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룡비어천가와 명비어천가

《룡이 하늘에서 내리샤》가 룡비어천가의 첫 구절인것은 누구나 다 안다. 《룡비어천가》는 리성계의 건국을 하늘에서 룡이 내린것에 비유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확고히 굳히기 위하여 세종대에 쓰인것이다. 그래도 3대나 지나서 나온 글이다.
그러나 리명박《대통령》의 당선과 동시에 《명비어천가》란 신조어가 나돌았다. 《좌파정권청산》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은 기분이였으니 가히 당선과 동시에 룡비어천가를 쓰는 기분이였을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남《한》의 력대 《대통령》들은 리명박뿐만아니라 당선이 되기가 바쁘게 자기자신으로부터 나라가 새로 건국되는듯이 룡비어천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룡비어천가를 쓰네》라는 류행어까지 나돌 정도이다. 우에서 좌로 바뀔 때 김대중《대통령》은 《제2의 건국》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강준만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원조경쟁》이라 하면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풍경이라 할 치렬한 <원조(元祖)>경쟁은 비단 음식점들사이에서만 벌어지는건 아니다. 지도자들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자신이 새시대를 여는 원조로 기록되고싶어하는 지도자들의 야망경쟁은 <한국정치>의 익숙한 모습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실용정부>라는 딱지가 바로 그런 야망을 웅변해준다.(《한국일보》 2008 2 20일부)고 하였다.
이어지는 글에서 강교수는 지도자의 이런 심리상태를 《원조콤플렉스》라 한다. 《우리 지도자들의<원조콤플렉스>는 과거와 단절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전 정부들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걸 <정치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게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리유다.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욕은 과거를 부정하면서 기존질서를 때려부시는걸로 시작한다.(같은 글)
《원조콤플렉스》란 외래어를 쓸 필요없이 《원조병(元祖病)》 혹은 《원조걸신병(乞神病)》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보면 원조병은 보수뿐만아니라 진보에도 다 걸린 병이다. 진보와 보수간 정권이 바뀌는것을 한 나라안의 정권차원의 변화가 아니고 나라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정도라고까지 생각하는것 같다. 누군가 권력만 잡으면 스스로 단군이나 되는것처럼 자처해 건국의 아버지가 되려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증상을 비슷하게 보인다는것은 어딘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강교수의 글은 이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해내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즉 강교수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가문의 영광이 좌우되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엘리트가 사는 나라》가 《한국》이고 이런 나라이고보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것이다. 강교수는 원조병을 지도자의 권력야망에 돌리기까지 한다. 즉 《원조콤플렉스》가 나쁜건 아니다. 야망이 없었다면 어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수 있었겠는가. 중요한것은 야망을 옳은 방향으로 발휘하는 지혜이지 야망자체는 탓할게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한국》의 원조병은 지도자 개인의 권력욕이나 인생과 나아가 가문의 영광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나라가 성립하는 건국의 단서와도 관계가 있는, 그래서 이 원조병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론리적인 분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시말해 원조병은 《콤플렉스》라는 한갖 개인적심리증상이상이라는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원조병의 원인이 건국이라는 론리에 있다는데서 다음과 같이 진단해보려 한다.

다산의 《원정》과 알랭 바디우의 집합론

정다산은 《원정(原政)》에서 조선조 말같은 삼정의 문란, 관료들의 가렴주구 등 같은 현상을 바로 보고 한 나라가 어쩌면 이렇게 될수도 있을가 회의하면서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밑바닥에서 성립하는가를 보기 위해 《원정》을 썼다. 지금 읽어도 왕조시대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 있었는지 실로 대담한 글이라 아니할수 없다.
다산에 의하면 자고로 한 나라란 임금부터 있고 나라부터 있어 생긴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흩어져살다 모여 촌락을 만들고 촌락을 운영하는데 불편한것이 생기니 촌장을 뽑고, 범죄자가 생기니 그 촌장이 나서서 시비를 가리다보니 법이 생겨 이렇게 연장되여 나라가 되였다는것이다. 《원정》의 기본정신은 백성으로부터 백성이 주인이 되여 백성에 의한것이 나라가 세워지는 리유라는데 있다.
우리는 일제에 의하여 이런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고 그것을 다시 찾아 건국을 하려고 했을 때는 사실상 다산의 이러한 《원정》의 정신에 의하여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것이다. 대승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두고 위기는 곧 기회라 하는것이다. 봉건잔재를 청산하고, 수천년 때묻은 계급을 타파하고,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힘으로 자주적인 나라를 세웠더라면 이것이 진정한 건국이지 않았을가 한다.
우리 한번 다산의 이러한 국가관을 현대프랑스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수학적존재론에 립각하여 재검토해보자.
알랭 바디우는 수학의 집합론을 리용하여 백성들을 구성요원 혹은 《요소(element)》로 보았을 때에 이런 구성요소들은 집합에 《귀속(belonging)》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1차적인 요소들의 귀속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을 《상황(situation)》이라고 한다. 학생이라는 구성요소들은 《학급》을 만들고 이때에 학급은 요소가 아니고 《부분(part)》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분은 학교라는 집합에 귀속한다고 하지 않고 《포함(inclusion)》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분들이 포함되는것은 상황에 대해 《상황의 상태(state of situation)》라고 한다. 이런 몇가지 중학생정도의 집합론적용어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정치관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해두면 현대의 국가는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라는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상황의 구성요원들 즉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만 국가가 경영하는것은 부분들이지 요소가 아니다. 아니,국가는 자기를 선출해준 구성요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재로 돌변한다. 여기에 상황과 상황의 상태사이에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상황의 요원들인 인민, 국민, 민중들이 볼 때 국가는 더이상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요소들로부터 권력이 나오는데 요소들이 오히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것은 모두 집합론상의 론리적구조에서 불가피하다는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요소와 부분 그리고 귀속과 포함을 구분하는것, 그리고 나아가 그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는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국가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신기원을 만들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하는데서 바디우의 정치철학이 각광을 받고 주목을 받는 리유가 있다.
아직 살아있는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2008년 남쪽에서 열리는 세계철학자대회(7 308 5)에 주제강연자로 되여있다. 그는 지금 탈현대이후 서양철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가 영미분석철학과 현상학 그리고 탈현대의 제 철학을 모두 종합할수 있는 대안의 철학자로 부상하는 리유는 그가 단단한 수학적기반우에 철학을 전개하고있기때문이다.
그는 한때 마오이스트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도 초기사상에서는 상황의 상태를 억압구조로 보고 이를 제거의 대상으로 겨냥, 마오이스트가 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왜? 《원정》에서 보는바와 같이 상황으로 되돌아가 건국을 하려는 이 정치적본능, 이것이 맑스주의국가관이였으나 바디우는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불가분리적이며 그래서 긴장관계라 보고 맑스주의같이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를 분리시키는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것이다. 그가 맑스주의와 결별하는 리유이다.

일반선거와 당원선거를 분리하는 리유

우선 해방이후 《건국》이라는 화두에 이 집합론의 간단한 개념들을 적용해보고 원조걸신병의 원인을 진단해내자. 서양에서 《국가(nation 혹은 state)》라는것이 처음 생긴것은 프랑스혁명이후부터라는데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이면 프랑스혁명후부터인가? 이것은 수학적인 질문이다. 다시말해 집합론적질문이다.
그 리유는 프랑스혁명이후에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생겼고 이 시민사회란 혁명이전에는 구성요소로 있던 개인들이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 시민단체가 생겨났고 이것이 발전하여 정당이 된다는것, 이는 집합론적으로 보아 요소가 모여 부분이 되였다는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국가는 다름아닌 이런 《부분들의 집합(set of parts)》이라는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국가는 정당을 전제하고 정당의 대표에 의한 의회정치를 전제한다. 이런 국가관이 지금까지 유효한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봉건시대의 개인이란 구성요소가 집합을 만들었으며 이는 곧 더이상 요소가 아니고 《부분》이다. 정당이다, 단체다 하는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 해당한다는것이다. 여기서 《리념(Idea)》이라는것이 부분을 만드는데 중심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혈연 그리고 지연에 의한 봉건시대의 집합은 리념에 의해 모인 집합이 아니기때문에 이런 혈연, 지연에 의한 부분들의 집합을 두고 《국가》라 할수 없다는것이다.
이는 공동체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리념에 의하여 개인이 재구성되여 부분이 만들어지면 이 부분의 집합이 바로 《국가》라는것이다. 프랑스혁명이후에 비로소 리념에 의한 부분이 만들어졌다는것이다. 집에서 개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학급에 편승되였을 때 그리고 교복을 입었을 때의 기분같은것을 프랑스인들은 혁명이후 경험할수 있었다. 몇학년 몇반의 구성요원들이 교복이란 유니폼을 입고 부분으로서 학교에 포함되는것을 느끼게 되는것과도 같은 의식변화말이다.
개인이 요소에서 부분이 된다는것은 엄청난 의식의 변화이다. 귀속하는 존재가 아니고 포함되는 존재라는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 개인은 국가를 위해 죽을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하게 된다. 자기의 주검이 있는 관우에 국기가 덮이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조국을 위해서》란 명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 국가란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이다. 이것이 현대의 국가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소가 부분을 만들고 그 부분이 전체집합에 포함이 된다면 이를 바디우는 《정상(normal)》이라고 한다. 그런데 귀속은 되나 포함이 안되는 경우나 포함은 되나 귀속을 안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국가와 개인간의 조화도 갈등도 함께 증폭된다.
현대국가에서 상황과 상황의 상태간의 긴장관계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를 경선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당원대의원투표와 일반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였다. 박근혜같은 경우 당원대의원선거에서는 이기고 일반선거에선 패배했다. 손학규는 그 반대였다. 그럼 왜 이 두가지 방법을 같이 병행해야 하는가이다. 그 리유는 현대국가란 상황과 상황의 상태란 이중구조로 되여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국가의 지도자가 상황의 요소들로부터(일반선거)와 상황의 상태(정당대의원)의 두곳에서 동시에 표를 얻어야 진정한 대표성을 갖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선과정의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있다는것은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긴장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것이다. 지금 미국대통령예비선거에서도 당원대의원선거와 일반선거를 동시에 치르고있는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직접선거와 선거인단선거를 병행한다. 현대국가개념에선 불가피한 현상이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관계를 한눈에 일별해 리해하기 위해 례를 든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공부하기 앞서 론리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할 리유가 있다. 《한국》에 온 빌 게이츠가 미국의 미래는 수학과 과학교육에 달려있다고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상황의 상태의 부분들을 포함하기때문에 상황속에 있는 개인 하나하나에 대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억압을 하고 통제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권력은 자기들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대하여 주장하려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철학자 대비드 흄은 《힘은 언제나 피지배자인 민중에게 있지만 민중은 지배자에 종속한다.》고 했다. 민중들이 투표를 해 지도자를 선출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나 민중을 탄압한다.
이에 대하여 촘스키는 《지배받기를 거부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비난하는 민중과 그들을 부당하게 지배하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인류의 력사이다.》라고 했다.(촘스키, 129) 맑스주의가 그렇게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촘스키도 맑스주의도 수학에 무지했다.
레닌과 모택동도 림종순간까지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데 대하여 그 비밀을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였다. 공산주의와 아나키스트가 다른 점은 후자는 상황의 상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있다면 전자는 국가대신에 당으로 이를 대치하려는데 있다. 부분이 당이며 그이상은 구차한 혹같은 돌출적인것에 불과하다는것이다. 그러나 혹떼려다 혹붙인다. 그 리유는 상황의 상태는 제거의 대상이 아닌 불가피한것이라는것이 바디우의 답이다. 그럼 해방후 우리 나라의 건국은 《정상적》으로 되였는가?

원조병의 원조는 리승만이다

이런 리론적배경은 남북의 건국과정과 왜 남에서 원조걸신병이 생기는지 그 리유를 잘 설명해낼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남은 상황없이 상황의 상태로만 나라를 세웠다. 이 말은 인민이든, 국민이든,백성이든 개개 구성원들의 의지도 힘도 반영 안된 리승만이 미국에 앉아 사귄 친구들과의 외교적활동을 통해 끌어들인 유엔,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힘으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건국을 한것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것이다. 나라의 구성조건의 두가지, 즉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운데 전자가 전적으로 결여된 건국을 하였다는것이다. 바디우는 이런 상황이 없는 상황의 상태를 《돌출(excrescence)》이라고 했다.
물론 정당도 있었고 단체도 있었고 선거도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상황에 귀속한것으로 된 부분으로 된것이 아니고, 아니 이것이 전적으로 배제된 상황의 상태에서 나라가 세워졌다는것이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가 없는 기둥과 지붕으로만 집이 만들어진 격이다. 그래서 남《한》은 폴 틸리히란 신학자의 말대로 《흔들리는 터전(shaking foundation)》이다. 리승만의 방식은 일본에 의하여 잘 교육받은 인재들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분야에서 풀가동하였고 이들 관료들의 공급을 받아 건국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해 상황의 상태의 전문《정객들(statesman)》이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들 《정객들》은 말그대로 상황의 인간들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의 인간들이란 뜻이다. 이런 정객들은 최고통치자가 되는 순간 결여돼있는 상황으로 가 나라를 세우려는 콤플렉스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콤플렉스로 끝나고만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외세와 기득권자들의 장벽이 너무 크기때문이다. 혹같은 돌출이 이젠 몸의 한 부분이 되여버렸기때문이다. 이것이 원조병의 원인이고 그 원조병의 원조는 결국 리승만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같이 상황의 요원들에 의해 부분이 만들어지고 상황의 상태에 의한 나라를 세울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 기회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였다. 이 혁명은 전국에 포접을 만들고 집강소를 두어 당이나 시민단체형태의 부분을 만들어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해방이후 《한국》정치인들이 걸린 원조병은 다름아닌 동학혁명이 놓친 상황으로 되돌아가 나라를 세우려는 무의식의 발로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봉준같이 피를 흘려야 하고 정치지도자자신이 그 변혁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만 한 용기도 의지도 없다. 원정을 동경은 하면서도 실현할만 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원조병》이란 다산이 말하는 《원정허증세(原政虛症勢)》라고 할수 있다. 상황의 받침이 없는, 그래서 항상 그것에로 재귀하려는, 그러나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이 걸리는 전형적인 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적원조병은 일종의 성병과 같은 《발기부전증(impotence)》에 해당하는 심각한 병증세이다. 이런 병증상의 원조가 바로 리승만이다. 원조병의 원조자체가 리승만이란 뜻이다. 이런 원조병은 우리 정치현실에 하나의 원죄와 같이 대를 이어 유전되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황의 요원격들인 인민대중 혹은 민중들은 자기들로부터 유리된 상황의 상태에 저항하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근본적인 남《한》사회의 갈등의 구조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리승만이후 그것이 좌파든 우파든 자기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 원조라고 자처하려 한다. 결국 리승만이 끼운 첫 단추에서부터 원조콤플렉스가 시작된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도 자기들자신들이 민중속에, 인민속에 들어와있지 않기때문에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로 끝나고만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기때문에 좌파는 우파에, 우파는 좌파에 실패의 원인을 책임전가한다. 《문민》, 《참여》, 《실용》 등 아무리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름은 이름일뿐이다. 이름은 상황에 가닿을 때에 그 진정성을 갖는데 이를 바디우는 《충실성(fidelity)》이라고 한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은 충실성으로 가능해진다는것이다.

지역감정과 철새가 생기는 리유

이렇게 《원정허증》으로서의 원조병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서구식민주주의를 도입한지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러나 정당정치도 의회정치도 제대로 안되고있다. 지역감정만 독버섯같이 번지고 이 정당에서 저 정당으로 오락가락하는 철새정치인들만 량산되고있다.
그 리유는 간단하다. 상황에서 리념을 같이하는 인간들이 모여 정당이란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기때문이다. 안되는 리유는 바로 그 리념이란것으로 상황의 구성원들을 법적으로 구속해 놓고있기때문이다. 즉 《반공》이란 틀을 전제해놓고 그속에 그리고 그 한계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리념이 생길수 없기때문에 정당도 있을수 없다. 정당이 없는 곳에 지역감정에 의한 사이비집단이 부분의 역할을 대신하고있다.
이렇게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부분들이 자생적으로 생길수밖에 없다. 소위 의회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반세기이상 지나오고있지만 한걸음도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이 성립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있을수 없고 나라는 자기 생존을 위해 철따라 날아다니는 철새의 서식처가 되여버렸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원조병의 기원과 리유와 유래는 분명해졌다. 바로 상황이 결여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자기들의 무의식속에 리승만이 생략한 상황에 구성요원들이 귀속되는 그리고 자기가 거기에 귀속하는 그러한 나라를 세우고싶어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민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확신을 갖고싶어한다. 바로 이것이 원조병의 기원이라는것이다.

그럼 김구였다면?

그럼 리승만이 아닌 김구가 건국을 했더라면 하고 가정을 세워보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사정은 별차이가 없었을것이다. 리승만이 미국에 앉아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나라구상을 했다면 김구는 상해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소조를 통해 리봉창, 강우규 등 렬사들을 통해 일제의 요인암살같은 테로의 방법으로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민대중들을 묶어내여 현대국가의 전제가 되는 부분들을 조직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독립군들은 일제말기가 가까워오자 대중적기반이 없어서 존속기반마저 어렵게 되였다. 식량과 무기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였다. 그의 투쟁은 한번도 국내에 총성을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국민들의 추앙은 받았지만 인민대중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리승만같이 전승국인 미국과의 외교적연줄도 맺지 못하였다. 즉 그는 상황도 상황의 상태도 갖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지금 화페의 인물도안으로 추천받을만큼 국민의 숭앙을 안고있는것은 무시할수 없다.그는 상황의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있었지만 상황의 상태를 장악하고있는 리승만에게 그것은 차단될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대중적기반은 그 강한 의지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되여 정당으로 발전하여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김구가 나라를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이 원조병이 심각하지는 않았을것은 분명하다.

김일성주석이 세운 나라 DPRK?

이렇게 건국의 론리적배경을 말하고나면 답은 간단하다. 다시말해서 《나라를 어떻게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 하나로 일관성있게 련관이 되는 방법으로 건국할수 있겠느냐.》이다. 우리는 이러한 론리적배경과 함께 회고록 전권을 통해 상황과 상황의 상태라는 상관관계적립장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어떻게 건국되는지 고찰해보는것이 여러가지로 남과 비교가 되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혈연과 지연에 의한 공동체라는 부류를 타승하고 새로운 리념(설령 그것이 사회주의리념이라도)에 의한 부분집합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회고록을 통해 볼것이다.
1917년 김형직선생에 의한 《조선국민회》-1926년의 《타도제국주의동맹》-1927년 공청-1932년 항일무장유격대 창건-1936년 조국광복회 창건-1946 8 29일 북조선로동당 창설-드디여 1948 9 9 DPRK 창건 혹은 건국.
김일성주석은 맑스와 같이 국가없는 공산주의를 생각하지 않았다. 바디우와 같이 상황의 상태는 불가피한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인이 평등한 세상과 개인은 사회화되여 집단적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우와 같이 끊임없이 조직을 만들어나갔다. 그것은 현대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불가피한것이기때문이다. 공산주의와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병행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속에는 바로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을 지적해놓고있으며 단위국가는 국제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항일혁명 20년을 이끌어올수 있었던것이 바로 인민대중들속에서 즉 상황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기때문이다.
해방과 함께 살아 같이 돌아온 유격대원들이 로동당요직과 최고인민회의 대표가 되여 상황의 상태를 만들었다.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로 이어지는것은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자연적》이였다. 이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론리적구조이다.
주체헌법 63조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고 할 때에 이 조항에는 분명히 집합론적개념을 그대로 표현하고있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관성은 건국을 위해 필요한 조건인 동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말은 끊임없이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련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충실성만이 그렇게 한다. 이를 회고록에서는 지도자와 인민들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신뢰와 사랑이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같은것도 혁명이후 사건이 만들어져가기 위한 충실성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경고한다. 하나와 전체사이의 귀속과 포함의 문제 그리고 요소와 부분의 관계성은 항상 우리를 비결정, 불완전, 무작위성으로 내몰고있다고. 《혁명은 한번 하는것보다 그것을 계속 진행형으로 해나가는것이 더 어려운 리유는 바로 전체와 부분사이에서 항상 이런것들이 기다리고있기때문이다.》라고. 그러나 《인민과 지도자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 한 혁명은 영원할것이다.》라고.
결국 원조병이란 지도자와 인민대중사이에 신뢰와 사랑의 고리가 없을 때에 지도자는 항상 상황에서 원조를 확인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서 생기는 발기부전증과 같은 병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주체를 세우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지도자가 리승만과 같이 《외교》로만 모든것을 풀려고 하는것은 상황의 상태에서만 문제해결을 하려고 하는 또 다른 부전증이라 할수밖에 없다.





락천가가 세운 나라 락관한다

1940년 봄》과 《2007년 여름》

지난해 북이 40여년만에 맞은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공연은 그대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좀 객기가 아닌가 하고 남《한》사람들은 생각했을것이다. 지난번 수해때에 로무현《대통령》이 외유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화살을 받은것을 기억할것이다. 이런 론리로 북을 보면 서로 북남은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는 렬차와 같아보인다. 수해는 비극 그리고 공연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남의 론리식대로라면 북을 도저히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김일성항일유격대원들은 가장 어려울 때에 아니, 그럴 때일수록 항상 연예공연을 했다. 이렇게 역발상을 해야 북의 《아리랑》공연강행을 바로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북의 이러한 남과는 다른 발상법을 우리는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8 22 2절 《미래에 대한 락관》에서 읽을수 있을것이다.
1940년 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해 봄에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8 20페지)라고 술회하고있다. 회고록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것은 례외라고 할수 있다. 여간 어려워도 어렵다 소리 안하는것이 김일성주석의 생활태도이고보면 그해 봄은 여간 어렵지 않았던것 같다. 그해 봄, 김일성사령관과 유격대원들이 백두산동북부일대, 안도와 화룡부근에서 유격활동을 벌리고있을 때이다. 제일 어려운것은 일제의 《파도식토벌》이였다.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무리를 지어 마치 바다의 파도같이 사방에서 덤벼드는 《토벌》방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벌대장》은 노조에였으며 그는 여러차례 전투에서 김일성항일유격대의 타격을 입고 약이 오를대로 올라있었다. 김일성주석은 그가 봉천과 통화에서 증원군을 긁어모아 쏘련국경의 국경수비대까지 합세시켜 항일유격대에 대한 복수의 칼을 빼들고 덤벼들 때여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였다고 회고하고있다.
2007년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공연을 강행하는 북을 리해하기 위해서는 양초구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보아야 할것이다. 하도 배가 고파서 산과 들판에 나가 산나물을 뜯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강위룡소대장에게 전령병들이라도 데리고나가 나물을 뜯어오라고 하였다. 강위룡은 전령병 전문섭, 리을설 그리고 한창봉을 데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저녁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이들 네명은 하루종일 나물을 한바구니도 채 못뜯어왔다. 그런데 그 사연이 이러하다. 전문섭과 리을설은 당시 나이어린 소년병들이였다. 책임을 추궁당하자 이 어린 전령병들은 천진란만하게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꽃향기가 진동하는데다가 폭신폭신한 잔디밭을 보니 고향생각이 절로 나고 봄동산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릴적 생각이 나서 저도모르게 씨름으로 한나절을 보내게 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8 23페지)라고 김일성주석은 회고한다.
전문섭과 한창봉은 나이도 비슷하고 힘도 비슷하여 씨름을 하다보니 승부가 나지 않아 하루해를 다 보내게 되였다는것이다.
부대의 식량이 어려울 때에 산나물해오라고 보낸 대원들이 씨름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였다. 물론 임무를 소홀히 한 이들 네 부하들에게 면피는 줄수 없었다. 평소에 남달리 임무수행을 철저히 해온 이들이 오늘따라 상상밖의 행동을 한데 대하여 김일성사령관은 엄히 꾸중을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김일성사령관은 잠자리에 누워 네사람들의 얼굴들과 나물바구니를 생각하며 《이 험한 판국에서도 우리 대원들이 비관을 모르고 배포유하게 씨름까지 해가며 락천적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피여오르는것이였습니다.(8 24페지)라고 그때를 회고하고있다.
이들은 해방후 김일성주석과 함께 돌아와 해방정국 북의 건국, 건군에서 핵심이 되였다. 지금은80고령이 되였을 그들의 당시 나이는 10대 초반이였다.

비관주의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혁명가의 3대특질은?

1937년 중일전쟁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동양천지는 모두 일제의 마수에 다 삼키운다고 애국지사들, 심지어는 열혈동지들마저 자포자기하고 비관주의에 빠진다. 국내의 최남선과 윤치호같은 지사문인들이 변절한것도 바로 이무렵이다. 김일성주석주변의 《ㅌ. ㄷ》의 동지들중, 심지어는 카륜회의에서 피로 맺은 동지들속에서도 배신자, 변절자가 나왔다. 특히 림수산같은 인물이 투항하여 《토벌대》의 앞잡이로 돌아다니면서 유격대의 위치를 찾아내주고있는 실정이였다. 이것은 식량난보다 유격대를 더 어렵게 하는것이였다. 간도에서는 조선인들로 된 《토벌대》를 만들었으며 남에서 《국방군》창군의 핵심인물인 김석원 등이 《토벌대》의 선봉장으로 설치고있었다.
1941 12월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전쟁이 남양군도까지 확산되고 일본이 후방으로부터 군수물자조달 등 전선확대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있을 때가 1940년대초이다. 일제가 단말마적으로 동북아의 항일유격대에 달려들 때이다. 이를 보고 비관주의자들은 이젠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생각하고 유격대를 리탈하기 시작한다.
김일성주석은 《우리 대오에서 도주한자들을 보면 례외없이 미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비관주의자들이였습니다.(8 30페지), 그래서 《1940년대는 우리 대오에서 혁명적랑만과 락관주의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때였습니다.》라며 항일유격대원의 3대특질은 신념, 의지, 락관이라고 정의한다.
평양을 방문한 외신기자들이 언제인가 김일성주석께서 80 50대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장수의 비결은 락천적으로 사는데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북이 생존하는 비결이 바로 이 말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았으면 《용공》하는자들도 북의 이 특질을 알고 《용공》을 할것이며 《반공》하는자들도 이 특질을 알고 《반공》을 해야 할것이다. 북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고나 찬성도 반대도 하라는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 북을 그저 《빈곤국가》로, 《불행한 나라》로 단정하지 말고 정말 그런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진실을 알게 될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평소에 이렇게 자신을 타고난 락천가라고 했지만 이 말을 두고 그것이 개인성품으로만 리해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주석의 락천주의는 리성적판단에 근거한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있었던것은 물론이다. 이런 신념이 없었더라면 초기유격대활동기간의 라자구등판우에서 꿈을 접고말았을것이다. 이제 남은 대원들은 수십명에 불과, 촉한으로 신음하며 눈덮인 설령을 넘을 때 그들의 창자속에는 풀뿌리, 나무껍질 하나 없었다. 그때에도 김주석과 동지들은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두고도 김일성주석은 일본이 망하는 전주곡을 보았지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세상이 되는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었다. 일본이 왜 망하는가? 일본이 이렇게 전선을 확대할 때에 후방으로부터 보급물자가 조달이 안될것이고 이러한 수순은 도이췰란드가 쏘련을 침공할 때에도 세계전쟁사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는 사례들이다. 과연 이러한 락관론은 그대로 적중, 중일전쟁후 10년이채 못되여 일본은 망하고말았다. 리광수와 최남선의 비관론이 틀린것이였다. 적보다 우리안의 비관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할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비관주의는 지독한 리기주의 혹은 편의주의와 련관이 되여있기때문에 언제나 대렬에서 리탈할 우려가 있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순간이 바로 일본이 스스로 족쇄를 차는 순간으로 사리판단을 한다. 이런 사리판단을 하는 주인공이 락관주의자가 되는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주석의 락관주의는 타고나기도 타고났지만 현명한 상황판단에 근거한 과학적인것이였다. 이는 김일성주석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락관주의를 설명한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렇게 증언하고있다. 얼간이같은 배웠다는 당시 지식인분자들의 배신과 배반은 모두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한데 근거한것이다. 이런 지식은 무지보다 더 해악적인것이다.
사회주의건설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비관하는자들도 있다. 그러나 반세기전과 똑같이 지금 북은 자본주의가 갈데까지 다 갔다고,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사회주의가 성공할 날이 다가왔다고 락관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승승장구 바그다드를 점령할 때에 이제 세계가 미국의 단극체제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카루스같이 고공비행을 하던 미국의 《다크호스》미싸일은 지금 사방에서 날개가 꺾이고있다. 미국은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고 보는것이 지금 락관주의자들이 보는 견해이다.

락천주의는 문예활동이 지탱시켜준다

이런 락천주의를 지탱시켜주는것은 문과 예 즉 《문예(文藝)》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2007년 대수해에도 불구하고 《아리랑》공연을 진행하는 진정한 리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공연같은것을 하다니가 아니고 그렇기때문에 더욱 해야 한다는것이 북과 남의 다른 론리인것이다. 그것은 객관을 바라보는 락관주의와 인간의 주관적락천주의야말로 인간이 역경을 이길수 있는 길이라고 북은 생각한다는것이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대원들에 대한 신념교양, 락관주의교양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된것은 문예활동이였습니다. 혁명적인 문화오락을 떠나서는 항일유격대의 생활을 론할수가 없고 혁명적인 노래와 춤을 떠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걸어온 승리의 로정에 대해 말할수가 없습니다.(8 33페지)
북을 방문하면 군데군데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란 구호를 볼수 있다. 여기서 유격대식이란 그것이 결코 전투적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를 보고 온 남측 사람들이 북의 《호전성》을 흉보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나는 유격대식이란 어느 절박하고 험난한 순간에도 락천성을 잃지 않는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격대식이라고 정의하고싶다. 악은 반드시 망하고 선은 반드시 승리하고말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에 근거한 락천주의말이다.
비관주의는 결국 인간력사의 선이 승리할것이라는 확신의 부족에서 나오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치치하의 안나의 일기 마지막구절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야말로 락천의 정의이다. 《락천(樂天)》이란 말그대로 하늘의 선함을 믿는 확신에서 나온 즐거움이다. 이런 락천은 오랜 고난의 경험을 통해 얻을수 있는 선물이다.
《피바다》는 김일성사령관이 행군도중 쉬는 시간을 리용해 직접 쓴것이다. 김주석은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닐 때에 상월선생으로부터 문학을 배웠으며 그의 서가에 있던 문학서적들을 거의 빌려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만 잘 만났으면 문학을 공부했을것이라고 술회하고있다. 문학에 대한 조예와 관심은 생의 마지막날까지 이어진다. 김일성사령관이 《피바다》를 쓴 동기가운데 하나가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를 읽고 이는 혁명에 대한 모독이요, 인간의 본성을 비관주의로 바라보는 잘못된 소설이라 보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남《한》문인들은 순수문학 운운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의 이러한 문예에 대한 조예는 끊임없는 독서에서 나온것이다.
19405. 1절을 개구리고기로 끼니를 이어도 김일성사령관은 독립이 되면 평양에 가서 숭어국도 먹고 랭면도 한그릇씩 먹고 모란봉에 올라가 대동강구경을 하자고 부하동지들의 아픈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부하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말았다. 그중 박길송은 최후의 순간 《조국이여! 나는 그대를 자랑한다. … 공산주의! 이것은 바로 세계의 청춘이다. … 조국의 광명한 미래를 키워내는 요람이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똑똑히 알고있기때문에 이처럼 웃으면서 죽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청춘을 살다 갔으며 그들은 죽음마저 락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제는 최희숙녀성유격대원의 두눈을 뽑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했다. 리계순은 단두대에 올라서면서 《조국의 광복은 멀지 않아 온다.》고 락관적인 미래를 바라보았다. 특히 리제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면회온 안해에게 세계지도를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사형수가 세계지도공부를 하다니. 아니다, 그는 해방된 조국의 세계적판도를 그려보기 위해서였다. 스피노자는 《래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를 남겼고 해월 최시형은 수배자신세로 피해다니면서도 가는 곳마다 과일나무를 심었다.

《아침은 빛나라》 영원까지

회고록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세계에 이름난 군대도 많고 빨찌산도 많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만큼 혁명적랑만과 열정으로 약동하는 생기발랄하고 전도가 양양한 군대는 없었을것입니다. 역경을 웃음으로 다스리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 이 세상이 통채로 꺼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락천가들의 집단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이였습니다.(8 2425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사람됨됨을 그가 끝까지 싸움을 해나갈 인물인지 아닌지를, 성격이 락천적인지 아닌지로 판가름했다는것이다. 전문섭도 외형을 보면 조용하고 얌전해보이지만 실상은 락천가라고 하였다. 안길을 특별히 총애한 리유도 그의 타고난 락천성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환경론자들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려내며 유토피아에 대하여 《디스토피아(DISTOPIA)》라고 한다. 결코 이들이 진정한 환경주의자들이 될것이라 믿지 않는다. 환경단체들이 재벌이 집어주는 황금에 쉬이 넘어가는것도 그들의 비관주의때문이다. 회고록은 도주자들, 변절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상승할 때 그 기류를 타고 우연히 혁명대오에 뛰여들다가 고난이 중첩되고 정세가 불리해지자 옛다, 모르겠다, 혁명이고 뭐고 나만이라도 살고보자 하고 달아나버린 의지박약자들이였다고 쓰고있다.
김일성주석과 주석이 세운 나라의 사람들은 리념을 론하기 전에 락천가들이였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김주석으로부터 배운 락천성, 이것은 북의 힘의 원천이다. 이는 마치 삼손의 머리털과 같다. 북의 힘은 미싸일도 핵도 아니요, 강고한 락천주의라는 사실을 알라.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을 공연하는 락천성말이다.
《혁명이란 사상의지나 규률만을 가지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사상의지, 도덕의리와 함께 랑만적인 감정정서를 가지고 하는것이 혁명입니다.(8 37페지)
회고록의 문구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하는 한 그들은 절망하지 않을것이며 이런 나라의 미래는 락관해도 좋을것이다. 우리는 회고록을 통하여 한가지 역설을 공부하게 되였다. 인간이 역경일 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락관적이 될수 있다고. 내가 2004년 개천절행사차 동명왕릉을 방문하고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앞에 도착했을 때에 시간은 저녁 5시경,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브라스 밴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고난의 행군》을 이 한구절처럼 잘 그려낼수도 있을가? 젊은 항일투사들은 역경속에서도 미래를 락관하여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을 노래부를 그날을 그리며 웃으면서 영원으로 사라졌다. 이 순간 역설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아직 회고록을 안 읽었다면

반드시 회고록을 읽으라

우의 제목에서 말하는 《회고록》이란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With the Century)》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회고록을 알게 된 경위에 대하여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밝힌바 있다. 나는 이 회고록이 읽기가 금지된, 그래서 읽는자에게는 《보안법》이 적용되는지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인터네트에서 전문을 다운받을수도 있고 심지어는 영문으로도 읽을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특권상 회고록을 접하는것이 아무 문제되지 않을것이다. 혹시 아직 회고록을 안 읽었다면 한번 읽길 간곡히 부탁하는바이다. 그 리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만났을 때에 상대방이 가장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있는것을 리해해주고 인정을 해주는것만큼 대화의 분위기를 좋게 하는것도 없을것이다. 북은 생각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하자는것이 거의 전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우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국광복의 서광이 비쳐오던 1942년에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인 백두산에서 태여났으니 항일혁명의 총서와도 같은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북의 지도자들뿐만아니라 인민들의 필독서와도 같다. 나는 남쪽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특히 앞으로 북과 대화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반드시 회고록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싶다.
《대통령》에게도 그가 이에 가장 대표적인 위치에 있기때문에 감히 권고를 하는바이다. 그러나 혹시 이미 읽었다면 나의 사족같은 글이 무시되여도 좋다.
나는 2004년 문익환목사 방북기념행사가 중국 연변에서 개최되였을 때에 북의 안경호선생일행들과의 아침식사때 식탁에 오른 쨩즈궈즈가 화제가 되였고 이것은 김일성주석이 손정도목사의 딸 손인실에게 어릴 때에 사주었던것, 그리고 이 기록이 회고록 2권에 나온다고 하여, 이 대화가 인연이 되여 회고록을 읽게 되였다고 했다. 내가 쨩즈궈즈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내가 어릴 때 만주에서 먹던 추억때문이였다. 그후 미국 UCLA 챨스 영도서관에서 전 6권 책을 구입했으며, 그리고 계승본 2권은 김현환목사를 통해 구해다 읽게 되였다고 했다.
아마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하면 일부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대하여 먼저 거부감을 갖게 될것이다.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는 대학에서 은퇴한 후 회고록을 접하게 되였고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으니 문헌에 대한 비판적사고와 그 론리적오유와 문장의 일관성에 대하여서는 할만큼 하였다. 그리고 철학을 한다는것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하기마련이다. 그래서 온갖 통로로 회고록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검증해보았다. 그리고 김일성연구를 깊이 하여온 서대숙교수의 강의도 UCLA에서 청강을 통해 듣고.(2007년 가을학기)
김일성항일유격활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연변대 김성호교수를 만나서 회고록을 검증해보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이런 글을 쓴다.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활동 20년은 지울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다. 그리고 선입견으로 자칫 개인자랑의 장광설을 늘어놓은것이 회고록의 내용일것이라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세기와 더불어》는 그렇지 않다. 내용의 80%이상이 모두 지금 평양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묻혀있는 수많은 렬사들에 관한 회고 그리고 그들의 행적 하나하나에 대한 련민의 정들로 가득차있는것이 회고록의 주된 내용이다.개인우상화는 찾을 구석이 없다. 아니, 동지들에 대한 애틋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한눈에 보여주고있다.
그래서 회고록을 읽어야 오늘 북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철옹성같이 뭉쳐있는것을 리해할수 있고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이 철옹성앞에서는 백기를 들수밖에 없는 리유를 알게 될것이다. 1994 7월이후 세계는 북이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질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예측이 빗나간 진정한 리유가 모두 회고록속에 담겨있다고 본다.
다시말해서 하다못해 북과 가슴튼 대화를 위해서는 물론이지만 《반공》을 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리유로도 회고록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방법이외의 모든것은 모두 《헛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주석의 진면모를 아는것이 두렵고 그래서 거짓으로 조작하고 엄페하려고 하는 방법은 《반공》을 위해서도 《용공》을 위해서도 모두 실용적이지 못하다.

《비핵, 개방, 3 000》을 맹비난하는 리유는?

우선 리《대통령》과 직접 련관하여 례외적으로 취임이후 무려 2개월여이상을 북이 침묵한 리유와 《비핵, 개방, 3 000》에 대하여서 그렇게 강하게 반발한 리유도 모두 회고록을 읽으면 알수 있다.우리 민족끼리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김일성주석의 지론이였다. 북에서는 이를 두고 《피의 교훈》이라고 한다.
김주석이 내놓은 련방제통일방안을 두고 《대남적화》를 위한 수단 혹은 속임수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련방제통일방안을 내놓을즈음에는 남북이 이젠 서로의 체제와 리념을 인정하고 공존해서 통일을 해나가야 한다는것이 불변하는 김주석의 정치철학이였다고 본다. 《적화통일》도 애국애족의 길이 아니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있었다는것을 믿어도 좋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고록속에서 이미 김일성주석은 량세봉같은 극우사령과도  만나려 했으며 그의 자녀들은 지금 북에 건재하다. 이 하나를 보아서도 북은 당분간은 련방제로 하다가 어느 체제로 통일될것인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맡기자는것이 김일성주석의 생전생각이였다는것을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량세봉사령이 김일성주석과 손잡는것을 거부했는데도 김일성주석은 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민족이란 어떤 리념이나 사상보다 우선이라는것이 김주석의 회고록 구석구석에 나타나있다. 애국애족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누구도 만날수 있고 하나가 될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그 사례를 다 렬거할수 없는 내용들이 회고록에 실려있다.
그리고 김일성주석의 이러한 평생지론은 지금도 북에서 그대로 유효하다. 외세의존이야말로 가장 비실용적이고 우리 민족끼리 하나되는 길이야말로 쓸데없는 군비경쟁을 줄이고 상호부강하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북이 가장 좋아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은?

그래서 회고록에는 김일성주석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사대주의》이다. 리《대통령》은 아마 부쉬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그가 가장 좋아하고 싫어하는것이 무엇이고 말인지는 사전에 공부를 하였을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의 지도자를 만날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지난 선거기간동안에 내놓은 선거구호 《비핵, 개방, 3 000》은 모두가 민족자주에 어긋나는 《사대주의》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것이 북의 주장이다. 2008 4 1일 《로동신문》 론평문형식으로 내놓은 글에서 《비핵, 개방, 3 000》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한 리유도 바로 그 내용속의 사대주의적요소때문이다.
《대선》기간동안 침묵한 리유는 한갖 선거공약정도로 생각했기때문이였을것이다. 그러나 인수위기간동안 그리고 취임 2개월동안 이 말이 《대통령》의 변하지 않는 주장이란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태도가 일변한것 같고 앞으로 이러한 주장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것 같다.
만약에 리《대통령》이 회고록을 읽었더라면 이런 상대방이 싫어할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것이다. 북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대주의》라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주》이다. 그래서 앞으로 실용외교를 하자면 반드시 《자주》를 강조해야 할것이다. 그래야 대화가 되기때문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가장 실용적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이 앞장서 북을 지원하지 않으면 북의 중국이나 로씨야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질것이라고 했다. 역설하여 남이 어려울 때에 북이 도와주지 않으면 외세의존도는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고말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과거 어느때보다 이러한 수준을 높여놓은 회담이 아니였는지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민족장래의 비극가운데 비극이다.
《실용주의》는 경제적인것도 있지만 력사적인것도 있다. 력사를 위한 실용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남북 어느 한쪽이 잘되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외세의존해 덕보는 《실용주의》는 력사에 가장 위해적인것이다.
나는 그 어느쪽이든 동족에게 손을 내미는것은 가장 아름다운것이고 가장 애국애족적인 행위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회고록에 나타난 김일성주석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절대로 핸들을 양보하지 않는다

부쉬가 골프장 카터운전을 《대통령》에게 하라고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한번 미국이 자기들 주권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그들의 운명을 내맡기려는 상징적행위로 비유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는지. 마치 내주는척 하는것으로 보지는 않았는지. 왜 미국이 농업주권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지 그 리유를 한번 생각해보았는지. 과연 그들의 머리가 우리보다 모자라 우리 차를 수입하고 농축산물을 지키려 했겠는가. 미국이란 나라는 건국이후 지금까지 자기 나라 국익을 위해선 할짓, 못할짓을 다한 나라라는것을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운전대를 우리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등소평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 디즈니랜드에서 어린이장난감차를 직접 운전하던 장면과 상징적으로 대조가 된다. 어린아이라도 장난감차를 어른이 태워주는것보다 자기가 한번 핸들을 직접 잡아 운전해보기를 원한다. 경제는 부의 축적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경제행위의 주체가 되는것이 더 중요하기때문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의 지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에 부쉬의 행동은 얄밉기만 하다. 그의 행동은 마치 인간의 이런 경제주체로서의 욕구를 리《대통령》에게 채워주는척 하는 행위같이 보였기때문이다. 《대통령》이 부쉬의 이런 속셈을 파악했을것인가.
리《대통령》이 부쉬를 만나기 전에 남북의 화해분위기를 조성해놓고 나아가 김정일국방위원장부터 만나고 갔더라면 협상력은 최고조에 달했을것이다. 미국은 아마도 앞으로 우리 로동자들이 만든 제품을 수출하여 벌어온 돈을 결국 미싸일방어망 등 무기구입비로 다 빼앗아갈것이다. 마치 인디안보호구역의 인디안들에게 매월 생활비를 주고 다시 다 빼앗아가듯이 말이다. 이것이 무슨 실용적인가.우리에게 주권을 주는척 하면서 결국은 다 앗아가는것이 과연 실용적일가.

진정한 CEO가 되는 길도 회고록속에 있다

모두에서 말한대로 리《대통령》이 회고록을 읽었다면 이러한 제안이 부질없고 외람된것이겠지만 만약 지금이라도 읽지 않았다면 국정의 최우선순위로 시간을 내여 필독을 권하는바이다.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것은 물론이지만 더없이 훌륭한 CEO가 되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것이라 보기때문이다.회고록은 인간의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관, 아니 더 나아가 종교관 그리고 사후의 인간령혼의 문제까지 거론 안한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읽은 다음에 각료들에게 모두 필독을 권하는것이 필요하다. 리념은 비록 달라도 반드시 읽어 후회하지 않을 내용들로 가득차있기때문이다.
전 연희전문 백남운교수는 1937년 보천보전투소식을 듣고는 평생 겨울에도 랭방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항일유격대원들이 전사하였을 때에 그들의 위속에는 산의 풀뿌리쪼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눈속을 행군할 때에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행군하는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회고록의 수많은 장과 절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는 피로 얼룩져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일본이란 잊혀질 대상이 아니다.
남에서는 반일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은 북이 우리보다 잘살던 1960년 중반 일본에 굴욕적인 《국교정상화》를 하였다.

자주정신없는 영어교육은 비실용적이다

회고록을 읽은 다음부턴 나는 외식을 할 땐 값비싼것을 하고싶지 않아졌다.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고생앞에 머리숙여 숙연해질수밖에 없었다. 애국애족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였다. 지금 영어몰입교육에 열중인데 학생들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그 정신부터 심어주어야 할것이다. 만약 그것에 투철하면 당국이 구태여 그렇게 장려하지 않아도 개인 하나하나가 영어에 몰입할것이다.
년전에 북의 어느 한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북의 청년들의 영어발음과 문장구사력에 미국관리들도 우리 교포들도 혀를 차게 한적이 있다. 나는 그 이전에 북에서 과연 영어교육을 하고있는지조차도 의심하고있었는데 말이다.
애국애족의 정신만을 주입하기에 몰입하면 언어는 그다음에 따르는 부차적인것에 불과할것이다.시키지 않아도 외국어열풍이 일어날것이다.
앞으로 재미교포학생 500명을 데리고와 영어교사로 현장에 투입할것이라 하는데 그러하기 전에 그들에게서 애국애족의 정신을 검열하라. 공연히 조국에 와 사대주의바람이나 불어넣으면 이것은 안하느니만 못할것이다.
왜 그럴가. 그동안 외국어를 구사하는 인물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 외세의 앞잡이노릇이나 하고 자기 돈벌이수단으로나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한국》류학생들이 모여앉으면 누가 영어를 더 잘하느냐 자랑이나 하지 않는가. 그럴수록 모국어는 수치스럽게 되여버린 이런 주인공이 영어를 잘해 무엇하는가. 지금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의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늦지 않았다. 인간의 자주성은 가장 경제적이다. 시켜도 인간스스로 행동하지 않기때문에 제도와 법이 생기고 이것을 운용하는데 막대한 경제적손실이 따른다. 이것은 실용이 아니다.

줄잇는 일본인 리순신추모객은 반면교사

매년 7월이면 일본에서 리순신추모객들이 거제도를 방문한다고 한다. 아무리 적장이라도 리순신의 애국애족의 정신만은 본받을만 하기때문이고 결국은 민족과 리념을 초월한 그 숭고한 정신은 바로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때문이라고 생각한것 아니겠는가? 일본이 로일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이 리순신이 한산대첩에서 사용한 학익진을 구사했기때문이란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적장의 위대성에서 배우지 않는 장수는 졸장에 불과하다.
하물며 같은 민족 그리고 그것도 우리 민족사에 최대의 피해를 준 일본에 대항하여 항일투쟁을 한 김일성주석의 생애를 깡그리 무시하고 외면하려고 하는것은 그것을 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생적공산주의자들로 되게끔 량산했을뿐이다.
이것이 남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아무리 좌파척결 운운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있는 진정한 리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보수학자들을 엄단해야 할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실을 외곡해왔고 그래서 이들이야말로 민족화해를 저해하여온 민족공동의 적이기때문이다.
인류의 보편적가치와 지혜가 있다면 그것을 존경하고 배워야 진정으로 지도자일수 있다.
그리고 이것만큼 큰 국익은 없다. 이런 점에서 리《대통령》은 부디 력대 어느 《대통령》과도 다른 용단을 내리길 바란다. 우리 민족이 과거의 잘못된 력사를 청산하고 동북아평화와 지구촌의 환경생태문제까지 걸머지고 나갈 선두주자가 되려면 과거의 협소한 마음가짐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그동안의 가슴아팠던 분단의 력사를 보상하는 길은 《반공법》의 쇠사슬을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대승의 큰 수레우에 올라타는것이다. 실용주의마저 소승적인것과 대승적인것이 있다.
가장 큰 실용은 바로 민족공조이다.





망국론 5대리유 일깨운 회고록
 
왜 이렇게도 그리스도교와 《탈북자》들은 궁합이 잘 맞을가? 넘어왔다 하면 《탈북자》들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심지어는 목사까지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상투적구호가 하나 있다. 《남은 잘살고 북은 굶어죽는다.》라는. 《탈북》하여 그리스도교인이 되는것도 있지만 오늘 남쪽의 교회는 선순환고리를 만들어 북주민들의 《탈북》을 알선, 유도하고있다.
이렇게 량자간의 선순환고리 혹은 궁합에는 그럴만 한 교리적리유도 있을법 하다. 즉 북을 생지옥같은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그 지옥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원자, 이 관계는 마치 세상과 예수의 관계와도 같다는것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순교를 각오할만 하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인질사태에서 샘물교회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이런 도식은 결코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살아돌아온 인질교인들이 지금 해외순방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앙무용담을 간증하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왜 이들이 국내에서는 떳떳하게 활동을 못하면서 숨어서 이럴가.
그러나 이런 《탈북자》들과 그리스도교사이의 궁합의 엉터리론리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1970년대이전까진 북이 더 잘살았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북을 축복했는가. 그리고 1998IMF는 장로《대통령》이 초래했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어디 있었는가? 이런 치졸한 론리를 구사하기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그리스도교의 신을 《조작된 신》이라고 한것이 아닐가.

《한반도》에선 문명사의 시계바늘이 반대로 돌고있는가?

막상 그리스도교가 발생한 서구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보라. 도시의 가장 중심가 명당자리에는 교회가 들어서있다. 얼마나 큰지 한번 들어가 그안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그리고 주일 낮례배시간에 가보면 수천명 좌석에 많아야 3040, 그것도 뒤에서 보면 백사장같다. 그래서 목사의 역할은 주로 병원심방 혹은 장례식 치러주는것이 주된 업무이다.
이렇게 지금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썰물같이 퇴조하고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민교회이다. 어떤 곳에는 한 장소에 교회가 두개 동시에 례배보는 곳도 있다. 물론 꼴불견일것은 불문가지이다. 한주일 한번 례배보는데 한달 월세는 2천불(2백만원정도)이다.
다른 한편 《한국》안을 보자. 《고소령》가운데 하나인 《소망교회》는 오늘날 《한국》그리스도교의 상징언어가 되였다. 대형교회에는 수천명 앉는 좌석에 주일례배의 경우는 적어 3부례배이다.거두는 헌금은 평균 한주 2억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주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교회에서 주보를 입수하여 조사해보았다. 경제론리로는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는 세금 한푼 안내는 곳이 교회이고보면 목사직업은 이제 선망 1호가 되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리명박《대통령》따라하기 새벽기도가 류행이라고 한다. 이 장로가 성공한 비결은 새벽기도때문이라고 그런 교회에는 새벽도 아닌 밤중 2시에 가도 자리잡기 힘들 정도이다.
그 리유야 어떻든 지금 종교에 있어서 《한국》만은 지구촌의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돌고있는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는 2005년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와 카톨릭을 합쳐 국내에 1400만명이 넘는 신자가 있다. 이처럼 다수의 신자를 가진 《한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교회가 사라지는것을 두고 종말이 가까워온 징조이고 이제 희망은 《한국》밖에 없고 《한국》민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한국》은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God's New Israel)》이라 설교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귀의 시험에 들지 말라고 교인들을 교육하고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가. 아니라고 본다. 지구촌의 시계가 변하고있고 종교도 낡은것이 물러가고 새것이 오는것을 기다리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시대인것을 모르는 착각증상이 지금 《한국》의 현주소가 아닐가.

반그련(www.antichrist.or.kr)을 아십니까

며칠전에 어떤 목사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한국》교회를 고발한다는 책을 썼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맞아죽을수 있는 대상은 조직깡패이상으로 무서운것이 《한국》교회이다. 나 역시 1985년 《한국》굴지의 교단 신학교에 교수로 들어갔다가 여러가지 리유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교와 그 신학교출신 33인가운데 변절자들의 이름을 거론했다가 임용 1년만에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다. 어디 나 하나뿐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몰매당한 신문,방송은 우리가 지금 보고있기때문에 더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리스도교를 두고 《개독교》, 《먹사》, 《똥경》이라고 비하하면서 인터네트를 중심으로 이른바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을 펼치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의 중심에 있는 반그리스도교시민운동련합〔반그련(www.antichrist.or.kr)〕이2003년 출범할 때 내건 창립선언문은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더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교를 박멸하겠다.》고 밝히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을 하는 네티즌들사이에 그리스도교는 마치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해충처럼 여겨지고있는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가 개최한 안티그리스도교관련 토론회에서  반그련회장은 《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심판을 설교하는 종교엘리트의 부패가 그들보다 더 교육기회가 없었던 신도들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하다.》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자정능력이 아예 없거나 상실했다고 판단한다.》고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의 배경을 밝혔다. 회장은 《물질적축복과 기복을 파는 종교업자들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협박하고, 공룡화된 교회는 거대한 기업처럼 돌아간다면서》,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외적성장과 신도의 량적팽창이 목사의 성공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신도들은 결국 현금지급기노릇만 죽어라고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교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에 대한 멸시와 폄훼를 일삼는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사건을 순교로 미화하는 현실은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상과 단군상을 부시고 장승을 훼손하며 수만의 신도가 모여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롱성기도를 했던 사례 등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면 먼저 존중하라.》고 주장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때 개신교계는 《붉은 악마》를 사탄의 무리로 단정, 반대캠페인을 벌렸다. 이것이 안티그리스도교가 등장한 직접적인 리유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패악은 이것 이외에 더 있다.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라 한다.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

나는 5대 그리스도교망국론을 1980년대초부터 글로, 말로 펴왔다. 1980 5 27일 새벽(미국시간) 광주가 무너지는 순간 미국에 대한 증오와 내가 미국에 속아 그리스도교인이 되였고 신학을 전공하였고 미국이 좋아 미국까지 왔다고 자탄을 하였다. 광주에 보낼 피를 헌혈받으러 10일간 로스안젤스 적십자병원에서 밤잠을 못 자던 그날 새벽, 그래서 미국공수부대가 광주를 구해줄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허망했던 신념이 무너지면서 나는 그리스도교망국론을 5가지로 정리하였다. 5대리유는 우에서 소개한 안티그리스도교의 창립취지문에 일부 나타나있지만 내 직장과 바꾸면서라도 포기할수 없는 나의 지론이다.
1. 우리 민족에게는 전래 고유한 민족종교의 전통이 있었다. 이를 신채호는 《선교》, 《신교》 혹은 《랑교》라고 했다. 그우에 차례로 불교, 유교 그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외래종교가 들어왔다.그런데 불교의 경우는 고유종교에 접목을 가장 잘한 종교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는 환웅전이였다고 한다. 지금 환웅전은 삼성각과 같은 형식으로 웃자리에 밀려났지만 지금 《한국》불교사찰경내에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유교의 경우는 《공자를 높이고 중국을 훼손하지 말라.》는 원칙에 의해 단군이 요순보다 먼저일수는 없는 사대주의사관을 유지하기는 했어도 각 지방에는 부군이라는것을 두어 관리가 지방에 내려가면 이곳을 먼저 들렸고 하늘에 천제지내는 풍습을 지켜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렇지 않았다.우리 문화전통을 뿌리채 도려내려 하고있다. 《한국》그리스도교는 《우리는 아브라함자손이다. 곰자손 물러가라》고 현수막을 교회밖에 내걸고 단군목을 치고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 1 500여년의 우리 력사를 지켜온 우리의 저력이다. 유교도 500년 조선조를 지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우리 땅에 들어온(1884) 20년이 채 못되여 우린 나라를 잃고말았다.오비이락일가. 나라망한 원인과 그리스도교가 상관관계가 있는것일가? 나는 있다고 본다. 나라를 나무에 비교할 때에 그 뿌리가 잘린 나무가 성할리가 없을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교가 우리 문화전통의 뿌리를 뽑은것이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했고 이것이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것이다.
2. 《한국》에 그리스도교를 소개한 미국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후예들로서 극단적인 개인구원과 종말론에 집착하였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구호는 모두 선교사들의 입김때문이다. 1907 1월 장대현교회에서의 대부흥회는 실로 초대교회의 오순절운동을 방불케 했다. 2007년 《한국》교회는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교회가 재부흥의 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보라. 장대현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거의 일제에 굴복, 신사참배를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에 이름났다는 지도자치고 신사참배 안한 사람 나와봐라. 과연 몇이나 되나. 장대현교회부흥때 그렇게도 열광적이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도 신사참배를 하게 되였는지 리해가 가지 않는다. 3. 1운동지도자 33인가운데 그리스도교인들이 15명이나 되지만 거의다 변절하고말았다. 내가 처음 부임한 신학교의 동문들도 5명이나 33인에 들어있었지만 다 변절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고 내가 해임당하고말았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단군초상화가 걸려있다고 구체적인 빌미를 잡아 목을 치고말았다.
33인가운데 한사람 그리고 장대현교회부흥의 주인공인 길선주목사는 독립선언문에 서명은 하고 31일 그날 양평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있었다. 나라 구하는 일보다는 개인령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국가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것이 그의 불참의 변이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우리 몸에 놓은 주사는 아편주사였다. 이런 아편쟁이들이 국가관과 력사관을 바로가지고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것이나 마찬가지일것이다. 나중에 해방신학자들은 이런 아편주사를 《위로주의(pacification)》 그리고 이런 신앙의 개인화를 《사물화(privatization)》라고 했다. 이런 그리스도교가 나라 망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소령》은 속물주의를 하나 더 첨가하고있다.
3.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원래 인간이 자기 과오를 회개하지 않으면 신의 심판이 내리는것은 마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것과 같이 시간문제라는데서 유래한다. 교만은 그 인간의 종말이라는것이 종말사관의 본뜻이다. 그러나 후대그리스도교는 가만히 앉아 하늘에서 예수가 올라간 모양그대로 다시 올것이라는것으로 변질시키고말았다.
만약 종말론이 이렇게 해석된다면 그 패악은 이루 말로 다할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곧 오는데 독립운동은 해 무엇하고 세상나라는 다 없어지고 신의 나라가 곧 건설되는데 해방은 되여 무엇하느냐 말이다. 얼마전 《휴거》라는것이 얼마나 사회병페를 조장했는가는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이 끼친 나쁜 영향이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한국》청년들에게 이렇게 신국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불교의 승병(僧兵) 그리고 유교의 의병(義兵)같은것이 그리스도교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안에서는 《십자가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4. 선교사들이 심어준 사대주의, 이것은 또 다른 망국의 원인이다. 불교도 유교도 경전과 사상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스도교선교사같은 포교자들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라지고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선교사들은 무슨 카나다선교부, 오스트랄리아선교부, 남감리교선교부, 남침례교선교부 하면서 미국에 있는 선교본부의 복사판같은것들을 《한국》에 설치하고는 이 좁은 나라를 갈가리 찢어 자기들 선교봉토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의 가장 명소에 그들의 선교본부건물을 지어놓았으며 그들이 사는 주거지는 그야말로 호화별장같았다. 과연 이들이 우리 민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러 들어온 사람들일가. 그들 집에서 일하던 하우스 보이들은 영어를 남보다 잘해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류학을 가 출세를 해 돌아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언어를 압살시키는데 하수인노릇을 하였다.
실로 그리스도교사대주의는 유교사대주의를 뺨칠 정도였다. 이런 선교사앞잡이 목사들은 신사참배선봉장들이였으며 나중에는 친일매국노들과 결탁하여 언제나 독재자의 최대지원세력이 되였다. 지금은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우리 력사까지 제 입맛대로 외곡, 반민족적 그리고 반통일적 최대세력이 되였다. 그 뿌리는 모두 《한국》초대그리스도교 그자체에 있었다.
5.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하는 신화를 만드는 장본인이 《한국》그리스도교이다.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처음 당도한 토마스목사를 강의할 때엔 《한국》교회사 교수는 강의실에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토마스는 엄연히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였다. 그 무엇보다 그가 군함속에서 장사군들과 군인들과 한배를 탔다는 그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교가 이런 식으로 전세계를 복음화하려 했기때문에 백인선교사들은 지금 제3세계 그 어디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있다.
그 오유의 전철을 지금 《한국》교회가 밟고있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복음화하고싶을진대 《한국군》파병과 때를 맞추지 말았어야 할것이다. 그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닌 전교사일것이다. 미국은 1905년 일본과 뒤거래를 하면서 《한일합방》을 허락하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삼켰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을 시켜 우리앞에서는 일본압제자와 우리를 위해 싸우는양 하였다.그리고 《해방군》으로 1945년에 들어와 《중앙청》에 자기들 성조기를 올리고 영원히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 국토를 자대 하나로 그어 갈라놓고말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기들 경제적리익을 위해 신무기거래판매처로 만들어놓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방해하고있다. 이런 나라가 동맹국일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최대가해자를 천사로 둔갑시키고 우리가 바른 판단을 못하도록 하는것이 바로 《한국》그리스도교이고 《고소령》의 가운데글자이다.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개독교》라고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종교의 자유》 말할 자격 있나?

수순으로 보아 미국과 이 나라 정부는 《핵》, 《인권》문제에 이어 앞으로 《종교의 자유》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북을 압박할것이다. 《종교의 자유》란 모든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특정종교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회고록 제1권에는 김일성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있다. 1 1 6절의 《나의 어머니》제목의 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인 김일성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상세히 읽을수 있다.
회고록에서 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어느 일요일날 나는 할머니가 달여준 콩엿을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례배당에 안 갈래요. 례배를 구경하는게 재미없어요.>
아버지는 아직 철부지라고 할수밖에 없는 나어린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가고 안 가는거야 네 마음대로지. 사실상 례배당이라는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 가도 좋다. 너는 예수보다도 자기 나라를 더 믿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한다. 그리구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례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칠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례배당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였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가운데 인도주의적인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력사의 웨침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였다.
사상으로 보면 아버지도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신학을 가르치던 숭실중학교출신이였기때문에 아버지의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았고 따라서 나도 교인들과의 접촉을 많이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자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도움은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상적영향도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1 103104페지)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여러곳에서 자신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특히 천도교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있다. 결론은 이러하다. 애국애족이 앞서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그것을 릉가하거나 앞설수 없다는것, 종교이든 사상이든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한다면 자기는 반대하지 않는다는것, 그래서 김주석은 해방후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설립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과 그리스도교신앙을 겸비한 인물들을 모두 건국에 참가케 했다는것이다. 이를 두고 남에서는 어용이니 운운하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친일이라 쓴 모자를 돌려쓰고 하는 말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해외로부터 전 숭실대총장이였던 김성락목사가 김일성주석을 방문했을 때에 김목사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아마 공산주의혁명가가운데 김일성주석만큼 그리스도교에 관대한 인물도 없을것이다. 그런데 북이 교회를 파괴하고 교인들을 다 죽였다고 남《한》교회는 선전하고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김일성주석은 그리스도교인이냐 아니냐가 결코 기준이 아니였다. 애국애족만이 오직 기준이였다.어떤 그리스도교인도 그가 이 기준만 가지고있다면 친구가 될수 있다고 했다. 문익환목사와의 만남이 바로 그 한 례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명히 알라. 북에 진정으로 선교하고싶으면 우에서 지적한 5대망국리유를 청산하고 애국애족의 선봉에 서라. 너희 교회를 포기할 때에 그 순간 교회가 살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신천대학살의 주범은? 자기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다 폭격한 미국

어제날의 그리스도교가 어린 김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리유가 바로 오늘날 《한국》그리스도교가 젊은 세대를 포섭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개독교》소리를 듣는 진정한 리유이다. 삐까쏘의 게르니까와 함께 그가 미군의 신천량민학살소식을 듣고 그린 작품은 전세계 유명화랑에 다 걸려있다. 신천주민 3 5천여명을 미군이 그 지역 반동들과 합작해 자행한 황해도 신천대학살사건은 단위장소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삐까쏘는 이 소식을 듣고 손에 붓을 들고 떨었다고 한다. 필자도2004년 신천을 방문하였을 때 구월산밑 이 작은 마을은 미제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하였다.
북엔 전쟁전에는 엄연히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하나 성한 곳없이 교회를 폭격했으며 이북전역을 쥐구멍까지 모조리 황무지로 만들 지경이였다. 오늘 북에서 미국과 교회를 증오하는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은 바로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미국자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잔인하게 주민을 학살하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지만 않았어도 북이 그렇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태도를 취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이 교회를 박해하고 말살하는 그런 정책을 김일성주석은 하지 않았다. 북은 천주교와 개신교회를 각각 세워 례배를 보고있다.
김주석은 언제나 리념의 자대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나름대로 판단하라고 했다. 지주라도 사람나름대로 애국애족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남쪽의 교회목사들은 바리새인들같이 률법과 리념으로 판단하고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도매가격으로 매도하고있다.
생명의 은인이다싶이 한 손정도목사, 김주석의 아버지가 다닌 숭실중학교 그리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를 김주석이 반대할 아무런 리유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애국애족하는 태도를 보였더라도 김주석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을것이다. 김주석이 지금 생존해있는 손정도목사가족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애정 하나만으로도 나의 주장이 옳다는것을 립증하고도 남을것이다.
김주석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런 김주석의 나라에 종교의 자유 운운하는것은 몰라도 너무 모른 소리이다.
지금 평양을 방문하면 《셔먼》호가 침몰한 흔적을 그대로 볼수 있다. 과연 그리스도교가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들어올 때에 어떤 손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때 그 몸짓을, 아니 그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있는지 《한국》그리스도교는 곰곰히 생각이나 하고 북을 향해 종교자유 운운해야 할것이다. 개도 웃을짓을 하고, 말을 하고, 북의 《인권》이니 《종교의 자유》 운운하기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개독교》대접밖에 못 받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리스도교는 《안티》정도가 아닌
국법으로 금해야 할지도

일본인학자가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3대조건을 제시한적이 있다. 부동산, 남북문제 그리고 그리스도교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 셋을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본것 같고 남북은 통일을 그리고 부동산은 안정을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우의 5대망국적요소를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본다. 그런데 새로 선출된 장로《대통령》은 이 세가지에 대해 기대했던 방향으로 나가지 못할것 같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일본에 뒤지게 되고 말고 어쩌면 구한말같은 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안티》정도의 대상이 아니라 국법으로 금해야 할 종교일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장로《대통령》을 셋이나 선출하였다. 리승만, 김영삼, 리명박이다. 앞의 둘은 모두 불행한 행적을 남기고 갔다. 벌써부터 리명박《대통령》에게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강부자》, 아니 인젠 《청부자》 그리고 《고소령》모두 이 땅의 그리스도교의 앞날을 어둡게만 하고있다. 날이 갈수록 속물화되여가는 《한국》교회, 속물들은 잘 속는게 특징. 이런 속물들에게 투표권을 맡겨놓는다는것은 망국을 스스로 자초하는 첩경이다.
리완용이 나와도 뉴타운 공약하면 표 안준다는 보장이 없는것이 오늘 남의 현실이다. 이런 속물화를 그리스도교자체가 지금 조장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교를 망국적종교라고 단언할수 있게 되였다. 일본과 손잡고 북을 치겠다고 내놓고 설교하는 목사들, 이들을 국법으로 안 다스려도 된단 말인가? 오늘날 남《한》의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을 포기한지 오래다. 1907년 대부흥이란 민족이 어려울 때 그 약점을 파고든 가장 위험한 마취제역할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2008년현재 《마라난타》, 이 민족의 통일을 선도해나가고 《한》반도의 평화를 념원하는 참예수의 정신을 구현할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초대교회도 리상적으로 실현하려다 실패한,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먹는 평등한 세상을 북은 근 반세기이상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자본주의패권국가들의 눈에 북은 가시같을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대문을 밖에서 빗장을 치고는 한푼도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이 리상향을 추구하는 국가를 고사시키려 한다. 그러나 북은 항일유격대의 그 강한 사랑과 신뢰의 힘으로 버티여내고있다. 나는 이런 세상이 인류지구촌이 구현해내야 할 하나님의 나라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강한자가 약한자의 골수까지 등쳐먹는 이런 세상이 곧 종식될것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가난하나 인간답게 살고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민족을 위하는바》라고 고백한 바울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참크리스천을 이젠 평양에 가서야 만날수 있다고 확신하는바이다.





《비핵, 개방, 3 000, 게임리론이 비웃는다

《어부지리》의 어부는 미국이다

리명박《대통령》의 대북정책 《비핵, 개방, 3 000》을 가장 비웃을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있는 게임리론가들(game theorists)일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리론으로 보았을 때에 《한국》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상호주의》는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기때문이다. 만약에 리명박《정부》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전제할 때에 《상호주의》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는 정책이라는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명을 게임리론을 통해 고찰해보기로 한다.
게임리론이란 적대하는 두 대상이 서로 공존해 살아남는 소위 winwin을 제시하는 리론이다. 리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각 참가자들이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수학의 한 리론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론리를 제공하는것이 게임리론의 골자이다. 우리 집옆에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옆에 차량출입구마저 같은 식당이 또 하나 생겼다. 먼저 있던 식당에서는 지금 전에 없던 행사를 하나 하고있다. 《봄철랭면 50% 할인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옆식당에서는 이에 맞서서 《갈비 50% 할인행사》를 하고있다.
소비자립장에서 볼 때에는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할 때에 이 두 식당이 담합을 하면 서로 살터인데 왜 저렇게 무한경쟁을 할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 주요주유소들은 서로 담합을 하여 우리 소비자들만 허리를 휘게 하기도 한다. 대기업간의 담합, 즉 카르텔이 쉽게 이루어질것 같지만 그것만큼 어려운것도 없다.
이를 남과 북의 문제, 즉 통일의 문제로 비화하여 생각해보면 세계가 볼 때에 저 나라는 남북이 서로 담합을 하면 통일을 바로 할터인데 왜 저렇게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싸우고있을가 할것이다.이것은 내가 우리 동네 두 식당을 두고 바라보고있는것이나 별다름이 없는것이다. 과거 10년 김대중 그리고 로무현 두 《정부》 기간동안 좀 담합이 되여가는듯 하더니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 《퍼주기》라 하는 말에 국민들이 공감을 했음인지 또 원점으로 되돌아가고마는것 같다.
황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안 놓아주다 어부에 다 잡히고만다는 《어부지리(漁父之利)》란 말이 결코 무지한 동물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남북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챙기는자는 누구인가?바로 주변강대국들, 그중 미국이 아닌가? 우리 민족이 이렇게 어리석은가?

김대중과 악셀로드의 협력리론; 통일은 《밑져야 본전》리론

게임리론이 처음 나온 이후 1980년대에 와서 재검토를 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나온 리론을 《반복게임리론》이라고 한다. 그때 갓 등장한 PC가 반복리론에 큰 공헌을 한다. 악셀로드(Robert Axelrod)라는 교수가 이 게임을 콤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여러가지 전략을 실험했다. 실험결과 반복게임후에 가장 낮은 수치를 얻어낸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전략(《눈눈 이이 전략》)이였다.
이것이 《상호주의》이며 반복리론에서 상호주의는 나쁠게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눈눈 이이 전략》은 협력리론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하기때문에 이것자체가 목적이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이 악셀로드의 리론의 골자이다. 악셀로드가 리명박의 《상호주의》를 볼 때에 통탄해한다면 그 리유는 바로 상호주의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있기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 그자체이다. 끝까지 남북이 《눈눈 이이 전략》을 펴도록 하는것, 그래서 어부지리를 얻자는것.
악셀로드가 이렇게 콤퓨터실험을 반복한 결과 내놓은것이 《협력리론》이다. 협력리론은 리활웅선생의 통일리론인 《밑져야 본전》이란 리론과 류사하다. 남북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반복(이이 눈눈)하다보면 결국 협력하면 밑져야 본전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것이다.
우리는 반세기동안 19501960년대 리승만의 《멸공통일》에서, 1972년 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기본합의서, 드디여 2000 6. 15공동선언, 2007 10. 4선언 등등 서로 신뢰와 불신을 교차반복하면서 지금에까지 왔다. 리명박《정부》의 《비핵, 개방, 3 000》은 《멸공통일》에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보고싶다.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말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은 과감하게 6. 15시대를 열어 민족을 위한 획기적인 사변을 마련하였다. 김대중의 《해볕정책》은 남의 보수주의자들을 무마하기 위한 용어이고 사실은 악셀로드의 협력리론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런 협력리론을 로무현《대통령》은 임기초기에 《대북송금특검법》을 만들어 페기시켜보려는 유혹을 받았다. 마치 리명박과 같이. 그만큼 죄수의 딜레마는 빠져나오기 힘든 유혹에 걸리게 하는 마력을 지닌것이다.
2008년 리명박《정부》출범과 함께 우리는 50년전으로 회귀하는듯 한 대결구도로 가고있다. 다시말해서 북을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러면 결국 백기 들고나올것이다. 나오면 그때 또 다른 조건 붙여라, 그래서 그로기상태로 밀어붙이면 《흡수통일》은 된다는것이다. 김대중과 로무현이 퍼주기 안했으면 북은 벌써 백기 들고말았을것이다, 이것이 《한국》보수주의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펴는 수사학이다. 결국 리승만때부터의 《멸공통일》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분명하다. 북을 죽이는것이 곧 남이 죽는 길이라는 사실, 이 사실만은 분명하다. 리명박《대통령》이 임기중에 이 사실을 알고 끝날지는 아무도 지금으로서는 알수 없다. 그러면 도대체 《한》반도에서 반복의 게임리론이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리유, 그래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을수밖에 없는 진정한 리유는 무엇인가?

게임리론이 《한》반도에서 안 통하는 리유는?

2007년 로무현《대통령》은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더불어 6. 15시대의 장을 더 활짝 열고 물러갔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딜레마에 빠져드는 리유는 민족의 바줄을 잡고있는 남()의 손은 사실은 남()의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바줄을 잡고있는것은 미국이고 목은 우리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니 북()을 죽이려는것도 미국이고 남()을 죽이려는것도 미국이라는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이 바줄은 자기들이 잡고 우리 민족생존의 놀이를 지금 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게임리론이 《한》반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것이다.
작전권회수반대 그리고 미싸일방어망구축참가 등등으로 인해 미국이 우리 민족을 공멸의 길로 내몰고있음에도 리명박《정부》는 지금 쌍수로 환영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전개한 게임리론이 우리에겐 페기처분될수밖에 없는 리론이라는것과 조금이라도 이 리론이 타당성을 갖자면 우리 민족이 서로 공조를 먼저 하여야 한다는것이다. 나는 《통미봉남》이란 말을 누가, 언제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게임리론으로 볼 때에 과연 북이 남을 봉쇄하고 미국과 통할 때에 그것이 북이 살수 있는 길이라고 북이 생각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1948 4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련석회의에서의 3대결의사항은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해나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수 있었던것이다. 3대결의란 1. 미군철수, 2. 평화통일, 3. 《단선단정》반대이다.
세번째가 문제이다. 바로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그 꼼수가 바로 《단선단정》의 론리인것이다. 리승만이 기어코 이를 해내고말았다. 그 이후 6. 25 등이 이어지지만 그 첫 단추는 《단선단정》강행에 있었다. 《단선단정》강행의 주동자는 유엔을 앞세운 미국이다. 그래서 남의 바줄을 잡고있는자는 남이 아니고 미국이다.
이때 북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남의 바줄을 대신 잡고있는 미국을 몰아내여야 우리끼리 되든 안되든 협력여부를 결정할수 있다고. 그래서 북이 2008 4 1일에 내놓은 론평문에서 리명박《정부》의 《비핵, 개방, 3 000》에 대하여 심한 어조로 반대하고있는 리유도 1948년 그때에 있었던 3대결의사항과 다른것이 없어보인다.

게임리론의 대가는 과연 누구?

다시말해서 1948년 남북련석회의는 실로 우리 민족이 서로 협력의 길로 갈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전후과정으로 볼 때에 이 련석회의를 알선, 주선한쪽은 북이라는것이 제반 자료들을 통해 분명해지고있다. 그리고 《단선단정》으로 몰고간측도 어디였다는것도 분명해졌다. 북이 《단선》을 반대하고 3대결의에 의하여 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던 진심은 지도자의 진면모에서 분명해진다고 본다.
리승만의 《단선단정》은 꼼수가운데 꼼수라고 본다.
북이 남북련석회의에 집착한 리유는 회고록에 나타난 지도자의 지도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김일성주석이 백두광야, 만주벌판에서 20년을 싸울수 있었던 리유는 그 당시 국제정세에서 중국과도 쏘련과도 협력관계가 잘 이루어졌기때문이고, 내부적으로는 김주석이 보수우익과도 같은 민족주의자들과도 갑부지주들과도 협력을 잘하였기때문이다.
도문지주와의 협력때문에 김일성주석은 《민생단》작용이라는말까지 돌리기도 했다. 그것은 실로 생명을 거는 모험이였다. 중국인갑부의 아들 장울화와의 협력은 실로 다윗과 조나단의 관계와 같다고 홍동근목사는 평하고있다. 김주석은 실로 꼼수의 정치가가 아니였다. 북이 말하는 《통큰 정치》란 바로 이런것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때 남의 김만복《정보원장》과 북의 김양건통일전선부장사이에 나눈 밀담이 화제가 된적이 있다. 아무리 밀담이라 하더라도 그 대화내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김양건통일전선부장의 말속에는 어떻게든 협력을 해나가려는 실로 간절함과 바람이 있기에 차라리 밀실에서 나누어졌기때문에 진실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이 한토막의 대화에서 우리는 김일성주석이 남긴 《통큰 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았다.
김구도 통큰 인물이였다. 리승만의 사시적인 시각을 아랑곳 하지 않고 38°선을 넘던 그런 용기에 인물됨의 크기를 보게 된다. 김대중도 통큰 인물이다. 그 대소의 차이는 있어도 협력의 진가가 무엇인가를 안 정치인이기때문이다.
이런 통큰 정치의 결산물로 나온것이 바로 1980 10월 평양에서 나온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다.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수립이 이 통일방안의 골자이다. 민족통일정부밑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자는것이다.
실로 《네가 사는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는것이 이 통일방안속에 담겨져있는 내용이다. 이는 련방제로 알려져있으며 김대중《정부》에 의해서도 련방제는 받아들여졌다.
드디여 2000 6 15 6. 15공동선언에서는 《낮은 단계의 련방제》를 남북이 같이 수용하였다.
김일성주석의 련방제통일방안은 김주석의 회고록속에서 볼 때에 이미 항일유격대시절부터 견지해온 협력리론의 한 연장선상에서 리해될수밖에 없다. 이 말의 진정성은 믿어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리명박《정부》의 《비핵, 개방, 3 000》이 상대방을 죽이고 얻을지도 모르는 꼼수정치의 결과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이 안타까워하는것은 리명박《대통령》이 그동안 남북이 쌓아온 신뢰의 과정 그리고 반복을 통해 얻은 교훈을 알기나 하는가 하는것이다. 아마츄어《정부》 운운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준비 안된 상대를 처음 만난것이 북이 난감해하는 리유이다. 우리가 지금 꼼수나 펴고있을 때가 아니라는것이다. 민족이 과감하게 공조를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이 공멸하고만다는것, 남의 안정과 경제성장에 북이 일조를 하고있다는것을 인정하라는것이다.
과연 북을 목졸려 죽여버린다면 남인들 성할수 없다는 론리자체를 같이 공부하자는것이다. 북의 의도에 상관없이 바줄을 놓으면 우리 민족은 공멸할수밖에 없다는것 그리고 주변강대국은 모두 우리 민족이 그런 어리석은짓을 하도록 유도하고 부추기고있다는것을 알자는것이다. 이 땅의 보수주의우익들은 이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있다는것을





일본을 혼쭐낸 《김일성전설》은 인민적성격

《소리의 래력》전설의 진원지

요즘 1970년대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다시 꺼내 읽는다. 또 다른 담시 《비어(蜚語)》에 나오는 《소리의 래력》대목에 자꾸만 신경이 간다. 서울장안에 언제부턴가 《쿵-》, 《쿵-》 하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니 원한에 사무친 안도(安道)가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를 굴려 벽에 부딪치는 소리였던것. 그 소리에 겁먹은 지배층은 안도(安道)를 사형시키지만 《쿵-》, 《쿵-》 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밤낮으로 끝없이 들려와 돈있고 힘있는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이야기가 이 담시의 내용이다. 요즘 괴담이라는것이 어쩌면 비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한번 모였다 하면 만명이 기본인 미친소광풍이 지금 리명박《정부》 주변사람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들어선지 불과 3개월만에 서울장안에 괴담이 돌기 시작하니 그 소리의 래력을 찾아 허둥대지 않을수 없다. 경찰은 괴담의 진원지를 철저히 찾아 엄벌하겠다고 한다.
소리래력(來歷)은 세 부분으로 묶인 담시 《비어(蜚語)》의 첫째 대목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작고 힘없는 민중 안도(安道)는 열심히 뛰여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가고저 하지만 돈없고 학벌없고 《빽》없는 그는 어느 한 모퉁이 발붙일 곳을 찾을수가 없다. 부와 권력이 지배층에 독점되여있는 암담한 현실이 안도(安道)의 발길을 곳곳에서 막았던것이다. 지치고 지쳐 내뱉은 《에잇, 개같은 세상》 한마디때문에 류언비어류포죄로 독재권력에 체포된 안도는 5백년간의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져 목과 팔다리가 모두 잘린채 독감방에 갇힌다. 오래전에 이미 사형시킨 이 안도의 몸뚱이가 벽에 굴려 부딪치는 소리이기때문에 소리의 래력을 종잡을수 없다. 신기한것은 보통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장안에 사는 오적들 귀에만 밤, 그것도 한밤중만 들려온다. 소리의 래력을 찾을 길 없으니 수사를 하는 경찰도 난감할수밖에 없다.

을사오적과 무자오적

《오적(五賊)》은 70년대초 《한국》사회의 지배계층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장차관이라는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장안 한복판 도둑소굴에서 벌리는 부정부패의 술수경연과 호화사치, 방탕한 생활을 시인의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흉폭하고 타락한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답시고 나선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은 무고한 민초(民草)《꾀수》만 닥달할뿐 정작 오적의 주구(走狗)임이 적라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적의 무리들이 벼락을 맞아 급살하고, 륙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부패권력의 비극적종언을 무섭고도 통렬하게 경고하고있다.
을사오적에 이어 2008년 무자오적도 등장했다. . . , 강부자, S라인이 무자오적인것 같다. 5 2일 첫 청계천집회는 누가 봐도 놀랄 정도였다. 주최자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리《정부》 주변인물들이 내놓는 말들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다시말해서 배후세력이 있다는것이다. 물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것이 배후세력은 아니다.
먼저 서울시 교육감은 《전교조》가 배후세력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빗나간 판단이였다.다음으로 《연예인》이라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지난번 《대선》때는 더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리명박후보를 지지했는데 그럼 그때 중고등학생들이 란리가 났을것 아닌가? 다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다라며 검찰이 지금 학교교문앞까지 찾아가 배후를 찾아내려 한다고 한다. 두고볼 일이다.

회고록속의 전설들

《김일성》은 백발이 성성한 산신령같은 로인으로 축지법을 사용해 하루밤에 천리길도 가고 둔갑술을 사용해 하루에도 얼굴을 수십가지로 바꾼다는 일화정도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해방후 평양공설운동장에 나타난 김일성사령관은 그런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였다.
《김일성연구》의 대가인 서대숙교수는 당시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 13명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적을 다 조사해보니 항일유격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로 판명되였다 한다. 그는 《김일성연구》로 필생을 바친 학자이고 만주일대를 수십차례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연구하였다. 그는 강의실에서 입버릇처럼 아무튼 김일성주석은 대단한 인물이였다고만 반복하였다. 아마도 정치학자로서 김일성주석의 업적과 행적을 다 그려낼수 없는 한계인것 같았다.
그래서 력사를 그런대로 잘 쓰자면 문학작가들이 동원되여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정치학자나 력사학자가 그려내는데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다.
김일성사령관주변에 여러가지 전설과 설화가 생겨난것은 1936년말부터였다.

소덕수전투에서 유래한 《둔갑술》과 《신출귀몰》이란 말

김일성주석은 전설의 유래를 두고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고 회고하고있다.
소덕수전투에서 일본은 얼마나 희생을 많이 당했던지 집집마다 문짝을 다 뜯어다가 저들의 시체를 거두어 담아가지고 황황히 도망을 쳤다고 한다.
두번째로 신출귀몰이란 말이 퍼진것은 도천리전투 다음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항일유격대를 처음에는 《공비괴수》, 《비적수괴》라고 하다가 도저히 당해낼수 없자 자기들도 우로부터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신출귀몰》, 《승천입지》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같지 않고 귀신같아서 도저히 잡지 못한다고 해야 전투에 참가한 책임자들이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수 있었기때문이다.여우가 높은 가지우의 포도를 따먹지 못하자 《신포도》라고 해야 마음이 위로가 되듯이.
그럼 소덕수전투와 도천리전투는 어떤 전투였고 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던가? 두 마을은 백두산 남동쪽 장백지구에 위치해있다. 1936년 여름부터 항일유격대가 백두산에 근거지를 창설하고 국내진공을 준비할 때이다. 여름도 지나고 산에는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9, 장백현 대덕수와 소덕수에서는 바로 일본군인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기들끼리 무려 3시간동안 교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주석은 하도 오래 전투가 계속되여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5 96페지)고 회고한다.
소덕수와 대덕수는 모두 지도상의 이도강부근의 작은 마을들이다.
김일성주석은 《신출귀몰》이란 전설이 퍼진 정황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회고하고있다.
《소덕수등판에서 숙영한 이튿날 우리는 부대를 마등창수림속에 이동시키고 대원들을 휴식시켰다. 나도 풀밭에 누워 책을 보다가 굳잠이 들었는데 총소리가 났다. 15도구방향과 이도강방향에서 밀려온 적들이 남북 량쪽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무성한 숲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쪽같이 빠져나가면 적들의 협공을 저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역전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마등창수림에서 슬쩍 빠져나와 15도구골등판으로 올라갔다. 그 등판에서 적들끼리 싸우는 꼴을 구경하였다. 그것이 세칭 소덕수전투라고 하는 마등창망원전투이다.
그날 적들끼리의 맹렬한 싸움이 서너시간쯤 실히 걸렸던것 같다.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적들은 이렇게 장시간 싸우다가 이도강쪽패가 정 못견디겠던지 먼저 퇴각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야 15도구쪽패도 제편끼리 싸운줄 알았는지 사격을 중지하였다.
《수백명의 유격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온데간데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노릇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적들은 우리의 <둔갑술>에서 찾은것 같다.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5 96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적들이 이도강방향과 15도구방향에서 협공해오는것을 알고는 그사이를 빠져나와버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니 마주보고 오던 적들은 서로 총질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3시간을 무려 교전하다보니 유격대는 온데간데없고 자기들만 숲속에 죽어 너부러져있었다. 그런데 이런 교전에서 피해를 본것은 그사이에 있는 감자밭이였다.
신창동의 한 농민은 《감자밭은 결단났지만 악귀같은 왜놈군대들이 저렇게 죽탕이 되여 나딩구는걸 보니 풍년든 감자밭을 보는것보다 더 기쁘오다.》라고 했다. 대덕수, 소덕수전투는 유격대의 국내진출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장백지구일대의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할수 있었고 그 일대의 여러 청년들이 너도나도 자원입대하는 기회가 되였다. 또한 다음해 보천보전투의 승기를 여기서 잡은것이다.
한해를 넘겨 1937년초에 있었던 도천리전투의 결과부터 말하면 적의 시체를 실어나르는데 24필의 소가 하나씩 9구의 시체를 싣고 날라서 전투후 주민들사이에는 《소발구 하나에 아홉개씩 스물네발구면 모두 얼마요?》 하는 말이 류행할 정도였다. 인민들의 답답하던 속이 얼마나 후련했으면 뻔히 아는 답을 질문형식으로 류포시켰을가? 직답을 하면 위험천만하니까.
이와 같이 김일성부대는 전투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신화가 생겨났다. 일본신문들은 도천리전투이후에도 《신출귀몰》 그리고 《승천입지》라며 김일성전법은 《라와전법》이니 이 전법에 걸리기만 하면 누구도 빠져나올수 없다고 했다. 《라와》란 《라망》의 중국식발음인데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져나갈수 없는 천라지망 즉 포위망, 함정이라는 뜻이다. 회고록에서도 《라와전법》은 대표적인 유격전법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라와전법》이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란 전법인것 같다. 바로 귀신이 아니고야 어떻게 인간이 이런 전법을 구사할수 있단 말인가? 옛부터 백두산은 온갖 신화와 전설이 가득찬 고장인데 장백지구에서 벌어진 두개의 전투에서 《김일성》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현상에 그만 정신적대공황(panic)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입으로 《신출귀몰》, 《둔갑술》을 운운하지 않을수 없었다.
도천리전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김일성사령관을 마치 단군할아버지같은 도인아니면 산신령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20대의 젊은 청년사령관이였다.
당시 일제의 정신적공황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인민혁명군의 장백진출과 군사적위세앞에서 적들은 대경실색하였다. 장백지방 경찰기관들에서는 경찰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공직을 회피하는 리직은 퇴바람이 불었다. 적들의 통치체계에서는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이도강에서는 집단부락출입도 앞문으로가 아니라 뒤문으로 한다고 하였다.(5 97페지)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에 퍼진 《김일성전설》

김일성전설이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져 퍼진 시기는 소덕수전투가 끝난 1936년말경부터이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장백지구일대에는 김일성전설이 들불같이 퍼져나갔다. 회고록 5권에는 김일성전설이 퍼져나간 유래가 자세하게 대담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다.
김평유격대원과 안덕훈주민사이에 나눈 대화는 한폭의 그림같고 나중에 안덕훈도 유격대에 참가했다 희생당하고만다는 이야기는 애처롭기마저 하다.
회고록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은 우리의 기억속에 지금도 인상깊게 아로새겨져있다.
그 기억의 한쪽모퉁이에는 장백현 19도구의 안덕훈농민도 있다. 안덕훈을 만나던 당시는 장백현일대에서 우리에 대한 신화같은 전설들이 파다하게 퍼져 김일성이 솔방울을 만지면 정말로 총알이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안덕훈은 그런 기담들에 류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자기 집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한 질문을 연거퍼 들이대였다. 다행히도 주인이 아래방에 있는 김평을 대장으로 알고 그하고만 상대하였기때문에 나는 거기에 끼여들지 않아도 되였다. 그들의 대화가 아주 해학적이였다.
<장군은 3일천기만이 아니라 훨씬 더 먼 앞날까지 환히 내다본다는것이 사실입니까?>
안덕훈이 김평에게 던진 첫 질문이였다.
<사실이구말구요.>
김평은 시치미를 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안덕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들이댔다.
<웃마을 령감들이 그러는데 장군은 일이 있을 때는 눈을 뜨고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는다고 하더구만요. 그것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가요?>
 <, 사실로 믿어도 됩니다. 장군은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지만 일단 눈을 뜨면 아예 큰 변이 나지요.>
<장군이 축지법을 쓴다는것도 사실입니까?>
<사실이지요. 장군은 산을 주름잡아가지고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지요.>
<들리는 소문에는 김장군이 옛날의 홍길동이도 무색케 하는 신출귀몰의 장수라더니 과시 그렇구만.>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물음이고 또 그 물음에 못지 않게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였으나 주인이 하도 정색해서 질문하고 손님이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정색해서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그 일문일답을 제지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하였다. 더우기 나를 놀라게 한것은 평소에 그렇게도 솔직하고 고지식한 김평이 그런 엉터리없는 대답을 연방 둘러대면서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면구스러워하지 않는것이였다.
안덕훈은 김평에게 당신은 장군을 몇번이나 만나보았는가, 지금 김장군이 우리 마을에 와있는가고 물었다.
김평은 이번에도 자주 만나본다, 지금 김장군이 당신네 마을에 와있다고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주인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김평에게 그런 싱거운 소리를 무엇때문에 하는가고 가볍게 나무랐다.
김평은 웃으면서 인민들이 전설을 믿으면 그 전설을 100% 긍정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민들이 우리 조선에 하늘이 낸 신비로운 장수가 있다고 말하는것은 그런 장수가 나와서 나라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념원으로부터 출발한것이고 그런 천출장수가 정말로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빼앗긴 나라를 꼭 되찾을수 있다는 신심을 안고 우리를 따라 반일성전에 더 기운차게 떨쳐나설수 있을것이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우리 동포들은 지금 일본놈들이 아무리 너덜거려도 우리 민족가운데는 신술에 도통한 장군이 있다,그러니 왜적을 무서워할것도 없고 두려워할것도 없다, 김장군을 따라 싸우면 능히 조선을 독립시킬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사령관동지 일개인에 대한 숭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고 기대이지요. 인민이 그러기를 바라는데 굳이 아니라고 해서 맥을 떨구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김평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군사작전을 더욱 대담하고 령활하게 벌려 인민의 기대와 신임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김평의 말과 같이 우리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에서 인민들은 큰 힘을 얻었다. 조선에 왜놈들을 쩔쩔매게 하는 장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심신을 가다듬은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인민혁명군에 참군하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는 이 민간설화들의 덕을 많이 본셈이였다.
그후 안덕훈도 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다른 대원들 못지 않게 잘 싸우다가 몽강의 어느 전장에서 희생되였다. 리치호는 가랑잎과 눈으로 그를 안장해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5 330333페지)
《덕수골일대에서는 그후 여러명의 청년들이 입대를 탄원하였다. 그들의 입대는 장백지방에서 혁명군대오를 급격히 확대시킨 대대적인 참군운동의 서막으로 되였다.(5 97페지)
《백두산주변의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그 조직들은 새로 창설되는 근거지의 믿음직한 정치적지반으로 되였다.
우리는 소덕수전투가 있은 다음에도 압록강연안의 여러 마을들을 돌면서 장백현 15도구 동강, 13도구 룡천리, 20도구 이종점 등 곳곳에서 련속 전투를 벌렸다. 압록강연안일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소란스러웠다.(5 97페지)

그러나 신화는 없다. 《이민위천》

예수가 죽자 온갖 괴담들이 민중속에 퍼져나간다.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괴담은 로마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가는 도상에 두 행인에게 나타났다. 예수는 자기 얘기를 하는 두 행인과 동행을 한다. 장백산기슭의 한 작은 동네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이 나눈 대화의 한토막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것 같다.
힘없고 희망을 잃은 인민들은 그들의 가슴속에서 희망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힘있는자들은 괴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괴담》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그래서 하나가 되고 빛을 찾는다.
이렇게 괴담이든 전설이든 그속에는 우리 민중들의 참소망과 진담이 담겨져있는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론리가 있다. 그것은 한 지도자가 인민을 위하고 인민이 그 지도자를 위하는 론리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과학이 된다. 이런 구조속에서 신화가 탄생한다. 지도자와 인민대중이 유리되여 서로를 객관화시킨것이 력사이다. 그래서 력사는 어찌 보면 가짜이다. 신화가 력사보다 더 오랜 지구력과 생명력을 갖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기원전 2000년 전후의 실제 력사적인물들이였으며 이들이 후대의 전설이 되고 괴담이 되고 괴담이 신화가 된것으로 연구보고되고있다.
그래서 신화는 끝없이 력사가 되고 력사는 신화가 된다. 단군, 환웅, 환인도 례외는 아니다.
구약성서의 그 수많은 신의 이름들 《엘로힘》, 《엘 샤다이》, 《엘 베델》, 《야훼》 등 이들은 모두 력사적부족의 족장이름들이였다. 이를 상세하게 알려면 《Tribes of Yahweh》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일성주석은 장백지구에서 벌린 전투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우리가 장백에서 벌린 싸움들이 세계를 들었다놓은 규모가 큰것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전쟁사에는 수천수만, 지어는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요란한 전역들과 대결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한 전투에 투하한 병력은 불과 수백병, 적살상도 백이나 천단위를 헤아릴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돌이켜본다. 우리가 중시하는것은 간고한 싸움에서 발현된 혁명군의 넋이다. 인민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장백땅에서 벌린 혈전의 자취들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5 346페지)
신화는 량의 규모가 결정하지 않고 사건자체의 정신이 좌우한다.
김일성사령관은 소덕수전투승리의 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민들의 힘에 덕을 입었기때문이라고 한다. 례를 들어 전투가 끝난 다음에 감자밭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였는데 만약에 인민들이 유격대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친일매국노들이 뻔뻔하게 소송을 걸고 달려드는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 무리는 아닐것이다.
만약에 항일유격대가 인민들로부터 유리돼있었고 그들에게 기생충같은 존재였다면 도저히 신출귀몰하는 신화는 생길수조차 없었다. 유격대원들이 둔갑술을 쓴것이 아니고 인민대중이 그들의 치마폭속에 그리고 그들의 다락속에, 장속에 이들을 숨겨주었기때문이다. 유격대원들도 인간이고 그들도 제한된 육체의 힘을 가지고있고 하늘을 날수 있는것도 아니다.
《이민위천》, 이 말 한마디는 김일성항일유격대의 기본정신이다. 그들은 인민을 하늘같이 여겼기때문에 하늘우로 날수 있었다.
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것인가?
인민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정신말이다.
도천리전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적들은 자기들 소굴에서 내려와 도천리마을에 머물고있었다.
이들이 황급하게 자기들의 굴로 돌아가려고 하는 눈치를 채고 주민들은 이를 김일성사령관에게 통지한다. 그런데 김일성부대가 마을에 도착하자면 2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이 적들을 마을에 붙잡아두어야 한다.
이때에 김일성사령관은 주민들에게 이들의 식사시간을 질질 끌게 하라는 통지를 한다. 적들은 식사를 빨리 내놓으라 독촉하지만 지하조직 구장인 정동철은 적들에게 오랜만에 마을에 왔는데 식사대접을 잘하려고 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서 닭도 잡고 쌀을 찧는 시늉을 하면서 지연작전을 쓴다. 밤중이나 되여서야 식사가 준비되였었는데 그때는 이미 김일성부대가 마을입구에 당도해있었다.
적들은 밤중에 봇나무, 자작나무, 가시나무와 키가 넘는 갈대들, 새초풀들이 얼기설기 뒤엉킨 소로길로 유도되여 완전히 소탕되고말았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신이 없는것이 아니라 인민이 신이라고 생각하며 인민과 함께 하는 거기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산 경험으로 믿게 되였다. 이것은 신종교의 탄생을 예고하는것이며 복덩이 방망이같이 초월적 신비적힘으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종교를 청산하는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똑똑히 알라. 당신들을 넘어설 종교가 이미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백두산자락 작은 동네에서 하나님은 그곳 나무숲속에 나타나 기적을 행한 사실을. 여기서 인민대중이 함께 하지 않고는 기적이 불가능하다.


유격대 잠행조례속에 신출귀몰 론리있다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대하며 인민의 리익을 진정으로 옹호보위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진정으로 지켜주는 군대만이 인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받을수 있다.(5 405페지)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인민이 군대를 위하고 군대는 인민을 사랑하는것을 《옹군애민》이라고 한다. 이를 또한 《인민적성격》이라고도 한다. 이런 인민적성격이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속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여 나타난다. 잠행조례에서 특별히 주의를 돌린것은 군민관계와 관병관계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잠행조례의 모든 조항에서 우리 혁명군의 인민적성격을 강조하고있는 점을 보아도 알수 있다.
-본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이것은 조례의 첫 조항이였다.
우리 인민혁명군의 조직원칙을 규제한 조례의 두번째 조항에서도 본군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써 조직된 진정한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라고 밝히였다.
군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관병일치에 대한 조항은 아래와 같았다.
-본군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옹간애병, 관병일치의 정신에서 군기와 풍기를 자각적으로 준수한다.(5 419420페지)
소설 《남부군》에도 그대로 나타나있다. 지리산빨찌산들은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엄혹한 산속에서도 인민의 아들, 목숨보다 더 귀중한 동지의 사랑, 변절은 최대의 치욕 등 규률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이런 남부군의 행동강령은 이미 1930년대 잠행조례속에 있었던것이고 인민적성격 그 점에서 같았다.
전쟁당시 어느 나라 군인들이 들어가는 마을마다에서 하루밤 성욕을 채우려 부녀자를 내놓으라고 하면 동네 리장, 동장들이 허둥대던 모습을 기억할것이다. 세계전사에 찾아볼수 없는 《위안부》를 끌고다니던 부대가 바로 일본제국주의군대이다. 도덕성이 없는 군대이기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무기가 정신을 이겼다는 전사를 들어본적이 없다. 윁남전에서 그 월등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호지명군대에게 패망할수밖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어느 정부는 지금 자기 나라 10대의 청소년들이 괴담에 홀려 끌려다닌다고 단정하고 괴담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지도자의 지지도가20%대로 떨어지는것과 무관하지 않다.
1930년대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패망의 순간이 다가오는것과 신출귀몰 《김일성전설》이 퍼진것은 무관치 않다. 민중은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고있으며 이들은 전설을 통해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해나갔던것이다. 장백지구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사이에 나눈 한토막의 대화가 이렇게 민간전설이 되여 들불같이 퍼져나갔던것이다.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1)

들어가는 말

소가 소를 먹을 때에 생리적광우병이 생기고 동족이 동족을 잡아먹을 때에 정신적인간광우병이 생긴다. 리명박《정부》의 《상호주의》와 《비핵, 개방, 3 000》은 바로 이런 동족 잡아먹기의 론리이며 그래서 광우병의 론리와 같다. 이것이 이 글의 요약이다. 이러한 위험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광우병을 병리적현상 혹은 사회현상으로만 파악해서는 그 전모를 다 알수 없다. 론리적인 구조의 파악만이 광우병이 얼마나 우리 민족의 생존권전반의 문제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하게 할것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에게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과학적근거를 제시하라는 마지막카드를 던져놓고있다.이 글은 먼저 광우병의 위험성은 《과학적근거》에 있는것이 아니고 《론리적근거》에 있다는것을 제시하고 후자가 전자보다 얼마나 더 심각하고 더 포괄적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되였다. 그리고 광우병의 론리적근거는 리명박《정부》와 《한국》보수우익들이 주장하는 《상호주의》와 그 구조가 같다는것을 보여주자는데 글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있다. 론리는 그 보편성때문에 과학과 사회현상에 공통으로 적용할수 있기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광우병은 소가 자기 살을 자기가 다시 먹는, 즉 《자기언급적(self-reference)》인데에 그 론리적근거가 있으며 이를 두고 생물학에서는 《동종개체》라고 한다. 이는 동족이 동족을 말살하고 죽이려는 더 극단적으로 표현해 잡아먹으려는 보수우익들의 《상호주의》와 론리적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그래서 《보안법》에 의한 《색갈론》은 우리가 우리자신들을 끝없이 파괴해들어가 《뇌송송 구멍탁》해 죽고마는 정신적으로는 광우병에 이미 다 걸려있다는것이다. 우리는 이미 정신적으로 광우병적증상을 보이며 살아가고있기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은 뉴기니아원시인들에게서 광우병 단백질 프리온이 처음 발견되였으며 이를 《구루(Kuru)》라 하여 인간광우병의 병명이 되였다. 그래서 《한국》보수우익들은 구루들이며 《보안법》은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을 때 구루사제들이 읊는 사육제의 주문이라는것을 론리적으로 증명해나갈것이다.
걸렸다 하면 100% 치사률. 아직 치료제 전무. 세균이나 비루스가 아닌 단백질변형에 의한 발병. 600에도 병균이 죽지 않음. 좁쌀만 한 크기로도 감염속도가 기하급수적. 감염경로는 수술, 음식 등 다양함. 45년 잠복기간. 발병전까지 증상 전무. 광우병발병률이 미국인 35% 그리고 《한국》인은 95%라고 함. (이에 대하여 과학적설명을 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자리에서 그렇다는 론리적인 결론을 제시할것이다.) 우리들이 즐겨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광우병발병부위와 관련된것이라서 광우병에 가장 취약한 나라가 《한국》이라 함. 이상이 광우병에 관해 세간에서 론난이 되고있는 내용의 간단한 명세서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 첫 작업이 바로 미국에서 광우병위험이 있는 소고기를 수입하자는 결정이였다.
련일 이어지는 대규모초불집회에 당황한 나머지 《대통령》은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중단》을 발표했다. 이에 맞장구치듯 미국의 무역대표부 수전 슈워브는 14일 《한국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하나 단서를 달았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으면》이라고. 오늘 우리의 담론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다시말해서 과학적근거보다 더 중요한것은 《론리적근거》라고. 그래서 과학적근거라는 단서에 우리가 다시 속지 말아야 할 리유와 론리적근거를 생각할 때에 이번 광우병파동은 우리가 동족에 대한 사랑과 나아가 인류공동체, 더 나아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애정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대한 교훈을 던져주고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이 글을 쓴다.

광우병은 《과학적근거》보다 《론리적근거》가 더 중요

우리 학계는 아직 《과학적》이란 말엔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있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이미 탈현대화(포스트모더니즘)와 함께 이 말이 탈색한지는 오래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구조》에서 과학도 하나의 기틀(paradigm)에 불과하다고 발표한것이 1950년대초이다. 다시말해서 과학적지식도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하는 틀에 따라 변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학적인 근거》라고 제시하는것도 결국 과학자들이 어느 사고의 틀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수밖에 없다는것이고, 이를 빤히 아는 미국이 과학적근거를 운운하는것은 우릴 우롱하는 발언이라고밖에는 볼수 없다는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근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미국은 얼마든지 그것에 대한 반증의 반증을 제시할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과학적인 근거》라는 말을 두번다시 입밖에 내지 않는것이 좋다. 한마디로 말해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 일축해버리라는것이다.
소가 걸린다고 해서 광우병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도 감염이 되기때문에 같은 병명을 사용하지만 원래는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흔히 일반화되여 사용되는 《광우병》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물론 광우병의 병명도 한가지가 아니고 여럿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파푸아뉴기니아인들속의 광우병을 특히 《구루》라고 한다.
병에 무슨 론리적근거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광우병이 생기는 원인을 보면 그것은 완전히 론리적인 문제라는것을 알게 된다. 다시말해서 광우병은 소가 《자기가 자기를 먹는》데서 생기는 병이다. 소가 죽은 자기 동족과 같은 소의 살과 뼈를 사료로 먹는데서 생기는 병이다. 소는 원래 풀을 먹는 채식동물이다. 그런데 소에게 자기 골육을 인간들이 먹이므로 생긴 병이다.
그러면 왜 인간이 채식동물에게 육식을 시켰는가? 여기에 자본주의론리가 있다. 다시말해서 소를 빨리 기르기 위해서이다. 인간도 육식을 하면서 키가 배이상 커졌다는것을 인류학이 증명하고있다. 미국축산자본가들이 빨리 소를 길러 시장에 내보내 리윤을 남기기 위한 무한한 자본에 대한 욕심,이것이 바로 광우병발병의 근본원인이다. 다시 왜 소를 30개월이상 기르느냐의 문제도 도축상인들의 상업주의가 그 배경이다. 이를 알자면 22/36/50개월을 리해하면 쉽다. 소가 자라 첫배 새끼를 낳는데 22개월, 두번째는 36개월, 세번째는 50개월 걸린다. 그렇다면 어느 도축상인이 22개월 소를 잡으려 하겠는가?
쉽게 리해하자면 택시기사가 돈 많이 벌자면 기본료금거리만 탈 손님만 하루종일 이어서 모실수만 있다면 가장 수지맞는것과 같은 론리이다. 그러나 도축상인은 택시기사와는 반대여야 수입을 올릴수 있다. 첫배는 22개월, 두번째는 14개월, 그다음도 14개월 걸려 새로 새끼를 낳는다면 소를 오래 기를수록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빨리 길러 팔아야는 하는데 빨리 팔면 소의 증식을 할수 없고 증식을 하자니 광우병위험이 있고. 이것이 미국축산업계의 꿩 먹고 알 먹으려는 계산인데 바로 이 계산법에 《한국》의 《대통령》이 즉답을 주었다는것이다. 그럼 리명박《대통령》은 왜 이런 계산법을 그대로 수용하였는가?
여기에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욕과 미국자본가들의 리익추구가 맞아떨어지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 리명박《대통령》은 지금 경제살리기 《747공약》지키기에 고심,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경제성장의 방법가운데 하나가 빨리 FTA를 성공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것이다. 당선이 되자마자 리《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앞으로 자꾸자꾸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좌파에게 《정권》을 다시는 넘겨주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고기수입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자본과 권력의 한없는 욕망과 욕구충족의 사슬고리가 국민건강권을 팽개치고말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광우병에 관한 전모를 알수 없다. 다시말해서 다른 병이 발생하는 배경과의 관계 그리고 광우병과 같은 증상이 국가사회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사건화된 문제성에 대해서 다 알기는 력부족이다.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 그리고 광우병증상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은 이제부터 말하려고 하는 론리적근거에서 재고해보자는것이다. 우리는 광우병에 관한 수많은 담론을 지금 내놓아야 한다. 《광우병이 발생하면》이란 말만큼 잘못된 말도 없다. 그때에는, 발견되였을 때는 이미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이란 단백질이 온몸에 만연돼있을 때이다. 들판에 벼이삭이 하나 폈을 때는 이미 온 들에 모든 벼이삭이 다 펴있다. 그때는 이미 늦는다. 미국소고기가 이대로 수입되였을 때 우리 민족은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에이즈》와 《광우병》의 상관성은 《자기언급》이란 론리

1981년 미국 쌘프런씨스코에 거주하는 한 동성련애자에게서 당시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인류최대의 역질로 알려진 에이즈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2 1백만명이 사망했고 현재 3 6백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다. 열이 나고 마른기침이 나는 페염이였는데 페에서 흔히 보는 비루스나 세균이 아닌 주페포자충이 발견됐다. 주페포자충은 정상인은 걸리지 않고 만성질환을 오래 앓아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보기 드문 기생충이다.
인류는 에이즈의 공포가 가시기나 할무렵 또 하나의 복병 광우병을 만나 앓고있다. 1986년 영국에서 소들이 체중이 감소하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부르르 떨다가 주저앉아 죽는 현상이 나타났다. 초불집회에 나가보면 학생들이 《뇌숭숭》이란 표말을 들고다닌다. 광우병에 걸리면 뇌에 스펀지같이 구멍이 숭숭 난다는 뜻이다. 소의 뇌조직이 녹아내려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기괴한 현상이 관찰됐다. 광우병의 의학적용어는 BSE(Bovine Spongiform Encepalopathy)로 이를 우리 말로 옮긴다면 《우해면양 뇌병증》이다.
그러면 에이즈와 광우병사이에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는것일가? 생물학적으로나 병리학적으로 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전혀 없는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철학이나 론리학으로 보면 량자사이에는 일란성쌍둥이같이 류사한 정도가 아니라 같다. 에이즈는 《같은것이 같은것과 성교를 할 때》에 그리고 광우병은 《같은것이 같은것을 먹을 때》에 생기는 병으로 정리할수 있다. 광우병은 소가 자기 살을 사료로 먹을 때에 그것이 원인이 되여 생긴 병이라는것에는 지금 이의가 없다. 이를  론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하나 가져와 표현하면 《자기언급(self-reference)》 혹은 《자기지시》라 하는것이다.
《셀프서비스》란 자기가 자기를 접대한다는 의미이며 광우병과 에이즈는 모두 이런 자기언급적현상에서 생긴 병이라는 점에서 같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에이즈와 광우병은 서로 병리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론리적으로는 같다. 과학자들은 이 론리를 모르기때문에 에이즈와 광우병은 다른 종류의 병으로 본다. 그러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그 두 병의 론리는 같다. 론리학에서는 인간사고를 괴롭히는 《역설(paradox)》이 바로 자기언급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사고속의 병과 몸의 병이 모두 이 역설과 상관이 있을것이라 추리해볼수 있게 된다.
에이즈는 비루스가 옮기는 질환이라면, 광우병은 《프리온 (prion)》이란 단백질립자가 원인이 된 질병이다. 프리온은 단백질(protein)과 비루스인자(viron)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번역하면 《단백질균》이라고 할가. 생물체가 아닌 단백질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균이나 비루스처럼 인간에게 전염되기때문에 광우병치료약은 아직 없다. 서양의학에서 《치료(curing)》라는 개념은 비루스를 죽이는것인데 프리온은 비루스가 아닌 단백질이기때문에 서양적치료개념을 아직 적용할수 없다는것이다.
리해를 돕기 위해서 우선 프리온이 무엇인지부터 더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957년 미국립보건원의 가듀섹(Carleton Gajdusek)박사는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에게 류행하는 풍토병을 조사하던중 프리온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해냈다. 이곳 원주민들은 친지가 생명을 잃게 되면 장례후 친지의 뇌를 파내여 먹는 식인풍속이 있었다. 그는 이들의 풍토병이 식인(食人)풍속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내고 죽은 사람의 뇌속에 들어있는 단백질립자가 원인임을 찾아냈다. 그는 이 공로로 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같은 사람, 그것도 친척의 골수를 먹는 풍속, 좀 으스스하지만 론리적으로 표현하면 자기언급적이다.
그러나 프리온을 실제 분리해내고 이들의 생물학적성상(性狀)을 구체적으로 밝혀낸이는 미국 UCSF대 의대의 스탠리 프루시너(Stanley Prusiner)교수였다. 그는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립자를 《프리온》이라 명명하고 이들이 인간의 체내에서 원래모양을 뒤바꿈으로써 뇌신경 등 정상세포의 손상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프리온, 이것이 우리 인체에서 자기언급적현상을 조장하고있다. 아니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기때문에 프리온이 생겼다고 역으로 생각할수 있다.

프리온과 자기언급의 론리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생명체는 종을 뛰여넘으면 생식을 할수 없다. 수간이 있기는 하나 생식을 하는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소에게 생긴 병이 어떻게 인간에게 전염이 될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수 없다. 콜레라의 경우 쥐가 병균을 전달할뿐이지 쥐가 콜레라에 걸리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광우병의 경우는 소가 걸린 병을 인간이 걸린다는 론리를 비약하면 종이 다른데 생식이 가능하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어떻게 종을 뛰여넘어 사람에게도 광우병과 같은 질병을 일으킬수 있을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도대체 프리온단백질이 어떻게 종의 장벽을 뛰여넘어 서로 다른 두 종에서 질병을 일으킬수 있도록 그 구조가 변할수 있는것일가? 앞으로 성에도 이런 단백질이 생기면 이종간의 생식이 가능하다는 결론도 미리 내릴수 있지 않겠는가? 전세계 신화의 공통적인것은 반인반수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외계인 ET를 비롯하여. 앞으로 신인종은 아마도 이렇게 진화되여 나타날지도 모르며 변종단백질 프리온이 지금 기존의 단백질을 파괴하고 광우병을 야기하듯 이런 신종들은 현존인간들을 삽시간에 추방, 우리칸에 집어넣고 도륙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도 해보면서 프리온이 어떻게 사람과 소사이를 련관시키고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생명체의 기준은 자기속에 반드시 량립하는 두 종의 인자를 가지고있어야 한다는데 있다. 쉽게 말하면 생명이 되는 기본조건은 하나가 양()이면 다른것은 반드시 음()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의 기본은 유전자안에 DNA RNA를 량립적으로 반드시 갖는다. 그러나 프리온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이 기준이 되는 유전자가 없다. 심지어는 가장 하등생물체인 바이러스도 자신과 닮은 개체를 만들기 위해 유전물질인 DNA RNA를 갖고있는데 말이다.그렇다면 프리온은 생명체가 갖는 론리와는 다른 론리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특이한 론리인 자기가 자기를 분리시키지 않는 자기언급의 론리를 가지고있는것, 이것이 바로 프리온이다.
단백질임에는 분명한 프리온이 인체내에 들어왔는데 면역체계가 이를 감지해 파괴시키지 않는 리유도 분명해졌다. 다시말해서 프리온은 단백질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체의 단백질과는 다른 론리를 가지고있는 단백질이기때문에 침투당시 프리온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낸 단백질처럼 면역계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전술을 쓸수 있다. 변형류사단백질이기때문에 위장전술은 성공할수 있다는것이다. 사이비단백질 프리온이 인체에 들어오면 자기의 신분을 위장하고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일정한 온도에서 특정한 모양을 갖추는 형상기억합금처럼 뇌신경에 독성을 미치는 구조로 변한다는것이다. 이것이 광우병이 발생하는 병리적구조이고 론리적구조이다. 《자기가 오직 자기》인 단백질 아닌 단백질, 이것이 프리온이다.
다시말해서 프리온은 스스로 복제하고 복합체를 형성하며 유전자의 관여없이도 사람과 소에게 질병을 유발할수 있는 특징을 나타내는데 이와 같은 자기언급적특성을 갖는 물질이 프리온이다. 그리고 가장 처음 발견된 경우이기도 하다. 자기언급을 통해 새로 생성된 단백질 프리온은 기존의 단백질을 잠식해 들어가 드디여 뇌에까지 가 뇌의 구멍을 숭숭내여 스펀지모양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자기언급이라는것이 무서운 괴력을 발휘한다.
프리온의 자기언급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단백질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있는것은 아닐가 하는 가설을 세워보는것이다. 이 가설에 근거하여 A B라는 두 종류의 효모를 사용하기로 한다. A는 빨간색이고 B는 파란색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프리온단백질과 마찬가지로 효모 역시 정상적인 한 효모종은 다른 효모종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A B, BA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A B의 효모의 일부분으로 구성된 융합단백질을 리용하여 한종의 프리온이 다른 종에서 질병을 일으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류사성이 필요한지 관찰하였다.
이 융합단백질이 서로 감염을 일으킬수 있다고 할 때에 그 감염이 한 종에만 제한될것으로 추측한다. 그 리유는 프리온단백질에서 정상적인 단백질을 변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은 한쪽끝에만 있기때문이다. 즉 그들이 만든 융합단백질은 두종의 프리온의 절반씩(빨강+파랑)을 가지고있어서 단 한종의 활성부위만을 가지고있다는것이다. A B가운데 어느 한쪽끝만 활성화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융합단백질은 두종의 효모에서 모두 프리온단백질을 변형시킬수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종류의 프리온단백질이 한가지이상의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두종에서 모두 활성을 나타낼수 있음을 의미한다. 쉬운 계산으로도 리해할수 있는, 다시말해서 하나의 종이 두개로 동시에 활성화될수 있다는것이다.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이라》는 선방의 화두로나 통할만 한 론리가 프리온안에서 벌어지고있는것이다. 이것은 프리온단백질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융통성을 가지고있어서 다른 단백질의 도움이 없어도 종의 장벽을 뛰여넘을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준다.
모든 생명체에는 서로 다른 DNA RNA가 있어야 활성화되는데 프리온은 하나자체가 두가지로 나뉘여 활성화될수 있다는것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자기 생식할수 있는 론리를 가질수 있다는것이다. 자기자신이 수동이고 동시에 능동이기도 하다. 구약성서는 신이 자기 이름이 스스로 있는자라 했는데 프리온이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앞으로 만약에 생식에도 이런 프리온같은것이 나타나면 얼마든지 이종교배와 성교가 가능해 지금과는 다른 인종이 출현할수 있다고 예견하는것이다. 변종단백질이 기존의것을 괴롭혀 광우병같은 질환을 야기하듯 인종간에 대규모충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신인종이 등장하는것이 바람직한것인지 아닌지의 가치판단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소가 자기가 자기를 먹을 때에 왜 그것이 병으로 되는가를 알게 되였다. 우리는 광우병이 발생하는 론리를 소에서만 발견할수 있는것이 아니고 인육을 먹은 인간에게도 같을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프리온의 자기언급적인 구조가 결국 자기가 자기를 먹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다같이 나타날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것이다.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에서 발견된 프리온이 광우병에도 그대로 나타나는것은 구루(Kuru)라고 하는 한 례에 불과하다. 하나는 인간이고 하나는 소의 경우이지만 거기에 작용하는 병리학적론리는 자기언급인것으로 결국 같다고 할수 있다.






동족 잡아먹겠다는 《상호주의》는 구루광우병의 일종 (2)

머리말

22일 《대통령》담화내용은 《내가 만든 청계천에서 너희들이 괴담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 《김대중, 로무현이 경제 망쳐놓았고》, 《내가 다시 경제 살리자니 FTA가 필수다.》로 요약된다.
나는 그와 그의 《당》이 지금 광우병증상을 보이고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광우병증상은 이러하다. 인간의 경우 초기에는 쓸데없이 잘 웃다가 잠잘 때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자기가 모르고 혼자 중얼거린다. 남을 원망하고 시비를 건다. 중기에는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함지른다. 말기에는 일어서지도 먹지도 못하다 죽고만다.
소의 경우는 1. 축사입구나 착유장 등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착유중 뒤발로 차는 등 외부자극에 민감하다. 2. 침울하고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인다. 3. 이 병이 진행되면 투명한 침을 많이 흘리며 이를 갈기도 한다. 4. 가려움증을 보이며 자그마한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5.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뒤다리를 절고 잘 넘어지며 6. 심한 경우 후지마비증상을 보이다가 기립불능상태로 되여 결국 페사하게 된다. 신경세포의 공포변성과 중추신경조직의 해면상변화가 특징으로 25년의 다양하고 긴 잠복기와 불안, 보행장애, 기립불능, 전신마비 등 림상증상을 보이다가 결국은 100% 페사되는 치명적인 만성진행성질병이다.
한 나라 《대통령》이 이런 병증세를 보여서는 안되는 리유가 그의 질병은 곧 우리 국민의것이 되기때문이다. 우리는 리명박《대통령》이 《경제 꼭 살리겠다.》고 했을 때에 경제 CEO로서 특별비방이 있는줄 알았었다. 그런데 담화내용을 보니 《광우병 소고기수입-FTA》가 그의 비방의 전부인것 같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이건 국민을 완전히 속이고 《대통령》된것이다.
다른것도 아니고 먹거리는 먹는 주체인 국민들이 싫다고 하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기고 고집을 하면서까지 강행하는데는 다른 속셈이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요즘 간간이 흘러나오는 《개헌-내각제-장기집권》(이것이야말로 괴담일지도)소문은 국민 먹거리와 맞바꾸자는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게 한다.
드디여 24일 밤 초불집회에서부터는 19701980년대에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 《그날이 오면》, 《광야》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 상황과 맞아떨어져가는 국민정서가 그대로 반영된것이다. 그럼 애써 우리가 대외적으로 자랑하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이 나라가 물건너가는것은 아닌지?
청계천변에 서 《나의 대학 노트우에 나의 책상과 나무우에 모래우에 그리고 눈우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자유여》 엘뤼아르의 시를 되뇐다. 이런 글도 앞으로 얼마나 더 쓸수 있을지 하면서.

자기언급의 론리와 빅뱅리론

우주는 신의 힘의 개입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하면서 빅뱅에 의해 생겨났다는것은 로마교황청도 지금 인정한터이다. 다만 빅뱅설가운데서도 초기발생시작(singularity)이 있었다는 펜로즈의 립장과 그것이 없다는 스티브 호킹스의 순환론(circularity)이 맞서고있을뿐이다. 물론 교황청은 전자의 립장을 취한다.
우주의 발생이 자기 조직을 한다는것은 자기언급의 론리가 얼마나 방대하다는것을 립증하는것이다. 에짚트의 아톰이란 신은 유일신으로서 배우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주를 창조할 때에 자위행위를 통할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단백질인자도 이런 아톰과 같이 자기 생성을 하는 힘을 가지고있다. 그러고보면 프리온은 빅뱅의 원초적생성론리를 그대로 가지고있다는것이다. 그래서 프리온자체로 볼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것은 현존생명체와는 그 체계가 달라 이 프리온이 소나 인간의 몸안에 들어왔을 때에 기존의 유전인자와 다르기때문에 프리온이 그것을 파괴해 광우병이 발생하는데 문제가 있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면역체계를 프리온이 망가뜨리고있다는데서 현존생명체의 위기가 있다는것이다.
우선 우리는 여기서 자기언급이라는것이 막강한 힘(power)의 원인이고 그 힘은 빅뱅을 가능하게 할 정도라는것을 확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가 자동의 시대이다. 그리스도교의 초월신이 힘을 잃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고있는 자력적불교가 교리적으로 탄력을 받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도 자력신앙을 강조하는 도마복음서같은 경전을 통해 다시 태여난다면 한가닥 희망이 있을것이다.

《교차감염》과 자기언급; 프리온의 론리

《교차감염》이란 소의 살이나 내장을 사료로 먹은 돼지나 닭을 다시 소가 사료로 먹었을 때에 감염되는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위험하다는것이다. 자기언급이란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인간에, 그리고 인간이 동물에, 동물이 식물에 먹는것에 있어서 언급을 한다. 타자언급을 하지만 그것이 다시 자기언급으로 돌아와도 같은 병이 생긴다는것이 교차감염의 론리이다. 종이 다른 동물이 먹은 자기 살을 다시 그 동물이 먹으므로 생기는 감염이 교차감염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것은 채식이다. 설령 자기와 같은 동족끼리의 살을 먹지 않더라도 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이로 하는것도 자기언급의 일종이다. 채식주의자들보다 육식주의자들이 병이 많은 리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금 육식을 하더라도 지금의 의학으로는 어느 정도 치료가능하다. 그러나 생물이 자기와 같은 종을 먹이로 먹었을 때에 치료방법이 없는 리유는 바로 생명의 본질은 자기언급을 금하고있기때문이다. 자기언급에 의해 생긴 병일수록 치료수단이 없다는것이다.
프리온은 열에 매우 강하다. 열에 약해 쉽게 변성이 생기는 일반적인 단백질과 달리 300이상의 고열에서도 수십분이상 버틸 정도다. 자외선이나 방사선, 화학약품에도 매우 강해 사람을 죽일수 있는 수천배의 강도와 용량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소고기를 완전히 태운다면 모를가 끓는물에 익히거나 살짝 굽는 정도로는 감염을 막을수 없다는 뜻이다. 광우병이 조류독감과도 다른 리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이 시식으로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홍보도 할수 없는것이 광우병이다. 그래서 광우병이 만연했을 때 《대통령》이 시식할 용기가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광우병을 옮기는 프리온은 비단 소고기를 먹어야만 문제를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소의 뼈나 내장에서 추출되는 기름을 리용해 만든 공업용아교나 젤라틴속에도 프리온립자가 얼마든지 함유되여있을수 있다. 물론 이들을 그냥 만지는것만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재료로 만든 의료용구라면 곤난하다. 충치치료후 치아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치과용 충전재료중 유럽산 소에서 비롯된 원료를 리용해 제조된것이 있다면 광우병에 걸릴수도 있다. 화장품, 라면, 과자 등 소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위험하다. 광우병은 수술후 모든 수술장비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전염이 심각하기때문이다.

그래서 광우병은 동물카니발리즘의 결과

파푸아뉴기니아원주민뿐만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사회에는 원시시대 한때에는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류행한적이 있었다. 문명이 오래된 곳에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였다. 문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못한 곳에서는 지금도 이를 유지하는 곳이 있다. 파푸아뉴기니아는 그러한 곳가운데 하나일뿐이다.
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곳에서 이런 풍습이 사라진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의식인 성만찬에서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한다. 이것때문에 그리스도교도 로마정부로부터 사육제를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카니발리즘의 의식을 물려받기는 했으나 그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했을뿐이지 실제로 인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는 않았다. 그만큼 카니발리즘의 뿌리가 깊기때문에 초대그리스도교는 이교도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수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이 이 카니발리즘을 그만둔 리유가운데 하나가 지금 소에서 보는바와 같은 병리적현상때문이였을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카니발리즘이 위험한것이라는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리스도교국가들에서 동물에게 그 동물의 살과 뼈를 먹이는 동물사육제를 하고있다. 30월령이든 20월령이든 이것은 소의 나이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채식동물에게 동물사육자체를 금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변명의 여지없이 모든 목장에서 동물사료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월령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언급자체를 금해야 한다. 모든 생명있는것에 이런 론리를 적용해선 안된다.
그런데 지금 소고기협상의 쟁점이 되는것은 이런 론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2005년보다는 2008 4월 관보에서 미국의 사료정책이 완화되였다느니, 이것을 우리 관료들이 영어번역을 잘못하였다느니 그리고 미국이 우리를 기망했다느니, 하지만 이 모든것이 부차적인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동물사료를 사용하지 않는 그날까지 기다렸다 소고기수입을 하여야 하는것이 순리에 맞는 태도이다.

《한국》사람들 광우병에 약한 리유도 자기언급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35%이고 《한국》사람들은 95%라고 한다. MM유전인자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처음 발표했던 교수도 지금 와선 검증된것이 아니라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한국》사람들은 소의 뼈를 먹는 식생활관습이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의학적인 문제에 관하여 지금 말한 아무런 지식도 자료도 나는 없다. 그러나 우에서 전개한 론리적립장에서 볼 때에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리 한곳에서 오래동안 같이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단일민족이란것은 자기언급성이 강한 민족이라는것을 의미한다. 이런 론리로 볼 때에 자기언급적인 프리온이 몸속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는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이는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날것이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 우리 민족이 광우병에 약한 리유가 차라리 론리적인데 있다고 결론짓고싶다.이는 유전인자상의 문제도 아니고 병리적인 문제도 아니고 순수 사고적추리의 문제인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추리방법이상의 추리방법이다. 우에서 주장해온 광우병의 론리적인 모든것을 종합해볼 때에 결코 이것은 무리한 결론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 민족의 단일민족성은 그만큼 자기언급이라는 취약성을 가지고있지만 그만큼 상극이 아닌 상생으로, 다시말해 사랑으로 서로 응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론리가 성립하며 이런 사랑의 응집체로서의 우리 민족이 곧 세계평화에 기여할수 있는 체질이라는것을 다음에 말하려고 한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으로서 자기언급의 강점을 살리면서 타자언급을 하며 현명하게 처리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사람관계를 촌수(寸數)로 결정함으로 어느 촌수안에서는 결혼을 못하도록 하고 그 촌수안에서는 어떤 륜리도덕을 가져야 한다는것을 가르치고있다. 동성동본의 경우도 8촌이상은 결혼을 허용하고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광우병소수입을 반대하는것도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지혜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다시말해서 우리 민족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자기 살 먹은 소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지혜말이다.

《상호주의론리》와 《교차감염의 론리》

우와 같은 추리에 의하여 문제는 정치, 경제 혹은 국제외교상에서 이런 광우병의 론리, 다시말해 자기언급의 론리가 작용을 한다면 보통문제가 아닐것이다. 소가 자기 살을 자기가 먹는다는것은 같은 동족이 동족끼리 잡아먹는다는 점에서는 론리상 한치의 차이도 없다. 다시말해서 만약에 같은 동족이 동족상잔을 할 때는 광우병과 똑같은 병에 걸리고만다고 추리할수 있다.
《동족상잔》, 이것은 같은 동족끼리 죽이자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론리를 《대한민국》보수우익집단들이 가지고있다. 소위 이들이 전가의 보도와 같이 사용하는 말이 《상호주의》이다. 같은 동족을 고사시켜 사육제를 지내자는 론리가 《상호주의》론리이다. 《상호주의》는 《비핵, 개방, 3 000》이란 허울을 쓰고 결국은 같은 동족을 고사시키고말자고 하지 않는가?
만약에 우리 민족이 《상호주의》에 사로잡혀 북을 어떻게 해서든 잡아삼키려 한다면 결국에는 광우병증상을 나타내다 《다우너》가 되고말것이다. 《상호주의》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호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5년동안을 고집한다면 우리 《한》(조선) 민족은 결국 《다우너(DOWNER)》가 되여 땅에 고꾸라져 일어서지 못하고말것이다. 그리고 세계사에 《다우너 코리아(DOWNER KOREA)》로 한줄 력사기록으로 남고 영원히 사라질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와 련방제해야 할 리유

북은 6. 25를 말로든 행동이든 《조국해방전쟁》이라 한다. 그리고 《피의 교훈》이라 하여 같은 동족끼리는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큰 원칙을 세워놓고있다. 그리고 핵은 결코 같은 동족을 겨냥한것이 아니라고 루루이 강조하고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표현자체로는 동족끼리 죽이는것은 위험하다는 론리같다.
그러나 조, , 동 언론과 이 땅의 보수집단은 입만 열었다 하면 사육제때 부르던 주문을 늘어놓는다. 걸핏하면 《좌파빨갱이》, 이것이 이젠 체질화되여버렸다. 여기에 《보안법》은 동족말살의 《광우병민족》을 재촉하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있다. 동족만은 잡아먹고 보자는 이 카니발리즘앞에 전률하지 않을수 없다.
미국이 북을 잡아먹고 그 살고기를 우리가 또 먹으면 그것은 곧 제 살을 제가 먹은 꼴이 된다. 이것이 바로 교차감염의 원리이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 핵문제해결과 함께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 하고있다. 남은 이를 두고 북의 《통미봉남》정책이라 반발하고있다. 만약에 북이 이런 정책을 펴는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찬성을 할수 없을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원리에 어긋나는것이기때문이다.
《낮은 련방제》, 혹은 앞으로 있을 《높은 련방제》, 혹은 《어중간한 련방제》 등 어떤 련방제이든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인간관계를 촌수로 매기는 지혜의 발로이다. 느슨한 관계로 촌수를 매겨놓았다가 점차로 그것을 조여가는 방법으로 통일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할것이다.
늙은 세대가 가면 누가 통일을 주도할가 걱정한 기성세대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나는 청계천에서 확인할수 있었다.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좀더 당당해지라는 압박, 이것이 10대 젊은 세대의 진정한 요구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사돈의 팔촌이고 북은 이웃사촌이다. 사촌이면 할아버지가 같지 않는가? 우린 그것보다 더 가까운 촌수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주장은 반미라기보단 1965년도 청학동 갓쟁이들이 데모할 때의 구호였던 《원미(遠美)》인것 같았다.

보수우익은 21세기 구루들이고 《보안법》은 카니발리즘의 주문이다

사육제를 행할 때에 사제는 사람을 죽이면서 신에게 바치는 주문을 독송한다. 이 땅의 극우보수사제들은 《보안법》주문을 독송하면서 이 땅의 어린 중고등학생까지도 《좌익빨갱이》라고 내몰고있다. 앞으로 얼마나 이들에 잡혀 그들의 식욕을 만족시킬지 모르겠다. 그들은 흡혈귀같이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살을 뜯어먹어야만 생기가 도는 족속들이다. 먄마와 중국의 재해에는 구조대를 보내라고 하면서도 동족에게는 절대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시청앞에 모여 사육제를 벌리고있다. 아마 몇사람 또 그들의 식탁에 오를것이다. 이들은 정말 21세기 구루(Kuru)들이다. 파푸아뉴기니아구루들이 인육을 먹다가 몸안에 프리온이 생기고 드디여 광우병증상을 일으켜 《뇌숭숭 탁》 하고 쓰러지고말듯이 그들의 앞날이 그렇지 않으리란 아무런 보장이 없다.
인간은 아직 여러가지로 진화가 덜 된 지구상의 존재이다. 이런 불완전한 존재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극에 직면했을 때에 광우병이나 에이즈같은 무서운 병이 생겨난것이다.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사랑해야 하고 나아가 같은 인류끼리 사랑해야 하고 같은 동물끼리 사랑해야 하고 같은 생명체끼리 사랑해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에 이런 사랑의 원리를 지키지 않을 때에 우리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프리온인자가 만들어져가고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지난 반세기 리념의 포로가 되여 지금 우리속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프리온이 형성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광우병파동이 제발 우리속의 프리온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이번 광우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돈을 주고 살수 없는 막대한것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교훈을 다만 미국과 《한국》사이의 통상마찰로만 보려 하고 병리학적으로만 보려고 하기때문에 그 한계를 지적하려고 철학도의 한사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였다.




미국 믿지 말라》했건만 못 말리는 MB사대주의

MB의 단 하나 남은 출구 《사대주의》

리명박(MB)《정부》에겐 지금 오직 하나의 탈출구밖에는 없이 모든 출구가 다 막혀버렸다. 교육,경제, 사회, 외교, 통일의 출구는 지금 다 막혀버렸다. 누가 막은것이 아니고 MB스스로 막았다. 그에게 지금 단 하나 남은 출구는 《사대주의》이다. 출구를 막은 바위는 사대주의이기때문에 사대주의자체는 남기때문이다. 이제 5년동안 MB는 이 사대주의 하나만은 붙들고 버티여야 한다. 그래서 사대주의는 방어의 수단인 대상이다.
MB자신도 괴롭고 우리 국민들도 고달프게 됐다. 보수우익들은 사대주의가 체질화되여있으니 사대주의그늘밑에서 한세상 잘 지낼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어린 세대들이다. 월드컵신화와 《헌법 제1조》를 노래부르는 이 세대는 지금 MB가 펼치는 사대주의시대를 가장 견디여내기 힘들어하고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미국에 왜 저렇게 나가야 하는지 리해를 못하고있다. 나라의 현주소가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하고 자괴감에 시달리고있다.
지금 나라형편은 미국과 협상을 할 주제가 아니다. 협상이란 대등한 관계일 때에도 힘이 딸리는 법인데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히 미국에 매여있는 마당에 경제 하나 가지고 대등한 협상을 한다는것은 정말로 미친 소도 웃을짓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협상을 미국과 한번 하려면 먼저 정치군사적인 주권부터 찾아놓고 하려면 해야 한다. 힘이 있는 곳으로 쏠리는 삼투작용은 물리학의 법칙이다. 그래서 힘있는자 앞에는 스스로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가까이 가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가보았자 사사건건 손해만 보기때문이다.

위장기발과 미국의 기망행위

5 30일 장관고시가 있던 날 미국을 다녀온 검역관들이 줄줄이 미국소 이상없다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묻고싶다. 당신들 보고 미국소가 웃지 않더냐고. 당신들이 우릴 검사하겠다고 웃지 않더냐고. 오렌지발음에 웃지 않더냐고.
제발 《대통령》부터 미국을 알고 미국력사의 단 한줄이라도 알고나 나서라고 당부하고싶다. 오죽하면 해방정국에 우리 민초들은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고》라 했겠는가. 미국은 건국초기부터 한가지 술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마치 피해자인것처럼 자신을 위장하는 술수말이다. 이런 술수로 그 많던 인디안들을 거의 멸종시키고 그들이 살던 땅을 다 빼앗고 지금 미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양 위장하는것, 이를 《위장기발(false flag)》흔들기라고 한다. 현대사에서 진주만공격, 바크보만사건 등 이 그 대표적인 례이다. 미국은 심지어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가진 유럽국가들에게도 이 수법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의 모든 주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는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이런 미국의 위장기발을 두고 《기망(欺罔)》이라고 한다.
이런 미국의 기망행위가 벌써 미국관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번 소고기협상에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것이다. 미국은 협상파문에 대하여 《우리는 길게, 철저하게 협상하려 했다. 그런데 <한국>이 서둘렀고 우리가 충분히 양보할수 있는 사안도 자신들이(<한국>대표단들이) 먼저 양보해버렸다. 이제 와서 그 화살이 왜 우리에게 와야 하나.》 이것이 워싱톤발이다.
우리는 이 워싱톤발이 사실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 냉큼 효순이, 미선이때와 같이 반미로 나가지 못하는 리유도 워싱톤발 그대로 MB가 잘못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기망행위자체가 용서받을수 있는것은 아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고통을 덜기 위해 아편주사를 놓아달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리치와 같은것이다. 미국이 정상국가라면 자기들의 국익이 중요하더라도 도덕적으로 기망행위를 해서는 안되는것과 같다. 30개월이상 월령의 소와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부위는 우리에게 독약과 같은것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우의 워싱톤발은 위장기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가해자가 피해자인양 위장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MB와 관리들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자는것은 아니다.
아래 글에서 나는 지난번 메히꼬와 필리핀을 기망한것에 이어 미국이 이딸리아와 도이췰란드에서 위장기발을 흔든 사례들을 소개하므로 우리의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한다.

위장기발은 미국의 기망행위

데이비드 그리핀교수는 9. 11테로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9. 11은 미국안에 있는 알 카에다조직이 테로를 하도록 방치한 상태에서 저질러진것으로 이런 경우를 두고 《위장기발(false flag)》로 정의하고있다. 다시 정의하면 공격자가 자기 령역안에 있는 적을 공격해놓고는 바로 그 적국의 국기를 휘날리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공격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공격자가 되는 역설적상황이 벌어지도록 만드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9. 11테로의 경우 미국민들은 자국의 지도자들은 절대로 그런 저렬한짓을 안할것이라 확신을 하게 되며 적(아랍)에 대하여 적개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 자국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유도할수 있는 명분을 쌓게 된다. 이런 도식이 바로 위장기발의 리론적배경인것이다.
그리핀은 미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3대 대표적인 위장기발에 의한 사건을 소개하고 다음은 미국민들이 믿겨지기 어렵지만 미국이 자행한 위장기발을 소개한다. 미국밖에서 자행된것의 대표적인것이 바로 9. 18만주사변이고 나머지 두개는 도이췰란드가 자행한 《라이프찌히방화사건(The Reichstag Fire)》과 《히믈러작전 (Operation Himmler)》이다.
라이프찌히방화사건은 1933 2월 도이췰란드의회 본부건물인 베를린 라이프찌히를 방화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은 나치스가 권력을 장악한지 불과 1개월이 채 안되여 일어난 사건인데 이 라이프찌히사건은  게링그와 겝벨스가 합작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나치스는 도이췰란드공산당이 방화를 했다고 선전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증거자료란 단지 뽈스까에서 온 한 유약한 좌익청년 하나뿐이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바로 겝벨스의 부하가 그 장소에 데리고온 사람이다. 이 방화사건을 구실로 나치스는 공산당, 사회민주당원, 로동자, 지식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모든 좌익신문은 페간당했으며 와이마르공화국 헌법에 의하여 선언된 개인과 결사의 자유는 모두 무효화되고말았다.
나치스가 자행한 두번째 위장기발은 1939 9 1일 도이췰란드가 뽈스까를 침공하기 위해 자행한것이다. 8 31일 밤 량국의 국경지대에 뽈스까군복을 입은 도이췰란드군인들이 나타나 도이췰란드군인들에게 사격을 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다음날 이를 구실로 뽈스까공격을 명령한다. 이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고말았다. 즉 단 2일후에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선포한다.
많은 미국사람들은 절대로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위장기발을 흔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그리핀은 지적한다. 그리고 《한국》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미국은 말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이기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교국가이기때문에, 하나님을 믿기때문에 미국이 이런 저렬한 위장기발을 사용할것이라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러나 다음 그리핀은 례를 통해 미국은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이런 위장기발을 사용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위장기발의 원조는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을 다음사례를 통하여 립증하고있다.

이딸리아에서 흔든 미국의 위장기발

2005년 스위스력사가 겐서(Daniel Ganser)가 지적한바에 의하면 미국은 지난 랭전시기에 심지어 유럽에서도 엄청난 테로를 자행해왔다고 보고하고있다.(NATO's secret armies: Operation Gladio and Terrorism in Western Europe)
이 보고서에 기초하여 대표적인 위장기발의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우선 력사적배경부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유럽에서 기망행위를 한 때가 바로 《한국》에서 《정부》요인들이 암살될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하기때문에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요한다. 1947년 미 트루맨대통령은 National Security Act(NSA)의 지원을 받아 종전의 첩보기관이던 OSS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로 바꾸어 창설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구들을 탄생시킨 목적은 유럽에서 선거를 통해 거세게 발흥하고있는 공산당박멸을 겨냥하기 위해서이다. 그 첫번째로 겨냥한 나라가 바로 이딸리아이다. 미국이 이딸리아에서 한 행동을 보면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한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기망행위를 한 수법이 동일하기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정부》수립을 위해 《선거》가 진행되던 때 이딸리아에서도 1948년 총선이 있었다. 미국은 즉각 CIA에 명령 NSC4A를 내려 공산당원들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다. 이 명령이 성공적이자 미국정부는 명령이름을 NSC10/2로 바꾸어 이번엔 전세계에 있는 CIA에게 지령을 내린다. 이 명령속에는 《선전, 경제전쟁, 사보타쥐, 폭파, 적대정부전복, 학살》이 들어있다. 이 명령과 관련 《한국》에 해당하는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구태여 여기서 지적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김구, 려운형, 송진우 등등 조금이라도 좌익혐의가 있는 요인들은 모조리 저격, 학살하라는 내용이 NSC10/2속에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할수 있을가.
우리는 미국이 발한 이 명령에 대하여 더 자세한 고찰을 여기서 할 필요가 있다. 1949년 나토창설과 함께 이 작전명령은 CPC(Clandenstine Planning Committee)로 바뀌였으며 이 명령을 미국 CIA와 국방성이 완전히 장악하고 주도했다. 이때에 나토사령관이 미국군인이란 사실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1966년 프랑스 드골대통령이 나토본부를 추방하자 벨지끄의 브류쎌로 옮기기는 했으나 여전히 실권은 모두 미국국방성이 좌지우지했었다. CPC가 하는 역할을 보면 극우단체, 심지어는 히틀러나치스의 SS까지 포섭하여 비밀군대를 만드는것이였다.
이 비밀군대를 두고 공식적으로는 《한발 물러서있는 군대(staybehindarmies)》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왜 이런 명칭을 붙이게 되였는가를 아는것은 더욱 흥미롭다. 한발 물러서있기란 요인암살같은데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뒤에서 조종만을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국은 점령자에게 쏟아지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 김구를 비롯한 《정부》요인들의 암살자들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있는 원인이 바로 미국의 한발 물러서있기 작전때문이 아니라 할수 있을가. 미국은 전세계 도처에서 공산당박멸을 할 때에 이 작전을 례외없이 사용하였다. 이런 미국의 작전에 희생된 나라의 수는 손가락으로 다 셀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 대표적인 례만 여기서 들어볼가 한다.
리챠드 닉슨대통령시절 이딸리아에서 전개한 소위 《글라디오작전》명령(Operation Gladio)은 실로 가관이라 아니할수 없다. 《글라디오》란 반공극우단체 비밀첩보기관이다. 1969 12 12일 로마와 밀란의 피자에서 4개의 폭탄이 터져 16명이 죽고 8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피자 폰타나 대학살사건》이라고 부른다. 물론 좌익들이 사건을 자행했다고 대서특필 선전하였다. 1972년에는 이딸리아국회 경비경찰이 페타노에서 자동차폭파사고로 죽었다. 닉명자가 제보하기를 Red Brigades의 소행이라고 했으며 결국 이런 미확인된 정보에 근거하여 공산주의자들 소탕작전이 벌어져 200여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체포되였다.
1978년은 이딸리아공산당이 국회의원선거에서 대승을 한 해였다. 수상인 알도 모로(Aldo Moro)는 드디여 워싱톤의 의사에 반하여 공산당을 양성화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랍치되여 살해되였다. 또다시 이것마저 공산당의 소행이라고 책임전가를 하였다. 알도 모로살해는 마치 우리 나라 해방공간에서 려운형이 암살당한것과 류사한 사건이라고 할수 있다. 1980년 볼로냐 기차역에서 대규모폭발사고가 일어나 무려 85명이 죽었다. 이 사건도 공산당의 소행으로 그동안 알려졌었다.
미국의 이러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기망행위는 끔찍하다 할만 하다. 미국의 이러한 상습화된 기망적행동은 그들의 태생적한계이다. 다시말해서 미국의 건국이라는것이 이런 야비한 거짓말이 없었더라면 그자체가 불가능했을것이라는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체를 간파한 우리 민초들은 《미국 믿지 말라》고 한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나 전에 어떻게 이런 고도의 정치의식을 우리 민중들이 갖게 되였는지 리해하기가 힘들다.
지금 전세계에서 일방적인 힘을 구사하고있는 미국의 이런 기망 행위앞에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자주의 길뿐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길일뿐이다. 자주의 반대인 사대주의는 미국앞에 나라를 통채로 가져다 바치는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 《자주》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됐고 자주를 말하는것은 《좌파빨갱이》와 등식이 되고말았다. 《자주》, 이것은 지금 남《한》사회에서 금기 1호이다. 그렇다면 우리앞에는 자멸의 길밖에는 없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사대주의청산과 자주를 련습하는 학습을 안깐힘을 써서라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디서 우리는 자주학습의 교과서를 발견할것인가?

사대주의는 허무주의발로이고 망국의 첩경이다

회고록 전 8권 모두에서 김일성주석은 나라를 빨리 망하게 하려면 사대주의부터 하라고 경고하고있다. 각 권마다 사대주의에 대한 리해배경은 조금씩 다르다. 1권에서는 나라가 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대주의라고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력대로 사대주의를 일삼아오던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때에조차 큰 나라들의 조종밑에 당파싸움만 하였다. 그러다나니 오늘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왕궁을 지키고 래일 친로파가 득세하면 로씨야군대가 임금을 호위하고 모레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군대가 대궐의 파수를 서는 판이였다.(1 3페지)
나라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이 사대주의이며 나라를 잃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 습관이 그대로 남아 사대주의방법으로 구국활동을 했다는것이다. 주로 국내민족주의진영의 독립운동방식에 대한 비판 이다.
《헤그밀사사건은 봉건통치배들의 뿌리깊은 사대의식을 잡아 흔드는 하나의 힘있는 경종이였다.만국평화회의장을 붉게 물들인 리준의 피는 후대들에게 세계의 그 어떤 강대국도 조선독립을 선사하지 않는다는것과 남의 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경고해주었다.(141페지)
《민족주의운동의 상층부가 이 교훈을 명심하지 않고 또다시 미국과 <민족자결론>에 기대를 건것은 그들의 머리에 숭미사대주의사상이 그만큼 뿌리깊이 남아있었기때문이였다. 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지난날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큰 나라들을 쳐다보면서 그들의 힘을 빌어 국운을 타개해보려고 하였다. 이 버릇이 민족주의운동상층에도 그대로 이식되였다.(1 42페지)
34권에서는 주로 공산주의자들안의 사대주의를 지적하고있다.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것도 사대주의라고 보았다. 특히 여기서 주체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1930년대초 동만일대에서 반《민생단》사건이 진행되면서 김일성주석은 좌파내 사대주의를 혐오한다.
56권에서는 외세에 기대려는 사대주의에 대하여 통렬하게 비판한다. 회고록 전편에는 사대주의를 다방면에 걸쳐 지적을 하고 우리 글, 우리 말을 지켜야 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면 왜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는가? 그 리유를 두고 사대주의는 허무주의로 가는 첩경이라고 한다. 주변의 수많은 변절자들이 한결같이 사대주의자들이였고 사대주의자들은 쉽게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적의 무기보다 더 무서운것은 허무주의로 직결되는 사대주의라고 했다.
 MB가 임기 3개월만에 지지도 20%로 추락한것은 그의 말리지 못하는 사대주의때문이다. 초불집회뒤에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광우병소리라기보다는 주로 그가 미국과 일본에서 보여준 태도이다. 《대통령》으로서 영어실력을 발휘하려 한것이라든지, 일본에서 국왕앞에 고개숙인 태도같은것들이 모두 국민들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광우병파동이 쉽게 가라앉기가 힘들것으로 판단한다. MB가 근본적으로 자주정신으로 돌아와 국정을 운영하기 전에는.






항일유격대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2MB의 《별수》 없는 《꼼수》

자고로 전쟁마당에서나 협상술에서나 심지어 바둑판에서마저 상대방을 이기려면 상대방보다 한수() 높아야 한다. 그런데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협상술에서 MB《정부》는 별수 없는 꼼수만 내보이고있어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불안케 하고있다. 계속 거짓말만 하다가 국민들의 초불앞에 무릎을 꿇고 내놓는 수란 업자들간의 《자률규제》에 기대하자는것이 고작이다.
2008 6 7일에는 부쉬한테 전화까지 해 월령 30개월 소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리해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정도면 2MB의 수량(數量)은 다했다고 할수 있다. 일개 《국가》가 미국의 장사군들의 자률에 의지해 국민들의 건강권을 내던지고있으면서도 스스로 창피한줄도 모르고있는것이 지금 《대통령》의 용량이다. 문서로 작성해두어도 불리하면 사문화시키는것이 미국인데 전화통화 하나로 부쉬의 말을 믿어달라고. 사대주의극치라 아니할수 없다.
실로 《대한민국》호는 다시 위기에 처해있다. 왜 하필이면 그리스도교장로《대통령》때마다 이런 위기가 오는지 모르겠다. 2MB 6일 소고기재협상론난과 관련,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소고기)재협상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도대체 더 큰 충격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권이상 더 큰 충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리의 한복판 차나 다녀야 할 길에 젊은 학생들이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도로를 메우고있는데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수밖에 나오지 않는데 실로 걱정이 앞서지 않을수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두고 《불가항력》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이 올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 지금 이런 말이 나온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지 않는가? 불가항력적상황에서도 리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명명백백한 《대통령》개인의 잘못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그가 취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우리는 지혜와 용기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탈출해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한가지 귀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귀감을 오늘 1937년 초여름 항일유격대의 소탕하전투에서 있었던 일행천리의 전술전략에서 찾아보려 이 글을 쓴다.

동성서격(東聲西擊)과 서성동격(西聲東擊) 유격전술

지금 일방적힘을 구사하고있는 미국이 오직 한 나라 북(조선)앞에서는 백기를 늘 들고말았다. 리비아의 가다피도 굴하고말았다. 그러나 도대체 북미간에 무슨 징크스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생겨나는것일가? 나는 그 비결을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전술과 전략에서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고록은 김일성항일유격대가 일본과 벌린 크고 작은 전투에 대한 서술로 점철돼있다.
김일성사령관과 같은 나이의 중국유격대장들은 거의 죽었다. 양정우, 위증민, 진한장 등이 잡혀죽고 병사했지만 김일성사령관만은 건재하였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뛰여난 전략전술에 있었다고 사려된다. 그리고 해방이후 북이 대외적으로, 특히 대미협상에서 항상 우위의 자리에 설수 있었던것도 김일성사령관의 유격전술전략의 연장에서 매사에 림하기때문이라고 판단되여 여기에 한 사례를 소개한다. 실로 한 나라 지도자의 지략과 지혜 그리고 용기와 결단은 그 개인뿐만아니라 국가의 행불행과 운명을 좌우할만큼 중요하다.
항일유격대의 전술가운데 대표적인것이 적을 교란시키는것이다. 매복전, 유인전, 기습전,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구사하여 적을 우선 피동으로 몰아넣는것이다. 이를 두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고 한다. 동에서 소리를 내면서 서에서 치고 서에서 소리내면서 동에서 치는 전술말이다. 이를 동성서격(東聲西擊)과 서성동격(西聲東擊)이라 한다.
일제도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이런 전술에 맞서서 오가작통(五家作統), 십가련좌법, 보갑제도수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일제가 김일성항일유격대와 인민들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수법으로 5가정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서로 감시하도록 하고 만약에 어느 한 가정이라도 유격대원을 숨겨주면 10가정을 련좌법으로 처형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견벽청야(堅壁淸野)는 토성을 쌓고 들에는 집 하나 없이 깨끗이 불태워버리는것이다. 이 수법은 지난 전쟁중 《공비토벌》이라 하여 산간벽지의 집들을 소개시키고 불태워버린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에 맞서 김일성유격대는 이정화령 그리고 이령화정의 전술을 구사한다. 있는것 같은데 사라지고 없는것 같은데 갑자기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출귀몰이라고 한것이다. 백전백패한 일본은김일성사령관의 이름만 들어도 혼쭐이 나 도망치고 막대한 현상금까지 걸었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신출귀몰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건재하였고 동지들도 살아남아 해방과 함께 그들은 조국에 들어왔다. 이렇게 세운 정부와 외세에 의존한 사대주의근성이 바탕이 된 《정부》하고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우선 외교전략과 협상술에서 그 차이는 심대하다. 협상하는 대상국을 사대하고 무슨 협상이 제대로 되겠는가. 차라리 그것은 협상이 아니고 조공이지.

일행천리 이신작칙

1936 6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지역에로의 진출을 앞두고 김일성사령관은 그 백두산서북부일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무송현쪽으로 진공을 명령한다. 이 전략을 두고 이정화령 이령화정이라고 한다. 대원들은 모두 왜 느닷없이 북행길이냐고 의아해한다. 그러나 만약에 남행길을 앞두고 남으로 바로 내려가면 그곳으로 적의 병력이 몰릴것은 명확하지 않는가? 결국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남행길을 위한 북행전략을 세운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의 이런 전략은 적중하여 장백지역에 결집돼있던 적의 병력은 사방으로 분산되였고 초점을 잃고말았으며 이 일대에 있던 지하조직들은 조직망을 단단히 다져 후일 유격대가 왔을 때에 큰 힘이 되였다. 이런 전술전략을 두고 이정화령이라고 한다.
1937년 춘삼월 만주에도 봄이 들어 버들이 싹을 틀무렵. 이름도 양목정자,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였다. 만강부근의 양목정자에는 동서로 나뉘여 두개의 밀영이 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유격활동가운데 이곳을 잊을수 없는것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던 동지들을 잃어버렸기때문이다. 리동백, 리달경동지를 모두 이곳에서 잃어버렸다. 오른팔, 왼팔하던 동지들이 모두 이곳에서 산화하였다.
일명 소탕하전투라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양목정자밀영부근에서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적들이 포위하여 하늘에 나는 새가 아니고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였다. 적들이 피운 우등불불빛이 가히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당에 나올수 있는 전술이란 누구나 한번 싸우다 죽는 《결사항전(決死抗戰)》뿐이였다. 이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에 가까운것으로서 유격활동의 력사를 여기서 막내리고마는 절박한 순간이였다. 적은 대략 수천명, 유격대원은 고작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련대장 손장상이 주장한 전략이 결사항전이였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동무들, 살아남는다는것은 죽는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서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6 28페지)고 상상밖의 제안을 한다. 많은 동지들이 자루안에 든 쥐와 같은데 마지막 죽기 전에 결사항전이나 하고 죽자고 하는 마당에 사령관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이 순간 김일성사령관은 기발한 하나의 전술을 구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면 김일성사령관이 구상하고있었던 전술은 도대체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일행천리(一行千里)》였다.
전광석화같이 아니, 령감같이 머리속을 스친 이 생각은 김일성유격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그것도 큰길을 통해 한사람의 희생도 없이 말그대로 일행천리로 내닫게 하였다.

큰길을 택한 정공법은 이렇게 성공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나는 크고작은 우등불로 가득차있는 골안을 굽어보며 포위망을 뚫고나갈 묘책을 궁리하였다.
문제는 어느쪽으로 어떻게 뚫고나가 적의 포위를 멀리 벗어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만일 소탕하골안에 널려있는 <토벌대>의 병력이 수천명으로 추산된다면 적의 후방은 지금 텅 비여있을것이다,적들은 우리가 포위환을 벗어나는 경우 분명 더 깊은 산속으로 빠지려 할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이런 조건에서는 적의 포위가 비교적 약한 큰길쪽에 붙어서 살짝 빠져나가는것이 상책이다, 그다음에 큰길을 따라 일행천리하자, 이러한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6 2829페지)
여기서 김일성사령관은 적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것인가를 먼저 추리한다. 즉 적들은 유격대가 깊은 산속을 빠져나가리라 생각할것이라고 적의 머리속에 먼저 들어간다. 유격대가 대로행한다는것은 유격대전술의 기본을 어기는것이기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김일성사령관은 적이 이렇게 생각할것이니 그 반대의 선택, 다시말해서 큰길로 대로행한다는것이다. 적의 머리속에 들어가 한번 생각하고 다시 내가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적이 어떻게 생각할것인가를 생각하고바로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수가 높아져가는것이다.
《지휘관들은 <큰길>이라는 말에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이동할 때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은 유격대의 활동에서 철칙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적들의 대병력이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때에 주민지대에 나가 대도로를 따라 행군하라고 하니 그들이 놀랄수밖에 없었다.
손장상이 내곁에 다가와 지나친 모험이 아닌가고 불안스럽게 말했다. 그가 나의 탈출작전을 지나친 모험이라고 우려한것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어느모로 보든지 그것은 모험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작전이였다. 왜냐하면 적들이 큰길을 지키고있을수도 있고 또 저들의 후방에 일정한 병력을 남겨놓았을수도 있기때문이였다.(6 29페지)
소탕하의 장대우에서 결심한 주민지대로의 탈출과 대로행군전술은 승산이 확실한 모험이였다. 김일성사령관이 승산이 확실하다고 본것은 바로 그 모험속에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피동에서 주동으로 넘어가려는 투철한 공격정신이 깃들어있고 적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리용하기 위한 과학적인 타산이 깔려있었기때문이다. 싸움이란 결국 지혜와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신념과 신념의 대결, 의지와 의지의 대결, 용기와 용기의 대결이기도 하다.
《적들은 소탕하 수십리골안에 우등불의 바다를 펼쳐놓음으로써 자기들의 력량이 얼마만큼 된다는것과 어떤 전술로 인민혁명군을 섬멸하려 한다는것을 죄다 로출시키였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작전문건을 탈취당한것과 같은 실수를 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실수로 하여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셈이였다.(6 3031페지)
다시말해서 김일성사령관은 적들이 지금 여기 다 모여있고 큰길을 지키고있지 않을것이라 판단한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적중했다. 적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다 로출시키고있었고 이 로출된 모습을 김일성사령관은 본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먼저 8련대가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뒤를 경위중대가 따르고 7련대가 따랐다. 행군종대는 불무지들을 피해가며 큰길쪽으로 소리없이 움직이였다. 집단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복잡한 정황이나 위기가 조성되였을 때 지휘관이 취하는 자세와 개개의 언행이 전대오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그때 나는 크게 절감하였다. 지휘관이 태연하면 전사들도 태연하고 지휘관이 당황해하면 전사들도 당황해하는 법이다.(6 31페지)
《예견했던바대로 신작로에는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어귀에 불무지자리만 남아있을뿐이였다. 우리는 궤도우를 질주하는 급행렬차처럼 여러개의 마을들을 거침없이 통과하면서 동강으로 행군하였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텅 빈 적구를 무사히 통과하였다.(6 3132페지)
《소탕하에서 실현한 대로행군전술을 우리는 후날 조국에 나와서 베개봉을 떠나 무산지구로 진출할 때에도 적용하였다. 그 전술을 일행천리전술이라고 한다.(6 32페지)
적들은 소탕하전투때 일본, 만주국, 도이췰란드 등 3국의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까지 끌고왔다고 한다. 김일성이 과연 인간인지 신인지 보여주려고 작심을 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언론플레이를 하려 했던것이다. 《철심》에 실린 《동변도토비행》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그때 모인 기자단은 일본의 주요신문들인 《도꾜니찌니찌신붕》, 《요미우리신붕》, 《호찌신붕》의 기자진과 함께 신경방송국 국원들과 만주국의 외교부 관리들, 나치스도이췰란드의 국가통신사 통신원인 요한 네벨로 구성되여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 , 만 출판보도계와 언론계의 련합진에 외교관들까지 합세한 어마어마한 참관단이였다. 아마도 적들은 무송지구<토벌>작전을 전세계에 자랑할만 한 시범작전으로 판단하고 이 작전에서 달성하게 될 저들의 <혁혁한 전과>를 만천하에 널리 소개하고싶은 열의로 퍼그나 들떠있었던것 같다.(6 33페지)
회고록의 글이다.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라야 미국에 이긴다

항일유격대가 수천명에 달하는 대병력의 포위를 성과적으로 돌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은 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적들은 혁명군의 행방을 가늠하지 못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적사병들속에서는 여러가지 괴담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의 전술은 귀신도 곡할 전술이다., 《조선빨찌산에는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가 있다.》 이런 말들이 민간에까지 흘러나와 농촌 마실방에 모여드는 늙은이들의 화제거리로도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이 행군을 통하여 우리 부대에 대한 민화와 전설은 더욱 풍부해졌다.(6 35페지)
제갈량이 얼마나 수가 높은 전략가인지는 《삼국지》에 잘 기록돼있다. 여기 제갈량과 조조사이의 두뇌싸움의 경우를 한번 례로 들어보자. 《삼국지》에서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지나갈것인가 안 지나갈것인가를 놓고 관우와 제갈량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제갈에게 관우가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오느냐?》 묻자
제갈: 《반드시 온다.
관우: 《화용도의 한켠엔 산길이 또 한켠엔 평지가 있다. 오면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내가 말한대로 조조가 오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겠다.
관우: 《두갈래중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산길로 온다. 조조가 오게 하자면 산길쪽에서 연기를 올리라. 그러면 조조가 틀림없이 산길쪽으로 온다.
관우: 《될말이냐? 연기를 올리면 조조는 군대가 있는줄 알고 평지로 갈것이 아니냐?
제갈: 《그것이 병법의 허허실실이란것이다.
제갈량의 허허실실이란 상대방의 아는것을 아는것을 의미한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그러니 적이 연기있는쪽으로 오지 않을것이다. 아주 초보적인것이다. 다음단계는 연기가 있다는것은 군대가 《없다》를 위장한것일수 있다. 그러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것이다. 바로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 다음단계의 높은 사고를 하여 그러니깐 조조의 이런 사고를 하는것을 리용하여 사로잡는다는것이다. 조조는 메타적사고를 했지만 제갈량은 메타의 메타적사고를 한것이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 량자가운데 상대방이 후자를 생각하도록 만들어 연기도 있게 하고 군대도 있게 한다는것이다. 결국 허의 허는 실이 되는 전법인것이다.
제갈량이 이렇게 전략을 세운것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훤히 파악하고있었기때문이다. 뇌가 단순한 사람의 경우 즉 일차원적사고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연기가 있는 곳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때에 사용한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은 모두 이 정도 차원으로도 우릴 속일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과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 정도 속임수에도 모두 속아넘어가고말았다. 그러나 조조의 머리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고까지 사고한것이다. 이는 상대방이 자기를 속인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경우이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사고만 했어도 일제에 당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제갈량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다시 파악하여 연기를 피우고 군대도 머물게 한것이다. 제갈량은 산에 불을 피우면 조조가 이렇게 생각할것이라 생각한것이다. 《산지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기때문에 불을 피우고 사람이 있는것처럼 위장한다. 그것에 속아 평지를 택하면 적은 습격을 할것이 뻔하다.》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을 한다는것이다. 이에 제갈은 《그러므로 불을 피워 사람이 있는것 같이 보이면 도리여 그켠으로 온다.》는것이다. 관우가 《당신 말이 틀림이 없느냐?》고 하니 제갈은 《틀림없다. 틀리면 내 목을 베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조조가 제갈의 이런 사고구조를 《아는》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시말해서 산으로 오지를 않고 평지로 가고말것이고 제갈의 목은 달아나고말았을것이다. 이 두뇌싸움에서 제갈이 이겼다. 이와 같이 무기들의 전쟁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것은 의식의 전쟁이다.
김일성유격대가 련전련승할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의식의 전쟁에 있어서 한수 우에 있었기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높은 의식의 수준이 하늘로부터 주어진것도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인민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한것은 없다는것이 기본인간관이고 철학이였다. 이렇게 철두철미 대중속에, 군중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것이다.

일행천리전술과 탈현대의 론리

인간은 의식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진화해왔다. 《탈현대》란 현대보다 한수가 높은 의식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원시-봉건-근대-현대-탈현대로의 발전은 그대로 의식수준의 진화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 탈현대철학자들이 그들의 론리가 현대와는 다름을 말할 때에 약방의 감초같이 사용하는 례가 하나 있다. 그것은 에드거 앨런포우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편지》(일명 《도둑맞은 편지》)이다. 이 편지가 범죄의 단서이기때문에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범인의 집에서 이 편지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 리유는 머리좋은 범인은 그 편지를 거실책상우 눈에 잘 띄는 다른 편지나 서류속에 그냥 내버려두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범죄자의 이런 수법마저 눈치채고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냈다는것이다.
수사관과 범죄자사이의 머리싸움에서 수사관이 찾기 어려운 곳에 편지를 숨긴다. 그러나 수사관이 이 사실을 안다. 여기까지가 모던(modern)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이 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눈에 잘 띄는 아무 곳에 편지를 둔다. 그런데 수사관은 범인이 안다는 그것을 알고있다. 이는 안다는것을 아는것을 다시 아는 구조이다. 3중구조가 바로 탈현대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의 안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다시 알고 그리고 다시 그 안다는것을 아는 4중구조를 가져야 할것이다. 물론 수사관은 5중구조를 가져야 하고.

항일유격대의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먼저 미국은 4 18일 협상에서 자기들이 양보하려고 한것까지 2MB가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나오고있다. 이 마당에 우리가 할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길로 일행천리하는 전술적비법을 꺼내드는것이다. 이 전략이 먹혀들자면 《대통령》과 국민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다 준비가 되여있다. 《대통령》과 여당지도부가 문제이다.
먼저 미국은 우리가 소고기재협상하자고 하면 FTA비준거부라는 카드를 들고나올것이다. 그 다음카드는 우리의 안보를 문제들고 나올것이다. 즉 주《한》미군철수 운운하며 겁을 줄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의 문제가 따른다. 과연 리명박《대통령》이 미군철군하면 해보라고 당차게 나올 용기와 결단이 있느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도 생각키로는 100% 미국은 상상 이외의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말것이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은 우리의 안보가 아닌 자기들 목적과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있기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를 궁지에 몰고 완전 포위하고있다고 자신만만해할것이다. 우리를 내몰면 산골짜기로밖에는 퇴로가 없다고 압박할것이다. 마치 1937년 초봄에 항일유격대가 겪었던것 같이. 그러나 여기에 대담하게 큰길로 일행천리하는 전술을 펴보라는것이다. 거듭 말해 미군철수가 미국이 던질 마지막카드인데 이에 대해 해볼테면 해보라고 말할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의 여야는 자기들의 기득권보다 국가의 리익이 항상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오바마의 말도 부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국내에선 싸워도 대외정책에선 언제나 짜고 고스톱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보수우익들은 국가리익보다 자기 집단의 기득권이 앞서는데 체질화돼있다. 우리의 《정부》와 국민이 일심단결 일행천리할수 없는 진정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민초들의 초불은 애타게 타들어가고있다.





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문초불로 오늘도 타오른다

《찢기는 가슴, 이 땅에 피울음안고 우린 다시 모였다》

2008 5 2일 처음 초불집회가 열리던 날 나는 과연 성사나 될수 있을가, 그래도 MB《정부》등장이후 답답하던 마음이나 달래려, 그리고 자리나 채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하여 벌써 40여일이 지나가고있다. 집이 《청와대》뒤 세검정이라서 비오던 날은 사방에 길이 막혀 밤 자정까지 탈출구를 못 찾아 생비를 그대로 맞으며 헤맨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경우 경찰들이 이상한 방법으로 막아 빠져나가는 사람도 못 나가게 한다. 전두환, 로태우시절은 개구멍을 만들어 한두사람은 새나가게는 했는데. 아마 이렇게 불편을 느끼게 하여 데모대에 혐오와 증오를 갖게 하려는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오산이다. 아마 서울시내 택시기사들한테 물어보면 과거같이 데모대를 원망하는 기사들은 찾아볼수 없다. 거리상인들도 식당가주인들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초불집회를 보는 평균적인 정서이다. 《리문세》(리명박《대통령》이 문제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라는 류행어가 이상할것 없다. 집회에 나가면 오래동안 만나지 못하던 얼굴들도 보게 되고 무엇보다 나이어린 학생들, 특히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재롱은 귀엽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첫날 청계천 하늘광장에서 모임이 시작되던 시간, 난데없이 학교에서 갓 하교한듯 한 아직 중3, 1정도밖에 안돼보이는 주로 녀학생들이 이 골목,저 골목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광장은 불꽃바다가 되였다. 하늘의 별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장은 별빛바다가 되였다. 한편 안타까운것은 지금 학교에서는 0교시 수업 그리고 우렬반을 나누어 공부를 하고있는 마당에 저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밖에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앞섰다. 주최측이 빨리 끝내 돌려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다. 자식둔 부모들은 누구나 나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이 작은 별들이 일을 냈다. 큰일을 해냈다. 며칠째부터는 이 작은 책가방부대수자가 줄어들다 6 10일 전후가 되자 다시 이젠 열명, 스무명씩 같은 학교 교복입은 학생들끼리 무리지어 대렬의 주류를 이루고있다. 후날 력사가가 이날을 력사에 기록한다면 무명의 이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력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무도 지금 모른다. 6 10일 같은 날 보수단체집회에서는 주로 이 학생들의 배후가 누구다 누구다 하는것 그리고 그 배후를 성토하는것이 주류였다. 북이 배후세력이라는것이 그날 조갑제발언의 골자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배후가 없다. MB에게 상처받은 찢기는 가슴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어린 중고등학생들, 저 생기발랄한것들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계에도 없는 0시에 일어나 0시에 돌아간다. 화이트헤드란 철학자는 저 나이에는 아이들에게 랑만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단에 올라가 MB가 갈가리 짓이겨놓은 감정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내 경우 다 치유돼가는 분단의 병이 다시 도지여 아픔을 견딜수 없어 나간다. 이렇게 구석구석 리명박에게 상처 안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배후는 리명박이고 그가 문제인것은 개와 소들도 다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 10대들의 랑만은 찢기는 가슴안고 피울음으로 피여오르고있다.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나는 그동안 몇차례 여름감기가 왔다갔다하였다. 밤중에 길가에서 걷다보니 온몸에 땀이 났다가 식으니 찬 밤공기에 한기를 견디지 못해 몸이 성할리 없다. 그러나 초저녁만 되면 마치 아편중독쟁이같이 초불중독증에나 걸린듯이 광화문으로 나간다. 10시가 넘으면 갑자기 집에 돌아갈 걱정이 나기 시작한다. 의례 길이 또 막힌다. 그러면 온몸은 땀에 목욕을 한듯 하고 몸은 다시 식고 아침이면 기침이 나고 그러면 동네 보건소에 가 감기약을 벌써 네차례나 지었다. 의사가 이젠 보건소에 오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초불에서 난 병, 초불만이 약이라고 본다.
6 10일 길은 다 막혀 서대문을 지나 홍제동을 통해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형무소 앞길을 지나 무학재고개를 넘는 순간 나는 만주벌에서 긴긴 행군을 하던 항일유격대원들 그리고 이 형무소에 갇혔던 박달과 리제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은, 수많은 독립운동하다 죽은 령혼들, 고난의 행군동안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가. 라자구등판에서, 무송원정에서 고생한 젊은이들, 감기에 걸려도 따뜻한 국 한그릇 제대로 끓여주는 사람 있었을가. 약은 어디서 구해먹고. 상상의 이런 비교마저 외람돼보이고 부끄럽기만 하다. 인류력사상 이런 어려운 고난의 행군은 없었을것이다. 남아메리카나 동남아 쟝글에서나 유격활동을 하지, 북위 40°가 넘는 한벌판에서 유격활동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15년이란 성상이 지나는 동안.
그나마 이 나라 력사는 이들을 아직도 《공비》의 력사, 《비적》의 력사로 기록하고 가르치고있다. 아마도 오늘 밤 이 초불의 력사도 그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뉴라이트, 그들은 지금 우리 현대사를 완전히 다시 쓰고있다. 김구는 테로리스트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통치를 《조국근대화》로 다시 쓰고있다. 이런 력사책이 바로 우리가 모이는 옆 대형서점가에 진렬돼 뻐젓이 팔리고있다. 그리고 이들이 지지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되였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만은 아니다. 우리 력사가 이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생각속에 화가 나고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면서 온몸은 열기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거역해야 한다. 이들의 손에서 권력을 다시 찾아와야 하고 이들의 손에서 붓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격활동의 시작이고 연장이다. 이에 생각이 미치면서 며칠째 날인가부터는 항일유격대가 밝힌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한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한달이상 웨치고 부르짖었건만 우리앞에는 항만 부두에서나 본 이상한 물체가 솟은듯이 나타났다. 《명박산성》. 6. 10시청앞 광장 한구석에 보수의 무리들이 다시 모여 초불을 든 우리를 모두 사탄의 무리들이니 이들로부터 장로《대통령》 지켜달라고 손발 다 흔들며 새벽 3시까지 빌었다. 나는 하루에 두곳을 오가며 볼것 다 보았고 들을것 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력사가 옳을것인가를 판단하였다. 내가 설 땅이 어디이고 내가 지킬 력사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남북의 두 노래가 뒤범벅이 된채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음들이 내홍(內訌)이 되여 목구멍속에 남은 가래와 함께 목을 메운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울음 운다/ 압록강 굽이굽이 피줄기 흐른다/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 밤아 이야기하라/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청진동 해장국집 마지막불 꺼지고/ 보신각 종도 울지 않을 때/ 이 땅에 새벽을 깨우는자가 누구인가를/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오늘 밤 다시 이 거리 초불 켜지고 하늘의 별은 다시 뜨리라/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감기에 목이 잠겨 나오지 않는 음들을 대신하여 내 눈앞에는 항일유격대의 갈길을 밝혀주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 이 두 불빛이 간섭(干涉)하면서 제3의 새로운 불빛이 되여 내가 가는 북한산 보현봉 밤하늘을 어지럽힌다. 간섭하는 불빛이 서로 동조를 하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광화문 네거리, 낮이면 자동차경적소리만 요란하던 거리가 해가 넘어가기가 바쁘게 여기저기서 초불이 뜨기 시작한다. 갑자기 숙연하고 애잔한 거리로 변한다. 언젠가 귀전에서 사라졌던 애잔한 노래 《아침이슬》 그리고 《광야에서》, 《님을 향한 행진곡》.
도저히 낮의 이 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을듯 한, 이런 때늦은 곡들이 진혼곡같이 들린다. 민주주의가 죽어가고있기때문인가. 통일이 멀어져가고있기때문인가. 6 11일 밤에는 리병렬선생행렬 지나가는 상여소리도 들렸다. 왜 이 나라의 저항곡들은 이렇게 슬프고도 애잔할가? 내가 좋아하는 곡은 《광야에서》이다. 특히 이 노래속에 있는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이란 가사때문이다. 만주땅,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그리고 독립군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피를 뿌린 곳. 나는 이 가사와 함께 성내운선생의 시 《민족이 부르는 소리》를 함께 좋아한다.
동포의 배를 가르고 지나간/ 분계선 날카로운 철조망에 찔린 가슴/그 피토하는 호남벌의 아픔이 있는 한 민중들의 웨치는 소리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이젠 노래방 가사책에나 실린 박물관가락인가싶더니 차경적소리 사라진 광화문대로에서 밤이면 다시 울려퍼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령혼이 또 이 거리에서 산화했다. 산자여 따르란 웨침도 없이 또 한 령혼을 보낸다.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탄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는 《우등불》이란 말을 국어사전은 《화로불》 혹은 《모닥불》로 풀이하고있다. 그러나 《우등불》은 주로 야영지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를 쌓아놓고 피우는 불을 말하며 우등불모임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갖는 모임을 뜻한다. 남《한》에는 강원도 삼척 전기가 안들어가는 산간지대에 아직 우등불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안에 굴뚝같이 솔가지를 지펴 만들어 조명용으로도 난방용으로도 쓰이는것이 우등불이다. 겨울이면 우등불앞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길쌈도 함께 삼고 정담도 나눈다.
그러나 북에서 《우등불》은 이와 같은 사전적의미보다는 주로 《항일혁명시기 유격대원들이 우등불가에서 투쟁의 결의를 굳게 다진것을 본받아 어떤 일을 기념하거나 대중의 정치적열의를 높이려고 할 때 갖는 모임》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북에서는 주민들의 결속을 도모하고 당의 정책수행을 위해 수시로 개최하는 각종 결의를 할 때에 이를 일반적으로 《우등불모임》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군 한다. 그래서 우등불노래도 있고 영화도 있다. 다시말해서 모두 항일유격대시절 갖고있던 각별한 의미가 각색이 되여 말의 기표보다는 기의가 풍부해진것이다. 남에서는 사라져간 우등불이 이렇게 북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등불은 사라진것이 아니고 초불로 다시 살아나고있으며 둘은 같은 의미를 찾아가고있다고 본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 8권 모두에 이 말이 나온다. 모두 60회나 나오는 말이다. 1권에 1, 2권에 6, 3권에 2, 4권에 2, 5권에 15, 6권에 18, 7권에 8, 8권에 8회 나온다. 5권과 6권에 33회나 나오니 반이상이 집중돼있다. 56권은 19361937년 유격활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고보면 《우등불》과 유격활동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말이라 할수 있다.
회고록 5권에는 《우등불피우는 법》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장작을 밑에서부터 5, 4, 3개로 피라미드형으로 쌓고 우에서 불을 지피는 방법이다. 이것은 유격대가 개발한 특이한 방법인데 밀림속에서 귀틀집과 우등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하니 우등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할수 있다.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우등불피우는 법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져 중국인 위증민이 김일성장군부대에 가면 우등불피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5 231페지)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회고록속에는 우등불에 얽힌 많은 일화들이 실려있다. 우등불 피우다 불빛이 적에게 새여 위기를 당하던 일, 김성국이 우등불에 언 발을 쪼이다가 적이 들이닥쳐 맨발로 기관총을 쏘다 발이 동상에 걸릴번 한 일, 소탕하전투때는 적들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피운 우등불이 오히려 적들의 전략을 로출시켜 지난 회에 소개한 유격대가 일행천리 대로행하게 만든 일은 특히 이를 두고 《우등불지도》라 불리우게 되였다. 그 무엇보다 유격대원들이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고 지휘관과 부대원사이에 격의없는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문예활동의 한마당이 우등불주변에서 이루어진것이다. 해방후 북의 그 수많은 연예와 문예활동이 모두 우등불주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될것이다. 《피바다》 그리고 《아리랑》공연도 이 우등불없이 생각할수 없고 이것은 우리 민족 고유한 마당에서 피우는 모닥불문화와 멀지 않다. 그렇다.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매일 밤 이 모닥불이 지펴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초불사이에는 류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한국》에서 시작된 초불집회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여 저항과 평화의 상징이 되였다. 그러나 사실은 초불문화에 공헌을 한것은 초가 아니고 종이컵이다. 종이컵이 없었더라면 과연 초불집회가 가능했을가. 어지간한 바람에도 그 약한 초불을 보호해주는것은 종이컵이다. 우등불지피는 법과 함께 초불을 서로 붙이는 법. 이것 역시 기술이 필요하다. 불을 서로 붙이자마자 빠르게 초를 종이컵속으로 집어넣지 않으면 안되는 이 기술은 집회참가회수와 비례한다.
초불을 서로 붙여줄 때에 무언에 전달되는 감정, 그것은 련인간의 에로스와 친구간의 필리아를 포개놓은것과 같다. 북에서 부르는 노래중에 우등불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속에서 광화문초불집회에서 느꼈던 에로스와 필리아사랑이 하나되는것을 보았다.
달밝은 숙영지에 우등불이 타는 밤/ 사향가 부르네/ 아 우등불, 우등불불빛에 떠나온 고향산천 어려왔어라/ 만경대이야기에 이깔숲은 설레고 겨레의 눈빛처럼 별들도 반짝이네/ 아 우등불 우리들의 우등불/ 우등불타는 밀림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어라
광화문에서 우리도 초불을 서로 붙여주면서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하고 노래불렀다.
우등불과 초불은 하나되면서도 하나가 되지 않는다. 두 불빛이 서로 만나 간섭을 하면서 동조를 하다가도 안된다. 이것이 내 눈앞에서 반복에 반복을 한다.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을 할 때에 골과 골이 만나면 더 낮아지고 봉우리와 봉우리가 만나면 더 높아진다. 골과 봉우리가 만나면 동조가 되여 이를 《동조성빛(coherent light)》이라 한다. 우리의 통일도 이렇게 동조가 될 때에 어느날 갑자기 오는것이 아닐가. 그런데 리명박《정부》등장이후 이 땅의 보수우익들은 골을 더 패이게 했고 봉우리는 더 높아지도록 만들어버렸다.
리근교수(서울대)는 이번 초불집회는 《대한민국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인터네트를 통해 상호수평적으로 련계된 《우리》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프레시안》 6 14)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라고 할 때에 《우리》는 북을 아우르는것이 아닐가? 리근교수는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우리 《생활민족주의》라고 하면서 먹는 음식에 걸린 생활에서 형성된 《우리》라고 한다. 그럼 과연 생활민족주의속의 《우리》는 과연 남과 북이 하나되는 우리가 아닌가? 과연 초불이 갖는 의미가 우리 《대한민국민족주의》에만 해당되는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활건강권을 넘어선 우리 민족주의는 민족자주권과 맥락을 같이하는것이라고 나는 본다. 양초에 처음 불을 붙인 10대들의 가슴속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있지만 그들은 자기 나이또래였던 효순이, 미선이를 생각하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장갑차와 소고기는 그들에게 별개의것이 아니라고 보고있는것 같다. 매일매일 이렇게 초불은 색갈을 달리하면서 타고있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이렇게 우등불과 초불은 서로 동조가 되였다 안되였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들고있는 초불은 바람에 견딜수 없어 흔들린다.
나는 14일 밤에 나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주적》, 바로 이 말이다. 그렇다. 이번 광우병파동은 차라리 미국 NYT 12일 정확하게 지적한대로 소고기이상의것이 있다. 그것은 리명박《대통령》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것에 분노하고있다는것, 《한국》이 왜 강대국 미국에 휘둘려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미국이 이것을 리해해야 한다는것, 효순이, 미선이때도 두 녀학생을 장갑차에 깔아죽이곤 재판을 하는척 하고는 살인범인 미병사를 미국에 빼돌려보냈다. 우리의 분노는 그 이후 부쉬의 사과와 《한》미관계 재정립을 통해 그나마 개선되는듯 하였다. 효순이, 미선이때 겨우 회복하는듯 하던 자존심의 상처를 리명박《정부》는 소고기협상으로 덧나게 한것이다.
추가협상, 추가의 추가를 백번 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찢겨진 자존심을 《대통령》이 치유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자존심회복과 MB가 자주적이지 않는 한 이번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 덧난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뉴라이트이다. 이들의 력사외곡과 민족문화에 대한 모독적발언은 《대통령》과 한통속이 되여 우릴 지금 더 괴롭히고있다. 우리는 지금 이 덧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오늘 밤에도 광화문으로 나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린 다시 섰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다시 섰다.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6 13일 보수신문들은 집회군중도 지쳤고 10일 대형집회다음이라서 초불도 시들해질것이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보수단체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조금도 줄지 않은 집회군중들의 주류는 서대문을 통해 KBS로 향하고 광화문에 남아있던 모임은 주로 《10대련대》가 주도했다. 이번 초불은 10대들이 처음 달군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죽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학생들이 이제 벌써 고등학생들이 되여 이들이 만든것이 《10대련대》이고 이들이 이번 집회의 주인공들이다. 7명이 들고있는 피켓에는 《미군없는 세상에서 고운 넋으로 피여나소서》였다. 자기들이 작사작곡한 곡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이것들을 모두 광장에서 선보일 때에 관광온 외국인들도 함께 춤추지 않을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10대들에게서 그 어느 가치보다 《자주》라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미친소고기 기성세대나 먹어라, 우린 못 먹겠다》는것이다. 이들의 구호가운데는 《차라리 부쉬의 똥이 더 안전하다》도 있었다.
1930년대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10대소년병들이 있었다. 그래서 소년중대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남《한》보수들은 10대들이 어떻게 유격활동을 하느냐며 이를 조작이라고 한다. 지금도 같은 소리를 한다. 이들 배후에는 분명히 검은손이 있을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배후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보수들이 자기들 장신년령을 맞추어 평가절하하고있는 일고의 상대할 가치가 없는 발상이다. 기성세대는 차라리 이들의 놀이에 구경군들이고 이들로부터 자주를 학습하고있다. 나는 이들 10대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였다. 자존심있는 자주정신의 지킴이가 이들에게 싹트고있고 우등불과 초불은 그래서 만날수 있고 서로 두 불빛이 동조하여 어떤 광풍앞에서도 꺼지지 않을것이라 나는 믿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고 약한 초불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있다. 오스트랄리아방송국은 알콜과 마약에 중독이 된 오스트랄리아청소년들을 향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배우라 하고 미국시민들은 자기들이 먹는 소고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초불집회를 찾는것은 외국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여가고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세기와 더불어》 살아가고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청춘이 그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이것은 남북이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청춘인 겨레가 바로 우리이다.
철없고 어린것들이라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세대가 갖지 못하는 감수성이 있다. 이 감수성은 벌레의 촉각과도 같으며 이 촉각은 우주의 변화를 감수할만큼이나 강하다. 감수성은 신경의 중추에서 생기며 이 중추는 《자주성》없이 발달하는 법이 없다. 괴로운것은 이 자주성은 《청춘의 비애(tragedy of youth)》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가능성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과 《세기와 더불어》는 다른것이 아니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우리는 이렇게 지금 하나가 되였다. 광화문초불들이 긴 밤 지새우고 백두밀림 풀잎마다 아침이슬로 맺히리.





집단지성과 헌법 63조의 집단주의원칙이 웹 3. 0을 창조할 때가 온다

나는 2008 6 21() 오후 3시부터 서울시청광장에 나가 배회하기 시작했다. 4시에 《정부》가 소고기추가협상결과를 발표하기로 되여있고 전날에는 《대통령》비서진물갈이가 있었다. 과연 그 결과가 초불에 어떤 영향을 주고있는지 확인하고싶어서였다.
하늘은 장마비를 머금은 검은구름을 잔뜩 이고있고 《정부》는 비만 내리기를 기다렸을것이다. 토요일 오후 4시에 발표를 하면 저녁초불모임은 한풀 꺾일것이라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나 하늘도 도왔고 시민들은 《정부》발표는 보나마나라는듯 4시무렵에는 이미 광장을 그득 메운 상태였다.
4시이전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든 리유는 무엇일가. 나는 그 리유를 지금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소고기이상의것을 담고있기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MB의 잘못된 대전제, 다시말해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시급히 서두르지 않을수 없다.》라는 MB의 전제아닌 착각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것을 이심전심으로 다 알고있었기때문이라 생각했다.
소고기는 차라리 이런 감추어진 감정이 표현되는 출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백두밀림의 우등불은 오늘도 여기서 다시 타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러나 우리는 다시 좌절할수밖에 없고 억울함을 안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여럿이 모였지만 그것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있다. 이 초불상황이 전체를 하나로 그리고 하나를 다시 전체로 만드는 력동적인 작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웹 2. 0》이 만들어낸 소위 《집단지성》을 락관할수만은 없다.

《몰》의 구조를 한 서울시청광장

서울시청광장은 지하철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5호선에서 걸어서 10분안에 있는 공간이다. 1호선 시청역과 종각역, 2호선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3호선 경복궁역과 종로3가역, 4호선 서울역과 회현역, 5호선 광화문역 출구에서 오후 5시만 되면 사람들이 빠져나와 서울시청광장으로 모여든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닌 50여일 가까이.
서울시청광장은 큰길이 사방으로 나있다. 광화문방향, 서울역방향, 정동방향, 을지로방향, 서소문방향, 안국동방향, 서대문방향으로 큰길이 나있다.지하철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초불을 들고 지상에서 이런 방향으로 무리지어 행진을 한다. 그것도 수만에서 수십만씩이나 같은 구호를 웨치며 행진한다. 그러나 가다간 막힌다. 이것이 수십번 반복의 반복을 거듭한다.
탈현대의 상징으로 《몰(mall)》을 들고있다. 몰은 건축구조에 있어서 들어오는 입구(entrance)와 출구(exit)가 다른것이 아니고 사방에 출입구가 있고 다시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나갈수 있다.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승강기타고 우로 올라가면 원형으로 된 광장에는 온갖 잡화상과 식당, 영화관, 서점 등이 있다. 이런 몰의 구조를 두고 탈현대적이라고 한다. 어쩌면 서울시청광장은 이런 몰의 확대판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 그렇다면 우린 지난 50여일간 탈현대적구조속에서 이를 체험하면서 살아왔다고도 할수 있다.
1960년대말 하비 콕스가 쓴 《세속도시(Secular City)》는 선풍적이였다. 콕스는 세속도시의 형태(shape)는 클로버 립(Clover leaf)과 전화교환대(Switch board)와 같다고 했다. 마치 도시의 고속도로가 클로버 립같다고 하여 이를 기동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시인들은 마치 전화교환원이 누구에게 서로 련결해주는줄도 모르고 일하는것처럼 살아간다고 하여 이를 두고 닉명성이라고 했다. 서울시청광장 지상과 지하는 교통망이 클로버 립과 같으며 서로 모인 사람들은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누구인지 묻지도 않는다.

와이브로로 무장한 신유목민

2008년 광화문시위현장에 유난히 눈에 띄는것은 3인조 와이브로 개인인터네트신문 기자들이다. 한사람은 노트북을, 한사람은 카메라와 장비를, 다른 한사람은 마이크를 들고다니면서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즉각즉각 인터네트상으로 현장의 생생한 장면이 전송된다. 그러면 전세계 누구나 안방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있는 일들을 시시각각 접할수 있다. 이것이 이번 초불집회를 성공시킨 비결이다.
여기에 현장과 독자간에 쌍방향소통을 가능하게 만든것이 《웹 2. 0》이다. 2. 0이라는 말은 지난 2004년 이름을 얻은 후 바야흐로 사회문화적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웹 2. 0에 대한 관심이 높다. 2. 0은 이제 인터네트평론가에서부터 개발자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되였다.
쌍방소통이란 량방향이 동시참가함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개방체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개방, 공유, 참여가 웹 2. 0이 가지고있는 의미라 할수 있다. 이제 이 말은 사회비평가들까지도 2. 0이라는 단어를 사회문화적현상을 비유할 때 즐겨 사용한다. 《리뷰 2. 0, 《쇼핑 2. 0, 《토론 2. 0》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이번 광화문시위는 1987 6. 10항쟁과 류사한 점도 있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는 바로 이런 웹 2. 0의 특징유무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20년전 항쟁에는 이런 개방된 참여가 없었으며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류비통신》에 의해 최루탄과 화염병만이 의사소통의 전부인 투쟁이였다. 이런것을 두고 《웹 1. 0》이라고 한다. 이런 비교는 20년사이에 얼마나 투쟁문화가 변했는가를 알수 있게 한다.
20년전에는 배후세력만 찾아내 검거 혹은 일망타진하면 조직이 쉽게 무너지고 운동의 기동력이 감소하기마련이였다. 그러나 2008년의 경우는 쉽게 배후주동자를 찾아낼수 없고 찾아냈다 해봐야 주동자의 영향력이란 미약하기마련이다. 지도부가 제시한 구호와 행동지침, 일사불란한 대오 그리고 대오의 응집력과 물리력으로 전선을 유지하던 《시위 1. 0》시대는 당시의 폭압적인 정치상황과 맞물려 아쉽게도 개방되여있지도 않았으며 참여하기도 공유하기도 어려웠다. 자발적참여에는 배후가 없다. 배후세력을 알고싶어하지만 배후세력을 알수 없는 리유이다.
여러 단체와 조직이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았지만 결국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시위 2. 0》의 배후세력은 누구인가? 초불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여있으며 성별, 년령, 직업과 무관하게 《참여》할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이슈에 대해서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다.(공유한다)
80년대시위는 진압경찰의 립장에서는 다루기 편했다. 확성기를 들거나 유인물을 뿌리는 주동자의 색출이 용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젊은 부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3대가 모두 나온 가족들, 데이트삼아 찾은 젊은 련인들을 흔히 볼수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주동자로 삼기 어렵고 미디어다음 아고라를 배후세력으로 몰수도 없다. 2. 0이나 시위 2. 0이나 《사람》을 리해하는 사회학적, 인문학적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온전히 해석할수 없음이 그 까닭이다.
이러한 웹 2. 0을 두고 《집단지성》이라고 한다. 상호 웹으로 련관이 되여 같이 지식을 공유하고 같이 생각하고 쌍방향소통을 하므로 누구나 동시참여도 할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집단지성의 상징성을 동학군에서도 그리고 항일유격대를 통해서도 그 단면을 엿볼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집단지성인 웹 2. 0의 문제점도 지적하려고 한다.

애동학군 같기도 하고

6 21일 저녁 초불집회를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서울시청광장이 마치 전라도 정읍에 있는 백산(白山)과 그 영상이 겹쳐지는것을 발견하였다. 18943 21일 고부관아를 점령한 동학군은 3 25일 밤 홰불을 들고 태인에 있는 백산에 모여들었다. 허허벌판가운데 있는 낮은 야산에 7천여명의 농민들이 산지사방에서 모여 올라왔다. 마치 사방이 터져있는 서울시청광장과 같은 곳이다.
이들은 3정의 문란과 봉건지주의 억압에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로 참가한것이다. 대장은 전봉준, 총관령은 김개남, 손화중이였다. 이들은 1. 사람을 죽이지 말것, 2. 충효를 다할것, 3. 일본오랑캐를 몰아내고 왕의 정치를 깨끗이 할것, 4. 군대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 권세가와 귀족을 모두 없앨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두고 후대학자들은 반봉건반외세라고 한다. 민생과 민족문제가 모두 포함된 결의문이였다.
동학군은 사발통문이라 하여 사발을 엎어놓고 그 주변에 주모자들의 이름을 적음으로써 스스로 주모자가 없다는것을 통해 정부군을 속이려 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동학의 조직자체가 위계적이지 않는 수평관계였으며 이를 그물망식이라 하며 포접(抱接)이라고 했다. 각 포마다 접을 두고 접에는 접주를 두어 그물망과 같았다. 이는 실로 탈현대적인 조직방식과도 같았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심성구조에 맞는것이였다. 동학이 삼남일대에 그렇게 급속하게 퍼져나갈수 있었던것은 이런 탈현대적포접구조때문이다. 이런 구조에 의한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결국 청일외세에 의해 좌절되고말았지만 우리의 유목민적탈현대는 동학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의 1단계가 조병갑관아습격이고 2단계가 백산봉기라면 3단계는 동학군이 집강소를 설치하여 지방자치를 시행하며 농민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이미 청군과 일군이 개입하여 조선침략이 시작된 단계이다. 그해 5 8일부터 9 12일까지 실시된 집강소가 갖는 의의는 대단한것이였다. 집강소를 통해 농민의식이 깨여났고 이를 통해 4단계 즉 일본과 청을 몰아내기 위한 반외세투쟁이 전개된것이다. 봉기를 동학에서는 기포(起泡)라고 하며 이는 재기포라 할수 있다.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군은 좌절되기는 했지만 실로 동학농민전쟁은 《반봉건반외세》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한세기도 지나가고있지만 2008년 서울시청광장 현주소가 반봉건반외세에서 가히 먼것이라 보지 않는다. 《한국》의 재벌들이 돈벌이하여 그것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사리사욕채우기와 재벌 2, 3세들에게로의 경영권인수는 온 나라를 재벌공화국으로 만들고있다. 국민들은 재벌사가의 머슴군으로 변해가고있는 이 현실이 100년전과 하나도 다른것이 없다고 본다.
이번 소고기파동은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의 마수가 신자유주의란 허울을 쓰고 총칼없는 침략을 해오는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동학혁명이 유효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린 여기서 우금치의 수모를 다시는 당해서는 안된다는 각오를 해야 할것이다.
지금 서울시청앞에 모이는 우리는 죽창과 홰불대신 초불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현실상황만은 100년전과 다른것이 없으며 그래서 우리들의 정신무장 역시 동학혁명에서 유래한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학군의 후예 《애동학군》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애》란 새로운 혹은 《신선한 어린》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초불시위는 어린 소녀들로부터 시작되였다 하여 이런 발상을 해보는것이다. 동학이란 기표(記表)가 갖는 반외세 그리고 반봉건의 기의(記義)는 오늘의 초불광장으로 그대로 이어지고있는것이다.

유목민(遊牧民)과 유격대(遊擊隊)

일정한 장소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곳을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에서 유격대와 유목민은 외양적으로 같아보인다. 그들은 과거의 가치에 좀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런 꿈을 현실로 바꾸려고 하는 점에서 혁명의 정치학과 상통한다. 우리의 신체와 삶을 사로잡고있는 권력과 대결하며 새로운 창조적삶을 창안하며 살아가려는 몸부림, 유격대와 유목민의 철학은 같아보인다. 유격대 역시 누구의 배후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것은 어떤 강요에 의한것이 아니였다.
현재의 초불집회는 1 700여개 시민, 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위험 미국산 소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하고있다. 시위주최가 국민대책회의로 단일화됐지만 현장의 초불문화제는 학생, 주부, 직장인 등 시민들의 자발적참여형식으로 이뤄지고있다. 참석자들사이에 온건한 《초불문화제》를 고집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조성되고있는것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리명박《대통령》의 5 22일 대국민담화이후 여론이 더 악화되였고 24일 밤부터 가두시위가 전개됐다.
경찰은 5 24일부터 격화되고있는 거리시위에 대해 《특정세력이 지휘하고있다.》고 밝혔으나 명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하고있다. 《게릴라성시위가 치밀한것 같다.》는게 전부다. 그러나 게릴라성(유격대) 거리시위행태자체가 지휘부부재를 보여주고있는것이란 분석이다. 경찰관계자는 《지도부가 있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것보다 시민들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가고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단순비교를 하면 김일성항일유격대는 안창호류의 비폭력저항도, 대부대에 의한 전면전도, 김구의 요인저격위주도 아닌 유격대전술을 선택한다.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유격대는 지휘관마저 보초와 경비를 담당했으며 김일성사령관에 대한 경위부대가 생긴것은 유격활동의 전반기를 훨씬 넘어선 이후부터였다. 유격대장이 보초를 서다 위기를 당한 기록들이 회고록에 그대로 나오는것을 보면 이는 마치 동학의 포접구조와 같이 수평적그물망과 같지 않았나 한다. 이들의 호칭인 《동무》라는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집단지성과 집단주의원칙

초불시위에 대한 앞으로 우려는 바로 이러한 탈현대적인 탈중심 그리고 집단지성의 등장이라고 할수 있으나 이러한 장점이 바로 가장 문제점이라는것이다. 혹자는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등장한 이후 인류문명사상 최초로 수만명이 모여 지금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하고있다고 초불집회를 평가하고있다.그러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상황은 집단화되여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프랑스혁명이후 많은 시민단체가 나왔고 이것이 정당으로 발전하여 현재의 시민민주주의가 탄생되였다.
사실 이번 초불집회이후 가장 피해를 볼 대상은 기존의 여야정당들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당전체가 이런 상황의 힘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지 못하였다. 이것이 21년전 6. 10항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21년전은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목표였다면 21년이후 오늘은 정치문화의 변화자체에 있다. 21년전에는 김대중 같은 권위주의적지도력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신뢰의 지도력이 필요하다.(일요시사 6. 20) 우리에게는 신뢰받는 지도자도 없고 지금의 초불집회에서 새로운 조직이 탄생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근 80년전의 항일유격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에서 지휘관과 대원사이를 묶는 힘은 신뢰와 사랑이라고 회고록에서 루루이 강조하고있다. 김일성사령관은 유격활동과정가운데서도 부단히 조직을 일구어나간다.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 1926년 새날소년동맹, 1927년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1936년 조국광복회, 1937년 조선민족해방동맹, 1945 10 10일 북조선공산당창건, 1946년 북조선로동당합당, 1948 9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이상 년대표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항일유격활동은 적과의 투쟁과 함께 조직을 일궈내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과정이 1948 9 9일 공화국창건의 이전과정이 되였다. 인민대중을 상황속에 있는 요소들이라 한다면 조직이란 요소들의 집합을 부분으로 하는 새로운 집합이다. 그래서 국가는 집합의 집합인것이다. 이러한 집합의 집합을 하나의 생명체 즉 사회정치적생명체라고 볼 때에 이런 생명체의 수뇌부가 바로 수령이다. 그래서 수령은 지배적구조속에 있는것이 아니고 자기자신이 수뇌부이면서 동시에 조직속의 한 부분이 되는 그러한 수뇌부이다. 그래서 수령은 조직을 위해 있고 조직은 수령을 위해 존재한다.
북의 헌법 6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에서 말하는 《집단주의원칙》이란 하나와 전체가 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집단주의원칙이 집단지성이란 웹 2. 0과 어떤 상관성이라도 있는것인지?

《ㅌ. ㄷ》를 다시 생각한다

이번 초불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전에 듣지 못하던 새로운 말들을 듣게 되였다. 여당대표의 입에서 나온 《사회적시장경제》와 초불광장에서 나온 《집단지성》이란 말이다. 두 말이 나온 배경은 달라도 《집단》 그리고 《사회적》이란 말은 모두가 지금까지 남에서 금기시되던 말이고보면 놀라운 일이다. 아직 말만 있을뿐 이 말이 함의하고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두 말이 모두 이번 2008년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자연발생적인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웹 2. 0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는 북의 헌법 63조의 집단주의원칙과 일치할수 있는가?
헌법 63조는 웹 2. 0이 발전한 웹 3. 0이라 할수 있는가? 우리는 아직 웹 2. 0의 집단지성에 완전히 익숙한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편적인것도 아니다. 광장에서 우리는 갑자기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것이다. 집단지성의 구조는 하나와 전체의 력동적인 작용이다. 그러한 력동성을 발견한 우리스스로의 모습에 우리는 지금 놀라고있을뿐이다. 그러나 북은 유격대활동을 통해 남보다 먼저 유목민적삶으로 이동하였으며 거기서 집단지성을 먼저 경험한것이다.
과연 북의 체제와 사상이 앞으로 나타날 웹 3. 0의 전형인지 아닌지는 속단할수 없다. 그러나 전자매체만 가미될 때에 북이 남보다 훨씬 빨리 웹 3.0차원으로 쉽게 진입할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의 통일은 결국 이러한 문명의 새로운 진입으로 남북이 동시에 진입할 때에 갑자기 밀려올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이번 초불집회를 통하여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러 오늘도 현장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ㅌ. ㄷ》를 다시 생각한다. 남북청년들이 다같이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첫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것이다. 그것은 이미 이 땅의 동학농민들이 내딛던것과 가히 먼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의 위대한 정신적유산을 남북이 공유하고있으며 북의 유격대의 집단주의원칙과 남의 집단지성이 하나가 되여 함께 웹 3. 0을 창조해나갈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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