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2

손민석 시바하라 다쿠지의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

 손민석

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시바하라 다쿠지의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를 갖고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에 대해 언급하면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이들은 벌써 '피식' 거리기 시작한다. <경제사총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을 읽어보았다는 것이다. 자기네들이 학생운동할 때 읽어보았는데 별 게 없더라, 이런 것이겠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왜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입니까? 그 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갑자기 당황한다. 거의 예외없이 당황한다. 끝내 잘 모르겠다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는 말을 받아내는 내 성정도 딱히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만.. 그래도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비웃는 그 태도들이 불쾌하기 그지없다. 물론 시바하라의 저작을 읽어보면 고루하고 조잡하다는 느낌을 준다. 나도 처음에 읽었을 때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수준이란 참으로 알만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유가 왜 생기는지, 그것이 왜 생산양식과 분리, 괴리되는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를 구성한다. 바로 거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생산양식과 그것의 고정화된 법제적 형태로서의 소유구조의 '관계', 이 관계를 다루는 이론으로서의 "역사이론"이야말로 이 책의 본령에 해당한다. 그 부분을 섬세하게 비판하고 체계적으로 대안을 재구성하면서 말 그대로 '이론', "역사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 작업의 유용성을 인정받으려면 저렇게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하는 태도부터 어떻게든 비판하고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 연구자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면서도 아쉬움을 감추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총력전체제에 관해서도 참고할만한 문헌이 거의 없지만, 다카시 후지타니의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가 그나마 도움이 많이 된다만, 다른 역사개념들에 관해서도 그렇다. 강의를 준비하면서도 새롭게 깨달은 바이지만, 우리가 쉽게 쓰는 절대주의 왕정, 절대왕정, 절대주의 등의 용어를 정리한 책이 없다. 프랑스사 연구자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임승휘 선생의 짧은 저서 외에는 서정복, 김장수 등의 개별사 연구서만 있을뿐이다. 학술논문들로 범주를 넓혀도 참고할만한 문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공사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등과 같은 고전적인 개념들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음미해볼만한 연구들이 생각보다 적다. 일본학계의 경우에는, 아! 정말이지, 일본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일본 학계의 경우에는 강좌파들이 천황제를 '절대주의'로 규정한 이래로 비록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절대주의에 대한 학술적 규정을 시도한 것들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바타 미치오 등과 같은 사단국가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의식에는, 서유럽의 절대왕정(=사단국가)와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사단국가 but 절대왕정이 아닌)의 대비가 놓여 있다.

 근세국가라는 동일성을 공유하면서도 서유럽의 경우 교회 등의 중간단체들이 '보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국왕에 대항할 수 있었고, 국왕도 그들에 맞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주권개념과 같은 자신만의 '정치이론'이 존재해야 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가속화했던 게 중간단체와 절대군주의 그러한 대립이었다. 절대주의 왕정의 연장에서 프로이센 개명군주와 같은 것이 나오는 건 그런 맥락이다. 왕 자체가 '학자'로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계몽'을 수행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종황제를 '개명군주'로 규정하거나 이헌창과 같이 조선왕조의 군주제를 '절대군주제'로 규정하는 연구들이 있지만 정작 절대군주제를 무엇이라 볼지, 개명군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보편주의적인 특질을 지닌 중간단체들, 귀족, 교회 등의 도전에 맞서서 자신의 영유권적 지배를 정당화할 정치이론을 산출해내지 못했다는 데에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적 특질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연 동아시아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 공사분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등과 같은 근대성이 출현할 수 있을지를 논해보고 그 연장에서 오늘날의 한국의 상황을 감각할 필요가 있는데 그게 안된다는 말이다.

 시바타 미치오는 강좌파적 역사인식을 일정 부분 계승하고 있는 사람답게 일본이 근세국가에는 도달했지만, 중간단체들과의 관계에서 사실상 막부의 우위가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절대왕정은 유럽 특유의 체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시바타와 다르게 일본도 '아시아'라 말하고 싶다. 일본에서조차 아시아적 특질을 극복할 어떠한 사상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뒷받침할만한 개념서, 이론서 등이 부재하다보니 여전히 절대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페리 앤더슨의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를 읽어야 한다. 나도 답답하지만 추천할만한 저작이 없다. 절대주의가 무엇인가? 절대주의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절대주의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적 의미의 절대주의 국가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강의를 하면서도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많이 인용할 수 없다는 데서 슬픔을 느낀다. 우리의 근대를 폭넓게 해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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