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2

김대호 4.3에 대해 나도 정확하게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이재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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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에 대해 나도 정확하게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이재운 작가에게 감사!!








이재운
drSnoteposu4gh82c:r2g1 34p511aga1a 09umta4Ahl8l0tu0f1m7i6a5 ·

- 양심 있는 지식인들조차 말하지 못하는 제주 4.3의 비밀
(한번은 알고 넘어가자. 그래야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1. 미군정은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을 제주도에 보내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준비시켰다.
한편 북한에서는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특수공작원 6명을 제주에 파견했다(태영호가 말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이들은 500명~700명의 동조자를 모아 무장했다.

2. 1948년 당시 제주도 내 남로당원 가입자는 6만 명 ~ 7만 명이었다. 1947년 3월 19일 미군정보고소에는
제주도민 70%가 좌익 내지 동조자로 나온다(박헌영 비서 박갑동의 진술)
1949년 무초 주한미대사의 국무부 보고서에 "첩자들이 제주도로 별 어려움 없이 스며들고 있다"고 나오며, 신성모 국방장관은 "그들 대부분이 북한에서 소형 낚시배로 출발하여 제주도에 도달하였다"고 하였다.(민주당은 이런 말 안한다)

3.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원 350명이 제주도 내 지서 12곳을 공격했다(민주당은 절대로 이런 말 안한다)
제주도인민유격대 대장 김달삼, 특별경비대장 이덕구. 장교와 사병 4000명. 이들은 제주도 24개 경찰지서 중 절반인 12개 지서를 급습하고,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공격, 살륙했다.

4. 미군정은 국방경비대 제9연대(연대장 김익렬 중령)를 출동시켰다. 김 중령은 귀순 작전을 벌여, 마침내 김달삼과 귀순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제주도 남로당 측이 반대 공작과 위장 폭동을 벌여 협정이 무산되었다.

5. 5월 10일, 계엄 상태(전체 계엄은 11월 17일)에서 선거를 치렀다. 유권자 8만 5517명 중 4만 5862명이 투표했다.
절반이 남로당의 방해 등으로 투표하지 못했다.

6. 인민유격대장 김달삼이 9월 북한 해주에서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참석 차 제주도를 떠났다. 8월 15일에는 본토 군 병력이 증파되었다. 제주도로 들어온 제9연대는 중산간 지대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무차별 진압이 이뤄지고, 집단학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7. 남로당 무장대는 제주도민 1528명을 죽였다. 또한
남로당 무장대는 진압군 1091명을 죽였다(이 역시 민주당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8. 당시 제주도민은 27만 6천 명이었다. 진압군이 남로당 무장대 토벌 과정에서 무고하게 죽인 민간인 희생자는 7624명이다. 단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다 포함하면(인구 감소 등으로 볼 때) 2만 5000명~3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있지만 구체 특정은 못하고 있다.

9. 제주 인민유격대장 김달삼은 나중에 육이오전쟁이 일어나자 임ㄴ군으로 참전, 정선군 봉정리 전투에서 사살되었다.

10
. 해마다 4.3이 되면 민주당은 국군과 경찰 등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이 대략 학살되었다고만 주장하며 대통령이 가서 추모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희생자라는 사람들 중에 인민유격대와 다수의 남로당원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또 인민유격대에 의해 죽은 진압군 1091명과, 인민유격대가 죽인 도민 1528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가서 우리 군과 경찰, 제주도민을 죽인 인민유격대원과 남로당원을 추모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걸 구분해야만 한다.

11. 누가 책임져야 하나?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되었다.
제주 4.3사건은 미군정기에 시작되어 이승만 정부에 끝났다. 그러므로
진압군의 책임은 미국 반, 한국 정부 반이다. 이런 데도 4.3이 자기들 거라고 믿는 민주당에서는 웬일인지 미국에 죽창을 들지 않는다.
또 인민유격대의 책임은 김일성과 박헌영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김일성과 박헌영, 김달삼의 책임을 묻는 사람이 태영호 말고는 없다.

12. 4.3희생자의 정의
정부가 책임져야 할 4.3희생자는? (2019년 12월 4.3위원회 자료)
- 진압군에 희생된 무고한 분들 : 7624명(다만 남로당원이 몇 명인지는 구분이 안된다).
- 인민유격대에 희생된 무고한 분들 : 1528명. 군인 180명, 경찰 140명, 우익단체 639~744명. 이들은 민주당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13. 4.3유족회의 정의
오늘날 4.3유족회라고 하면, 죽은 인민유격대의 유족인지, 남로당원의 유족인지, 진압군과 우익의 유족인지 구분이 안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피해자는 인민유격대원이 아니고, 남로당원이 아니면서,
양측 전투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은 양민이다. 이 양민에 대한 정의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 민주당은 인민유격대원도 양민이라고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14. 해결법은?
일단 인민유격대에 의해 죽은 군인, 경찰, 우익단체회원 1091명은 국가유공자로서 국가 책임을 다하고 있다.
다만 진압군에 의해 죽은 무고한 양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 아직 남았다. 그런데 이 책임의 문제와 범위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인민유격대원, 남로당원 속에서 무고한 양민이 누군지 가려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영원한 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제주4.3사건이라는 애매한 이름 말고 진짜 正名을 찾자는 주장이 있지만, 될 수가 없다. 제주4.3사건을 4.3항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4.3무장폭동이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이 두 주장 사이에는 너무 먼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나도 뭐라고 하기 어렵다. 통일이 돼야만 해결될 문제다.
그러니 문재인이 뭐라고 짖든, 민주당이 뭐라고 아우성이든 정부는 제주도 발전에 더 앞장서고, 제주도민들이 어서 그 상처를 씻을 수 있도록 돕는 수밖에 없다. 제사 정치에 앞장서는 민주당이 볼 때야 빨갱이든 유격대원이든 남로당원이든 싸잡아 희생자라고 부르며 기리고 싶겠지만,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된다. 국민 분열을 노린다면 그래도 되지만, 민주당의 주장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 당시 사진 중 하나. 뒤에 서 있는 저 사람,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 휘하의 미군으로 보인다. 미국을 향해 죽창 들자는 민주당 국회의원은 안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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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e Gohn Gwak
    무고한 양민이 누군지 ( 알고 싶지 않다 )
    통일이 되면 ( 하고 싶지 않다 ) ㅎㅎ
  • 최재기
    "무고한" 희생자만 추모해야.
    "collateral damage" 즉 진압과정에 발생한 부수적 피해자를 추모해야.
    남로당 관계자나 협력자, 폭동가담자는 북조선에서 추모하면 됨.
    3
  • Jooyoung Kim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본다면,,,양민 희생자 수가 많아진데에는 인민군이 양민들 집 사이사이 숨어서 일상 생활을 하다가 밤에만 되면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요...그럼 국군 입장에서는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하나요...그리고 제주도 방언은 외지인이 알아듣기 힘들었을테고, 혈연과 가부장제가 심한 제주도는 서로 서로 숨겨줬을거고... 낮에 친절하게 맞아줬던 평범한 동네 사람이 밤이되면 국군과 경찰 죽이러 다니지 않았을까요... 20대 초반 국군들의 공포와 슬픔을 상상해봅니다...
  • 김현우
    저는 4. 3. 유족입니다. 조부님, 증조부님이 돌아가셨고 할머니느 총 3발을 맞았는데 살아남으셔서 평생 고통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럼에도 태영호 의원이 4. 3.은 김일성이 지시했다는 발언에 대하여는 불쾌하거나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도 김일성이 지시했다고 생각해요. 태의원이 직접 들었다는데 뭐라고 하나요? 정확히 할 필요는 있습니다. 공산당이 일으킨 반란, 그걸 진압하는 과정에서 피아식별이 힘들어서 양민이 엄청나게 살해당한 사건. 그 과정에서 제 조부님도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돌아가셨고(닭서리하다가 망신당한 것을 이유로 제 조부님께 원한을 가졌던 아랫마을 인간의 모함이었습니다) 제 증조부님도 학살당하셨습니다.
    다만 진상을 따지는것만 중요할까요? 저는 제주도민보고 빨갱이라고 하는 서북청년단인지 뭔지 하는 극우파들하고는 좀 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간들에게는 정말 모욕감느끼거든요. 그런 인간들하고 결별하고 단호히 선을 그어야 태의원이든 우파든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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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화
    9번 틀렸어요. 달삼이는 50년 3월에 죽어요
  • May be an image of one or mor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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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화
    나무위키가 틀렸으면 모르겠지만. 췟 달삼이라고 하면 안돼겠네. 저랑 같은 고부이씨네요.
  • 손광덕
    한쪽만 파헤치는 나라
    거기에 불 붙이는 못된 전직
  • Paul Ma
    팩트가 왜곡된 글입니다. 주관적 관점에서 쓴 글이네요.남로당은 훈련받은 선동가 및 조직가, 이른바 공작원 6명을 본토(남한)에서 제주도로 파견했습니다. 선동가 및 조직가 6명이 북한에서 파견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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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회
    전쟁에 직접 참가한 적이 없어서 군인들이 실제로 겪은 전장 공포감등을 공감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가두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이 급 흥분하게 되는 계기가 뭐냐하면 누가 경찰 곤봉에 맞아서 머리가 깨졌다더라,어느 여학우가 옷이 찢겨지고 어찌어찌 되었다더라는 대자보를 보는 순간,거기다가 증거라고 찢어진 조끼라도 같이 게시되는 순간 조용히 구경(?)만 하던 학생들을 전사로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4.3때 제주도의 분위기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경우의 수가 많지는 않았겠지만 개인적 원한이 있던 사람의 분풀이도 없지는 않았을테고 진압군에 의한 민간인의 억울한 희생도 많았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반란군이나 남로당 무장대원들을 희생자로 둔갑시키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문제가 남로당 무장대원에 의한 학살 피해자들은 보상이 안되고 진압군에 의한 희생자라야 더 빨리 인정되었다는 이 전 정권에서의 진상조사 과정상의 문제 때문에 그 피해자 숫자에 대한 왜곡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진영 논리에 의해서,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진상을 밝히는 작업이 훼손되지 않고 제주도민의 아픔이 조속히 치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선열
      김형회 이런 방법도 사용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로당에 의해 피살된 민간인은 1.5배로 배상한 후 통일 시 북조선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으로 하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정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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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ung Doohwan
    잘모르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보다 큰 품으로 찾아주시

    길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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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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