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시좌視座에서 한국과 북조선의 관계사를 ‘체제경쟁’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냉정하게 말해 북조선이 앞서던 시기(1960-80년대)에서 한국이 앞서던 시기(1980-2000년대)를 거쳐 각자 독자적인 민족적 정통성에 기반해 분리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이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북조선을 같은 민족이 아니라 혈족적 공통성을 갖고 있으나 독자적인 민족정통성과 권력정당성을 지닌 국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에서의 우위를 통한 체제의 정당성 선전과 북조선의 군사력에서의 우위를 통한 체제의 정당성 선전은 서로를 향하기보다는 내부‘만’을 향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이전의 시기가 한 쪽의 권력 정당성 우위를 통해 다른 쪽의 흡수를 지향했다면 이제는 각각의 체제가 독자적인 민족정통성과 권력정당성을 지니고 독자적으로 생존해나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북조선의 붕괴라는 미망은 이제 완전히 버릴 때가 되었다. 북조선은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의존한 적도 없지만 의존할 필요가 더더욱 없어졌으며 한국 또한 북조선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될 여지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기에 서로에게 서로가 체제의 차원에서 위협이 될 일은 그다지 많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각자의 체제 내에서 상대 체제를 향한 어떤 지향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북조선인들이 한국과의 통합을 지향하지도 않을 것이고 한국인이 북조선과의 통일을 지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 북조선의 정치적 혹은 군사적 우위와 한국의 경제적 우위라는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며 각자 상대방의 우위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즉 북조선은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고 경제개발을 시도할 것이며, 한국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 군사적인 안정을 보장받고 중국과 최소한 적대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게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현실인식에 동의한다면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좌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사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엥겔스가 오래 전에 지적했듯이 민주주의 체제야말로 계급투쟁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진전시킬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지키는 것은 좌파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무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과 북조선의 관계에서 좌파가 입지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역시나 평화체제의 달성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북조선은 국가로부터 분리된 시민사회의 영역이 아직 맹아적으로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규정력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중국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듯이 경제개발이 상당히 진행된다고 해서 곧바로 해소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주체적인 의지의 발현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맹아를 최대한 발아시켜야 북조선 내부에서 체제 변혁의 동력이 생겨날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그 사회의 내부에서부터 동력이 나와야 비로소 정착가능한 것이지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해서는 정착할 수가 없다.
이는 서남아시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외부의 요인은 내부의 요인에 자극을 준다는 의미에서만 유용하다. 북조선에 나타난 맹아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성장이 필수적인 요건이며 그 전제는 평화체제의 정착이기 때문에 북조선이라는 맥락에서 평화체제의 필요성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평화체제의 정착은 좌파의 입지를 위해서 중요하다. 좌파는 한미일동맹을 신자유주의 동맹이니 제국주의 동맹이니 하는 공허한 담론으로 비판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한미일 동맹을 좌익이 주도하고 강화시켜나가면서 보수우익의 발로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평화체제의 정착은 좌파의 입지를 위해서 중요하다. 좌파는 한미일동맹을 신자유주의 동맹이니 제국주의 동맹이니 하는 공허한 담론으로 비판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한미일 동맹을 좌익이 주도하고 강화시켜나가면서 보수우익의 발로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한미일 동맹은 어차피 한국의 국가적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며 앞으로의 역사적 전개에서 이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누가 집권하든 그것은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현재에는 오히려 민주당 정부이기에 그것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좌파가 맹목적인 비판자가 아니라 정권을 운용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일 동맹과 그를 통해 안보를 확보하자는 움직임은 당연하게도 그것이 북조선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좌파의 입지를 좁히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무리 부정해도 북조선이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태 중 하나인 동구형 사회주의에 속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형 사회주의와 스웨덴 등을 비롯한 북구형 사회주의로 나타났는데 북조선은 동구형에 속한다. 한국은 이 동구형 사회주의와 대결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한 국가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입지가 줄어드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동맹을 평화체제 달성이라는 목표에 결부시켜야 한다. 좌익이 활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평화체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라 생각한다.
냉정하게 말해 사드배치 반대, 무조건적 평화 등등의 주장이 오늘날에 있어 유의미한 저항이 될 수 없으며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전개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 위에서 최대한의 공간확보를 목표로 해야 한다.
아마 이런 점에서 민주당 정부의 정책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이런 점에서 민주당 정부의 정책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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