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5

유관순을 영웅으로 만든 작업, 윤동주도 비슷하지 : 네이버 블로그

유관순을 영웅으로 만든 작업, 윤동주도 비슷하지 : 네이버 블로그



유관순을 영웅으로 만든 작업, 윤동주도 비슷하지
POWER blog
구름배

2014. 2. 23.


“곧 3월이다. 3.1운동이란 거족적인 항일운동에 대한 기억의 형성 과정, 즉 진실화에도 권력이 역할을 했을까. 가장 극적인 사례는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다. 유관순은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이끌다 체포되어 고문 끝에 옥사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유관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광복 직후 유관순이 어느 날 갑자기 ‘불세출의 영웅’으로 등극한 것은 친일 권력의 치밀한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유관순이 다닌 이화 출신으로 친일 전력을 있었던 박인덕과 신봉선이 제일 먼저 그녀의 행적을 부각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은 물론 김활란, 모윤숙 등 이화 출신들에게 드리운 친일 행적을 희석시키고, 유관순의 영웅화를 통해 이화를 여성 독립운동의 산실로 개조하려는 포부를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여기에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파 인사들까지 가세하여 유관순을 추모하는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기념비를 세우고 전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이 1947년 가을에 시작되어 불과 1년 만에 완결되었다. 그렇게 유관순은 조선의 잔다르크로, 3.1운동의 저항과 희생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갔다. 1950년대에 역사 교과서에 유관순이 이름을 올려놓으면서 유관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는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친일을 덮고자 하는 권력의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무명소녀에서 일약 3.1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재구성된 유관순에 관한 기억, 즉 ‘진실’은 오늘날도 여전히 굳건하다.”


- 김정인, '역사, 진실의 재구성?', <기획회의> 362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4.



일요일 아침 한기호 선생 누리집에서 이 글을 보았다. 곧바로 이 글이 실린 <기획회의> 362호를 주문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일이 국문학계에서 윤동주 시가 고전으로 자리 잡은 과정에도 똑같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일제시대에 쟁쟁하게 이름을 날리고 솜씨 좋은 시인들이 분단시기에 남쪽인 한국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문단 권력자들이 공식 교육과정에 넣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오장환이라든가 백석이라든가 정지용이라든가 임화라든가 하는 사람들은 87년 6월 항쟁 이후에 한국이 민주주의를 회복한 뒤인 1988년에서야 다시 출판이 자유로워지고 교과서에 나오게 되었다. 이념이 다르다고 시조차 읽지 못하게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후진적 문화였지만 그런 일을 한국의 문인들이 저지른 때가 있었다.

윤동주 시집을 다시 꺼내어 보아도, 고민하는 맑은 영혼이 그 시에 담겨 있지만 습작 수준인 시가 여러 편이고 그 솜씨에 비해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분단이 되고 나서 상당수 일류 문인들이 북쪽에 남아서 그들을 빼고 나니 가르칠 시인이 모자라 발굴해낸 게 윤동주고 그러다 보니 과대평가를 하게 되었지 싶다. 그런데 참 역설적인 것이, 윤동주가 정직하게 자기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를 했기에 그 시가 학생들에게 읽히면서는 학생들이 현실 참여에 나서는 데 영향을 많이 주었다는 사실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