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7

알라딘: 해방전후사의 인식 1-6

알라딘: 해방전후사의 인식 1

해방전후사의 인식 1   
백기완,송건호,임헌영 (지은이)한길사2004-05-20



해방전후사의 인식 1

우리와 모두의 역사, 한국사 읽기! 에코백, 아크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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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한국전쟁 주간 22위, 역사 top100 20주|Sales Point :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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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668쪽148*210mm (A5)868gISBN : 978893565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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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전후사의 인식 1
 해방전후사의 인식 4 - 민중항쟁.무장투쟁.문화예술운동.한국전쟁의 해명
 해방전후사의 인식 2 -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구조의 실증적 연구
 해방전후사의 인식 3 - 정치.사회 운동의 혁명적 전개와 사상적 노선
 해방전후사의 인식 5 - 북한의 혁명전통, 인민정권의 수립과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과정
 해방전후사의 인식 6 - 남북한 해방전후사 연구의 성과와 입장에 대한 종합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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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기이면서도 1980년대 중후반까지는 현실적 제약으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해방전후의 시기를 분석한 책. 1979년 10월 첫 출간 이후 지식인과 학생층을 사이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회자되기 시작되고, 계엄령 하에서는 판금조치 되기도 했던 책이다.

백기완, 송건호를 비롯한 열두 명의 집필자들이 해방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을 추적함으로써 분단의 배경을 밝힌다.
목차
1권

1.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 /송건호
미군정의 정치사적 인식 /진덕규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 /진덕규

2.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 /오익환
일제 말 친일 군상의 실태 /임종국

3. 김구의 사상과 행동의 재조명 /백기완
이승만 노선의 재검토 /김도현
8.15를 전후한 여운형의 정치활동 /이동화

4. 해방 후 농지개혁의 전개 과정과 성격 /유인호
미군정 경제의 역사적 성격 /이종훈

5. 소설을 통해 본 해방 직후의 사회상 /염무웅
해방 후 한국 문학의 양상 /임헌영


2권

4반세기만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다시 펴내면서 /김언호
해방전후사 인식의 방향 /강만길

1. 8·15 직후 정치 지도자들의 노선비교 /김광식
박헌영과 8월테제 /김남식
제1공화국과 친일세력 /임종국

2. 남북분단의 민족경제사적 위치 /박현채
미군정하 농업과 토지개혁정책 /황한식
농지개혁 과정에 관한 실증적 연구 /장상환
9월 총파업과 노동운동의 전환 /성한표

3. 해방직후 지식인의 민족현실 인식/임헌영
해방공간의 문학 /김윤식
미군정의 교육정책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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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해방후 정치·사회운동을 보는 시각 /박현채

1. 8·15 직후 민주주의 논쟁 /여현덕
해방후 좌익운동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양동주
조선공산당과 3당 합당 /김남식
미군정기 국가기구의 형성과 성격 /안진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 1943~46 /이완범)

2. 미군정기 노동운동과 전평의 운동노선 /김태승
미군정기 농민운동과 전농의 운동노선 /박혜숙
전남지방 정치와 여순사건 /황남준

3. 미군정기의 좌우익 문학논쟁 /임헌영
미국의 문화침투와 한국교육 /한준상


4권

1.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 /정해구

2. 해방 이후 좌·우익 청년단체의 조직과 활동 /류상영
분단의 구조화 과정과 한국전쟁 /김명섭

3. 1948~50년 남한내 빨치산활동의 양상과 성격 /김남식
4·3 민중항쟁의 전개와 성격 /고창훈

4. 1948~53년 문교정책의 이념과 특성 /한준상·정미숙
해방 이후 무장투쟁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임헌영
해방 3년의 미술운동 /최열
해방 직후의 민족영화운동 /이효인

5. 해방전후사 연구 10년의 현황과 자료 /이완범


5권

1. 해방 전후 북한 현대사의 재인식 /김남식

2. 북한 지도집단과 항일무장투쟁 /이종석

3. 서북 5도 당대회의 대미인식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조직적 위상 /김주환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김용복
해방 후 북한의 인민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 /김주환

4. 해방 직후 소련의 대북한 정책 /박재권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기의 여성정책 /박현선
해방 직후 민주건설기의 북한문학 /임진영
기행·북한, 1947년 여름 /안나 루이스 스트롱


6권

서론: 해방·분단·한국전쟁의 총체적 인식 /박명림
해방 3년사의 쟁점 /이완범
해방 전후 북한현대사의 쟁점 /김명섭
한국전쟁사의 쟁점 /박명림
해방 전후 사회경제사의 쟁점 /백일
해방 직후 문학 논의의 쟁점 /신형기

<해방전후사의 인식 6>을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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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결국 8.15 직후 한반도에서 제기된 반제민족해방과 반봉건민주주의라는 해결과제는 국제노선이나 소비에트 협력이라는 외적 변수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외적 변수가 끝내 '미·소 양국이 다 같이 승인할 수 있는 형태의 정권'을 보증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원론적인 의미가 절실했던 시기였다. 그것은 매우 평범한 결론으로 유도된다. 8.15 직후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할 민주주의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고려하되 민중의 변혁열기를 자주적 방식으로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러할 때 8.15 직후 새로운 민족 국가건설의 두 가지 가능성(민중적 길과 비민중적 길)을 놓고서 이 길이 민주주의적인 길인가를 더 이상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시 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이룩되어야 할 자주적 민주국가의 건설은 우리사회의 구체성 속에서 창조되어야 할 보편적 이념의 구현인 것이다. - 3권 본문 64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백기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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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어려선 혼자 공부했다. 6.25전쟁이라는 참화에 시달리다가 느낀 바가 있어 폐허가 된 이 메마른 땅에 목숨(생명)을 심고, 사람도 푸르게 가꾸자며 한편으로는 나무심기운동, 또 한편으로는 농민운동, 빈민운동을 했다. 4.19혁명 뒤에 박정희 군사독재가 권력을 찬탈하자 박정희야말로 첫째, 용서 못할 악질 친일파 민족 반역자다. 둘째,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압살한 유신독재 민주 반역자다. 셋째, 민중의 해방통일, 정의와 인도를 가로막는 인간 반역을 저지른 3대 반역자라며 온몸으로 싸우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박정희가... 더보기
최근작 : <버선발 이야기>,<두 어른>,<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총 17종 (모두보기)
송건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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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음력 9월 27일(호적상 양력 27년 9월 27일) 충북 옥천에서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44년 한성상업학교(지금 서울 한성고)와 56년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언론계에 입문하여 대한통신사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이 되고, 언협 기관지 〈말〉을 창간하여 86년 9월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독재 종식과 헌법 개정... 더보기
최근작 : <청암 송건호>,<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해방전후사의 인식 세트 - 전6권> … 총 21종 (모두보기)
임헌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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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문학』을 통해 『장용학론』(1966)으로 문학평론가가 된 후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월간 『독서』 등 잡지사 주간을 지냈다. 유신통치 때 두 차례에 걸쳐 투옥, 석방 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년까지)를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 부소장, 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창조와 변혁』, 『민족의 상황과 문학』,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불확실 시대의 문... 더보기
수상 : 2020년 임화문학예술상, 2010년 현대불교문학상, 1996년 편운문학상
최근작 :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 총 42종 (모두보기)
Editor Blog영화 <변호인> 속 그 책을 소개합니다 l 2013-12-23
송강호 주연 영화 <변호인>이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부림사건'의 관련자들이 읽은 책도 덩달아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변호사 '송우석'이 사건을 맡으며 읽은 책들은 실제로 사회과학 독서모임에서 읽혔던 책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책과 함께, 법정에서 주요 소재로 이야기되기도 한 문제의 '불온서적'들...

출판사 소개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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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국가론>,<세잔의 사과>등 총 755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789,621점), 철학 일반 17위 (브랜드 지수 22,557점), 미술 이야기 18위 (브랜드 지수 18,65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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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문제가 한창 이슈가 되는 지금, 이제서야 읽게 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굉장히 유익하고 시야를 넓혀줍니다.  구매
pkm1277 2015-12-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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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사 역시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역사 인식을 느낄 수 있다.  구매
거북이 2011-08-0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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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  구매
sein 2011-07-0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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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자각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해 주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꼭 읽어야 될 필독서 가운데 하나다!  구매
빨간모자 2014-12-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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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1'을 읽고 새창으로 보기 구매
'해방전후사의 인식1'은 5개의 장으로 나누어 12편의 논문을 통해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이 풀어내지 못한 문제점을 꼬집고 되돌아보기 위한 문제를 재기하고 있다.

첫번째로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 지도부의 대응과 미군정의 초기 대응과 미.소간의 이해 관계에 의한 분단의 고정화를 다루면서 민중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해방이 우리 민족 지도부의 준비 미숙과 정세 파악의 한계로 말미암아 주체성을 상실하고 미군정의 주도하에 우리 민족의 기대와 희망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 점과, 미군정의 몰이해로 말미암은 일제 잔존 세력의 재등장으로 친일 청산이라는 식민 역사의 정리 작업이 불가능해지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정치사에서의 몇차례에 걸친 일제 청산에 대한 시도를 주도한 정치가들의 시각에 대한 이론적 밑바탕이며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미군정에 대한 시각도 해방군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이라는 부분보다는 일본에 대한 정세 판단 미비로 인해 전개되는 소련과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한국 분단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던 분단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하지만 일제하의 우리 민족의 현실이 비록 외세의 도움이 없이는 독립의 실현이 불가능하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민족의 자주성은 민족 스스로가 지켜낼 때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해방의 주체 세력은 미국이나 소련이 아닌 우리 민족이 되어야 했으나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볼 때 우리 정부가 아닌 미국 정부로서 당연시 미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국의 정세가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통해서도 미국과 소련의 한국에 대한 처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미국은 국제적인 협의를 통해 한국의 신생 독립국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시도한 반면, 소련은 진주와 동시에 공산화의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김일성을 내세워 공산당의 집권 시나리오를 진행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미국이 한국의 해방직후 지도부를 인정함에 있어서 시행착오로 인해 지연됨으로써 북한의 정권 수립을 방조한 책임이 없지는 않지만, 이 역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이 결여된 해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무리가 있지 않은 가하는 생각이다.

두번째는 반민특위로 대변되는 친일 청산의 와해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 역시 앞서 미군정의 해방 직후 통치 방침과 관련되어 미국의 한반도 정세와 미군정의 초기 행정 구조의 확립을 위한 일제 행정 기관의 재활용으로 인한 친일 세력의 재성장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은 친일 세력의 정치 세력화를 주 요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일제 당시 친일 군상의 실태를 예로 들어 친일 세력의 청산이 단순히 일제에 적을 둔 기득권에 대한 대항이 아니라 일제 식민 정책의 선봉으로 민족의 식민화에 앞장 선 잘못된 과오를 가려서 깨끗하게 정리함으로 해방을 맞이한 새로운 출발을 하자라는 부연적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며, 과거의 친일 청산의 미완으로 인해 오늘날 일본과의 외교에 국내 정치인들의 상충된 이해 관계가 과거에 얽매이는 듯하여 안타깝다. 하지만 친일 청산은 어디까지나 민족사의 올바른 정리라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해방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와서 새삼 억압과 피억압의 이해에 얽힌 보복적 한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세대는 친일 가해자와 피해자, 이해 당사자가 아닌 후손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피지배하의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는 것이 또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당시 친일 행적의 올바른 역사적 기술만으로도 당사자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족하리라 보며, 독립 역사에 대한 인식의 재 조명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친일에 의한 수탈이 확인된 재산의 제 자리 찾기 정도에서 마무리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수탈 부분은 사유재산 보호가 보장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이 단계에서 용서와 화해가 친일 청산이후의 역사적 기록으로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번째로 독립의 주체 세력으로 대표되는 김구, 이승만, 여운형의 국제 정세 인식과 행보 등을 다루고 있는데 김구 선생은 의기를 높이 사나 당시 국제 정세의 판단 미비로 인한 아쉬움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국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야심만을 앞세워 친일 세력과도 손을 잡았으며 결정적으로 분단을 조장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너무 편향적인 평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거북함이 느껴지며 이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다른 시각의 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여운형 선생에 대한 평가가 두드러지는데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제시하는 지도자 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는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나 역시 어렴풋하게 여운형이라는 인물은 공산주의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역사에 대한 내 자신의 몰인식이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1945'라는 TV드라마에서도 이와 같은 시각이 다뤄지고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아쉽게도 현재는 6.25발발 상황이 다뤄지고 있어서 여운형 선생에 대한 드라마적 인식을 더보지 못한다. 하지만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기초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네번째로 다루고 있는 것은 농지 개혁인데 해방전후사에서 왜 하필 농지 개혁이 이렇듯 한 장을 장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잠시 스쳐간 장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네 전통적인 민족사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땅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침탈이 곧 일제하의 대표적인 우리민족의 수탈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역시 왠지 모르게 북한의 농지 개혁을 일례로 들며 - 물론 비민주적인 부분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 농지 개혁에 대한 배경부터 의의까지 자세히 살펴보는 밑바닥에는 유물사관에 기초한 이해가 있지 않나 싶다. 난 아직 경제학에는 깊은 이해를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이런 논점은 경제학의 기초라도 이해를 하고 난 후 다시 살펴볼 부분인 것 같아 더이상 사고의 진행은 어렵다. 이부분에서 경제학 원론과 자본론 등 경제서를 참고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통해 바라본 해방 직후의 인식에서는 의식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주체인 문화인들의 문제 의식을 다루고 있으며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보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좌파적인 시각이 두드러진다면 문학을 통한 인식이야 말로 밑바닥에 깔린 의식의 색이 분명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역시 분배와 집중이 큰 이슈로 등장하는 오늘날의 현실로 보았을 때 우파냐 좌파냐하는 편가르기 시각 자체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보여줘야할 시선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우파냐 좌파냐가 아니라 이 민족과 국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번영과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사상과 이념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방전후사의 인식1'에 대한 서평을 마칠까한다.
- 접기
정샘 2006-07-13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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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 1 (송건호 외/한길사) 새창으로 보기
출판정보가 기재된 뒷면을 보니 발행일이 1990년 2월로 나와 있다. 워낙 스테디셀러다 보니 요즘은 어떤 표지 디자인으로 꾸며졌을까.

현 시점에서 읽어도 부분적으로 참신하고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내용이 제법 있다. 출판 당시인 70년대말과 8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얼마만한 파장을 미쳤을지 새삼 깊이 인식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에 연이은 독서인지라 아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뭐든 그 때가 있다면 나는 약간 시기를 늦게 맞춘 꼴이다. 그래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한발 물러선 채 비판적 시각으로 내용을 조감하는 장점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미군에 의하여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절반의 진실이 담긴 사고다. 그렇다면 미군 진주 이후 및 군정 당시 그네들의 정책이 당시 민중들의 염원에 어긋났던 연유는 무엇일까 자문해야 한다.

"포고문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성격으로서는 먼저 미군은 한국인이 기대하고 또 생각했던 것과 같은 해방군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점령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1)

"한국은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우리의 적국이다...그리고 적어도 초기에 있어서의 대한점령정책은 일본의 행정기관을 통하여 실시할 필요가 있다." (P.479)

미군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조선은 적지에 불과하다. 이 점을 유념하면 미국이 왜 일본 통치체제를 가능한 한 그대로 잔존시키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배격하고 임시정부를 무시했는지도. 자고로 파트너를 인정한다면 무주공산이 아닌 법.

미군정은 극좌를 탄압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공산세력은 정권 쟁취를 위하여 사회 불안을 조성하므로. 또한 그들은 극우도 배격하였다. 하지가 이승만을 매우 싫어하였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좌우합작운동을 후원하였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그래서 진덕규는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화라는 미군정의 최대의 목표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결에로 유도시켰으며, 한반도의 통일은 당시의 냉전체제에 의해서 오히려 분단의 심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정계의 좌우합작은 미군정 당국자의 미숙한 정치적 행위에 의해서 진정한 의미의 좌우통합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활동기반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P.46)

남북분단의 시원 유래에 대하여 미국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들은 군사적, 정치적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선택하였다.
"한반도 분할의 최초의 발상도 미국에 의해서 행해졌고, 한반도 분할의 고착화도 미국에 의해서 추구되었던 것이다." (P.47)

그렇다고 분단에 대해 무조건 외세에 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후 자주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수차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치인들 중 일부는 권력획득이라는 소승적 시각에 갇혀 있었고 정치적 포용성도 갖고 있지 못했다. 흉탄에 쓰러져간 대표적인 지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라.

오늘날에도 친일파의 잔재는 여전하다. 어쩌면 분단 체제가 과거 청산의 실패 결과 중 하나라고 볼 때 진정한 청산은 분단체제의 극복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군의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하여 시행되었던 일제 관리체제의 유지가 이러한 독소를 깊이 퍼뜨린 것이다.

"미군정은 공산주의를 억제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파급될 수 있는 소지를 조성시켜주는 역설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말았다." (P.51)

거기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민족세력이 이를 교묘히 악용하였다. 오늘날 소위 뉴라이트에서는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승만은 영원히 민족의 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오익환)'를 읽어보면 그가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칭 정통 야당의 대명사인 민주당도 과거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민주당의 창설자들이 누구인가? 처음에는 이승만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였던 친일파와 지주세력의 연합체다. 그들이 후에 이승만과 사이가 갈라져서 야당화했을 뿐 만약 이승만이 고분고분한 허수아비였다면 그들은 결단코 집권당의 달콤함을 즐겼을 것이다.

따라서 진덕규는 미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미군정의 통치가 보여준 비효율성과 이데올로기적인 편협성, 그리고 권력구조 충원의 보수성은 한국정치의 민족주의적 측면에서는 비판의 중요한 대상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P.56)

개인적으로 여운형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증폭되었다. 당시에는 이승만 등이 극우파, 김규식이 중도우파, 여운형이 중도좌파, 박헌영이 극좌파로 대별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의 현시점에 정상적으로 존속하는 체제는 좌나 우를 막론하고 중도세력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중도파가 중심을 이루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지녔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여운형 주도의 건준이 미군에 의해 인정받거나 또는 김규식과의 합작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친일파의 숙청과 아울러 북한에 비해 약점의 하나가 바로 토(농)지개혁의 실패라고 하겠다. 유인호는 "누구를 위한 농지개혁인가"하고 반문한다(P.442).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토지소유의 봉건적 지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었던 지주계층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견해에 주도되어 실시된 것이 우리나라 농지개혁이다. (P.462)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농민부재성은 농지개혁의 원칙설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업시행과정의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관철되어 있는 기본적 특성이다." (P.466)

이상과 같은 논의의 바탕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경험 30년은 우리에게 분단의 극복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최우선의 민족사적 과제이며 이 과제의 성취 없이는 그 어떠한 발전도 번영도 언제나 일시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P.552)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총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냉랭한 작금이다. 우리는 여전히 1945년의 주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에게 여전히 일독할 가치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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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공감(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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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민족혼의 인식. 새창으로 보기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어보게 된 책이다. 한국사와 민족정신이란 수업을 가르치시는 교수님답게 추천해 주신 이 책도 과연 우리나라 민족정신에 대한 올바른 자각과 바른 인식을 깨우쳐 주는 책이였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근대사가  우리민족처럼 비극적인 민족도 드물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조류에 적절한 대응에 실패함으로 일본에 36년간 피와 눈물의 식민지시대를 겪고, 또 그에서 해방되자마자 미소냉전에 의하여 타의적으로 민족분단을 경험. 현재 분단된지 반세기가 넘게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민족정기와 민족혼도 역시반으로 잘라진 한반도 모양처럼 분단의 색채가 짙은 모습이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해방전후로 하여 활동하였던 민족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볼수가 있었고, 그들이 행한 행동 하나하나가 현실에 미친영향에 대하여 보다 심도있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단순히 외세로 인해 이처럼 민족분단이 초래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그 바닥에는 더 복잡한 문제가 깔려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권력을 향한 이기주의 적이고 반민족적행태는 증오감을 불러 일으키기 까지했다. 거시적 안목이 없고, 오히려 개인의 영달만 추구한 그같은 자가 대한민국의 초석을 닦았으니, 그 뿌리는 실로 굳건하지 못하고 위태할수 밖에 없지 않았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친일파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활동을 고묘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이승만과 친일세력의 행태는 거의 매국노 중에도 상매국노 수준 이였다. 그런 반민족적 씨앗이 우리사회 곳곳에 혹여는 주도적위치에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슴을 무겁게 했다. 민족정기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나라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요즈음 독도문제, 북핵문제, 동북공정문제, 한미FTA 문제 등으로 국가 주변정세가 어수선하다.  이는 곧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의 초대강국에 둘러 쌓여있는 분단된 조그만 민족으로서 더 큰 압박을 받고 있음이 사실이며, 또한 건국직후 우리민족의 민족정기가 제대로 펴지지 못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도 주변강대국들이 암묵적으로 남과북의 통일을 견제하면서 자기자신들의 득을 챙길것은 자명한 일. 또한 이러한 세태를 돌파할만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국(憂國)의 마음을 금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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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문 2007-03-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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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변할 수 밖에 없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1, 2권 새창으로 보기
 


 진중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역사에 대해 정의하길, "역사란 과거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맞게 조작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어느 학문들 보다 경제, 정치를 비롯한 전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를 두고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는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장 강력한 불멸의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결정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최종 목표는 '권력'이라는 달콤한 꿈이겠지만.  


 이렇게 권력의 성향에 따라 끊임없이 조작되는 역사라는 놈에게 '사실'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그저 과거의 기록을 역사학자의 취향에 따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은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또라이트, 아니 뉴라이트 같은 '합리적 보수'를 위시한 이들이 역사를 날조하려 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역사의 관점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더군다나 (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해방전후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다양한 결과물의 모음이 [근대를 다시 말하다]를 제외하면 극소수라는 점에서도 이 책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특별하다. 


 이 책은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1, 2권까지 읽은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책의 구성은 여러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해방전후사에 벌어진 정치, 경제, 법률, 문학과 같은 사회의 총체적인 분야에 관해서 세밀하게 분석하는 논문 형식의 묶음집 형태를 띠고 있다. 미지의 개혁이었던 해방전후의 토지개혁에 대한 개괄적인 분석이나, 광복 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형성된 정치조직인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한 이야기, 친일문학인들의 분석과, 비극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반민특위의 슬픈 종말, 해방 후 공산주의의 발발 환경 등.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해방 직후의 문학분야와 노동운동 분야이다. 


 해방 후 문학분야에 관한 글은 1권에선 염무웅과 임헌영이, 2권에선 김윤식이 각각 다루고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시각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순간의 신의 머무름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이 말은 비록 해방 직후 열린 '전국문학자대회'를 가리켜 한 말이지만 해방직후의 폭발했던 창조성을 상기해본다면 그 시절을 노래하는 말이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조금 길긴 하지만 김윤식이 쓴 이 문단보다 그 시절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아 그대로 옮겨 본다. 


 해방공간은 서사시에서 비극을 거쳐 플라톤 철학으로 넘어가는 그리스사회의 공간과 흡사하다. 현상과 본질이 완벽한 화해상태이던 서사시(서사적 상태)는 8.15 해방의 찾아옴에서 확인된다. 그것은 신과 더불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신은 한순간 우리의 눈을 멀게 한 뒤에 어느새 이땅을 떠나버렸다. 현상과 본질이 분리된 것이다. 그것이 비극(비극적 상태)이다.그렇지만 비극은 아직도 조금의 희망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영웅)의 죽음의 순간에 현상과 본질이 일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문학자 대회는 비극의 상태라 규정된다. 그것은 한순간의 신의 머무름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만약'으로 표현되듯 한순간의 일이고, 그 순간이 지나자 본질(이념)과 현상은 영영 갈려 서로 마주보며 평행선을 긋게 된다. 삶의 원자로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된 세계에서는 본질이나 의미가 이데아들의 순수지적인 영역으로 피신하게 되는 것, 그것이 플라톤 철학이다. 우화라든가 신화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경우를 제하면 철학 속에서는 본질과 현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주치지 못한다 


 해방공간이 문학사에서 남긴 폭발성은 결코 길지 않았다. 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문학은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과 소련이 땅을 갈라놓고 있던 그때, 정치적인 불순물 없는 순수문학은 사치였을까..? 문학은, 글은 현실을 투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로 인해 해방전후사에 남았던 것은 난도질당한 너덜너덜한 문학의 껍데기였다. 


 해방전후사의 노동운동은 나에게는 완전하게 신선한 내용이었다. 2권에서 성한표가 쓴 <9월 총파업과 노동운동의 전환>은 가장 가슴 아프게 읽었던 주제임과 동시에 유럽의 노동운동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97년 노동자 총파업 이전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 79년 YH여공 투쟁 이전에, 70년의 전태일 이전에, 우리의 노동운동 역사에는 1946년 9월 총파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 9월 총파업은 한국 근현대사상 가장 처절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무려 200명의 경찰이 죽고, 민간인 1천여명이 죽었으며, 3만명의 인원이 검거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당히 수동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이미지는 작년 촛불시위 때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이것은 10~20대, 30대에 한정된 '사건'이었기에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 즉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그들이 혈기왕성하던 시대에 권위주의적 체제에 억눌려 지내왔던 탓이 크겠지만 굳이 정치적 성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동적인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아왔던게 사실인데, 이는 조선의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기 때문에 일제시대, 해방후, 현대사의 사람들 역시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지만 이 글에서 언급하는 하나의 통계는 이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뀌게 해주었다. 


"해방 후 1년간 1299건의 파업 발생, 26만7천명의 노동자 참가,  2331명 해고, 1090명 검거" 


 실로 어마어마한 파업 건수이다. 이는 물론 해방이라는 격변 속에서 국민의 열망과 국가의 대처가 불합치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막연히 수동적인 기성세대라는 편견만은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런 투쟁 건수와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 숫자는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외쳤음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현실이. 게다가 그때 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건 유럽과 미국과 같이 노동환경의 질적인 개선이 아닌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의 보장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사항일 것이라는 건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즉, 다시말해 그들에게 파업은 단순한 임금협상, 노동자의 최후의 무기라는 선진화 된 개념이 아니라 '목숨, 그 자체' 였다. 모든 것을 걸고, 모든 것을 던져서 파업을 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라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조합. 8.15 직후 이들은 '정치투쟁'을 선언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오해할까봐 미리 밝히자면, 난 결코 전평의 정치투쟁 선언을 비난하는게 아니다. 모든 노동운동은 결국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에 점화선이 된 것은 해방 직후 제정된 '파업규제법'이었다. 살기 위해 파업을 하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주기는 커녕 법을 제정해 이들을 합법적으로 말아버리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미군정은 "민주주의적 노조의 발전을 장려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발표하고, 미군정청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도 밑에서 '대한노총'이란 새로운 노동조합이 탄생한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굳이 말 안해도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전평은 박헌영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이 노리는 타겟 1순위였던 것이다. 


 1946년 9월의 총파업은 이때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전평의 계획적인 노동 봉기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서울 철도국의 경성 공장에서 시작해 부산과 전남지구로 이어졌고, 전국의 철도노동자로 확산되었다. 이어서 서울의 전화국과 우체국, 전기주식회사, 부산의 전신국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여한다. 9월 말, 파업 참가 노동자는 남한 전체에서 무려 26만 4천여명에 달했다. 서울에서만 295개 기업에서 3만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한다. 


 생각해보라. 굳이 상대적인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이정도 파업 인원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주창하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벌어질 수도 있는 역사적인 인원과 조건이었던 것이다. 전평이 볼셰비키였고, 박헌영이 레닌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더없이 충분했던 찰나의 순간'을 전평은 무능력한 지도부로 인해 날려버린다. 폭발적인 파업혁명 속에서 전평이 갈피를 못잡고 있을때, 대한노총은 이승만을 위원장으로 개편하고 공장 경영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파업대책위원회와 제휴해 '총파업대책협의회'를 조직하고 빠른 시일 내에 파업을 파괴하겠다고 군정 당국자에게 충실하게 약속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도 처참하다.... 장택상이 지휘한 2,100명의 경찰들은 9월 30일부터 경성공장의 모든 외곽선을 포위한다. 애국청년단원들과 대한노총원들이 농성장에 돌입해 1,400명을 검거하고 파업단을 강제 해산시킨다. 이들은 전국으로 퍼져 미군정의 든든한 지원아래 삽시간에 파업단을 분열시킨다. 전평은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다. 지도자들이 대량검거되면서 사실상 해체되게 되고 대한노총은 이 틈을 타서 곳곳의 공장에 침투해 노동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노동운동' 본연의 역할과는 전혀 동떨어진, 권력에 야합한 더러운 이름 대한노총은 현재 '한국노총'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으로 한스러운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사다. 그시대의 노동자들이 대단한 걸 원했었나. 하다못해 농지개혁법이라도 해방직후 제대로 제정이 됐었다면 그들이 파업이란 배수진을 쳤었을까. 겉멋들어서 그들이 파업을 한게 아니다. 내 배 부르자고 그들이 파업을 한게 아니다. 인간의 생존이라는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고자 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미군정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졸개들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초전박살 내버린다. (더 웃긴건 9월 총파업 강제 해산에 가담했던 김두한 같은 새끼가 많은 이들에게 협객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씨발스럽다)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완전히 죽었다. 1970년 전태일이라는 영웅이 나오기 전까지 노동자는 그저 기계였다. 전태일이 나온 뒤에도, 민주화가 된 후에도, 21세기에도 대다수 노동자는 기계처럼 산다. 우리도 유럽처럼, 미국처럼 존나 멋진 슬로건 내걸고 우아하게 협상하고 싶다. 망루에 올라가서 흔들거리는 목숨을 담보로 걸고 피터지게 절규하는게 아니라, 봉쇄된 건물 안에서 내 와이프, 내 동료가 목 매달고 죽었다는 소식에 피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는 처절한 투쟁이 아니라, 시원하게, 당당하게, 목숨을 내걸고 처자식을 내건 투쟁이 아니라 씨발 좀 멋스럽고 당당한 요구를 하고 싶은거다.  


 해방 직후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야기가 예상보다 너무 길어졌는데 성한표가 다룬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나에게 너무나도 뜻깊은 저작물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기성세대를 수동적인 기성세대로만 생각했을 것이고, 따라서 무력한 노동자들밖에 없었기에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사는 전태일 혼자서 이룩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운 것은, 우리나라에도 진정 '노동자'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 그 사실을 일깨워줬다는 것 그 하나가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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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꺼 2009-10-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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