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5

중국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모른다

(2) Facebook


이충원
- 중외시평 : 중국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모른다
/수석논설위원 다카하시 데쓰시
(닛케이 3.5 조간 오피니언면)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초년병 경제기자였던 1990년대에는 디플레이션이 왜 나쁜지 몰랐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까지 말하던 물가가 드디어 떨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물건과 서비스 가격이 점점 더 저렴해진다. 사람들의 구매력이 높아져 소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당시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가가 내려가면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을까'. 지난해 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 주석이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보도했다.
경제가 위축된다. 그것이 바로 디플레이션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믿고 물건과 서비스 구매를 미루게 된다. 기업은 매출이 줄고 수익이 악화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설비투자와 임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수요가 감소하고 물가는 더 떨어진다. 일본 경제가 빠진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이다.

어느새 물가도 임금도 주요국의 밑바닥을 헤매는 '싼 일본'이 되어 있었다. 경제를 갉아먹는 디플레이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 이를 배우기 위해 국민들이 지불한 수업료는 너무 비쌌다.
일본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막지 못한 이유를 철저히 연구해왔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이 "디플레이션이 뭐가 그렇게 나쁜 것이냐"고 말한다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2024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지수'가 전년 대비 0.5% 상승해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에 빠질지 여부의 기로에 서 있지만, 시진핑 정권은 필요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나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격렬한 내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에 승산이 없다고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장개석의 국민당이 400만 명이 넘는 반면 공산당은 100만 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병력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당은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된다. 농촌에서 지배 지역을 넓혀가는 공산당의 게릴라전에 열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내어 발판으로 삼았던 도시지역에서 맹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던 것이다.

공산당은 48년 12월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을 정식으로 설립하고 자체 화폐인 인민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퇴치에 성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성공한 것은 10개월 뒤인 49년 10월이었다.
인플레이션이 공산당 자체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과거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민해방군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89년 6월의 천안문 사건이다.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한 계기는 2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이었다. 재정과 통화정책을 잘못해 물가 상승을 초래하면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를 DNA에 새긴 공산당은 재정 규율에 극단적으로 집착해왔다.

반대로 디플레이션과 싸워본 경험이 없다. 시진핑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은 두려워해도 디플레이션을 두려워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고관세를 무기로 흔들면서 중국 경제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중국 중신증권에서 투자은행 부문을 이끌었던 도쿠치 다쓰히토는 "대미 관계와 디플레이션에 잘못 대응하면 중국은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 20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5일 개막한다.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선 주목하려고 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