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개인적인 체험 |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은이),서은혜 (옮긴이)을유문화사2020-10-18 원제 : 個人的な體驗
전자책정가
7,200원
책소개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현대 문학의 세계적인 거장,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 중중 장애아를 둔 아버지가 내적 변화, 성장을 통해서 비극을 극복하고 공생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영혼 편력,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그린다.
27세의 학원 강사 버드는 결혼한 후 아기가 생기지만 아프리카로의 모험 여행을 꿈꾸는 부동(浮動)하는 젊음이다. 태어난 아기가 뇌 손상을 가진 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일체의 행동의 자유를 빼앗긴 현실에 절망하고, 아기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 술과 옛 여자친구 히미코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작가의 장남 히카리가 뇌에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일을 계기로 쓴 소설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스웨덴어 등 10개 국어로 번역되어,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를 누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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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인적인 체험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
주
해설: 오에 겐자부로, 세상의 모든 폭력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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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48 느닷없이 버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라는 이미지가 버드의 감정을 단번에 단순화하여 방향을 지워 준 것이다. 버드는 센티멘털로 질척질척해진 자신이 허용되고 정당화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눈물에서 단맛조차 발견했다. 내 아들은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찾아왔다. 내가 모르는 어둡고 고독한 전장에서 부상당하여. 나는 아들을 전사자처럼 매장해야만 한다. 버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접기
그것은 버드가 처음으로 산 실용적인 아프리카 지도였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아프리카 땅을 밟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아프리카의 하늘을 올려다볼 날이 찾아와 줄까? 하고 버드는 불안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로 출발할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잃어 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요컨대 나는 지금 자신의 청춘에서 유일하며 마지막인 눈부신 긴장으로 충만한 기회에 속절없이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한들, 이제 그것을 면할 길은 없는 것이다. -10쪽 접기 - 이매지
버드는 고개를 돌리고 주저앉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사라져가는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사이렌에 놀란 통행인들은 버드가 등 뒤에 두고 온 임산부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호기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를 드러내며 구급차를 지켜보았다. 그들에게는 필름이 갑자기 정지한 화면과도 같은 부자연스런 동작 정지라는 인상이 있다. 그들은 지금 평범한 일상생활의 극히 미세한 금을 들여다본 참이다. 그들은 순진한 경건함을 또한 표현하고 있다. 내 아들은 전장에서 부상당한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고 버드는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어둡고 고독한 정장에서 내 아들은 머리를 다친 것이다. 그리고 아폴리네르처럼 붕대를 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48쪽 접기 - 이매지
느닷없이 버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라는 이미지가 버드의 감정을 단번에 단순화하여 방향을 지워준 것이다. 버드는 센티멘털로 질척질척해진 자신이 허용되고 정당화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눈물에서 단맛조차 발견했다. 내 아들은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찾아왔다. 내가 모르는 어둡고 고독한 전장에서 부상당하여. 나는 아들을 전사자처럼 매장해야만 한다. 버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48쪽 접기 - 이매지
버드는 머리가 둘 달린 것처럼 보이는 자기 아이와 언젠가 보았던 방사능 장애로 인한 장애아의 사진을 비교해 보려 했다. 하지만 버드에게 있어 아이의 이상(異常)은 그것을 둘러싸고 타인과 이야기를 하긴커녕 혼자서 다시 생각해 보려하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뜨거운 수치의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올라오는 버드만의 고유한 불행이었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타인들과 공통의, 인류 모두에게 걸려 있는 문제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73쪽 접기 - 이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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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郞) (지은이)
일본 소설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났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했고, 논문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관하여」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발표한 단편소설 「기묘한 아르바이트」(1957)가 <마이니치신문>에 언급되면서 주목받고 이듬해에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등단 초기에는 전후 일본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려냈고 60년대에는 미일안보조약 재개정 반대 시위와 학생운동 등 민주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흐름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대표작으로 언급된 『만엔 원년의 풋볼』(1967)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100년 전의 농민 봉기와 연결하기도 했고,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1973)에서는 일본의 급진 좌파가 몰락하게 되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다루었다.
한편 1963년 아들 오에 히카리가 뇌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을 계기로 폭력 앞에 놓인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적인 약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 냈다. 대표작인 『개인적인 체험』(1964)은 실제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르포르타주인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 등을 발표하면서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주요 과제들을 주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 3부작이라고 명한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을 발표했고 근래까지 장편소설 『익사』(2009), 단편집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2014) 등을 발표하였다. 2023년 3월 3일 별세했다. 접기
수상 : 1994년 노벨문학상, 1958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작가란 무엇인가 2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기념 리커버)>,<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리커버 에디션 한정판)>,<오에 겐자부로의 말> … 총 195종 (모두보기)
서은혜 (옮긴이)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다. 옮긴 책으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회복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세키가하라 전투』, 『선생님의 가방』, 『개인적인 체험』 등이 있다.
최근작 : <일본 문학의 흐름 2 (워크북 포함)>,<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세트 - 전9권>,<이상한 소리 - 일본> … 총 4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64년 신초샤 문학상 수상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이번에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제22권으로 출간되는 『개인적인 체험』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중중 장애아를 둔 아버지가 내적 변화, 성장을 통해서 비극을 극복하고 공생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오에는 “시적 언어로 현실과 신화가 혼재된 세계를 창조하고, 곤경에 처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 당혹스러운 그림을 완성했다”라는 노벨상 위원회의 찬사와 함께 그만의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현대 문학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이 책을 번역한 서은혜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는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지링』을 포함해서 그의 많은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관련 연구 논문을 집필했으며 이번 작품에서 원작에 충실한 유려한 번역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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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 환자가 탄 구급차 서스펜션이 이렇게 속절 없이 도로 요철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가.긴박함을 가지지 못하고 도시의 배경음에 자신을 헌사한 사이렌소리가 밀폐된 구급차 안을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않았다.그저 어디서 본듯이 온기 없는 손을 잡은채.나의 체험속에서 구매
초딩 2016-06-04 공감 (1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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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듣게 마련이다. 하지만, 온 삶으로 묵직하게 감내해온 후에야 이야기할 수 있었던 희망이다. 울림이 깊다. 구매
웽스북스 2013-02-18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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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해도 사족이니 그저 별 5개 구매
로지온 2012-03-1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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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그저 지도만 바라보는 사내, 그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원하지 않던 결핍을 갖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애인으로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방황들, 그리고 결국 받아들이는 인생. 구매
은하은수 2013-11-2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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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과 기만의 깊은 늪 속에서 현실을 부여잡고 빠져나오다. 나를 직시하지 못하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되었다. 구매
양념게장 2015-05-1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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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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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개인적인 체험 새창으로 보기 구매
모든 일에 아직은 어린아이 같은 버드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남자에게 괴물이라고 부르게 되는 기형의 아이가 태어난다.버드는 이 아기를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고, 부정하고 싶어하고, 이런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이런 정말 개인적인 체험을 아주 세밀하게 몰입감 있게 읽게된다.사실 중간까지 읽는데 힘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이래서 노벨상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나는 나쓰메 소세키보다 글을 더 잘 썼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몽이엉덩이 2019-04-10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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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가 부러지면 아픈가요? 답변: 개아픔 새창으로 보기 구매
처음 읽은 오에 겐자부로. 이 사람 아직도 살아 있다며? 노벨상도 받았다며? 노벨상이야 아무나 받는 거지만(펄 S 벅도 받았고, 처칠도 받았고, 밥 딜런도 받았고 하다못해 크누트 함순도 받은 문학상이잖아) 왜 내 옆에는 사람이 없어 이 나이 먹도록 반핵운동가이자 양심적 소설가로만 알았던 오에의 작품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지 못했을까? 하긴 '눈을 까뒤집고' 찾아봐도 내 주위의 삼차원적 세상에선 책 읽는 사람, 증말 한 명도 없다.
책을 읽어나가며 조금은 엉뚱하게도 오에보다 한 10년 늦게 노벨상을 받은 페르시아 태생의 소설가 도리스 레싱이 쓴 <다섯째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에의 <개인적인 체험>이 결국엔 제발 해피 엔드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읽는 순간엔 나름대로 간절해지는 심정 다 이해들 하시지? 그런 간절한 심정이 풍풍 솟구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다섯째 아이>를 읽을 땐 도리스 레싱, 이 작가가 독자에게 즐거운 마지막 페이지를 결코 선사하지 않을 것이란 걸, 비극적 전망을 계속 보여준 바 있어 그걸 통해 눈치를 챌 수 있어 참담한 마음을 읽는 내내 어찌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에선? 궁금하시지? 천만의 말씀. 절대 가르쳐드리지 않는다.
책에는 '버드' 즉 '새'라는 별명을 지닌 신혼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경사스럽게 첫 아이의 출산을 목전에 둔 상태. 버드에게도 멈추지 못하는 로망이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 탐험이다. 그는 아내가 산과 병원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책방에 들러 비싸고 비싼 아프리카의 상세 지도를 기꺼이 사고 보는 인종. 물론 아프리카로의 탐험 자금으로 아내 몰래 꿍쳐둔 돈도 3만 엔 가량 되고. 이 인간에겐 아프리카 탐험이나, 거금 3만 엔의 비자금, 하다못해 비싼 아프리카 지도를 사는 일마저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박봉에 시달리는 학원 강사로 호구를 이어가는데, 영문학을 공부하여 학사를 거쳐 석사의 위를 향해 대학원에서 열라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물론 이유가 있기는 있었겠지만 자기 머리로는 왜 자신이 그랬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난데없이 몇 달을 위스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해 공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의 지도교수이자 학과장의 딸을 인터셉트하여 결혼에 성공한 댓가로 장인이 학원 강사 자리나마 알선을 해준 터였다.
소도시에 살던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껌 좀 씹던 몸이 도쿄에서 정착을 하자마자 시새푸새 하루하루 몸에 근육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이젠 20대 젊은이이긴 하지만 도무지 기력이 없는, 이런 인간, 짐작하시겠지, 맞다 바로 당신이 짐작하는 헐렁뱅이 젊은이를 떠올리면 딱 맞는다. 아니나달라? 젊고 어여쁜 아내는 분만대 위에서 기력을 다해 힘을 쓰고 있는 와중에, 20대 후반의 이 청년, 공중전화 걸려고 들어갔던 시내 지하실 사격장에 '어린' 건달들한테 걸려, 비 쏟아지는 진흙 위에서 와장창 두드려 맞아 이가 하나 부러지는 참경을 겪는다.
(이가 부러진 버드. 이가 부러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그래서 네이버에 "이 부러지면 아픈가요?" 검색해봤더니, "이빨도 뼈인데 부러졌는데 그럼 안 아프겠냐", ""개아픔 채택ㄱㄱ", "이빨도 부서지면 아플 거예요 물론 100%요"의 대답이 나와 내 생각을 만족시켰다. 소설은 이후 약 1주일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근데 버드의 성격에 네이버 답변과 같이 '개아픔'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어떻게 한 번도 호소하지 않았을까? 무지 아팠는데 참았을까? 진짜로 무진장 아팠지만 작가가 생각하기에 그건 이 책에선 아픔도 아니라서 오에 겐자부로가 일부러 모른 척했을까? 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간 젊은 아빠가 온갖 역경을 겪은 다음에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는, 부의사, 정의사 말고 부의사副醫師의 전화를 받았으나 어째 전화 속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아이가 나오긴 나왔지만, 머리뼈에 이상이 생겨 뇌헤르니아 상태라서 아이의 머리통이 수박만 하다는 거다. 헤르니아, 라면 탈장을 얘기하는 거고, 뇌헤르니아라면 뇌가 머리뼈의 빈 곳을 통해 두개골 밖으로 누출 되었다는 얘긴데, 그게 수박만 하다면 뇌의 거의 전부가 흘러나왔다고 봐야 하는 것이고, 진짜로 산부인과의 정,부의사는 뇌헤르니아로 진단하여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기자는 말을 하기 위해 버드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갓난 아이의 두개골을 열고 뇌를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수술. 수술이 극적으로 성공해도 살아날 가능성 별로 없고, 살아났다 하더라도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내야 할 확률이 거의 95%.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식물인간이 아니라 지체장애로 살아야 할 확률이 나머지 5%. 그러느니 차라리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부모한테도, 아이한테도 훨씬 나은, 효과적인, 바람직한, 심지어 자비로운 일이 아닐까.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생을 뜨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럴 경우 정말로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지체장애가 된 성인 자녀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큰 아들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난 더 이상 단 한 마디도 보태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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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 2017-05-02 공감(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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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의 개인적인-온통 스포일러 새창으로 보기
결혼하고 남편이 가장 미웠던 때는 첫 아이를 가지고, 낳아 기르던 그 몇 해였다. 임신으로 무거워진 몸을 하고는 돌아나오면 오줌이 마려운 나를 이해 못하는 남편, 아이를 낳기 전 후로 내 일상은 확 달라졌는데 여전히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보이는 남편,을 나는 그래, 미워했다. 뱃 속에 열달을 품고, 그렇게 낳아서, 기르는 나도 아이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남편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나보다 남편이 더 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걸-그래, 남편의 기여는 추상적이니- 이해할 만큼 나는 넉넉하지 못했던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개인적인 체험 안에서 책 속의 남자를 미워하며 읽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고 돌본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묘사했다는 책 소개에, 그래, 나는 무언가 애틋한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은 산통을 하는 아내를 두고 나와 아프리카 지도를 사는 남자를 시작으로 거리에서 십대와 싸움질을 하는 남자, 아이의 장애를 알고 아이를 죽일지 살릴지 심난한 와중에 술을 퍼먹는 남자, 술을 먹으러 자신이 강간했던 남편이 자살한 대학 동기 여자를 찾아가는 남자, 술을 퍼먹고 직장에서 토해가지고는 직장에서 짤리는 남자, 수술을 할 수 없을 만큼 아이를 허약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남자, 아이가 약해져서 죽었다는 전화를 이제는 애인이 된 대학동기 여자 집에서 기다리는 남자, 결국 실패했다는 전화에 아이를 죽여줄 다른 의사를 물색해서 차를 몰고 가는 남자, 그러다가 그러다가. 시간은 점프해서, 의젓한 아이의 아빠인 남자를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사건들을 이야기들을 그 남자의 시점으로 읽으면서, 산통하는 아내에 이입하면서 분개하는 거다. 아, 썅, 죽을 똥 살 똥 아기를 낳고 있는 아내도 있는데, 지금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자기 젊음? 자유는 끝났다고 앓는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아이가 죽으면 결혼은 끝이라고 말한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지금 병실에 있는데, 지금 술 퍼먹고 여자랑 저런다고, 아우, 이러면서. 자기를 다 이해한다고, 자기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그래 애인이 된 여자를 묘사하는 데는, 아, 미치겠다. 그래, 여자들이 다 그랬으면 좋겠냐, 이러면서. 내가 일본의 문인들의 여성혐오를 열거한 책을 봤는데, 이 작가도 틀림없이 있을 거야, 이러면서.
작가의 결국, '개인적인' 체험이고, 모든 사람들은 결국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체험한다지만, 이런 '남성'의 이야기가 그 당시 대중적으로 꽤나 성공했다는 데 놀란다.
명절에 엄마한테 줄거리를 중계했더니, 엄마가 '그래, 세상에 미친 놈들 쎘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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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6-09-23 공감(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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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 새창으로 보기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273)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이 작품이 허구가 아니라 실화, 그것도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실제로 뇌헤르니아 장애를 가진 장남 히카리를 낳은지 얼마 안 돼서 쓴.
누구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한다.
왜 작가는 그 고통스런 상황을 이토록 냉정하고 치밀하게 다시 응시해야 했을까? 그러다보면 분명 아이를 향해 느꼈던 그 때의 분노와 살의, 커다란 절망을, 끔찍할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던 자신의 방황을 대면해야 했을텐데.(실제로 작가로 현실에서는 자살을 시도했고 퇴폐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책 <해설> 291쪽 참조)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버드는 "집으로 돌아가면 먼저 거울을 보아야지" 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 대목을 나는 아무리 괴롭더라다도 현실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결의와 반성으로 읽었다. 실제로 작가는 "그 후 줄곧 장애를 짊어진 아들과 살아왔고 연달아 닥쳐오는 새로운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때처럼 온몸으로 절망한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278-279)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그때의 자기자신과의 정면 대결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정화작용"을 했다고 인정한다.
<히로시마 노트>에는 겐자부로가 개인적인 불행을 극복하게 된 깨달음의 과정이 나온다. 원폭피해자들을 보면서 그는 비참함 속에서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본 것이다. 이들에게서 본 삶을 그는 "정통적인 삶"이라고 명명한다.
"히로시마의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지나친 절망도, 지나친 희망도 갖지 않는 그러한 실제적인 인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하다. 나는 이러한 이미지의 사람이야말로 정통적인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작가의 이러한 깨달음은 <개인적인 체험>에 잘 나와 있다. 장인이 "자넨 이번 불행과 정면에서 맞서 잘 싸웠군 그래"하고 버드에게 말하자 버드는, "아뇨. 저는 여러 번 도망치려 했었어요. 거의 도망쳐 버릴 뻔했었었죠. ... 하지만 이 현실의 삶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결국 정통적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것인 모양이네요. 기만의 올무에 걸려 버릴 작정을 하고 있는데도 어느 샌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그런 식으로요."(274)라고 말한다.
현실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정통적인 삶을 살라고 호명하고 강요한다. 현실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기만의 늪에 빠질 수 없는 것이다. 희망도 필요하지만 인내도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절망을 인내하면서 희망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작가는 이유도 알 수 없고, 납득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내게 일어나는 폭력과 그로 인해 망가지기도 하는 이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파괴되지 않으며, 파괴하지 않고, 일단 망가진 것은 고치는" 일(293)이라고 말한다. 특히 망가진 것을 고치는 회복 노력을 강조한다. 이 생존과 회복의 철학을 노년의 지금까지 일관되게 실천한 작가에게 우리의 그리고 세계의 존경심은 마땅한 것이다.
"...머지않아 일찍이 없었던 무게의 곤경이 찾아오리라는 것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인간에 대해 '회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는 신념을 지니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299)
<법화경> 중 <방편품>을 보념 오탁악세란 표현이 나온다. 다섯가지로 탁하고 악한 세상을 뜻한다. 오탁이란 겁탁(怯濁),견탁(見濁),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명탁(命濁)을 말한다.
오탁을 작가나 소설 속 상황으로 풀어보면, 첫째 겁탁은 질병이나 천재지변, 환경파괴 등의 재앙이 발생하는 시대다. 두번째 견탁은 그릇된 가치관과 견해로 작품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관료주의나 황금만능주의가 대표적이다. 세번째 번뇌탁은 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악덕이 횡행하는 시대다. 모두들 '개인적인 체험'만을 안고 있지 다른 이의 고통엔 무관심하다. 이해와 공유가 불가하다. '나', 오로지 '나'일 뿐이다. 네번째 중생탁은 정신적인 금치산자인 앞부분의 버드와 같은 무책임한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다. 아내는 버드에게 묻는다. 당신은 책임지는 사람이냐고. 그러면서 책임진다는 건 특히 상대방이 약할 때라고 강조한다. (배우 장혁이 언젠가 방송에서 아내와 결혼하기 전 이야기를 했다. 힘들었고 그 기간이 길어 여친에게 떠나도 좋다고 말하자 여친 왈 "사람 힘들 때 버리는 거 아니야") 다섯번째 명탁이란 불의의 사고나 재해, 살상과 자살 등으로 자기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시대로 원폭피해자나 버드의 아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시대만이 어디 오탁악세였을까.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정통적 삶'을 궁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지나친 절망도, 지나친 희망도 갖지 않으면서, 파괴되지도 파괴하지도 않으면서, 망가진 것을 고치면서 회복을 시도하는 끝없는 영원회귀의 반복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회복하는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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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심는사람 2015-07-1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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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작품이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더불어 문학적인 평가 또한 높이 평가 받는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꼭 나에게서까지 공감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작품을 보는 시대와 내 생각의 차이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고 저자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일본에서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하는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을 [개인적인 체험]으로 처음으로 접한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대중으로부터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한 소설이다. 저자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이야기라고 한다.
앞날이 꿈으로 부풀어 있는 청춘의 어느 한 시기를 보내고 가정을 꾸민 버드라는 청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이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자신의 삶에 파고든 아이로부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자연사를 핑개로 살해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영원히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수술을 하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드려 함께 살 것인가의 결정, 이것이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버드라는 청년을 통해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 갈등,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보여주고 있다.
갈등의 한 복판에선 주인공 버드는 예전부터 꿈꿔온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실현이 물 건너 간 현실에 대한 암담함, 장애아가 태어난 책임의 여부 등에서 오는 절망감에 빠져 술도 마시고 대학 동기이자 여자 친구인 히미코와 성적 유희에 몰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 하나 결정하지 못하며 갈등하는 사이 학원 강사라는 직업도 잃게 되고 히미코와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론은 아이를 수술하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해피앤딩의 결말이다.
저자는 버드라는 청년을 통해 전쟁 후 인간성 말살이나, 핵무기, 환경오염 등 현대인으로서 결코 벗어버리지 못할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그 제시 방법이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일반화 시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앤딩이라는 것이 바로 저자의 지향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아의 출산이 한 개인에게 충격적인 체험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부분적인 부분에서 여자 친구와의 성적 유희로 보이는 행동이 지나치게 표현되고 있어 오히려 갈등을 해소하는 측면 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내가 희망을 버린다면 내 문학과 삶은 전부 부정되고 만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희망을 그려내고 있는 과정에 희망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말이 긍정이라서 이 소설이 희망을 이야기 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삶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늘 함께하는 아버지였고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려는 활동, 핵문제에 적극 대처하려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본이의 말처럼 저자의 이러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는 마음이 곧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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