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1

'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사상 :2010

'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사상 : 네이트 뉴스

'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사상

뉴데일리 원문 기사전송 2010-03-16 17:24

1.『독립정신』의 저술 동기





『독립정신』은 이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석방되기 전인 1904년 2월 19일에 집필을 시작하여 1904년 6월 29일에 탈고한 책이다.

1904년 2월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감옥에 같이 갇혀 있던 유성준이 이승만에게 집필을 권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유성준이 나더러 책을 쓰라고 권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모든 개혁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독립협회를 제하고는 그 모든 운동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은 교육 계몽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또 일본에 망명 중이던 형(유길준)이 돌아오게 되면 독립운동에 관한 여론을 일으킬 목적으로 나의 책을 발간하기 위해 정부예산을 책정하도록 권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비밀리에『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다. 책 원고도 끝났고 유길준도 돌아왔으나 일본은 그들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원고를 다 썼을 때는 이미 대한조정이 일본의 장악 하에 있어 독립을 논하는 어떤 책도 출간이 불가능하여 옥중 동지 박용만이 원고를 미국으로 비밀리에 반출하여 『독립정신』은 로스엔젤레스에서 1910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을 저술한 목적에 대해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기록하는 뜻은 천언만설로 소리를 높이 질러 전국 동포들에게 일심으로 합력하여 대한제국의 독립권리를 보전하여 거의 다 끊어진 생맥을 이어 영원무궁하게 만들기를 원함이다.”

1904년이라면 아직 대한제국이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이다.
따라서 이승만은 잃은 주권을 되찾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주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당시의 대한제국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면 주권을 지키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기술한 것이다.

조선조 말 서구열강의 문화개방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조선(朝鮮) 조정(朝廷)은 청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은 청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하였지만 조선 조정은 역시 독립을 지킬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 대한제국으로 나라의 면모를 일신한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대한제국 조정은 러시아에 의지해 독립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자 이마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은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독립정신』은 국가의 주권을 어떻게 지키고 보전할 것인가에 대한 대전략을 논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이승만의 정치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독립정신』은 이승만의 정치사상 그리고 그의 독립사상을 잘 볼 수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독립정신』에 표현된 ‘독립정신’은 곧 독립 사상으로서 그 사상의 핵심은 곧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이다. 이 책은 독립 사상 이전에 이승만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깊은 사상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자유론』(On Liberty)에 비견되는 정치사상 서적이다.


2.『독립정신』의 이해

『독립정신』은 정치사상을 논하는 이론서적은 아니다.
이론 서적이라면 선행되는 이론서가 있고 그 이론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거나 또는 그에 대한 반론을 펴거나 하여야 하지만 당시 바탕이 될 만한 정치사상 서적이나 이론이 조선 땅에 없었으니『독립정신』은 분명 이론서적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독립정신』은 정치사상에 대해 논하고 있다. 굳이 『독립정신』이란 책의 성격을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사상 ‘에세이(essay)’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독립을 지키기 위한 국민의 ‘정신(精神)’을 논하는 논설(論說)을 모은 책이다. 그런데 그 논설이 단순히 과거에 출판된 서적의 비판이나 이승만의 명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조선조 말에서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한민족이 겪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승만의 관찰과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다시 말하면『독립정신』은 서구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대응한 동양제국, 즉 청국과 일본의 역사적 경험, 특히 개화기의 한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이승만이 귀납적(歸納的)으로 도출한 정치사상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 사상의 핵심은 바로 혈통에 바탕을 둔 사회계층의 부정, 만인(萬人)의 인격적 동등성, 각 개인의 자율성, 개방적 국제주의, 그리고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다.

따라서『독립정신』은 서양의 정치사상 서적의 복제판도 아니며 모방서적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승만이 자유와 평등에 대해 논하지만 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이나 사상은 존 로크의 정치사상에 관한 에세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자유론』을 읽고 수용한 사상이 아니다.
이승만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상은 어디까지나 영국과 미국의 역사와 조선조 말의 동양 삼국(청, 일, 조선)의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이승만 스스로 깨치게 된 것이다.

이승만이 저술한 모든 저서가 그러하듯이『독립정신』도 이승만의 치밀한 역사적 자료의 획득과 그에 대한 독립적 해석과 판단 그리고 그에 대한 이론적 논거에 대한 심층적 사고에 바탕을 둔 책이다. 따라서 이승만의 저서는 단순한 관념론적 주장이 아니라 현실성이 있는 훈련된 경험적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독립정신』은 한국의 정치사상사에 있어 신기원을 이룩한 위대한 사상서적이다.


3.『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사상


이승만의 독립사상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서구열강과 같은 문명사회를 만들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문명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이 신학문을 받아들여 세계 보편적인 도덕을 체득하여야 하며 나라가 부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상하가 따로 없는 민주정치가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승만의 주장이다.

『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 ‘정신’은 사실상 사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독립정신은 독립사상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승만이『독립정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사상은 단순히 대한제국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제국을 해체하고 만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세상, 즉 시민혁명을 성취하자는 것이다.

앞에 인용한 이 책의 저술 목적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썼다고 하였으나 내용을 보면 사실상 대한제국을 개혁하여 근대적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자는 뜻이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합되지 않았다면 분명 이 저서에 기술된 대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히 시민혁명 과정을 거쳤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전근대적 왕조적 사회에서 근대적 시민사회로 전환하는데 있어 실제로 시민혁명 단계를 거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시민혁명 단계를 이승만의『독립정신』을 통해 거치게 되었다.

독립사상을 이승만은『독립정신』에서 “새 법”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새 법이란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문명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민주권에 바탕을 둔 헌법체계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사람들의 저러한 복을 받는 것을 하늘이 특별히 주시거나 편벽되이 품부한 것이 아니요 혹 이삼십 년 사오십 년 백여 년 전에는 다 우리보다 더욱 심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던 나라들이라. 교화가 열리며 문명이 발달되는 대로 각기 옛적 어두운 것을 버리고 밝은 새 법을 따라 인민의 풍기가 바뀌며 사상이 변하야 저마다 다 남을 위하야 나서 남을 위하여 살다가 남을 위하야 죽는 것이 사람의 도리요 직분으로 알고 행하는 중에서 된 것이라. 일로만 보아도 사람의 화복이 다 자기의 자취하는 바라. 어찌 남을 한하리오.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못한 것이 다만 우리 백성들의 책망만 될 뿐 아니라 그 해가 우리에게 다 같이 미치는 것을 가히 알리로다."

또한『독립정신』에는 조선보다 먼저 개화한 일본이 조선조에 대해 권고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역시 새 법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이 각국과 상통하여 세상 형편을 본즉 옛적 모양으로 혼자 지낼 수 없으니 불가불 상통하여야 견딜 것이오. 상통하자면 정치와 풍속을 일신하게 변혁하여 새 법을 모본하기 전에는 또한 부지하지 못할 줄을 깨달은 고로 날마다 서양 법을 모본하기에 관민이 일심하여 점점 개명에 나아가는 효험이 벌써 적지 않은지라 귀국도 우리와 같이 타국에 왕래를 통하야 부강을 도모하는 것이 심히 옳다."

이에 대해 조선조 조정 대신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글을 받고자 아니하니 그 사신을 주어 곧 내어 쫓으라” 고 하며 무시하였다고 한다. 이를 이승만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이 새 법의 내용은 바로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이 세우고자 한 정의로운 국가란 신분적 차별을 없애고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여 모든 사람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국가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국민 각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할 것인 만큼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승만이 가진 독립사상의 핵심이며 이승만의 독립전략이다.

또한 새 법에 의한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게 되면 세계적 선진국들과 동일 수준의 개화된 문명국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문명국이 되면 나라를 부강하게 가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계열강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독립을 능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승만의 독립사상의 또 다른 내용이다.

이와 같은 이승만의 독립사상은 구별되는 몇 가지의 정치적 이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하『독립정신』에 표현된 이승만의 독립사상을 구성요소 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 민주적 공화주의

이승만은 조선조 말에 태어난 왕족이지만 봉건적 절대왕정을 반대하고 최소한 입헌군주제나 또는 최대한 민주공화제를 주장한다.

이승만의 이러한 사상은 고종의 무능함과 그로 인한 개화의 실패로 독립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비참한 현실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한 영국의 입헌군주제나 미국의 자유민주제에 대한 신뢰 그리고 심지어 개화에 성공하여 동양 최초의 세계적 강국이 된 일본의 성공적 개화에 대한 믿음이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이승만은 정치제도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것을 전제(專制)정치, 헌법(憲法)정치, 민주(民主)정치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제라 하는 것은 인군이 홀로 마음대로 하는 하신다는 뜻이라”고 정의하고 청국과 대한과 러시아가 이에 속한다고 하였다. 전제왕권제도는 성군이 나타나면 그런대로 좋으나 그러나 “세상은 날마다 변하되 법은 조금도 고쳐지지 않을진대 어려서 입던 옷을 장성한 후에 입으려 하면서 전과 같이 맞지 않은 것과 빛나지 못한 것을 걱정하는 것이 어찌 이와 다르리오”라고 하여 전제정치의 단점을 지적한다. 특히 “어두운 인군과 간악한 신하가 권세를 잡고 임의로 휘둘을진대 전국 생령이 모두 어육이 되며 종묘사직이 곧 조석에 위급할지니 천하만고에 이같이 험하고 위태한 일이 어디 다시 있으리오”라고 하여 전제왕권의 폐단을 지적한다.

또한 이승만의 전제정치로서 나라가 흥할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제정치는 첫째 백성의 마음을 압제로 결박하여 시비곡직을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게 함에 불평함이 맺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원험이 자라서 피차 잔해하는 중에서 스스로 없어지며,

둘째는 생각을 발달하지 못하여 사람마다 남과 같이 흥왕하기를 도모하지 않고 각각 윗사람에 결박하는 것을 앉아 받으려 함에 타국 사람이 들어와서 나의 이익을 임의로 취한즉 자연히 진액이 말라 부지하지 못하며…

셋째는 백성은 나라를 남의 것으로 알아 보호하고저 아니하며 남이 와서 그 위에 있는 몇몇 집권한 이를 혹 뇌물로 꾀이거나 위력으로 핍박하여 대신장악에 잡으면 모든 백성은 총 한 방 아니 놓아도 스스로 딸려 들어오니 전제국의 가장 위태한 근본이라.… 백성이 남보다 나은 후에야 나라가 어찌 남만 못하리오.

따라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방법은 신분제적 절대왕정을 폐하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공화제를 채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승만은 “문명부강은 지금 세계에 제일 으뜸이니 이는 구라파 중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다 정치를 변혁하야 혹 공화를 모본하며 혹 헌법을 주장하야 그 민심을 발달한 연고요”라고 하여 문명부강한 나라들이 전제왕제를 폐하고 헌법에 의한 공화정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부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헌법정치, 즉 입헌군주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헌법정치라 하는 것은 인군이 위에 계서 만사를 통활하시며 신하가 받들어 섬기기는 별로 전제정치와 다름이 없으되 다만 권리의 방한이 있어 상하에 (의)회원을 설시하고 백성이 투표하여 명망이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의회원이 되어 백성의 권리를 대표하여 크게 관계되는 일은 의론하여 결처하게 하나니… 국민이 일체로 관계한 일은 다 이렇듯 신중히 행하는 바라. 이는 영국 덕국과 기타 황제국이나 군주국이며 동양에 일본이 다 이 정치로 다스려 종사와 황실이 태산반석같이 편안한 복을 누리며 일국 신민이 무궁한 덕화를 입는 바라."

이승만은 또한 민주정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주정치라 하는 것은 백성이 주장한다는 뜻이라.
인군을 인군으로 칭호하지 않고 대통령이라 하며 전국 백성이 받들어 천거하여 다 즐거이 추승한 후에야 비로소 그 위에 나가며 그리하고도 오히려 염려가 있어 옥 사오년이나 팔구년씩 연한을 정하여 한이 찬 후에는 한 기한을 다시 인임도 하고 혹 다른 이로서 선거하기도 하여 일국을 다스리게 하며… 이런 정부가 주의가 세 가지니, 일은 백성이 하는 것이오, 이는 백성으로 된 것이오, 삼은 백성을 위하야 세운 것이라.… 지금 미국과 구라파주에 몇몇 부강한 나라들의 행하는 정치니… 세상에서들은 세 가지 정치 중에 이것이 제일 선미한 제도라 하는 바라."

이와 같이 이승만은 조선조 말 그리고 대한제국 시대에 살면서 그리고 자신이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으로는 백성의 단합된 힘을 쓸 수 없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음을 이유로 입헌군주제나 민주제를 좋은 정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이승만은 민주정치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는 한 방편으로 미국의 정치, 즉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전쟁 그리고 미국의 법치에 의한 국민의 권리의 보호 등에 대해 상당히 길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불란서가 전제군주정치에서 시민혁명을 통하여 “마침내 미국 제도를 모본하여 민주국이 되어 지금 세계에 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미국과 불란서의 정치혁명을 계기로 “정치상 변혁하는 생각이 이때부터 더욱 성행하여 구라파주에 여러 나라가 변하여 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헌법정치 또는 민주정치로 정치제도를 개혁하게 되면 상하가 일치단결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이승만은 보았다.

나. 점진적 개혁주의

이승만은 개혁을 주장하기는 하나 급작스러운 혁명적 개혁이 아닌 교화를 통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다. 이승만은 갑신정변이나 갑오개혁이 실패한 이유를 백성이 개화되기 이전에 외부의 지원을 받아 급작스럽게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사상이 아래 인용문에 잘 나타나 있다.

"원래로 대한이 청국 믿는 마음을 깨치지 못하다가 갑오전쟁이 생기기에 이르렀은즉 이 전쟁을 맞은 후에는 곧 상하관민이 일시에 깨닫고 전일에 남만 의지하든 생각을 다 끊어 버린지라, 이에 경장을 시작할 새 육조를 혁파하고 십 아문을 설시하며 소용없는 관리를 없이하여 경비를 감하며…이 해 십이월에 대황제폐하께옵서 종묘사직에 거동하사 맹세하시는 글을 고하시니…국민이 불행하여 당시의 집권한 이들이 장원한 지식으로 백성의 식견을 열어 차차 합력하기를 경영치 못하고 당장에 속히 성공하기를 도모하매 백성이 이해를 알지 못하여 하나도 합력할 자 없는지라,…원래 어두운 백성은 새 법이 무엇에 유조한지 어떻게 편리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만 예전 법만 지키는 것을 옳고 좋게 여겨서 목을 가히 베일지언정 터럭은 베이지 못할 줄로 알거늘 이 백성을 가르쳐 그 이해를 알리지 못하고 촉급히 위력으로 행하고자 하다가 각처의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요한지라, 이 해 십이월에 대황제께옵서 아관으로 파천하시니 이때부터 일본이 권리를 잃고…"

"몇 천 년을 두고 내려오며 점점 변하여 갈수록 심하게 된 모든 악습 속에서 사지백체가 낱낱이 병이 들어 손끝발끝 까딱할 수 없는 전신불수가 된지라, 졸지에 남의 백여 연래 연구하여 진보한 제법을 억지로 행하고자 할진데 어찌 충돌이 아니 나며 큰 변이 없다 하리오. ... 그러므로 마땅히 헌법제도를 연구하여 시급히 시작하여 조금씩 캐어 쓸진 데 과히 충돌도 없을 것이요 황실과 백성이 일체로 영원무궁한 태산반석의 편안함을 얻을지라."

따라서 새 법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교화하여 먼저 그들의 습관과 관행 그리고 행위규범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각 개인마다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라의 운명에 대해 책임지는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새 법을 실시할 수가 있고 독립을 능히 보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람마다 이 풍속을 인연하여 압제하는 것이니 만일 백성이 그 풍속의 결박을 면하여 각기 남의 압제를 아니 받는 것으로 당연한 줄을 알진데 그 많은 아래 사람을 뉘 힘으로 눌러 압제하리오.
그러한즉 헌법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아니하고 또한 그 긴급함이 이렇듯 절박하나 이것도 우리 대한인민들이 지금 정도를 가지고는 결단코 급히 하지 못할지라... 모든 이러한 악습이 다 남의 뜻에 압제를 받아 자기 마음에 결박을 벗지 못함이라. 속담에 이르기를 상에 놓은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하나니 아무리 쉬운 것도 하려고 아니하면 저절로 죌 수 없는지라.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여 아무 것도 하려는 생각이 나지 아니함인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찌 스스로 무엇이 되기를 바라리오."

미국이 민주정치와 그를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 백성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러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백성들이 각자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그래서 이승만은 강조한다.

"미국 백성이 저렇듯 보배로운 권리를 얻는 것이 일호도 남이 도와주어 되었거나 힘들이지 않고 얻은 것이 아니라 다 자기들이 무한한 피와 무수한 재정을 허비하고 힘들여 장만한 후에 얻은 것이니 이는 곧 힘들여 얻은 재물이 능히 오래 부지하는 이치다. 슬프다 우리 대한 형제들은 이것을 보고 응당 감동할 것이 있을지라."

뿐만 아니라 영국도 개혁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없었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당초에는 저 백성들도 정치제도를 고치지 않았더라면 그 즐겁고 편한 것이 다만 잠시뿐이라 어찌 영구하기를 담보하리오."

따라서 이승만은 백성이 먼저 교화되어 새 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급격한 개혁은 배격하였다.

다. 개방적 국제주의

이승만은 나라의 문을 닫아걸고서는 문명한 나라를 만들 수 없으며 따라서 세계 문명국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교통하고 왕래하며 통상을 하여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승만은『독립정신』의 마지막 부분에 “후록”을 별도로 작성하여 첨부하였는데, 그 제목이 “독립주의의 긴요한 조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첫째 조목으로 “세계와 마땅히 통하여야 할 줄로 알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천하만국에 통하지 않는 나라가 없으며 만국 만민에 열지지 못한 자 없나니, 개벽 이후로 따로 막혀 있어서 세상을 모르고 지내는 모든 섬들이 지금 와서는 각국과 왕래상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모든 섬에 살든 각색 야만 종류들도 모두 새 빛을 받아 날로 변하여 남과 같이 되어 부강문명을 다투나니 이런 지방은 점점 흥왕하여 평등한 세력을 얻으며 그렇지 못한 곳은 밖의 세력이 점점 들어와 한없이 자라며 안의 형편은 점점 잔약하여 날로 쇠잔하며 필경 인종까지 없어져서 장차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되어 평균한 정도를 일우고 말지니. 지금 동양시대가 비유하건데 동터올 때와 같은지라 혹 햇발이 먼저 비치는 곳도 있고 나중에 비치는 곳도 있으나 돋아오르는 해를 막을 자 없으니 마침내 사방에 똑같이 비치고야 말지라."

결국 어느 나라도 아무리 개화를 거부하여도 결국은 개화되고 말 것이며, 만약에 거부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승만은 “사람마다 지금 세상에 있어서 타국들과 통하지 않을 수 없는 줄을 깨달을 것이오, 이는 통상하는 것이 피차에 이익 됨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통상하는 이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통상하는 것이 지금 세상에 나라를 부요하게 하는 근본이니 세상에 모든 부강하다는 나라들이 다 그 본국 지방 안에서 생기는 곡식이나 혹 다른 재물을 가지고 능히 풍족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다 그 백성으로 하여금 상업을 확장시켜 각국의 재물을 벌어 들인 고로 나라 안에 통하는 재물이 한없이 많아져서 날마다 부강에 나아감이라. 오늘날 세계에 영국이 심히 부강하다 하나니 그 본국 토지를 보면 불과 조그만한 섬덩이 세 조각이라."

근래에 와서 대한민국이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도 근본은 대외지향적 경제정책을 세웠기 때문이니 이승만의 주장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이승만은 이어서 “외국인이 오는 것이 본래 나를 해하려는 주의가 없고 피차에 다 이롭기를 경영함인즉 외국인이 오는 것을 막을 까닭이 없음을 가히 알려니와”라고 하여 적극적으로 외국인의 방문을 환영할 것을 주문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나 외국 선교사들에 대한 박해를 생각하면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도 남에게 가서 형편과 풍속과 물정을 살피고 들어올 물건과 나갈 물건을 차차 우리 손으로 대신하여 남의 하는 것을 나도 그와 같이 하기를 힘써서 오고 가는 것이 평균하게 되어야 비로소 남과 같은 이익을 얻을 것이니 이는 사람마다 외국에 가기도 하며 외국 상업의 정형을 살피기도 하여 이익을 얻어 내 나라 상권을 확장하게 하기로 급무를 삼을 것이오."

그리고 “외국인을 원수같이 여김이 제일 위태한 것이니 이는 어두운 백성들이 항상 까닭 없이 남을 미워하는 폐단이라”고 말하여 외국인을 까닭 없이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승만은 또한 외국과 교통하고 통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제도를 고치고 선진화 하여 세계 열강과 같은 문명국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타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것을 우리가 우리 법률로 다스리지 못하는 고로 남의 동등 대접을 받지 못함이라 그런즉 우리도 하루바삐 벌률을 고쳐 남과 같이 되며 사람을 공평히 대접하여 등분을 가리지 말고 경찰을 밝히하여 불량한 무리들이 자치를 숨기지 못하게 하며…"

이와 같이 외국과 자유로이 내왕하며 통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가 개화하고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문명국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통적인 구제도를 새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라. 개인적 자유주의

이승만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절대왕권을 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 이승만이 말하는 새 법의 실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하지 않는 절대왕제는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백성이 나라를 자신의 나라로 생각하지 않고 왕의 나라로 생각하고 또한 상하귀천의 구별이 있어 오직 상전에게 의뢰하는 마음이 크고 또 신하들도 왕에게만 충성하고 국가의 흥망에는 관심이 없어 필경 나라가 독립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승만은『독립정신』의 서문에서 당시 사회적 지도층에 대한 불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중등이상의 사람”이나 “문자나 안다는 사람들”을 불신하였으며 오직 보통사람들이 신학문을 닦고 개화되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전혀 국문으로 기록함은 전국에 수효 많은 인민이 보기 쉽게 만듦이오 특별히 백성편을 향하야 많이 의론함은 대한의 장래가 전혀 아래 인민들에게 달림이라. 대저 우리나라의 소위 중등이상 사람들이나 여간한 문자나 안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썩고 물이 들어 다시 바랄 것이 없으며, 또한 이 사람들이 자기 몸만 그럴 뿐 아니라 이 사람들이 사는 근처도 다 그 기운을 받아 어찌 할 수 없이 되었나니. 이 말이 듣기에 너무 심한 듯하나 역력히 증험하야 보면 허언이 아닌 줄을 가히 믿을지라. 오직 나의 깊이 바라는 바는 국중에 더욱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가장 많이 주의하여 스스로 흥기한 마음이 생겨 차차 행하기를 시험하며, 남을 또한 인도하여 날로 인심이 변하며,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서부터 화하며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원하노라."

또한 신분제적 계급사회에서는 아무리 인구수가 많아도 모두들 상전 한 사람에게 메인 몸이니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층층이 등급을 분별하야 차례로 남에게 매이다가 필경은 위의 한 두 사람에게 매여 그 윗사람의 손과 발이 될 뿐이니 그 나라 안에 백만 명이 있을지라도 실상은 한 사람뿐이라."

그리고 법률을 통하여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함이 나라를 세우고 정부를 두는 근본 목적이라고 말한다.

"나라를 세우고 정부를 두어 정치를 마련하며 법률을 정하는 것이 다 사람의 일신상 자유 권리를 보호하고자 함이니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약한 자의 목숨을 강한자의 고기가 될 것이요 어린아이 가진 떡은 어른의 음식이 될 지니 제 몸에 딸린 권리를 어찌 지탱하리오. 불가불 평균하게 법을 세워 대소강약 물론하고 제 분수 안에 속한 권리는 저마다 있어서 능히 빼앗을 자 없으니 이것이 곧 나라를 설립한 본의라."

이승만은 미국이 부강하게 되고 문명국가가 된 것도 자유와 평등 때문이며, 미국은 이 자유와 평등권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전쟁을 겪으면서까지 흑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하였다고 말한다.

"노예를 없이하고 권리를 평균하는 사람들의 날마다 부강 문명함이 전혀 이 연고 한 가지 뿐이니 인심을 자유로 놓아 평등으로 대접하는 효험이 실로 어떠하겠느뇨. 이렇듯 굉장한 이익의 효력을 볼진대 그 근본인즉 다 세상 사람들이 동등으로 났다 하는 뜻을 깊이 궁구하여 확실히 지킨 힘에서 생긴 것이라, 미국 백성들이 자기네 권리를 보호한 힘으로 남의 권리를 또한 회복하여 이렇듯이 빛난 사적을 이룬 것이 어떻게 힘들이고 된 것인가 깊이 생각하여 보라. 사람 같지 않게 생긴 야만 흑인들의 권리를 위하여 저의 나라에 같은 동포끼리 전쟁을 일으켜서 이 싸움에 상한 인명이 거의 백만 명에 지내며 재물 허비한 것이 삼십억만 원 가량에 이르렀는지라. 자유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라에서들은 곧 이런 사적은 보면 도리어 미친 사람이라 이를지라. 어찌 인애와 의리가 지극하야 사람의 생각 밖에 뛰어나는 일이 아니리오."

그리고 당시 세계열강이 미국을 본받아 노예제를 폐지하였지만 오직 청국과 조선만이 종을 부리는 풍속을 폐하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지금 세상에는 대한과 청국 외에 종 부리는 풍속을 폐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 지라 나라마다 모든 백성이 다 평등으로 권리를 가져 남에게 의뢰하거나 남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슬프다 우리 대한 형제들아, 각기 옛법의 습관된 소견을 깨치고 세상에 공번된 사상으로 바꾸어 생각하여 보시오. 저 사람은 어이하여 남의 권리 보호하기를 이렇듯이 힘쓰거늘 우리는 어이하야 우리 국민의 당당한 권리를 찾고자 아니하며 내나라 동포들을 압제하고 학대하여 우마같이 대접하며 노예같이 부리기를 당연하게 여기는가.

어서 바삐 깨달아 남에게 노예 대접도 받지 말고 남을 노예 대접도 하지 말며 제몸을 남과 같이 여겨 하나도 평등권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할지어다."

이승만은 신분적 차별은 후천적인 제도의 탓이지 인간이 본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이것이 천부인권이라고 주장한다.
이승만은 『독립정신』곳곳에 조물주, 곧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하셨으니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는 논지다.
그리고 그 잘못된 신분차별로 인하여 많은 백성이 주인의식이 없어 나라가 망하여도 별 관심이 없음을 한탄하며 이 풍토를 고치기 위해서는 법을 통하여 백성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은 반상의 등분을 벽파하지 못함이라, 당초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상중하의 등분이 없어서 상놈의 몸도 때리면 아프고 긁으면 시원하며… 사람마다 성현처럼 되기를 염려할 것이 없을 것이 곧 사람 대신 조물주의 본의요… 상놈의 자질들은 아무리 총명영특하나 세상에 바랄 것이 바이 없어 경륜이 커질 수 없음에 또한 공부를 힘쓰지 아니하야 한없는 인재를 원통하게 버리나니, 전국 인민을 통히 비교하면 양반이 천분의 일이 다 못되는지라 저 천분의 일은 되나 못되나 나라를 위하여 일한다 할지라도 기타 구백구십구 분은 다 그 양반들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니 실로 나라에서는 천분의 구백구십구 분은 다 잃어버리고 앉은지라, 이 좋은 백성들을 어림없이 잃고 앉아 날마다 쇠패하여 이 지경에 이르고도 백성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여… 도리어 저 재주 없어 쫓겨난 양반들을 도와서 그 밑에 머리를 숙이고 종질하기를 자원하리니 이것이 곧 마음이 남의 굴레를 벗지 못함이오."

따라서 이승만은 사회의 기본원칙은 바로 각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공정한 법체계, 즉 새 법을 시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곧 나라도 소중하게 생각하여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공번된 본의는 한 가지라, 사람이 제 권리를 보호하여 남에게 잃지 아니하며 제 몸을 다스려 남이 다스림을 받지 아니할진대 그 나라가 또한 나라 권리를 잃지 아니하며 타국의 다스림을 받지 아니할지라. 이것은 다 사람의 몸에 딸린 권리를 중히 여겨 나라의 권리를 보호하는 근본의 대강을 말함이어니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공평한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사회정의를 지키려고 할 것이므로 정의로운 자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저 세상은 의와 악이 주야로 싸우는 큰 전쟁 한 판이라. 개명한 나라에서는 의 편을 도와 싸우는 자 많은 고로 옳은 자가 편함을 얻고,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악 편을 도와 싸우는 자가 많은 고로 옳은 자 용납을 얻을 수 없는 바라. 그러한즉 악이 강하고 의가 약하여 당초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듯하나, 누구든지 진실로 밝히 알아 실낱같이 약한 것을 굳세게 붙들고 죽기 까지 나아가기를 의심 없이 할진데 그 의가 필경은 세상이라도 이기는 법이어늘, 이것을 모르고 강한 편만 찾으니…"

결국 이승만이 말하는 새 법의 핵심은 바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또한 자유롭다는 기본원칙이다.
이 자유와 평등을 각 개인의 권리로 보장하는 법률체계를 세우면 국민 모두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쓸지니 어찌 독립을 유지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 이승만의 논리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나라를 왕이나 양반의 나라로 간주하여 백성이 나라를 지키려고 하지 않지만 만민이 평등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라를 자기의 나라로 여겨 나라를 지킬 것으로 믿는 것이다.

마. 자율(自律)과 자치(自治) 주의


『독립정신』에 일관되게 흐르는 또 하나의 사상은 바로 자율과 자치 사상이다.

자율(自律)은 타율(他律)에 대한 것이며 자치(自治)는 사대(事大)에 대한 것이다.
자율은 개인적 도덕율을 의미하며 자치는 국가적 통치철학을 의미한다.
자율은 개인적 주권을 나타내며 자치는 국가적 주권을 나타낸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하는 정신이 곧 나라의 자치, 즉 독립을 지키는 근본이 된다.
각 개인이 자율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라도 자치하지 않고 큰 나라를 섬기게 되니 독립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승만이 각 개인의 자율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전제정치의 폐단을 고치기 위함이다.
전제정치는 왕이 바로 나라의 주인이며 나아가 나라에 대한 책임은 고관대작들이 져야 하고 일반 상민은 나라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일반적 인식을 깨우치기 위해 각 개인의 자율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곧 혈통에 바탕을 둔 신분제 사회에서 능력에 바탕을 둔 평등 사회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새 법의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조선(朝鮮)은 중국에 사대(事大)하고 있어 조정(朝廷) 대신이나 양반은 중국이 조선을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는 타율적 사고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이나 불란서가 통상조약 체결을 요청하였을 때에도 조선 조정은 그 일에 대해 청국이 결정권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 각국 통상대표들을 청국으로 보내고 청국에 대해 조선 대신 통상조약을 맺도록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청국 자체가 서구 열강에 굴복하고 있었던 만큼 조선이 스스로 독립을 주장하고 서구 제국과 독립적으로 통상 조약을 맺었다면 청국의 간섭을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특히 청일전쟁 후 청국과 일본의 강화조약에 조선의 독립에 관한 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그 때부터라도 조선이 독립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다면 열강의 존경을 받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일본이 대한의 주권을 침탈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승만은『독립정신』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청컨대 우리 대한 동포들아, 상하귀천, 대소관민, 빈부존비, 남녀노소를 다 물론하고 삼천리 강토에 속하여 이천만 인구에 참예한 자는 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에 얼마큼씩 자기의 책망이 있는 줄을 깨달아야 할지라.”

따라서 이승만은 일반 백성이 독립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불평등한 약조를 맺어 우리를 압박하더라도 우선은 우리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본이 사십년 전에 한 것과 같이 우리도 그와 같이 하여 개화를 성공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이전에도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못한 탓도 하려니와 또한 지금에도 능히 서서 일하여 나갈만한 직책을 맡을 자 없어서 설령 우리가 따로 설 권리를 잡고 앉아도 십 년 전이나 이십 년 전보다 낫게 할 수가 있을는지 장담하기 어려운즉 우리가 인재를 배양하며 천하의 공론이 돌 만큼 되기까지는 불가불 한일 약조의 정하여 놓은 대로 시행하여 차차 그 범위가 스스로 벗어지기를 힘써야 할지라, 이는 책임이 전혀 정부에 있지 않고 다만 백성이 하기에 있나니 이럼으로 이 책이 전혀 백성이 힘쓸 바를 말하였고 정부를 대하여 바라는 뜻은 몇 마디 말하지 않은지라, 그런즉 독립의 기초를 세울 자는 우리 백성들이요 우리 백성이 이 기초를 세우고서 할진대 일본인의 굴래를 벗어야 할 것이오. 지금 사상을 알려면 전일에 어떻게 하던 것을 먼저 알아야 할지라. 위에서도 대강 말한 바이어니와 일본이 거의 사십 년 전에 미국 해군 제독 페리가 일본에 처음으로 이러러 통상조약을 정하자 함에 일본이 크게 소동되어 우리나라에 병인양요 같이 된지라."

그러나 조정 대신들이 독립할 뜻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청국에 대한 의뢰심이 깊어 나라가 독립할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며 그래서 이승만은 조정대신을 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정대신들이 청나라에 의탁하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일본에 의지하다가 이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러시아에 기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이 세 나라에게(청, 일, 러시아) 차례로 당한 해를 볼진대 우리가 청하여 들여 구원을 얻으려 하는 중에서 생긴 것을 족히 깨달을지니 이것을 깨달을진대 일후에 또 남에게 의뢰하는 것이 또한 장차 어떻게 위태할는지 족히 의심을 깨칠지라. 이후에 한 번 더 해를 당하는 날은 다시 더 해를 받고자 하여도 받을 기회도 없을지니 관원이나 백성이나 국권을 보호하는 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남을 의지하든지 혹 남의 힘을 빌어 일을 하고자 하는 자는 곧 나라를 마지막 팔고 천만고에 대역이라 부디 조심 부디 경계할지어다."

또한 청국도 영국에 의지하다가 결국 낭패를 보게 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본래 청국이 영국의 부강함을 장히 여기며 그 부강한 근본을 연구하여 행하기는 힘쓰지 못하고 도리어 의뢰할 마음으로 항상 특별한 대접을 보여 정의를 사고자 하며 아무 때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영국이 나의 돕는자 되리니 별로 걱정 없으리라 하다가 이 때에 이르러 도와주기를 구하니 영국이 어찌 정의를 인연하야 형편을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국외중립을 지켜 간섭하지 않는지라 청국의 바라던 것이 여의치 못함에…"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깊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음을 한탄하였다.

우리가 과거 4번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이를 살리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나는 청일전쟁 이후 따로 서지 못한 것이오,
둘은 사십년 전 영국, 불란서, 그리고 미국의 통상요청을 거절한 것이며,
셋은 통상한 후에 깨닫지 못한 것이오,
넷은 아관파천 이후 행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조정을 믿지 말고 우리 자신들이 힘을 길러 독립을 보전하자고 호소한다.

"오는 기회는 이렇게 잃지 않아야 할터이나 수십 년래로 우리나라 관인들의 잃음을 보건대 실로 다시 바랄 것도 없고 설령 할 만한 인재가 있어 그 권리를 얻더라도 백성의 힘을 의뢰하지 않고는 부지할 수 없을지니, 지금 우리의 걱정할 바는 정부에 문명한 대신이 없음에 있지 않고 다만 나라의 뿌리가 될 만한 백성이 없는 것만 염려인즉, 우리가 어서 마음을 밝혀 문명한 사람이 되어 충애를 배양하여 독립의 기초가 되기를 힘쓰는 데 있도다."

따라서 나라를 개혁하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일을 추진하지 않고 일본을 끌어 들인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그래서 “당초에 내 나라 권리를 굳게 하자는 주의에 일병을 청하여 조력하기를 도모한 것이 본래 자주의 본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개혁하지 않고 “지금도 컴컴히 들어 앉아 왜양을 몰아내자든지 저의가 스스로 물러갈 날이 있으리라고 고집을 깨치지 못하는 자는 참 어리석은 인생이로다”라고 한탄한다. 그리고 이것을 고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희망이 있다고 역설한다.

"전일에 우리가 우리의 도리를 못한 것만 후회하고 각각 분발한 마음이 생겨 국권을 보호하는 일에 힘쓰고자 하는 사람이 될지니 사람마다 이 생각이 있은 후에야 장래여망이 생기리로다.”(p.239)

그리고 일본이 우리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하고 또 당장은 우리를 압박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일본을 미워만 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자강의 기회로 삼아 우리의 능력을 길러 하루 빨리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갑오년이 지금 십 년이라, 전후 십 년 동안에 일본이 두 번을 전쟁하여 이번에도 또 대한을 위하여 개전한다 하기에 이르렀은즉 이것이 참 우리를 위하는 일이 될런지는 질정하여 말하기 어렵되 십 년 동안에 아무 것도 아니한 표적은 이렇듯 들어난지라 생각 있는 이들은 정신차려 볼지어다.”(p.256)

"이는 일본이 대한에 대한 후의라고 하려니와 또한 각국의 공론이 있음을 인연하여 세상에 면목을 빛내는 주의가 얼마쯤 있슴이라. 우리가 마땅히 일본과 각국에 대하여 얼마 빚진 줄만 생각하고 하루 바삐 벗기를 도모할지라. 만일 이 뜻을 생각지 못하고 도리어 남을 원망하는 뜻이 자라다가는 마침내 남의 기회만 좋게 하여 주어 필경 세상에 반포하되 우리가 이렇듯 힘써 대한을 도와주었으되 대한은 도리어 우리를 원수로 대접하며 종시 독립하기를 힘쓰지 못하니 장차 어떤 나라를 다시 청하여 무슨 화단을 일으킬는지 모를지라 할진대 누가 홀로 나서서 그렇지 아니함을 증거하리오. 그런즉 우리가 지금 와서 일본을 밉게만 여기면 우리에게 해가 되고 일본의 이로운 기회만 주는 것이니 사람마다 생각을 파한 후에 또 일본을 전혀 고맙게만 알고 수치 되는 줄을 몰라 빈번히 붙들어 주기를 바라서 약한 계집이 남편에게 의지하듯 하여 따로 설 줄을 알지 못할진대 이는 남의 신세를 감사히 여겨 그 집의 종이 되어 섬기려 함과 같은지라, 내 몸이 남과 같이 넉넉하게 되어 전일 은인을 도리어 도와주게 되는 것이 참 사람의 입신하는 근본이 되리로다."

결국 이승만은 우리가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조하는 마음과 자주하는 정신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자주는 곧 주체이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주하는 마음, 즉 주체의식이 있어야 함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4. 결어

이승만이 옥중에서『독립정신』을 저술한 목적은 일반 국민을 교육하여 힘을 길러 독립을 보전하고자 하였다.
교육의 내용은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새로운 정치체제, 즉 입헌군주제나 민주정치제다. 상하귀천의 신분제를 폐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한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할 것이니 이야말로 독립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지 5년 후에는 대한제국은 사라진다. 그래서 이승만이 생각한 독립의 전략, 백성을 교화하여 힘을 길러 나라를 지킨다는 전략을 실행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그의 사상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실천하였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은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국인 2세의 교육에 힘썼으며 또한 교회를 세워 독립정신을 함양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낡은 체제인 대한제국의 절대왕권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민주적 공화정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내세움으로써 한민족이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건국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승만은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이 생각은『독립정신』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천지에 주재되신 이가 내게 맡기사 이것으로 세상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니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 잠시 맡아 행할 직분이 있거늘 내가 임의로 버리는 것은 조물주에게 크게 득죄함이요."

따라서 감옥에서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이 이로 인해 중벌을 받을지라도 사람들이 나라의 운명이 위태함을 알고 더 늦기 전에 힘을 기르기에 힘써 나라를 지킬 것을 호소하였다.

"이글을 지어 헌법을 쓰고저 한다고 중벌을 더할진데 이는 나의 일신이 가루가 될지라도 두렵지 아니하며 사양하지 않을 바로되 다만 바라고 원하는 바는 이 글 보시는 이들이 우리 대한의 급급업업한 사정을 깨달아 숨막히고 기운 끊어져 거의 죽어가는 나라의 이 한가지 단방략을 급히 시험하지 아니하면 화타, 편작이가 대들어도 회춘할 길 망연하리."

그리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생명만 부지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가지고 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호소한다.

"슬프다! 저 사기에 빛난 현철과 영걸들은 목숨하나 사는 것만 다행으로 알지 않고 목숨 외에 특별히 중한 의가 있어 그 의를 모르는 자는 살아도 죽은 줄로 알고 목숨을 바쳐 의를 세웠음에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나니 이것이 실로 일류에 태어난 본의라 하겠거늘, 지금 사람들은 생각이 점점 비루하여 가서 오늘날에 이르러 마침내 개암이 무리와 같이 되어 참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 의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인간의 지극한 낙은 식색이 제일이라 하여 놀기와 살기만 중히 여기매…"

이승만의 독립사상의 핵심은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힘을 길러 독립을 유지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원칙하에 공평한 법률을 제정하여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정한 민주정치를 시행한다면 국민이 각자 자신의 자유권을 지키기 위하여 국가를 지킬 것이라는 것이 이승만의 논리다. 이러한 의로 한 나라를 만들면 세계열강의 존경을 받으며 그들과 서로 교통하고 통상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승만은 여러 번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만든 집권자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대신 일반 국민이 신학문을 공부하고 힘을 길러 나라의 독립의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는 철저한 민주주의자였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굳게 믿은 사상가였다.
이승만의 절실한 호소를 몇 구절 더 인용함으로써 이 글을 마감한다.

"이 난리 중에서도 몸을 자유로 못하고 깊이 갇혀 있어서 기운을 펴지 못하며 뜻을 용납치 못하니 어찌 더욱 울적한 마음이 없으리오. 다행히 외국 신문들을 얻어 형편을 대강 짐작함에 조석으로 이 글을 기록하여 가장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히 알 바를 간략히 말하고저 하나 전쟁과 소문의 어떠한 것은 자세히 기록하기 어렵고 다만 대강한 주의만 말함이라. 보는 이들이 우리나라 독립에 긴절히 주의 할 본의만 깊이 색각하여 볼진대 쓰러져 가는 집을 받치기에 거의 만분지 일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노라."

"다만 대한 사람들의 한 가지 힘쓸 바는 일본의 세력을 벗어나기에 있나니 이는 하루 이틀에 급히 나가도 아니 될 것이오 혹 게을리 생각하여 하루라도 간단함이 있고는 못될 것이며, 군사를 기르거나 세력을 가져도 이룰 수 없고 정부에서 교제를 잘 하거나 계책을 잘 내어도 될 수 없은즉, 다만 학문을 널리며 교화를 힘써 인민의 지식과 신의가 세상에 드러나 각국이 다 나의 공번된 의리상 친구가 되어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도와주며 군사가 없어도 스스로 강하게 되어야 자연히 이룰지니, 이는 천 사람이나 만 사람이 합하여 위력을 세우는데 있지 않고 다만 각인이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강하여져서 하나씩 따로 떼어 놓아도 다 제 힘을 제가 가지고 있게 되어야 할지니, 저마다 경위로 다투는 외에는 다른 힘이 날 수 없는지라."

"슬프다, 대한동포들은 장차 어디로 가려는고.…이 어찌 우리나라에 백성이 있다 하리오.
이는 우리의 충심이 남만 못한 것도 아니오 재주와 지혜가 남만 못함이 아니라,
다만 위에 있는 이들이 자기들의 시비가 드러날까 혹 권리가 감할까 두려워하여 백성이 감히 알지도 못하게 하며 혹 말도 못하게 하매
외국 신문에 낭자하게 내는 말도 내 나라 신문에는 감히 드러내지 못하며 외국인들은 사방에 들네되 내나라 백성은 한 마디도 옮기지 못하여 전국이 아무쪼록 어두운 중에 있어 속으로 무슨 약조를 인처주었는지 나라를 무슨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지 도무지 모르도록 힘쓰는 고로 능히 알 사람도 없거니와 알아도 감히 아는 체를 못함이라.…
일언이폐지하고, 지금 우리의 급하고 급하고 또 급한 일은 아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다만 알려고 하며 또한 알게 하는 데 있을 뿐이라.
형편이 잘 되기를 바라지도 말고 글러 가는 것은 낙심하지도 말며
정부가 어찌 되는 것을 상관도 말고 또한 정부를 졸지에 반대하는 생각도 두지 말며
다 각기 내 몸이 내 나라 권리를 보호할만한 사람이 되어가며
주야 쉬지 말고 서로 형편과 도리를 전파하여 얼마 안에 전국 백성이 다 알고

목숨은 버릴지언정 대한제국 자유독립권리는 나혼자 지켜
우리 이천만 동포의 일천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이
다 머리를 숙이거나 다 죽어 없어진 후에라도
나 하나는 태극 국기를 받들어 머리를 높이 들고 앞으로 나아가
한 걸음도 뒤로 물러가지 않기를 각 마음 속에
맹세하고 다시 맹세하고 천만 번 맹세 합시다."
[정창인 기자]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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