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묘 자리로 보이나?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전부터 청와대엔 죽어도 들어가지 않겠노라 몽니를 부리는 것은 정녕 청와대에 가면 자신은 죽는다고 믿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신은 결국 시민 권력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취임하기도 전부터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음은 아닐까? 스스로 망나니가 되어 피범벅 손이 되었던 지난 날들과 ,그로 인해 수많은 역대 대통령이 불행한 최후를 상기하다 보면, 죽음의 전당(?)이나 다름 없는 그곳에 쉬이 발길을 들여 놓지 못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이다. 다시 말해 윤의 맘 속에서 청와대는 곧 무덤 자리, 묘 자리인 것은 아닌가?
풍수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살아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양택풍수(陽宅風水)가 그것이고, 죽은 사람을 묻을 묘 자리를 잡는 음택풍수(陰宅風水)가 그것이다. ===
양택풍수는 국가기관, 종교시설, 학교, 집 등의 환경 조성과 관계된다. 자연 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인간의 생존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현대 학문 분야에서 지리학, 건축학, 도시공학, 교통공학, 안전공학, 환경생태학, 통계학 등은 광의의 양택풍수 사상의 현대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수도나 관청, 학교, 회사 등의 배치・이전, 개인 주택의 입지 결정이나 이사 등,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다룰 때 양택풍수의 개념은 중요한 참고 사상이 될 수 있다. 현대적 합리적 사고의 출발점, 원점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음택풍수는 역사로 화(化)한 죽은 자들의 거소(居所)가 현재를 사는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몇 구의 시신이 안치되는 수준의 음택풍수는, 양택풍수에 비해 배산임수나 좌청룡 우백호나 좌향 같은 용혈사수향(龍穴砂水向)의 개념이 지극히 협소해질 수밖에 없으며, 조상의 혼백이 길지(吉地)의 지기(地氣)와 혈맥을 타고 자식이나 미래의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게 된다. 결국 음택풍수는 양택풍수에 비해 미신적 집착이나 왜곡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더 크다. ===
일단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 대응으로 갑작스런 5월 용산 천도(?) 계획은 유보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청와대 입성을 거부하는 당선자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 없다.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시대를 연다느니, 용산으로 간다느니, 세종으로 간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양택풍수의 영역이다. 하지만 윤 당선자의 모습은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기에 생경스럽다. 국가 전체의 컨트롤타워 이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 동기나 집착의 차원에서 진행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안보 공백 등의 원칙으로 일단 용산 이전이 유보되면 청와대로 들어가 시간을 두고 신중히 준비해 가는 쪽을 택해야 하거늘, 절대 청와대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그 비정상성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이미 청와대는 누구나 신청하면 둘러 볼 수 있는 시민의 공간이 된지 오래이고 말이다. (연간 2만 명 이상 방문 중) ---
풍수지리적으로만 보더라도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사용된 길지 중의 길지가 현재의 경복궁과 청와대 지역이다. 그 안에는 세종이나 영조, 정조 같은 존경받는 군주가 존재했는가 하면, 단종이나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같은 비극적 군주들도 존재했다. 청와대 또한 김영삼, 김대중 같은 퇴임 후 자연 수명을 다하고 가신 분들이 거쳐간 공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건만,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음습하고 공포스러운 무덤 속 지하로 여기는 느낌이다. 국방, 경제, 자연재해, 방역 등, 수많은 안보 위협 속에서 국민을 살릴 양택풍수의 합리적 사고와 비전을 제시 하기는커녕 자기 죽을 자리, 묘 자리로만 생각하며 음택풍수의 관념으로 청와대 공간을 바라 보는 것은 아닐까?
용산의 국방부 시설이 그렇다고 전통적 의미의 풍수 명당이라고 보기에도 의아하기 그지 없다. 기를 뿜어내는 이른바 용혈(龍穴)을 잡아준다는 좌청룡 우백호, 안산도 낮거나 거의 없으며, 곧장 거대한 한강과 인접해 혈처를 감싸는 환포의 형상에도 의문이 생기는 등, 취약한 사수(砂水)임에 틀림 없다. ---
연산군도 무당 춤을 추며 기행을 일삼았으며, 장녹수 치맛폭 아래 정신줄을 놓았었다. 광해군도 풍수가 시문용, 김일용, 무속인 이의신 등에게 휘둘리며 뜬금없이 인왕산 쪽에 새롭게 인경궁을 세운다느니, 형제들을 무리하게 숙청하는 등의 폭주를 일삼다 왕위에서 쫓겨나 ‘군’(君)에 머물고 말았다.
“지금 인경궁을 짓고 계속해서 경덕궁을 지었는데, (...) 칸수는 법궁보다 10배는 되었고 별전이 열 채가 넘었으며, 인왕산을 휘감고 있어서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今作仁慶宮, 繼作慶德宮, 樑楹雖小, 間架十倍, 法宮別殿以十數, 橫包仁王山面, 土木之麗, 粧飾之侈, 古未嘗有也。) --- 《광해군일기》(정초본) 114권, 1617년(광해 9년) 4월 27일 신유 7번째 기사.
미신을 신봉했던 광해군은 새 궁궐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였다고 한다. 인왕산을 새롭게 주산으로 하여 세운 인경궁은 경복궁, 창덕궁 등에도 사용 안 한 ‘청기와’를 지붕에 올려 지었고, 경복궁을 능가하는 조선 최대 규모의 궁궐이었다고… 17세기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가렴주구와 민생파탄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와 산불 여파 등으로 민생 현장은 아우성이거만, 1조 이상 소요되는 새 궁궐 마련과 이사에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 없다.
대권에 도전하며 선친의 묘를 3번이나 이장했던 이회창 씨, 하지만 결과는 두 번이나 낙선했다. 그 밖에도 김종필, 김무성, 이인제, 심지어 최근 민주당의 경선 후보였던 이낙연, 김두관 등의 인사들도 선친 묘소를 이장하며 음택풍수의 기운을 려 보려 하는 행태들이 가관이다.
취임하기도 전부터 자기 죽을 자리나 걱정하는 듯한 비루한 모양새보다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 실로 죽을 지경인 서민 대중 살릴 궁리나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음택풍수로 묘 자리나 살피는 정치보다는, 양택풍수로 편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산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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