우선주의니 하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개인의 자아실현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란 것도 절대적으로 주장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지나치게 내세울 일도 못된다. 대지와 하늘 즉 대자연 가운데 ‘다른 죽을 운명을 타고난 자들’[타자의 생 명체들]과의 ‘둘 아님의 연생적 관계’ 속에서 호수적(互酬的) 순수증여 와 호혜적 공감대 위의 교환을 내용으로 하는 공존체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상과 목표도 ‘잠정적 유토피아’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국가와 정부도 헌법상 체제와 틀의 변 화를 전제로 중장기적 시한을 두고 발전적으로 변경할 것이 예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불교사회철학적 사유에 근거하여 표현하자면, 장기적인 의미에서는 국가란 것은 모두 다 과도국가, 과도정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조건적 연기법적 공존체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 화 과정에서의 반(半) 계몽주의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래지능을 넘는 특이점 이후의 시점에서, 개명된 인간의 사유로서는 이 이상 국가나 공동체를 내세우고 다수결로 결정하여 표방하는 것은 과잉주장 이며 원천적인 권리[또는 권한]남용이다. 더구나 수의 우세를 가지고 특정체제를 정하여 밀어붙여 다른 이상과 가치를 중시하는 소수자까지 따르도록 강요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연기법적 원리에서 보면 역행(逆行)이다. 이것은 시민불복종 운동과 국민저항권 행사의 충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제 21세기도 삼분의 일을 경과할 시점을 십년 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의 전환을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 설 때다.

 

나. 기본권 사상의 획기적 전환

 

둘째로는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그 연장선상에서 근대헌법이 그 근거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헌법사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권리 등 기본권 사상을 현대적 맥락과 관점에서 다시 성찰하고, 관련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면밀하게 재검토하여 획기적으로

새롭게 보장하는 재제도화의 과정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제는 상기 첫 째 항목인 국가와 정부의 존재의의 및 근대적 민주정치 제도의 문제와 맞물린 과제로서 앞으로 국제관계의 위상 재편 문제와 더불어 재검토 할 것이 요청되며 발상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생명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우주 대자연에 대한 모든 생명존재자의 공동유산인 ‘대지와 하늘에 대한 자유향유권’이다. 모든 다른 생명체인 타자들과의 공유 공용권리인 이 ‘공간 자유향유권’은 배타적 소유권은 아니며 다만 관리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신체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 등 다른 모든 기본권이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다. 동식물 등 모든 타자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지만 지성과 성찰력을 구비한 인간에게 가중책임이 부과된 권리이며 의무인 것이 다. 그 지성과 성찰력은 절대로 인간의 우월적 지위를 위해서 발휘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연기법과 제법무아의 원리에 의한 지침이다. 이러한 권리와 의무,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 주권재민의 사상이고 주인의식이라고 다시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의 자유향유권’은 이후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자본의 변형, 생산, 창출의 권원을 형성한다. 즉 백성이 본원적 자본의 자기 몫의 생산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증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흔히 자본주의에 있어서 자본에 필적하는 노동의 가치설을 거론하는데 그것은 그 시대적 배경과 제약 하에서 나온 발상의 한계 때문이다. 이제는 인지가 발달하고 책임의식도 심화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였으므로 국민이 국가와 정부 또는 기득권층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동유산의 공동관리자로서, 그 유산의 가치증식과 변형과 창출자로서 현재의 인류유산에 각자의 몫을 기여하였다고 전제하고 논의할 것을 제의해야 한다. 이러한 불교적 정 신과 사상에서는 본격적 임노동관계 이전의 역사적 과정에서 백성의 입장에서 배제되고 희생당하며 기회를 잃고 막대한 침해와 손실을 입은 것은 당연히 감안되어야 하고 계산되어야 할 비용이고 자본인 것이 다. 그렇다고 그것을 지금 국가와 정부 또는 다른 기득권자들로부터 지불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원리와 의미로 보 면 그러하니 당당하면서도 포용적인 자세로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되, 앞으로의 기회 창출과 가치 생산 및 증식에 있어서는 그러한 대전제하에서 기획하고 제안하며 논의하여 결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일하지 않아도 기본소득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로 서 할 일이 아니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한다. 고도지능의 시대에 빅데이터와 AI 로봇의 지구적[장래는 우주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발상을 달리해야 한다. 그들[인공지능 로봇 등]로 하여금 담당하게 할 일과 우리가 직접 수행해야 할 일을 선별하고 맡기는 과정에서부터 주권자로서의 의식과 인식과 판단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일자리와 기본소득문제는 풀리게 되어 있다.

 

다. 새로운 정치경제학을 위하여

 

셋째로는 우리의 역사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전통과 사상을 연기법적 존재자의 삶과 죽음의 의의와 관련하여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 과학기술 주도하의 사회경제적 시대변화에 비추어 조화롭게 창발할 수 있도록 새로운 통섭적 관점에서의 철학적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을 모색하여, ‘수탈과 기만이 개재 된 위장(僞裝) 교환과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경쟁시장’이 아니라 ‘자타 (自他) 잠재력 발휘를 가능하게 하는, 홍익인간의 얼굴을 한 간접적 공 정경쟁 질서하의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일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 장의 후반에 가서 상세히 논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요한 과업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한 연구와 실천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나, 우선 이 세 가지 과업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 사회철학적 원리에 대해서 필자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시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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