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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9h ·
[중국통찰] (64) 마윈 vs. 나훈아
달랐다. 평소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굳어있었다. 뭔가 작심한 듯했다. 비장한 표정..지난 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외이탄 금융 서밋'에 나온 마윈이 그랬다.
그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유튜브 속 스피치의 내용은 이랬다.
"금융 시스템의 위기라고? 택도없다. 중국에는 금융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무슨 '시스템 위기'를 말하는가?
대형 은행들은 '담보 사상'에 잡혀있다. 담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데이터가 아닌 사람 관계에 따라 대출을 해준다. 돈이 필요없는 기업에게도 돈을 빌려준다. 결국 그 기업을 망가뜨린다.
혁신을 하려해도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이것하지 마라, 저것하지 마라'는 문건만 양산된다. 사무실 탁상공론이 실천을 제약한다. 어제의 기준으로 미래를 관리한다. 기차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비행기를 관리하려 든다. 이래서야 어찌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겠는가?"
마윈은 규제 당국을 공격했다. 대형 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혁신을 가로막는 중국 관료주의를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엔 금융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라는 말에 청중들도 놀란듯, 힘겹게 나온 박수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연설은 진행됐다.
스피치는 앤트그룹의 상장 공모가가 결정된 바로 그 이튿날 열렸다. 며 칠만 지나면 상하이와 홍콩에 역대 최대 규모의 IPO가 진행될 판이었다. 그런데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마윈은 당국에 불려들어가 '훈육'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는 IPO를 내려놔야 했다.
왜 그랬을까?
유튜브를 돌려보면서 가수 나훈아가 생각났다. 그는 지난 추석 때 KBS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KBS를 비난했다. 'KBS는 바뀌어야 한다, 바뀔 것이라'라고 일갈했다.
나훈아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KBS의 문제점을 심감했을 터다. 무엇인가 잘 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KBS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그래서 나훈아는 무대를 마련해준 KBS에 쓴소리를 했을 것이다.
마윈도 그랬다. 앤드그룹 상장과정에서 다시 확인한 관료주의, 너무 구태의연한 탁상 행정,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정부...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그는 작심하고 강단에 올랐다. 앤트그룹 상장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 꼭 해야할 말이었기에 스피치에 나섰다.
실수였다.
마윈은 나훈아와는 달랐다. 나훈아는 KBS 공격으로 '역시 가황이야~ 테스형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마윈은 심혈을 기울이던 앤트그룹 IPO을 포기해야 했다(물론 당분간이다). '사상 최대'라며 흥분하던 중국 언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돌아섰다.
마윈은 자신의 발언이 설마 IPO연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아무리 당이 강하다고 해도, 설마 세계가 주시하는 IPO를 어찌하랴...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실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여기 새장(cage)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새장 속 새는 그 안에서만 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새장이 엄청나게 크다면? 새는 마음 껏 날 수 있다. 새장이 없다고도 늘낄 것이다. 그러나 그 새는 역시 새장 속 새일 뿐이다. 무한정 날 수 없다.
중국에서 국가(당)와 기업관의 관계가 그렇다. 국가는 거대한 새장을 쳐놓고, 기업을 그 새장 속에 가둔다. "충분히 크니 니 마음껏 날 수 있을거야, 마음껏 날아봐..."
그런데 아주 잘 나는 새가 한 마리있다. 날개를 펴면 대양의 물결을 일 수 있을 만큼 크다. 그 새는 국가가 쳐놓은 새장이 점점 좁다고 느낀다. 불편하다. 새장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 거대한 새는 자신이 새장 속 새라는 것을 잠시 잊는다. 새장을 뚫고 나가고 싶다. 실제 그렇게 한다면? 국가의 응징이 있을 뿐이다. 중국의 국가는 KBS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조롱경제(鸟笼经济)'라는 게 이를 표현한 말이다. 개혁개방 초기 천윈(陳雲)이라는 원로 경제전문 정치가가 주장한 논리다. 개방을 하더라도 새장 속 새 다루듯 경제 산업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 논리 그대로다. 다만 지난 30여년의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새장이 더 커졌을 뿐이다.
마윈은 그걸 잘못 읽은 것이다. 새장을 거부하고, 뚫고 나가고 싶다고 했으니 응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린을 건드린 꼴이다. 그래서 알리바바 CEO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앤트그룹 IPO도 잠시 내려놔야 했다.
이쯤해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도대체 마윈이 뭐라고 했기에 중국 당국은 사상 최대 IPO에 태클을 걸었던 것일까?"
[중국 통찰] 다음회에서는 마윈 스피치를 풀어볼 생각이다. 꼭 중국 공부하자는 뜻만도 아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나라 금융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책 만드시는 높은 분이라면 더더욱 꼭 들어야 한다.
See you 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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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Hyun Sung
Kang Hyun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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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1h
Ricky Choi
Ricky Choi 다시 한 번 조롱경제에 대한 원칙을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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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1h
이경석
이경석 마윈 연설문은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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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1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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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한우덕 이경석 비리비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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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6m
Euihwang Park
Euihwang Park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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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3m
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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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2 November ·
[중국통찰] (63) '강국 프로젝트'
'의회 독재'를 하고 있다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에 비하면 쨉이 안된다. 중국 공산당 얘기다. 당이 곧 국가다. 당이 국가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통치한다. 견제 세력은 없다.
당의 '생각'이 곧 국정 방향이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또 움직였다. 19기 중앙위 5차 전체회의, 흔히 19기 5중전회라고 부른다. 지난달 29일 폐막과 함께 '공보(公報)'가 나왔다. 중요한 문건이다. 공산당의 '생각', 중국의 국정 방향이 담겨 있기 때이다.
필자의 눈에 여러 차례 걸린 공보 속 한 단어가 있다. '强国'이 그것이다. 읇어보면 이렇다.
문화강국, 교육강국, 인재강국, 체육강국, 과기강국, 제조강국, 질량강국, 인터넷강국, 교통강국...
"인재 강국 건설로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자"라는 식이다.
'강국'
그게 지금 중국 공산당의 생각이다. "이만큼 커졌으니, 이젠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라는 사로(思路, way of thinking)다. 트럼프와 전쟁을 치르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생각 깊숙히 파고들었을 터다.
중국 공산당에게는 두 개의 100년 목표가 있다. 공산당 설립 100년 되는 2021년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를 실현하는 게 첫번째 목표다. 공보는 2020년 첫 100년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이젠 두번째 목표를 남겨놓고 있다. 신중국 건설 100년이 되는 2049년 '부강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를 만들자는 것이다. 좀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파워가 되겠다는 목표다.
2049년은 너무 멀다. 30년이나 남았다. 그래서 기간을 반토막으로 갈랐다. 2021년부터 2035년까지 15년동안을 '기초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실현' 단계로 나눴다. 강국의 토대를 쌓는 게 이 기간의 목표다. 공보 속 그 많은 '强国'은 그 다짐이다.
어떻게?
경제 분야만 따로 본다면 자립경제 구축이다. 서방 시장에 의존하지 않아도, 서방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력갱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쌍순환(Double Circulation)', '자주창신(自主创新)'이 그 키워드다.
앞으로 15년, 그들은 어떻게 국내 시장을 키워야 할지, 어떻게 과학기술 혁신을 이뤄낼지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게 쌍순환이고, 자주창신이다.
외교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과학기술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다. 그들은 이제 모든 영역에서 '강국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다. 이번 19기5중전회 '공보'는 그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중국 공산당은 한 시기를 매듭짓고, 또다른 시기로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중국이다. 그 무서움조차 더불어민주당은 쨉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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