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1

[중국 개혁개방 40년 시리즈 上] 개혁개방 40년 : 네이버 뉴스




[중국 개혁개방 40년 시리즈 上] 개혁개방 40년 :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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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개방 40년 시리즈 上] 개혁개방 40년
기사입력 2018-08-31 13:44 최종수정 2018-08-31 13:53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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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中, ‘세계 最大 아닌 最高’로

중국이 올해로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은 실로 눈부실 정도다. 1970, 80년대 한국의 초고속 성장이 ‘한강의 기적’이라면 중국 개혁개방 40년의 성과는 ‘중국의 기적(中國的奇蹟)’이다. 중국은 이제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발전에서도 초일류 단계에 들어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특색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제 장정(長征)을 시작한 중국, 개혁개방 40년 사이에 얼마나 변했을까? 주한 중국대사관(邱國洪·추궈훙 대사) 초청으로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 기자와 중국 전문 학자 11명으로 구성된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성과 탐방단(단장 김진호 단국대 교수)’의 일원으로 7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선전(深) 등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도시들을 둘러봤다. 중국 개혁개방 40년의 성과와 전망을 상·하 시리즈로 조명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 선전(深?)의 롄화산(蓮花山)공원 정상에 오르면 높이 6m의 동상이 보인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힘차게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동상은 정남향이다. 동남쪽엔 홍콩이 있다. 개혁개방의 상징이다.

동상 뒷면 대리석엔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가 설립한 경제특구 정책이 정확했다는 걸 증명합니다(深?的?展和???明,我?建立??特?的政策是正?的)”라고 씌어 있다.


덩샤오핑, ‘오늘의 선전’ 예감?덩은 특구 지정 4년째인 1984년,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처음으로 선전을 방문했다. 당시 덩은 “우리의 경제특구 건립과 개방정책 실시의 지도사상은 명확하다. (과거 계획경제처럼) 관리통제(收·收緊의 뜻) 하는 것이 아니라 열어 풀어주는(放·放寬의 뜻)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8년이 지난 1992년 남순강화 당시 덩은 동상에 새겨진 글귀를 상기시키며 “한 글자라도 빠져서도, 틀려서도 안 된다”고 중국 지도부에 강조했다. 3개월 뒤 덩은 상하이 등 중국 동남부 14개 연안 도시를 개방했다.

덩은 1991년 1월엔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1992년 1, 2월엔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무려 35일간 중국의 혁명 성지와 개방 특구를 찾았다. 이른바 2차례에 걸친 남순강화(南巡講話)다. 덩은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베이징(北京) 중국 지도부가 보수적인 분위기로 흐르자 이를 타파하기 위해 우창(武昌) 등 혁명성지와 함께 선전,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 중국 남부지방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특구의 성(姓)이 사(社·사회주의 의미) 씨냐, 아니면 자(資·자본주의 의미) 씨냐며 논쟁이 한창일 때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톈안먼(天安門) 시위는 무력 진압했지만 개혁개방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며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 순행이었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해방하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며, 착취를 없애고, 양극화를 제거하며,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부유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생산력을 해방한다는 건 중국식 용어로 생산력 향상을 막는 각종 제도와 사상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생산력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산성 향상을 뜻한다. 덩은 가는 곳마다 “발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發展才硬是道理)”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남순강화엔 신화(新華)통신이나 런민(人民)일보 기자가 따라붙지 않았다. 오직 선전특구보의 부총편집인이었던 천시첸(陳錫添·77)만이 1992년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방문 5일간 동행 취재했다. 그는 2개월 뒤인 3월 26일 ‘?方???眼春(동방에서 바람이 부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라는 제목으로 1만여 자에 이르는 장문의 동행취재기를 1면 톱기사로 실었다. 당일 오후 이 기사는 광둥성의 최대 일간지인 양청(羊城)만보에 실리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5일 뒤인 3월 31일엔 런민(人民)일보가 천 기자의 글을 전재(轉載)했다. 천 기자는 일약 중국의 대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 말은 덩이 직접 한 말은 아니다. 천 기자가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시구 중 한 문장을 인용해 덩의 남순강화 의미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선부론(先富論)
선전시 롄화산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참배객들이 늘 넘쳐난다.
덩의 남순강화 정신은 8개월 만인 1992년 10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특색 사회주의 이론’으로 정리됐다. 덩이 사망한 1997년 9월엔 당의 지도사상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毛澤東) 사상과 함께 당장에 올랐다. 정치제도는 사회주의 그대로, 경제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본뜬 말 그대로 ‘중국 특색’을 지닌 전대미문의 사회주의 이론이자 전인미답의 새 길이었다.

1979년 인구 31만여 명의 한적한 농어촌이던 선전은 첫 번째 경제특구로 지정된 덕에 이제 상주인구 1250만 명의 초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1, 2년씩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민공을 포함한 실제 거주자는 2000만 명을 넘는다. 1979년 1억9638만 위안이던 선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해 2조2438억3900만 위안으로 무려 1만1426만 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덩샤오핑 동상 앞 선전시 중심가 전경. 덩은 개방특구 설립 당시 마천루가 즐비한 선전의 현재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덩의 동상 앞은 마천루(摩天樓)가 즐비한 선전의 시내 중심 거리다. 그의 눈앞엔 선전에서 가장 높은 118층짜리 핑안(平安)국제금융센터부터 장쑤(江蘇)빌딩, 타이핑(太平)금융빌딩 등 50~60층의 대형빌딩이 즐비하다. 과거엔 홍콩이 빌딩 숲을 이뤘지만 지금은 선전이 더 빽빽하다. 덩은 선전의 이런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특색사회주의(中國特色社會主義)란?중국의 개혁개방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중국특색사회주의’ 이론에 의해 이뤄졌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마르크스주의와 중국의 현실을 결합한 중국식 사회주의 노선이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江澤民)의 삼개(三個)대표론,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은 물론 시진핑(習近平) 사상까지 포함한다. 핵심은 1개 중심과 2개 기본점으로 요약된다. 1개 중심은 “반드시 경제 발전을 중심에 놔야 한다”는 것이다. 2개 기본점은 개혁개방과 4항 원칙 견지다. 4항 원칙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 사회주의 노선, 인민민주독재, 공산당 영도(領導) 등 4가지는 절대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열 때마다 “중국특색사회주의라는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분투하자”고 강조한다. 시진핑 당 총서기는 2017년 10월 18일 제19차 전국대표대회 업무 보고를 통해 “중국특색사회주의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며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우리말로 풀면 핵심 과제)’은 날로 높아지는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인민의 요구와 불균등, 불충분한 발전”이라고 말해 중국이 과거의 절대빈곤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음을 분명히 했다. 이제 중국 공산당의 핵심 과제는 더 풍요로운 생활수준에 대한 인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공산당은 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까지 1인당 GDP 1만 달러 안팎의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달성하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엔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룩하겠다고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주의 현대화’는 1인당 GDP 5만 달러 안팎의, 현재 서구 선진국과 같은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뜻이다.


개혁개방 40년 매년 9.59% 초고속 성장덩의 동상 밑엔 시민들이 바친 꽃들이 수북하다. 개별적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많지만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단체로 온 추념객도 적지 않다. 그의 생가가 있는 쓰촨(四川)성 광안(廣安)시 셰싱(協興)진 파이팡(牌坊)촌 입구의 마을 표지석엔 파이팡촌이라는 이름 아래에 다음과 같은 대련(對聯·문이나 집 입구 양쪽에 거는 대구)이 새겨져 있다. “?身不忘毛澤東, 致富更思鄧小平(신분을 바꿨으니 마오쩌둥을 잊지 말고, 부를 이뤘으니 덩샤오핑을 더욱 생각하자).” 마오는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3대 압제에서 중국의 농민과 노동계급을 해방했다. 중국의 노동자, 농민들은 지주의 노예에서, 자본가의 착취에서, 반(半)식민지의 설움에서 벗어났다. 치부란 한국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중국에서는 말 그대로 부자가 됐다는 의미다. 덩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부자가 되는 걸 죄악시하지 않고 나아가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해 모두가 부유하게 잘사는 대동사회(大同社會)에 도달할 때까지의 한시적 격차를 인정했다. 마오는 5억 인민의 신분을 노예 상태에서 국가주인으로 바꿨고, 덩은 당시 9억 명, 이제는 14억 명으로 불어난 중국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40년, 중국의 경제 성과는 가히 기적적이다. 1978년에서 지난해까지 39년 새 1인당 GDP는 39.5배가 늘었다. 국내총생산(GDP)은 56.6배로 늘었다. 공업생산액은 173배, 무역액은 무려 199배, 예금액은 3090배가 늘었다. 쯔푸(致富·부자가 됐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1978년 1억67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3조1399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학술위원회가 올해 4월 발간한 ‘개혁개방 40년’ 연구논문집 상권에 따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무려 9.59%. 그것도 2010년까지는 10% 안팎의 초고속 성장을 이어오다 2012년 이후 8% 아래로 떨어졌다. 2015년부터는 6%대로 내려왔지만 지난해에도 6.9%를 기록해 전 세계 평균 성장률 3.7%의 2배나 됐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8~10위 사이를 오르내리던 중국의 GDP 순위는 1993년 캐나다를 제치고 7위로 올라서더니 2000년엔 이탈리아를 추월해 6위로, 2002년엔 프랑스를 제치고 5위로, 2006년엔 영국을 따돌리고 4위로 뛰어올랐다. 이어 이듬해인 2007년엔 독일을 추월한 데 이어 2009년엔 일본(5조351억 달러)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G2(중국 5조695억 달러)로 올라섰다.


중국 개혁개방 40년 일지1978년 12월 덩샤오핑, 개혁개방 선언
1979년 1월 중·미(中美) 수교
1980년 8월 선전, 주하이 경제특구 지정
10월 산터우, 샤먼 경제특구 지정
1984년 4월 상하이 등 동남부 14개 연안도시 개방
1987년 11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발표. 1개 중심, 2개 기본점 노선 발표
1988년 4월 하이난성 경제특구 지정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로 자오쯔양 총서기 실각
장쩌민, 당 총서기로 취임
1992년 1~2월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
10월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 ‘사회주의 시장경제’ 공식화
1997년 7월 영국, 홍콩 주권 중국에 반환
2001년 12월 중국,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 ‘3개 대표론’ 당장 삽입
후진타오 당 총서기 취임
2004년 3월 사유재산권 보호조항 헌법에 삽입
2005년 6월 상하이 푸둥지구 종합개혁시험구 지정
2006년 4월 톈진 빈하이신구 종합개혁시험구 지정
2007년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차 전체회의 물권법 통과
사유재산과 국유재산 똑같이 보호
10월 후진타오 ‘과학발전관’ 당장 삽입
2012년 2월 시진핑, 방미(訪美) 중 ‘신형대국관계’ 제창
11월 시진핑, 당 총서기 취임
2014년 11월 후강퉁(?港通·상하이-홍콩 주식 연계 거래) 시행
2016년 10월 중국 위안화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정식 편입
12월 선강퉁(深港通·선전-홍콩 주식 연계 거래) 시행
2017년 7월 자이취안퉁(債權通·중국-홍콩 채권 연계 거래) 시행
10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당장 삽입


중국특색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중국의 경제총량은 2009년 당시만 해도 세계 1위인 미국(13조8983억 달러)의 36.5%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미국(19조3906억 달러)의 63.2%까지 치고 올라왔다. 세계경제 비중에서는 24.6%인 미국보다 여전히 낮은 15.3% 수준이지만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비율은 34% 정도로 미국보다 훨씬 높다. 특히 2010년부터는 2016년을 제외하고 거의 매년 1조 달러 이상으로 GDP가 늘고 있다.

구매력을 감안한 중국의 경제총량(PPP)은 2014년(18조881억 달러)부터 미국(17조4276억 달러)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의 PPP는 23조1591억 달러로 미국(19조3906억 달러)보다 19.4%나 많았다. 환율을 감안한 GDP 역시 2026~2028년경이면 미국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 블룸버그 통신의 예측이다. 다만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중국 경제의 미국 추월 시점은 해가 갈수록 점차 늦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 같은 휘황찬란한 경제 성과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후카이훙(胡凱紅)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신문국장은 7월 23일 방문단을 맞이한 자리에서 “1978년 당시 중국 경제는 미국의 6%(실제는 6.3%), 1인당 국민소득은 225달러(실제는 224.3달러)에 불과했다”며 “앞으로 중국은 아시아 공동체 나아가 인류문명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개혁개방을 한 마디로 말하면 ‘기회’로 정리할 수 있다”며 “중국의 개혁개방은 개인적으로는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고 인류문명사에서는 세계 발전의 기회”라고 역설했다.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현재의 발전하는 중국도 없었을 것이고 세계문명사적으로도 발전이 더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도 있다. 천하이(陳海) 중국 외교부 아주사(亞洲司) 부사장(부국장)은 “중국은 개혁개방 성과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이웃 나라를 더욱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IT 분야 세계 최고 반열에
조이탄 화웨이 커뮤니케이션 총괄 사장은 “세계 170여 개국에 진출한 화웨이의 현지 직원 비율은 70%에 이른다”고 말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한 화웨이의 심모원려다.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라는 말에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최대보다 최고, 일류가 되고자 한다. 실제로 이런 경향은 IT(정보통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혁개방의 1번지’ 선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華爲)는 올해 2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인 애플을 제친 데 이어 세계 최강의 삼성을 넘보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이 시장점유율 18.6%로 1위, 애플이 14.3%로 2위, 화웨이가 10.2%로 3위였지만 올해 2분기부터는 삼성 1위(20.4%)에 이어 화웨이 15.5%의 시장점유율로 애플(11.8%)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더욱 주목할 것은 무서운 추격 속도다. 올해 3월 P20Pro를 출시한 화웨이는 “이것이 진정한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This is called a real generation upgrade)”라고 선언했다. 이제는 제품 성능에서도 삼성에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기술을 내주고 시장을 얻는다”는 과거 중국 시장 진출 공식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올해 2분기 화웨이, 오포(OPPO), 비보(vivo), 샤오미(小米) 등 중국의 토종 4개 스마트폰 업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80.2%다. 이제 중국 시장은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시장이 아니라 중국 토종 업체의 시장으로 변모했다. 올해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7.0%로, 2013년까지만 해도 19.7%까지 올랐던 삼성은 지난해 4분기부터 0.8%까지 줄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중국 스마트폰이 싸구려라는 것도 과거 얘기다. 유럽에서 팔리는 화웨이의 주력 상품 P20Pro는 한화 117만 원 수준으로 최근 삼성이 출시한 갤럭시9 노트(109만 원)보다 더 비싸다.

조이탄 화웨이 글로벌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총괄 사장은 “매출액의 1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며 “직원 18만 명 가운데 8만 명이 R&D 분야에 종사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R&D 비율 7%의 2배에 이르고, 연구인력 역시 삼성의 6만5000여 명보다 많다.

항저우(杭州)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는 중국 인구의 40%가량인 5억2000만 명이 사용한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 한국에도 모바일 결제가 있지만 아직은 신용카드에 밀려 걸음마 단계다. 당초 모바일 결제 기술력은 한국이 먼저 확보했지만 이를 실용화하는 데는 중국이 앞섰다. 한국에서는 은산(銀産)분리 원칙에 막혀 주춤하는 사이 ‘금지한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네거티브 규제 원칙이 중국에서 먼저 모바일 결제가 꽃피게 했다. 왕칭펑(王?豊) 알리바바 소비자 소통 담당 고급매니저는 “알리바바는 중국 개혁개방의 최대 수혜자”라며 “하늘 아래 할 수 없는 사업이 없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고속 성장’에서 ‘고품질 발전’으로
중국 공산당 선전부와 정부의 공식 대변인인 후카이훙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신문국장은 개혁개방 40주년 성과 탐방단을 맞아 “중국은 앞으로 인류문명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중국과 미국은 최근 전면적인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 미국이 먼저 500억 달러 상당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매기기로 하자 중국은 600억 달러어치의 수입품에 5~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반격했다. 이에 미국은 다시 중국이 이렇게 할 경우 추가로 2000억 달러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같은 무역마찰의 근본 배경은 중국 제품의 경쟁력 향상이다. 중국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경제 패권을 쥔 미국과의 무역마찰은 앞으로도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자국 시장을 가진 미국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더라도 자국 시장만 잘 지키면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한국의 대기업 제품도 줄줄이 밀리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2년엔 10.5%까지 올랐지만 지난해엔 4.6%까지 떨어졌다. 올해 6월 시장점유율은 더 낮은 4.4%다.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부진은 단순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따른 보복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 제품의 기술력 향상과 우리 제품의 상대적 경쟁력 약화에 기인한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장핑(張平)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교수는 올해 4월 개혁개방 40주년 논문집에 수록한 ‘고속성장에서 고품질 발전으로’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고속성장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고속성장에서 고품질 발전으로 전환해야 하는 단계”라며 “반드시 경제성장의 품질과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서 산업 전 분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 포기는 세계 시장에서의 퇴출그렇다고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있나? 중국 시장의 포기는 이제 세계 시장의 포기나 다름없다. 알리바바 등 중국 IT 기업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이제 중국 시장은 세계 최고 제품들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며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세계 시장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삼성, 현대 등 국내 최고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탈(脫)중국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애플, 구글, 테슬라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모두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광둥성 경제총량, 올해 한국 추월할 수도중국 경제의 견인차는 ‘개혁개방의 심장부’인 광둥(廣東)성이다. 중국 4대 경제특구 가운데 푸젠(福建)성의 샤먼(廈門)을 제외한 선전(深),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등 3곳이 이곳에 있다.

개혁개방 이후 광둥성의 발전은 기록적이다. 1978년 185억8500만 위안(약 123억9000만 달러)이던 광둥성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해 8조9879억2300만 위안(약 1조3618억 달러)으로 늘었다. 명목 GRDP로 따지면 39년 만에 484배로 증가했다. 연간 평균 17%의 초고속 성장이다.



1990년대만 해도 광둥성의 GRDP는 한국의 10%대에 불과했다. 2000년 들어 20%대로 올라오더니 2010년대엔 50%를 넘어 지난해엔 한국의 90%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5307억 달러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 예상치는 2.9%(정부 발표 기준. 전문가 예상 2.8%)다. 광둥성의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10.45%였다. 예상 성장률 7%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대로 간다면 광둥성의 GRDP는 내년에 한국을 능히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광둥성 내부에서는 올해도 가능하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다만 환율이 변수다. 지난해 1085원대이던 달러당 환율은 8월 12일 현재 1130원까지 상승했다. 4%를 넘는 원화의 평가절하다. 중국 위안화 역시 지난해 달러당 6.75위안에서 올해 8월 12일 현재 6.86위안까지 올랐다. 1.6%의 평가절하다. 이런 상황이 연말까지 계속되거나 원화의 평가절하가 가속화한다면 올해 광둥성의 GRDP가 한국의 GDP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국 학자들은 광둥성의 GRDP가 올해까지는 한국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내년엔 1조7533억 달러로 한국의 1조6975억 달러를 3%포인트 이상 따돌리고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광둥성과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환율 변화가 거의 없을 것으로 봤을 때다.



광둥성은 ‘아시아의 4마리 용(龍)’ 가운데 1998년 1030억 달러로 싱가포르의 828억 달러를 따라잡았고, 이어 2003년엔 1914억 달러로 홍콩의 1585억 달러를 추월했다. 나아가 2007년엔 4181억 달러로 3766억 달러에 그친 대만을 제쳤다.

최근 광둥성에서는 마지막 남은 아시아의 4룡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언제 따라잡을지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광둥성의 최대 일간지인 양청(羊城)만보는 최근 광둥성의 발전연구센터 리후이우(李惠武)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광둥성의 경제가 올해 상반기 발전 속도를 유지한다면 올해 한국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 하종대 동아일보 기자·미디어연구소 부국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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