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5

“조선자본주의공화국”(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비아북, 2017)

북한 단숨에 알기
- “조선자본주의공화국”(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비아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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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돌변했다고 한다. 미국과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를 듯이 덤비던 애가 그럴듯한 지도자처럼 행세하니 그럴 만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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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최근 북한 관련 책들이 많지는 않고 몇 있다. 차분히 공부하기는 “새로운 북한이야기”(한울, 2018)가 좋다. 북한학자들의 최신 논문들을 모아 놨다. 어떤 경로로 김정은 체제에 이르렀는지, 최근 자본주의화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거다. 같은 현상도 다르게 해석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난감하다. 이종태의 “햇볕 장마당 법치”(개마고원, 2017)도 재밌다. 조금은 북한 변화를 이해하고 보는 게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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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먼저 보라.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나서 위 두 책이나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기”(김병로, 서울대출판문화원, 2016)를 보면 맥락이 잡힐 것이다. 근데, 무슨 표지를 이래 만화책처럼 만들었다냐. 손이 안 가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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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재 외국 특파원들이 썼다. 기자들이니 글이 쉽다. 북한에 들어가 인터뷰나 취재를 하니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한국 생활을 했으니 주제가 선명하다. 북한 자본주의의 성립 요인, 경제 주체, 그 영향과 전망까지 두루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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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삼엄한 경제제재 와중에 북한 경제가 발전 중이라고? 그래.
자본주의화가 전개되면 북한 망하는 거 아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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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김정은이 돌변한 게 아니고 그럴 만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음 책들을 읽으면 김정은의 이후 행동을, 예측까지는 몰라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게다. 테레비 나와서 전문갑네 하는 언사들이 대중을 우롱한다는 사실은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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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몇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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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인들
1994,5년, 많게는 200만이 아사했다는 말까지 나도는 대기근이 북한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북한 당국은 더 이상 배급을 할 수 없게 됐다. 6% 정도 말고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자력갱생을 해야만 했다. 어디서, 어떻게? 그 해법이 ‘장마당’이었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식량과 바꿀 게 있으면 들고 장터로 나가야만 했다. 대학교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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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이 끊기면서 계획경제도 무너졌다.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 천양지차다. 2013년, 공식 지정 환율이 1달러 96원인데 실제 환율은 약 8,000원에 이르렀다. 공무원 월급은 1천원에서 많게는 6천원이다. 월 1달러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셈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뭐든지 시장에 내다 팔아야한다. 당국도 채마밭에서 재배한 채소류는 물론, 공장 물건들도 세금 떼고 팔 수 있게 해줬다. 공식 시장을 개설하고 자릿세 받고 장사를 하도록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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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자칫 동구권처럼 무너질까 싶어 2009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에서 0을 두 개 없애는 식이었다. 주민 한 사람 당 최대 10만원만 환전한단다. 못 바꾸면 몽땅 털리는 거다. 원성이 자자하니 현금 15만원, 예금 30만원으로 늘렸지만 ‘돈주’들은 집단패닉에 빠졌다.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이때 못 쓰는 구권을 쌓아 놓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한다. 상상도 못할 저항이 일어난 거다. 그 화폐에 김일성 얼굴이 들었으니. 이 일이 있고는 주민들이 원화 대신 위안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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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도 못 하고 월급도 못 주고 강도짓도 못하게 된 당국이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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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들
‘아줌마’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유일하게 공식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 이전에는 다소곳이 집구석에 처박혀야했던 여성들이 시장에서 맹활약을 펼치게 됐다. 집에 있는 물건이나 생산물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산물이나 두만강 건너온 중국 물건까지 받아다 파는 보부상 구실을 하게 됐다. 경제력을 갖게 되니 전통적인 부부 역학관계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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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에서 부를 축적한 ‘돈주’들이 있다. 물론 이들이 돈을 벌게 된 데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바로 관료들이다. 관료와 돈주가 결탁하여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민관자본주의’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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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산하기관들은 직원들을 먹여살려야한다. 월급이 말그대로 담뱃값이다. 몇가지 해결책이 있으니, 직원들 따로 돈벌이하도록 해주든가 산하 공장이나 농장에서 생산한 것을 시장에 내다팔거나 아예 돈주 끼고 사기업을 만들든가. 이 모든 방법을 두루 사용한다. 정부기관들이 제 식구 먹여살리려고 장터로 뛰쳐나와 경쟁을 벌인다. 장마당에 나오는 상품의 20%가 이렇게 나온 북한산이다. 나머지는 중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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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지도층도 거든다. 기원은 1974년에 김정일이 만든 39호실이다. 장성택을 앞세워 무지막지한 외화벌이를 해댔고, 번 돈으로 주택, 고가 시계, 자동차 같은 걸 부하들에게 나눠주어 충성경쟁을 시켰다. 본격적인 시장경제가 도입되자 장성택은 손 안 대는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빨아들였다. 와중에 조직지도부에 찍혀 제거된 것이다. 고위 관료들은 돈주를 끼고 공장을 만들고 기업도 만든다. 고위층은 뇌물 받아 좋고 돈주는 돈 벌어 좋다. 이왕이면 제 친인척이 돈주 되는 게 낫다. 김정은부터가 이렇게 돈을 번다. ‘적당히’ 부패하도록 내버려두면서 충성을 받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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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가 “햇볕 장마당 법치”에서 말하는 부동산 붐은 군부가 독점한다. 그들에게는 인당 10년씩 공짜로 착취할 무궁무진한 노동력이 있다. 심지어 밥도 알아서 해결하라면서 군인들을 건설현장으로 내몬다. ‘괴뢰도당’ 쳐부술 훈련 대신 공사판 노가다 노릇을 하는 것이다. 무한대의 노동력 착취로 군부는 무한대로 살찌고 있다. 지 새끼들은 입영 날 한 번, 제대 날 한 번 코빼기 비추게 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재일동포’들이 집중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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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에서 1만에 불과한 화교들도 만만찮다. 평양 거지로 유명하던 그들 팔자가 편 것은 80년대 중국 개방부터다. 중국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국 무역을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 대기근 때 중국 식량을 부지런히 퍼나른 것도 이들이다. 부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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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장마당에는 없는 게 없다. 돈만 있으면 구하지 못할 게 없다. 평양 시내에는 외제차들이 돌아다닌다. 흥청망청 소비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망할 나라라는 상상 자체가 안 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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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4백만 개 개통됐다 한다. 물론 와이파이 기능도 없고 당근 인터넷도 안 되지만 폼으로라도 들고 다닌단다. 이전에는 DVD로 한국 방송을 봤다면, 이제는 USB다. 들킬 위험도 대폭 줄었다. 한국 드라마, 가요 들이 널리 유통된다. 평양 젊은이들은 영화 “친구” 흉내내는 게 유행일 정도였단다. 들키면 잡혀가거나 뇌물 바쳐야 풀려나는 이런 위험한 짓을 왜 할까? 북한 건 재미가 없는데 남한 건 재밌어서다. 남북한 관계나 북미관계 등 중요한 정보는 한국 라디오방송에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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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빈부격차가 생겼다. 평양에 산다고 다 부자가 아니다. 수십만의 극빈층이 있다. 중심과 지방 간, 돈주와 일반 주민 간, 핵심-기본 군중과 복잡 군중 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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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한 함경북도와 양강도가 급속도로 바뀌는 중이다. 여기는 중국과 통화를 할 수 있어서 탈북자들 송금은 물론 통화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브로커들 천지다. 송금액의 30%를 중계료로 뗀다니 어마어마한 장사다. 두만강 좁은 데는 코앞이 중국이라 넘나들기도 좋다. 나선특구도 있지만, 청진이 그렇게 많이 바뀌었단다. 평양 유행도 다 청진을 거친다. 함경도 사람들은 평양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기근 때 제일 먼저 내팽개친 데고 김정일이 함경도를 그렇게 싫어했단다. 죄수들 유형지이기도 했다니 이건 뭐 조선시대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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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까?
1. 전쟁? 택도 없는 소리다. 북한은 전쟁을 치를 동기도 능력도 없다. 봐서 알겠지만 지금 김정은을 비롯한 고위직들은 배불리면서 떵떵거리고, 군부도 마찬가지다. 군바리들 뼈골 빨아서 살찌는 놈들이 무슨 전쟁? 그럴수록 핵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책도 그런 시각이다. 달리 볼 수도 있다. 체제 유지만 된다면 핵을 포기하고 중국식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본다. 적어도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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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 제재 효과? 없다. 대기근을 겪으면서도 버텼다. 오히려 그게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공식적으로 아무리 제재해봤자 두만강을 넘나드는 무수한 물자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제재 기간 동안 오히려 더 성장했다. 제재의 효과라면 북한 경제가 완전히 중국화되는 것이다. 이미 무역의 거의 전부를 중국이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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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본주의화로 내부 분열? 난망하다. 지금 자본주의화는 아래와 위가 호응하는 꼴이다. ‘돈주’들은 고위층과 결탁하여 부를 축적하고, 고위층과 혼인관계를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특권층들은 제가 누리는 혜택을 포기할 의사가 전무하다. 강원도 등 소외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순진한 충성파들이다. 죽어서나 나올 수 있는, 게다가 연좌로 3대가 갇히는 정치범수용소는 강력히 작동 중이다. 중앙에 반감을 갖는 지역은 두만강 접경인 함경도와 양강도다. 탈북자도 가장 많다. 그러나 시장화로 혜택도 가장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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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이 망한다면 그 유일한 진원은 북한 수뇌부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숨은 수뇌부를 ‘조직지도부’로 지목한다. 3,4백만 당원 파일을 지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곳, 그러나 수뇌들끼리는 경쟁하는 곳. 이들이 김정은 중심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 맺고 전국을 지배한다는 거다. 리제강, 리영호, 장성택 등 숙청된 자들 모두가 조직지도부 핵심이었다. 만약 이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김정은이 제거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장성택 처형 때 김정은은 백두산 자락 삼지연에 (피신) 가 있었다. 그럴 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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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길다. 암튼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금년 초에 중앙일보가 보도하기를 태양절 배급이 형편 없다면서 북한이 어렵다고 했다. 애쓴다 싶었다. 근데 댓글들 보면 그 말을 믿는다. 경제제재로 망할 줄 안다. 아주 거지새끼들로 안다. 거기도 비비크림 바르고 쌍꺼풀 수술하고 음주가무 즐기고(노인네들은 뽕짝을 좋아한단다) 입시공부에 목매고 출세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 사는 동네란 걸 모른다. 노동시간은 한국보다 짧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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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북한 자본주의가 이종태 기자 바람처럼 법제도 도입으로 더 잘 되기를 바란다. 통일은 말고 그저 묘향산 갈 수 있기 바란다.
Paul Ma, Hyuk Bom Kwon and 8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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