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재산 후손이 갖는 게 맞나요
친일파의 재산 후손이 갖는 게 맞나요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친일 행적을 보였던 왕족 이해승이 남긴 재산의 소유권을 두고 국가와 그 후손 사이에 벌인 재판 결과는 엎치락뒤치락했다. 어이없게도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조차 쟁점이 되어버렸다.
조회수 : 9,446 | 김선수 (변호사) | webmaster@sisain.co.kr
[444호] 승인2016.03.26 22:21:16

친일재산위원회의 국가귀속 결정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왕족인 이해승 후손이 상속받거나 소유권을 회복한 토지다. 이해승은 이씨 왕족으로 한일합병 후 일제로부터 후작(侯爵)의 작위를 받고,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친일 행적을 했다. 이해승은 서울 진관동·응암동, 경기도 포천 등에 있는 많은 땅을 사정(査定)받았고, 그 후손이 이를 상속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의신탁에 의해 다른 사람들 명의로 사정되었던 것을 후손이 해방 후 이해승의 소유였음을 밝혀 소유권 명의를 되찾기도 했다. 후손은 이와 같은 토지들이 다 이해승의 선조가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사패지라고 주장했다. 실제 사패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일부가 사패지임에는 틀림없으나, 사패지의 범위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었다. 조선왕조의 기록에 따르면 사패지의 범위에 대해 명확하게 사방 보수(步數)로 표시했다. 후손 측은 위 ‘보수’는 엄격한 측량 단위로서의 의미가 아니고 경계 표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친일재산위원회는 위 보수가 엄격한 측량 단위임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인정된 범위 내에서는 사패지로 인정하고 친일 재산에서 제외했다.
ⓒ시사IN 자료2007년 5월 친일재산위원회가 ‘제1차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 내용을 발표했다.
친일재산위원회는 일부 토지들에 대해 2007년 11월 국가귀속 결정을 했는데, 이에 대해 그 후손이 2008년 2월 국가귀속 결정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으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재판장 박병대 판사)는 이를 뒤집었다. 이유는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합병 당시 이해승의 나이(20세) 등에 비추어볼 때 그가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은 왕족이기 때문이지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해승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판결이다. 소송인 측은 항소심에서 서울대 윤진수 교수 등의 의견서를 받아 제출했다. 을사5적이나 정미7적 등은 적극적으로 한일합병에 공을 세워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지만, 왕족인 이해승은 한일합병의 공에 관계없이 왕족이라는 이유로 귀족 작위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당시 일제는 조선 민중에 대한 선전 효과를 위하여 일정한 인사들(76명)에게 귀족 작위(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를 부여하고 은사금까지 지급했다. 일제의 이러한 의도에 승복해 왕족으로서 귀족 작위를 받은 것 자체가 한일합병에 공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왕족 중에는 일제가 부여하는 귀족 작위를 거부한 인사도 있었다.
ⓒ위키백과왕실 후손으로 일제의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
나는 이 사건을 1심과 2심에서 담당했는데, 친일재산위원회는 위 사건의 대법원 상고심을 나에게 맡기지 않았다.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지도 않고 담당 직원들이 직접 수행했다.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대법원은 위와 같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1심과 2심의 판결이 정반대로 법리적 쟁점이 분명하게 갈리는 사건임에도 2010년 10월28일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이렇게 해서 친일재산위원회가 국가귀속 결정을 했던 많은 땅들은 환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판결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법원은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판단하지 않고 친일재산국가귀속법의 자구에 매몰되어 ‘한일합병의 공으로’ 귀족 작위를 받아야만 친일재산 국가귀속의 대상이 되는 친일행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대표적인 친일행위자가 빠져나가도록 방조했다. 더구나 1심과 2심의 결론이 달랐음에도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최종 판단을 회피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친일재산위원회가 이해승 후손의 토지들을 조사하고 국가귀속 절차를 밟고 있는 중에 그 후손이 200억원이 넘는 규모의 땅을 제3자에게 매도했다. 친일재산위원회는 2009년 5월 후손 명의로 되어 있던 토지들에 대해서는 국가귀속 결정을 해 국가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고, 제3자에게 매각한 토지들에 대해서는 친일재산확인 결정을 내렸다. 또한 2009년 7월과 9월에 추가적으로 후손이 제3자에게 매도한 땅들에 대해 친일재산임을 확인하는 결정을 했다.
이해승 후손은 2010년 5월31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2011년 2월18일 확정된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이해승이 일제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그와 같은 작위를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대한민국이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것은 원인 무효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국가가 항소했는데, 항소심이 계속 중이던 2011년 5월19일 국회는 법률 제10646호로 친일재산국가귀속법을 개정했다(이하 ‘개정 특별법’). 개정 특별법 제2조 제1호는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정함에 있어, 종전의 구법 제2조 제1호 가목에서 규정했던 ‘구 반민진상규명법 제2조 제7호의 행위(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한 자’ 부분을 삭제하고, 제2조 제1호 나목 본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새로 규정했다. 개정 특별법 부칙 제2항은 ‘친일재산위원회가 종전의 제2조 제1호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에는 제2조 제1호의 개정 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본다.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했다.
200억원이 넘는 승소판결이었지만…
친일재산위원회는 그 매각대금 상당액인 200억원이 넘는 금액에 대해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친일재산위원회는 친일재산확인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은 다른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했고,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은 나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지만 친일재산위원회가 활동하던 때라 나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를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해승 후손은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소송 항소심에서 개정 특별법의 관련 규정들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했는데, 재판부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결정을 했다. 나는 그 헌법소원 사건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7월25일 합헌 결정을 했다(2012헌가1).
헌법재판소는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한 친일재산국가귀속법 제2조 제1호 나목 본문은 소급입법금지 원칙, 신뢰보호 원칙에 반하지 아니하고,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여 재산권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차별취급에 합리적 이유가 있어 평등 원칙에도 반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선고 이후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개정 특별법이 이 사건에 적용되는지 여부, 개정 특별법이 처분적 법률로서 위헌인지 여부 등이 추가로 다투어졌다. 또한 사패지의 범위와 친일재산 추정을 복멸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 등도 다투어졌다.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4년 2월7일 판결을 선고했다. 원고 청구를 전부 인용하고 다만 지연이자는 개정 특별법 시행 시기 이후에 기산하는 것으로 했다. 주문에서 인용된 금액은 22,824,527,663원이다.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판결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승소판결이다. 그렇지만 성공보수는? 국가에 이 정도 금액을 귀속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나는 항소심도 맡지 못했다. 친일재산위원회가 해산된 이후 이 사건들은 법무부가 주관부처로서 담당했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는 나에게 사건을 맡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항소심에서는 정부법무공단이 대리했는데 2015년 2월6일 항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었고, 후손 측이 2월16일 상고하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20-08-09
16 친일파의 재산 후손이 갖는 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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