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1h ·
원한(怨恨)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원한(怨恨)을 풀어야 한다.
개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집단의 경우는 더 심각할 수가 있다.
그것을 푸는 방식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 첫째는 복수로 푸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 둘째는 사랑과 자비로 푸는 것이다.‘원수를 사랑하라’다. 예수와 석가가 권하는 방식이다.
- 셋째는 현재의 정의를 실현함으로서 푸는 방식이다.공자는 이직보원(以直報怨)을 권한다. 원한은 바름으로 풀라는 것이다.
첫째 방식은 원초적이지만. 결코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복수(復讐)혈전(血戰)의 악순환 속으로 가기 쉽다. 불가(佛家)의 표현으로 하면 업(業)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오히려 업(業)을 더 짓는다.
그래서 무협드라마에서조차 이렇게 결말을 내지 않는다.
들째 방식은 인간 정신의 최고의 진화를 나타내지만, 그것을 아직 보편화하기엔 비현실적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인의 가르침을 교조(敎條)로 하는 종교가 어떻게 원수와의 혈전(血戰)을 진행해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셋째 방식이 현실적으로 인간 정신과 사회제도의 진화에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정상화(正常化)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로 이어지는 것을 단절하고, 회복할 것은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이 방식이 우리가 과거사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동체의 대표적 정서를 한(恨)으로 말할만큼 수많은 시련과 굴욕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나라가 있겠는가?
이제 이런 정서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그럴만한 객관적 조건들도 성숙하지 않았는가?
오래된 관념과 정서의 족쇄에서 우리 정신을 해방시켰으면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옮기려 하는 것은 죄업을 짓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한다.
대화해(大和解)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선언하자.
그것을 선언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을 해보자.
그 바탕은 현재에서의 정의 실현, 즉 이직보원(以直報怨)이 아닐까 한다.
현재를 바르게하는 것으로 원한을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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