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5

(전후 70 년) 일본이 자랑할만한 힘: 전후 일본을 연구하는 미국의 역사 학자 존 다와 씨

[일본인이 일본이 자랑스러워 지는 것] [한국인이 일본을 좋아하게 되는 것] 이 둘이 같아 지는 것은 무엇일까
- 역사 학자 죤 다와가 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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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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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 년) 일본이 자랑할만한 힘: 전후 일본을 연구하는 미국의 역사 학자 존 다와 씨
2015 년 8 월 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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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는 대답이 아니다. 군사야 말로 문제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 増池 히로코 씨 촬영
사진 · 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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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쟁이 끝나고 70 년, 일본은 설 장소를 잃고,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어떻게 과거를 받아 들여야 할까.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무슨 일까. 명저 「패배를 안아 '에서 패전 직후의 일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 한 미국의 역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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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70 년을 되돌아보고, 일본이 이룬 것을 평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전 외무성 고관에서"일본은 소프트 파워를 중시한다 "고 들었을 수 있습니다. 일본 차, 일본, 만화 나 애니메이션, 대중 문화. 세계가 찬양하는 것은 확실히 많다. 그러나 예를 들어 헬로 키티가 외교에 힘이 될까 말하면 다른 것입니다. 전세계가 알고있는 일본의 진정한 소프트 파워는 현 헌법 하에서 반 군사적 정책을 지켜 온 것입니다. "
"1946 년에 일본 국 헌법의 초안을 만든 것은 미국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헌법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인이 반 군사의 이념을 존중 해 왔기 때문이고 결코 미국의 의도가 아니었다 했다. 이것은 훌륭한 소프트 파워입니다. 바꾸고 싶은 거라면 바뀐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떼 밀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헌법은 일본을 어떤 나라와도 다른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

- 그 이념은 왜 어디서 생긴 것일까 요.

"일본의 소프트 파워, 반 군사의 정신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국민의 측면에서 태어나 자란 것입니다. 패전 직후에는 매우 어려운 시대 였지만, 많은 유심와 근원적 인 물음이 있었습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말은 지쳐 메마른 많은 일본인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가졌다. 이것은 전쟁에 이긴 미국이 가질 수 없었던 경험이다 "
"폭 넓은 민중에 의한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은 고도 성장을 거쳐도 계속되었습니다. 패전 직후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시기는 60 년대 시민 운동의 고조한 것입니다. 반 공해 운동이나 베트남 반전, 오키나와 반환 등이시기 일본 국민은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손으로 잡고 잡고 목소리를 높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들도 발언을 시작해 전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 정치는 무엇을 한 것입니다.

"내 첫 저서는 요시다 시게루 수상에 대한 것이지만, 그의 존재는 컸다. 한국 전쟁 시절 국무 장관이 될 존 덜레스는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왔습니다. 요시다 총리는 이렇게 응수했다. 여성들이 반드시 반대하기 때문에 개헌은 불가능하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것은 여러분입니다, 라고 "
"그 결단은 매우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개헌에 발을 디디면, 미국은 반드시 일본에게 한반도에 파병을 요구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종전의 5 년 후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 가서 싸울 일이 있으면 국가의 파멸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그 결정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헌법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한반도와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지 않고 끝났다. 만약 9 조가 없으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에 참가했다 것이다. 미국의 전쟁에 휘말려 일본이 해외 파병하는 사태를 헌법이 막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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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부가 추진하고있는 안보 법제에서 무엇이 바뀐다고 생각 하는가?

"일본의 소프트 파워가 시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발을 디뎌 일본을 '보통 국가'로한다는 것이 보수 정치인들의 생각입니다 만, 그 '보통'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내게는 모르겠습니다. 국제 평화 유지에 공헌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에있는 것은 미군과의 새로운 협력일 것입니다. 미국은 군사 정책이 압도적 인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특수한 국가 이고,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군대와 가깝게 연결하는 것이 과연 평범한 것입니까 "

- 전후 일본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를 축으로 해 왔습니다.

"일본의 외교 국방 정책을 알고 싶다면, 도쿄 아니라 워싱턴을 보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환 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TPP)에의 참여 역시 그렇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AIIB) 회원에 대한 판단도 그렇다. 핵 전략을 포함하여 미국의 정책을 아무거나 지지하는 것이 일본 정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후 일본의 모습은 이른바 '종속적 인 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하고 있지만, 결코 미국과 대등 없다 "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아베 신조 총리가 자주 인용내는 할아버지의 키시 노부스케 총리가 떠 오릅니다. 키시 총리는 확실히 유능한 정치인이있었습니다 만, 종속적 인 미일 관계를 고정화하기 토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마찬가지로, 손자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안보 정책과 헌법 개정에 의해 일본이 대미 자립을 높이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반대로 점점 일본은 미국에 종속된다. 그 의미에서 아베 총리을 민족주의라고 부르기에는 모순을 느낍니다 "

- 현재 아시아 정세를 보면, 미군과의 새로운 협력이 불가결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의 행동에 긴장이 고조되고있는 지금 아시아에서의 안보 정책은 확실히 난제입니다. 민주당의 하 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 공동체'구상을 주창했지만, 거기에 알 맞는 역량은 없이 미국에 의해 완전히 부수어 졌다 "
"그렇다고 미군과 일체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도 미군이 우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 근해를 포함한 모든 연안 해역을 미국이 관리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미국 방위라고 부르지만, 중국은 도발로 간주한다. 미중의 파워 게임에 일본이 말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일본의 소프트 파워에 의해 해결책을 찾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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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적으로 강경 자세를지지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의 융성은 세계적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지,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배외주의적인 사상이 만연 우파 정치의 출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로벌화에 따른 격차가 긴장 과 불안정을 낳고, 혼란과 불안이 펼쳐진다. 그런 때, 다른 나라, 다른 종교, 다른 집단에 비해 자신이 속한 국가 나 모임 이야말로 뛰어나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생각은 마음의 평온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어떤 목소리를 더욱 확산하고 전파하는데, 이는 20 년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
"북한과 중국은 위협처럼 보입니다 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민족주의의 사슬입니다. 국내의 움직임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긴장을 높힘니다. 일본은 꼭 이 열을 식혀 주었으면 합니다 "

- 그럼, 일본의 소프트 파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에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더욱 헌법이 짜부러 트러 질 뻔 했습니다 이제 과거처럼 국민들로부터 큰 목소리가 생길 지의 여부가 문제 이지요. 지금의 정책에 국민들은 의문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왜곡 해석하고. 헌법 위반에 발을 드려 놓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잠깐만 요"라고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전후 일본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고 싶은 것은, 아래에서 솟구친 움직임입니다. 국민은 70 년의 긴 세월에 걸쳐 평화와 민주주의의 이념을 지켜왔다. 이 것이야 말로 일본인에게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전쟁과 전쟁의 일본의 자랑을 중시하고, 역사 인식을 바꾸려하고 있습니다 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
"정말 위대한 나라는 자신들의 과거도 비판해야 합니다. 일본도 그리고 미국도 전쟁 중에 많은 수치스러운 행위를 했으며, 그것은 스스로 비판해야 한다. 향토의 사랑을 영어로 애국주의라고 합니다. 소심에서 관용 민족주의와는 달리, 이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모든 국가는 칭찬하고 존경해야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국을 사랑 하니까 이야말로 사람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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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ower 38 년생.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명예 교수. 저작권에 "요시다 시게루과 그 시대"쀼리차 수상 "패배를 안아」등.


■ 취재를 마치고

매우 중요한 것인데 뜻밖에 본인은 모르고 있다. 밖에서 말해, 둘도 없음을 알게 된다. 자주 묻는 것이다. 패전 후 일본이 손에 넣은 것이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다 라는 지적에 헉 했다. 그런가 자신들의 손끝을 바라 보면 좋겠어요.

전후의 일본인은 입장을 불문하고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기가 서투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발하거나 반대로 질주하거나 어느 나라에 의존하고. 애국이라는 말에 솔직하지 않는다. 70 년 전, 형용하기 어려운 만큼 비참하고 참혹한 패배를 경험 한 국가에 대한 신뢰를 한 번 완전히 잃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전후 70 년의 여름이 숙제에 마주 기회일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추상적 인 것이 아니라 전후를 살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정 이야말로 따라 서 발판이있다.

(뉴욕 지국장 · 마나베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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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後70年)日本の誇るべき力 戦後日本を研究する米国の歴史家、ジョン・ダワーさん
2015年8月4日05時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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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は答えではない。軍事こそが問題なのです」=米マサチューセッツ州ケンブリッジ、増池宏子氏撮影
写真・図版
 あの戦争が終わって70年、日本は立つべき場所を見失いかけているようにみえる。私たちは何を誇りにし、どのように過去を受け止めるべきなのか。国を愛するとは、どういうことなのか。名著「敗北を抱きしめて」で、敗戦直後の日本人の姿を活写した米国の歴史家の声に、耳をすませてみる。
 ――戦後70年を振り返り、日本が成したこと、評価できることは何だと考えますか。
 「以前、外務省の高官から『日本はソフトパワーを重視する』と聞かされたことがあります。日本車、和食、漫画やアニメ、ポップカルチャー。世界が賛美するものは確かに多い。しかし、例えばハローキティが外交上の力になるかといえば、違うでしょう。世界中が知っている日本の本当のソフトパワーは、現憲法下で反軍事的な政策を守り続けてきたことです」
 「1946年に日本国憲法の草案を作ったのは米国です。しかし、現在まで憲法が変えられなかったのは、日本人が反軍事の理念を尊重してきたからであり、決して米国の意向ではなかった。これは称賛に値するソフトパワーです。変えたいというのなら変えられたのだから、米国に押しつけられたと考えるのは間違っている。憲法は、日本をどんな国とも違う国にしました」
 ――その理念は、なぜ、どこから生じたのでしょうか。
 「日本のソフトパワー、反軍事の精神は、政府の主導ではなく、国民の側から生まれ育ったものです。敗戦直後は極めて苦しい時代でしたが、多くの理想主義と根源的な問いがありました。平和と民主主義という言葉は、疲れ果て、困窮した多くの日本人にとって、とても大きな意味を持った。これは、戦争に勝った米国が持ち得なかった経験です」
 「幅広い民衆による平和と民主主義への共感は、高度成長を経ても続きました。敗戦直後に加えて、もう一つの重要な時期は、60年代の市民運動の盛り上がりでしょう。反公害運動やベトナム反戦、沖縄返還など、この時期、日本国民は民主主義を自らの手につかみとり、声を上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ました。女性たちも発言を始め、戦後の歴史で大切な役割を果たしていきます」
 ――政治は何をしたでしょう。
 「私の最初の著書は吉田茂首相についてのものですが、彼の存在は大きかった。朝鮮戦争の頃、国務長官になるジョン・ダレスは、憲法改正を要求してきました。吉田首相は、こう言い返した。女性たちが必ず反対するから、改憲は不可能だ。女性に投票権を与えたのはあなた方ですよ、と」
 「その決断はたいへん賢明だったと思います。もし改憲に踏み込めば、米国はきっと日本に朝鮮半島への派兵を求めるだろうと彼は思った。終戦のわずか5年後に、日本人が海外に出て行って戦うようなことがあれば、国の破滅につながると考えたのです」
 「その決断の後、今にいたるまで憲法は変えられていません。結果、朝鮮半島やベトナムに部隊を送らずに済んだ。もし9条がなければ、イラクやアフガニスタンでも実戦に参加していたでしょう。米国の戦争に巻き込まれ、日本が海外派兵するような事態を憲法が防ぎ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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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政権が進める安保法制で、何が変わると思いますか。
 「日本のソフトパワーが試練にさらされています。集団的自衛権の行使に踏み込み、日本を『普通の国』にするというのが保守政治家らの考えですが、普通とは何を指すのか、私には分かりません。国際的な平和維持に貢献するといいつつ、念頭にあるのは米軍とのさらなる協力でしょう。米国は軍事政策が圧倒的な影響力を持っている特殊な国であり、核兵器も持っている。そんな国の軍隊と密接につながるのが、果たして普通なのでしょうか」
 ――戦後の日本外交は、米国との関係を軸にしてきました。
 「日本の外交防衛政策を知りたければ、東京でなくワシントンを見ろとよく言われます。環太平洋経済連携協定(TPP)への参加しかり、アジアインフラ投資銀行(AIIB)加盟についての判断しかり。核戦略を含め、米国の政策を何でも支持するのが日本政府です。その意味で、戦後日本の姿は、いわば『従属的独立』だと考えます。独立はしているものの、決して米国と対等ではない」
 「過去を振り返れば、安倍晋三首相がよく引き合いに出す、祖父の岸信介首相が思い浮かびます。岸首相は確かに有能な政治家ではありましたが、従属的な日米関係を固定化する土台を作った人だと私は考えています」
 「同様に、孫の安倍首相が進める安全保障政策や憲法改正によって、日本が対米自立を高めることはないと私は思います。逆に、ますます日本は米国に従属するようになる。その意味で、安倍首相をナショナリストと呼ぶことには矛盾を感じます」
 ――現在のアジア情勢を見れば、米軍とのさらなる協力が不可欠だという意見もあります。
 「尖閣諸島や南シナ海をめぐる中国の振る舞いに緊張が高まっている今、アジアにおける安全保障政策は確かに難題です。民主党の鳩山政権は『東アジア共同体』構想を唱えましたが、それに見合う力量はなく、米国によって完全につぶされました」
 「だからといって、米軍と一体化するのが最善とは思えません。冷戦後の米国は、世界のどんな地域でも米軍が優位に立ち続けるべきだと考えています。中国近海を含んだすべての沿岸海域を米国が管理するという考えです。これを米国は防衛と呼び、中国は挑発と見なす。米中のパワーゲームに日本が取り込まれています。ここから抜け出すのは難しいですが、日本のソフトパワーによって解決策を見いだすべ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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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対外的な強硬姿勢を支持する人も増えています。
 「ナショナリズムの隆盛は世界的な文脈で考えるべきで、日本だけの問題ではありません。今、世界のいたるところで排外主義的な思想がはびこり、右派政治の出現とつながっています。グローバル化による格差が緊張と不安定を生み、混乱と不安が広がる。そんな時、他国、他宗教、他集団と比べて、自分が属する国や集まりこそが優れており、絶対に正しいのだという考えは、心の平穏をもたらします。そしてソーシャルメディアが一部の声をさらに増殖して広める。これは、20年前にはなかった現象です」
 「北朝鮮や中国は脅威のように映りますが、本当に恐ろしいのはナショナリズムの連鎖です。国内の動きが他国を刺激し、さらに緊張を高める。日本にはぜひ、この熱を冷まして欲しいのです」
 ――では、日本のソフトパワーで何ができるでしょうか。
 「福島で原発事故が起き、さらに憲法がひねり潰されそうになっている今、過去のように国民から大きな声が上がるかどうかが問題でしょう。今の政策に国民は疑問を感じています。安倍首相は自らの信念を貫くために法治主義をゆがめ、解釈によって憲法違反に踏み込もうとしている。そこで、多くの国民が『ちょっと待って』と言い始めたように見えます」
 「繰り返しますが、戦後日本で私が最も称賛したいのは、下から湧き上がった動きです。国民は70年の長きにわたって、平和と民主主義の理念を守り続けてきた。このことこそ、日本人は誇るべきでしょう。一部の人たちは戦前や戦時の日本の誇りを重視し、歴史認識を変えようとしていますが、それは間違っている」
 「本当に偉大な国は、自分たちの過去も批判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日本も、そして米国も、戦争中に多くの恥ずべき行為をしており、それは自ら批判しなければならない。郷土を愛することを英語でパトリオティズムと言います。狭量で不寛容なナショナリズムとは異なり、これは正当な思いです。すべての国は称賛され、尊敬されるべきものを持っている。そして自国を愛するからこそ、人々は過去を反省し、変革を起こそうとす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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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Dower 38年生まれ。マサチューセッツ工科大学名誉教授。著作に「吉田茂とその時代」、ピュリツァー賞受賞の「敗北を抱きしめて」など。
 ■取材を終えて
 とても大切なものなのに、思いのほか、本人は気づいていない。外から言われて、かけがえのなさを知る。よくあることだ。敗戦後に日本が手にしたものこそ世界に誇りうる、という指摘にはっとした。そうか、自分たちの手元を見つめればいいんだ。
 戦後の日本人は立場を問わず、自らの国を愛することに不器用になっていたのだろう。反発したり、逆に突っ走ったり、どこかの国に依存したり。愛国という言葉に素直になれない。70年前、形容しがたいほど惨めで痛ましい敗戦を経験し、国家への信頼を一度、完全に失ったのだから、それも当然なのだが。
 戦後70年の夏は、この宿題に向き合う好機かもしれない。国家という抽象的なものではなく、戦後を生き抜いた一人ひとりの道程にこそ、よって立つ足場がある。
 (ニューヨーク支局長・真鍋弘樹)
 ◇日本の「戦後70年」をテーマに3人の識者にインタビューをしました。明日は日本近現代史が専門の加藤陽子東大教授に、「あの戦争」とは何だったのかを聞く予定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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