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 1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


“<세기와 더불어>를 읽지 않고 현대사를 말하지 말라통일을 말하지 말라.”

평양출판사 주체 99 (2010)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쨩즈궈즈》가 맺어준 《세기와 더불어》와의 인연

내가 처음으로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알게 된것은 2004년 문익환목사 방북 15주년 북과 남 학자들의 통일토론회차로 중국 연변에 가서 만난 북에서 온분들로부터이다.
북측대표단 단장이였던 안경호선생 등 일행들과 호텔 아침식사를 하는 식탁에 만주에서 흔히 겨울에 많이 먹는 음식이 올라있었다나는 만주에서 나서 45살때 그것을 먹고는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어서 너무 신기하였다어떤이들은 내가 그 어릴 때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겠지만 나는 다는 아니지만 몇가지 중요한 장면들은 생생히 기억하고있다그가운데 이 음식을 먹던것 그 크기며 모양이며 색갈이며 자세하게 기억하고있다그런데 무려 60여년만에 아침식탁에 올라있으니 그 이름을 알수는 없었다북에서 오신분들이 그 이름을 알것 같아서 우연히 물어보았다.
안경호선생이 《쨩즈궈즈》라고 하면서 자기도 김일성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그 이름이 나와 알게 되였다고 했다.
즉 김일성주석이 손정도목사집에 머물 때에 그 댁 따님 인실이가 사달라고 하여 사준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의 내용속에 이 음식이 등장한다는것이다북에서 온분들은 그러면서 앞으로 회고록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회고록이 어떤 력사적진실성이 있겠냐는 선입견과 그런 책을 읽는다는 거부감도 앞서 읽지를 못()했었다그러나 북에서 오신분들이 이 책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한데 대하여서는 늘 생각은 하고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미국 UCLA대학 동양학도서관 챨스 영도서관 서가에서 《세기와 더불어》 전 6권이 나란히 선반에 꽂혀있는것을 보고 바로 그 회고록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마치 나를 기다리고나 있는듯 하였다책갈피를 보니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것 같은 새책이였다. 2006년 겨울부터 20075월까지 나는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 6권과 계승본 7, 8권도 모두 읽고 색인작업까지 해놓았다.
쨩즈궈즈에 대한 어릴적추억과 그리고 안경호선생일행의 진심어린 회고록을 권하던 기억을 잊지 못해 첫권을 읽기 시작하자 그만 모든 일을 접어놓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회고록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인간이 진실을 알고싶어하는 욕구는 그 어느것으로도 막지 못하기때문이다.
회고록은 한권이 평균 500여페지 혹은 그이상 되다보니 그 량이 수천페지나 되였다우선 회고록을 읽어나갈 때에 선입견과는 달리 글이 담백하며 읽기 편하게 씌여진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과장이나 자기 선전용정도를 벗어난 글임을 차차 알게 되였다.
홍동근목사님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어떤 면에서 조국해방과 혁명투쟁과정에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증언이며 그 묘비명이다김주석은 수백명 동지들의 이름을 불러 조국광복에 바친 선구자들의 령혼을 위로한다.(홍동근, 1997, 151페지)고 말한대로 장마다절마다 제목자체가 리제순,리관린박인진과 같은 동지들의 이름들로 붙여져있다이들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영화나 소설이 력사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다 담아낼수 없듯이 회고록 역시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고난의 길을 다 적어낼수 없었을것이다.
과장이라도 다 묘사해낼수 없는것이 그들의 행적일것이다그러나 회고록은 과장이란 포장없이 글이 매우 담백하여 누구나 읽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회고록은 한갖 과거를 회고하는 차원의 글로 보면 안된다.
나는 회고록을 통하여 오늘의 북을 어떤 방법으로보다도 정확하게 읽어낼수 있다고 확신한다지금 북에서는 회고록의 독본까지 나와 주민교육용으로 리용한다고 한다마치 회고록은 이스라엘민족사인 구약성서와도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그만큼 회고록은 북을 바로 알기 위한 필독의 글이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로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본다자본주의에 찌들리고 사대주의에 찌들려 자기도 모르게 정신병환자가 된 우리에게 회고록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인간이 민족을 사랑하고 애국애족하는 길이 얼마나 신성하고 고귀한가를 일깨워줄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만인에 만인의 싸움장으로 되여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사대주의만은 절대로 못버리는 이 병을 회고록을 읽음으로써 고칠수 있을것이다.
남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고 남을 신뢰하고 사는 공동체의식이를 《사회정치적생명유기체》라고 한다시카고대학의 G. 스토크는 이를 미래에 나타날 인간형 즉 메타인간(metaman)이라고 했다.
나는 김일성주석주위의 사람들이 항일유격대활동을 통해 이런 인간상을 몸에 배도록 체득하였다고 본다이런 인간상이 오늘 북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다이런 인간상의 원형을 나는 회고록에서 읽을수 있었다.
만약 북을 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북을 알기 위해서도 회고록을 읽어야 할것이다맹목적인 《반공》은 그 결과가 부메랑으로 《용공》이 된다는 사실을 남《한》당국자들은 알아야 할것이다한마디로 말해서 오늘 북의 모든것을 알기 원한다면 회고록부터 읽어라《반공》을 위해서도 《용공》을 위해서도 읽으라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을 6권까지 쓰다 갑자기 1994 7 8일 서거한다그러나 다행히 메모용지에는 나머지 분량들을 정리해놓은것이 있었다이 나머지 분량들이 북의 학자들의 손으로 간접집필되여 《계승본》으로 7권과 8권이 나왔다.
물론 UCLA도서관에는 없다부득이 김현환박사가 소장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2007 5 LA근교 다우니에 사는 김박사댁에서 계승본 두권을 구할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나는 2007년 상반기를 회고록과 함께 만주벌과 옛 쏘련땅을 누비며 지냈다김일성항일유격대가 누비며 일제에 타격을 가하던 마을과 도시와 산과 들그곳은 내가 어릴 때 자란 곳이 아니던가?
나는 또 늦게 고 홍동근목사님께서 1997년에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라는 글을 남쪽지면에 내신것을 알게 되였다사모님 홍정자녀사를 5월말에 만나 보관하고있던 한부를 구해 읽게 되였다.
완전히 나는 2007년 겨울과 봄 그리고 초여름동안 미국땅 서부에서 김일성매니아가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를 은퇴하고 사는 마당에 누구의 말이나 글에 쉽게 부화뢰동한것이라 단정하지도 말아주기 바란다나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회고록을 읽었으며 그중 주체사상과 련관되는 부분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과정사상에 련관하여 글을 만들어보려고 이 글을 쓴다.
다시말해서 다른 책들을 읽을만큼 읽었고 《한국》에서 교수생활하다 은퇴까지 한 지식분자라면 지식분자이다이런 내가 회고록을 액면그대로 수용하고 그대로 내것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일도 만무하다나도 내가 알고 배운 지식과 회고록과 한판 그 진실성을 놓고 씨름을 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지금도 남쪽의 인터네트에 들어가보면 회고록이 조작이라는 자료가 쏟아져나온다나는 이에 대해서 용납할수 없다어떻게 어떤 방법으로든 진실을 조작하고 이를 정치수단으로 사용하는 마타도어방법을 용납할수 없다이런 방법은 모두 남북에 상처만 입히는것이며 나아가 서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것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에 쌓이는 증오와 불신은 하늘에 사무칠것이고 이것은 남북이 하나 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다.
나는 남으로부터와 남의 립장에서 이 글을 쓴다자기비판만큼 아름다운것은 없다이 말은 내가 남에서 왔기때문에 남을 앞장서 더 비판해야 한다는것이다.
이렇게 전제를 달고 나오는것은 내 글이 북을 많이 리해하려고 하고 북을 인정해주려는 의도가 짙다고 느낄수 있는분들에게 사전에 립장을 밝히기 위함때문이다.
아무튼 《세기와 더불어》를 읽지 않고 현대사를 말하지 말라아니 나아가 통일을 말하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싶다력사적진실된 보고가 아니라는 선입견이 앞서면 일단 하나의 다큐정도의 력사소설정도로 치부하고라도 필독하길 권한다.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경전을 읽을 때에 정신이 맑아지고 정화되는것을 느끼듯이 누구든지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라면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읽고나면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것이다.
지금 김일성주석의 령구가 안치돼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는 년 100만명이상이 방문하고 평양시민들은 1년에 평균 34회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북의 한 인사는 《머리가 복잡할 때에 기념궁전을 다녀가면 개운해진다.》고 했다고 한다.(조선일보 2007 7 9)
왜 그럴가왜 북주민들이 한두사람들도 아니고 그렇게 집단적으로 김일성주석에 열광하는것일가?
그 리유를 알자면 바로 회고록을 읽어보라는것이다회고록을 읽고나면 금수산기념궁전을 다녀오는것과 같이마치 종교적인 경전을 읽는 이상으로 정신의 정화와 경건함 그리고 마음의 정숙함을 갖게 되는 리유를 바로 알게 될것이다.
그것은 우상에 의한 효과때문이 아니고 바로 한 고난받는 인간의 모습에서 즉 우로부터가 아니고 아래로부터 오는 풀뿌리의 향기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될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남에서 아무리 《반공》교육을 하고 《보안법》을 철통같이 만들어 각을 세우더라도 《반공》교육은 허사일것이다그것은 과거 반세기가 증명하고있지 않는가김일성주석의 진면목을 알면 알수록 속았다는 생각만 갖게 한다면 남《한》의 《반공》교육은 실패한것이다.
알것을 알게 하고 읽을것은 읽게 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북을 판단하게 하라.
나는 그리스도교인으로 이스라엘민족사인 구약을 여러번 읽었다나는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읽을 때에 이것이 우리 민족 출애급기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그 리유는 다른 나라와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 력사가 가장 어려울 때 모세나 여호수아같이 민중들과 사선을 넘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우리의 기록바로 그것이 회고록이기때문이다.
나는 장준하의 《돌베개》를 읽었을 때 그리고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에도 똑같은 칸트가 말하는 숭고미같은것을 마음속에 느낄수 있었다남쪽의 친일행위를 한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의 원죄를 속죄하기는커녕 국민들이 북과 김일성주석의 진실을 알가보아 전전긍긍하고있다이들의 협박과 위협을 용납하는 한 우리에게는 정말 희망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거창한 리념적상황을 떠나서 회고록에 관심을 갖는 리유는 우에서도 말한대로 민중과 민족을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한 한 인간과 그 주변 민중투사들의 절절한 령혼을 회고록속에서 어떻게 담아내였는가를 한번 보라는것이다.
남을 죽이고라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와 항상 남이 나대신 해줄것이라 의지하며 살아온 사대주의근성에 지금 우리 령혼은 자기도 모르게 병들어있다우리는 정치교육문화 모든 령역에서 천민자본주의와 사대주의근성에 찌들고 병들어 있다이 두가지 병을 치료함이 없이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수 없을것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수도 없을것이다.
나는 적어도 회고록을 읽고 완전히는 몰라도 건강한 내 모습을 다시 찾을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신과 령혼의 치유를 위한 길잡이역할을 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려 하는바이다.




간삼봉에 울려퍼진 《아리랑》 그리고 《아리랑》공연

영화 《디-워》(룡의 전쟁)의 마지막장면은 아리랑으로 끝난다미국에서 관람객에 따라서는 상영이 끝나자 일제히 서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이 장면을 본 나는 영화도 영화지만 아리랑이란 노래때문이라고 생각해보았다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도 라운규의 《아리랑》이다혁명가 김산의 생애를 그린 책의 이름도 《아리랑》(Song of Arirang)이다그리고 지금 북에서 공연하고있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세상의 많은 노래가운데 슬플 때도 기쁠 때도남자도 녀자도 그리고 로인도 어린아이도 함께 부를수 있는것은 아리랑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나라를 잃고 망국의 한을 안고 조국을 떠날 때도 아리랑을 불렀고 해방이 되여 환희에 젖어 귀국선을 타고 돌아올 때에도 아리랑을 불렀다.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황해도아리랑 등 팔도강산 어디에도 아리랑가락이 있다서편제로도 부를수 있고 동편제로도 부를수 있는 곡심지어는 리념의 장벽을 넘어 남북이 함께 부를수 있는 이 아리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공연은 노래곡 《아리랑》으로 시작한다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부녀대 혹은 가장이 홀로 조국산천 뒤에 두고 두만강압록강을 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물론 애환에 젖은 아리랑이다그러나 공연의 마지막부분은 경쾌하고 환희에 넘치는 아리랑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 민족을 《아리랑민족》이라 하면서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지만 우리는 반만년력사속에 함께 살아온 문화민족항상 새것을 창조하며 살아온 아리랑민족이다그러나 강도 일제는 우리를 노예로 삼았고 외세는 우리를 갈라놓고말았다어찌 슬프지 않는가.》라고 비탄에 젖은 멘트가 나오면서 아리랑공연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랑공연을 두고 《조선일보》(2007 9 28)는 아리랑공연의 유래를 이전 쏘련에서 모방해온것이라고 하며 비방하였다.
아리랑공연을 어떻게 보는가는 각자의 자유에 맡기고 지금으로부터 만 70년전 1937 6월에 간삼봉마루에 울려퍼졌던 아리랑으로 돌아가 아리랑공연을 생각해본다.
1937 6 4일 보천보전투는 실로 김일성항일유격대의 활동에서 기념비적인것이였다그러나 보천보전투만을 전부라고 해선 안된다.
김일성주석은 《비유해 말하면 간삼봉전투와 구시산전투는 보천보전투의 메아리라고 볼수 있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 222페지)라고 회고하고있다.
간삼봉전투는 무적황군 일본군의 신화를 완전히 깨뜨려버리고 백두산지구에 진출한 항일유격대의 혁명활동의 전성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중요한 전투였다.
바로 이 전투에서 김일성주석은 일본의 《야마도정신》과 우리 민족의 《아리랑의 얼》을 대비시키고있다.
다시말하여 《… 부정의를 정의로 알고 악을 선으로 착각하는 천치들총구앞에 부나비처럼 뛰여들어 보람없는 개죽음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무사도라고 자부하는 청맹과니들타민족의 시체더미우에서 축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야수들자기가 죽으면 천조대신의 혼이 자기를 굽어살피고 천황이 자기 명복을 빌며 일본국민이 자기를 영원히 기억할것이라고 망상하는 정신불구자들》(6218페지)의 정신이것이 《야마도정신》이다.
일본군벌과 대신들은 《야마도정신》으로 죽은 장병들을 잠간 피였다 지는 《사꾸라꽃》에 비긴다그리고 이것이 《황군의 정신》이라고 미쳐날뛰면서 적들은 간삼봉마루에 개미떼같이 기여오른다.
보천보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적들은 이것을 설욕하려 조선주둔군에서 최정예라고 하는 함흥 74련대를 이 전투에 동원하였다.
간삼봉은 13도구와 8도구에 이르는 1백여리 대지우의 서강고원 북쪽에 솟아있는 세개의 봉우리이다. 1937 6 30일 안개가 자욱한 간삼봉마루로는 2 000여명의 적들이 기여오른다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적아간에 하루종일 전투가 진행되는 가운데 육박전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때에 산마루중턱에서 난데없이 《아리랑》노래가 울려퍼지지 않는가젊은 녀성유격대원들이 이 와중에 아리랑을 합창하고있는것이다. 1절은 우리가 다 아는 가사에다 3절에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로 이어진다.
간삼봉너머엔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있고 그우로 백두산이 흰구름우에 떠있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아리랑이 울려퍼지자 최정예를 자랑하던 74련대는 어떻게 표현할수 없을 지경으로 허물허물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은 스스로 투항해 기여들기 시작하였다간삼봉전투에서 생긴 《가보쨔》란 용어 하나가 황도일군의 참패를 그대로 말해주고있다《호박》이란 뜻이다죽은 일군의 시체를 가마니에 넣어 실어나르는데 마을농민들이 달구지에 싣고가는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일본장교가 하는 말이 《가보쨔》라고 대답했다는것이다.
농민들은 이를 놀리기 위해 《금년엔 호박풍년이라서 좋겠수다.》라고 했다고 한다간삼봉전투이후 일본놈들을 두고 《호박대가리》라는 은어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김일성주석은 《야마도정신》에 《아리랑얼》을 대치시키면서 《녀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른 <아리랑>이 전대오에 퍼지였다격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것은 강자들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간삼봉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종심을 비쳐보이고 락천주의를 시위하였다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것은 그닥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것이다.(6 218페지)라고 하였다.
잡힌 포로들이 이 노래를 듣고 느낀 감상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부상자들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는것이였다적들은 겨우 200여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도망치고말았다.
이는 마치 일본사람들이 《겨울련가》를 보고 지금 그 이상한 매력에 빠져드는것과 같다남녀로소를 막론하고 《욘사마》는 하나의 정신적치료역할을 한다고 북규슈대학 김봉진교수는 연구발표하였다인간의 마음은 희로애락의 요구가 조화된 존재이다이런 조화에 균렬이 생겼을 때에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일본은 명치유신이후 너무나 서구의 균렬된 자아에 매몰되여있다일본이 우리 민족의 얼에 빠지는 리유는 아리랑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 곡에 인간의 온갖 감정이 다 아우러져있기때문이다.
막상 북의 아리랑공연을 보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총검술같은것만 있는것이 아니다아니 그것은 극히 한 부분이다공연내용속에는 농사의 종자혁명나아가 환경생태보존적인 친환경적인것도 있다.
김일성주석은 류달리 간삼봉전투를 정신 대 정신의 싸움으로 규정하고있다즉 야마도와 아리랑의 싸움말이다.
그런데 독자들이여 놀라지 말라이 전투에 최악질적으로 기여오른 인물이 다름아닌 조선사람 김석원(18931978)임을아니 가네야마(金山錫源)임을생존년대를 보면 85살까지 그는 최근까지 산 인물이다그는 해방후 수도사단장과 3사단장까지 지냈으며 지금의 성남중고등학교 설립자로서 얼마전까지 그의 동상이 뻐젓이 교정에 서있었다이 사람에 대하여서는 따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석원에 대하여 회고록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간삼봉에서의 패전은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씻을수 없는 치욕으로 되였고 김석원이라는 이름은 그 치욕의 대명사로 되였다.(6 222페지)
해방후 38°선에서 숙적 김석원과 다시 조우한다.
당시 북의 최현항일투사가 김석원을 복수하고말겠다고 할 때에 김일성주석은 이를 강력하게 만류했으며 《지금은 최현도 김석원도 이 세상에 없다. … 나는 북과 남의 모든 새 세대들이 민족의 피줄을 두토막으로 동강낸 인위적인 그 장벽을 하루속히 제거해버리고 자주적인 통일조국에서 화목하게 살기를 바란다김석원도 말년에는 이런 념원을 품고있었을것이다.(6 223페지)라고 용서의 념을 회고록에서 애틋하게 담고있다나는 이 말을 진실한것으로 믿고싶다.
회고록은 북주민들의 바이블과 같은것이다그렇다면 북녘동포들도 김주석의 이 말을 유언으로 삼아 원쑤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것이다이것이 오늘도 평양에서 아리랑을 공연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가만약에 이런 김주석의 큰 마음을 리해하지 못하고 공연의 지엽적인것을 헐뜯거나 체제선전용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간삼봉마루에서 울려퍼진 아리랑의 의미를 무색케 하고말것이다이는 참으로 이 땅에 살아갈 새 세대들에겐 불행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을것이다.
《아리랑》공연을 엄연한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생각하기를 바란다우리는 6. 25전쟁과 일제식민지통치 40여년 같은 엄청난 력사적소재를 가지고있다아마도 《보안법》같은것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문인들은 지금쯤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을것이다나는 남북 우리 나라 문인들의 천재적인 재능을 믿어의심치 않는다그러나 《보안법》은 이 모든것을 가로막고있다이젠 이런 법은 페기처분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에 바란다미래는 문화의 시대이다제발 소아병적자대로 문화콘텐츠를 란도질하지 말기 바란다소설은 소설일뿐이고 공연은 공연일뿐이다가상세계를 현실세계와 구별하지 못하는것을 《마술적(magical)》이라고 한다쟝글의 토인들이나 할법 한 이런 혼동을 지금 《대한민국》 보수정객들과 《사법부》가 자행하고있다세계가 웃을노릇이다이 지구상 인류의 병들은 정신을 치료할 《아리랑》 그리고 그것을 담지하고있는 아리랑민족저 태고적 대흥안령산맥을 넘으면서 불렀다고 하는 이 아리랑이 있는 한 우리는 아리랑의 민족혼으로 통일을 이루어내고말것이다.




1933년 대황구사건과 2007년 정상회담의 대차대조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보여준 말과 행동은 마치 전위 무용가 머시 커닝햄이나 전위 음악가 케이지가 무대우에서 연기를 보여주는것을 방불케 하였다커닝햄은 사전에 아무런 안무도 없이 아니안무를 했다고 하더라도 무대우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안무를 해나간다그리고 춤을 추다가도 흥이 나지 않으면 그만두기도 한다케이지 역시 피아노앞에서 즉흥작곡을 하고 어떤 때는 피아노뚜껑을 덮고는 무대뒤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비정상도 아니며 차라리 그럴만한 력사적맥락마저 있다는것을 알게 될것이다북을 방문하면 거리에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를 자주 접하게 될것이다이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은 다름아닌 동녕현성전투이후에 얻은 뼈저린 교훈때문이다.
북은 언제나 현재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바로 1930년대 김일성항일유격대시기와 일 대 일 대응을 시킨다다시말해서 1930년부터 1945년까지는 력사의 모형이라는 사실이다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때를 이데아로 한혹은 모형으로 한 련상작용을 해나가는것이 북의 현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그래서 이 원형적모형즉 이데아를 알지 못하면 북을 바로 리해하지 못하고만다는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로《대통령》에게 한 말의 모형은 1933 9 6일 밤부터9 7일 낮까지 있었던 동녕현성전투이후 대황구에서 있었던 13인 병사 유격대원들이 희생된 사건이다그것을 알지 못하면 북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할것이다.다시말해서 대황구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와는 다르다는것을 알게 해준다는것이며 이번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대통령》이 결심하면 모든것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맥락이 바로 이 사건에 련관이 되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동녕현성전투는 엄청난 수적렬세에도 불구하고 난공불락의 이 성을 공격하여 수백명의 적을 섬멸했다는것 이외에 이 전투를 치른 이후 그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구국군을 유격대편으로 돌려세웠다는 큰 의의가 있는 전투였다.
크게 부상당한 구국군 사충항려단장을 김일성부대가 구해주어 전투이후 두 부대사이의 우의가 한결 두터워졌으며 이 전투를 통해 두 부대사이에 항일공동전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호사다마》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동녕현성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왕청에 돌아와 쉬고있을 때에 훈춘현 대황구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 13명이 일본《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3명가운데는 김일성사령관이 그렇게도 아끼던 오빈이 들어있었다오빈을 잃은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는 여기서 글로 다 전달할수 없을 정도이다회고록을 읽지 않고는 그 표현을 다 전할수 없다.
그날은 추석 다음다음날이였다외딴집에서 그날 보초를 세우고 쉬고있는데 일본《토벌대》가 이 외딴집을 포위하고 불의의 습격을 하여 방안의 유격대원 13명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것이다우리는 이 사건과 이번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일 대 일 대응시키지 않을수 없다말의 배경과 진의를 전달하고 조선《민주주의》의 모형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이 다급하고 아찔한 정황에서는 적의 약한 고리를 치고 일단 포위망을 뚫고 재빨리 방안을 빠져나오는것이 상책이였을것이라고 김일성주석은 이때를 회고하고있다.
《그러자면 지휘관이 정황을 똑똑히 포착하고 제때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3 210페지)
이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대통령》이 결단하면이란 표현과 정확하게 일 대 일 대응이 된다.
그러나 대황구 외딴집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방안에는 백일평 같은 유능한 군사지휘관도 있었고 우에서 말한 오빈도 있었다오빈은 룡정 동흥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산포대를 점령할 때에는 작탄을 안고 돌격로를 헤쳐나간 위기탈출의 경험이 있는 명장이였다이런 그가 죽었다는것은 《… 청천벽력같은 충격을 주었다.(3 214페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그런데 던져지는 질문은 《그럼 왜 그들이 방안에서 고스란히 앉아죽을수밖에 없었느냐?》이다.바로 그 사연이 기가 막히다는것이다바로 여기서 《극단적군사민주주의》가 그 원인이였다는것이다김일성사령관의 활동은 이런 극단적군사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적들이 집을 완전포위하고 일제사격을 가하며 옥조여오는 마당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반드시 회의에서 토의되여야 하며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집체적으로 결정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 군대의 지휘와 관리에서 그 누구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되여 지휘관들의 손발을 꼼짝달싹할수 없게 비끄러매놓았다지휘관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것은 무능의탓이 아니라 극단적군사민주주의의 중압으로부터 온 기능마비의 병페였다.(3 210페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싸울것인가 말것인가포위망을 뚫을것인가 말것인가.
마치 햄리트의 고민을 방불케 하는 토의를 진행하면서 《… 일부 대원들이 공론만 하다가는 다 망할수 있으니 일단 싸움부터 시작해놓고보자고 제기하였으나 극단적군사민주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회의결정도 없이 어떻게 전투를 하는가 하면서 그 제의를 일축해버리였다.(3 210211페지)고 회고록은 쓰고있다.
 마치 《대선》을 코앞에 두고 신당 대선주자들과 당지휘부가 경선방법을 놓고 벌리는 작태와 비슷해보인다다수결원칙에 의한 서구식민주주의의 종말이 지금 《한국》뿐만아니라 전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있다미국의 경우 일반투표에서는 지고도 부쉬가 대통령이 되는 이런 모순이 바로 극단적민주주의의 한계인것이다이것을 두고 장 마리게노는 《민주주의의 종말》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시체더미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빈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나는 지금 동무에게 명령할 권한이 없소그러나 당원으로서 부탁하는것이니 하면서 처절한 부탁을 남긴다그 내용을 회고록에서 읽기 바란다오빈은 당시 좌경바람에 지휘관의 자격을 모두 박탈당하고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할 때이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의 최대희생자의 이름으로 그는 기록될것이다.
극단적군사민주주의자들의 다수결의 결정방법을 여기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가령 ㄱ라는 도시를 친다고 할 때에 1. 당소조회의를 연다여기서는 도시이름은 비밀에 붙이고 그 도시의 지도를 놓고 그 도시를 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를 토론한다. 2. 다음은 지부총회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같은 방법으로 토론을 반복한 다음 거수가결로 결정한다. 3. 다음은 전대회의에서는 앞서 진행한 소조회의와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같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비당원군인들도 토의에 참가할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의제를 던져놓고는 여럿이 모여앉아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하여 《… 하자 하지 말자된다 안된다이길수 있다 없다는 식으로 끝없는 론쟁이 펼쳐지군 하였다군사민주주의의 덕으로 모두가 평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개개명창이 되여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론쟁은 무한정 시간을 끌었다.(3 216페지)라고 회고하고있다.
이를 재미있는 속담을 들어 《소뿔도 각각 념주도 몫몫》이라고 한다자칫 생각하면 가장 리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신당에서 지금 20만명을 상대로 휴대전화여론을 펴겠다는듯이 말이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의 부정과 객체의 해체에서 출발한다그런 점에서 철학에서는 오래동안 고대그리스철학에서부터 론쟁이 되여오던 《거짓말쟁이역설》이 《러셀역설》로 둔갑되여 19세기말부터 수학에 나타난다《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면 참말이다.》와 같이 결국 《참말이면 거짓말거짓말이면 참말》이 성립하게 되였다그리고 수학자 괴델은 증명의 문제에 있어서 《이다도 증명이 가능하고 아니다도 증명이 가능하다.》를 1932년 증명하여 이를 《괴델증명》이라고 한다.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해부터 시작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다 아니다된다 안된다.》는 모두 《결정불가(undecidability)》일뿐이다객관적진리의 부정 그리고 객체의 해체와 함께 《주체(subject)》의 문제가 등장한다.
북의 주체사상이 등장하는 맥락도 결코 여기서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배경과 과히 멀지 않다.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철저한 군사민주주의에 의하여 내려진 결론이라 하더라도 《그러는 사이에 적정에는 변화가 생기고 각급 회의들에서 모처럼 토의결정된 작전방안은 무용지물이 되군 하였다.설사 그 방안대로 싸움을 하는 경우에도 혁명군은 정황조건의 변화때문에 막대한 희생을 당해야 했다.(3 216페지)고 회고하였다.
최근에는 건축에 있어서도 청사진을 먼저 만들어놓은 다음에 집을 짓는것이 아니고 집을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청사진도 만들어져간다고 한다지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는 지도를 만들어가면서 려행을 해야 할것이다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방법을 《과정적(process)》이라 하며 이러한 경영기법을 《과정경영》이라고도 한다기성품과 같은 객관적진리는 없으며 주체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과정이 결국 객체를 형성한다이런 점에서 주체사상은 항일유격대의 투쟁방법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본다.
김일성주석은 대황구사건에서 아까운 동지들을 잃은 충격이 보통이 아닌것 같았다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에 대하여 전률에 가까운 감정으로 역겹게 대하였으며 혐오감과 경계심을 가지고 그것을 반대한것은 그것이 유격활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백해무익했기때문이라고 술회하고있다아마도 이것은 지금 북이 서구사회의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혐오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일수도 있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하루 더 묵어가라고 할 때에 로《대통령》이 《경호책임자와 의전책임자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것이다《대통령》이 결정하면 될 일을 심지어는 의전과 경호책임자에게까지 물어보느냐 하는 의아심의 발로일것이다이것은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나의 추측이지만 타당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본다.
그러면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를 이렇게 혐오하고 경계하는 북에서 최고지휘자의 위치와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것인가전원참가에 의한 토론과 다수결원칙을 극단주의라고 배척할 때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느냐이다그것이 바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이다이 구호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지 않다여기서 문제시되는것은 《당》이라는것이 무엇이며 어떤 존재이냐 하는 질문일것이다그리고 당은 어떻게 결정하느냐이고 당원은 누구이냐 하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수 없다당의 의사결정에 대중이 참여할수 있는 공간은 있느냐 하는것이다.
회고록 첫권의 서두는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 진리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로 장식하고있다.
그러면 인민대중의 직접적인 참여에 의한 의사결정 즉 극단적민주주의와 이 좌우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것인가?
극단적인 민주주의자인 프랑스의 소부르죠아사상가 프루동으로부터 로씨야의 바꾸닌이나 크로뽀뜨낀 등은 진실로 인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새 제도새 생활을 꾸릴수 없게 하는 백해무익한 조류의 사상가들로서 엄정한 력사의 판정을 받은 퇴물이라고 혹평을 한다이러한 극단적인 민주주의는 무제한한 자유에 대한 환상을 조성시키고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대공업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소부르죠아적농민적사상근성이 지배적인 지역과 나라들에선 일정한 정도 파급을 보게 되였다고 한다.
즉 무정부주의가 일정한 몫이라도 차지하게 된 리유가 있는것이 사실이다그래서 극단적민주주의가 갖는 이러한 효과도 있기때문에 무정부주의를 끌어들인 례도 있다는것이다쏘베트정권이 공민전쟁시기 우크라이나의 무정부주의집단인 마흐노일당과의 합작을 실현했던것이 그 례이다이러한 례들때문에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가 항일유격활동초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것이다.
극단적인 군사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는것이다민주주의라는 이름밑에 무절제,무질서가 조장되여 사회적혼란과 방종을 야기시키고말았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리치를 념두에 둘 때 우리는 극단적부르죠아민주주의와 무정부주의사이에는 사상적공통성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수 없다.(3 225페지《항일전쟁초시기 극단적군사민주주의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해방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인민군대를 불패의 대오로 강화할수도 없었을것이며(3 228229페지)라고 회고록에서 술회하고있다선군정치의 기틀을 리해할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면 지휘관과 인민대중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이에 대하여서는 모든 문제를 일단 당조직에서 토의하는것을 절대적원칙으로 삼고있으나 대중의 창발적인 의견이 당조직을 통하여 군사작전수립에 반영되는것을 환영한다그러나 그런 집체성이 지휘관의 권한을 침해하는것은 용인하지 않는다항일유격대의 복무조례는 군인집단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다음 지휘관들이 먼저 그 복무조례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요구한다는것이다이것이 관병일치를 생명으로 하는 항일유격대의 복무조례이고 생각키로는 오늘 북의 선군정치에도 그대로 유효한것이라고 본다.
《관병일치》란 군대에서 전사는 지휘관을 위해 방패가 되고 지휘관은 전사들을 위한 육탄이 되는것이다이런 고결한 동지애와 사상의지만이 만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할수 있고 한걸음으로 걸으며 한숨결로 호흡하는 그러한 강철같은 통일체를 꾸릴수 있다는것이다지휘관과 병사를 방패와 육탄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서로 방패가 되고 육탄이 되여 하나가 여럿을 위하고 여럿이 하나를 위하는 정신이것이 지금 북의 헌법 63조의 정신으로 나타난것이다.
아리랑공연을 볼 때에 일부 남쪽사람들은 집단주의의 기계화된 인간의 표현으로 본다그러나 그렇지 않다서양사상의 고질적인 전체우에 하나가 군림하는 《one over many》가 아닌 하나와 여럿이 상호 융화된것이 바로 북을 지탱하는 정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것이다《상하일치군민일치》《자력갱생간고분투》의 정신은 핵보다도 강하고 어떤 강대국도 당해낼수 있는 힘이라고 북은 믿고있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 수정주의가 우리의 체내에 침습하는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고있다우리는 우리 당이 극단적민주주의로 하여 구락부화되고 장마당화되는것을 바라지 않는다극단적군사민주주의로 하여 강요되였던 항일전쟁당시의 진통과 동구라파의 교훈이 그렇게 하라고 부르짖고있다.(3 229페지)라고 지적하고있다.
 로무현《대통령》이 《개혁개방》을 말했을 때에 북이 발끈한 리유도 이제야 알것 같지 않은가회고록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이런 정신으로 선군정치를 하는 북을 향해 《개혁개방》을 말하는것은 너희들이나 가서 퇴물이 된 서구식민주주의나 제대로 하라는 메아리가 되여 되돌아오는것과 같다.
지금은 서거한 김일성주석이 남긴 회고록의 의미를 새기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할수밖에 없다지금도 먄마에선 민주화시위가 계속되고있고 이 글을 쓰는 오늘 홍콩에선 840명만 투표할수 있는 권한을 대중의 직접투표로 돌려달라고 시위를 하고있다그리고 남쪽의 신당의 경선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아는것을 알지 못한》 밀정 최용빈

인류력사상 지구촌 최초의 제국이 된 미국이러한 미국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남북 그리고 미일 4자간에는 이상한 고양이-쥐 력학관계가 있다고 한다미국-일본미국-《한국》북-미국이 서로간의 고양이-쥐관계라는것이다.
코대높은 나라 미국이 유일하게 사과하고 무릎꿇는 대상이 바로 북이다《푸에블로》호사건때 죤슨대통령이 북에 사과하고 승무원들이 무릎꿇는 모습들을 보았을것이다판문점 미루나무사건때도 경우는 마찬가지이다이것은 국제정치상식으로 리해 못할 일이다.
북이 강대국의 코를 끌고다니고 지금도 건재할수 있는 비결을 나는 지도자의 지도력때문이라고 본다.
그 한 단면을 왕청지구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옛 동지였던 최용빈이 변절자가 되여 앞에 나타났을 때에 그의 위장전술(오그랑수)을 간파한데서 엿볼수 있다고 본다《오그랑수》란 《꼼수》 혹은 《속셈》을 두고 하는 말이다정보화시대는 과거 소박하던 때와는 다른 가상공간속에 정보가 류통되고있다소위 《신종범죄》라는것이 모두 이런 정보화때문에 생긴것이다그래서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는 《속셈학(subliminal)》이 등장할 정도이다.
우리는 지금 아직 너무나도 농경사회 혹은 굴뚝산업화시대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정보화시대에 림하고있다그러다가 당한것이 바로 IMF이다정보화사회의 특징은 메타화이다눈에 대해 《눈치》말에 대해 《말귀》를 구별할줄을 알아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말은 《살린다》인데 말귀는 《죽인다》이다마치 호랑이가 어머니한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 때에 말은 《안 잡아먹는다》 이지만 말귀는 《잡아먹는다》이다해님이달님이 오누이가운데 동생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누나는 알아들었다이 설화는 우리 민족이 강대국틈속에 살아남자면 《아는것(known)》만으론 안되고 《아는것을 알아야 함(known known)》이라는 교훈을 주고있는것이다.
왕청지구 유격대중대장 최용빈의 사례를 통해 《아는것을 알지 못한》 사례를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자최용빈은 힘이 장사이고 한다하는 싸움군이였다그러나 그는 얼마후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자 처자식을 버리고 일본의 적통치지구로 내려가버린다.
최용빈은 그후 5년이 지나 김일성사령관유격대를 다시 찾아온다그는 사령부천막에 들어서자마자 곤두박질을 치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최용빈은 유격대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산중에서 고생하던 얘기를 묻지도 않는데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그런데 이제부터 그의 언행에서는 그가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것》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드디여 그가 밀정이라는 정체가 밝혀진다.
김일성사령관이 식사를 했는가고 묻자 그는 요 아래에서 밥을 끓여먹고 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산중에서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보여주려는듯 배낭속에서 쌀자루말린 가재미술을 꺼내놓는다.
그런데 유격대를 찾느라고 산중을 오래 헤맸다는 사람의 쟁개비가 그을음 하나 묻지 않고 새것대로 있으니 이상한 일이였다. 최용빈은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을 알고있지 못하였던것이다.
회고록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최용빈은 내가 자기를 어떻게 본다는것도 모르고 고뿌에 술을 가득 붓고나서 다시 만난 기념으로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청을 거절하자 그는 갑자기 술고뿌를 쥔 손을 덜덜 떨었습니다내 목소리가 노기에 차있었으니까 아마 자기 정체가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8 64페지)
우리는 종종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사례를 발견하군 한다자기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있는데 자기자신만은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어른들이 눈치채지 못할것이라 생각한다이를 《오그랑수》라 한다.
최용빈은 《토벌대》 3개 부대로 유격대가 있는 골안을 포위해놓고 이렇게 나타나 오그랑수를 쓰다 정체가 들통이 난것이다.
이러한 포위망속에서 오그랑수의 속셈을 간파해야 아니그것을 꿰뚫어볼수 있는 안목을 가진 지도자만이 자신과 자신이 이끌어가는 대중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그래야 살아남는다는것이다.
만약 김일성사령관이 최용빈의 수에 속아넘어갔다면 그 순간 일이 나고말았을것이다《토벌대》3개 부대라면 유격대의 수에 비교해 적지 않은 수였다용기만으로 안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용장보다 지장이 더 중요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리순신장군이 전쟁에서 불패의 신화를 남긴 리유도 다름아닌 일본의 오그랑수를 먼저 간파하고 더 높은 수로 대처한 때문이라 할수 있다그러나 원균은 일본의 오그랑수에 빠져 넘어가 칠천량전투에서 수천명의 군사를 몰살시키고 자기도 죽고말았다리순신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균은 대군을 이끌고 일본이 파놓은 함정속에 스스로 기여들어가고말았다.
중국 통화성일대와 랑림산맥의 호랑이라 불리던 량세봉사령도 밀정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눈치를 채지 못해 죽었다. 1934년경 일경은 배신자 왕가를 량사령에게 보내여 《중국항일군이 독립군을 원조하기 위하여 사령을 만나려고 한다.》고 회유하였다.
이때에 량사령은 왕가 말의 말귀와 눈치를 신속히 파악했어야 했다지푸래기라도 잡고싶던 다급한 상황에서 중국항일군이 원조를 약속한다는 말에 그만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고 왕가를 따라 항일군이 기다리고있다는 대립자로 향하였다결국 량세봉사령은 로상에서 일제에게 살해되고말았다.
그렇게도 《반공》을 하던 량사령도 마지막 죽을 때에 《나는 죽어서 항일을 할수 없지만 너희들은 살아서 김일성사령을 찾아가라살길은 그 길밖에 없다!》는 유언을 남겼다드디여 4년후 량사령의 마지막부대는 김일성유격부대와 합류를 한다.
량세봉사령이 비록 《반공》을 하였지만 김일성주석은 그를 렬사릉에 안치하였고 그의 자녀들은 지금 북에서 건재하다. 1948년 김구선생이 평양에서 량사령의 자녀들을 만나고는 놀랐다고 한다반공주의자의 자녀를 돌보아주는 김일성주석을 다시 보게 된것이다.
중국항일운동의 거봉이라 할수 있는 양정우도 밀정 정빈의 배신과 그의 고발로 죽고말았다. 1938년 일본은 항일유격대를 힘으로는 이길수 없다는 판단아래 《은사의 대조》란 말을 만들어 항복귀순자들을 처형하지 않고 후히 대접한다고 공포한다그래서 국내에서도 이 무렵에 많은 비겁분자신심이 허약한자들이 귀순하여 밀정으로 활동하였다.
양정우는 자기의 오른팔 정빈이 안내하여온 일본군의 손에 죽고말았다그가 죽을 당시에 그의 곁에는 조선인유격대원이 끝까지 그를 호위하였다당시 그의 나이 35배신자 정빈도 결국 배신에 의해 비참하게 죽고만다.
해방후 김구선생도 밀정 안두희의 손에 죽었다안두희가 찾아왔을 때에 김구선생은 처음부터 그의 언행을 수상하게 여겼어야 할것이다그의 눈치를 살피고 말귀를 알아들었어야 할것이다실로 눈치와 말귀는 핵폭탄보다 큰 힘을 갖는다남을 믿는 덕 하나만으로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수 없을것이다.
항일유격대가 지참해야 될 4대필수품은 식량성냥신발소금이라고 한다이 사실을 안 일본《토벌대》는 소금단속에 나서고 소금이 유격대안으로 반출되는것을 적극 차단하고 모략을 꾸민다.소금에 독을 넣으면 온 부대가 몰살한다는 사실을 안 적들이 소금을 리용 안할리가 없다. 1936년 유격대가 장백지구에 들어와 첫 싸움을 한 뒤 마순구란 곳에서 추석준비를 하고있을 때에 적들은 독소금을 유격대안으로 들여보냈다그러나 무명의 한 로인이 이 사실을 알려주어 위기를 모면했다.
1939년 봄에도 소금이 바닥이 났다유격대원 김봉록이 마을에 내려가 아버지를 만나 사정을 말하니 아버지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세 다리나 건너 겨우 소금을 구해가지고왔다그런데 이 세번째로인의 아들이 밀정이였다그 과정에서 이를 안 일본경찰이 소금에 독을 넣은것이다그러나 김정숙녀사가 비상용으로 늘 가지고다니던 식초를 소금에 넣으니 소금의 독이 금방 반응을 보였다.
김정숙녀사가 김일성사령관과 그 부하들을 위기에서 구원한 사실들가운데 하나이다.(7 209페지)실로 뛰여난 지혜를 가지지 않고는 살아남기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였다.
조조와 류비가 술좌석에서 《영웅론》을 전개한다조조의 3대영웅론은 걸작이다《가슴에는 큰뜻을 품고 옷섶에는 우주의 기틀을 숨기고 배에는 꾀를 가진자》라고이 말을 들은 류비가 술잔을 떨어뜨리고말았다자기의 정체를 알아본 적장이 두려웠기때문이다류비는 덕장이지 지장은 아니였다결국 중원을 통일한것은 꾀많은 조조였다영웅의 3가지 조건가운데 《꾀》란 바로 말귀를 알아듣고 눈치를 파악하는 힘이다그런데 덕이 없는 꾀란 잔꾀가 되고 이를 오그랑수라 한다꾀가 없는 덕은 썩은 고목이다.
정체가 드러난 최용빈은 이제 김일성사령관을 회유설득하기 시작한다그의 회유의 내용은 이렇다만주천지는 일본군대가 쫙 깔려있다김장군은 할만큼 다했다당장 귀순한다 해도 허물을 묻지 않을것이다지금 당장 산에서 내려오면 길림성 성장자리를 주겠다고 하더라고 최용빈은 주어섬기였다.
이를 두고 김일성주석은 《사람이 자기만을 생각하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8 65페지)라고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높은 의식수준이 결코 하늘로부터 주어진것도 아니고 타고난것도 아니라고 한다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속에서 나온다고 했다인민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함은 없다는것이 김일성주석의기본인민관이고 철학이였다철두철미 인민대중속에군중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것이다.
사대주의와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자들만이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속임수에 그대로 속아넘어갔다인민이 현명한 리유는 지능지수가 높아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다다만 그들이 가진것이 없는 사심없는 마음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마음을 애국애족애민이라 한다인민들이야말로 눈에 비늘이 가리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자들이다그래서 그들은 자기 눈을 자기가 볼줄 안다이것만이 답이다.
해방이 되자 이미 대중들은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고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하라.》 했건만 사대와 매국에 물젖은자들은 사대예속적의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주권을 송두리채 미국의 손에 넘겨주고말았다《자주(自主)》가 생명같이 중요한 리유는 다름아닌 사대주의야말로 의식의 수준을 한없이 떨어뜨려버리기때문이다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기만 하면 생존할수 있으니이를 심리학에서 《부모-아이(parentchild)게임》이라 한다자신의 독자적인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것과 같다.
지금 남쪽의 당국자와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이 정도이다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자기 리익만을 노리고있는 마당에 자기의 운명을 이들의 손에 내맡기고있으니 이만큼 위험한것은 없다하루속히 우리의 자주권을 회복하고 사대주의를 청산해야 할것이 급선무가운데 급선무이다회고록속을 면면히 흐르는 주제는 《인민과 함께》이다인민대중과 함께 할 때에 그속에서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가 나왔다는것이다우리는 항일유격대의 김일성사령관과 그의 동지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미일의 오그랑수에 결코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할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본 《핵페기 먼저》라는 오유

촘스키교수와 슬레에보철학자 지젝 등이 한결같이 주장하는바는 만약에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가 있었더라면 부쉬가 절대로 이라크를 침공하지는 못하였을것이라는것이다그리고 이라크침공전에 이라크에 그런것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먼저 안것은아니 정확하게 안것은 부쉬와 체이니와 펜타곤 즉 국방성이였다는 점이다그러나 부쉬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대국민 아니전세계를 상대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조사결과이 두가지 무기는 이라크에는 없었다전혀 없었다이라크는 점령당했고 후쎄인은 죽었고 무고한 민간인이 수십만이나 죽었으며 미군병사들도 전사자가 수천명에 이르고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앞뒤 안맞는 말을 하는것은 심리학자 프로이드의 풍자가 일품이 아닌가 한다즉 《빌려온 항아리》라는 풍자말이다지젝은 부쉬와 그의 푸들 블래어가 이라크침공을 앞두고 늘어놓은 앞뒤 안맞는 언행을 《이라크빌려온 항아리(The Iraqi Borrowed)》에서 잘 고발하고있다우리 말로도 번역된 이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도 있을것이다내용은 이러하다. (1) 나는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린적이 없다. (2) 나는 항아리를 깨지지 않은 상태로 돌려주었다. (3)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렸을 때에 그건 이미 깨져있었다이는 비일관된 주장으로 라렬된것 같지만 《나는 깨진 항아리를 돌려주었다.》를 부정을 통해 승인하고있는것이다.(지젝, 2004, 8) 한마디로 말해서 프로이드가 부쉬를 두고 해둔 말 같다.
지젝이 책을 쓴 다음, 2007년 미 중간선거에서 부쉬 공화당정부는 상하원에서 과반수의석을 잃었다그리고 전쟁주범인 람스펠드는 사임했다이렇게 전세계 소수의 비정치적인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있다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지식인들이 있어서 희망이 있는것이다.
만주사변이후 국내외 지식인들이 이젠 동북아천지가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비관에 빠져있을 때에 이런 시류에 역행하여 일본패망이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항일유격대를 꾸린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이 김일성주석이다김일성주석은 리념과 사상을 떠나서 앞날을 볼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과정사상연구소의 데이비드 그리핀교수는 9. 11이 완전히 미국의 자작극이라는것을 폭로하는 두권의 책으로 유명하다그리핀교수는 부쉬의 행동을 두고 미국의 《위장기발(false flag)》흔들기라고 했다그러면서 현대사에서 3가지 대표적인 위장기발흔들기로 김일성주석이 회고록 2권에서 절절히 언급하고있는 1931년 일본의 9. 18만주사변과 일본의 진주만공격 그리고 1968년 윁남에서의 바크보만사건을 꼽고있다.
그러면서 9. 11은 미국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흔든 위장기발의 제2탄으로서 《신판 진주만공격사건(New Pearl Harbor)》이라고 했다그리핀교수는 이어 미국이 건국초부터 메히꼬전쟁에 이르기까지 건건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빌미로 앞뒤가 일관하지 않는 행동을 저질러왔다는것이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알리는 사건의 진면모는 우리가 력사에서 배운 내용과 일치한다력사의 복습을 위해 이 사변을 회고록을 통해 다시 요약하면 《1931 9 18일 밤 심양 북대영 서쪽 류조구에서 일본만철회사소유의 철도가 폭파되였다일제는 장학량군이 철도를 폭파하고 일본수비대를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내걸고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여 일거에 북대영을 점령하였으며 19일 아침에는 봉천비행장까지 차지하였다.(2 214페지《일본제국주의자들은 진상을 오도하여 중국측에 사건의 책임을 전가시켰지만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이 내돌리는 여론을 믿지 않았다.(2 214페지)와 같다.
물론 사건을 꾸민 장본인은 관동군특무기관의 심양특무기관장 도히하라 겐지대좌이다.
이자의 9 18일이후 행각을 보면 그것이 위장기발임이 금방 드러난다그는 만주에서 일을 저질러놓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이 같은 날 서울에 나타나 자기와 이 사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처럼 능청을 떤다그는 큰일을 낸자치고는 너무나도 여유작작하게 조선주둔군사령부 고급참모 간다 마사다네를 만나 서울에 온 리유를 신문기자들이 시끄러워 왔다고 에둘러 설명하였다그날 서울 백운장이란 술집에서는 일본 항공본부장 와다나베 죠따로대장이 찾아와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야시 센쥬로대장과 기생파티를 하고있었다모두가 만주사변과는 일본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일본의 행동을 조선전쟁당시 미국의 트루맨의 행동과 너무나 일치된다고 했다.
《이 력사기록을 읽게 되면 어째서인지 조선전쟁이 발발하던 때에 트루맨이 별장에 가서 지내던 일을 상기하게 된다우리가 9. 18사변과 조선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전쟁에서 일맥상통한 점을 찾아보게 되는것은 두 전쟁 다 선전포고없이 돌발적으로 개시되였다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그 두 사변을 도발한 인간들의 면모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고유한 교활성과 파렴치성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성과 지배주의적본성을 다같이 찾아보게 되기때문이다.(2 215페지)
나는 2006년 여름 미국 로스안젤스에 사는 《38°선도 6. 25도 미국의 작품이다》의 저자 하리마오 박선생을 윌셔호텔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난적이 있다그는 고급 미국첩보장교였다당시 미8군사령관이 6 24일 아침 4시까지 8군장교구락부건물락성식 축하파티에 참가하고 일본으로 떠난 사실에 대해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38°선도 6. 25도 모두 미국의 사전 씨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선생은 증언하였다브라운의 행각이 만주사변을 저지른 일본장교들이 벌린 그것과 같아도 너무 같다부쉬도 9. 11테로날 어디 가 있었는가그가 백악관에 없었던것은 분명하다그리핀교수주장에 의하면 이미 다 아는 사실그러나 자기는 몰랐다는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위장행각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여기서 김일성주석의 력사관이 나타난다보통 자연은 반복 그리고 력사는 반복하지 않는 비반복적(非反復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력사를 비반복적인 사건들의 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개개의 사건들사이에 존재하는 류사성과 공통적인 경향성을 우리는 또한 전혀 무시할수가 없는것이다.(2 215페지)라고 회고록에서 쓰고있다.
 자연과학은 같은 실험을 반복해 할수 있지만력사과학에서는 임진왜란 같은 력사적사건을 반복시킬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주석은 력사에도 반복적인것이 있는것이 아닌가 반문한다다시말해서 만주사변과 조선전쟁사이에는 류사성이 있다는것이다그렇다제국주의자들의 위장기발흔들기의 반복성이 있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여기서 말하고있는 《터무니없는 구실》이라는 말이 바로 그리핀교수의 《위장기발》에 해당한다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기 위해 흔드는 기발말이다《일본의 본성》이란 그 력사가 오래다임진왜란당시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내라고 구실을 붙인것도 이에 다르지 않다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이러한 피해자둔갑변신술은 만주사변이 처음이 아니다만주철도부설을 위한 장작림렬차폭파사건만보산사건관동군참모본부소속 나까무라대위의 《실종》사건 그리고 그 무엇보다 1937년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로구교사건 등등 그 수를 손으로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만보산사건은 장춘에서 서북으로 7080여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두 민족 농민들사이에 보물때문에 생긴 작은 일이였는데 일본은 이를 민족간 문제로 비화시켜 두 민족사이에 리간질을 시키고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의 피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농촌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지방적인 분쟁을 민족리간책략에 솜씨있게 리용한것이다.(2 216페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중농민들은 일본의 간계에 완전히 빠져 서로 두들겨패고 죽이기까지 했다김일성주석은 농민들가운데 선각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일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것을 안타까워하고있다.(2 216페지)
이렇게 미일 두 제국이 전혀 달라짐이 없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고있는데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일본이 랍치문제를 계속 꺼내고 미국이 북핵문제위조화페문제 그리고 인권문제나아가 종교의 자유문제를 꺼내는 등 모두가 결국 9. 18만주사변의 재판과 9. 11테로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력사는 반복되고있는것이다여기서 우리가 정신차리고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이 꺼내는것은 핵이나 인권 그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위장기발은 그것이 기발이 아니고 사실은 《카드》라는 점이다놀음판에서 카드란 자기의 리해득실에 따라서 꺼내드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여야정치인들은 이러한 일본과 미국의 카드놀음에 놀아나지 말아야 할것이 당연하지 않은가그러나 사정은 정반대이다지금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리명박은 《핵 먼저 페기》없이 경제지원없다는 론리를 《대선정책》으로 결정해놓고있다문제는 핵이 해결되면 다음 인권카드가 나올것이고 그러면 리명박은 분명히 《인권 먼저 해결》을 구호로 내걸것이 분명하지 않는가?그렇다면 호랑이가 떡장수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카드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나올것이다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리명박의 이러한 행동은 《한국》 수구보수의 전가의 보도와 같다지금 유력 《대권》후보자 하나가 미일의 위장기발을 다시 흔들고있으니 력사는 반복되는것이 분명한것 같다.
김일성주석이 이야기한대로 력사는 비반복적이 아니고 《비비반복적(非非反復的)》이다다시말해서 《반복적》이다지금 우리는 과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같은 말이지만 반복적이라 하지 않는 리유는 생각의 생각을 깊이 한번 해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일성주석도 회고록에서 력사는 과연 비반복적인가 묻고있지만 내가 여기서 비비반복적이라고 말하고싶은 리유가 여기에 있다.
만보산사건이 있던 날 《…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 무엇때문에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피투성이싸움을 해야 하는가항일이라는 대전제밑에 두 나라 민족이 손을 굳게 잡고 공동투쟁에 나서야 할 때 물길 하나를 놓고 서로 악에 받쳐 <골육상쟁>을 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꼴인가.(2 216페지)고 김일성사령관은 한없는 비탄에 잠기였다고 한다번민과 고민으로 밤을 새운 날 새벽 《… 이 사건이 미리 꾸며진 연극으로박두해오고있는 어마어마한 사변의 전주곡으로 느껴졌다.(2 216페지)고 한다.
만보산 농촌마을에서 생긴 사소한 보물사건에 장춘령사관이 끼여들면서 조선사람들의 리권을 옹호하여나온것이 미심쩍었던것이다언제 일본이 조선인민과 농민들을 위했다고《토지조사령》같은 법령으로 조선농민들을 략탈해오던 일본이 갑자기 옹호자로 둔갑한것이다장춘의 《경성일보》지국은 본사에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호외로 배포까지 하였다.
무기는 다음이다우리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미일의 속셈 위장기발에 속지 않는것이다그러자면 지도자가 현명해야 한다.
아무도 아직 판단하고있지 않을 때에 김일성주석은 《나는 그때 일제의 만주침략은 시간상문제라고 판단하였다. …
조선을 먹은 다음에는 만몽을 먹고 만몽을 먹은 다음에는 중국을 먹으며 중국을 먹은 다음에는 아세아를 제패하려는것은 <다나까상주서>에도 규정되여있는바와 같이 일본의 기본국책이였다.(2 217218페지)고 쓰고있다.
그러나 안타까운것은 당시 지도인물로 자처하는 사람들중 대부분이 이 사실을 모르고 아니자기기득권때문에 알고도 일본의 장단에 춤을 추는것이였다.
다시 강조한다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력사는 되풀이되고있다적어도 동북아는 자연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되풀이할수 있는것 같이 력사를 되풀이시험할수 있는 장소이다오직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우리끼리》이다남북민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는 길만이 력사의 반복을 막을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해답이다나는 남북민이 합심한 《선군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고구려의 상무정신이 지금만큼 필요한 때는 없을것이다.





유격구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좌경분자들

김일성주석은 생전에 해외동포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일본은 경계해야 한다일본의 제국주의는 이 세상 제국주의가운데 가장 퇴매한 제국주의이다(홍동근, 1997, 153)고 하였다고 한다.
일본이 9. 18만주사변을 조작해낸것은 결코 그자체에 목적이 있었던것이 아니다사변직후 일본은 두가지 큰 사건을 만들어낸다그 하나가 1932년 《만주국》만들기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 간도조선인들을 상대로 한 《민생단》꾸미기이다《만주국》과 《민생단》은 만주사변의 후사건과 같은것으로 일제가 만주사변을 조작한 진정한 동기가 드러나는 사건이라 할수 있다.
이 지구상에 력사가 시작된이래 이만큼 억울한 일도 있을가나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매년 8월초가 되면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원폭피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것을 보고 력사의 피해주장도 강자만이 할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적이 있었다《홀로코스트》(2차대전시기 도이췰란드의 유태인대학살), 그것도 이젠 유태인들의 점유물이 되였다이 지구상에는 유태인보다 더한 학살을 당하고도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알릴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일본인녀류작가가 쓴 《요꼬이야기》는 해방후 일본녀인이 조선사람들에 의해 《강간폭행》당했다는 이야기가 그 줄거리이다이 소설이 미국 중고등학생들의 교과서로 채택되였다우리 교민들이 이에 항의해보지만 력부족이였다.
일본의 원폭도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도 모두 그들의 적들로부터 당한것이다그런데 여기 1930년대초 동만(東滿)일대에서는 기이한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그것은 소위 반《민생단》사건이다회고록  4권전체에 검색어를 치면 아마도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민생단(民生團)》일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 전활동과정가운데 이만큼 괴롭힘을 당한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오늘의 북조선의 인맥과 로선 그리고 주체사상의 기원을 파악하는데도 《민생단》이란 말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그리고 내가 《김일성》 그 이름을 바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같은것을 느낀것도 《민생단》사건때문임을 밝혀둔다. 1936년경 극단적인 좌경분자들은 마안산이란 산골짜기에 앞으로 《민생단》으로 몰아 처형할 사람들을 모아놓고있었다. 1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리고 거기에는  10살 전후의 어린이들도 있었다김일성사령관이 인솔하는 부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에 가득차있고 며칠을 굶어 피골이 상접해있는 상태였다.
죽음을 앞둔 이 사람들은 무표정 그자체였으며 김일성사령관일행을 또 자기들을 해치러 온 부대로 볼 정도였다.
그런데 김일성사령관은 도착하는 즉시 《민생단》자료들을 모조리 모아 불태워버리고 이들을 모두 해방시켰다마치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린것과 같다그리고 고향을 떠날 때에 어머니 강반석녀사가 준 돈 20원으로 무명광목을 사다가 헐벗은 아동들에게 모두 새옷을 해입힌다.
장편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마저 극좌좌익들에 의해 《민생단》으로 몰려 죽었다.수많은 사람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해방후 마안산에서 김일성사령관에 의하여 구원된 사람들가운데 살아돌아온 사람들이 오늘 북조선을 움직이는 인맥이 되였다그때에 살아난 사람들이 죽을 목숨을 살려주고 먹을것과 입을것을 준 김일성사령관을 《어버이》라고 하는것이다《어버이수령》이란 말이 거기서 유래했다는것을 안다면 세뇌에 의해 억지로 붙여진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리해하게 될것이다.
회고록 4권은 반《민생단》사건회고라 할 정도로 그 내용으로 가득차있다그 첫절 제목이 《사나운 회오리》이다반《민생단》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32년을 전후로 하여 김일성사령관은 신변주변에서 있었던 일들착잡했던 심경들 그리고 고달팠던 시절을 라자구등판에서 겪은 시련이 크다고 하지만 반《민생단》사건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수 있다고 했다라자구등판의 시련은 1930년대말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유격활동초기의 최대시련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시련보다 《민생단》이 더 큰 괴로움을 주었다고 김일성주석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있다.
《시련의 나날들은 꿈결처럼 지나갔다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던 중중첩첩한 설령들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피와 고뇌로 얼룩진 원정은 승리적으로 종결되였다조선공산주의자들앞에는 그 승리에 기초하여 혁명을 심화시킬수 있는 새로운 전망이 열리였다병마에 지친 몸을 끌고 로야령산정에 오른 나는 대원들과 함께 왕청의 산발들을 굽어보며 환성을 올렸다수개월동안 초연과 혹한속에서 겹쌓인 피곤이 순간에 다 가셔지고 고향의 뒤동산에라도 와닿은것 같은 희열로 마음마저 구름처럼 부풀어올랐다하지만 나는 왕청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며칠동안 침상에서 고열과의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원정에서 얻은 촉한의 후유증이 또다시 나를 쓰러뜨리였던것이다설상가상으로 <숙반>바람에 유격구가 만신창이 되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의 침상에까지 날아들어왔다. <간호병>들도 유격구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놓은 좌경분자들의 죄상을 분노에 차서 고발하는것이였다.
몇달전까지만 하여도 혁명을 하느라고 왕청골안이 좁다 하게 뛰여다니던 당원들과 공청원들부녀회원들이 광란적인 살인각본의 작성자들과 그 집행자들에게 저주를 보내며 자기자신들이 피로써 개척하고 사수해온 유격근거지를 버리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가는것 같은 전률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우주의 모든 움직임이 한순간에 죄다 정지되고 세상만물이 빙하에 짓눌려 종말을 고하는것 같은 무서운 절망과 좌절감을 느끼였다.
… 16명밖에 안되는 대오를 이끌고 촉한에 걸린 몸으로 천교령을 넘을 때의 난관 역시 모진것이기는 하였으나 <민생단>문제때문에 당해야 했던 고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4 12페지) (《숙반》이란 지금의 숙청 그리고 《촉한》은 장티브스같은 열병을 두고 하는 말)
《나는 몸도 마음도 다 고통으로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4 3페지)
김일성주석은 스스로 자신은 타고난 락천가라고 8권에서 말하고있다이러한 락천적성격때문에 그 시련의 시절을 견디여낼수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민생단》문제에 있어서만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고하고있다사실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것은 외부의 적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내부에서 생긴것이다적이 적이 아니고 동지가 적으로 변신할 때 인간은 참을수가 없는데 이를 두고 베이트슨은 《이중구속(double binding)》이라고 했다바로 이런 이중구속적상황으로 끌려들어가 결국 좌경분자들로부터 모해를 당했던것이다드디여 이 사건으로 다홍왜회의에서 결말을 짓기까지 그 전과정을 우리는 회고록 4권을 통해 읽을수 있다.
《민생단》사건의 분수령을 이룬것은 1931 9 18일에 있었던 9. 18만주사변이다이는 세계력사상 손꼽힐만 한 일본이 자행한 위장기발사건이다진주만바크보만 그리고 만주사변 이 3대사건은 미일이 흔든 3대위장기발이라고 그리핀교수는 이미 지적한바이다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위장기발그러나 그 후과는 실로 엄청난것이였으며 동만에서 좌경분자들이 견실한 혁명가들과 무고한 군중을 죽이는이 피해를 고스란히 조선의 열혈혁명가들이 떠안았다.
김일성주석의 회고에 의하면 《민생단》혐의가 있는자들은 불과 몇명정도였다그 소수의 밀정들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였다그것도 김산 같은 인물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이 력사를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민생단》사건은 9. 18사변의 전후관계를 유기적으로 련관시켜야만 바로 리해할수 있음을 거듭 강조해둔다.
1932 2월 만주 간도에는 아직 봄이 올 소식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훈춘과 연길오늘날 우리가 가장 자주 찾는 이 고장이 바로 《민생단》이라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동만안에 있던 조선동포들은 9. 18사변의 최대희생자가 될 운명이였다일본군대는 조선족 한교만 보면 자기들을 피해 도망온것이라 보고즉 《부정선인(不呈鮮人)》이라 하고 체포총살하였다일본측 적구로 오지 않는 부락은 방화략탈하였다반대로 극좌좌경분자들은  그들대로 조선족을 《소귀자(小鬼子)》라 하여 일본의 주구로 취급한교부락을 습격방화략탈 그리고 살상하였다일본에 대한 분풀이를 조선족에게 하였던것이다이것은 아리아인들이 유태인들에게 퍼부은 분풀이와 류사한것이다《부정선인》과 《소귀자》사이에 적의 적도 적인 이중구속적사건이 벌어진것이다.
《민생단》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민생단>의 조작은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지능화의 산물이였다일본제국주의자들이 <민생단>을 내온 속심은 모략과 권모술수의 방법으로 조선혁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자는데 있었다총칼정치를 해도 안되고 <문화통치>의 비단보자기를 쓰고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부르짖어도 안되니 조선사람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혁명세력을 숙청소멸함으로써 치안유지에서 당하는 고충을 해결하려는것이였다.(4 10페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나타난 민생단 읽기
(아래 글은 회고록 4 1014페지 글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임.)

9. 18사변후 만주지방에서의 혁명정세의 급격한 발전에 커다란 우려를 느낀 사이또총독은 간도시찰반 성원으로 동만지방에 파견된 박석윤과 연변자치촉진회의 거두 전성호연길주재 만주국군 군사고문 박두영수급반공특무 김동한을 비롯한 친일적인 민족주의세력을 내세워 1932 2월에 연길에서 <민생단>을 조작하게 하였다.
<민생단>은 외형적으로는 <민족으로서의 생존권확보>라든가, <자유락토건설>이라든가,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허울좋은 구호를 들고 마치 조선사람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최고의 경륜인것처럼 떠들었다하지만 이 조직은 실제상에서는 조선민족의 반일의식을 마비시키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을 모해하여 인민들로부터 고립시키며 조중인민사이에 쐐기를 박아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킬것을 목적으로 일제가 만들어낸 간첩모략단체였다.
<민생단>의 반동적본질은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의 <생활의 산업화>를 조선민족이 나아갈 <유일한 활로>라고 설교한 이 단체의 <조직취지> <강령>과 같은 문건들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적들은 조선과 만주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기간을 <생존권의 확보와 확충>을 위한 가장 좋은 <절대적시기>식민지통치질서의 기반밑에서 암흑의 세계로 변한 조선과 만주를 <자유> <자률> <대지>로 묘사하는 한편 간도일대에 조선인에 의한 <자유의 락토를 건설해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마치도 조선사람들이 일제의 만주강점과 식민지통치를 환영하며 간도일대에 대한 령토적야심이라도 가지고있는듯 한 인상을 조성함으로써 조중인민과 조중공산주의자들사이의 선린관계와 혁명적뉴대를 깨뜨려버리려고 획책하였다.
<민생단>이 철저한 반공주구단체라는것은 그 발기인이라는 사람들과 창립후 단장부단장리사의 자리를 차지한자들의 경력만 보아도 쉽사리 가늠할수 있다.
이 조직의 발기인들로서 그 성립을 위해 전력을 다해온 경성갑자구락부 리사 조병상이나 <매일신보부사장 박석윤연변자치촉진회의 전성호김동한 등은 다 애국애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자혁명가로 자처하였으나 례외없이 일제가 오래전부터 손때를 묻혀 길들여온 반역아들이였다.
16살에 일본류학을 가는것으로써 친일의 첫걸음을 뗀 박석윤은 도꾜제국대학 법과와 제국대학연구원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 일류급의 대학들에서 여유있는 수학생활을 하였다영국에서 류학을 할 때에는 매해 총독부 학무국으로부터 3 000여원에 달하는 거액의 학비까지 받았다고 한다.
해외류학후의 그의 직함은 그보다 훨씬 더 화려하였다.
<동아일보기자, <매일신보부사장일본외무성촉탁 만주국 외교부 참사관뽈스까주재 만주국 총령사… 등 귀국후 그가 력임한 직무들과 후날 쏘일중립조약체결시 일본측 단장으로 그 조약문에 수표했던 외상 마쯔오까 요스께가 이끄는 일본대표단성원으로 1932년 제네바에서 열렸던 국제련맹총회에까지 참석한 현란한 경력은 그가 일본지배층으로부터 얼마나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가 하는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일본제국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로서의 박석윤의 체면을 세울수 있게 그로 하여금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비난하는 사설도 쓰게 하고 창씨개명을 반대하여 총독과의 정면대결도 하게 하고 태평양전쟁말기 려운형이 주관한 건국동맹에도 관여하게 하였지만 <민생단>과 관련된 원한도 있어 간도지방의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해방직후 박대우란 이름으로 변성명을 하고 양덕에 숨어살다가 적발되여 민족반역자로서 준엄한 심판을 받은 박석윤은 재판정에서 일제통치하 조선사람의 <민족자치>가 자기의 정치적리념이였다는것조선도 영국의 식민지들인 카나다나 남아련방과 같은 정치발전의 코스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는것바로 이런 정치리념으로부터 사이또총독과도 가깝게 지냈고 일본의 이름있는 세계제패론자이며 동아련맹의 정신적고취자의 한사람인 이시하라 간지도 숭배하였다고 실토하였다.
그는 또한 <민생단>의 창립취지가 공산당과 유격대의 괴멸에 있었다는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민생단>의 초기목적은 순수한 <생존권확보>에 있었다는것과 이 조직이 일제의 지령을 받는 간첩주구단체로 전락된것은 자기가 간도를 떠나간 후의 일이라는것<민생단>투쟁과정의 혹심한 피해상황에 대한 소식을 듣고 놀랐다는것자기는 일본인들의 조종을 받는 하나의 인형에 불과하였다는것 등을 진술하였다.
박석윤의 고백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담겨있는가 하는것은 력사만이 판정할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사실여부는 어떠하든지간에 그가 일제의 충견이며 심복이였다는 사실은 그 어떤 론거로써도 부정하지 못할것이다.
<민생단>창출의 산파역을 논 박석윤이 일본물을 많이 먹은 사람이라면 <민생단>모략공작의 현지하수인이였던 김동한은 로씨야의 물을 많이 먹은 사람이였다김동한의 인생은 공산주의운동으로부터 시작되였다그는 10월혁명직후에 벌써 로씨야에서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고려공산당 군사부 위원과 장교단장직을 력임하면서 사관학교졸업생으로서의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그러나1920년대초에 연해주에서 일제에게 체포되자 인차 급전향을 하여 반공일선에 선 친일특무가 되였다.
김동한은 <민생단>이 해체된 후 관동군의 승인을 얻어 그 후신인 <간도협조회>를 조작하였으며100여명의 반동들로 의용자위대라는것까지 무어가지고 다니면서 혁명군<토벌>에 극성을 부리였다그는 자기를 조선에서 태여난 일본인이라고 착각할만큼 일본인으로 철저히 동화된자였으며 조선민족은 일본을 조국으로 하여 성심성의를 다하여야 한다고 고창할 정도로 매국배족근성이 골수에까지 사무친 수급역적이였다. <만선일보>가 전하는 자료에 의하더라도 그가 귀순시킨 공산주의자는 자그만치 3 80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김동한이 죽은 후 일제는 연길서공원에 그의 동상과 <간도협조회>의 현창기념비라는것까지 세워주었다.
일제의 <간도치안전략>에 따르는 사상모략시책으로 <간도성내의 조직의 전모를 밝히고 약 4 000명을 체포하고 그들을 지지하고있던 사회적기반을 붕괴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는 이른바 <민생단전략>의 실상을 잠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민생단>이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간도민생해결을 목적으로 조직된것이 아니였다는것은 처음부터 명백한것이였지만 일제침략자들은 그 당시 그 단체에 민족주의적허울을 씌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일본사람들은 <민생단>의 간판을 민생고의 해결이라는 구슬로 현란하게 장식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동만의 혁명조직들은 그 단체의 우두머리들이 일본령사관의 뒤문으로 뻔질나게 드나드는것을 인차 간파하였다적들은 만인의 예리한 시선앞에서 <민생단>의 정체를 오래 숨겨둘수가 없었다우리는 혁명적출판물들과 구두강연을 통하여 그 정체를 제때에 발가놓는 한편 반<민생단>투쟁을 전군중적운동으로 벌리도록 하였다간판에 현혹되여 멋도 모르고 <민생단>에 들었던 사람들이 이 조직을 인차 탈퇴하였으며 주구로 전락되여 암해공작에 나섰던자들은 군중의 손에 의해 적발처단되였다.






《민생단》사건은 일제의 모략극

남쪽의 어느 대학교 교수는 《민생단》사건을 두고 《상처받은 민족주의(wounded nationalism)》라고 했다이는 그의 박사학위론문제목이기도 하다아마도 《민생단》을 주제로 영문으로 나온(1999년 미워싱톤대학최초의 론문인줄로 안다단행본으로는 연변대 김성호교수의 《1930년대 연변민생단사건 연구》외에 수권이 있다김교수는 1998년 남쪽에서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나는 김교수를 서울에서 만난적이 있다.
그는 지금 김일성주석의 항일유격활동에 관한 저술을 집필중이라고 한다그리고 작년에는 여러 학자들과 함께 김일성사령관 항일유격지 현지답사를 15일간 하였다고 한다내가 김교수를 만나 확인하고싶었던것은 회고록에 쓰인 김일성주석의 《민생단》기록내용이 얼마나 사실인지를 확인하고싶어서였다.
김교수의 대답은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같다고 했다약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수치상의 차이일뿐 사건자체의 기록내용은 사실그대로 회고록이 담고있다는것이다그러면서 곁들여 유격대원들의 어려웠던 참상들을 증언해주기도 했다한 대원은 전투때에 총상에 창자가 흘러나오자 자기 손으로 움켜쥐면서 끝까지 총을 쏘았다고 한다최근 소말리아해적들을 물리친 북의 선원들의 용기가 과연 우연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김성호교수는 《9. 18사변은 조선민족성원들의 동향과 본심을 식별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작용》(김성호 47페지)을 야기하였다고 한다이러한 작용을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건적(eventual)》이라고 했다주체가 객체의 한 부분이 되고 객체가 주체의 한 부분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이런 사건적상황을 두고 리강훈은 《나는 10년간 삭북의 황야에서 내나름대로 동분서주하다가 9. 18사변을 계기로 발붙일 곳조차 없게 되고 수많은 혁명동지들은 사면초가로 궁지에 몰리게 되였고》라고 술회하고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여내지 못한 조선족은 9. 18이란 시금석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 시작한다.
김일성주석은 이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애국과 매국반일과 친일자기희생과 보신을 가르는 착잡한 분해과정이 9. 18의 포성과 함께 민족내부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였다각자가 자기의 인생관에 따라 양극에도 가붙고 음극에도 가붙었다만주사변은 민족의 매 성원들의 동향과 본심을 식별하는 하나의 시금석과도 같은 작용을 하였다.(2 224페지)고 언급하였다.
일본의 영악한 위장기발은 그 효과를 백번 내기에 충분하였다.
9. 18이후 일본측의 자체평가에 의하면 《친중파는 공황에 빠져들었고 민족파는 유야무야 속수무책 랑패하였으며 친일파는 과연 일본은 위대하다 찬양했으며 그중 중공당계렬만이 무장대오를 창건하였다.》와 같다.
이미 일본의 이러한 영악스러움에 김일성사령관은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을뿐이다.
일본이 9. 18사변을 조작한 단 8일만인 9 26기다리기나 했다는듯이 조병상과 박석윤 이 두 인물이 《민생단》건설작업에 직접 나선다.
이들은 40만 조선족인구가 살고있는 간도땅에 《민족자유천지》나 《간도독립》이란 명칭을 사용한 단체를 하나 만들려고 일본총령사관에 신청을 했으나 총령사관은 전자는 일본정부로부터 《민족독립》이란 오해를후자는 중국당국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리유가 있다고 하여 거부한다두 이름모두가 민족모순과 관련이 된것이기때문에 일본과 중국모두로부터 반대를 받을수 있다는것이 일본령사관의 판단이였다박이나 조는 일말의 민족정신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그러나 그들이 찾는 민족정신이 아무리 훌륭한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일본의 재가를 받고서야 가능한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음차선으로 구상한것이 중국관헌의 조선인차별대우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으로 방향전환을 해보는것이였다그러나 민중운동 역시 중국당국이 민족문제로 볼것은 명약관화했다이를 잘 아는 사람들가운데 민중운동에 막상 나서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였다민족운동도 민중운동도 거부한 일제는 매의 발톱을 내보이기 시작한다그러나 동만조선친일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였다아는것을 알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이를 간취한 일제는 《간도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자각을 촉진하고 자위상 서로 단결하며 산업인으로서의 생존권확보》 즉 요약하여 《민생단(民生團)》이란 단체조직에 박차를 가한다.
친일조직단체 《조선인민회》는 일제의 속셈을 빠르게 간파하고 이에 적극 부응하여 《민생단》건설에 일사천리당장 그해 9 20일 밤 10시 룡정 국자가에 있는 일본인보통학교와 민회에 방화(放火)를 한다다시한번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위장기발을 흔들기 위해서이다이는 구국단 민회 회장 리강재와 구국단 단장 김택환이 공모해 일본군의 간도출병을 유도하기 위해 저지른 조작이다이렇게 조선족친일파들은 일본과 중국사이의 리간질에 앞장섰으며 일병의 간도진출이야말로 자기들이 학수고대하던바였다고 떠벌인다.
드디여 10 7일 조병상박석윤리강재 등 8인이 발기인대표로 재간도 일본제국총령사관에 《민생단》조직결성허가신청서를 낸다신청서의 내용은 재간도 40만 조선인들의 《활로는 오직 인류의 기본권인 자유자주자률만이 있을뿐여기에 자유락토를 건설하여야 한다오직 생활의 산업화만이 유일한 활로이다.》는것으로여기서 민족독립이나 간도독립 같은 말은 사라지고 《생활산업화》가 설립목적으로 부각되였다.
그리고 《총독부》는 《간도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날이 향상되게 한다.》라는 명분으로 《민생단》조직설립을 허가한다.
10 24일 다시 조와 박은 간도로 돌아와 제 단체들의 협조를 구한다 4개 단체들(조선인민회,중공당자진촉진회민족주의독립운동단체)이 이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는 각각이다민족파는 합류하나 공산파는 탈퇴한다여기서부터 공산파에 대한 반《민생단》사건은 싹이 트기 시작한다자진촉진회는 친중반일《반공》에서 친일반중《반공》으로민족파는 자진흡수되여 소멸하는 등 실로 걷잡을수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
12 24일 일본령사관의 최종허가는 《조선인들의 생활안정과 산업진흥을 획책》한다는 명분으로 《민생단》건설의 최종인허가 내려진다.(김성호 55페지) 12 28일 발기준비위를 소집하여 참가자 64명중 11명을 대표로 선출한다놀라운것은 국내의 박영호최남선윤치호송지우 등 90여명이 이 《민생단》건설에 대찬성의 축하를 보냈다는 점이다이렇게도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알기란 어려운가?
이 《민생단》은 길림왕청화룡훈춘에 거주하는 20살이상 남자들만 참가가 허락되는 제한된 단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해를 넘겨 1932 1 7일 발기준비위 구성, 2 9일 오전 10시 룡정 공회당에서 발기인총회를 연다전성호의 사회리인구의 개회사 그리고 발기인명단이 발표되였다.일사천리로 같은 날 3시 반 일본총령사관의 참석하에 창립대회가 열렸으며 박석윤은 《그동안 불법행위에 억눌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되여 감개무량하다.》고 인사말을 한다《민생단》의 단장은 류보하고 부단장에 한상우를 선출한다당시 《간도신보》의 보도에 의하면 《40만 동포의 생활확보를 기하는 민생단》《산업의 자유자치의 대기를 추켜든 민생단》이라고 대서특필하고있다《매일신보》는 《각개 단체를 총 망라한》 조선사람의 자위자립단체라고 평하고있다.(김성호 62페지)
창립을 하고 같은 날 밤 812시사이에 제1차 《민생단》회의가 소집되였다이렇게 《민생단》이 생겨나게 되였다이 신생아 《민생단》은 불과 생겨난지 수개월만에 해체되였지만 우리 조선족공동체에 끼친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고 할수 있다.
이때부터 조선족사회는 친일과 반일로 량분되였으며 《민생단》창단을 지켜보고있던 민족배타주의자들은 당장이라도 《민생단》을 단칼에 베여버릴 자세였다그래서 좌우가 하나가 되여 조선족을 적대시하게 만든 사건이 《민생단》사건이였으며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일제는 《민생단》건설을 서둘렀던것이다.
이런 《민생단》건설에 국내에서 이름난 인사들이 찬성을 하고 나왔다니 이렇게도 일본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할만큼 우리는 어리석었단 말인가?
역설적이게도 《민생단》설립이후 도리여 조선족의 자치와 자률 그리고 생활의 안전은 간 곳이 없이 사라지고 즉각 좌경분자들은 반()《민생단》활동을 전개하여 《민생단》에 관계되였다고 혐의가 조금만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학살하는 실로 《만주판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였다.아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대학살극을 왕청산하만 알고있을것이다.
요약하면 《민생단》은 생겨나서 인차 사라지고말았지만 문제는 《민생단》이 해단된 다음 전개된 반《민생단》사건이 더 중요하다는것이다《민생단》이 친일우익들이 조직한것이라면 반《민생단》은 좌경분자들이 주도한 사건이다반《민생단》사건을 일명 《숙반운동》이라 하며 공산주의자의 탈을 쓴 김성도송일김권일 등이 앞장서 같은 조선혁명가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죽인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조선사람들뿐나중에는 김성도일행도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되였으며 이들에 대하여 《… 다 좋은 사람들이였으나 주체를 세우지 못하고 상급에 맹종맹동하다나니 본의아닌 과오를 범하였다.(4 22페지)고 김일성주석은 회고하고있다.
우스운것은 반《민생단》투쟁이 《민생단》해단이후 무려 3년간이나 계속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민생단>이 없는 반<민생단>투쟁》(4 15페지)이라고 했다《민생단》보다 반《민생단》이 6배나 긴 기간동안 지속된 그 근본적인 원인을 김일성주석은 《…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모략에 있었다.(4 15페지)라고 단정하고있다.
《민생단》은 사라져도 일제의 음모자체는 계속되였기때문이다.
《민생단》은 하나의 《상황(situation)》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반《민생단》은 상황이 아닌 《사건(event)》이다사건이 상황과 다른것은 후자는 주객의 구별이 분명한 경우이고 전자는 그것의 구별이 불분명한 경우이다다시말해서 반《민생단》은 적의 적도 적이 되는 경우이다보통 정상의 경우는 적의 적은 동지이다그러나 사건은 주객이 구분 안되고 적과 동지의 구별을 할수 없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것은 상황이지만 반대로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으면 사건이 된다이는 철학자 바디우의 정의이다일본제국주의는 《민생단》이란 상황을 교활하게 사건화시킨것이다혁명이 혁명을 타도하고 공산당이 공산당을 무리로 죽이도록 모략한것이다당나라 측천무후의 《이이제이》전술전략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좌경분자들은 이 모략에 그대로 휘말려든것이다.
일제는 1934 9월에는 투항자들을 일괄처리하기 위하여 귀순자의 배후관계위장귀순유무 확인,세뇌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기관으로 《간도협조회》를 만들어내였으며 여기에 《민생단》을 통합한다일제의 모략가들은 중국인간부들이 조선인들을 신용하지 않고 부단히 감시하고있으니 조선인들은 들고일어나라고 조선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조장하였다그래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사이에 쐐기를 박으려고 하였다.
누가 들어도 그럴사한 감언리설임에 분명하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조선사람이 만주에서 피를 흘리는것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해방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그런데 그대들은 무엇을 위해 기를 쓰고 싸우는가왜 력량상 우세한 조선사람들이 중국사람들에게 매워 무의미한 싸움에서 피를 흘리는가빨리 각성하라투항귀순의 길은 열려있다,… 이러한 사상을 열심히 주입시키는것을 <민생단사상모략공작의 주요한 선전요령으로 삼았다.(4 16페지)
일제는 《민생단》을 10명씩 조를 무어 유격대안에 들여보냈으나 다 붙잡혀 죽게 되니 더이상 침투시킬수 없게 되자 조선사람과 중국사람로동자와 농민상부와 하부간에 호상 믿지 못하게 하고 서로 리간시키는 전술을 써서 공산주의자들끼리 싸우게 하였던것이다.
회고록은 그 수법을 이렇게 밝히고있다.
《혁명대렬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교란작전에서 일본의 모략가들이 발휘한 솜씨는 실로 놀랄만 한것이였다그 술책가운데는 이런 수법도 있었다가령 동만특위에서 어떤 간부가 지방에 순시를 나가게 된다면 그 사람이 오가는 길에다 이전에 지도사업차로 그 지방을 왕래하던 현급간부나 구급간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떨어뜨리였다.
그러면 특위순시원이 그 편지의 수신인들을 어떤 인간들로 보겠는가.(4 17페지)
이런 비렬한짓까지 한 리유를 두고 형형색색의 일부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불순한 정치적야망때문이라고 김일성주석은 평가하고있다좌경기회주의자들이 공산주의대렬안에서 지도적지위를 독차지하고 상승일로의 길로 전진하고있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혁명투쟁을 자기들의 정치적야망을 실현하는데 종속시키려고 하였다면 파벌근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사대주의자들은 그들의 지지와 묵인속에서 종파적목적달성에 장애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대오로부터 사정없이 제거하고 자파세력을 확대하는데 이 투쟁을 악용하려고 하였다.
남들이 차지하고있는 방석을 가로타고앉을 구실을 마련해준것이 바로 《민생단》이였다《너는 <민생단>이니 자리를 내놓거나 죽어야겠다고 선언하면 다였다.》 이런 판결에는 상소가 있을수 없었으며 또 상소를 해보았자 통하지 않았다.
일제가 류포시킨 《민생단》침투설은 당과 대중단체군대의 모든 책임있는 자리를 모두 자파일색으로 갈아치우고싶어하는 사람들의 패권주의적이며 출세주의적인 욕구에 불을 붙여주는 인화물질과 같은것이였다그들이 《민생단》의 이름을 걸고 올리는 천정부지의 《숙반》(숙청)실적은 유격구의 혁명력량을 모조리 교살해치우려는 모략가들에게 끝없는 리득을 가져다주고말았다.
결국은 적아가 합세하여 유격구를 마구 짓뭉개놓은셈이다이런 기괴한 결탁은 세계의 어느 혁명전쟁사에서도 찾아볼수 없을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김일성주석은 엠엘파나 화요파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혐오했으며 그들과 싸우는것이 항일유격활동보다 더 어려웠다고 술회하고있다.
이들 좌경기회주의자들은 만주일대에서 5. 30폭동을 통해 신망을 잃어가고있던 상태였다. 5. 30폭동이란 극단좌경분자들이 조그마한 땅과 재산을 가지고있던 사람들도 무턱대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김일성주석은 돈이 있고없고의 여부를 가지고 사람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한다사람을 중심으로 보라는것이다애국애족애민이 있으면 지주라도 한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것이다그래서 김일성주석은 돈있는자는 돈으로지식있는자는 지식으로라는 구호를 제창한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의 주변에는 장울화김정부 같은 갑부들도 있었고 그들의 도움도 받았던것이다나는 주체사상의 《사람중심》사상이 여기서도 유래한다고 본다.
2004년 나는 만주 연길에서 문익환목사님 방북 15주년기념 학자들의 통일토론회를 북측대표들과 함께 치른적이 있다우리 일행은 룡정 일송정에 올랐다그런데 《선구자》비석의 비문은 모두 회로 덧칠되여있었으며 바위에 새겨진 《고향의 봄》 역시 마찬가지였다사연을 물어보니 남쪽의 친일청산단체의 소행이라고 한다《선구자》 작사작곡가 윤해영과 조두남이 친일행위를 했기때문이라는것이다.
가장 궁금한것은 같이 간 북측인사들이 이런 행위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그분들의 의외의 대답은 북에서는 이미 인민대중에게 익숙해진 노래에 대해서는 리념과 사상의 여부를 떠나 그대로 부르게 한다는것이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런 북의 태도가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사건에서 보여준 태도와 먼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남쪽의 진보진영의 친일청산이 옳은것이지만 그것이 교조적이 될 때에는 반《민생단》사건과 같은 과오를 범할수 있다는것이다.
서로 남의 방석 빼앗아 차지하기에 급급한 인사들그래서 통일운동한다는 단체가 갈가리 갈라지는 이 반복되는 력사의 현실앞에서 우리는 착잡해지지 않을수 없다.
미일은 전보다 더 교활한 수법으로 우리 남북민족을 리간질하고 이에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안일에 눈이 어두운 무리들이 놀아나고있다하나도 달라진것이 없다그래서 《민생단》사건은 《먼 후날의 어제된 일》이기도 하다.
 여기 적의 적마저 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자신마저 이 악순환의 고리속에 몸을 던지며 《민생단》이란 십자가를 지고 훈춘연길의 골고다길을 걸어 왕청법정에 우뚝 서 민족과 민생의 상처난 량날개를 감싼 한 거인이 있었다.





《너 거기 있었는가 그때에》 《보도련맹》사건을 회억하며

1932 7 14일 《민생단》은 해체되였지만 향후 3년간 반《민생단》투쟁은 계속되였다.
나는 회고록 4권에 실린 반《민생단》사건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것이 이 땅에 살아온 녀성들의 운명이였다아마도 인류력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단》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운명이 녀성들의 그것과 어쩌면 같기때문이다.
우리 말 속담에 《녀자는 잘나도 욕먹고 못나도 욕먹는다.》가 있다이 속담은 남성가부장적사회에서 녀성들이 남성들한테 당하면서 살았던 구속적상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있다같은 녀성끼리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고 《밥을 안 주면 굶겨죽이려 한다 하고 밥을 주면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것과 같은 경우녀성이 관능적이면 요괴라 하고 똑똑하면 여우라고 하는 경우이를 두고 《이중구속적》이라 한다일본어의 《이지메》같은것이 이에 해당할것이다.
쟝느 다르크는 나라를 구하고도 마녀로 몰려 죽게 되였다리유인즉 녀자같은 존재가 애국심이 있다는것은 마녀라는 증거가 된다는것이다중세기동안 똑똑한 녀성수학자들이 수없이 이렇게 수난을 당하였다《피타고라스의 바지》란 책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있다녀성이 당했던 이런 상황도 《이중구속적》이다.
당시 《민생단》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중구속적상황을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통하여보면 유격대의 식사를 보장해주는 작식대원이 밥을 설군것도 《민생단》으로 몰릴수 있는 리유가 되였고 밥에 돌이 섞이거나 물에 밥을 말아먹여도 유격구의 인민들을 병들게 하려 한 증거로 되였으며 《민생단》의 작용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는 조건으로 되였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설사를 하면 전투력을 약화시킨다고 <민생단>, 한숨을 쉬면 혁명의식을 마비시킨다고 <민생단>, 오발을 하면 적들에게 유격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는 말을 하면 민족주의를 고취한다고 <민생단>, 일을 잘하면 정체를 숨기려는 수작이라고 <민생단>…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였다이런 기준에서 보면 <민생단>으로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4 18페지)
《민생단》사건이 있은지 근 40년이 지난 1969년 미국의 그레고리 베이츤은 정신병리학과 의사소통리론에 이중구속론을 적용하여 노벨상을 받는다그리고 그는 촘스키와 함께 미국대학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가 되였다.
나는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많은 감사의 념을 갖게 되였다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리론들을 적용해볼수 있는 무궁무진한 소재들을 거기서 발견할수 있었기때문이다그동안 학자들예술인들에게 《보안법》이란 족쇄를 풀어 마음대로 회고록을 읽게 해주었더라면 수많은 문화콘텐츠를 거기서 발굴해 국익에 보탬을 주었을텐데.
베이츤은 《이중구속》이 성립하기 위한 요인들을 6가지로 손꼽고있다이중구속은 (1) 둘 혹은 그이상의 사람들이 상호 련관되여 만들어지며 그중에 《희생자》가 있어야 한다. (2) 반복적경험에 의하여 희생자는 그것이 정상적인 관습처럼 느껴지고만다. (3) 일차적부정형금지명령 《어떠어떠한것을 하지 말라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 (4) 이차적부정형금지명령 《내가 벌을 주더라도 그것을 벌로 생각하면 안돼.》가 따른다. (5) 희생자가 현장에서 도저히 피할수 없도록 삼차적부정형금지명령 《어떤 벌이라도 그것은 너를 위한것이니 감사해야 해. (6) 희생자가 드디여 자기가 구속을 받고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됨반《민생단》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례를 들면서 이상 6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해당하는지를그리고 다음에는 김일성사령관이 이 구속적과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안도훈춘연길화룡 네곳가운데 반《민생단》처형이 가장 극심한 곳은 화룡이였다.
고도라는 별명을 가진 화룡현의 반제동맹위원회 책임자는 재인강에 나가서 정치공작을 하다가 자위단원들에게 체포되여 30여명의 애국자들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나갔다자위단원들은 그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한사람한사람씩 목을 쳐서 죽였다고도도 물론 그런 형벌을 면할수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도의 목은 땅에 굴러떨어지지 않았다그대신 목의 살과 가죽이 훌렁 벗겨져서 등에 가붙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였다이것은 죽음 그자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치명상이였다고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적들은 사형장을 떠나가버리였다.
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형장에서 가까스로 일어난 그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면서 등에 가붙은 살가죽을 목에 끌어다붙이고 옷을 찢어 동여맨 다음 60여리의 험산준령을 배밀이로 기고 굴러서 마침내 어랑촌유격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고도의 상처가 완치되기도 전에 좌경분자들은 그를 군중심판장으로 끌어내였다그가 적의 주구로서 혁명대렬내에 깊숙이 잠복하려고 일부러 목에 상처를 내가지고 유격구로 돌아왔다는것이다좌경분자들은 고도의 《죄행》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심판장에 끌려나온 군중들은 그들의 판결을 한사람도 찬성하지 않았다결국 심판의 조직자들은 고도를 살려두고 일정한 기간 검열을 통해 그의 정체를 밝힌다는 판결을 내리였으나 뒤에 돌아가서 그를 암살해버렸다.
극좌좌경기회주의자들은 난다는 싸움군들만 골라서 처형해나간다《호미긁개》 별명을 가진 안태옥《새별눈》 박현숙 모두 《민생단》희생자들이다.
유격대원들에게 붙는 별명은 적들과 싸우다가 생긴 무용담에서 유래한다호미긁개란 총이 격발이 안되자 호미로 쳐서 격발시켰다고 붙여진 별명이다새별눈이란 춤과 노래를 잘 부르고 눈이 새별같이 빛나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호미등으로 격발기를 쳤으니 격발기가 손상을 입을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여 《민생단》으로 몰렸다귀중한 무기를 손상시키려 들어온 일본의 밀정이라는것이다.
《무지한 살륙으로 하여 왕청의 강들과 고동하의 물이 선혈로 걸어지고 간도의 어느 골짜기에서나 통곡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무의식군중들은 자연히 혁명을 버리고 적구나 무인지경으로 도주하게 되였다혁명을 하려고 왔다가 혁명한테서 구박을 당하고 허공중에 뜬 신세가 되였으니 그들이 깃을 붙이고 살아갈 곳은 과연 어데란 말인가혁명이란 살기 위해서 하는것이지 죽기 위해서 하는것은 아니다살아도 사람답게 잘살기 위해서 하는것이 혁명이며 죽어도 정의를 위해 한몸을 아낌없이 바치다가 싸움터에서 값있게 죽어 영생을 얻는것이 혁명이다.(4 25페지)
독백같이 들리는 한 인간 혁명가의 자조어린 이 말은 그의 가슴에서 피고름이 터져나오는 울음이다이처럼 처절할수 있을가어느 혁명사에 이런 기록이 다 있단 말인가호지명의체 게바라의 평전 어디에서도 읽을수 없는 차라리 한갖 소설의 한구절이였으면
좌경기회주의자들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학살처형하던 처절한 현장들을 회고하면서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쓰고있다.
《만사를 <민생단>의 작간으로 보는 불신의 감시경밑에서 자기를 건져낼수 있는 최대의 보신책은 사실 아무 일에도 참견하지 않으며 보고서도 못본척 하는것이였다그러나 나는 그른것을 보고서도 그르다고 말할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고 구태여 살 필요조차 없는 생명없는 생명이라는 제나름의 배짱을 가지고 우리가 불의라고 보는 모든것을 향하여 반기를 들었다.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면 그것이 무슨 혁명가이겠는가나는 <숙반>의 회오리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우리가 한몸을 내대고 투쟁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밀어제낄수 있다고 확신하였다.(4 3940페지)
흑인 령가가운데 우리에게 깊은 령감을 주는 곡인 《너 거기 있었는가 그때에》가 있다예수의 수난절기간에 가장 많이 불리는 곡가운데 하나이다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너 거기 있었는가그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올라갈 때에 너는 너 일신상의 안전때문에 외면하지 않았는가하고 량심의 고동을 치게 하는 곡이다.
김일성사령관이 만약에 그 현장을 외면하고 고개를 딴 방향으로 돌렸더라면 그는 결코 나라를 세울수도 없었고 세웠다 하더라도 50성상을 이끌어올수도 없었을것이다.
우리에게 새삼 알려진 《보도련맹》은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에 조직된 단체이다. 1949년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련맹》이다.
《대한민국정부》 절대지지북정권 절대반대공산주의사상 배격분쇄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등의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말에는 가입자수가 30만명에 달했고서울에만도 거의 2만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락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였으며 지역별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6. 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후퇴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 25전쟁중 최초의 집단민간인학살을 일으켰다.
력사는 반복되고있다그런데 바로 《반공》우익단체인 《국민보도련맹》이 리승만의 우익에 의하여 약 30만명이 학살당했다. 6. 25발발 3일후부터 《보도련맹》가입자들을 모조리 잡아 학살을 하기 시작한다이는 최근 1950년 전쟁발발당시 헌병대 6사단 상사로 《보도련맹원》처형과정에 참여했던 김만식(84)씨의 증언으로 리승만의 직접명령에 의하여 자행되였다는것이 확인됐다당시 《보도련맹원》처형과정에 직접 참여한 헌병대초급간부의 첫 증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도련맹》사건은 반《민생단》사건과 일란성쌍둥이와 같다하나는 극좌좌경들이 좌익을 학살한 사건이라면 《보도련맹》사건은 그 반대로 우익이 우익을 죽인 사건이다그 혐의마저 비슷하다.김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도련맹원으로 끌려가 죽은 사람들중에는 아주 순박하고 어진 평범한 시민과 농민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국가명령에 따라 처형집행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말했다그런데 놀라운것은 리승만과 김창룡 등 수하들이 이 수법을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련맹》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민생단》사건과 한가지 다른 점도 있다한 사건은 지도자가 있어 억울하게 죽어가는 인민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아주었지만 다른 한 사건은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앞장서 진실자체도 구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날 아침 아버지가 《보도련맹》사건으로 죽었다고 간첩루명을 쓰고 5년간 옥살이를 한 그의 아들 김양기씨의 무죄가 군과거사우에서 밝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같은 날 1991년에 있었던 강기훈씨의 유서대필루명도 벗겨졌다.
금년 12 19일에도 이중구속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풀어줄 지도자가 나타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이런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반공(反共)》은 한갖 공념불이 되고말것이다종교인사 강증산은 《모기 한마리라도 억울하게 죽으면 한이 맺힌다.》고 했다해방정국의 최대과제는 바로 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푸는 과정이여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 력사는 한을 겹겹이 쌓이게 하는 력사였다맺힌 한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주체료법(Juche Therapy)》과 장포리를 살린 경우

단 한목숨이라도 살리려고

회고록 4권 전반부는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으로 몰려 죽어가는 동지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심신을 다 바치는 장면들로 점철돼있다어제까지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하루아침에 일본밀정으로 몰려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맞고는 결국 처형되고마는 장면앞에 《정면대결》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하고 행동으로 나선다.
김일성사령관은 1932 10월 어느날 왕청에 체류하는 동안 《민생단》혐의로 구류된 리종진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당장 중지를 명령한다.
연길훈춘일대의 사람들속에서는 《김일성그 사람이 무슨 화를 입으려구 그런 참견을 했을가물불을 모르는구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아직 왕청맛을 잘 몰라서 그래어쨌든 담은 큰 사람이야.》 하고 수군거린다.
결국 좌경분자들은 김일성사령관을 《민생단》으로 볼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검질기게 애를 썼다다름아닌 1933년 겨울 도문지주를 통하여 군복 500벌을 만들수 있는 군복천과 면화를 해결해 그것으로 구국군의 군복을 새로 해입힌것을 두고 지주와 내통했으니 이것은 《민생단》작용이 분명하다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그때를 두고 《구국군과 같은 우군의 협력이 없이 혁명군의 힘만으로 고군독전해서는 유격구를 유지해나가기가 곤난하였다.(4 33페지)고 회고하고있다김일성사령관이 이와 같이 지주와 통하면서 반《민생단》투쟁을 잘하지 않기때문에 유격구안에 《민생단》이 많이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단 한사람이라도 살릴수 있다면 이런따위의 위협이나 협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이름까지 걸고들며 그 무슨 책임을 운운한것은 사실 동만땅에서 발언권이 있는 조선족출신 간부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다 제거해버리려는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4 33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그들의 말귀와 눈치를 다 꿰뚫어보고있었던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강하다

교회당안에서 《주여주여!》 하면서 복달라고 비는것은 종교가 아니다력사의 현장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분노에서 나온 감정에서 진정한 종교는 시작한다에짚트황실에서 황태자같이 자란 모세가 어느날 거리에서 에짚트인이 자기 동족을 구타하는것을 보고 그 에짚트인을 돌로 쳐 모래에 묻고 미디안으로 도망친다진정한 의미에서 유태교 유일신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그가 시온산에서 신을 만난것은 력사를 신비화시킨 후 사건에 불과하다.
만약에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그 시원은 김일성사령관이 반《민생단》사건에 정면대결하는 분노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주장하고싶다그렇다면 주체사상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본다.
반《민생단》사건에 정면대결해나선 김일성사령관은 극좌좌경분자들에게 이렇게 추궁한다.
<민생단>을 잡아내려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똑똑히 잡아낼것이지 하필 왜 이 산속에서 배를 곯으며 혁명을 하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껴버리는가이것이 이상하지 않는가.(4 34페지)
이에 대한 극좌좌경분자들의 반응은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것이였다.
여기에 김일성사령관은 길림으로 공부하러 떠나던 이후 인생의 두번째 모험을 한다좋다그렇다면 내가 직접 혐의자들을 만나보겠다그것도 당신들의 립회하에 그렇게 하겠다고 도전장을 낸다이러한 김일성사령관의 제의에 현간부들도 별 이의를 제기할수 없었다인간은 견디지 못할 공포앞에서는 그만 질려버리고만다동물들도 천적앞에서 충분히 도망을 칠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경우 잡혀죽는것은 자기의 공포에 자기자신이 져버리기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데 대부분 그것을 못하고만다밀림에서 살아남는 동물들이란 결국 공포자체에 도전하는것들이다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생명체만이 경험할수 있는 이런 역설적인 도전법을 아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외인부대가 철수하면 죽을듯이 비굴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
적과의 정면대결그것은 1930년대 김일성사령관이 남긴 위대한 정신적유산이다

의미치료법 (logo therapy)

김일성사령관은 자신도 《민생단》밀정은 반대한다.
그러나 밀정이라고 단정하는데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것이 김일성사령관의 지론이다여기서 말하는 과학적근거라고 하는것을 현대심리치료법으로 볼 때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유태인학자 빅터 프랭클이 개발한 《의미치료법(logo therapy)》에 해당한다고 본다.
나는 김일성사령관이 과학적근거하에 동지들을 반《민생단》마녀사냥에서 한사람한사람 살려내는 기법을 의미치료라는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려 한다.
2차대전이후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력사적인 산경험들을 콘텐츠화하여 노벨상도 타고 그것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삼고있다노벨문학상을 탄 베이유의 《밤(Night)》이란 소설은 나치스수용소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것이다그리고 《홀로코스트》는 유태인의 고유문화유산이 되여버렸다미국회의사당옆에 있는 유태인 홀로코스트박물관은 가장 관광객이 많은 곳가운데 하나이다.
그 무엇보다 여기서 소개하려고 하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법은 그 심리치료법이 탁월하여 우리 나라에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고 그의 저서들이 다수 번역소개되였다의미치료법은 죽음의 수용소 같은 곳에서 극한경험을 하지 않으면 창안해낼수 없는 창의적인 리론이다프랭클자신이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남았기때문에 그의 리론은 한결 생동감을 주고있다.
의미치료의 기법을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역설》을 치료법에 도입하는것이다두려워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하도록 부추기는 기법이다위험은 피해야 하는데 오히려 달려들라는것이다다시말해서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라 하고 호랑이굴에 들어가라고 권하는 치료기법말이다.
사람들이 반《민생단》투쟁을 말하기조차 두려워할 때에 그것의 부당성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나오는것드디여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굴속으로 들어가는것을 두고 말하는것이다.
1935년 《민생단》문제로 회의가 열리는 다홍왜에 김일성사령관이 모든 사람들이 만류하는 그곳을 향해가는것이 바로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치료법이다.
지네라는 동물은 여러개의 발을 가지고있는데 천적을 만나 어느 하나의 발에 마비가 오면 그만 나머지 발들이 전부 얼어붙고만다는것이다그 다음차례는 죽음이다이러한것을 두고 프랭클은 《지레짐작 겁먹기》 혹은 《예비불안(anticipatory anxiety)》이라고 한다. 2차대전전야에 가장 많은 병사들이 자살한것이 이에 해당한다.
《지레짐작 겁먹기》란 몇단계로 발전하는데 (1) 공포의 징후가 생기면 (2) 공포증을 불러일으키고 (3) 공포증은 다시 징후를 유발하고 (4) 이 징후의 재발은 공포증을 강화한다무서운 적을 만났을 때에 인간이나 동물이 모두 같이 느끼는 과정이다벌레가 새를 만나면 피할수 있는데 질려버리면 그만 잡혀죽고만다그래서 현대갈등리론의 최첨단론은 《대결(confrontation)》이다이것이 문제를 푸는 첩경이 될수 있다는것이다무기에는 무기로말에는 말로.

장포리의 경우와 《주체료법》

김일성사령관은 《민생단》으로 몰린 동료부하들을 살리려고 그들을 만나볼 때에 조성된 정황을 피하는것이 아니라 이에 정면대결한다장룡산이 우선 심사의 대상이였다리수구골안의 《민생단》감옥에 갇혀있던 수감자들중에 《장포리》(본명 장룡산)라는 별명을 가진 중대장이 있었다장룡산은 밀가루반죽을 해놓고 밖에 나가서 한꺼번에 노루 8마리를 잡아다가 수제비국을 해먹을 정도로 사격술이 높아 이런 별명이 붙은것이다그가 소왕청방위전에서 혼자 쏘아잡은 적만 해도 아마 100명은 넘을것이라 한다.
그는 김일성사령관이 가장 아끼고 사랑해온 지휘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을 당황하게 만든것은 그에게 《민생단》이 옳은가고 물었을 때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데 있다이런 대답을 한다는것은 김일성사령관의 립장을 난처하게 만드는것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는것이였다.
《장포리똑똑히 대답해보라너 정말 <민생단>인가?(4 35페지)
장포리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민생단>입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짓기 위해당백전(當百錢)을 모으기 위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4대 문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새가 《찍하고》 우느냐《짹하고》 우느냐 묻고는 앞사람이 《찍》하니 죽이고 그래서 뒤사람은 《짹》하니 그래도 죽였다여기서 《찍짹》이란 말이 생겨났다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걸 무슨 대답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극도의 공포에서 나온 대답일것이다.
의미료법의 기교로 볼 때에 징후가 공포가 되고 다시 공포가 징후가 되여버려 징후가 공포를 재강화한 상태이다이 정도가 되면 악순환고리의 반복으로 《이다아니다》가 같아져버린다이를 두고 프랭클은 《되물림기제(feedback mechanism)》라 한다의미료법에서도 이런 기제를 푸는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운데 하나이다여기서 우리는 상담자로서의 김일성사령관의 솜씨를 볼 차례이다.
프랭클은 환자가 두려워하고있는 바로 그 일을 환자가 하도록 한다또한 일어나기를 소망하도록 고무하라고 한다지레짐작의 겁먹음을 찔러버리라고 권한다밤에 잠이 안올 때에 잠자려 하지 말고 잠 안자도 좋다고 해버리라는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민생단》이란 되물림기제에 걸린 부하동지들을 구해내려 정말 안깐힘을 쓴다다시 장포리에게 묻기를 《그럼 <민생단>노릇을 하면서 무엇때문에 왜놈새끼들은 수태 쏴죽였는가?(4 35페지)라고 한다.
장포리의 진술을 들어보려고 감옥까지 따라와 김일성사령관을 모해하려던 좌경분자들은 모두 댕댕한 표정으로 김일성사령관을 지켜보고있었다.
김일성사령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장포리를 조리있게 타일렀다.
《이것 보라장포리, <민생단>이라는거야 일본놈들을 옹호하는것이고 또 일본놈들이 만들어낸 반동조직인데 네가 <민생단>이라면 그놈들을 100명이상이나 쏘아잡았다는게 이상하지 않는가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이야 바른대로 해야 할게 아닌가솔직하게 말해보라.(4 35페지)
장포리는 그제야 김일성사령관의 손을 붙들고 오열을 터뜨리면서 목이 꺽꺽 메는 하소연을 하면서 《나야 무슨 까닭으로 <민생단>이 되겠소아니라고 대답해도 들어주지 않고 자꾸 두드려패니 다른 수가 없어 <민생단>이라구 했소대장얼굴에 먹칠을 해서 죄송스럽소.》 한다징후에서 공포에로 그리고 공포가 다시 징후가 되는 4단계의 과정을 역으로 거스르면서 장포리로 하여금 공포에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하여 공포에서 해방되도록 한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장포리가 공포에서 해방된것을 확인한 다음 《내 얼굴에 흙칠을 하건 먹칠을 하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네가 주리를 트는 폭군들앞에서는 <민생단>이라고 대답하고 내앞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주대없는 인간이라는데 있다나에게는 한입으로 두가지 말을 하는 겁쟁이가 필요없다.(4 36페지)라고 선언한다.
사실 이것은 김일성사령관이 장포리의 마음을 위로한 후 그가 용기를 다시 회복했다는것을 확인하고 주위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말일수 있다.
그때의 분위기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얼마나 노기등등해서 <감옥>문을 나섰던지 좌경분자들은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였다.(4 36페지)
장포리석방에 기선을 잡은 김일성사령관은 《동만특위》의 반《민생단》투쟁을 주도하고있던 동장영을 찾아가 《내 보기에는 당신들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민생단>투쟁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함부로 잡아가둘수 있는가<민생단>투쟁은 민주주의적으로 해야 한다상층에 있는 몇몇 권력자들의 독단이 아니라 대중의 토의를 거쳐 적아를 정확히 식별해내야 한다고문과 위협의 방법으로 없는 <민생단>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4 36페지)고 한바탕 항의를 한다.
《지금 이 왕청에서 장포리를 <민생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당신들밖에 없다장포리는 내가 목숨을 걸고 보증하니 당장 석방하는것이 좋겠다.(4 36페지)
그후 김일성사령관은 좌경분자들에게 정치부의 승인이 없이 유격대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치게 하지 못한다고 선포한 다음 부대에 돌아와 장포리를 《숙반》지휘부에 제멋대로 넘겨준 지휘관을 처벌하였다그날 동만특위에서는 김일성사령관의 요구대로 장포리를 석방하였다장포리는 그후 녕안현 주지툰이라는 곳에 파견되여 식량공작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싸웠다.

의미치료와 《주체료법》의 비교

나는 김일성사령관의 이러한 문제해결방법을 《주체료법(Juche Therapy)》이라고 학명화할것을 제의한다김일성사령관은 반《민생단》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이 주체를 세우지 못했기때문이라 단정하고있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체된 이후 중공당에 기대여 방석이나 하나 차지하려는 출세주의자들의 주대없는 행동에서 반《민생단》이 생겼다고 본것이다.
나라잃고 주권마저 잃은 가련한 겨레의 가슴속에 엄습해오는 공포의 징후를 피하지 말고 도전하는 모습을 장포리를 통해 보여준것이다오늘 북조선이 정치외교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과감한 태도를 보여주는것도 모두 주체료법과 멀지 않다고 본다북의 인민들이 모두김일성주석의 주체료법에 의해 주대있는 자아관을 가지고있으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고양이목에 먼저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다.
반면 남에는 미군이 나가면 당장 보호자잃은 유아같이 행동하는 인간군상들도 있다이들은 지금 모두 치료받아야 할 깊은 중증의 병에 걸려있다공포와 그 징후사이에서 되감기를 반복하는것은 분명히 병이다우리 사회의 지도급인물들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치료하지 않았다아니 지도급인물들이라는 사람들자신이 이 병에서 해방되지 못하고있다.





사생결단하여 구원한 한봉선의 생명


경강증에 걸린 인간군상들

아무리 강심장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극도의 공포분위기속에 갇히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불신을 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이런 인간군상들이 모인 사회를 《경강증에 걸린 사회》라고 한다.
해방후 이런 증상이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것이 마을 공동우물에 누가 약을 쳤다는 소문이였을것이다그 당시를 살았던 지금의 60대이상은 이런 소문을 한두번은 들었을것이다.
그럼 누가 우물에 약을 쳤는가이때에 경강증에 걸린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민생단》공포에 질려 극도의 심리적인 불안상태에 있던 동만조선인부락에 례의 이런 희생자가 하나 생겼다.
김일성사령관의 유격부대가 가야허라는 곳에 주둔해있을 때의 일이다도문부근에서 끌고온 소를 잡아 군인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먹인적이 있는데 그 소고기를 먹고 많은 사람들이 설사에 걸려 고생하였다김일성사령관의 숙소로 사람들이 몰려와 《민생단》이 우물에 독약을 쳐서 전부 중독되였는데 무리죽음을 하게 되였다고 야단법석이였다사실이라면 부대전원이 전멸될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김일성주석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아무리 시간이 경과하여도 내자신은 전혀 배가 아파나지 않는것이였다응당 있게 되리라고 예측했던 적의 출동도 없었다.
얼마후 마을을 순찰하던 소대장이 우물에 독약을 친 <민생단>을 찾아냈다고 하면서 키가 장총기장만큼 되는 아이를 나한테로 데려왔다그 아이가 바로 문제의 박창길이였다.(4 3738페지)
소대장이 하는 말이 그가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죄를 솔직히 인정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창길이와 몇시간동안 담화를 하였다창길이는 내앞에서도 자기의 <>를 인정하였다그러나 나중에는 울면서 그것을 부정하였다그가 처음에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를 시인한것은 자기에게 독약을 쳤다는 험턱을 억지로 들씌우는 마을아낙네들에 대한 반발이였다.(4 38페지)
진정한 《울음》과 《웃음》은 그 구조가 같은것이다우리 말은 이와 같이 역설을 표현하기 알맞는 구조를 가지고있다울음이 없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애는 약을 치지 않았다그러면 누가 약을 쳤는가여러분들가운데는 약을 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약을 먹은 사람도 없다있다면 설사를 만나서 하루이틀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뿐이다배앓이를 한것은 오래간만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탓이다그러니 여기에 <민생단>문제라는것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을수도 없다나는 오늘 이자리에서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주던 창길이를 유격대에 받아들인다는것을 선포한다.(4 3839페지)
마을사람들은 모두 김일성사령관의 연설을 듣고 울음바다가 되였다박창길이를 《민생단》으로 몰아주던 녀자들까지도 다 흐느껴울었다이와 같이 김일성사령관의 주체료법은 집단적인 효과를 내여 그동안 《민생단》공포에 사로잡혀 경강증에 걸려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통곡을 하였다.
《박창길은 그후 유격대에 입대하여 소왕청방위전투에서 영용하게 싸웠다.》고 김일성주석은 회고하고있다.
경강증이 변하면 그것이 령혼의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이 된다위대한 령혼의 치유자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이다주체료법이란 궁극적으로 인간령혼의 정화작업을 하여 주대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료법이라 할수 있다.
김일성주석은 이와 같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상처난 령혼을 치유하는 치료자였다.

너는 의미있는 존재사랑받기 위해 태여난 존재

우리 인간들은 자기자신자체를 모르는 존재이기때문에 자기의 슬픔이나 기쁨 그자체를 모른다바로 그것자체를 아는것을 두고 《의미》를 안다고 하는것이다불안이나 공포 그자체가 병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것이 병이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병은 해소된다는것이 의미치료의 기법이다.《아는것을 다시 아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때에 다시 아는것은 처음 아는것과는 정반대일수 있다례를 들면 인생의 쓴맛의 의미를 파악하면 쓴것이 아니고 단맛이라는것을 알게 되는것과도 같다그래서 의미치료를 일명 《역설알기》라고도 한다프랭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자살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역설알기치료기법을 통해 인생의 새 삶을 살게 하였던것이다.
의미치료법은 그래서 《역설적의도》라고 한다사실 이런 역설적의도는 죽음의 수용소라든지 《민생단》감옥같은 극한상황을 경험한 곳에서만 가능해진다《극즉반(極卽反)》이란 역의 론리도 여기서 나온것이다.
앞에서 다뤘던 장포리와 박창길 량자의 공통점은 《나는 <민생단>이다.》라고 자백한 점이라고 할수 있다만약에 이 두사람이 《나는 <민생단>이 아니다.》라고 했더라면 김일성사령관이 이들을 살리기가 더 어려워졌을것이다다시말해 김일성사령관이 립회한 동만특위 간부들을 설득시키기가 아주 어려워졌을것이다왜냐하면 이들이 《민생단》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내야 할 과제가 남기때문이다그러나 이 두사람이 현명하게도 자신이 《민생단》원이라고 말해버린것은 자포자기에서 나온 말일수도 있겠지만 《민생단》이라고 가정할 때에 오히려 그것을 뒤집기가 더 쉽기때문이다.
그리고 장포리와 박창길에게는 너는 귀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부각시킨것이다너는 조국의 부름받은 자랑스런 항일유격대원, 100명이나 왜놈들을 답새긴 명포수너는 우리가운데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것이다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울음이 터져나온것이다온 인민이 이런 감격속에 산다면 그런 인민은 행복하다.

한봉선에 주효한 세번의 주체료법

어느날 모간부가 김일성사령관을 찾아와 동만당 조직부장이 보내는 편지를 하나 전해주었다편지를 뜯어보니 한봉선이라는 대원이 《민생단》노릇을 크게 해 김일성사령관까지 해치려 하였는데 죄상으로 보아 마땅히 체포하여야 할 대상이니 당장 잡아내야 한다는 내용이였다.
김일성사령관자신이 한번 《민생단》혐의자를 처단하는것을 보자고 음모를 꾸민것이다.
그러나 좌경분자들의 이러한 속셈마저 읽어버린것이 김일성사령관의 남과 다른 점이다지도자는 항상 이러한 간신배나 모략군들의 속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고 속셈의 속셈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김일성사령관은 한봉선의 《죄상》은 엄청난것이였으나 편지를 읽어보니 어째서인지 거기에 씌여진 사연들에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우선 그가 <민생단>책동을 크게 벌린다는 사실이 몹시 허황해보이였다지금껏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움을 잘해온 한봉선이 무슨 망녕이 들어 <민생단>에 가담한단 말인가.
인격상으로 보더라도 그는 자기 상관을 모함하거나 살해하는것과 같은 악행을 할수 있는 포악한 성격의 사나이가 아니였다오히려 남들이 시샘을 하리만치 선량하고 례절이 밝은 미남자였다평상시 나와의 친분도 이만저만 두텁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준 상관을 해치려고 한다는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편지에 씌여진 사연들을 무턱대고 부정할수도 없었다조직부장이 아무려면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겠는가내 심중은 이래저래 불쾌해졌다.(4 4041페지)
김일성사령관은 편지를 가지고온 간부에게 자기가 직접 더 검열해보고 처리할테니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한다주위사람들은 한봉선이 언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마당에 그를 당장 잡아 처리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 시각 김일성사령관의 뇌리에서는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봉선이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했을가그가 무엇때문에 나를 죽이자고 할가나를 해칠 건덕지가 없지 않는가그를 특위에 보내지 않은것은 잘한 일이다그러나 그를 둬두었다가 정말로 후환이 생기면 야단이 아닌가.(4 41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김일성사령관은 생각한 끝에 한봉선을 검열해볼 결심을 한다.
며칠후 한봉선이 부름을 받고 지휘부에 나타난다그러나 한봉선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김일성사령관에게 물었다이때 오고간 대화를 여기에 옮겨적자.
《대장동지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혹시 적구공작에 내보내자고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맞혔소오늘 당장 삼차구에 가서 밀정 한놈을 붙잡아와야겠소동문 참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구만.
《후각이고 뭐고가 있습니까지난밤 꿈에 도문구경을 좀 했는데 우리 중대 친구들이 해몽하기를 적구공작에 나갈 징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그 친구들이 해몽을 멋있게 해낸셈이지요.
《그럼 내가 호신용권총을 한자루 줄테니 그걸 가지고 떠나도록 하오.
《총은 거치장스러워서 두고 가겠습니다입으로 구슬려서 데리고올테니 념려마십시오.
《그럼 총은 묻어두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오시오.
한봉선은 김일성사령관이 시킨대로 싸창 한자루를 중도에 묻어두고 삼차구시내에 들어가서 김일성사령관이 지명한 밀정을 만났다그 밀정을 구슬려서 유격구에 데리고 들어왔다.
김일성사령관은 밀정이 돌아갈 때에도 한봉선을 불러 그를 삼차구까지 데려다주라고 하였다.
물론 한봉선은 그 임무도 훌륭히 집행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김일성사령관은 동만특위의 간부들을 질책하였다.
《한봉선을 검열해보느라고 총을 주었는데 이 사람이 뛰지 않았다일본놈 개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개도 잡아왔다총과 탄알을 다 주었으니 나를 해치려면 얼마든지 해칠수 있었다그런데 그런짓은 하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과연 <민생단>이겠는가?(4 42페지)
이에 대한 동만당 간부들의 대답은 기가 막힌다동만당의 간부들은 《<민생단>도 그런 흉내는 낼수 있다그가 총을 가지고서도 도망치거나 당신을 해치지 않은것은 간부들의 신용을 얻어가지고 대렬에 더 깊이 침투하여 <민생단>작용을 큼직하게 해보자는것이다그러니 그를 믿을수 없다.》고 하였다정말 찍해도 짹해도 죽이기로 작정한것이 이 대화속에 여실히 나타나있다.
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은 한봉선에게 두번째 과업을 준다동만당 간부들의 완고한 마음을 다시한번 돌려보기 위해서이다그것은 도가선철길에 가서 폭발물을 묻고 오라는것이다한봉선은 이번에도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슴지 않고 공작지로 떠나갔다그는 모험심이 너무 강한것이 탈이였다김일성사령관이 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더니 그는 잡히면 잡히고 까짓것그런건 꿈만 합니다잡혀도 변절은 하지 않을테니 나를 믿어주십시오기껏해서 총살을 당하는것밖에 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그는 이 일도 잘하고 돌아왔다그러나 아직도 동만간부들은 트집을 건다.
세번째 검증은 한봉선을 돌격조에 망라시키는것이다만약에 한봉선이 《민생단》이라면 동만당 간부의 말대로 이번만은 속일수 없을것이였다김일성사령관부대는 그때 왕청주변의 어느 집단부락을 습격하였는데 그 전투가 아주 치렬했다돌격조를 책임진 한봉선은 선두에서 포대를 들이치다가 불행하게도 그만 한쪽손을 잃고말았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세차례의 검열을 통하여 한봉선이 《민생단》이 아니고 혁명에 충실한 사람이라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김일성사령관이 한봉선을 검열해보지 않고 그들에게 보냈더라면 그는 영낙없이 반동분자의 감투를 쓰고 처단되였을것이다.
실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김일성사령관은 신변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기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조선이 일본에 먹히는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을 한 주일공사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렬사의 법정통역을 부탁받자 리승만은 그가 테로범이라는 리유로 외면하고말았다알량한 그리스도교신앙을 내세워 전명운렬사를 살인자로 몰기까지 했다.

다홍왜로 갈 준비는 끝났다

김일성사령관이 좌경분자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한봉선을 구원해준것은 사실 생사를 건 아슬아슬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김일성주석은 《만일 그때 한봉선이 총을 가지고 어느 간부를 살해했거나 적구로 달아났더라면 나는 그를 신임한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었을것이다.(4 43페지)라고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회고하고있다.
그러고보면 김일성사령관자신도 자신을 내던지면서 한봉선구출작전에 나섰던것이다.
이것은 장포리와 박창길에 이어 세번째 모험이였다고 말할수 있다이런 모험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한마디의 명령이나 한번의 손짓에 따라 수십수백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험악한 《계급투쟁》의 마당에서 혁명가의 랭철한 리성과 분별력은 고사하고 초보적인 인정이나 의리마저 저버린 목석같은 인간들의 도전을 순간마다 당하면서도 그 어떤 압력에도 굽어들지 않고 자기 신념에 따라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행동할수 있었던것은 김일성사령관의 깨끗한 경력과 유격대지휘관으로서의 전투성과와 리론적뒤받침의 덕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이 김일성사령관은 일본제국주의늑대들과도 싸우는 마당에 내부의 《적》들과는 더 어려운 싸움을 해내지 않으면 안될 이중삼중의 난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31935년사이에 왕청을 중심으로 한 동만땅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나라를 세운 후 내우외환속에서도 인민들을 이끌어갈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되였다.
나는 주체사상의 기원을 정치적으로만 찾는것에 찬성하지 않는다나는 주로 《민생단》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보여준 철학그속에 심리치료료법 같은것도 있고 론리학과 같은것도 있다고 본다이런 다양성속에서도 한가지 공통된것은 《주체》를 세우는것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이제 생사를 각오하고 다홍왜로 가야 할 결단의 시각이 앞에 다가섰다.
김일성사령관이 동만당 간부들에게 사면초가같이 포위되여 내뿜는 열변은 《민생단》으로 몰려 사지에 있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한 불같은 정열 그자체였다.





극좌좌경론리를 꺾은 김일성해학

《님이여 강을 건느지 마시라》

반《민생단》투쟁의 사나운 회오리가 동만의 유격구들을 한창 휩쓸고있을 때인 1934년말1935년초는 김일성사령관이 병석에서 앓고있을 때였다. 1935 2월 일명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도하고 《다홍왜회의》라고도 하는 회의가 소집되였다《민생단》문제가 주안건이였다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을 비롯하여 왕윤성주수동조아범왕덕태종자운 등 거물급 동만당특위 간부 20여명이 대거 참석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다홍왜는 왕청부근의 지명으로 연길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뻐스로 가면 약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그 당시에 교통편도 없는 마당에 아픈 몸으로 그곳에 간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다홍왜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수십일간이나 내처 앓던 몸이여서 회의에 참가할만 한 기력은 없었으나 내가 요구한 회의이니 반드시 가야 하였다그런데 4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대내의 많은 동무들이 내가 다홍왜로 떠나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였다.(4 44페지)
4중대 정치지도원이 김일성사령관에게 《대장동지만주성당에서도 파견원이 오고 공청만주성위에서도 파견원이 왔다는데 어쩐지 심상치 않습니다진리가 아무리 대장동지편에 있다고 해도 어쨌든 대장동지는 혼자이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지 않습니까.》라고 극구 참가를 반대한다. 20  1, 그야말로 사면초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그러나 누구도 극좌좌경분자들과 정면대결하려는 김일성사령관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다홍왜회의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축복의 인사를 보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고무해주는 락천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이 나의 출발을 앞두고 그처럼 불안해한것은 무리가 아니였다.(4 45페지)
1935 2그때 동만일대의 험악한 분위기를 두고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 만주성당이 동만 각급 당부와 전체 당원들에게 전당을 볼쉐비크화하기 위하여 숙반공작과 좌우경을 반대하는 량조전선의 투쟁을 강하게 전개하여 당내에 침입한 반혁명분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파쟁주의민족주의사회개량주의를 청산구축할데 대한 비밀지령을 하달한 뒤였다이 지령이 하달된 후 동만 각급 당조직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더욱 극좌적으로 무자비하게 전개되였다.(4 45페지)
김일성사령관과 동지들이 나누는 대화의 장면은 우리 나라 고가사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련상케 한다공무도하가는 고조선시대의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가사문학가운데 하나이다사지를 향해 떠나려는 님을 말리며 녀인이 부른 노래이다여기 소개한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아
  (기어이 물을 건너시나이까)
물에 휩쓸려가시네
아 가신 님을 장차 어찌할고!

이 고가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사지로 가는 영웅남편과 이를 말리는 녀인간의 슬픈 노래와 시는 그리스신화와 중동일대의 신화에서도 나오기때문에 이 가사는 오래된것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백수광부(白首狂夫)로 알려진 남편이 물을 건너 사지로 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안해가 강가에서 부른 노래이다이 노래가 하도 슬퍼서 당시의 녀류음악가인 려옥(麗玉)에 의해 《공후인》으로 다시 창작되여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였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게 된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다고 한다.
《민생단》문제와 관련한 김일성사령관과 좌경분자들사이의 론쟁은 그때까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자연발생적인 여러 형태로 있어왔다그러나 1935년 당과 군대공청의 주요간부들이 다 모이는 다홍왜회의에서 있은 《민생단》과 관련한 론쟁은 공식적인 형태를 띠고 첨예하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에 있은 론쟁들과 다르다.
김일성주석은 이러한 론쟁이 벌어지게 될 다홍왜로 가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였던가에 대해그러나 단호히 그 길에 올랐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한다.
《좌경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하나라면 나를 반대하는 세력은 10이나 20명도 넘을수 있다. … 나는 좌경의 포위속에서 전체를 향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것이다론쟁은 나를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되고 회의장은 나를 매장해버리는 재판장으로도 변할수 있다. <민생단>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장해버리려는 극단한 시도도 있을 우려가 없지 않았다.(4 45페지)
《전우들은 바로 그 점을 제일 걱정하고있었다그들은 <숙반>을 주관하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돌심장들인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전우들은 사색이 되여 다홍왜로 가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길을 떠났다.(4 4546페지)
《동무들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4 46페지)

주체를 세우려 기어코 다홍왜로 떠나다

김일성사령관은 오대성과 다른 한명의 전령병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가 시작된지 이틀만에야 다홍왜에 도착하였다인민혁명군대원들의 엄한 경호조치가 실시되고있는 제8구 농민위원회 사무소에서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동만당단특위의 간부들이 김일성사령관을 맞아주었다이 너렁청한 사무소건물에서 바로 중국사람들이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 규정한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흔히 《다홍왜회의》라고 부르고있다한때 일부 력사가들이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라고도 하였다.
다홍왜회의는 약 10일가량 진행되였다회의도중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있어 출석자의 수자는 고르지 못하였다대부분은 중국사람들이였고 조선족출신으로는 김일성사령관과 송일림수산조동욱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뿐이였다조동욱은 회의 전기간 중국말을 잘 모르는 조선족간부들을 위해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당 특위위원의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론쟁이 열기를 띠기 시작한것은 만주성위 순시원 종자운이 보고에서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70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는 종래의 견해를 되풀이한 순간부터였다.
회의분위기는 종자운의 보고를 지지하는데로 기울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숙반공작위원회》를 강화해야겠다는 발언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숙청은 혁명으로 대내의 반혁명을 포위섬멸하는 특수전이라는 미사려구를 늘어놓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이 뿌려놓은 씨종자들을 보다 철저히 무자비하게 뿌리채 뽑아내야겠다고 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들의 론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여기서 질문에 대하여 질문으로 대응하는 론법이 동원된다질문에 답을 하면 반드시 그 답에 대한 반론이 나올수 있기때문에 김일성사령관은 상대방의 질문자체에 질문을 던져 그 질문자체가 답이 되도록 하는것이다상대방이 주장하는 론법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부닥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하고있는 나와 기타 조선동지들도 다 <민생단>으로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과 마주앉아 회의를 하는가우리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고 여기에 불러다놓고 정치를 상론하는가?(4 47페지)

김일성해학(諧謔)은 세기적

종자운의 론리대로라면 《민생단》 아닐 사람이 없으며 여기 당신들과 자리를 같이하고있는 사람들도 《민생단》이고 그러면 《민생단》과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고있는 꼴이라는것이다이 얼마나 멋진 론리인가?
김일성사령관은 종자운의 론리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말을 이끌어간다이것은 그의 여유있는 인성에서 자연히 나온것이다.
《민생단》과 마주앉아 《민생단》을 규탄한다는것은 웃음거리라는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유모아의 명수였고 그의 이런 론법이 그로 하여금 평생 락천가로 살게 한것이며 항일혁명 20년을 이끈 비결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얼마나 김일성사령관의 말이 종자운일당들의 자기 리탈을 일으키고있는지를 보자.
《동무들이 찍어놓은 그 수자속에는 싸움터에서 전사한 혁명가들도 포함되는가만일 포함된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항일전쟁에서 목숨을 바친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있겠는가그러면 일본놈들이 자기편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것으로 되는데 그들이 모처럼 키워놓은 <민생단>원들을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회의장을 호위하고있는 1중대의 8090%도 <민생단>으로 보는가?(4 4748페지)
《이 질문으로 하여 술렁거리던 회의장안에서는 갑자기 우리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차거운 정적이 깃들었다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집행석에 앉아있는 위증민의 얼굴만 쳐다보았다.(4 48페지)
 사실은 차거운 정적이지만 으스스 자기 의식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면의 웃음인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의 해학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다 알다싶이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 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이것 역시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년동안이나 만성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유격구들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힘에 겨운 싸움을 하여왔겠는가.
《조선혁명가들의 8090%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일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이자리에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없을것이다왜냐하면 이 회의장주변에서는 지금 조선사람들로 편성된 1중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우리들에 대한 경위임무를 수행하고있기때문이다이자리에는 몇해째 적들이 소멸하지 못해 애를 쓰는 동만지방의 이름난 혁명가들과 지도핵심들이 다 모여있다.당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1중대 성원들도 거의나 <민생단>이겠는데 그들이 좋은 총기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우리를 습격하여 일망타진하지 않는것이 이상하지 않는가?(4 4849페지)
모두가 《민생단》이라는 생억지의 제창자들은 이 물음에도 역시 함구무언이였다.
《보고에서는 유격구를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하고 당단조직도 <민생단>조직이라고 하면서 리용국은 <민생단왕청현당 책임자김명균은 <민생단왕청현 조직 및 군사책임자리상묵은 <민생단동만당 조직책주진은 인민혁명군 1 <민생단책임자박춘은 인민혁명군 <민생단>참모장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만당이나 왕청현당이나 인민혁명군 1사를 모두 <민생단>조직으로 보아도 되겠는가동만당 간부들을 <민생단>의 조종자지도자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는가?(4 49페지)
김일성사령관의 론리는 동만 온 바닥이 전부 《민생단》이라면 지금 다홍왜회의자체도 성립할수 없다고 한다다시말해서 《민생단》분자들이 포위한 상태에서 회의를 하고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자가당착이다웃음거리이다이러한 론리앞에 할 말을 잊을수밖에 없다.
지금도 북의 지도자들이 전개하고있는 론리는 자세히 분석해보면 모두 다홍왜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전개한 론리에서 과히 멀지 않다다시말해 상대방의 말자체가 자어상위에 걸리도록 만들어버린다는것이다.
이런 론리를 펴자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자어상위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화자자신의 도덕적청렴성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도덕의 기원은 바로 이런 역설적상황에 있다.
청중은 이 물음에도 침묵으로 대답하였다탁월한 론리로 동만당지도부의 론리가 억지임을 단숨에 보여준것이다.
성당파견원으로서 이 투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종합분석하고 평가할 사명을 걸머진 위증민은 당,단조직자체를 《민생단》조직으로 보는것은 착오이며 부분과 전체는 반드시 구별해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하여 장내에 조성된 긴장도를 약간 늦추어놓았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인민의 대부분을 《민생단》이라고 락인찍는것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이 견해는 이번회의에서 당장 시정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즉석에서 조아범의 반격을 받았다.
《당신은 무턱대고 <민생단>이 없다고만 하는데 그것은 주관이다감옥들에는 지금 수백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혀있다그들이 자기 입으로 <민생단>에 들었다고 자백하고있고 자기 손으로 자백서까지 쓰고있는데 그 자백과 자백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그래 당신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김일성사령관은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대는 혐의자들의 대다수는 <숙반>의 집행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적고통에 견디지 못해 가짜자백을 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아닌 <민생단>을 마구 만들어내고있다.(4 50페지)고 반격을 가한다.

자기 인민을 지키지 못하는 손금없는 지도자는 가라

이상이 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론박한 내용의 요약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김일성저작집》의 다홍왜회의 연설문을 참고하면 될것이다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보여준 태도는 강한 동족애의 발로라는 범위를 초월하며 조선공산당도 사라진 마당에 남의 집 안방에서동만간부들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였다는 점이다특히 종자운은 만주성위 순시원으로서 사실상 최고실력자라고 할수 있는 존재이다.
 12 19일 《대선》을 앞두고 력대 《대통령》후보들이 미국 눈치보고 미국을 찾아가 검증절차를 먼저 통과하려 앞을 다투었다.
최근 유력후보는 뒤구멍통로로 부쉬를 만나러 가려다가 불발탄이 된적이 있다어느 후보는 상승일로에 있다가 미국을 갔다온 후 지지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후보시절이나 당선이후에라도 손금이 다 닳도록 빌고 조아려야 《대통령》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유전인자가 되여있을 정도이다우리는 《대선》후보들의 손금을 한번 검증해보아야 한다관상보다 더 중요한것은 손금이다손금이 다 닳아없어진 후보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은 자기들자신도 손금이 다 닳아없어졌기때문이다.
후위의 가경흥(賈景興)은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느니그것은 내가 고관에게 절하지 않았기때문이다.》라고 했다.
요즘은 의자생활을 해 무릎굽혀 절할 기회는 없지만 대신에 량손을 하도 비벼대며 힘있는자에게 아첨을 하여 《손금이 없다.》로 바뀐것 같다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대아부굴종 그자체가 사라진것은 아니다.





랭소주의를 랭소한 조선의 별들

어떤 거짓도 거절했던 1974년 겨울

《어느날나는 감방벽에 기대앉아있었어요한없는 괴로움에 시달리고있었어요끝없는 분노에 몸을 떨고있었어요.

내 피를 부른다
거절하라고
그 어떤 거짓도 거절하라고

거절하라고그래요거절이죠어둠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빛속에 드러내라고거절하라고그래요휄드린의 시에 있어서의 그 빛의 수수께끼그것이 바로 이 거절이였어요정말 그래요.

우의 글은 시인 김지하가 옥중에서 쓴 저 유명한 《고행, 1974년》의 한구절이다. 34년이 지난2007 12월에 그의 글을 다시 읽는 기분은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마땅할것이다그러나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아무리 BBK 진실이 대낮의 해보다 명명백백해도 거짓을 거부하기는커녕 그 후보의 지지률은 고공행진을 하고있다김지하시인의 글이 전혀 뇌수를 치지 못하고있다어떤 거짓도 거절하라는 휄드린의 시도 넉두리같이 들리기만 한다도무지 어찌된 영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휄드린과 같은 도이췰란드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와 그의 출세작 《랭소적리성비판》(1983)에 있다그는 《우리 시대는 랭소의 시대가 됐다.》고 했다.
랭소주의란 어떤것이 옳지 못하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하고 심지어는 행하는자의 태도를 가리킨다랭소주의cynical》이란 말은 고대그리스철학 학파가운데 견유학파Cynicism》에서 유래한다.
견유학파란 이름은 《개와 같은 생활》때문에 유래한것이라고 한다견유학파는 원래 외적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생활을 하며 강인한 의지로 욕망을 억제하는것에 의하여 달성될수 있다고 주장하는것이 이 학파의 가르침이다이 학파는 후에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랭소주의를 의미하는 《시니시즘(cynicism)》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세론습속통상적인 도덕 등을 무시하는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랭소주의자들은 진실에 대해 쓴웃음을 짓는 태도를 취하는자들이다우리는 지금 우리자신도 모르게 이런 랭소주의자들이 되여있다는것이다.
2007 12월 《대통령선거》는 우리 시대의 이러한 랭소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거》가 되였다그러면 우리는 지금 시대정신에 장단과 박자를 맞추며 가고있는것인가이젠 김지하의 《오적》도 《타는 목마름》도 더이상 우리의 시적상상력을 자극할수도 사생취의(捨生取義)적도덕감각에 충격을 줄수도 없다.
B. C. 6세기경 크레타섬 사람들이 온통 나라가 전부 거짓말쟁이가 되여버려 주위나라 사람들로부터 《모든 크레타사람들은 거짓말쟁이》로 불리워지게 되였으며 하여 이 격구가 지금 전지구적인것으로 남았다.
그래서 지금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만약에 12 19일 그 후보가 당선이 되는 날 세계언론들은 《모든 코리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세기적신격구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그리고 어떤 언론들은 남쪽사람들은 랭소주의시대에 살아가고있는 대표적인 세계인들로 보도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다

랭소주의시대에선 악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당황하게 된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만행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적라라한 사진들과 함께 외부에 공개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그해 9월 만행의 중심인물 칩 프레더릭하사를 만난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37살의 칩이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2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남부 보수 침례교회에 나갔으며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령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학자들은 그가 자신의 근무환경에서 아무런 죄의식없이 학대행위를 저지를수 있는 정신병적성향의 증거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정신분렬증우울증히스테리를 비롯해 주요심리학적병리학과 관련해 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범위》에 속했다.
이렇게 랭소주의는 인간을 랭혹하게 만드는것이다남쪽사람들중 40대가 지금 그 후보에게 기만당하고있는 리유가 분명해졌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가?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기때문이다그래서 그것이 병이라는 증상을 모르고있는것이다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이것이 병이다지금 남쪽사람들중 절반이 이런 증상에 걸린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있다.
칩 같은 인간상은 미국의 대표적인 인간상이다소위 청교도정신으로 무장된 평범한 인간이기는 하나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모르는 랭소주의자이다그리고 이들은 남을 학대하는 랭소주의자들이다나는 미국이대통령을 비롯한 3억 인구들이 이 가학적랭소주의란 병에 걸려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그리고 1930년대 동만땅 극좌좌경분자들도 가학적랭소주의자들이다.

랭소주의는 아편보다 무서운 독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사회의 풍경에서 이 《랭소적리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시종 둘러대고 잡아떼고 모른체 하는 행태에 사법기관이 나서서 결백의 성의를 입혀주는것이 랭소주의의 한 모습이라면사법기관의 그런 행위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면죄부를 받은 후보를 눈 딱 감고 지지하는것이 랭소주의의 다른 모습이다슬로터다이크는 이 랭소주의를 《현대의 불행한 의식》이라고 칭하면서 이 불행한 의식이 파시즘의 터전이 됐다고 말한다. 2008년은 《한국》파시즘 원년이 될것인가?

1930년대 랭소주의지식인들과 친일행각

랭소주의는 랭소주의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무서운 이차적증상으로 변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그 하나는 남을 학대하는 가학증-사디즘으로 변하는것이고다른 하나는 자학증-마조히즘으로 변한다전자의 경우가 바로 동만일대에 등장한 반《민생단》투쟁이다.
자학적랭소주의가 조선의 지식인들을 엄습한것은 주로 1930년대말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의 배웠다 하는 식자들은 이젠 일본천하가 다되였다고 자포자기하고 술집과 기생집을 돌아다니면서 랭소주의에 빠진다최남선최린리광수윤치호 등 3. 1독립선언문을 기안작성할만큼 반일을 외우던 지식인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한다최남선은 일본의 발흥은 아시아의 신기운이라 했고,최린은 《내선일체》로 국민적적성을 발휘하자 했고윤치호는 조선과 일본은 같은 배를 탔다고 했다.
이 당시 자학적랭소주의를 대변하는 노래가 《희망가》이다나는 어릴 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저녁식사만 잡수시고는 사랑채에 누워 이 노래를 불렀기때문에 지금도 가사와 곡을 다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그런데 《희망가》인 이 노래는 제목이 《희망가》란것 이외에 가사내용속에는 희망이 전혀 없는 노래여서 항상 이상히 여겼다.
그렇다바로 그렇기때문에 이 노래는 그자체가 랭소주의이다비웃음과 쓴웃음을 겸한것이 바로 《랭소(冷笑)》이기때문이다그러나 이렇게라도 나라잃은 한을 승화시키지 않고는 못견디겠기때문에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우는 노래가 되였을것이다.

《희망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희망이 족할가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춘몽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희망이 족할가담소화락에 엄벙덤벙주색잡기에 침몰하야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가

2절 끝에 세상만사를 잊는것이 어찌 희망인지 도저히 리해가 안간다정말 저절로 랭소가 나올 정도이다최남선 등은 랭소주의란 병에 걸려 이 나라 젊은이들을 《대동아전쟁》으로 내몰았다.
2007 12 19그날이 끝나면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자못 궁금하다《희망가》나 다시 꺼내부르며 주색잡기에 침몰할것인가새 《대통령》경제《대통령》이 만들어주는 행복속에 부귀영화나 누릴건가?
12 19일은 음력으로 동지달 열흘이 되는 날이다아직 보름은 아니지만 달은 제법 커있을것이다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앉아 무엇을 생각할것인가가학적랭소주의자가 될것인가자학적랭소주의자가 될것인가?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1930 6 30일 카륜의 진명학교주변에는 작은 강이 하나 흐르고있었다여기에 나라잃고 절망과 시름을 달래며 그래도 잃은 조국 다시 찾고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게 잘사는 새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카륜회합이후 김일성사령관은 첫 당조직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했다.
이것은 희망없는 시대에 진정한 희망을 창조하려는 이 나라 청춘의 피가 분출할수 있는 오직 한길이였다. 1930년대에 혁명과 조국해방의 이 한길이 랭소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였을것이다가학도 자학도 모두 극복한 이 한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였다는것이다지금 이 나라 젊은이들이 랭소주의라는 병을 치유하는데 참고가 될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이보다 앞서 김일성사령관은 화성의숙 재학시절인 1926 10 17일 이미 《타도제국주의동맹》 즉 《ㅌㄷ》를 결성했다그후 김혁차광수들과 함께 밤이 이슥해져가는 들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 들으며 새벽이 오는줄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운다드디여 먼 동틀무렵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는것을 바라보고 부둥켜안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린다김혁은 즉석 작사작곡을 한다《아리랑》공연의 앞부분 장면에 나오는 《조선의 별》장면의 세 젊은이들이 바로 이들이다이들은 랭소주의마저 랭소해버림으로써 랭소주의를 극복했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
신음하는 조국산천 어리여오네
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간악한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제
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서구식민주주의이젠 끝

서양에서 도입한 민주주의는 지금 이 민족이 겨레의 가슴속에 큰 상처를 남기고있다오손도손 수천년 살아오던 마을공동체가 이 당저 당 하면서 아들과 아버지가 원쑤가 되고 이웃사촌끼리도 칼부림하는 선거판이 되였다손바닥만 한 땅덩어리가 갈가리 찢기여 한뽐도 안되는 섬진강폭이 천리만리같이 되여버렸다.
이런따위 민주주의를 더이상 하다간 정말 희망없다희망없는 《희망가》를 다시 부를것이다세상만사를 다 잊고 주색잡기에 침몰하며 사느냐아니면 저 만주벌판으로 달려가느냐어떻게 사는 길이 남은 선택의 길이냐이 길도 저 길도 다 가기 어려운것이 조선땅에 태여난 운명이냐 저주냐.





12. 19, 우리의 최대약점을 로출시킨 날

일본이 MD를 날리던 날우리는?

2007 12 18일 일본은 MD(미싸일방어)미싸일을 하늘에 날렸다그런데 바로 그날 우리 《대선》주자들은 자기 밭에 표갈이만 열중하고있었다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있는데 땅을 파는 두더지 같아보였다.
우리자신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있는것 같았다강토는 마치 보초병없이 곤한 잠에 든 군영같았다이 순간 외적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일것 같았다《경제만 살린다면》,이 구호아래 모든것이 매몰되고마는 정지점과 같은 순간이였다.
1933 9월 동녕현성전투직후 유격대원들이 어느 산간집에서 쉬고있을 때 일제《토벌군》이 공격하여 거의 희생당한 악몽이 되살아났다그때 방안에서는 일부 지휘관들이 극단한 《군사민주주의》에 발을 묶이워 전부대원들의 완전합의가 이루어져 투표로 결판이 난 다음에야 전투를 할수 있다고 고집하였다결과는 불보듯 하지 않았는가?
이는 은유적으로 보아 밖에서는 우리의 적국인 일본이 미싸일을 쏘아올리고있는데 안에서는 서구식민주주의란 국민직접선거에 란장판이 되여있는것과 무엇이 다른가미국마저 이젠 자기들이 만든 선거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지난번 고어는 일반투표에서는 이기고도 대법원판결에선 졌다이를 두고 부쉬는 선출된것이 아니고 선택되였다고 했다과연 우리 당선자도 검찰에 의해 선택된자라고 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12 19일은 리완용이 나타나도 경제살리기만 약속한다면 《대통령》이 될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온 세상에 로출시켰다《뉴욕 타임스》마저 이번 《선거》를 두고 《한국》사람들이 경제를 택할것인가 륜리를 택할것인가를 고민하는 《선거》라고 했다우리는 전자를 택하고말았다.
나는 이 선택이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최대한 로출시킨 선택이라고 평가하고싶다그렇다우리 주변국가들에게 《한국》인들은 경제적동물이고 이 나라는 《잘살게》만 해주면 무엇이든 통하는 나라라고 알리게 되였다그러면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만약에 주변국가들이 우리의 이런 약점을 잡고 흥정을 하려고 할 때라든지급소를 찌르는 경우 우리는 그자리에서 급살을 당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당한것이 바로 IMF 위기였다경제가 나쁠수록 우리는 륜리를 선택했었어야 쟝글의 법칙에서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을것이다.
리명박당선자가 만들어놓은 《경제살리기》라는 무대우에 모든 후보들이 다 기여올라가 서로 자기가 경제1인자라고 22일동안 목청을 높였다나중에는 리명박당선자가 하는 몸짓까지 따라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흉내를 낼 지경이였다.
나는 오늘 북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있다고 본다강한 《주체》의 힘말이다이것을 보지 못하고있는 자본주의경제동물들은 마치 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이 예단 아닌 예단을 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민족과 나라들은 정신력의 붕괴때문이지 경제력때문이 아니였다로마도 부귀영화를 누릴 때에 망하고말았다이 엄연한 력사의 법칙을 우리 국민들은 외면하고말았다그래서 지금이 위기가운데 위기라고 나는 판단한다.

우린 가난한 쏘크라테스가 아닌 살찐 돼지가 되길 선택했는가?

《매트릭스》란 영화는 쏘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개작한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윌리엄 어윈이 지적한 말이다.(어윈, 2003, 27) 궤변론자들이 퍼뜨린 거짓이 아테네사회를 엄습하고있을 때에 쏘크라테스는 대낮에 초불을 들고 진실을 찾아 방황하였다사기군 정치인들장사군들심지어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마저 쏘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에 량심의 가책을 받아 그가 눈에 가시같이 여겨졌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궤변론자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쏘크라테스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는것을 안다.(known unknown)》였다.
영화 《매트릭스》가 쏘크라테스의 삶을 재조명한 리유는 바로 이 두 말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네오는 거짓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쏘크라테스의 화신으로 자처한다쏘크라테스는 대다수 사람들의 찬성속에 잡혀 사형을 당하고말았다도덕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쏘크라테스가 되는것이 낫다.》고 했다매트릭스는 쏘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도 원용한다매트릭스란 동굴이다인간들은 동굴속에 갇혀 전혀 밖에 참다운 세계가 있다는것을 모른다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밖을 알수 있을뿐이다.
불교는 이를 꿈에 비유하여 인간은 꿈속에선 그것이 꿈이라는것을 모른다고 했다.
현대판으로 말하면 인간이 싸이버세계속에선 현실세계를 모른다는 뜻이다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만다는것이다혹시 이번 《대선》을 우리 국민모두 이런 동굴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치른것은 아닌지쏘크라테스는 바로 아테네시민들이 이 꿈에서 깨여나기를 바랐던것이다말로써 안되여 그는 죽음으로 대신하였다.

2007 12 19포스트모던의 원년?

폴 쟁크스는 1972 7 15일 오후 3 32분에 정확하게 포스트모던이 시작하였다고 했다이날에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푸르트 아이고 주거단지 건물들이 해체폭파되였기때문이라는것이다.(웨버먼, 2003, 261)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이 시작된 날은 2007 12 19일 오후 6시라고 본다.
아마도 력사는 나의 말에 동의하여 그렇게 기록할것이다그 리유는 다음과 같다.
반리명박후보들은 유세기간 내내 이번 《대선》을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고 했다다른 후보들도 리명박후보의 비도덕성을 닉슨과 비교하기도 하고 엔론사사장을 비교하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왜 도덕과 륜리가 쟁점화되지 못했을가?
그 리유는 이렇다서양사상사는 동양과 달리 류달리 쏘크라테스이후 《진리란 무엇이란》 질문을 던져왔다그러나 1932년 괴델은 수학에서마저 참이란 증명될수 없다는것을 증명하였다그 이후부턴 진실게임을 더이상 수학에서 벌리지 않았다.
남는것은 불확실성과 비결정성뿐이다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 후보는 리명박후보였다고 나는 본다이런 점에서 그는 이 시대가 어느 시대란걸 알고 그렇게도 자기가 자기를 두고도 거짓말을 할수 있었던것이다자기가 한 말을 두고도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그러나 국민들은 이것을 개의치 않았다포스트모더니티바로 이것이 그렇게 만든 리유이다.
우리 동양고전에는 진위(眞僞)란 말이 거의 없다주역 64괘가운데 진괘도 위괘도 없고선괘도 악괘도 없다그래서 서양은 동양을 보고 진위선악에 무디다고 한다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인간의 본성을 너무 모른 판단이다거짓말도 3천번만 하면 참말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참말로 변해버리는 리유이다리명박은 이런 점에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도 파악하였다자꾸 거짓말해라그러면 끝내 사람들이 믿게 될것이다참이란 생각자체는 참이 아니다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주문같이 암기하라그러면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된다.
엘리엇 애런슨은 《거짓말의 진화》(2007, 추수밭)에서 부정직한자들악인들위선자들이 어떻게 살아갈수 있는가질문을 던진다거짓말이 참말이 되고 참말이 거짓말이 되는 과정이 겹겹이 뒤섞여가면서 거짓말은 진화의 진화를 한다우리는 지금 《대선》을 치르면서 거짓말이 대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할것이다앞으로 거짓말은 진화하여 더 큰 거짓말이 생겨날것이다.
쉐익스피어는 《잘못을 변명하면 그 변명때문에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된다한가지 과실을 범한 사람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는것은 그때문이다현실을 현실그대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것이 가장 유익하다.》고 했다.
2008년초부터 특검이 시작될것이다리명박당선자가 국민들앞에 쉐익스피어의 이 말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의문이다이젠 당선자신분이기때문에 그의 거짓말이 우리모두의 거짓말이 될것이다그의 거짓말이 지금은 《대통령》이란 선물을 안겨다주어 그는 길하였다그러나 그의 거짓말이 특검에서도 이어져버린다면 그것이 우리모두에게 엄청난 불행 즉 흉을 안겨다줄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일차적인 참과 거짓을 묻지 않는 시대이다싸이버와 현실이 상호 되먹임을 하면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큰 혼돈속에 빠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거듭 말해 리명박후보는 이 시대정신을 가장 잘 알았고 이를 활용하여 지금 《대통령》당선자가 되였다.
그러면 그의 부도덕성은 이런 탈현대란 시대정신과 함께 합리화될수 있는가그렇다단 그의 거짓말이 만인에게 흉보다 길을 안겨다준다면미국사람들은 거짓말이 더 진화하기 전에 닉슨의 거짓말을 초장에 차단하고말았다그럼 우리도 초장에는 실패했지만 특검에선 가능할지?

독재자의 동굴속에 다시 기여든 코리언들

매트릭스안에 갇혀있는 주인공은 자기가 자신을 알지 못한다동굴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자기가 동굴안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있다싸이버중독에 빠지면 싸이버세계를 실제세계라고 생각해버린다.마음의 감옥에 갇혀있으면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저 하는 충동조차 느끼지 못한다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 아닌지 자각할수 있는가?
개인으로는 이를 두고 자페증이라 한다자페증환자는 《앉으라》하면 말을 따라서 《앉으라》 하지 행동으로 앉지를 못한다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때문이다자기가 자기 의식에서 차단당해있기때문이다지금 우린 무엇을 선택했는지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있다.
고대그리스사람들은 이와 같은 동굴속에 갇혀살면서 자기들을 아무리 거짓말로 조작을 해도 조작을 당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2007년 《한국》사회가 바로 이런 동굴과 같은 사회로 보아 한점 틀림이 없다고 나는 본다아무리 진실과 거짓을 비교해도 그 비교를 할수 있는 의식자체를 상실하고있기때문이다앞으로 특검이 남아있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인간군상속에서 큰 기대를 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40여년간 독재의 동굴 매트릭스속에 살다가 나와 겨우 10년간 자유를 맛보고 다시 이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 도피 (escape from freedom)》를 감행하였다다시 그 동굴속으로 들어가기로 결행을 한것이다이것이 2007년의 선택이다독재자가 만들어내는 인공프로그람의 행복한 무지속에서 사는것이 더 좋다고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간것이다.
매트릭스영화에서 네오는 모피어스 등의 도움으로 이 동굴로부터 탈출한다그러나 매트릭스속에서 무지의 행복속에 살 때와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어야 한다자유를 향유한다는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안 네오는 동굴속으로 되돌아갈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이렇게 고민을 하는것을 본 모피어스는 한때 그를 구출한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네오보다 먼저 탈출한 사이퍼는 끝내 동굴밖의 자유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굴로 되돌아가고만다사이퍼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자기를 매트릭스속에 가둔 그 독재세력에 다시 무릎을 꿇고만것이다동굴안에서 네오가 참이라고 믿었던것이 밖에서는 모두 거짓이다이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다쏘크라테스의 너자신을 알라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는 말은 바로 이런 네오나 사이퍼같이 동굴속에서 나온 사람들을 바깥자유세계에 잡아두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순간 닥쳐오는 고통을 견딜수 없어서 자기를 구출해준자를 원망한다그래서 아테네사람들은 쏘크라테스를 극형에 처하는데 동의한다.

파란 알약을 선택한 코리언들

영화에서 이런 자기가 갇힌 이 구조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주인공에게 알려주는자는 네오이다.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주면서 네오가 할 임무는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무의식속에 갇혀있는 인간을 해방시키는것이다그래서 네오는 쏘크라테스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쏘크라테스는 《변명》이란 글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누구라는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하루종일 멈추지 않고 사람들사이를 옮겨다니며 그들을 찔러 행동하게 하고 그들 각각을 설득하는 말파리같이 되고싶다.》고 했다쏘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성가신 질문을 고의적으로 던져 귀찮게 구는 말파리같이 행동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려 했다물질적인 향락에 안주하여 쾌락에 빠진 삶이 결코 지복이 아니라고 일깨운다.
영화에서 빨간 알약을 집으면 자신이 모르는것을 알고 자기자신을 의식하게 된다파란 알약은 그 반대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지금 우리 손에 무슨 색의 알약을 쥐여주었는가의식을 일깨워 거짓과 참을 구별할수 있게 하는 약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미국의 부쉬와 그의 정부는 미국사람들에게 파란 알약을 먹이였다그래서 그의 거짓말을 전혀 구별할수 없게 만들어 두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였다그러나 미국사람들은 네오같이 자기 의식을 회복하고 부쉬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여 금년선거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데는 7년이 걸렸다부쉬가 자기들을 속였다는것을 아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것이다.
다시 빨간 알약을 집어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아마 동굴속의 무지의 행복의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면 영원히 동굴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사실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수십억이였지만 겨우 깨여 밖으로 나온자는 네오와 사이퍼 등 소수이고 그중 사이퍼는 다시 되돌아가고말았다《국민성공시대 100만명 일자리 창출》이 기다리고있는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가고만것이다동굴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것이다.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된다

장황한 말들의 잔치가 남긴 결론은 주체의 문제이다거짓은 진화를 거듭하기때문에 관념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머리속으로는 참거짓을 분간할수 없다수학자들도 철학자들도 당연히 도달할수밖에 없는 종착역이다불확실성이란 종착역이다.
여기서 주체의 개입없이는 결국 거짓말은 끝없이 진화할수밖에 없고 거짓은 불행 즉 흉으로 갈수밖에 없다여기서 길을 선택하느냐 흉을 선택하느냐는것은 주체의 문제라는것이다.
김일성항일유격대는 그 어느 시기그 어느 장소에서도 없었던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는것을 경험하였다특히 하루아침에 《민생단》원으로 몰려 죽는것을 보고 진실과 거짓은 이미 객관적으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것이다.
반《민생단》투쟁을 체험하면서 김일성사령관은 주체를 더욱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게 다진다.
주체를 세우는것이 사람중심이며 경험에도 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그것을 함께 담지한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것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에 량세봉 같은 극우와도 손을 잡을수 있었고 도문지주한테서도 도움을 받을수 있었던것이다그러나 극좌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객관적인데 기준을 두고 민족주의와 지주들을 맹목적으로 배격했던것이다.





배움의 천리길책속에 길이 있다

두 장로《대통령》의 나라망친 추억

일본의 저명한 학자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세가지 관건을 제시한적이 있다.
첫째 부동산문제둘째 남북문제셋째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것이다그런데 이 세가지 문제에 다 깊이 관련이 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였다.
이 학자는 이 세가지가 잘못 풀리면 구한말의 위기를 다시 맞을것이라 경고까지 하고있다일본인학자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고있는것 같다.
벌써 들먹이는 부동산값 폭등그는 소망교회 장로인수위 구성주요인맥이 거의 같은 교회교인들뉴 라이트 같은 그리스도교 정치단체의 지원미국 그리스도교 보수강경파에 적극 후원을 받아 경색될 남북관계어쩌면 일본학자의 지적은 오늘의 《한국》을 두고 한 예언 같아보인다.
우리는 3명의 그리스도교 장로출신《대통령》을 갖게 되였다리승만김영삼 그리고 리명박이다.력대 《대통령》가운데 리승만과 김영삼은 최악의 《대통령》이였다리승만은 정치를김영삼은 경제를 망친것이 망국의 수준에 이르도록 망쳤다. 5년후 리명박은우리가 그리스도교를 경계하는 리유는 간단하지 않다과연 소망교회에 소망이 있을가?
이 학자는 말하기를 이 세가지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구한말과 같은 위기를 맞을것이라 했다남북문제 하나만 보면 리회창보다는 최악의 선택은 아닌것 같지만 이 세가지를 모두 고려하면 리명박은 최악의 선택인지 모른다적어도 리회창에겐 나머지 두가지 우려는 덜수 있었기때문이다.

분하고 억울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개표후 열흘이 지나가고있지만 우린 지금 정신적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있다다른 선거때와는 달리 몇가지 생각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의 뇌리를 짓누르고있기때문이다.
원통하다거짓말앞에 진실이 여름철 얼음고물보다 더 쉽게허무하게 녹아내린것이 원통하다세조의 잘못을 알고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죽은 사륙신의 원통함같은것이 가슴속을 쓸어내린다.
분하다친일매국노들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들에게 《정권》을 다시 내준것이 분하다나라잃고 비분강개 자살한 민영환의 분함같은것이 머리끝까지 치민다.
한스럽다리 소위 범여권 주자들이 끝까지 단일화하지 못한것은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것이다그래서 이 4인에 대한 국민들의 원망은 갈수록 쌓일것이다.
억울하다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로《정권》이 저질러놓은 잘못을 다 덤터기로 뒤집어쓰고 말 한마디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진보가 주저앉는것이 억울하다이건 완전히 루명을 뒤집어쓰고 꺾인것이다.

로무현을 위한 변명?

《한나라당》은 마치 훈련소에서 사격술을 배울 때에 목표물을 정조준하기 전에 가상목표물(가늠쇠)을 먼저 겨냥하는 조준선정렬을 하는 론리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였다.
가상목표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좌파정권》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등 구호였다로무현《정부》가 좌파라고이건 허구로 만들어놓은 가공물이다그러나 이 가공물이 과녁을 겨누는데 리용된것이다.
로무현《정부》는 《한국》정치사에 기이한 존재로 기록될것이다선거패인을 놓고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인해 로무현<정부>의 실패는 예정된 결과》라고 평가한다반면보수진영은 《로무현<정부>의 반시장적규제가 경제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실패》라는 결과는 한목소린데원인진단은 역설적으로 일치한다.
적의 적마저 적인 기이한 현상을 로무현《정부》가 만들었으며 이를 두고 이중구속적이라고 한다.다시말해서 적군으로부터도 적이고 우군으로부터도 적인 이런 기가 막힌 상황속에서 진보진영은 《선거》를 치른것이다이런 증상을 아마 사가들은 《로무현증상(Roh's Syndrome)》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나는 이 증상을 《어중이떠중이증상》이라고 재정의하고싶으며 《대통령》이 이 지경까지 될수밖에 없는 원인을 꼭 로무현자신에게서만 찾고싶지 않다.
아무리 반미자주외교를 하고싶어도 할수 없는것이 《한국》의 운명이다.
이라크파병 그리고 《한》미FTA 등 《한국》의 《대통령》이 자의로 결정할수 있는 권한이란 극히 제한적이다우리의 자주권이 없기때문이다이것이 로무현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리명박은 아예 이 자주권포기를 전제로 하고있기에 이런 문제로 《어중이떠중이증상》은 나타나지 않을것이다계속 미일예속관계만을 유지해도 그는 얼마든지 할 말이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로무현은 대미문제를 두고 후보자시절과 그 전후가 서로 상반되였기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것이다패인을 두고 이런 대미자주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시각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도가》를 다시 부르자

그럼변속기에로 어떻게 발을 옮길수 있는가진보에게 길도 있고 방법도 있다지금 총선출마차비를 할것이 아니다지금 나가면 공멸을 하고 회복불가능상태에 직면하고말것이다안된다다시 분렬의 분렬만 자초할뿐이다내공을 길러야 한다그것은 다시 손에 책을 드는것이다공부를 하고 배우는것이다.
좀 진부해보이는 제안일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길만이 희망이라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개한다.책을 읽는 길만이 지금 원통하고 분하고 억울한 가슴을 위로할수 있을것이다지금 보수가 제일 무서워하는것이 진보가 다시 공부하는것이다. 80년대 보수가 독재권력에 젖어 골이 비여있을 때에 진보는 책을 읽었던것이다그 힘으로 10년을 이끌어왔다.
《빼앗긴 10년》을 다시 찾자면 가속기를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변속기로 발을 옮겨 기틀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이렇게 할 때에 우리 진보는 다시 성공할수 있을것이다책을 읽어 내공을 길러라이 길만이 다시 살길이다.
시골에서 밭갈이를 하면서 친환경적생활태도를 몸에 익히고 밤이면 주경야독하는 심경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김인식(金仁湜)이 작사작곡한 《학도가》를 다시 부를 때이다《학도가》는 1905년 평양서문밖 소학교에서 련합운동회를 열 때 발표되였다.

《학도가》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벽상의 계종을 들어보아라소년이로(少年易老)에 학난성(學難成)하니일촌광음(一寸光陰)도 불가경(不可輕)일세청산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나고락락장송(落落長松큰 나무도깎아야만 동량(棟粱)되네공부하는 청년들아너의 기쁨 잊지 마라새벽달은 넘어가고동천조일(東天朝日비쳐온다

북의 《책읽기운동》에 공감하며

《통일뉴스》에 실린 북의 책읽기운동을 소개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학습에서 기본은 책을 많이 읽는것이라 강조하였다책읽기가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는 세가지 리유를 북의 《로동신문》은 11 9일호에서 소개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지식수준을 빨리 높이자면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하였다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는것이 왜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책읽기가 폭넓고 깊은 지식을 습득할수 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폭넓고 깊이있는 지식은 끊임없는 탐구와 독서를 통하여서만 습득할수 있는데 책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이룩해놓은 방대한 정신문화적재부들이 기록되여있다는것이다력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과 유명한 과학자발명가들은 례외없이 책을 많이 읽은 정열적인 독서가들이였다고 강조했다.
둘째책읽기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높은 지식의 탑을 쌓을수 있게 하는 대중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즉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유치원어린이로부터 늙은이까지남자이건 녀성이건,그가 학생이건 군인이건 로동자농민사무원이건 관계없이 책은 다 읽을수 있기에 책을 많이 읽고 정력적으로 탐구하면 누구나 현대과학기술의 요새를 점령할수 있다는것이다.
셋째책읽기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크게 받지 않는 합리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일생동안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는다면 참으로 많은 지식을 쌓을수 있다는것이다. (통일뉴스 2007.11.10)

평생 책을 사랑한 지도자와 《배움의 천리길》

일제는 학령기에 접어든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앗아가고말았다어린시절의 김일성주석도 례외는 아니였다조선을 알아야 애국자가 된다고 아버지 김형직선생은 12살 된 김일성주석을 혈혈단신으로 천리길팔도구에서 만경대로 돌려보낸다. 1923년 봄 창덕학교에 입학한다그러나 아버지의 투옥소식을 듣고 눈보라천리길을 다시 걸어 팔도구로 되돌아온다이를 두고 《배움의 천리길》《광복의 천리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움의 길은 또 단절되고만다. 1926 6월 아버지가 고문후유증으로 서거하자 1926년 여름가을사이에 화성의숙에서 수학한다화성의숙에 실망다시 1927년 길림육문중학교에 입학한다.그러나 끝내 졸업은 하지 못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유격활동 내내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화성의숙시절엔 김시우선생의 서가에서 리념서적들을육문중학교시절엔 상월선생의 서가에서 문학서적들을 빌려다 거의다 읽었다고 한다.
회고록에 딱 한번 꿈얘기가 나온다. 1940년대 대일작전회의에 참가하러 모스크바에 갔을 때 김정숙녀사가 큰방에 책을 가득 가져다놓고 김일성주석에게 이 책들을 마음대로 골라보십시오,이만한 책이면 사령관동지께서 일생동안 보아도 다 못 보실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꿈이였다이 꿈이야기를 김정숙녀사에게 들려주니 녀사가 웃으면서 좋은 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8 174175페지)
김일성사령관의 독서는 후날 나라를 세운 다음 큰 재산이 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주체사상을 창시하였으며 직접 《피바다》연극대본을 쓰기도 했다그리고 대원들에게는 직접 전투후 쉬는 틈을 타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이것이 오늘 북의 전주민 독서운동으로 련결되는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지금 저 새로 등장하는 보수세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이 독서이다바로 이것을 해야 우리가 저들을 이길수 있다독서를 하면 리명박의 허구가 눈에 보일것이다그리고 내공을 기르는데는 책만큼 첩경은 없다.


부동산그리스도교남북문제를 하나로 묶어 연구하라

거듭 강조해 책속에 살길있고책속에 희망이 있다안중근의사의 마지막유언도 《조선사람아 배우라》이였다무덤의 비석에 가면 망자 이름앞에 모두 《학생》이 씌여있다무덤속에서도 배우라는 뜻일것이다신년에 우리가 할 제일 처음과제는 책을 읽는것이다아는것이 힘배워야 산다책속에서 원통함도 분함도 억울함도 한꺼번에 씻어낼수 있다.
1980년대와 같이 편향된 지식의 섭취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말그대로 인문자연사회과학을 망라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그래야 평등파니 자주파니 하는 시대에 뒤진 넉두리가 사라질것이다우리의 독서는 먼저 우리의 력사를 바로 알고 나아가 세계력사를 아는것으로 시작하여 리명박의 공약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비판해나가는것이여야 한다그에게 두번다시 속지 않자면 책을 읽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같은 연구단체가 많이 나와 리명박의 부동산그리스도교 그리고 남북관계정책을 하나로 련결하여 파고들어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할것이다그 길만이 승리를 담보하는 첩경이다이 배움의 길로 나갈 때에 승리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것이다.





계승과 혁신의 원리 그리고 《실용주의》

북의 신년공동사설은 신선한 충격을 우리에게 던져주고있다.
2008년 공동사설에서 언급된 《력사적전환》의 의미는 그 폭과 깊이가 다르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말그대로 세기적사변이 예고되고있다.》는것이다.
신년사의 기조는 《계승성과 원칙성》을 지키자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미 맑스의 원칙주의와 그것의 적용 그리고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했으며 이 산경험속에서 원칙과 계승성이란 철학의 탄생 즉 주체사상의 탄생과 구현을 보게 된다.
북의 공동사설이란 조선로동당조선인민군청년동맹의 기관지가 함께 사설을 내는 형태로 지난해에 대한 총화와 새해에 대한 기조를 밝히는것을 의미한다.
2008년에 발표된 공동사설은 다분히 남의 《대통령》당선자 리명박의 《실용주의》로선에 대한 정치철학적대응이라고 할수 있다.
회고록 3권 제7 1절의 《보금자리》에서 김일성주석은 《계승과 혁신의 원리》(3 2페지)란 말을 사용하고있다원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상황에 변화해나갈것이냐는 정치철학인것이다이에 《통일뉴스》가 소개한 공동사설의 요지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세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승성과 원칙성》을 중시하는 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있다올해에도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줄기차게 전진하여온 우리의 강성대국건설위업은 새로운 력사적단계에 들어섰다.《당의 선군령도따라 력사의 모진 풍파와 시련을 헤쳐온 우리 식 사회주의는 끝없는 생기와 활력에 넘쳐 승승장구하고있으며 우리앞에는 강성대국건설의 승리의 날이 마중해오고있다.》고 밝히는 등 원칙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상황의 중요성을 천명한다《오늘의 현실은 6. 15통일시대의 흐름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로막을수 없으며 민족이 하나가 되여 힘차게 싸워나갈 때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실현할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있다.《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기지들을 철페하여야 한다.》며 남북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립장을 강조하고있다이는 북미협상남에서의 《정권》교체와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를 반영하여 일단 원칙적인 립장을 천명하면서 변하는 상황에 이 원칙을 계승적응하자는것이다.
1933 2월경 김일성사령관은 일제와 싸우는것과 동시에 좌경분자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3권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공산주의운동대렬내에는 처음부터 공산주의길을 걸은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신봉하다가 사상개조과정을 거쳐 점차 공산주의자로 된 사람들도 있었다아무런 주의에도 관계하지 않은 말쑥한 새 사람들만을 가지고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3 2페지)
《이것이 바로 혁명발전에서 우리가 지침으로 삼고있는 계승과 혁신의 원리이다공산주의사상이 인류사상사에서 최고봉의 사상이고 공산주의운동이 모든 형태의 혁명운동가운데서 최고단계의 혁명운동이라고 하여 이 운동이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서 발생발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3 2페지)
그러나 좌경분자들은 구체적인 실정은 고려함이 없이 선행리론을 그대로 적용하여 《쏘베트》라는 집단공동체를 만든다.
회고록을 통하여 그들이 한 일들을 한번 들어보자.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극좌적인 구호밑에 사유재산철페를 선포하고 토지와 식량으로부터 낫호미걸이대와 같은 농쟁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소유하고있던 모든 동산부동산들을 공동소유로 만들어버린 때부터였다쏘베트정부는 재산의 공유화를 일사천리로 강행한 다음 유격구안의 모든 주민들이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공동생활공동로동공동분배의 새로운 질서밑에서 움직이도록 하였다이것이 이른바 쏘베트급진론자들이 념불처럼 외우고다니던 <아르쩰리>생활이라는것이였다.(3 59페지)
유치원생이 소학중학고등학교도 거치지 않고 대학으로 직행한 셈이였다.
쏘베트정부는 또한 큰 지주작은 지주친일지주반일지주를 가리지 않고 유격구역안에 있는 모든 지주들과 부농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였으며 마소와 량식까지도 일률적으로 수탈하였다동만땅이 소위 적색구역과 백색구역으로 분리된 후 적구(일본통치지역)로 내려가지 않고 유격구역에 남은 지주들은 대체로 반일감정이 강한 애국적인 지주들이였다.
좌경분자들은 중국녀자들이 전족을 하고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것까지 투쟁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전반기는 동만지방에서 좌경의 전성기였고 좌경의 전횡속에서 신성한 혁명적원칙들이 시련을 겪고있던 시기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있다.
《좌경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겠다는 나의 결심은 간도땅에 와서 더 굳어졌다나는 그때부터 일생동안 좌경과의 투쟁을 하여왔다간도시절의 체험은 해방후 우리가 좌경을 예방하고 관료주의를 청산하는 투쟁에서 큰 도움으로 되였다.(3 63페지)
쏘베트좌경로선에 맞설수 있는 결단과 새로운 테제가 필요하였다내가 종파주의를 청산하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강화할데 대한 론문을 소책자로 발표했던것이 바로 이무렵이였다.(3 67페지)
아래에 중공당 만주성위 동장영과 김일성사령관이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동장영《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로동계급의 정권형태는 꼼뮨과 쏘베트라는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김일성사령관실정에 맞는 형태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봅시다.
동장영《우리가 만든다구요슬프게도 나는 그럴만한 천재가 못됩니다맑스주의고전에도 없는것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 어떤 문제를 고정불변의것으로 절대화하고 거기에 자기를 얽매려는 그런 부류의 견해와 립장에 김일성사령관은 동감을 표시할수 없었다.
김일성사령관《동장영동지프랑스로동계급이 꼼뮨을 내올 때 그 무슨 고전을 참고했던가요로씨야의 쏘베트가 맑스주의창시자들의 고전에서 명시된 정권형태였던가요쏘베트를 어찌 한 천재의 두뇌가 낳은 산물이라고만 하겠습니까인민이 요구하지 않고 로씨야현실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쏘베트는 력사무대에 등장하지도 못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3 73페지)

원칙과 상황계승과 혁신의 두 수레바퀴는 동시에 굴러야 하고 작동을 해야 한다어느 하나만으로 빨리 간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안의 절박함같은 민족분단이란 위기속에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원칙과 상황을계승과 혁신의 원리를 동시에 생각하는 지혜이다.
이 귀감을 무시할 때 그 피해는 모두 우리 국민에게로 돌아온다.
부디 새해엔 남북이 만나 이런 정치철학을 함께 토의하여 민족의 진로를 개척해주기를 바란다오직 리념을 넘어 《애국애족》이란 한마음으로.





항일유격활동은 거짓말과의 싸움이였다

로망(老妄)인지 기망(欺妄)인지

항일유격대의 싸움은 실로 거짓말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제가 조작한 만주사변을 비롯하여 《민생단》사건만보산사건중일전쟁 등 거짓말에 거짓말의 련속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고 변절하는 마당에 실로 거짓말의 정체를 밝혀내지 않고는 견디여낼수 없는 상황이였다.
항일유격활동은 총과 총과의 싸움이기전에 거짓말과의 싸움이였다끝없이 만들어내는 일제거짓말쟁이들의 속셈을 빨리 알아내는 지도자의 지혜없이 유격활동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리고 그런 지도자는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남을것이다.
해방후에 우리 민족은 일제의 속임수에서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속임수 즉 《위장기발흔들기》에 우리뿐만아니라 전세계가 지금 거덜이 날 지경이다실로 력대 미대통령가운데 최대의 거짓말쟁이는 부쉬로 기록될것이다.
거짓말그것도 지도자의 거짓말 한마디가 그 지도자 한사람뿐만아니라 당대에 같이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심대한 피해를 주는가는 상상을 초월한다이미 우리는 만주사변의 후과가 어떠하였던가를 고찰한바이다.
미 그리핀교수는 바크보만공격사건진주만공격사건, 9. 11테로는 미국이 저지른 현대사의 《3대 위장기발》이라고 그의 책 《The New Pearl Harbor》에서 지적하고있다이와 같이 미국의 의식있는 학자들은 자기 지도자의 거짓말을 낱낱이 책을 통해 고발하고있다그중 최근에 나온 엘리엇 애런슨의 《거짓말의 진화》(추수밭, 2007)는 부쉬를 비롯한 거짓말연구의 대미를 장식하고있다.
최근에는 1968년에 있었던 《푸에블로》호사건도 미국이 이미 알고있으면서 저지른 사건으로 판명되였다. 1994년에 맺은 케도(KEDO, 《한》반도에네르기개발기구)의 위약다시 불궈진 미국과 북사이에 핵진실 등등
이렇게 생각하면 거짓말연구는 모든 연구에 선행하는 연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래서 이미 외국에서는 상대방의 거짓말을 파악하는 《속셈학(subliminal)》이 개설될 정도이다.
지도자의 거짓말을 철저히 밝히고 규명하여야 할 리유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대중과 국민들이 그 피해를 떠맡을수밖에 없기때문이다이에 지난번 《대선》과정에서 불궈진 리명박당선자의 말들의 진위여부를 밝힐 특검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우리스스로라도 최선을 다해 력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철저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 믿지 말고쏘련에 속지 말고》해방후 현명한 인민들이 만든 길이 남을 경구이다지도자가늘 이러한 인민과 같이 있으면 어떤 거짓에도 속지 않는다그런데 만약에 이런 인민이 속는다면?이것이 문제이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로망(老妄)이 아니라 기망적(欺妄的)이 되지나 않았는지다시말해 거짓말을 판별하는 기억을 상실하고말지는 않았는지해방후는 한없이 가난할 때인데도 국민들이 이런 판단을 할수 있었는데 《국민소득 2만불시대》에 건망증은 더 심해졌는지강자의 거짓말에 잘 속는 존재는 살아남기 힘들다이런 마당에 《한국》교수들이 선택한 사자성어 《자기기인(自欺欺人)》은 귀감이 된다.

《눈치와 말귀》

전통술을 밀주라고 하여 개인가정에서 술을 못 담그게 하자 각 가정은 몰래 명절이면 술을 빚었다그러면 경찰들이 나와 가가호호 방문하여 밀주독을 찾아낸다그래서 사람들은 술독을 광 깊숙한 곳이나 땅속에 묻기도 한다나는 어릴 때에 시골에서 이런 장면을 숱하게 많이 보았다그런데 한 현명한 부인이 술독을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장독대옆에 가져다놓았다결국 발각되지 않았다그러나 경찰이 부인의 이런 속셈까지 읽었다면?
이같은것을 소위 《메타화》라 하는것이다결국 메타의 구조가 높은자가 낮은자를 이긴다고 할수 있다자주 쓰는 말가운데 《한수》 우이다 혹은 높다라고 하는것이 바로 이런 메타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메타화는 정보의 량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다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그것이 일차적인 차원에서 처리되면 정보가 적더라도 한수 높은자앞에 질수밖에 없다란중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리순신장군이 백전백승할수 있었던 리유는 바로 그의 수가 항상 일본장수보다 높았기때문이다.
한산대첩에서 리순신은 일본군을 먼바다로 끌어내기 위해 공격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주고는 그 정보대로 공격을 하여 일군을 견내량으로 이끌어낸다보통 전략에선 정보를 흘리고는 그 반대로 하는것이였지만 리순신은 일장들이 안다는것을 다시 알고 그것을 다시 아는 수를 사용했던것이다.
눈에 대하여 눈치라는것은 무엇인가이것은 보고있는 눈을 다시 보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후자를 눈에 대하여 눈이라고 한다말도 마찬가지이다말에는 말귀가 있다말은 참말을 하고있는것 같은데 말귀를 알아들으면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있는것을 잡아낼수 있다현대가 오관으로 느끼고 리성으로 판단하는 시대라면 탈현대는 본다는것듣는다는것을 다시 보고 듣는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검찰과 리명박후보가 참말을 하고있는지 거짓말을 하고있는지는 그들의 말로써는 판단할수 없다그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말귀를 알아들으면 금방 쉽게 판단할수 있다현대의 참말은 탈현대에서는 《거짓말》이 된다그래서 나는 전자의 거짓말에 대하여 후자를 《거짓말》로 구별하려 한다이런 기제장치에 넣어보면 BBK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 김홍일 3차장검사와 리명박의 거짓말을 잡아낼수 있을것이다.
항일유격대를 이끈 김일성사령관이 여우같이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는 일제와 싸워온 비결을 나는 지략에 있었다고 본다일제가 안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또 아는 지략 말이다이런 지략은 유격전술에서 그대로 나타나있다이런 탈현대적인 사고발상때문에 부하들이 김일성사령관을 따르고 존경했던것이다나라를 세운 후에도 이런 능력때문에 주변강대국들의 어떤 모략도 슬기롭게 타고넘을수 있었던것이다.
김일성주석이 회고록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고있는것은 인민이 가장 현명하며 자신은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인민들의 지혜로 극복하고 살아남았다고 술회하고있는것이다회고록에는 수많은 로인들이 등장한다우리가 로인들을 존경해야 할 리유가 이들은 젊은이들보다 정보의 량은 적을지 몰라도 메타화가 잘되여있기때문이다이들의 말 한마디가 사지에서 살아나게도 할수 있게 한다.
김일성사령관은 첫 북만원정을 하고 돌아올 때에도 한 로인의 도움으로 사경에서 벗어난적이 있다그러나 지금 이 나라 늙은이들은 대부분이 일제시대 향수병에 걸려 거짓말 변별력이 마비되여 말그대로 로망에 걸려있는것이 아닌지 걱정이다가장 현명해야 할 그들이 이 지경이 되였으니 걱정이다.

검찰의 거짓말 알아내는 법

검찰은 12 25 BBK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점 부끄럼없는 수사를 하였으며 리명박은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그러면서 바로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을 국내로 소환할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그런데 에리카는 다음날 검찰수사결과를 반박하는 성명문을 미국에서 내기로 해놓은 상태였다검찰로선 반길 일이다왜냐하면 그들이 만약에 공정한 수사를 할 의지가 있었다면 그녀의 성명은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에리카는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하고말았다짐작키로는 검찰의 말이 협박으로 들렸기때문일것이다이 사건 하나로 검찰은 대국민 거짓발표를 하고있음이 드러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검찰은 김경준 기획입국에 눈독을 들이고있다신당의 모변호사가 김경준을 정치적목적으로 기획입국시켰다는것이다만약에 검찰이 객관적조사자료가 진정으로 필요하다면 김경준의 입국은 그들의 조사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것일것이다그런데 김경준의 입국자체가 기획이든 자진이든 이는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것이 아닌가그런데 왜 검찰은 기획입국조사에 열을 올리는가이것이 바로 검찰의 말귀에 신경이 쓰이게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한겨레》신문은 사설(2007. 12. 28)에서 김경준의 메모류출건과 기획입국설에 관해 검찰이 오해살만 한 일을 하지 말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검찰이 메모가 류출된 경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해도 꼭 지금 해야 하는지는 더욱 의문이다.검찰은 BBK 수사와 관련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결국 특별검사가 도입됐다이른바 <리명박특검법>은 김씨의 메모내용이 사실인지를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으로 해놓았다특검이 이를 밝힐것이다검찰은 떳떳하다면 특검의 수사결과를 기다렸다가 메모류출경위를 조사해도 늦지 않다.
《검찰은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도 <한나라당>의 수사의뢰에 따라 사실을 확인하는것이라 해명한다하지만 어떤 위법이 있었는지 륜곽조차 없는 상황에서 무료변론을 맡았다고 변호사를 조사하겠다는것은 지나치게 앞서나간것이다어차피 진실은 다 밝혀야 하지만검찰이 지금 나서는것은 특검수사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오해를 부를뿐이다검찰은 뒤골목을 걷지 말고큰길을 걸어야 한다.
우의 《한겨레》사설은 검찰이 지금 분명히 떳떳하지 못한 길을 가고있음을 잘 지적한것이다기획입국수사와 메모류출사건조사는 검찰이 제발저린 행위라 아니할수 없다검찰이 객관적립장에 있었다면 두 사건은 모두 검찰수사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사건이다그러나 검찰은 지금 자기들의 수사발표의 진실이 드러날가봐 두려워하는듯 한 인상을 너무나 강하게 우리앞에 내비치고있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기 전에 반드시 자기를 속이고야 가능하다여기서 자기를 속일 때에 인간은 자기를 자기가 볼수 없기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것만큼은 감추기가 힘들다우린 어린아이에게서 쉽게 이를 발견할수 있다《방에 사람없다고 아버지가 말하라고 했어요.》와 같이.

리명박 말귀 알아듣기

리명박당선자는 수없이 말을 바꾸었기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느것이 진실인지 알수 없다앞으로 특검을 통해 밝혀질지 특검자체가 성립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그러나 우리는 특검까지 가지 않아도 그의 거짓말을 잡아낼수 있다.
리명박의 거짓말을 잡아내는데는 포우의 소설과 함께 엘리엇 애런슨의 책 《거짓말의 진화》가 도움이 된다우리 시대는 거짓말의 시대라 할만큼 거짓말이 홍수를 이루고있어서 학자들이 거짓말잡아내기 책을 많이 펴내고있다범부들도 하루에 14번정도는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그런데 문제는 지도자그가운데 미국같은 나라의 지도자가 하는 거짓말은 말 한마디가 수천수만명의 생명을 죽이기도 한다고 하면서 거짓말은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고 애런슨은 책에서 강조하고있다.
리명박은 특검에서 무혐의가 드러나면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문제는 그의 이 말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왜냐하면 광운대 강연에서 BBK 실소유자는 자기자신이라고 했기때문이다그래서 만약에 특검에서 혐의없음이 드러나면 광운대에서 그가 거짓말을 한것이 된다명함도 거짓명함인것이 된다.
다시말해서 특검에서 무혐의는 곧 자기자신을 거짓말로 만드는것이 된다혐의가 드러나야 광운대의 발언이 거짓말이 아닌것이 된다이것은 완전히 크레타섬의 거짓말쟁이 역설과 구조가 같다탈현대의 론리가 이 거짓말쟁이 역설에서 객관이 해체되면서 나타났듯이 나는 앞에서 《대한민국》탈현대는 2007 12 19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됐다고 한것이다.
리당선자는 소망교회례배에서 《어제 로무현<대통령>이 고맙게도 특검을 받아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게 됐다.》고 했다이는 문제 제기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는 앞뒤가 안 맞아보인다이런 증상들은 전형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자기만은 자기 말이 거짓말임을 아는것을 나타내보이는 증상이다그래서 리명박거짓말은 그 구조가 그리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우선 BBK 진실여부에 관한 1차적인 사실의 진위를 떠나 2차적인 데에서 리명박당선자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자기 정당화를 하고있는지를 보자광운대발언이 알려지자 그는 여야가 대치하고있는 국회를 방문한 다음 《여의도식정치풍토를 방치해선 안된다고 생각해 특검을 수용하게 되였다.》고 했다그리고 《한나라당》은 이 말을 받아 리명박식의 통큰 정치라고 했다.
그러나 리명박당선자의 이 말은 거짓말이다거짓말이 아니자면 광운대사건이전에 이런 발언을 했더라면 그것은 진실이고 통큰 정치이다그러나 광운대건으로 진퇴량난에 직면하자 위기타개책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나온것이다그의 말귀를 눈치채면 금방 거짓임이 드러난다그리고 당선후 특검을 향한 엄포는 자기 정당화이며 나아가 자기를 속이는 행위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자기 정당화는 위선자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행동에서 위선을 알아볼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당선직후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그런데 문제는 한번 거짓말을 하면 사건이 지나면서 기억의 자기 위주 외곡이 작용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잊거나 외곡하고 그 결과 차츰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된다잘못을 저지른것을 알면서도 점차 자신만의 허물이 아니였다고 하는데 상황은 늘 복잡해져간다.
2007년의 《한국》사회를 가장 잘 반영하는 사자성어로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이 선정됐다교수신문은 23일 종합일간지 칼럼니스트주요학회장 등 3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3%가 사자성어로 《자기기인》을 꼽았다고 밝혔다주자의 어록을 집대성한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에 등장하는 이 사자성어는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 또는 도덕불감증세태를 풍자하거나 망언을 경계하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제발 리《대통령》이 이런 확신범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기 위해 이 글을 쓴다부쉬의 거짓말 한마디는 수십만 이라크인들과 수천명 자국병사들의 생명을 앗아갔다그러나 그는 아직도 최근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였음을 지금만큼 강하게 확신한 때는 없었다.》라고 말했다그는 아마 무덤에 들어갈 때에도 이런 확신에 차있을것이다그의 그리스도교신앙은 이런 확신을 더욱 강화시키고있는것이다.
우리는 BBK 진실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거짓말하는 거짓말은 잡아낼수 있다지금 《한나라당》과 심지어는 로무현《정부》의 법무부마저 특검의 위헌성을 주장하면서 특검자체를 무위로 만들려 하고있다그러나 주요외신들은 이번 《대선》은 도덕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선거였다고 꼬집고있다.
당선자가 알아야 할 사실은 특검을 제기한 당사자는 바로 우리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국민들의 대다수가 검찰수사를 믿고있지 않기때문에 진실을 알고싶어한다그래서 《국회의원》 160명의 찬성으로 특검법이 통과된것이다도대체 누굴 향해 책임을 지라는것인지 모르겠으며 그의 이런 발언은 검찰의 에리카 협박발언과 그 구조가 완전히 같다는것이다.

《자기기인(自欺欺人)》과 2008년의 희망

자기기인(自欺欺人), 남을 속이기 전에 먼저 인간은 자기를 속인다자기기만은 거울을 보고 자기 주체를 다시 객체로 만드는 론리에 기초하고있다그런데 자기에게 거짓말을 오래 많이 하다보면 자기 주관이 객관이 되여 거짓말이 참말같이 보인다그래서 거짓말도 100번 하면 참말이 된다는 론리가 가능한것이다.
만약에 유격활동 전기간에 걸쳐 지도자가 이런 자기기만자들을 잡아내지 못하였더라면 자기도 살아남지 못하고 유격활동을 이끌어나갈수도 없었을것이다그 대표적인 경우가 최용빈의 경우이다.
옛 동지 최가 변절하여 김일성사령관을 해하러 유격대에 다시 나타났을 때이다산밑에서 밥을 지어먹고왔다고 하는데 《쟁개비》에는 그을음 하나도 없는것을 보고 거짓말을 하는 최의 거짓말을 잡아내여 위기를 모면한 일화는 이미 앞에서 소개한적이 있다.
함께 소개한 소금사건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거짓말하고있지 않다고 최가 강조하는 그 태도가 그대로 거짓말임을 드러내고말았다이는 말을 듣지 말고 말귀를 들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그러나 거짓에 눈이 어두워지면 이런 들을 귀가 없어지고만다콩과 《콩》을 일치시킬수 없어지고만다.그래서 예수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라고 했다.
2008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그것은 2007년에 듣지 못하던것을 듣는것이다이런 들을 귀가 없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자기기인》을 2007년의 사자성어로 선택한 400여 교수들이 있다는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 애국이 통하고있다는 증거이며 그나마 한해를 희망을 가지고 넘어갈수 있는 리유이다.





사립문을 나서며 《새날안고 돌아오리라》

《공백》의 상실은 가장 큰 상실

도대체 이 나라 경제 어디가 잘못되여 온갖 거짓말도 못 본체통일조국도 외면한채나라의 주권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살리기》 이 말 한마디에 다 껌벅하고말았는가정말 국민들이 로망을 했나.
《잃어버린 10년》《좌파정권》《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이런 말앞에 그만 우리의 온 뇌리는 마비되고말았다체 게바라의 《말의 힘》이란 시가 생각난다.

나는 깨달았다단 한사람이나단 한사람의 말이순식간에 우리를지옥으로 떨어뜨릴수도그리고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정상으로올려놓을수도 있다고있다는것을

말의 힘이 그를 정상에 올려놓았다그러나 그의 말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릴지를우리도 그를 이기려면 새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사람을 살리는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우리를 살릴 말 한마디가 전광석화같이 뇌를 스쳐간다《공백(void)》이란 말이.
그렇다거짓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열광한 리유는 우리가 지금 공백을 상실했기때문이다.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 )는 수학의 공집합의 기호 Ф에서 그의 정치철학을 시작한다.불법체류자집시유태인들같이 모든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생존권이 절대적인 위협을 당한 부류의 인간들을 공집합이라고 전제한다우리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나라잃은 40여년 우리의 삶이 공집합에 속하는 시기였다《아리랑》공연의 첫 장면 《눈물젖은 두만강》은 우리 민족이 공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행렬이다.
김일성사령관이 동만일대에서 이 행렬을 무어내며 유격활동을 한것은 바로 공백으로부터 다시말해 무로부터 유의 창조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탈출(exodus)》은 그자체가 고난의 련속이였다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북은 분명히 이 공백의 고난의 기간을 력사의 모형으로 기억하고있는것을 보았다백지에서 어떻게 새 나라의 그림이 그려질수 있는가를 보았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이 에짚트노예생활에서 탈출의 전승 소위 《출애급전승》을 최대의 민족사로 기억하면서 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뉴월절을 지키며 누룩없는 빵을 먹는것과 같다나는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지금 이 공백을 상실했다는것을 확인했다그러면 공백그 공백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건전하던 한가정이 어떻게 철저하게 공백으로 환원되고말았는가를.

김일성사령관의 가정

김일성사령관의 생가인 평양 만경대집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있었다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두 삼촌 그리고 동생 둘이다김성주(김일성사령관의 본명, 1912. 4. 151994. 7. 8)의 할아버지는 김보현(1871. 8. 191955. 9. 2), 할머니는 리보익(1876. 5. 311959. 10. 18), 아버지 김형직(1894. 7. 101926. 6. 5), 어머니 강반석(1892. 4. 211932. 7. 31), 삼촌 김형권(1905. 11. 41936. 1. 12), 삼촌 김형록동생 김철주(1916. 6. 121935. 6. 14), 김영주 등이다이렇게 일가성원들의 생년월일을 밝히는것은 만경대가문의 가정사가 우리 민족 현대사와 련관이 되기때문이다.
김일성사령관의 집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삼촌 한분만 남겨두고 온 집안이 나라를 찾겠다고 새벽아침 사립문을 나서 먼길을 떠난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있다.
《그러나 그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나 하나뿐이였다.(1 11페지)
《끌끌하던 자손들이 스무해사이에 다들 이렇게 낯선 산천에 한줌 흙으로 뿔뿔이 흩어져 널리였다.
해방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사립문밖에서 나를 부둥켜안고 <아버지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며 내 가슴을 두드리였다.(1 12페지)
실로 일제는 우리 2천만 조선민족 하나하나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삶을 다 파괴하고말았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극소수의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조선민족모두를 정상적인 생활궤도에서 사정없이 밀어냈다국권의 상실과 함께 민족고유의 풍토우에서 이어오던 생활은 박산이 났다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생존조건전통적인 풍습들은 여지없이 초토화되였다.…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이 학교로 가지 못하고 거지와 류랑민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며 시집장가를 가야 할 처녀총각들이 생활고때문에 혼기를 놓쳐버리며 안해와 남편들이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산중에서 고생하건만 그들은 조선사람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았다.(6117페지)
1930년대 중반시점에 와서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혹은 군속으로 사정없이 내몰았다그리고 이때는 우리 고유문화말살획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이다그래서 우리의 토속적인 문화전통이 상당부분 류실되여가고있었다.
여기 일제의 문화말살정책과 우리의 고유한것을 송두리채 짓밟아버리는것에 안깐힘으로 맞서 시()로써 이에 항거한 백석(白石)이 있었다그의 시는 해금에서 풀려나지 못해 최근까지도 읽을수 없었다지금 시중에는 수권의 그의 시집이 나와있고 그의 시에 관한 학위론문과 단행본도 여러권이 있다백석 시가운데 명절날 일가친척들이 모여 단란했던 가족분위기를 섬세하게 전하는 시는 《여우난골()》이다여우가 나오는 고을의 가족이란 뜻이다.
내 나라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았더라면 김일성주석의 집안도 여느 다른 집안들같이 명절이면 집안식구들 모여 아이들과 쥐불놀이하며 숨박곡질하며 지냈을것이다그리고 좋아하던 책도 읽고 희망이던 문학도가 되였을것이다김일성주석의 어린시절 정상적인 가족들의 풍경특히 관서지방의 풍경을 백석시인만큼 잘 그려낼수는  없을것이다이 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알아야 일제가 우리한테 무엇을 앗아간줄을 알기때문에 백석의 《여우난골()(여우가 나오는 고을의 가족)을 여기 소개한다.

여우난골()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매 진할배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매 할배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오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바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오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릇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오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선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롯목싸움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1935 11월 발표)

(진할매 진할배-친조부님토방돌-집채의 락수물 고랑 안쪽으로 돌아가며 놓은 섬돌오리치-평북지방 토속적인 사냥도구야생오리 잡는 도구반디젓-밴댕이젓안간-안방숨굴막질-숨박곡질아릇간-아래방조아질-평안도에서 아이들이 노는 공기놀이쌈방이-주사위바리깨돌림-주발을 돌리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오박떼기-아이들의 놀이제비손이구선이-흔히 다리를 마주끼고 손으로 다리를 치며 세는 놀이화디-등잔을 얹어놓는 도구사기방등-흙으로 구운 등홍게닭-새벽닭텅납새-처마의 안쪽 지붕의 도리에 얹힌 부분동세-동서무이징게국-민물새우에 무를 썰어넣고 끓인 국)
이 시기의 고유한 가족분위기와 어린 날의 놀이분위기를 세세하게 작품으로 남긴 시인이 백석이다전통음식이름놀이이름들무엇보다 당시 관서지방의 토박이언어들리효석 같은 문인도 백석 시를 통하여 잃었던 고향을 다시 찾았다고 감탄했다우리는 그나마 백석의 시를 통해 김일성주석이 어렸을 때 살았던 관서지방의 고유언어와 단란한 그리고 표준적인 가정의 행복한 분위기의 단면들을 엿볼수 있다여기 백석 시를 소개하는 리유는 우리의 행복했던 삶의 분위기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함으로써 일제가 파괴시켜버린 비정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사립문을 나서며《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이미 파괴된 가족 그리고 대들보가 허물어진 집에 더이상 둥지를 틀고 살수 없게 되였다이들은 삼삼오오 자기 집 사립문을 나와 먼길을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오직 일념은 잃어버린 나라 다시 찾고 단란하고 행복했던 정상적인 가족의 삶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그때부터 남의 집 사립문에 들어설적마다 이 사립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몇이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일가 하는 생각을 하군 하였다이 나라의 모든 사립문들에는 눈물에 젖은 리별의 사연이 있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에 대한 목메인 그리움과 뼈를 에이는 상실의 아픔이 있다.(1 12페지)
혁명가극 《피바다》는 한 녀성혁명가의 생을 그린 작품이다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집안의 자식들마저 병역을 기피하고 원정출산을 떠나는 마당에 지금 북의 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여있는 항일유격대원들그들의 집안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을 혁명에 내보내고 자식들심지어는 11살 소년들마저 앞다투어 유격대를 자진지원해 따라나섰다먼동트는 아침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잃은 나라 다시 찾고 돌아오라그리고 그날까지 부디 《안녕히》란 말 한마디 남기고 리별하였지만 살아서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혁명가극 《피바다》에 《광복의 새날안고 돌아오리라》는 곡이 있다이 곡은 먼동이 트는 이른새벽 혁명의 먼길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가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곡이다.

저 산너머 먼동이 밝아오는데아들아 내 아들아 어서 떠나거라나라찾는 한길에서 목숨바쳐 싸우거라광복의 새날안고 돌아오너라
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굳세게 그날까지 싸워주세요이 한목숨바쳐서도 내 나라를 다시 찾고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오리라

우리 생활속에서 《사립문》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리별과 상봉헤여짐과 만남의 경계선이 바로 사립문이다우리 농촌의 사립문은 안과 바깥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한그래서 그 사립문너머 그 집의 마루와 안방까지도 다 들여다볼수 있다사립문은 사람의 키보다 낮아 보내는자와 떠나는자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눈물을 서로 씻어주고 닦아줄수 있는 간격의 공간이다.
항일유격대원들과 독립운동가들가운데 대부분은 적령기에 결혼하지 못한 청춘남녀들과 학령기에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병들이였다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사립문앞에서 어머니와 마지막작별을 한 후 두번다시 그 사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골짜기의 전장에서강가에서 죽어 지금은 그들의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해 해방의 종은 울렸는가마땅히 그들이 하루속히 조국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의 종이였어야 하는데 영원히 사립문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집을 나선 이 시대이 땅에 살았던 항일유격대원들의 고향집은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이 상징이 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경대를 찾는다만경대에 있는 소박한 농가인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가는 리유는 그곳에 가면 무엇을 생각하고 돌아오기때문이다.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생각하고 나아가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간다강정구교수가 말한 《만경대정신》이란 이런 소박한것일것이다거기에 리념의 덧옷을 입히는것은 《반공》론리에 익숙한 판검사들의 시대착오적인 론리일뿐이다.
풍찬로숙하며 눈서리 날리는 만주벌판백두산 굽이굽이마다압록강 줄기줄기마다 잃은 조국 찾기 위해 떠돌던 이 나라 젊은 항일유격대원들은 《사향가》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였다.

1.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2.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3.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8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로정을 걸으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였습니다잃기는 헐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순간에 잃은 조국을 찾느라고 수십년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리치입니다.(8 489페지)라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0여년만에 독립했다는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입니다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300여년알제리는 130여년스리랑카는 150여년윁남은 근 100년만에야 각각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있었으니 망국의 대가란 실로 얼마나 비싼것입니까.(8 489페지)라고.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잃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다망국노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잘 지키라나라잃은 설음으로 통곡하기 전에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새를 높이 쌓으라고 말해주군 합니다.(8 489페지)라고.

기고만장한 일본 우파들과 이 땅의 부자들

일본 극우파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12 19일 오후 6시 《한국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고 한다리명박《대통령》당선에 왜 이들이 이렇게 기고만장일가강덕상 시가현립대 명예교수는 남북통일저지가 일본 우파세력의 《전후 기본전략》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서경식교수는 일본 우파세력은 리명박《대통령》의 출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있다희열속에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있다고 했다극우 《산께이》신문은 거기에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작업중단도 고대했다그러나 이들이 우리 생활의 정상을 모두 앗아간 장본인들이 아니던가아니 또 《한》반도진출의 기회는 왔다고 기고만장하는것인가그러면 이 땅의 젊은이들은 또 사립문을 나서야 하는가?
또 하나 이 땅의 진풍경은 2008 1 1일 아침에는 《새해 부자가 되는 기운 받자》고 삼성창립자 리병철회장(19101987)이 태여난 집이 관광객들로 붐비고있는것이다개방 40여일만에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등 경남 의령군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했다새해 첫날에도 400여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방문객들은 안채에 선 중심기둥을 쓰다듬거나 가슴으로 안아보기도 하고 집 뒤편 바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 등 갖가지 정성을 보이며 부자 기()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우린 지금 공백을 상실하고있다그 상실의 현장을 나는 이 집에서 보고있다이들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가과연 이런 인간들에게 《삼성비리》특검이 무슨 의미가 있을가.

고난의 행군은 과학적

공백을 상실하면 력사는 죽는다어느 민족이 고난의 시기를 회고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이 무덤으로 가는 순간이다그 리유는 이렇다수학자들은 수천년동안 수자 1과 그다음의 자연수 2, 3, 4…가 왜 생기는줄을 몰랐다. 19세기말 칸토어가 집합론을 창안하면서 수 1이 공백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공백을 Ф으로 표시할 때에 그것의 집합 즉 공집합은 {Ф}으로 표시한다그러면 괄호안에 Ф이란 1개가 생겼다바로 이것이 1이 탄생하는 순간이다그래서 공집합이 없으면 1 그리고 그다음의 어떤 수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물리학에서도 진공 혹은 령의 중요성은 토리첼리의 실험으로 립증되였다진공으로 된 구를 말 8필이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실험은 여기서 첨언을 할 필요가 없다토리첼리 실험이후 진공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 0 즉 《령점 장리론》이란 우주만물의 작용하는 힘이 모두 0에서 나온다는 리론이다.
이런 수학과 물리학의 진공 혹은 공백에 대한 새로운 리해는 인문사회과학에도 그 영향을 아니 미칠수 없다이미 동양의 도덕경은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고 했다불교 반야심경은 만물이 모두 공이라고 했다이를 허무주의라고 서양은 리해했지만 공백의 리해와 함께 동양사상은 다시 재조명되였다.
우리가 회고록을 읽어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나는 여기서 어떤 정치적 그리고 리념적리유를 말하고싶지 않다회고록을 읽을 때에 정신적위로와 힘을 얻는 리유는 김일성사령관과 유격대원들이 얼마나 철저한 공백의 상태에 있었던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수 있기때문이다.
오늘의 북으로부터 나오는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있고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공백으로부터라고 본다. 1990년대초 그 지독한 역경에도 견딜수 있었던것은 1930년대말 그 고난의 행군의 추억때문이라고 본다.
백지상태에 대한 기억이 없는 화가는 그 백지우에 작품을 만들수 없는것과 같다백지자체가 그림이듯이 공백자체가 삶자체이기때문이다그런데 혹자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망하고말것이라고 《상호주의》를 부르짖고있다.
저들이여 공백의 철학을 공부나 하라.
0에서 1의 탄생은 《창조성》때문이고그것은 인간의 《의식성》으로 가능해진다. 0을 의식하는 그것을 바로 1이라고 수학자들은 생각하기때문이다공집합 {Ф}에는 오직 단 하나의 요소를 갖는다이를 《유일자(singleton)》라 하며 《공백의 가장자리》라 한다이는 《자주성》이다여기서 모든 사건이 발생하고 삼라만상이 유래한다이것이 바로 어느 존재가 자주성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리유이다자주성의식성창조성 이 3대원리는 《고난의 행군》을 통해 얻은 산경험 그자체였다그래서 주체사상의 이 3대원리는 《고난의 행군》의 과학적결실이라 나는 본다.





람스펠드와 거짓말변명의 론리

부쉬의 거짓말목록

부쉬가 임기중에 만든 거짓말목록은 다음과 같다이 거짓말 한마디가 수천수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이고보면 우리는 한 지도자의 진실과 거짓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1. 싸담 후쎄인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있다.
2. 싸담이 알 카에다와 유착돼있다.
3. 미군이 들어가면 이라크인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와 대환영을 할것이다.
4. 분쟁이 곧 끝날것이다.
5. 침공 6주후 임무완수라 쓴 기발아래서 《이라크에서 주요한 작전은 끝났다.》고 기자회견
6. 약속한 전비를 지금 훨씬 넘어섰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쉬는 보수주의 칼럼리스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였음을 지금만큼 강하게 확신한 때는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촘스키나 그리핀교수 같은 학자들이 부쉬의 9. 11음모를 폭로해 궁지에 몰리자즉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전 람스펠드국방장관은 아래와 같은 교묘한 론리적주제를 들고나왔다나는 그의 론리학실력에서 랭소주의를 읽는다그래도 대국의 장관답게 람스펠드는 학교에 다닐 때에 론리학은 좀 공부한것 같다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1. 알려진것을 아는것〔known knowns(kk)〕이 있다이는 우리가 알고있음을 알고있는것들이다.
2. 알지 못하는것을 아는것〔known unknown(ku)〕이 있다이는 알지 못한다는것을 아는것들이다.
3. 하지만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하는것〔unknown unknowns (uu)〕이 있다이는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것이다.

물론 람스펠드의 이 아리숭한 《아는것(known)》과 《알지 못하는것(unknown)》이란 두쌍을 조합시킨것은 자기 잘못을 변명하기 위해서이다이렇게 정치문제를 론리적인것으로 각색한 리유는 미국이 자행한 이라크전쟁은 세번째 《알지 못하는것을 알지 못한》(uu)것의 소행이라고 말하기 위함이다한마디로 말해서 알지 못하고 저지른 오유전쟁이라는것을 에둘러 시인하는것이다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말았으니 용서를 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람스펠드는 예수가 십자가우에서 림종직전에 남긴 7언가운데 하나를 외곡해가면서 거의가 그리스도교인들인 자국민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위장용서를 구하고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의 람스펠드의 말가운데 문제점은 무엇인가그의 위장된 론리의 오유를 간파한 사람은 정치학자가 아니고 차라리 슬라에보의 철학자 지젝이다삼척동자라도 두쌍을 조합했으면 4개가 나와야 한다그러나 가장 중요한것 하나를 람스펠드는 고의적으로 제외하고있는것이다.
바로 람스펠드가 제외한 그 하나가 예수의 말네번째인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것(unknown known)(uk)이다예수는 자기를 죽이려는자들을 향해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they do not know what they do(know)(루가 23:34)라고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에게 자기를 죽이는 저자들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빈다그리고 이 구절은 지젝의 저서명이기도 하다.
람스펠드는 2개 쌍의 조합의 4가운데 왜 이 하나를 빼고 말했을가그 리유는 간단하다이 네번째것이야말로 부쉬정부자신에게 해당하는 목의 가시와 같은것이기때문이다예수의 적들은 자기가 아는것을 알지 못한것이기때문에 일차적인 아는것에는 책임이 있는것이다그러나 아예 일차적인것마저 무지였다고 말함으로(uu) 아예 원초적인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사일것이다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지의 소치로 이라크침공을 한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앎 자체도 없었다는것이다.
제 잘못은 모르고 예수를 비난하는 강도 그리고 예수를 죽이는자들이야말로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unknown known)》자들이다미국이 이런짓을 하고있다는것을 시인하는것은 성경을 아는 그리스도교인들이라면 이는 마치 미국이 예수를 죽인자들과 같은 반렬에 서있는것과 같은 행동을 이라크에서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 될것이다그래서 람스펠드는 《아는것을 알지 못한다.(unknown known)》고 말하지 않고있다

람스펠드의 거짓말과 탈현대의 론리

그러나 국방장관이 이 정도의 론리학실력을 가지고있었다는 사실은 경하할만 하다대국의 국방장관감은 되고도 남는다그러나 이 좋은 두뇌를 좋은 방향으로 굴렸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그러나 드디여 미국국민들이 람스펠드의 론리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안것은 5년이나 지난 2007년이였다람스펠드의 론리를 안 미국민들은 지난번 총선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2007 12월 《대선》에서 《한국》은 미국의 5년전 상황이다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후 국민들은 아는것을 알지 못했다고 할것이다랭소주의자는 잘 아는자들이다그러나 그 아는것을 알지 못한자들이다.
지젝은 이 네번째는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같은것이며 라깡의 《안다고 하는 그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앎》이라고 했다이는 우리자신에 달라붙어있는것조차 우리가 알지 못하는것이다속담의 《등잔밑이 어둡다.》와 같은것이다그러나 현대포스트모던학자들은 이 2차적 알지 못하고 한 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한다이 론리대로라면 《한국》재벌들의 《모르쇠》작전에 면죄부를 줄수 없다는것이다.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것은 사실 서양철학특히 데까르뜨이후 근대철학의 근간이 되는 문제이다리성적이고 합리적이란 사실상 《생각하는것은 의심할수 없다.》는 즉 데까르뜨의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란 준칙에서 나온것이다다시말해서 데까르뜨는 인간은 합리성이라는 의식에 반영되는것만이 책임적이라는것이다《한국》재벌과 정치인들에겐 복음과 같은 소리임에 분명하다그러나 이런따위의 합리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것이 탈현대의 론리이다.

빨간 알약과 리명박의 위기

미국사람들이 부쉬의 거짓말에 속은것을 아는데 7년이 걸렸다고 했다모르는것을 아는데 걸리는 시간이다리명박의 위기는 그것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그의 당선은 마치 그네작용의 반작용으로 가능했기때문이다다시말해서 로무현에 대한 반작용때문이라는것이다그래서 로무현이 사라지는것이 곧 리명박의 위기가 된다는것이다반작용이 없는 그네가 제자리를 찾는것과도 같다.
이러한 위기는 2차적이다가장 큰 위기는 독재세력의 과거 동굴속에 기여든 국민들이 그래도 밖의 자유가 그리워질 때에다시말해서 사람들이 빨간 알약을 손에 드는 순간 이것은 리명박의 최대위기가 될것이다이 순간은 몰랐던것을 아는 순간이다그 순간 리명박의 허상은 마치 땀흘린 다음 랭기를 느끼는것과 같을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리명박의 위기는 곧 우리들의 위기라는 사실이다그를 통해 우리의 최대약점은 이미 온 천하에 알려졌다코리언들은 경제동물이라는 최대약점말이다그리고 나라의 정신적인 기초인 정신력이 경제앞에 물거품이 됨으로써 이것은 구한말이후 최대위기가 될것이다그동안 독재세력에의 회귀로 결국 코리언들은 《들쥐》라는 미군 8군사령관의 말이 참이라는것이 다시 재증명될것이다이런 국민신선도의 퇴락은 위기가운데 위기라 아니할수 없다.
여기 또 하나 위기는 리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지지층은 경상도령남 그리고 강남부유층이다.신라 천년사대주의가 다시 살아나 대미대일외교가 굴종적이 될것이다그리고 경제살리기란 경우 겨우 5% 인구에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살리기가 될것이다그가운데 가장 우려되는것은 대북관계이다그의 한가닥 희망은 《실용주의》로선이다그러나 그의 《실용주의》는 수구보수세력의 볼모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두고볼 일이다.

거짓말도 쓸모있을 때가 있을가

리명박당선자가 앞으로 미국의 부쉬대통령을 만나러 갈것이다외교는 거짓말의 경쟁이라고 한다.그렇다면 MB의 거짓말이 부쉬를 이기기만 한다면 그것도 실용적으로 보아 국익이 될것이다누가 상대방의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누가 상대방의 눈치를 빨리 파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날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의 말이 거짓말이라는것을 분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그 리유는 거짓말을 감별하는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이기때문이다자기 눈을 자기가 볼수 없듯이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분간하지 못한다정직한자만이 거짓말을 분간할수 있는 기준을 자기속에 가지고있다맑은 거울만이 얼굴의 허물을 볼수 있는것과 같다그렇다면 거짓말의 수가 높은것을 기대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당선자의 거짓말은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 수가 2단정도밖에 안되는것 같다필부도 잡아낼수 있는 거짓말을 하고있기때문이다. 1차적인 BBK의 진실을 나는 모른다그러나 《한나라당》과 당선자가 보이고있는 2차적인 말과 행동이 거짓말을 하고있음이 드러나고있다그런데 우리가 그를 당선시켰다면 그의 거짓말은 우리자신의 거짓말이 되고만것이다.
드디여 당선이 발표된 다음날 외신은 《<한국>인들은 빵과 빠다를 선택했다.》라고 했다거짓을 덮고 먹고사는데 급급했다는 풀이일것이다.
이제 특검에서 거짓과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전세계적으로 《코리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락인이 찍힐것이다왜냐하면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기때문이다그러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한에서만 참말로 인정을 받고 반대로 참말을 하면 거짓말하는것이 될것이다이를 저 유명한 거짓말쟁이역설이라고 한다이것은 가치관의 대혼란을 가져올것이다양치기소년같이 말이다.
나는 이 역설이 탈현대의 론리라고도 하였다그럼 이를 합리화하자는것이냐그렇지 않다인간은 관념적존재이기때문에 거짓말은 어쩌면 불가피하다콩을 두고 콩의 관념은 《콩》이 아니다콩이란 글자도 콩이 아니다그 글자를 먹을수 없기때문이다그러면 내가 《콩》을 두고 콩이 아니라 하여도 이것은 거짓말하는것이 아니다먹을수 있는 콩의 립장에서 보면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있는것이다그래서 관념작용을 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거짓말은 불가피하다고 하는것이다그래서2, 3차거짓말이 진화한다고 한다그러면 이런 거짓말의 혼란을 어떻게 막을수 있는가?





항일유격대의 《색계》와 공화국헌법 63

중국 젊은 혁명가들의 《색계》

이완감독의 영화 《색계》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라면 량자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아니 느낄수 없을것이다영화의 주된 배경은 일본통치하의 중국에서 갓 대학생인 왕 치아즈(탕웨이)가 스파이가 되여 일본군앞잡이인 양조위를 죽이기 위해 미인계를 써서 그에게 접근한다는것이다. 193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장면들은 동만의 항일유격대의 력사적배경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길수 있는 적장을 살해하기 위한 미인계 등도 모두 평범해보이는 배경이다그러나 이완감독이 이런 평범함속에서 예술성을 살려내려 한것은 바로 《색》과 《계》사이에 쉼표(,)를 찍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영화의 제목 《색계》에서 보는바와 같이 색( lust)과 계( caution)사이는 쉼표(,) 하나로 련결돼있다마침표 (.)가 아니고 콤마이다즉 색과 계사이가 단절도 아니고 련결도 아닌 애매한 관계이것이 이 영화의 생명력을 살려내고있다신인녀배우 탕웨이와 로련한 양조위 두사람이 열연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지방공연에서 성공하여 서울의 대형극장에는 늦게 재등장하여 성황을 이루었다내가 이 영화를 본것은 1월초 《대한극장》에서였다.
혁명이라는 《계》와 인간의 본능이라는 《색》사이가 그렇게 단절도 련속도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현대와 탈현대사이에서 중국의 젊은 남녀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있다색과 계가 마침표면 현대이고 쉼표면 탈현대라는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정할수 없는것을 보여주는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탕웨이가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고 조직내의 남자친구를 끝까지 사랑하려 했지만 양조위의 성적매력과 자기를 마음깊이 사랑하여 다이아몬드 6카라트를 선물하는 진정어린 그 마음앞에 그만 《계》를 어기고만다는 이 영화는 탕웨이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잘못이였는지는 쉽게 단정할수 없다탕웨이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양조위의 성적에네르기가 자기의 심장속을 파고들 때에는 자기자신도 조직이 내린 명령을 감당할수 없을지 모른다고 고백한다《색》과 《계》의 경계선이 어딘지 자신도 몽롱해진다는것이다그러나 사랑하는 녀자친구를 미인계의 제물로 바친 이 젊은 혁명아도 탕웨이의 말앞에 침묵할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것이다탕웨이는 결국 양조위의 명령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양조위의 슬픈 눈빛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서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양조위는 탕웨이를 끝까지 지키지 않았으며 탕웨이가 형장에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은 《색》과 《계》가 콤마로 련결되는것을 상징하는것이 아닐가이 영화의 이런 내용을 두고 지금 네티즌들가운데는 두사람에게 다 《색》과 《계》를 적용하여 누가 누구의 《색》과 《계》를 이기고 졌나를 론쟁하고있다.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회고록에 나오는 조선의 항일유격대안에서 활동한 녀성유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리고 북의 예술영화 《생의 흔적》을 《색계》와 대조해보기도 했다.
회고록 1권은 김일성주석의 길림시절에 관한 기록들이다여기에 김주석이 리광수의 소설 《혁명가의 안해》를 읽은 독후감얘기가 나온다김주석의 길림시절은 마치 영화 《색계》의 배경과 아주 같아보인다중국과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을 강탈당하고 이를 다시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모여 소설도 읽고 토론회도 갖고 연극도 한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부대를 인솔하여 남만으로 가는 도중 무송에 잠간 들렸을 때에 이 소설을 읽었다고 회고하고있다.
김주석은 독후감에 대하여 《소설 <혁명가의 안해>는 한 공산주의자가 병치료를 하고있을 때 그의 안해가 남편의 병치료를 해주러 다니는 의학전문학교 학생과 치정관계를 맺는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서 공산주의자들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운동을 헐뜯는 사상으로 일관되여있었다.(1214215페지)고 적고있다.
김주석의 이러한 평가는 《계》로서 《색》을 억제하지 못한 혁명가의 안해에 대한 질책인것으로 리해된다김일성주석의 이러한 소설평에 대하여 탈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기나름이라 할수 있을것이다여기서 김주석의 말은 《색》과 《계》사이를 강한 마침표로 련결시키려는듯이 들리기때문이다.
김주석이 분명히 지금 이완감독의 영화를 본다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모독 그리고 추잡한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볼것인지도 궁금하다리광수가 《색》과 《계》사이를 쉼표-콤마로 처리하고있는것이 이완감독의 처리와 같다헐리우드풍의 전형적인 예술성이다아마도 이런 콤마처리하는따위의 영화를 아무리 개방이 되였다 하더라도 현재 중국본토에서 만들기에는 시기상조 같다.
평양에서는 더욱 그럴것이다. 1980년대에 《탈출기》에서 녀주인공의 젖가슴을 처음 로출시킨것도 그 당시엔 큰 사건인것을 보면 혁명이란 《계》앞에 《색》은 아직 개방을 보류해야 할 대상인것 같다이러한 《계》에 대한 강조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별로 달라진것이 없어보인다. 2003 3월 《로동신문》의 다음사설은 이를 잘 반영하고있다.
《우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닌 혁명가들에게서 그 대답을 찾게 된다혁명가에게 있어서 보람없이 보낸 백날천날보다 혁명을 위하여 심장을 불태우며 산 하루가 더 값있고 귀중하다예로부터 약을 100첩 써야 할데 99첩을 쓰고 한첩을 쓰지 못한다면 약효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것처럼 사람도 당에 충실하다가 하루나 반나절그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반역하면 결국 그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로 되고만다.
회고록속에는 탕웨이같이 녀성으로서 항일혁명에 뛰여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특히 7권에는 《녀투사들의 혁명절개》라는 절을 따로 마련하였다김정숙리관린한영애안순화조옥희한주애리계순장길부 등 … 항일혁명녀투사 최희숙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일본군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치자 이에 질겁한 일본《토벌대》들은 혁명가의 심장이 어떻게 생겼기에 그처럼 지독한가를 보자고 하면서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고 적고있다회고록에 등장하는 유격대원가운데 가장 처참한 죽음의 장면이 바로 최희숙의 죽음일것이다. (7 256페지)
탕웨이가 변절아닌 변절을 하는 장면과 대조가 되면서 나는 극장을 나오면서 조선녀성들은 그렇지 않을것이지 하고 혼자말을 해보았다그러나 현대평론가들은 작품성은 역시 《색》과 《계》는 쉼표로 련결되여야 한다고 할것이다그렇다면 북의 예술적작품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것인가사실주의문학예술로 취급하고말것인가아니면 그이상인가?
예술영화 《생의 흔적》은 김일성주석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가운데 하나이다전투근무수행중 전사한 남편의 넋을 이어 어느 한 농장에 진출하여 영웅안해의 신분을 숨기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진주의 삶을 다룬것이 《생의 흔적》이다영웅의 안해로서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동시에 남편이 사랑한 조국을 위해서 한생을 사는것이 진정한 《생의 흔적》을 남기는것이라는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서진주의 대중연설에서 《나는 두개의 사랑하는 님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있습니다하나는 죽은 나의 남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남편이 사랑한 조국입니다.》라고 한다그러면서 《사람이 진정으로 생의 흔적을 남기자면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와 집단을 위해 한생을 바치는것입니다.》라고 한다그러면서 죽은 남편의 무덤에 찾아가지 않는데 대해 주위사람들로부터 변심했다는 오해를 감내하면서 농장에서의 로동을 통해 남편의 령혼이 사랑한것을 사랑하는것그래서 개인과 집단이 같아지는것이 생의 흔적이 된다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생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께서는 아직까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라고이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고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저런 영화는 나오지 못한다고조선에 저런 훌륭한 녀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고인간의 한생을 아주 잘 그렸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전한다.

무장소조투쟁방식의 한계

회고록에는 어디에도 미인계를 써 적장을 살해하려는 장면을 읽을수 없다우리 민족사에 새겨진 일제와의 싸움방식을 세가지로 볼수 있다첫번째는 무장소조활동 또는 개인테로의 방식이다다른 하나는 대규모전면전을 하는 방식이다그리고 세번째는 이상 량자의 장점을 보합한것으로 중대대대규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적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등 유격전의 방식이다첫번째 테로방식은 김구 등 민족주의독립운동가들이 하던 방식이다이는 안중근윤봉길리봉창같이 개인 혹은 소규모의 테로조직을 만들어 일제의 요인을 저격하고 건물 등을 파괴하는 방법이다두번째 방법은 그 당시 여건상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다대규모군대를 인솔해다니자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때문이다나라를 잃은 마당에 당장 소대규모의 병력을 재우고 입히기도 어려운 사정이였기때문이다여기서 세번째 방법을 택한 부대가 바로 《김일성항일유격대》라 하는것이다후에는 항일련군 등으로도 불린다.
영화 《색계》에서 사용한 미인계를 이 세가지가운데 하나로 구태여 분류하면 소조방식이라 할수 있을것이다한 개인이 적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방식말이다.
 김일성항일유격대는 이런 방식에 가치를 별로 부여하지 않는다이것은 무장투쟁방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기때문이다집단을 떠난 개인에게 그렇게 신빙성을 둘수 있느냐의 문제인것이다만약에 개인이 탕웨이같이 《색》과 《계》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지 않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에는 적보다는 아군에 더 큰 피해를 줄수 있기때문이다결국 탕웨이의 순간적인 변절이 그만 조직의 성원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고말았다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이 유격대방식을 취한 리유는 개인이 전체라는 즉 개()와 전()사이의 소통없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에 높은 점수를 줄수 없다는것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이라고 본다.
금세기에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의 본성과 그 운명》이 일러진다개인인간은 원죄에 물들어있기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아무리 깊이 들여다보아도 거기서는 건질것이 없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그가 자본주의인간관을 극복하지 못한것은 개인과 사회집단과의 력동적관계성을 보지 못했기때문이다사서삼경가운데 하나인 《시경》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희미하고 위태롭다고 했다그래서 이완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개인으로 있을 때 얼마나 걷잡을수 없는가를 보는것이 더 타당할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성선도 아니고 성악도 아니다정다산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한마음안에서 서로 소송을 한다고 하여 인성 자송론(自訟論)을 주장하였다개인으로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불안정한 리유는 인간이란 개인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때문이다그래서 인간개인의 본성을 론하기 전에 인간의 개()와 전()의 관계를 먼저 론하여야 한다북헌법 63조에 지적되여있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는 바로 이 점을 반영한것이라 본다.
개인이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사회나 당 등 집단과 일체화시키는 기제장치가 안되여있는 한 개인적인 인간본성은 그것이 《색》과 《계》의 사이이든권력과 계의 사이이든재물과 계의 사이이든 확고할수 없다는것이다그래서 주체사상은 개인과 전체의 관계설정을 제일목적에 두고 이를 헌법에까지 반영하고있다개와 전이 조화가 된 인간을 우리는 메타인간(metaman)이라 부른다집단주의사회에서 개개의 존재는 독자적이지만 집체적존재이다이를 생명유기체라고 한다어떤 생명체이든지 이런 유기체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길만이 개인으로서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다이런 리론적배경과 함께 북의 영화예술뿐만아니라 사회전반을 리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개와 전의 관계는 사()와 공()의 관계이기도 하다멸사봉공(滅私奉公), 이것은 유교의 가장 큰 덕목가운데 하나이다유교에서 녀자와 아이를 소인이라 한것은 녀성과 아이들은 쉽게 색과 돈의 유혹에 빠질수 있기때문에 이 두 존재에겐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그래서 개와 전의 조화의 담지자즉 대인 혹은 군자는 남성의 몫이다대인이나 군자는 계로서 색을 억제할줄 아는자이다사생취의(捨生取義), 살신성인(殺身成仁)할수 있는것은 모두 남성군자상으로나 가능하다녀자는 처음부터 색을 억제할수 없는 색의 노예로 보는것이 전통유교륜리였다어떤 면에서 이완감독의 이 영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는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유교륜리의 경계선상을 넘지 못하고있다고 결론지을수도 있을것이다이런 녀성에게 혁명의 계를 맡긴것자체가 잘못이라는듯이 말이다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가이런 결론과 함께 나는 북의 예술을 돋보게 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속에는 남성들 변절자는 여럿이 등장해도 녀성유격대원의 변절이야기는 없다.더 나아가 김일성사령관은 1936 4월 항일유격대내에 박록금을 중대장으로 하는 녀성중대를 편성한다고려사의 설죽화조선조의 행주산성녀인들진주의 론개평양의 계월향의 례를 들면서 조선녀성들의 강인한 힘의 례를 든다. 18살 처녀 김수복과 그의 짝패처녀는 일본경관을 빨래방치로 쳐죽이고 무기를 빼앗았고 재봉대책임자 박수환도 역시 빨래방치로 적병을 까눕히고 무장을 빼앗아냈다김정숙김확실박록금은 탁월한 사격수들로서 김일성사령관을 사선의 위기에서 여러번 직접 구출하기도 한다특히 김정숙녀사의 사격솜씨는 유명하다김일성사령관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 김정숙녀사는 한몸으로 이를 막아내였다.
김일성사령관은 개인영웅담으로 이어지는 테로운동의 한계를 일찌기 알고있었다《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사회(Moral Man Immoral Society)》라는 신학자 R. 니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을 보장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알았기때문이라 본다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은 개인의 도덕적힘이든 능력이든 그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상해를 중심으로 한 림시정부의 개인테로방식이 결국 그 지구력을 상실할수밖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보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래서 미인계를 포함한 요인암살같은것이 강한 폭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와 전의 변증법적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에 그 의미를 상실하고만다여기에 《색》과 《계》의 관계설정은 《개》와 《전》의 관계설정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것이 회고록에 흐르고있는 일관된 주장이다개적자아에서 녀성들을 집단적자아로 무어낸 녀성중대편성은 이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아니할수 없다.
회고록 제5 13 4절은 특히 녀성중대편성이야기와 녀성유격대원들의 피눈물어린 일화들로 가득차있다.
 《항일혁명은 그 모든 액운과 부조리의 근원을 송두리채 쓸어버리는 폭풍이였으며 이 나라 녀성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해준 세기적인 사변이였다조선의 녀성들은 펜이 아니라 선혈로써 대지우에 자기의 새 력사를 쓰기 시작하였다.(5 69페지)
녀성들이 개인이나 가정의 존재의 한계령역을 뛰여넘어 군복을 입고군화를 신고군모를 썼을 때에 그리고 허리에는 수류탄을 차고 어깨에는 개인소총을 메고 나섰을 때에 이 땅의 녀성은 새로운 존재로 의식이 다시 태여나는것을 경험하였던것이다차광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모계사회전통을 거론하면서 녀성참군은 그들자신의 요구일뿐아니라 시대의 부름이라는걸 알아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이러한 조선녀성들은 《개》가 《전》으로《전》이 《개》로 재귀적작용(recursive operation)을 하면서 항일유격활동 전기간의 경험과 새로운 자아를 안고 조국으로 입성했던것이다그래서 해방후 곧 북은 바로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할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북의 어느 한 글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오랜 세월 정치적무권리와 사회적질곡으로 온갖 불행을 겪어온 녀성들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안아온 력사적사변이였다주체적인 녀성운동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없이 빛내여나갔다녀성동맹안에 당의 령도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녀성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혔으며 녀성들속에서 혁명화로동계급화를 다그쳐 모든 녀성들이 혁명과 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었다.

정치생명유기체사상과 녀성

실로 녀성을 개인적자아에서 사회적 그리고 집단적자아로 무어내여 녀성중대를 독자적으로 편성한것은 모택동부대에도 호지명부대에도 없었던 김일성항일유격대의 독자적인 모습이였다현대군부대에서도 간호병위생병행정병 등 특수병과에서만 녀군부대가 허용될 정도이다미국도 이라크전에서 최초로 중동에 녀성전투부대를 파견했을 정도이다.(홍동근, 176177) 우리는 부쉬가 어느 녀전사의 무용담을 조작해 선전하다 망신당한 일을 기억할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에는 이런 녀전사들의 무용담이 장마다절마다 나온다.
이는 최근에 발생한 문명사적근원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만약에 차광수가 지금 살아있다면 최근 중국 료하류역에서 발굴된 소위 홍산문화는 황하강류역의 앙소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대규모녀신전이 나온 사실에 놀랐을것이다바로 고조선이 존재했던 지역이다그래서 최근에는 환인,환웅단군까지도 모두 녀성들이였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있는 실정이다.
차광수가 살아있었더라면 해방후 고고학자가 되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에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나 이완감독의 《색계》는 이미 개인주의화한 자본주의시대의 녀성상그리고 성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 프로이드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 전형적인 헐리우드판작품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바로 프로이드가 가져다준 세계관속에서 살고있기때문에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이 뛰여나다고 한다그래서 북의 예술영화를 이에 대비하여 《색》과 《계》에 마침표(.)를 찍고있는것으로 단정하고싶어한다.
《생의 흔적》은 전형적인 사회주의문학의 전형즉 사실주의예술이라 할것이다.
나는 북의 예술을 볼 때마다 우리 미래세계가 지향하고있는바개와 전이 조화된 전체가 하나를 위하여하나가 전체를 위해 사는 기제장치가 그 어느 사회보다 잘 되여있는 문화예술이라고 본다.메타인간을 예견하고있는 작품들로 평가하고싶어 한다다시말해서 색과 계 그리고 개와 전이 쉼표와 마침표가 함께 이어지는 세미콜론(;)으로 구태여 명명하고싶은 문학이라 평가하고싶다색과 계의 관계는 결코 개와 전의 관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기때문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생명유기체적관계로만 파악될수 있다는것이 북의 헌법 63조의 정신이고 주체사상의 인간관이 아닌가 한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취임사》

리명박《대통령》의 《취임사》는 그 진위문제로 하여 어느때보다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그것은 《대통령》자신의 《정치철학》인 동시에 국정의 근간이 되기때문이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1936년 유격활동기간동안에 만들어진것으로 북의 정치철학인 동시에 그대로 국가의 리념이다그래서 여기서 량자를 비교해보는것은 지금 남북의 현주소를 그대로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첩경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력사적배경

회고록전반에 걸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민생단》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혹은 《10대강령》)이 아닌가 한다북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노래가 널리 불리우는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시되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한마디로 말해서 북의 정신적 그리고 건국의 정초가 되는것이 10대강령이다.
김일성주석은 일제타도와 조국광복을 위하여 1936 5월 길림성 무송현 동강에서 조국광복회를 창건하고 조국광복회 창립선언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발표하였다이 사건이 중요한 리유는 조국광복회결성을 력사상 최초로 전민족적혁명조직이 만들어진것이며 10대강령은 그 당시 조선의 현실에 나머지수자 하나없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정당성과 적합성을 지닌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 10대강령은 조국광복회의 활동방향을 제시했을뿐만아니라 당시 조선민족해방운동의 정치로선그 전모를 말해주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가받고있다.
나아가 10대강령이 발표된 이후 김일성사령관은 1936년말1937년초 최초로 백두산을 발판으로 주변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본토진출의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었다드디여 1937 6 4일 김일성사령관이 이끄는 항일련군 제6사는 국내에 조직된 조국광복회와 련계하여 최초로 국내침투전투를 단행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보천보전투이고 같은 달 말(6 30)의 간삼봉전투였다.
조국광복회는 조직의 발판을 확대하여 결국 김주석이 1945년 귀국했을 때에 새 조선건국의 발판이 되였던것이다이렇게 생각할 때에 10대강령의 중요성은 여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이다《취임사》이든 10대강령이든 그것이 시의적절한것이라면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이렇게 파급효과를 가져야 한다그래서 하나의 미사려구가 아닌 력사와 함께 살아남게 되는것이다아무튼 10대강령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효하며 오늘의 북의 현실 그대로이다.

조국광복회폄훼에 대하여

남《한》의 학자들이 김일성주석과 그의 혁명활동을 폄훼함에 있어서 몇가지 씨나리오가 있다그하나가 10대강령과 김일성주석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것이다그들은 조국광복회 회장과 10대강령작성자가 김일성주석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김준엽김창순림은리정식,서대숙와다하루끼 등의 국내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불식된지 오래이기때문에 이젠 거론조차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일성주석이 이끈 항일혁명사외곡행위는 당시의 일본측 자료와 그 당시 국내신문들마저 대대적으로 보도한 자료가 있는 마당에서 설득력을 잃고만다최근에는 신진 젊은 학자들이 석사박사론문을 통해 항일혁명사외곡을 모두 부정하고있는 실정이다특히 연변대 조선족학자 김성호교수는 김일성주석항일유적지를 몇차례 답사한 후 회고록의 기록이 사실 그대로라고 말해주었다.
김일성주석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장 비중있게가장 많은 회수로 언급하고있는것이 조국광복회결성이다조국광복회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곳은 회고록 제3권이다.
3권 제7 3절 《쏘베트냐인민혁명정부냐?》에서 《이날의 모임에서는 인민혁명정부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라는 내용의 나의 연설이 있었고 10개 조항에 달하는 정부정강내용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그 정강내용은 후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였다.(3 76페지)고 쓰고있다.

쏘베트냐 인민혁명정부냐

그러면 우리의 관심의 요체는 여기서 말하는 《이날의 모임》(1933 3 18)이란 무슨 모임이였느냐이다《쏘베트》란 맑스주의리론을 원리원칙대로 적용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공동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이전 쏘련의 10월혁명이후 이를 리상화한 맑스주의교조주의자들은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개인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는 숟가락까지 몰수해가 공동분배한다는 쏘베트집단공동체를 만들려 했다.
동만유격구에도 쏘베트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들 좌경분자들을 두고 김일성사령관은 《좌경적편향은 교조주의사대주의모험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의 소부르죠아적조급성의 산물》(3 55페지)이라고 단정한다.
교조주의를 비판하는것은 맑스주의원리원칙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것이다사대주의라 하는것은 쏘련에서 분 바람을 그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것은 주체가 없는짓이란것이다결국 이런 실용성이 없는 교조주의는 인민으로부터 일탈을 가져왔으며 유격활동에 심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유격구가 갑자기 쏘베트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일제통치구역으로 떠나는 현상마저 생겼다《여기서는 숨이 막혀 더 살수가 없어서》가 주민들의 원성이였다그러나 극좌좌경분자들은 이런 원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맑스주의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적용하는것자체가 목적이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장영을 만났지만 그 역시 벽창호였다고 회고하고있다.
김일성사령관은 여기서 결단을 내린다왕청5구를 시범으로 쏘베트를 청산하고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기로 결단을 한다이는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사건때 내린 결단만큼이나아니 그이상으로 큰것이였다그 리유는 여기서 말하는 인민혁명정부란 다름아닌 조국광복회의 효시였으며 나아가 해방후 정권수립의 최초의 단서가 이에서 모두 비롯하기때문이다.
1933 3 18(이날은 모쁘르기념일이였다모쁘르란 국제혁명투사위원회 략칭이다. 1923년 코민테른집행위에서는 희생된 혁명투사유가족들의 후원을 목적으로 이 조직을 내오게 하였고 3 18일을 국제적인 모쁘르날로 정하였다.) 5구 조창덕의 집에서 20여명이 모여 《인민혁명정부》의 탄생을 선포한다그리고는 쏘베트가 몰수해간 개인의 재산을 모두 본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심지어는 소비해버린것은 보상까지 해주었다.
인민혁명정부는 가야허마을에서 사수평마을로 급속히 확산되여 3년후 1936 5 5일 조국광복회탄생의 모체가 되였다.
그리고 조국광복회는 국내로까지 조직이 확대되여 혜산과 갑산 등지의 조직원들이 김일성항일유격대와 협조하여 보천보전투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했던것이다그래서 오늘의 북의 정부탄생은 이 조국광복회와 그리고 그 정신없이는 리해할수 없다고 하는것이다.
10대강령이 지금도 유효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

1.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2. 재만조선인들은 조중민족의 친밀한 련합으로써 일본 및 그 주구 《만주국》을 전복하고 중국령토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진정한 민족자치를 실행할것.

3. 일본군대헌병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

4. 일본국가 및 일본인소유의 모든 기업소철도은행선박농장수리기관 및 매국적친일분자의 전체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독립운동의 경비에 충당하며 일부분으로는 빈곤한 인민을 구제할것.

5. 일본 및 그 주구들의 인민에 대한 채권각종 세금전매제도를 취소하고 대중생활을 개선하며 민족적 공상업을 장애없이 발전시킬것.

6.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전취하고 왜놈의 공포정책실현과 봉건사상장려를 반대하며 일체 정치범을 석방할것.

7. 량반상민 기타 불평등을 배제하고 남녀민족종교 등 차별없는 인륜적평등과 부녀의 사회상대우를 제고하고 녀자의 인격을 존중히 할것.

8.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의 철페강제적군사복무 및 청소년에 대한 군사교육을 반대하며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의무적인 면비교육을 실시할것.

9. 8시간로동제 실시로동조건의 개선임금의 인상로동법안의 확정국가기관으로부터 각종 로동자의 보험법을 실시하며 실업하고있는 근로대중을 구제할것.

10. 조선민족에 대하여 평등적으로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밀히 련합하며 우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선의와 중립을 표시하는 나라 및 민족과 동지적친선을 유지할것.


《취임사》와 10대강령의 대차대조

강령의 대강의 15항은 반제(반일본), 69항은 반봉건(남녀평등계급평등), 10항은 국제친선에 관한것으로 크게 분류된다오늘날 평등파와 자주파가 반드시 읽어야 할 대목이다북에서는 왜 이런 때늦은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지도 리해하게 될것이다 10개 조항들은 탁상공론으로 쓰인것이 아니다《민생단》과 《쏘베트사건》과 같은 력사의 현장에서생명을 내건 싸움에서 얻어진 산교훈에서 나온것이다극좌좌경과 민족주의와 일제라는 삼각파도를 헤치면서 풍파속에서 피를 먹물삼아 쓴것이 10대강령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남《한》사회의 운동권에서 자주파와 평등파가 저렇게 피투성이가 되여 싸움을 하는것을 이미 북의 지도자들은 1930년대 만주에서 경험한것이다그리고 이를 10대강령속에 용해하여 1945년 해방을 이룩하였다더 거슬러올라가 생각할 때에 동학혁명 역시 10대강령의 정신과 과히 멀지 않다반제반봉건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은것이다.
나는 리명박《대통령》의 취임사가 이 시대와 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강력한 힘과 타당성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그래야 우리모두가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기때문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남북은 지금 너무나 딴 길로 가고있다고 느끼게 되였다어느쪽이 바른 선택을 했는지는 력사가 판단할것이다여기서는 그 차이점만 말해놓자그리고 이 글을 읽는분들 선택의 자유에 맡겨놓자.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8항은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라고 했다그런데 리《대통령》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했다우리 어린아이들의 혀를 더 자르라는 소리같이 들린다혀를 더 자르는 경우 인간의 언어기능자체가 말살되고만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모국어로 시를 쓰고 모국어로 수필을 쓰고 소설을 쓰는것은 수치스럽게 되여가고있지나 않나.
일본에 대해서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다그러나 우리는 아직 일본에 대하여 물을것도 많고 요구할것도 많다《정신대》할머니들의 한은 깊어만 가고있다《대통령》의 말이 이들의 한에 덧상처를 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우리 문화재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있다무엇보다 분단의 궁극적인 원인은 일본때문인데 어째서 일본에게 물을것이 없다고 하는지 리해 못하겠다.
그리고 남북을 하나로 생각한다면 북은 아직 일본과 배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있다그런가 하면 일본은 아직도 독도를 자기들 령토라 우기고있다이건 완전히 재침략의 야욕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이런 일본에 과연 물을것이 없고 요구할것이 없다고 할수 있는가? 10대강령 15항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남쪽은 리념과 산업화를 넘어서 《선진조국》의 시대로 가자고 했다그러나 나는 이 말이 박정희의 《근대화》의 연장선상의 언어로만 들렸다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과거 산업화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말로만 들린다선진국/후진국이란 이분법으로 지금 우리를 아직 후진에 있다고 보고 한 말이 아닌지《오래된 미래》란 말이 있다.
에네르기절약을 최소화하고 초롱불 켜도 온 세상과 한몸같이 되는 작으나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는것이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가그런 면에서 북은 남보다 훨씬 선진사회로 가로질러가기 쉽지 않을가그런데 리명박은 선진조국을 7. 4. 7에 련관시켰다경악을 금할수 없다아마 그 어느 지성도 선진을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을것인데 말이다최소한 바라건대 10대강령 69항에 위배되지 않은 선진화가 되기 바란다.






체 게바라혁명의 진정성은?

감자꽃

체 게바라의 《달빛》은 그가 적에게 포위당해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며 쓴 시같다.
달빛비친 나무사이로 보이는 감자밭은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도 비슷한 장면으로 나온다《피바다》 초연을 하고 백두산아래 첫동네 무송현 남단 만강을 김일성항일유격대원들이 지나갈 때 달빛아래 때늦은 자주빛감자꽃이 들을 가득 메워 피여있었다때는 1936 8체 게바라가 생의 마지막순간 바라보던 1967 10월의 감자밭이 두 영상이 하나로 포개여지면서 나는 이 지구의 량극단에 있는 두 감자밭을 《민중》이란 이름으로 아로새기고싶어 이 글을 쓴다.

《달빛》

이른 저녁
희미한 달빛아래
숲속 은신처에 포위된
우리는
이제 37명뿐이다

나무사이로
감자밭이 보인다
더이상,
탈출구가 없다

만강은 만주 어느 지역보다도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김일성주석은 피바다공연을 끝내고 만강을 지나가던 추억을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동강에서 무송현성전투승리를 총화하는 반일부대지휘관들과의 련합회의를 끝낸 다음 나는 주력부대를 데리고 백두산의 서쪽 위성구역인 만강으로 향하였다.
만강은 드넓은 고원우에 올라앉아있는 백두산아래의 첫동네이며 무송현 남단의 마을이다여기서 남쪽으로 되골령을 넘으면 장백땅이고 서남쪽으로 로령을 넘으면 림강땅이다.(5 4849페지)
감자밭사이로 구름에 달가듯 유격대원들이 일렬종대로 행군하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다.

《마찌니의 님은 이딸리아》

아래 시는 한룡운 《님의 침묵》 서시 《군말》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것은 다 님이다/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철학은 칸트의 님이다/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마찌니의 님은 이딸리아이다/님은 내가 사랑할뿐만아니라 나를 사랑한다

여기서 말하는 《님》은 하나로 고정된 의미가 아닌 다양한 뜻으로 해석된다《긔룬것》은 다 님이라는것이다《긔룬》은 《그리움》과 《길음》의 두 말의 의미를 합성한것으로 풀이된다그렇다면 만해의 시는 군말의 군말을 이어갈 여지를 우리에게 남겨놓고있다고 볼수 있다긔림은 봄비와 장미같은 자연속에도 있고중생과 석가같은 종교속에도 있고칸트의 철학같은 사상속에도 있고,이딸리아와 마찌니와 같은 력사와 혁명속에도 있다더우기 인간은 그 어느 존재보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긔루는것》이 있기때문이다님을 《긔린다》는것은 랑만을 넘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칠수 있는것이다.
19201930년대 조선의 문인들은 한결같이 님을 절규하였다소월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면서 님을 향해 절규하다 요절하였다육사는 흰말 타고 광야를 달려오는 님을 긔리였다님이 되는데는 조건이 있다《내가 님을 긔룰뿐만아니라 님도 나를 긔리면》 모두 님으로서 성립되기에 필요충분한 조건이다그런데 소월의 시는 님을 절규하다 부정이 부정으로 끝나고마는데 만해의 시는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보다 큰 긍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로서 《부재(不在)》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식민지지배하에서 존재하지 않는 《님》은 조국이 존재함으로써만 드러난다일제식민지현실속에 시인자신이 추구하고 민족이 갈망하는 진정한 조국(《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부정그러나 현실의 관점에서는 식민지조국을 어쩔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조국의 해방으로 《님》을 만났다 하더라도(긍정그안에 품고있는 모순(례를 들면 분단과 같은)과 싸우기 위하여 《님》과 다시 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부정)는 론리가 이뤄진다이처럼 만해에게 있어서 《님》이란 끊임없는 부정을 통하여 더 큰 긍정으로 나아가는 살아움직이는 개념으로 식민지시대에만 국한된 고정불변한 개념은 아니다.
민족과 혁명이란 두 개념은 어떤 점에서 불가상용적개념이다그런 두 대립되는 님을 한꺼번에 같이 가슴에 안고산 혁명가가 있는가 하면억눌린 민중의 해방만을 님으로 사랑한 혁명가들이 있는가 하면민족의 해방만을 님으로 사랑한 혁명가도 있다.
마찌니는 1831년 이딸리아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있을 때에 청년당을 만들어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국가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한 이딸리아민족주의의 화신이다그의 님은 민족과 그 민족의 해방이였다그러나 남아메리카의 체 게바라의 님은 민족이 아니고 민중과 계급만의 혁명이였다그래서 그는 아르헨띠나에서 태여나 꾸바에 가 혁명을 성공시켰으나 볼리비아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다 죽었다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마찌니같은 민족이란 님은 없었다그의 님은 민중이요혁명이였다.

체 게바라가 사랑한 꾸바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 6. 141967. 10. 9)는 아르헨띠나에서 태여났다원래 이름은 에르네스또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문화어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이다그가 남긴 주옥같은 시어들은 그가 긔린 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님을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림같이 전한다.

《꾸바》

나는꾸바사람들의눈에 보이는모든것을만져보고싶었고모든것을느끼고싶었고그리고/모든것을 알고싶었다

《사랑》

민중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정의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대함없이는
진정한 혁명가가 될수 없다

《참된 삶》

북아메리카의 백만장자가되는것보다는차라리문맹의 인디안이되는것이 낫다

《유언》

/지금혁명의 불멸성을생각하고있다

혁명은 결코 혁명으로부터 시작하는것이 아니다사랑할줄 알고 춤출줄 알고 자연속에서 자기를 잃을줄도 아는 인간만이 진정한 혁명가가 될수 있다세상을 싫어하고 인간을 기피하는 염세주의자가 혁명가가 되였다는 얘기는 없다젊은 남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의학도로서 원래 새로운것을 찾아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랑만적인 려행가였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말하고있다모터찌클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기 좋아하던바람기마저 있던 풍류객같은 인물이 체 게바라였다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회고하고있다그의 바람기그것이 바로 혁명의 불씨일것이다.
자서전 첫 장에 있는 첫 려행을 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애초에는 코르도바지방의 두세곳만 돌아보려 했다그런데 어쩌다가 싼띠아고와 투쿠마카타마르카라 리오자싼 후안멘도자싼 루시스부에노스아이레스미라마르까지 가보자는 충동적인 시도로 발전하게 되였다(자서전 28)고 쓰고있다그가 첫 려행을 떠날 시기의 나이는 23살이였다이 려행은 그가 누구를 만나기 위해 어느곳을 특별히 가고싶어서 떠난 려행은 아니였다그의 표현대로 하면 자서전 첫 장의 제목그대로 《충동적인 시도》에 불과했다이 첫 려행은 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넓은 세계를 향해 떠나가는 첫 충동적려행이였다.
오토바이를 타는 재미 그리고 처음 보는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처음에는 황홀했을것이다그의 친구 까를로스 페레르 소리쟈(73)에게 인디안처녀들의 아름다움으로 그가 동행하기를 유혹했다고 한다그러나 그의 려행은 계속될수록 단순한 려행이 아니고 《목격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소리쟈의 기차려행회고에 의하면 《당시 호주머니에는 7 000페소정도가 전재산(당시 환률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현재시세로 1 000US$가 채 안된 금액정도)이였고 가방에는 옷가지보다는 책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띠로역을 떠난 우리는 볼리비아의 라빠스에 머물다 뻬루와 에꽈도르로 들어갔다에꽈도르에 도착한 후 나는 베네수엘라의 까라까스에 머물게 되였고 그는 과떼말라를 거쳐 메히꼬로 건너가 라울 까스뜨로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꾼 려정이 된것이다.


려행자에서 목격자로《배움의 천리길》

김일성주석이 1923 3월에 걸은 《배움의 천리길》은 어떤 의미에서 성년식과 같았다.
김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선생은 조국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12살 어린 자제를 천리길을 걷게 한다이것을 두고 《배움의 천리길》이라 하여 금년에는 이에 대한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였다.
중국 팔도구를 떠나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포평에서부터 고향 만경대까지의 천리길을 걸으면서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조선인민들이 겪고있는 비참한 처지에 대한 생활체험을 한다북의 청소년학생들은 해마다 3월이면 수천명규모의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를 조직하여 천리길로정을 밟고있다.
어린 김주석의 진정한 배움은 목적지 고향에서 있었던것이 아니고 천리길을 걷는 이 과정속에 있었다혁명도 결국 끝없이 진행되는 과정이 아닐가그러나 우리는 혁명의 결과를 늘 기대하고 실망하기도 기뻐하기도 하지 않는가?
체 게바라가 집을 떠난 모터찌클려행은 이에 비하면 훨씬 랑만적이였다그러나 랑만으로 시작한 려행이 점점 현실로 변한다같이 려행한 그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라나도와 함께 한 모터찌클려행이 젊음을 발산하는 랑만적인 려행길이였다면 우리의 기차려행은 중남아메리카빈민들특히 토착원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고단한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이였다랑만적인 청년 체를 혁명가로 변신하게 만든 려행이였다는 말이다.
체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그의 유년기는 랑만적인 젊은이들의 삶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그의 꾸바투쟁은 혁명가로서 승리자였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볼리비아투쟁은 비록 실패했지만 20세기 저항의 상징으로 우리곁에 살아숨쉬고있다는것이다그러나 김일성주석의 경우는 10대초반의 나이부터 혁명의 길에 나섰으며 이와 같은 랑만은 없었다그 나이부터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였다.
체가 처음 목격한 대상은 작은 다리밑에서 지내는 떠돌이남자였다이 남자는 차코지방에서 면화따는 일을 하다가 싼 후안으로 가서 포도수확일을 할것이라는 남자였다체 게바라는 려행을 계속할수록 이런 인간군상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되였으며 그래서 그의 려행은 그의 인생교육장이 되였다.수렁속에 빠져사는 민중들의 바다를 지나면서 그는 드디여 26살때에는 제국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과떼말라에서 총을 들고말았다. 28살때에는 꾸바로 떠나는 혁명가들의 배를 타게 하였다드디여 31살때에는 꾸바혁명을 성공시킨다마침내 39살때에 볼리비아밀림에서 미제와 싸우다 전사한다이러한 체를 싸르트르는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부른다싸르트르의 이 말도 전세계혁명사를 다 읽지 못한 단견의 결과가 아닐가?

김일성주석과 호지명주석

마찌니와 체 게바라와는 달리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라는 두개의 님을 가지고 평생을 산 인물이김성주소년김일성주석이다.
김일성주석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이며 또 진정한 민족주의자도 참다운 애국자라고 보는것은 나의 변함없는 신조이다.(4 462페지)라고 주장하고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서로 불가상용적인 이 두개의 님을 하나의 님으로 묶어낸것이라 할수 있다이밖에도 국제주의와 지역주의를 하나로 엮어내여 주체를 세워나갔다김일성주석의 독특한 종합주의때문이라고 믿는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편에 흐르고있는 기본틀은 이런 종합주의에 있다고 보는데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나는 《마오이즘》(Maoism)에 대하여 이를 《키미즘》〔Kimism(KIm Il Sung initial)〕이라고 국제화해야 한다고 본다키미즘이 마오이즘보다 우월함은 1970년대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발표된바도 있다이에 대하여서는 다음기회에 차례로 소개하려 한다.
이러한 두개의 님을 동시에 긔룬 혁명가 김일성주석을 가장 닮은 혁명가는 윁남의 호지명주석이였다.분명 호지명의 님은 윁남이였다서양제국주의로부터 민족의 해방과 계급의 해방이란 두 님을 동시에 긔루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김일성주석과 닮은 점이 있다《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반제반식민지투쟁에 생애를 바친 아시아의 대표적인 혁명가이다.(, 1997, 149)
호지명의 본명은 《구엔 신 군》이다《김일성》이라는 명함처럼 혁명이 붙여준 이름이다김일성주석과 호지명주석은 일제와 미제뿐만아니라 같은 공산국가들로부터도 자기 민족과 국가의 존엄성과 자주를 지키려 했었다외국군대의 남부윁남침입을 반대하고 윁남문제는 윁남인스스로 결정해결해야 한다는 호지명의 투쟁은 《조선사람은 조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김일성주석의 신념투쟁을 닮았다고 볼수 있다.
이들의 님은 조국과 혁명이였다.

《만고의 애국자는 누구인가를》

꾸바의 까스뜨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서로 고생한 후일담을 나눈적이 있다이자리에서 까스뜨로가 김일성주석에게 유격활동기간중 식량문제와 피복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묻는다.
김주석의 고생담을 다 들은 까스뜨로는 탄복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꾸바는 중국 동북지방이나 조선과는 달리 기후가 매우 더운 나라입니다그리고 먹을것도 많습니다.
김일성사령관부대가 항일유격활동을 한 북위 43도 훨씬 상위지역인 동만과 북만일대는 한해의 반이 동토로 변해버리는 곳이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있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하고 조국에로 다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시련에 찬 길인가를 진정 뼈에 사무치게 느낀다고 말할수 있다.(3권의 머리글)
《나는 한평생 민족의 존엄을 위하여 싸워왔다나의 일생은 민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력사였다고 말할수 있다우리 민족을 해치거나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건드리는 놈들을 나는 한번도 용서하지 않았다.(4 115페지)
남아메리카는그리고 호지명이 싸운 윁남의 경우는 자연환경자체가 혁명가들로 하여금 추위와 배고픔으로 시달리게 하지는 않았기때문에 까스뜨로가 그렇게 말한것이다체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와의 싸움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투쟁을 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의 이름도 쉽게빠르게 국제적이 될수 있었을것이다체를 두고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한것도 그의 투쟁 전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있었기때문이다.
력사가들은 꾸바혁명의 성공은 쟝글과 도시의 결합이라고 했다체 게바라가 《뉴욕 타임스》 기자를 유격구아지트로 불러 기자회견을 두번이나 한것은 꾸바국내와 전세계에 혁명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950년말 세계의 이목은 꾸바에 집중돼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리고 꾸바국내여론을 사로잡는데 언론이 큰 역할을 했었다그리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데 34년이면 족했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이 이끄는 항일유격대는 외로운 투쟁을 하였다추위와 배고픔은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는 같은 공산권들로부터도 아무런 지원이 없는그리고 세계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동북아 밀림과 황야에서 15년이란 그렇게 긴 세월을 싸워 살아남은것이다.
《홀로코스트》만 하더라도 유태인의 그것은 잘 포장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 동정도 받고있지만 우리는 고난의 력사마저 차별을 받고있다《위안부》문제만 하더라도 이제야 겨우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인정을 받아가고있는 실정이 아닌가?
이에 세계사의 한장에 진실을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김일성주석의 한생이 장백산 줄기줄기마다압록강 굽이굽이마다에 그와 그의 유격대가 흘린 피가 묻어있는 곳을 찾아 확인하고 세계혁명사를 다시 써야 할것이다과연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야 할것이다.
지금 체 게바라는 완전히 세계혁명사의 하나의 브랜드가 되였다상품화가 되여 그의 얼굴이 있는 티샤쯔판매수입만 하여도 엄청날것이다.
우리도 리념을 진정으로 초월한다면 우리의 혁명예술의 결정판 《아리랑》공연을 국제적으로 브랜드화시켜야 할것이다체 게바라 서거 40주기행사는 국제적이 되였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공비》란 말이 일제가 만들어붙인 이름이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김일성항일유격대가 눈에 가시같더라도 일본놈들이 붙인 이름만은 사용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가이는 량식있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혁명은 영원히 긔리는것으로 남을지도?

글을 맺으며 달빛속 볼리비아의 산골짝 어느 감자밭과 함께 왜 이렇게 만강이 영화의 한 장면같이 가슴을 처연하게 하는것일가?
지금도 철이 되면 감자꽃은 피고지건만 이 두 혁명가들이 그리던 세상은 어디에 있는지그리고 그들이 청춘도 삶도 다 버리고 사랑했던것은 무엇이였는지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무엇때문에 혁명을 했는지혁명이란 영원히 긔리는것이 아닐지혁명의 진정성은 혁명가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이 혁명가를 사랑하는그래서 서로 긔리는 정념이 남아있는 한 성공한 혁명이라고 정의할수 있지 않을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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