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0

<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 문화일보 munhwa

<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 문화일보 munhwa

<서평>조동일 교수의 ‘중세문학의 재인식’
문화일보
입력 1999-05-06 09:45
프린트
댓글
0
폰트
공유

근·현대 학자로 학문적 시야가 넓었던 사람 중의 한명으로 고(故) 동주(東洲)이용희(李用熙)가 꼽힌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자. ‘학문적 시야’란 용어를 구사한 이유는 그가 서울대 강단에 섰던 국제정치학자이자 한국미술사 연구자라는 두 개의 전문영역 때문이 아니다. 동주는 조선과 중국 사이의 사대주의 문제를 ‘중세 동북아의 국제질서의 틀’속에서 거시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론을 생전에 갖고 있었다. 물론 가설에 불과한 지론에 불과했다. 이것의 검증을 위해 학제(學際)연구가 필수라고 보고, 대우재단이사장 시절 이를 공모주제로 내걸어 후학들의 연구를 부추긴 것도 그이다. 결국 만족스런 업적을 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것이 80년대의 일이다.

조동일교수의 ‘중세의 재인식’시리즈는 동주식의 문제의식을 포괄하는 학문적 시야가 특징이다. 또 그의 목표인 ‘세계문학의 일반이론 정립’이 허장성세가 아니라 높은 스칼라십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경이롭다. 국문학 연구서에서 사대주의 질서를 포함한 중세의 문화사 전체가 연구대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접근이다. 책을 접하면서 내내 ‘이것이 한 학자의 작업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세부 검증작업과 별도로 이번 그의 저술은 국내 인문학의 한 정점(頂點)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의 작업은 일반인과 상관없는 학계 내부의 업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그간 갑론을박해 온 한자-한글 혼용,사대주의 문제등 현안들에 새로운 통찰을 던진다. 저자는 ‘한반도 고대사회가 한자를 받아들인 것은 민족문학 발전에 역행한 것인가’고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중세에)거대 문명권의 공동언어 수용은 민족언어 발전에 축복이다. 민족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근대주의자들의 단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공동언어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중세의 문턱을 올라서거나 이를 기초로 근대의 국어 역시 발전시킨 사례가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창세서사시를 풍부하게 갖고 있으나 고대 단계에 머문 일본 아이누족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사대주의 문제 조명도 귀기울일 만하다. 제3권 첫장 ‘책봉체제’가 그렇다. “춘원 이광수는 사대주의를 지칭하며 ‘민족 근본정신을 버린 조선민족은 과연 정신생활의 능력이 있는가’고 물었다. 과연 그런가. 이를 위해서는 조선왕조·중국 사이만이 아니라,유럽의 기독교 문명권등에서 사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가 필수적이다. 여러 문명권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용어는 책봉(冊封)체제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예언자의 대리인 칼리파(천자)와 술탄(왕)사이의 관계,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신정(神政)의 대리인 교황과 왕 사이의 관계에서 보듯 책봉은 중세시기의 보편적인 국제 관계이다. 근대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구조이지만,그것은 실은 대등한 입장에서의 일반 외교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

결국 조교수의 작업은 넓은 시야를 담보로 한 구조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그가 ‘근대사의 주변부 문명권에서 근대를 넘어서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는 가능성’을 밝히는 작업이리라. 한가지,그의 이번 저술은 실은 ‘구멍’이 적지 않다. 검증이 필요한 무리한 가설,거친 일반화의 논리등이 적잖이 발견된다. 이런 한계를 본인도 시인한다. 단 구멍에 ‘벽돌과 철근’을 채우는 것은 후학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조교수는 30여권의 저술을 펴낸 인물. 지난 96년 강의 부담을 덜고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대를 떠날 용의가 있다면서 타 연구기관에 공개구직을 선언해 사회적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사회적으로는 4.19세대에 해당한다. 성격과 외모는 ‘연구밖에 모르는 학구파 중의 학구파’이다. 생활반경 역시 극도로 단순하다. 취미는 산보가 유일하다. 뿔테 안경 너머 학문적 고집이 읽혀지는 이 연구자의 이번 신간은 그런 학문적 장인정신이 낳은 업적이다. 이번 작업으로 그는 본래 자기 학문목표의 8부 능선까지는 오른 셈이다. <조우석기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