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8

이재봉 통일대담_심은화(21.09.28) 인신매매 경험


남쪽에 와서 8년 째
이제까지 공부하면서 지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이 90년대 부터 못가는 사람들이 많아젔다.
함북 백두산 밑
97년에 7살
어머니가 중국에 갔다.
학교를 못다녔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먹는 것 구하느라고
학교에서는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 많았다. 힘들었다.
가족중에는 혼자 왔다.
부모님은 북에 계신다.
부모님과 통화한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란 말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막혀서 힘들다. 
남에서는 공부하는 것이 좋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데.
이유는? 돈을 벌어야한다는 것.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 또 북한 인권활동할 까 생각

북을 떠난 과정
19살이 되자 직장을 가저야 한다.
아버지가 노동자, 그러면 나도 노동.
새 어머니가 결혼을 하라고 했다.
결혼도 피할 겸, 돈도 벌 겸, 중국으로 갔다.
19살에 가출 혼자 중국으로
살던 곳이 두만강 옆. 아는 사람이 브로커가 있었다.
브로커에 설명대로 갔다.
죽을 결심을 하고, 총맞을 수도 있고, 부모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고.
브로커 조선족, 한인 브로커
인신매매 한족남자의 아내로서

처음에는 6개월 살고 도망하려고 했다.
브로카도 그렇게 이야기햇다.
한족 언어 소통이 되지 않고
몸으로 말해요.
나말고 팔려온 사람들이7명정도  많았다.
감시가 많았다. 
비참한 경우가 많았다.
상품처럼 취급당했다.
마을이 동물원 같았다.
먹는 것은 불편이 없었다.
그 생활이 2년 반
임신
결혼을 해도 불법
마을에서 결혼한다는 식, 
임신을 하고 나니, 다른 조선인들을 만났다.
지금 12살 된 딸이 있다.
한국에 대해 알게된 것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티비를 보아서 였다.
한국인 선교사를 만났다.
절망적 생활, 아이만 희망.
언제 끝날지 몰랐다.
선교사를 만나서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에 와서공부하고 일도 하고, 북의 부모에게도 돈 보내고, ㄸㄹ에게도 돈 보내고 한다.


중국에 나같은 여자들이 아직도 있다.
젊은 여자들이 사이버 섹스로 쓴다.
그런일과 관게된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
북에서는 부모에게 피해가 가는 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부모님은 농촌에 사니가, 그곳보다 더 낙후된데는 없다.
남쪽에 와서 좋은 것: 자유, 말, 오, 머리, 운동, 공부
말하는 자유 말을 잘못하여 사라지는 경우가 
노력한 것 만큼 댓가가 있다.

북쪽에 좋은 것: 인간애, 농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같이 노는 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나, 
지킬 것을 지켜야한다.
남에서는 다들 바쁘다.
탈북자들 - 않좋게 보이는 것이 많은데
의견이 분분한 이슈
북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탈북자라서 불편했던 것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
차별
하나원에서 제비봅기로 전주
아르바이트 구할 때 북한사람이라고 거부
북, 김에 대한 원한 같은 것 없는가?
조심스럽네요. 
아아, 맞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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