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Sdoepotsnr3f 51m55af7736056h510r0ffgl1u3ua329th: c9M2i 72ilh ·
여성 혐오자 이재명 #1
18세 이재명의 여성관
이재명은 어린 시절 쓴 일기를 김혜경에게 보여주며 프로포즈를 했다. 그 일기는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부 공개되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김혜경이 홀딱 넘어가서 인생을 이재명에게 맡길 수 있었을까.
1980. 9. 19 (금) 맑음
낮에 옥상에서 노는데 그Nyun이 기도회가 뭔가 하는데서 어떤 남자애와 아주 다정히 예기하고 있었다.
다시 떠오른 생각. 잊어버리자 어쩐지 어젯밤 꿈이 맞구나
성규와 내가 고아가 되었다. 합동결혼식에서도 지름길(지리적)로 가서 ***
성규가 그Nyun의 집을 안다고 했다. 거기에 가는데엔 고난의 길이었다.
그Nyun은 어떤 남자와 난잡한 관계여서 난 생각을 바꾸고 눈물을 뿌리면서 돌아섰다.
유년기의 일기라고 방송에서 나왔지만, 이 일기는 청소년기의 일기다.
이재명의 생년은 좀 애매하다. 공식적으로 63년생이니 18세, 만으로 16세 나이의 일기다. 가치관이 형성된 시기라고 하겠다.'낮에 옥상에서 노는데'라는 말은, 이미 이층 양옥집을 사서 중산층에 편입되었다는 말이다.
한참 성장기 성적 열망에 시달리던 시절에 쓴 일기다. 특징적인 것이 보인다. 일기의 처음에는 여성의 이름이 한번 들어가야 문맥을 잡을 수 있다. 혜경이가, 순자가... 이렇게 이름을 한번 적어야 하지 않나.
이재명은 대뜸 '그Nyun이 기도회가 뭔가 하는데서' 욕부터 하고 본다. 그Nyun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마음 속에 박아둔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그리운 이름을 Nyun이라고 지칭한다.
그 여성은 무슨 짓을 했을까. 기도회에서 다른 남성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것도 이재명의 꿈에서. 이재명은 그 개꿈을 떠올리며 어젯밤 꿈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매일 밤 그녀N의 꿈을 꾸지 않았을까.
꿈이 또 이어진다. 한동안 그녀의 꿈만 꾸어댄 모양이다. 합동결혼식에 때문에 그녀의 집을 힘들게 찾았는데, 어떤 남자와 난잡한 관계였다. 이재명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다. 아마 건축학개론 같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재명의 망상속에서.
이 꿈의 내용을 이재명이 보좌관보다 신뢰하는 chatGPT에게 분석을 맡겨봤다. 이 일기 저자의 여성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여성을 감정적 만족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쉽게 비난하고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에 대해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 16세. 정서적으로 미숙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11년 뒤인 만 나이 27세에 김혜경에게 프로포즈하며 줬다는 사실이다.
"이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첫눈에 반했다"며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13세 때부터 써온 일기장을 건네주며 청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6개월여 만인 1991년 3월 결혼했다." 한국일보
일기의 분량이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다. 변호사가 문서를 대충 취급할리도 없다. 한번은 훑어보고 선물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선물했다는 것은, 이런 가치관을 배우자와 공유하기 위함이 아닌가. 어떤 가치관일까.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에게 종속되었음을 잊지말라는 선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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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ng Helen
저런 걸 보고서도 결혼을 한다는게 정말 이상하죠. 그 여자의 정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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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oeprdontSsag3914a1 3102r001Mf027fc338c: aa t3iica9f5hmf68f0f ·
여성 혐오자 이재명 #2
이재명 누이의 가난을 훔쳐오다.
1980년 어느 날 이재명이 식구들과 밥 먹는 사진을 보자.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가 공개한 사진이다. '무명의 소년공'이란 제목 아래, '지하 셋방을 벗어나 1층으로 옮긴 날'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이재명의 가난을 알리려는 사진이다. 멀리서 보면 이 식구는 가난해 보인다. 그런데, 이재명은 정말 가난한가?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이재명은 밥상에 스텐 식기를 펼쳐놓고 밥을 먹는다. 이재명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맨 바닥에 양은 냄비를 깔고 밥을 먹는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란 말인데,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따로 밥을 먹는다. 이재명은 어머니, 누이와 같은 계급이 아니라 상전으로 보인다. 이재명이 특별히 누이들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26년 뒤인 2006년, 큰 누이의 아들이 암사동 모녀 살해사건을 저질렀을 때 이재명은 심신미약을 들어 적극 변호를 해주었다.
이것만으로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당시 많은 남성들이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랐다. 이재명도 막내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품에서 자랐을 뿐이다. 이재명의 웹 자서전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어머니와 재명이가 너무 살가워서 나머지 형제들은 우린 같은 자식 아닌가 싶어 섭섭해했죠.”
손가락 중에서도 유독 사랑을 많이 받으려 드는 손가락이 있다. ‘배타적 사랑 독점권’이라고 하면 그렇고 어쨌든 성장하는데 좀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그런 ‘별난 족속’이 있는데 내가 딱 그 부류다." 이재명 웹 자서전
자식 편애하는 강퍅한 어머니와 막내 아들, 그리고 천한 딸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그때의 시대상이다.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을 '이재명 대선캠프'가 공개하면서, 바닥에서 밥 먹는 여성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다. 사진 설명에는 '무명의 소년공', '지하 셋방을 벗어나'와 같이 이재명의 가난한 소년 시절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가난해 보이는 건 누이들뿐. 이재명은 자가에서 홀로 상을 받아 밥을 먹는다.
이재명과 이재명의 대선캠프는 이 사진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여성혐오적 마인드가 내재화되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그저 소년공 이재명은 참 가난했구나 선전하기에 급급했다. 바닥에서 밥 먹는 누이들의 가난까지 뺏어와 버렸다. 이재명이 이 사진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난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만 쓰는 순간, 이 사진은 여성혐오 사진으로 완성되었다.
정말 이재명은 가난하였는가. 문 창살 패턴을 보자. 직사각형이 계단처럼 쌓여있다. 책상 앞에 앉은 이재명의 방문 패턴과 같다. 이 사진에는 1979년 2월이라고 스탬프가 찍혀있고, 이재명도 17살 때라고 설명한다. 이사간 이층 양옥집이다. 그러니 "경기 성남시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 셋방을 벗어나 1층으로 옮긴 날"이라는 이재명 대선캠프의 캡션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80년의 사진이라면 1년 이상 살았을 수 있다.
이재명의 공부방에는, 스테레오가 놓여있다. 어떤 제품일까. 찾기가 쉽지 않다. 국내 오디오 시장이 부흥한 것은 80년대부터이니 오디오파일도 이 제품을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책꽂이처럼 보이는 것이 전축 장식장이다. 별표 전축이 저런 스타일의 오디오장을 쓴다. 스피커는 독수리표 광고에서 비슷한 것을 보았다. 상단 중앙에 테이프가 꽂혀 있는게 보일 텐데 카세트 테이프가 아니라, 8트랙 카트리지로 보인다. 웬만큼 살지 않았다면 8트랙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이 오디오는 독수리표나, 별표 8트랙 스테레오인 듯 하다. 70년대에는 스테레오 스피커와 8트랙 플레이어를 패키지로 한 오디오 시스템이 있었다. 70년대 초반에는 두달 월급, 후반에는 한달 월급이라, 할부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300만원은 한다는 말이다.
아들 방에는 스테레오 전축이 놓여있다. 딸들은? 방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밥 먹는 사진을 살펴보면 옷가지가 걸려있고, 이불이 쌓여있다. 딸들은 이재명 밥상을 치우고 여기서 자지 않았을까. 프라이버시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사진을 보여주며 가난한 소년공 이재명만을 보라고 한 이재명 캠프에 비감을 느낀다.
1편
https://www.facebook.com/dezpim/posts/pfbid0Zh5pLWcRqTJwnRBh8tkch4ktxvtnHafAwo1rEQysaCWWZ4BoNJLyBirbdXjPNFTzl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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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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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자 이재명 #3
여성과의 관계 형성에 실패하다
어머니의 편애 아래에서 자란 이재명은 조직 생활에 문제를 겪는다.
"처음으로 한 취직이었는데, 고참들에게 “형”이라는 말이 안나와 계속 이름을 불렀다가 정말 죽도록 맞은 기억도 있다. 엄청나게 맞고 나니 “형”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군..." 이재명 블로그 2006
형이라는 소리를 못한 것까지는 이해하겠으나, 이름을 부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후일 4살 위 형 이재선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온다.
“어머니와 재명이가 너무 살가워서 나머지 형제들은 우린 같은 자식 아닌가 싶어 섭섭해했죠.” 이재영(이재명 둘째 형). 이재명 웹자서전
6살 차이나는 차남 이재영이 섭섭해할 만큼 편애가 심했다. 형제간 터울이 6살이나 벌어지면 보통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섭섭해 하진 않는다. 삼촌과 조카같은 사이가 되지 않던가. 이 어머니의 왜곡된 편애는 인생 종장까지 이어지다 자식간에 끔찍한 비극을 빚고 만다.
공장 생활에서 남성과의 관계는 주로 맞은 이야기다. 여자와의 관계는 다르다. 에로스의 대상이다.
"이때 처음으로 김경숙이라는 누님 노동자에게 연정을 느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나온다.
"나보다 한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하여 머리끄댕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내에서 어느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공돌이 근성을 배운 것인가."
이때가 1977년 가을이다. 나이를 속였다는 문제로 여자를 폭행한다. 지난 겨울에 이재명은 어떻게 했나.
"1976. 겨울 상대원 1동 현 파출소 자리 뒤에 있는 ‘동마고무’라는 회사에 ‘이승원’이라는 앞집 사는 학생 이름으로 위장(?)취업(나이 부족 때문에)을 하였다." 이재명 블로그
이재명도 한살 어린 나이에 취업을 위해 나이를 속였다. 저 여성 노동자도 진짜 나이를 밝혔다면 취업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동병상련을 느낄 상황인데, "머리끄댕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다.
전태일은 봉제 공장에서 각혈하는 여공을 보며 문제를 고치기로 마음 먹었다.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개하며 근로기준법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여동생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똑같이 여동생을 둔 공장 노동자 이재명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버린다. 모두 전태일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명처럼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강자 앞에서는 굽히지만 약자 앞에서는 강하다. 지금도 이재명은 국토부의 협박 때문에 백현동 용도변경을 해주었다고 말한다. 강자에게는 굽히지만, 약자 앞에서는 강해진다. 여성은 이재명의 초년 시절 공장 생활에서 유일하게 이겨먹을 수 있는 약자였다. 여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발언 하나하나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1편
https://www.facebook.com/dezpim/posts/pfbid02d4ZzxXy3s3ATJZhZ9EE2b8MG3AgRXhZQVXb79VnJb667UVcgLyJUYTfcNLtjLj1Cl
2편
https://www.facebook.com/dezpim/posts/pfbid02jXAFygi2AzdPFJrJnhafgyKZ1Nv7W5F28CodZWyV1tBtwYcmW5wRMHXxpTVdxmX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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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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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자 이재명 #4
여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죽음을 선택하다
이재명은 개심한 일화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베 출신도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다.
"여러분 혹시 아시나 모르겠는데, 제가 일베 출신인 거 아세요?
어우, 몰랐어요? 제가 출신이 일베 출신입니다. 일베 출신. 일베.
혹시, 이중에도 있으시죠? 꼭 안 나타나도 됩니다. 원래 숨기고 하는 거죠. 원래 일베는."
말 한 마디 안에 일베라는 말이 몇 번이나 들어갈까. 부끄러운 자기 과거를 고백하는 표현은 아니다. 이재명은 때때로 과도하게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기법은 영업사원이나 사기꾼이 간혹 사용한다. 제품의 단점을 먼저 공개하면 고객의 신뢰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한다. "이 제품 디자인은 촌스럽죠. 그래서 매니아만 산다니까요."
역설적 진실효과라고 하겠다.
1. 이재명 저거 못 미덥지. 거짓말이나 또 하겠지.
2. 그런데 너무 솔직하네? 내가 선입견을 가졌나?
3. 이 사람은 숨기는 게 없구나!
기대하지 않은 정보를 과잉되게 공급되면 비판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
이 정도까지 솔직한 사람이 거짓말 할 리 없지. 이런 효과를 낳기 위해, 이재명은 '일베 출신'이라는 걸 강조한다. 진짜로 일베에 가입했다는 것이 들키고, 모니터링 차원이라는 어설픈 변명을 한 이후엔 일베 스토리텔링도 줄어들었다.
X살 시도도 이재명이 잘 쓰는 스토리다. 왜 X살 시도를 하게 되었나. 1979년 봄의 일이다.
"특히 사춘기 시절인데 아침 일찍 등교하는 교복입은 동네 여자아이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결국은 대낮에 다락방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잠이 들었다. 한참 있다 깨어보니 연탄불 바닥이 공기가 통하지 않아 불이 꺼져 있고 골치만 지끈 거렸다. (이렇게 첫번째 X살기도는 실패로 끝났다.)" (2006. 이재명 블로그)
사춘기 시절, 교복 입은 동네 여자 아이들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고, 그게 X살 시도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열등감에서 폭력성이 발화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묻지마 범죄로 발전하지 않고, 공부로 승화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누차 말하지만, 이재명의 과거만을 짚어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자의 미성숙함을 따져 물어 무엇할 것인가. 그러나, 이재명은 자신의 과거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며 현재 시점으로 호출했다. 그러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 된다. 현재의 이재명은 더 이상 여자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이재명 초년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을 X살 시도 스토리가 2021년에는 바뀐다.
"한창 예민한 열일곱 살이었다. 가난은 아득해 보였고 한 팔을 못 쓰는 사람이 되어서도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온갖 절망적인 생각이 나를 삼키고 있었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마침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웹 자서전
여성에 대한 열등감이 빠져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인데 아침 일찍 등교하는 교복입은 동네 여자아이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숨이 막힐 지경". 특히라고 콕 짚어 말한 동기를 빼버렸다. '동네 여자아이에 대한 열등감'을 더이상 솔직하게 드러내기 싫은 것이다. 수많은 여성 혐오 범죄의 동기가 된 극단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업사원이나, 사기꾼이 '과잉된 솔직함'을 가지고 속이려 할 때 대응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차분히 지켜보면 된다. 말이 바뀌다가, 어느새 꼬여 제풀에 쓰러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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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ttps://www.facebook.com/dezpim/posts/pfbid0fyX54X5fKmJxJAjxX7hawCSAx5PnRpNCQh4zwGksWDYsg7af6gFsbzXHPQqgPhs6l
#3
https://www.facebook.com/dezpim/posts/pfbid026BrPyrrh4kCRe6ZabAFow1Q2e1m84c9h1t7gsMyu1npL9upVig1feTpKGFBpd7txl
Chang Whi Lee
모녀 스토킹 살인범 조카를 변호한 이유는 조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땨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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