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활동
탐루 (探淚) -김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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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루저자김선주출판한울발매2005.05.15.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친구가 '김낙중을 아냐'고 물어보기에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된 책! 김낙중의 삶은 한반도, 그리고 냉전의 비극을 담아낸 역사 그 자체다... 그분(그리고 가족!!!)께서 겪으신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남한)이 그랬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이 변혁(사실 변혁이라고조차 부를 수 있을지 모를)에서 이승만 정부의 붕괴에 청년학도들의 순결한 피가 거룩한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하야를 죽음 앞에서 그가 굴복한 것이라고 보기라는, 차라리 미국의 강경한 압력과 국민의 요구 앞에서의 굴복이라고, 아니 미국인을 상전으로 아는 그에게는 차라리 상전의 명령 앞에서의 굴복에 불과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떠한 역대 무자비한 독재자치고 백 명이나 이백 명의 희생 때문에 무릎을 꿇는 독재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 데모에 대한 군부의 동정(同情)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가지나 사병들의 동정이지 군 상층부의 압력 때문에 그가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동기는 참으로 주체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초보적 민주주의적 자유의 보장을 위하여 투쟁해야 되는 것은 이제부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160-161쪽, 5. 제2차 간첩단 사건
아버지가 대전교도소 생활에서 가장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은 세상 소식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대는 TV는 물론이고 시사정보가 실려있는 신문이나 잡지도 일절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국사범들은 일반 재소자들이 무심코 버리는 운동화 속의 신문지 조각이라도 주워 읽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교도관에게 걸리면 출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구타와 고문이 자행되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시국사범들은 일체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서도, 알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곳의 법이고 진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시국사범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바깥세상 소식을 들으려 애썼다. 세상의 모순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그들의 죄명이었고 역사의 변화나 사회의 정세가 자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보니 결코 세상 소식에 무심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298쪽, 8. 봄을 기다리며
삼 남매가 어느 정도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통금시간이 없었고, 어디서 외박을 하더라도 우리의 말을 무조건 믿어주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는지, 어던 서클에 가입하는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이성을 사귀는 데에도 규제가 없었고, 결혼할 사람에 대해서도 학벌, 국적, 지역, 경제력 도는 외모에 대해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거나 "이런 사람이 배우자로는 적격이다"라는 부모로서 가질 만한 욕심을 내비친 적이 없다.
323쪽, 8. 봄을 기다리며
"정말 미국에 가서 아빠를 만났단 말이야. 기차를 타고 가서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는 유리창 너머로 파란 옷을 입은 아버지를 만나고 왔다니까"라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이 참말임을 좀 입증해 달라는 듯 어머니를 불렀다. 그 후 그 일이 어떻게 수습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날 어머니는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와 오빠 역시 내내 우울했다.
326쪽, 8. 봄을 기다리며
아버지는 이미 <사회과학원론>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가지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회가 필연적으로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다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 결국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 발전한다는 '사회발전단계설'을 신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또한 북측을 결코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안보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강력한 집단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시키려는 미국의 군수산업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나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사회과학원론>을 통해서,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최대한 많은 구성원들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민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 바가 있었다. 또한 배타적 민족주의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378-379쪽, 9. 다시 등불을 밝히다
"민주화란 한 국가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국민 개개인의 의사를 투입해서 이루어지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고, '민족자주화'란 민족의 운명이 민족 구성원들 자신의 집단적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 식민지나 종속국가의 상태에 있을 경우에는 비록 외형상 민주국가의 선거제도나 의회 제도를 갖추었다고 치더라도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런 민주화는 '인민적 자치의 원칙'을 실현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어떤 민족 국가가 비록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국가 의사 결정에 투입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 역시 '인민적 장치의 원칙'이 실현된 상태가 아니다."
379-380쪽, 9. 다시 등불을 밝히다
그러나 모순투성이 세상은 성큼 변하는 법이 없다. 자신은 소중한 '무엇'을 과감히 단념했는데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구속되거나 제적되었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가 불구자가 되었다고 부정선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가 온몸에 기름을 뿌리고 분신을 한 다음 날에도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고 평범한 일상은 시작되었다. 그가 일자리를 잃어 당장 먹고사는 문제마저 고민하게 되었다고 노동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청춘을 민주주의의 제물로 삼았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며, 억울한 고문과 죽음을 당했다고 천지가 개벽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더러는 사회적인 비난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선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몽상가'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하는 가족까지 고통을 받으며, 고통받는 가족들도 그를 원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
그러나 세상에는 누적되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 있다. 당장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진가를 보여주는 것. 아무 의미 없는 몸짓 같지만 그 몸짓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의미가 되는 것. 조금씩 조금씩 쌓인 그것은 절대로 움직인지 않을 것 같았던 무게의 추를 어느 순간에 덜컥 움직인다. 그렇게 무게 중심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소유'를 버린 사람들은 그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확신했던 것이리라.
552-553쪽, 13.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김낙중. 그는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고,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미래지향적이지만 과거에 얽매여 고초를 겪었던 그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김낙중 #평화통일 #김선주 #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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