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

알라딘: 제국과 식민지 사이 -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이규수

알라딘: 제국과 식민지 사이  -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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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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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쪽

책소개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학술총서 1권. 조선의 식민체제를 공고히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재조일본인 그 '식민 주체'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식민체제를 더 견고히 해나갔는지 풀어쓴 책이다. 급격한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일본에게 조선은 가장 좋은 이주 대상지였다.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으며, 이를 이용해 일본은 조선에서의 식민체제를 더욱 공고히해나갔다.

이 책에는 재조일본인과 일본정부가 조선에서 펼친 식민지 경영 과정이 각종 통계와 저자의 분석으로 풀이되어 있다. 또한 식민자로서의 재조일본인의 체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어떻게 연동되거나 유리되었는지도 그들의 회상속에서 면밀히 드러난다.


목차


책머리에

Ⅰ부 재조일본인 연구와 존재 양태
1. 연구의 현황과 과제
1.1 ‘제국’과 ‘식민지’의 연구 지형
1.2 접점으로서의 재조일본인
1.3 연구 방향

2.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
2.1 인구
2.2 직업 구성
2.3 출신지와 지역적 분포
2.4 일본인 지주와 ‘식민지 수탈론’

Ⅱ부 식민정책론과 재조일본인 사회
1. 일본의 해외 식민 정책론과 이민 사업
1.1 식민 정책과 농업이민
1.2 기간지 이민 사업
1.3 미간지 이민 사업

2. 식민도시 인천과 재조일본인
2.1 개항과 조계 설정
2.2 거류민 사회의 형성
2.3 식민 거점의 확보와 인천

3. 일본인 지주의 진출과 군산 농사조합
3.1 일본인 지주와 ‘식민열’의 고양
3.2 군산농사조합의 설립
3.3 군산농사조합의 활동

Ⅲ부 식민자의 체험과 기억
1. 벌교지역 재조일본인 사회와 ‘풀뿌리’ 침략
1.1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
1.2 일본인 군상
1.3 조선인과의 갈등, 식민지 기억

2. 조선총독부 치안 관계자의 체험과 기억
2.1 육성증언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
2.2 인식의 전제로서의 ‘민족본능’, 그리고 ‘투쟁’과 ‘협동’
2.3 ‘문명적 정치’와 ‘내선상애’(內鮮相愛)
2.4 식민지를 둘러싼 ‘기억’

3. 후지카이(不二會) 기억 속의 ‘제국’과 ‘식민지’
3.1 체험에서 ‘ 기억’으로
3.2 패전과 귀환, 그리고 기억의 ‘재생’
3.3 제국 서민의 왜곡된 우월의식
3.4 왜곡된 ‘기억’의 재생산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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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규수 (李圭洙)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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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1962년에 태어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를 졸업했다.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전북대학교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2021), 『제국과 식민지 사이』(2018), 『한국과 일본, 상호 인식의 변용과 기억』(2014), 『제국 일본의 한국 인식, 그 왜곡의 역사』(2007), 『식민지 조선과 일본, 일본인』(2007)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시무時務의 역사학자 강덕상』(2021), 『다이쇼 데모크라시』(2012), 『일본제국의회 시정방침 연설집』(2012),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2006).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2000)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아시아 제국주의 질서와 역사인식>,<전후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와 역사인식>,<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수탈과 궁삼면 토지탈환운동> … 총 4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선을 지배한 ‘식민 주체’의 입장에서 바라본 재조일본인 연구서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학술총서」제1권『제국과 식민지 사이-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조선의 식민체제를 공고히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재조일본인 그 ‘식민 주체’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식민체제를 더 견고히 해나갔는지 풀어쓴 책이다. 급격한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일본에게 조선은 가장 좋은 이주 대상지였다.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으며, 이를 이용해 일본은 조선에서의 식민체제를 더욱 공고히해나갔다. 이 책에는 재조일본인과 일본정부가 조선에서 펼친 식민지 경영 과정이 각종 통계와 저자의 분석으로 풀이되어 있다. 또한 식민자로서의 재조일본인의 체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어떻게 연동되거나 유리되었는지도 그들의 회상속에서 면밀히 드러난다.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재조일본인,
재조일본인은 식민지배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였다

재조일본인은 ‘제국’과 ‘식민지’의 접점에서 그들이 갖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 제국의 식민지 침략의 수탈이 국가 권력과 그들이 지원하는 민간인이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제국이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총독을 정점으로 한 식민지 관료나 군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체제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재조일본인을 통해 유지 강화되었다.
재조일본인은 식민지 경영 과정과 일상 체험의 회상을 통해 식민지 조선을 ‘식민 주체’의 입장에서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으로 남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앞장서, 특히 관료와 지식인이 중심이 된 집단이 편찬한 식민지의 기억은 식민지배의 정당화를 위한 근거가 되었다.
재조일본인은 대부분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들이 생산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기억은 지금도 조선에 대한 인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 기억의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는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를 파악하려 한다. 한국 근현대를 되돌아볼 때 지배와 저항의 관점만으로는 일본인을 매개로 발현된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기억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패전 이전에 형성된 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어떻게 전후에도 무비판적으로 계승되어 다양한 양태로 재생산되었는지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근대 미시 권력의 작동’ 또는 ‘풀뿌리 지배 권력의 억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 지배 체제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고 현대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성을 연속적으로 파악하려면, 식민자로서의 일본 서민의 역사적 체험과 구(舊) 제국·식민지에 대한 의식 구조를 해명해야 한다.

1부에서는 재조일본인을 둘러싼 기존 연구의 성과를 소개하고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를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각종 통계를 분석했다. 인구 변화 양상을 수량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재조일본인의 연도별, 출신지별, 산업별, 지역별 인구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어 지역 레벨에서의 현황과 그들의 인식을 통해 드러난 재조일본인 사회의 생활과 문화의 단면을 고찰했다. 이런 작업은 식민정책의 입안자와 실행 주체, 그리고 이에 편승한 ‘보통’의 재조일본인의 존재 방식을 도항과 정착, 조선에서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거시와 미시’라는 방법을 통해 구조적으로 조망할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2부에서는 일본의 해외식민정책론과 이민 사업의 실태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개항장 인천과 군산을 사례로 개항 이후 한국강점에 이르기까지 일본 식민지배세력이 조선에 세운 식민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무엇이며, 또 그런 사회구조적 특성은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과 서로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사례 연구로 개항장 인천을 거점으로 초기에 형성된 재조일본인 사회의 특징과 군산에 설립된 군산농사조합의 설립 과정과 활동 내용, 그리고 그 해산 과정의 검토를 통해 일본인 지주의 토지집적 과정의 특징을 분석했다.
3부에서는 식민자로서의 재조일본인의 체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실체와 어떻게 연동되거나 유리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재조일본인들의 ‘기억과 회상’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나아가 이는 일본인들의 식민지 조선의 기억만으로 끝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를 보는 현재의 눈이기도 하다. 식민과 전쟁의 피해자로 탈바꿈한 ‘식민 가해자’의 기억이 ‘피식민자’의 입장에서 재구성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피식민자’였던 조선의 입장에서 ‘식민 가해자’가 형상화한 지배 논리와 ‘이미지’를 해체하고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역사학계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현재 일본 보수의 동아시아에 대한 논리의 뿌리도 여기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관한 한일 양국의 기본적인 역사 인식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와 저항이라는 틀로 규정되었다. 구체적으로 ‘탈식민’ 이후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 사회는 저항의 모습을 독립운동으로 복원했고, 일본 사회에서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이 여전히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역사 인식의 평행선에서 상호간의 접점을 발견하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식민지배에 관한 일본 사회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평화헌법의 개정과 군사화를 바탕으로 군국주의를 복원시키려는 일본의 동향에 대해 세계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받아들이는 ‘보통 일본인’과 이를 조직적으로 선동하는 ‘보통 국가’ 일본의 출현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과거회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국가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고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을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재조일본인을 주제로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만을 부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불행한 과거를 거울삼아 이제 동아시아의 모든 민중은 평화와 화해를 향해 손잡고 나아갈 시점에 이르렀다. 역사학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역사학은 과거의 ‘기억 들추기’를 통해 ‘과거에 머물기’가 아니라, ‘과거 되살리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미래를 살아내기’ 작업이라 믿기 때문이다. 접기


평점
분포

7.7

마이리뷰




제국과 식민지 사이




'식민지 근대성론'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근대국가로부터의 '벗어남'을 지향하는 탈근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이런 담론은 일제강점기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내용상으로는 20세기의 역사 경험을 총괄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있었는가, 일본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어떻게 변모시켰는가, 식민지의 유산은 해방 이후 고도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 근대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등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질문들은 한국의 지난한 근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한다. (-22-)


일본은 한국을 식량과 원료 공급지라는 식민지 본래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과잉인구의 배출지로서 한국을 주목하여 일본 농민의 이주 식민 정책을 병행한다는 것이었다.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인구와 식량 문제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 노동자 증가로 식량 부족 현상이 만성화되었고,변방 직업에 필요한 원면과 제사업의 원료인 누에고치의 원활한 공급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77-)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거류민은 재차 군에 협력했다.거류지는 청일전쟁 당시처럼 병참감부, 병참사령부, 보조수졸대, 임시군용 철도감부, 군용병원이 각각 설치되었고,인천항에는 선박사령부, 정박장감부,임시 육군 운수통신부 인천지부 등 군사시간이 포진되었다. (-140-)


'조잉수호조규'는 주지하듯이 부산을 개항할 것, 앞으로 20개월 이내에 다른 두 항구도 개항할 것,이들 개항지에는 일본인이 토지를 임차하더라도 임의에 맡길 것, 일본인이 조선이 지정한 각 항구에 재류 중 만약 죄과를 범하여 조서인과 교섭이 필요한 사건은 모두 일본 관헌이 처리할 것 등을 규정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수호조규에 부속하는 왕복문서;와 '수호조규 부록'이 체결되어 수출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과 조선에서의 일본 화폐 통용이 인정되었다.(-145-)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우리는 재일동포 혹은 재일한국인이라 부른다.그건 바꿔 말하면,일본인이 한국에 체류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재조일본인이라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조한국인은 일제강덤기 시절에 제국주의 국가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가교 역할을 하였고, 그들은 국가 일본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이 부합하여 조선에 넘어온 일본인이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에서 거류민으로 살았던 재조일본인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우리 조선의 근현대사를 꺼내고 있다.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일본인이 조선을 지배하려면,국가 일본의 주류층만으로는 쉽지 않는 선택이다. 일본은 일본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을 이용하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이후 산업혁명이 현실이 되었고, 일본 사회의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조선과 조선 땅,조선 사회를 활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정책은 조선 이주정책이다. 그건 일본 스스로 당근과 채찍을 활용한 정책을 구현한 것이며, 식량 문제, 일자리 창출, 일본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선이라는 절대적인 장소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재조한국인을 조선 땅에 이주하였고, 그들이 거류민으로서 조선땅에 발을 붙이기 시작하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익숙한 땅에서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큰 리스크이다.특히 식민지 조선 땅에 일본인 거주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으며, 그들을 보호해주는 국가가 있어야만 이주가 가능하다.그래서 일본이 내세운 것은 재조일본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이며, 그럼으로서 그들이 스스로 조선땅에 들어가게 된다.배고픔을 해결하고,일본인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 주며, 그들의 조선 본토에서 저지른 죄를 묻지 않는 것,그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이 재조일본인에게 통했던 것이다.하지만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투명하였다.식민지 조선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일본은 또다른 전쟁을 계획하게 된다.청일 전쟁이 일어난 이유,러일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권 확보 및 일본인과 재조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그래서 재조 일본인은 스스로 전쟁에 유야무야 동참하게 되었고,제국주의 일본에 동조하게 된 이유이다.그들에게 협력함으로서 재조일본 상인은 무역에 있어서 불이익이 사라지게 되었고, 재조일본 농민은 조선땅에서 합법적으로 수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또한 유곽에서 일하는 일본 여성은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전쟁이 왜 일어나고, 전쟁의 연속성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한권의 책으로 입체적으로 분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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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10-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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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제국과 식민지 사이



두 아이가 어렸을 때 헬로우 키티 캐릭터를 아주 좋아했다. 옷과 신발 학용품등을 헬로우키티 제품을 많이 사 주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간 후 일본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용품을 포함한 자신이 가진 일본관련 제품을 모두 거부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일본작가와 작품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혹시 아이와 마찰이 생길까 나 스스로도 일본 작가의 작품을 잘 보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도 한쪽 구석으로 조용히 치웠다. 간혹 아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흐를까? 한마디씩 충고하곤 했다. 극우주의자들의 행태는 밉지만 과거 자신들의 국가가 행한 잘못된 행동들을 비판하면 반성을 촉구하는 분들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등등 그렇게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민들은 과거 자신들이 행한 많은 잘못들을 반성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거의 한세기가 다 되어가는데 진짜 반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아직도 제국주의 깃발을 버젓이 들고 응원을 한다. 누구 한사람 제지하지도 않는다. 언론에서도 그런 행태들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머리가 혼란하던 차에 [제국과 식민지사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당시 일본은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문제의 해결 그리고 원료공급지로서의 조선은 매력적인 대상지였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을 빠르게 안착시키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도 필요했지만 그와 더불어 조선민중과 꿋꿋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존재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조선에 들어와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일본인들이다.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식민지배할 수 있는 동력은 재조 일본인들의 든든한 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의 일본이 힘이라는 제국주의의 논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것과 함께 지금 일본국민들이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제국주의깃발을 펄럭이는 이유가 아닐까?

[제국과 식민지 사이] 이 책은 학술서답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작은 디딤돌의 역할은 충분하다. 끝까지 읽기 쉽지 않지만 외면하고 덮어버리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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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학 2018-09-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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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제국과 식민지 사이 –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우리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의 역사 모두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와 인접하고 있는 중국, 일본 등의 역사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입장으로 식민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그 당시 역사들에 대해서는 많이 관심도 가지고, 공부해보기도 했으나 정작 조선에 체류한 일본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없는 듯하다.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이들도 그들이고, 총독을 비롯해 경찰, 군부 등 식민지 체제를 견고하게 뿌리내리게 한 이들이 그들임에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관심을 가졌지 그 안의 개인에 초점을 두지 못하였다.

저자는 이들 재조일본인들이 ‘제국’과 ‘식민지’의 접점에서 그들이 갖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 제국의 식민지 침략과 수탈이 국가 권력과 그들이 지원하는 민간인이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주요 연구대상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주목한다.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 재조일본인의 인구 변동, 재조일본인 사회의 사회 조직과 단체의 현황, 사회구조적 특성을 밝히며 일본 식민 지배의 연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도록 하였다.

조선 개항 당시 급격한 인구 증가가 문제되고 있던 일본에서는 식민지 조선이야말로 아주 좋은 이주 대상지였다.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 수가 그 당시 7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이 굉장히 큰 규모로, 또한 급격히 빠르게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주자가 그 정도이니 단기 체류한 사람까지 고려한다면 상당한 인구가 조선에서 생활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들의 조선 생활을 추적하였다. 그들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보다 더욱 주목되는 건 일본의 패전 이후 그들의 기억이다. 일본의 패전 후 본국으로 귀환한 그들이 1965년 한일조약 체결 등 동아시아 정세 변화를 거치며 자신들의 식민지 경험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 사회의 귀환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그들 스스로의 향수, 귀환의 아픔과 접목되어 자기합리화의 감정이 그것을 넘어 고정관념으로 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반도’의 남성은 게으르고, 봉건적이며, 노동을 비하한다는 등 수많은 ‘착각’을 진실이라 믿고 있다. 무의식적인 심리적 위안이든, 의도적인 분노의 표출이든 이러한 악의적인 인식에 대응하는 것이 과제라는 점을, 저자는 전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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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2018-09-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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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 사이



이 책은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 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인 이규수 교수님의 학술 논문이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인으로 생활한 재조 일본인의 체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식민지 수탈론’과 대비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연구 내지는 재조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식민지론의 재생산에 대한 현주소를 연구한 논문이다. 제 1부는 재조일본인의 연구와 존재 양태로 ‘연구의 현황과 과제,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 2부는 식민정책론과 재조일본인 사회이며, 제 3부는 식민자의 체험과 기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식민지 수탈론’이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자리매김하였는데, 1980년데 중반 이후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바로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식민지근대화론’이 민족주의 역사학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을 비판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저항’의 역사가 아닌 ‘수탈과 개발’의 역사로 바라보자는 ‘식민지 개발론’이나 이를 수정한 ‘식민지 근대화론’ 등장하고,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식민지 근대성론’이 1990년대 중반이후 탈근대주의 입장에서 대두되었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래 내용을 보면 그런 용어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변화에 대해 변화의 주체 문제를 등한시한 채 경제적 측면에서 해방이후 한국자본주의 고도성장과 연관시킨다.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사회문화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차별과 배제논리, 규율권력의 개인적 내면화를 근대성 일반이 이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음에 주목하고, 이를 탈근대의 문제의식과 연관시킨다. 요컨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근대성론’ 모두 ‘식민지 수탈론’에 내표된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선진근대국가의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지상주의인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근대국가로부터의 벗어남을 지향하는 탈근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이 지닌 최대 결함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성’에 주목하면서 ‘식민성’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22p-



일본인들이 처음 조선에 진출한 것은 1876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조일수호조규’에 의하여 부산이외에 원산과 인천에 개항장을 통해서였다. 이후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한다. 이 재조일본인들은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에 적극 협력했으며, 러일전쟁 이후에 개항장 인천은 일본의 식민기지로 변화했다. 1904년 전북 군산에 설립한 군산농사조합은 개항장 군산을 거점으로 비옥한 곡창지대에 토지소유권과 저당권을 획득한 일본인 지주의 토지 집적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본인 지주의 밀집지대인 군산 부근의 1단보당 가격은 상답 15~20원, 중답 10~15원, 하답 10원이었다. 또 전주는 상답 17원, 옥구는 중답 13.5원, 김제는 중답 8.3원이었다. 이런 한국의 매매지가는 일본 관서지방에 비해 약 10퍼센트에 불과한 것이었다. 1904년 일본의 1반보당 평균 매매 가격은 논 150원, 밭 86원이었다. 즉 일본인은 일본 국내의 토지를 처분하여 한국에 진출하면 토지 면적을 10배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저렴한 지가와 소작제 농장 경영을 통한 고율의 토지 수익률은 상업 자본가와 지주 계층의 토지매수를 가속화했다. 그들은 자본가의 임무를 내세우며 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임을 자부했다” -153p-



아울러 재조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켰는데, 이 책에서는 전남 벌교에서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이 갈등은 일본인 지주의 소작제 농장경영과 가혹한 소작료 징수문제였다고 한다. 재조일본인들은 남아있는 자료만으로 판단한다 해도 관헌이상으로 아주 강렬한 식민지배자였으며, 조선인에 대해 국가의 논리로 무장한 냉혹한 에고이스트이자 편견의 소유자, 차별과 박해의 실행자였다. 이런 귀환자들은 지금도 자기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상실한 채 왜곡된 기억과 역사인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894년~1895년 청일전쟁, 1895년 민비시해사건, 1904년~1905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한일합병조약)부터 광복까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저번 주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인지는 생각한번 해보지 않고 지냈다.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재조일본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수많은 수탈과 핍박을 했지만 아직도 이 나라가 이렇게 건재한 것은 슬픈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저자처럼 연구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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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g5519 2018-09-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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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식민지사이



제국과 식민지 사이(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이규수 著/어문학사

술술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몇 장 넘기지 않으면 덮어 버리는 책이 있다. 물론 술술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고 지루한 책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던 이 책은 지루한 책이다. 이 책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 대부분의 학술서가 그러하듯 전문분야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통계자료들이 졸음을 부른다. 저자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동아시아속의 한일관계사를 전공했으며 헌재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제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재조일본인에 대한 연구서로 동아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문제의 연원을 밝힐 수 있다. 재조일본인은 ‘제국’과 ‘식민지’의 접점에서 그들이 갖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며 제국의 식민지 침략과 수탈이 국가 권력과 그들이 지원하는 민간인이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연구대상이다. 역사학의 본연의 임무는 과거의 교훈 위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다. 저자는 “연사학은 과거의 ‘기억들추기’를 통태 ‘과거에 머물기’가 아니라, ‘과거 되살리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미래를 살아내기’”라 주장한다.

이 책은 3부로 제1부 재조일본인 연구와 존재 양태,로 서론부분이라면 제2부 식민정책론과 재조 일본인 사회, 로 본론부분이라 할 수 있고 제3부 식민지의 체험과 기억으로 편집되어 있다. 나는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핵심결론은 제 3부에 있다고 본다. 지루해서 인내심의 한계로 책을 다 보기 어려운 독자라면 제3부라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재조일본인들이 역사인식이 오늘날 일본 정부 또는 대부분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으로 본다.

재조일본인들은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이 아니라 양국간의 합의”라는 것을 강조하며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재조일본인 귀환자들은 자기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상실한채 왜곡된 기억과 역사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일본의 통치로 인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공업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관개 설비의정비, 농업기술의 개선을 통해 면적당 수확량은 대폭증가했다. 박정희 시대의 급격한 발전은 이본 통치시대에 기초가 만들어 지고,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에 따라 일본과의 통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 일본인과 조선인과의 차별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지만, 양반과 상민과의 차별은 없어졌고, 노비는 해방되었다. 교육의 보급을 통해 노력하면 보상받을 길이 열렸다.”

일본의 통치는 비판받을 대상이 아니라 한국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대상일 뿐이며 오히려 그러한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

또 다른 어느 재조일본인의 말에 귀기울여야 본다. “일본이 나쁜 일만 벌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 민족을 지배했다는 것 그 자체가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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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2018-08-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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