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8

江川紹子が【『表現の不自由展』中止問題】を考察…言論・表現の自由を後退させないためには | ビジネスジャーナル

江川紹子が【『表現の不自由展』中止問題】を考察…言論・表現の自由を後退させないためには | ビジネスジャーナル
2019.08.06 
에가와 사오코의 「사건 시계」 제133회
에가와 사오코가 【『표현의 불자유전』 중지 문제】를 고찰…언론·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문장 = 에가와 사오코 / 저널리스트
【이 기사의 키워드】에가와 사오코 , 위안부 문제 , 아이치 트리엔날레 , 표현의 부자유전 , 사건 시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전시되고 있던 소녀상(사진:YONHAP NEWS/아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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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표현한 명구를 지금이야말로 물어보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 기분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 유감스러운 뉴스가 뛰어들어 왔다.

 아이치현 미술관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미술전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전쟁중의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 등을 전시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항의의 전화 나 메일 가 대량으로 전해져 중지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본고의 중반에서 전개한다.

'공금 이벤트'를 둘러싼 특이한 비판

 그 전에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주최자에의 항의 속에,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휴대 캔을 가지고 방해한다」라고 교토 애니메이션의 사건을 생각하게 하는 팩스도 있었다는 점 . 이러한 악질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아이치현경은 철저한 수사를 실시해 주었으면 한다.

 신경 쓰지 않는 표현 활동을 위협으로 봉살하려고 하는 것은 이 기획전에 대한 위력 업무 방해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우리나라에 대한 중대한 테러 행위이다. 또 이런 위협 불평은 쿄애니의 사건으로 빼앗긴 35명의 목숨과 그것을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거절해서 용서하기 어렵다.


 협박행위의 주님이 제대로 파악되고 검거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고 언론·표현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서는 중요하다. 내년 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테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나라의 자세를 보여주는데도 이런 사건을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치현 지사는, 주최자를 대표해 피해의 신고를 내고, 현경에 철저히 수사를 요청해, 그리고 그 일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비열한 협박행위에는 단호한 대응을 하도록 경찰청을 독려해 주었으면 한다.

 이번 기획전에 대해서는 정치인의 언동도 문제가 되고 있다.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은 “어떻게 생각해도 일본인의 국민의 마음을 밟는 것. 기획전의 중지가 정해진 후에도, 「그만두면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사과를 요구. 소녀상의 전시는 “‘수십만 명도 강제적으로 수용했다’는 한국 측의 주장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민당의 보수계 의원들의 모임이, 이 소녀상에 대해서 「사실상의 정치 프로파간다다」로서, 「공금을 던져서는 안 되고, 나라나 관계 자치체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라고의 의견 표명을 실시했다 . 게다가 대표자가 총리 관저에서 니시무라 야스히 관방 부장관과 면회. 니시무라씨는 “자민당 아이치현 의단을 중심으로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고 응했다고 한다.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대한 비판과 소녀상에 대한 반발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승리하여 언론·표현에 대한 억압을 획책하는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정당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이번 기획전의 의도는, 아무것도 한국 측의 주장을 부디 PR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려고 한다면, 서두에 소개한 말과 같이, 다른 의견의 표명 의 장을 지켜야 한다.


 김에 말하면,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니 작품」에 대해서도 표현하는 자유는 지켜야 한다. 안 됨 가감은 그것을 비판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대응하면 된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아무것도 표현 내용을 인정하거나 찬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전시에 의해 「한국측의 주장을 인정하게 된다」라고 발언한 카와무라씨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정부의 입장에 맞는 언론·표현이 아니면 공적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등의 사태가 되면, 번성하는 것은 정부의 선전자뿐이다. 미술뿐만 아니라 연극이나 오페라 등을 포함하여 표현은 비좁아져 일본의 문화는 가늘게 가는다.

 게다가 세금은 정부의 지지자로부터만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의 타케이 슌스케 중원 의원은 트위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익에 반하는 것에 세금투입은 이상하다!' 조심해야합니다>

<잘못해서는 안되는 것은, 세금은 정부나 행정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납세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재배분하는 것. 정부나 행정에 순종, 혹은 의향에 따른 것 밖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

 짙은 견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일본 유신회의 시나가와구 의회의원인 마츠모토 토키히로씨의 이런 트윗도 있었다.

<나는 표현의 자유에 큰 가치를 둔다. 현대아트는 정치적 표현을 내포하는 일이 적지 않다. 현대 예술에 공금을 지출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그것은 전제일 것이다. 비록 야만에서도 불법에 이르지 않는 것을 표현 내용으로 철거해도 좋은 것인가. 비판 또는 대항전시에서 싸우는 수단도 있다. 덧붙여 전시 내용은 불쾌 이 이상 없습니다>

 유신계에서 이렇게 언론·표현의 자유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발언하는 정치가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놀라웠지만 마츠모토씨의 발언은 처음에 소개한 언론·표현의 자유의 본질을 찌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양식적인 의견보다 전시에 압력을 가하는 정치인의 움직임이 악목 서있는 것이 한탄하다. 언론도 목소리가 크게 화려하게 돌고 있는 정치인들만 쫓는 것이 아니라 짙은 정치인들의 양식 있는 목소리도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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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개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게다가 말하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그러한 협박이나 정치가의 압력이라고 하는 문제와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넷이나 매스 미디어에서는, 「가솔린 휴대 캔」의 협박이나 나고야 시장 등 정치가의 압력 등, 알기 쉽게 말하기 쉬운 「언론 탄압」의 형태만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나는 조금 의문을 안고 있다. 이들도 중요하지만, 그냥 보고 있는 것은 본질을 잃는다.

 그럼,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화난 개개인'의 감정의 폭발과 집중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술감독을 맡는 저널리스트 쓰다 다이스케씨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중지를 결정한 것은 이러한 일부 위협이나 정치인의 압력이라기보다 격렬한 분노의 전화가 집중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

“사무국의 전화가 항상 울리고 있는 상황. 하루 종일 밤 계속되었다. 거기가 펑크 해, 연결되지 않으면, 현립 미술관이나 문화 센터에 거는.(거기의 직원은) 그러한 전화가 돌리는 것도 모른다. 기다려 더욱 격고하고 있는 상태의 사람이, 사정을 모르는 오퍼레이터에게 마음을 부딪쳐 버린다.

 지금까지의 혐한 시위 등을 떠올리더라도 아마 항의 주인의 대부분은 보통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개개인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한일 관계의 악화를 뉴스 등으로 알고 위안부 문제 등에서 한국 측의 대응에 분개하고 있는 곳에 이 기획전을 알고 분노에 몰려 전화를 했다고 한다. 상황이 아닌가.

 이번에 한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된 사람들이 격렬하게 집요한 항의전화로 상대를 공격하는 현상은 일본 사회에서는 더 이상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클레임 전화 대응 등을 진화시키고 있지만, 학교나 관공서 등은 대응이 늦어진 것 같고, 장시간·다수의 항의전화로 업무가 정지해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부모에 의한 학대로 소녀가 사망한 사건이 있던 지바·노다시에서는, 교육위원회의 직원이 학교에서 취한 앙케이트의 결과를 아버지에게 보여 버린 것도 있어, 전국으로부터의 격렬한 항의 전화가 집중했다. 업무에 지장을 왔기 때문에, 드디어 콜센터를 만들고 직원이 교대로 대응했지만, 혼자 몇 시간이나 계속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불상사안뿐만 아니라, 이번과 같은 경우도, 전화를 하는 쪽은 자신에게 정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므로, 격렬한 분노를 부딪치는 것에도, 장시간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것에도, 무려 조심도 삼가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대거 밀어 넣는 것으로 받는 조직에는 큰 압력을 가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의사를 표시하는 자유는 지켜야 한다. 그 때문에, 지자체 등의 공적 섹터의 사람들은, 최대한 그 항의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유나 권리도 무제한이 아니라 공공 복지와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

공격에 저항하는 각오와 효과적인 대응

 내가 신문사에 근무했을 무렵, 영감상법의 문제를 썼는데, 엄청난 항의전화가 와 회사의 통신 기능이 마비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도 이것이 이어졌기 때문에 내 상사였던 사회부장이 붓을 쓰고 서명된 기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폭력전화"에는 굴하지 않는다"

 그 기사는 내보내기와 최종 단락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절대 용인할 수 없다. 전화에 의한 괴롭힘은 음습한 데다, 수에 물건을 말하게 한 것은 조직 폭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괴롭힘 전화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략) 폭력에 굴복할 수 없다>

 30년 이상 전의 것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기에 쓰여진 내용이나 상사의 대응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전화 공격은 통일교의 신자가 상사로부터 지시받고 있던 조직적인 것이라며, 상당히 후부터 분명했다.

 최근 개개인에 의한 항의전화는 조직폭력과는 다르고, 각각이 의견을 표명하는 자유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래도 도를 넘은 분노의 폭발이나 장시간에 걸친 항의 등은 폭력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관공서 등의 퍼블릭 섹터라도, 무제한으로 전화 폭력에 대응할 필요는 없고, 직원을 지키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또 테러리스트의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되도록 폭력으로 언론·표현을 봉살하려고 하는 풍조에 저항하기에는 그것이 공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번 폭력에 언론·표현 활동이 굴복해 버리는 결과가 된 것은, 돌려준다 돌려주는 것도 유감스럽게 견딜 수 없다. 콜센터를 설치하고, 비통지 전화나 팩스는 접수하지 않고, 대화는 녹음하고, 전화 시간 제한을 마련해, 회장의 경비를 강화해, 입장자의 수하물 검사도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계속할 수 없었는지, 라는 생각이 닦을 수 없다.

 주최자 측은, 지금까지의 격렬한 반발을 먹는 것은 상정할 수 없었던 것 같지만, 그것은 역시 전망이 달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트위터에서 그 점을 지적하면 많은 비판과 비난이 전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비난받으려고 굳이 말해야 한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그에 대한 공격에는 저항하는 각오와 효과적인 대응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범죄예고와 같은 것은 경찰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우선 당사자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상황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그 싸움을 지원하는 구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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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다만, 당사자에게 불안을 초래하는 항의의 주가 테러리스트나 일부 정치가가 아닌 일반 개인의 사람들인 경우에 어떻게 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게다가, 언론·표현의 자유를 평소부터 의식할 기회가 많은 신문사와는 달리, 이번 이벤트의 주최자인 아이치현의 직원은, 최악의 상정과, 그것에 어떻게 마주할까라는 마음의 준비도 아니고, 문제의식도 공유할 수 없고, 대책도 불충분한 채, 불합리한까지의 공격에 노출되어 피폐한 것이 아닐까.

 그 결과, 쓰다씨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전철』로 문화사업을 파괴할 수 있어 버리는 성공 체험, 나쁜 사례를 만들어 버렸다」. 이번에, 이러한 방법이 공을 연주함으로써, 향후, 다음의 타겟으로 된 언론·표현에 대해서 같은 일이 이루어질 우려도 있다.

 즉, 정치가의 압력이나 우익 등의 조직에 의한 거리 선행동 등, 눈에 보이기 쉬운 형태로 언론·표현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화난 개개인”이 일제히 전화를 걸겠다는, 밖에서는 알 수 있다 어려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져, 그것이 큰 압력이 되어, 언론·표현을 정지시키는 수법이 반복된다는 우려이다.

 무엇보다 이런 '화난 개개인'의 감정이 전화로 밀려오는 현상은 이번에 갑자기 일어난 신수의 수법이 아니다. 「전철」에 의해 요구를 실현시키는 「성공 체험」은, 최근 몇 년간에 쌓여 있다. 언론·표현의 자유에 관계되는 텔레비전국 등도, 항의 전화에 의해 사람의 손이 깨지거나, 스폰서에까지 항의가 미치는 것을 신경쓰고 있다. 대학과 지자체도 마찬가지였고, 항의에 의해 강연회 등이 중지되거나 다양한 사업과 이벤트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한 사례가 쌓인 결과일 것이다, 항의의 타겟이 되지 않게, 정치적인 과제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도록 하거나 프로그램 내용을 변경한다, 라고 하는 “사라나 주의”도 점차 퍼지고 있다. 자숙과 부도에 따른 대응이다. 지난해 11월 TV 아사히가 한국 남성 음악 유닛 BTS(방탄소년단) 출연 예정을 급히 그만둔 것도 그럴 것이다. 헌법을 지키려는 호소는 정치적이라 집회의 후원을 거절하거나 회장의 사용을 인정하지 않거나 하는 지자체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그 나타나지 않을까.

 항의 주체가 조직이라면 조직적인 폭력으로서 경찰에 대응을 요구하거나 대표자와 협상하여 개방적인 장소에서 토론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에 영감을 받은 개인 의 행동에서는 기껏 느긋한 연결이 있을 뿐이므로 그러한 대응을 할 수 없고 대책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지금 일본의 다양한 조직들은 사람들에게 '화나지 않는' '항의되지 않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번 사건으로 점점 강해져 일본의 언론·표현이 더욱 거북한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언가에 붙여 ‘생각’이 우선되어 ‘혼네’를 ‘부쩍’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충실한 것을 드러낸 사회의 풍조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테마는 ‘정의 시대’였다. 이번 사건은 바로 '생각' 우선의 지금의 시대, 즉 '정의 시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언론·표현의 자유를 더 이상 후퇴시키지 않고 지켜나갈지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끔찍한 것 같지만, 공적 기관의 직원이, 전화 폭력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에가와 사오코 /저널리스트)

에가와 사오코 / 저널리스트

도쿄도 출신. 가나가와 신문 사회부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에. 저서 에 『영혼 의 포로 _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 - 대립의 구도를 넘어」(저자 오오누마 호쇼)에서는 청취자를 맡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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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da Yasuyuki 예술의 이름만을 빌려 비틀어도 아무것도 없고 단지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은 적당한 예외를 제외하고, 잘못된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궁리가 아니라 반칙이다. 이웃 나라 등에서 정당하게 항의 활동으로서, 상을 설치해 사회적 항의 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적이면서 어팔레」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 행해진 이번 전시 행위는 「가짜」이며, 비겁 그래서 사도이다. 또한 이러한 불상각오의 문제 정의가 "지금" 행해지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차갑게 버린 한일관계에 한층 더 데미지만 주는 일로 시간을 읽을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 양국민에게 있어서도 불이익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부추길 뿐의 행위'는 신중해야 할 때이며, 깨달은 나름의 인간이 지도를 해야 할 일은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항의 방법'으로 논점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문제 정의이다. 물론 지나친 클레임은 모방범을 낳을 뿐만 아니라, 행위가 에스컬레이트하여 상대를 협박하는 폭력까지 증폭해 버린 것은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 일에 냉수를 걸기 위해 협박범을 단단히 단속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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