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3

알라딘: 사회학자 조은의 노트가 있는 칼럼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

알라딘: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 - 사회학자 조은의 노트가 있는 칼럼 
조은 (지은이)파이돈2022-11-22




284쪽

책소개

조은 교수의 칼럼은 연재 내내 독자들에게 잔잔한 파장과 감동,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기와 무관하게 지금 읽어도 공감과 흡입력을 자아내는 저자의 글은 시사적인 문제나 소수자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에 대해 글쓴이 특유의 식견과 안목을 발휘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단서를 열어 준다.

따뜻하고 진솔하지만 예각이 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겸허함과 공감대를 자아내는 글쓰기는 책 전체를 관통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사실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라는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아울러 “공통된 의미 지평을 잃어버린 통약 불가능한 비극적 공동체로 가는 징후”로서의 지금, 현재를 진단한다.


목차

책을 내며 7
프롤로그 12

Ⅰ부 어떤 한 해, 가까운 옛날이야기

50년 만의 고향 방문
고향을 다녀온 지 열흘 만에 전화 한 통을 받다
두 번째 영광 방문
육십 몇 년이 지나 떨어뜨린 이야기
‘목소리 소설’ 작가를 토론하다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
어떤 기억과 어떤 기록

Ⅱ 부 일상에 대한 예의

1장 일상의 무게

위 캔 스피크…
올해도 스치고 싶은 사람들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고요
왼손과 오른손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 채의진 선생 작업장 풍경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
읽고 쓰기의 쓸모를 생각하다
올해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

2장 글 안의 사람, 글 밖의 풍경

여성들의 혁명은 일상에서 시작한다
- 여성 독립운동가의 육필 원고에 누가 손댔을까?
학문이(도) 패션 상품일까
〈기생충〉과 중산층 파국의 징후 읽기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정원
역사가 부끄러움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어떤 가난과 어떤 가혹한 70년
글을 쓰다가 길을 잃다
오월 광주와 ‘우리 선생님’에 대한 사유
- ‘우리 선생님’이 던진 숙제 그리고 …
팬데믹 영화제 로드 무비를 상상하다

3장 일상에서 던지는 물음

장산곶매 이야기 좀 빌려도 될까요?
- ‘문제적 칼럼’이 되다
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보는 시간
‘그들의 시간’과 만날 수 있을까
어떤 위로 어떤 감동 어떤 아름다움을
‘어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살림 따라오나 봐라”
어떤 말하기와 읽어 주기의 힘
- 페미니스트 지식인의 ‘어떤 읽기’와 문해력
우리는 어떤 길을 낼 수 있을까?

에필로그

접기
책속에서
P. 13 지난 5년간의 일상 읽기를 묶게 된 셈이다. 일상에서 시대와 시국을 읽고 싶었다. 접사하듯 카메라 렌즈를 일상에 가까이 대었다가 때로는 물러서서 망원렌즈로 다시 잡아 보듯 일상을 읽기도 하고 스냅 샷을 찍듯 일상을 읽기도 했다. 일상은 아주 먼 듯한 가까운 옛날과 겹쳐졌다. 몇 시간 씩 조리개를 열어 놓고 밤의 물체를 찍듯 매달려 쓰기도 하고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머릿속에서 쓴 글도 있다. 일상과 과거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접기

P. 32 광풍의 시대를 산 흔적이 촘촘하게 박힌 가족사에 감정을 묻히지 않고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이 쉽지 않다. …개인사, 가족사, 한 고을의 지방사, 우리의 근현대사가 엮이는 국면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광화문 탄핵 농성장과 내 사무실 사이를 비틀거리며 오갔다.

P. 36 공장 할머니가 ‘거적데기로 덮인 시신’을 들춰보며 할아버지 주검을 거둔 이야기는 나의 어릴 적 기억에 화인처럼 강렬하게 남았다. 애도 받지 못한 주검 이야기에 너무 일찍 눈떴다. ‘주검의 정치’가 있다는 것을 일찍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그리스 신화 《안티고네》를 처음 읽었을 때는 할아버지 주검을 둘러싼 쑥덕거림이 안티고네의 대사와 합창 소리에 자꾸 포개졌다.  접기
P. 64 어머니가 전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그동안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를 툭 떨어뜨린다. “개똥어멈 큰아들이 희선이한테 물들었던지 북으로 갔다”고 지나는 말처럼 한다. 순간 내가 놀라 묻는다. “개똥어멈한테 큰아들이 있었다고요” 지금 있는 외아들 말고 아들이 또 있었다는 그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북으로 간 큰아들의 아명이 개똥이 였을지도 모르겠다.  접기

P. 82~84 시국을 잘못 만난 우리 집 남자들 얘기에 어린 내가 지루해할 때 쯤 어머니는 물무산에서 6·25 후에 사라진 ‘야든이’ 얘기로 넘어갔다. 야든이는 동네 머슴이었는데 그의 아버지 여든에 그를 낳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든은 지역 사투리로 야든으로 발음되었고 야든이는 그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 야든이는 힘이 좋아 읍내에서 멀지 않은 가파른 물무산 봉우리까지 매일 단숨에 달려갔다 올 수 있는 ’괴력의 사나이‘였다. 그 괴력은 수복이 늦어 밤낮으로 세상이 바뀌는 영광에서 특별하게 쓰였다. 밤은 빨치산의 세상이어서 물무산 봉우리에 밤이면 인공기가 꽂혔다. 날이 밝으면 바로 달려가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가져다 꽂는 임무가 야든이에게 맡겨졌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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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신문 2022년 11월 25일 출판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조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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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 1983년부터 2012년까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로 학문과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하고 작업을 해 왔다. 학술논문 외에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22〉, 〈사당동 더하기 33〉을 제작 및 감독했다. 문화기술지 《사당동 더하기 25》와 소설 《침묵으로 지은 집》을 출간했다
최근작 :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시민사회의 기획과 도전>,<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 총 1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와 만날까?
사회학자의 일상 읽기는 소설 같기도 하고 로드 무비 같기도 하다.
칼럼보다 노트에 더 눈길을 머물게 한다.

사회학자 조은 교수(동국대 명예교수)가 2017년 1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펴내면서 한 편의 긴 노트와 다섯 편의 짧은 노트를 붙였다. 

학문과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글을 써 온 저자가 칼럼 앞에 붙인 ‘긴 노트’는 5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면서 시작한 귀향소설 같은 현장 일지다. 로드 무비 같기도 하다. 저자의 사유의 공간에 똬리를 틀고 앉아 칼럼을 수시로 간섭하고 사유의 궤적을 드러낸다. 칼럼 앞에 노트를 붙인 이유다.

조은 교수의 칼럼은 연재 내내 독자들에게 잔잔한 파장과 감동,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기와 무관하게 지금 읽어도 공감과 흡입력을 자아내는 저자의 글은 시사적인 문제나 소수자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에 대해 글쓴이 특유의 식견과 안목을 발휘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단서를 열어 준다. 따뜻하고 진솔하지만 예각이 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겸허함과 공감대를 자아내는 글쓰기는 책 전체를 관통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사실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라는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아울러 “공통된 의미 지평을 잃어버린 통약 불가능한 비극적 공동체로 가는 징후”로서의 지금, 현재를 진단한다.

스물다섯 편의 칼럼 중 다섯 편에 붙은 ‘짧은 노트’는 칼럼에 미처 담지 못한 사유의 회로와 더 짚어야 할 담론 거리들을 담았다. 현장 연구자의 감수성을 드러내면서 읽기와 쓰기가 지식인의 실천의 영역임을 거침없이 짚는다. 특히 2장의 칼럼 〈여성들의 혁명은 일상에서 시작한다〉에 붙인 노트는 역사 추리 소설 같은 제목으로 역사학계에 질문을 던지고 지식권력의 장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요청한다. 3장의 〈장산곶매 이야기 좀 빌려도 될까요〉라는 칼럼에 붙은 노트 〈문제적 칼럼이 돠다〉는 하나의 글이 ‘문제적’이 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메모로 드러낸다. 독자들에게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열어놓은 계산된 여백의 글이다.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보다
마음속 빈칸을 채우는 일이 더 힘들다”

“원고지 칸을 메꾸는 일보다 마음속 빈칸을 채우는 일이 더 힘들다”는 저자의 고백은 긴 노트를 가로지르는 근본 정서다. 1부 〈어떤 한 해, 가까운 옛날이야기〉라고 이름 붙여진 긴 노트는 한국전쟁 중 좌우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으로 알려진 고향을 50년 만에 찾으면서 마주하게 된 가까운 ‘옛날이야기’다. 심하게 풍비박산된 한 가족사를 중심에 두고 고향 사람들이 들려주는 ‘가까운’ 옛날이야기와 전남 영광의 아픈 역사,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 현장을 읽는다.

이야기의 중심에 둔 한 가족사는 저자의 가족사다. 저자는 한 장의 대가족 사진이 찍힌 시대배경의 시간을 적시하고 독해한다. 1947년 겨울 저자의 할아버지 환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다. 그 무렵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할아버지 1남 2녀의 직계 스물여덟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나 잔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어두움이 깔려 있다. 그 사진에 10여 명도 넘는 손자손녀가 찍혔는데 저자도 그 사진에 없지만 손이 귀한 집안에서 매우 중히 여겼을 장손도 없다, 사진에 친 손자는 둘째 집의 외아들 세 살배기 한 명뿐이다. 월북해서 집안에서 쉬쉬하게 된 큰집의 장손은 그때 북에 갔다가 길이 막혀 할아버지 환갑에 못 온 듯하다. 할아버지 환갑 사진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어서 그 사진에 끼지도 못한 15개월배기 여자 아이가 사회학자가 되어 기억과 경험, 의식을 동원해 가족사진의 의미를 퍼내는 장면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을 연상시킨다. 단순한 가족사진이라는 기호로 환원시킬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간취하고 있다.

50년 만의 고향 방문 그리고 우연찮은 두 번째 방문

“어머니가 영광 선산에 묻히기로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고향 땅을 밟지 않았을지 모른다.” 책의 첫 구절과 같이 저자는 어머니를 모실 선산을 둘러보기 위해 50년 만에 고향 영광을 찾는다. 그러나 저자에게 영광 가는 길은 “마음이 움직여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길”이자 “몸이 움직여도 마음이 따르지 않는 길”이며 “산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촌 동생과 함께한 첫 번째 방문에서 고향에 머문 시간은 5시간 20분이다. 6개월 후 동아시아 평화에 관심이 많은 일단의 여성 사학자들과 사회학자가 우연찮게 저자의 고향 방문에 동반하면서 저자가 맞닥뜨려가는 이야기의 반경은 가족사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가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며

두 번째 영광에 다녀온 뒤 열흘쯤 지나 ‘개똥어멈’의 딸의 전화를 받아 어머니에게 건넨다. 개똥어멈은 저자의 고향 집 앞에 버려졌던 아이가 어른이 된 뒤 얻은 이름이다. 1910년대 기아가 휩쓴 일제하에서 먹고살 만한 집 앞에 아이가 버려지는 일은 아주 흔했다. “개똥어멈 큰아들이 희선이한테 물들었던지 북으로 갔다.” 어머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금기어였던 큰집의 장손 이름과 들어 본 적 없는 개똥어멈 큰아들을 묶어 툭 떨어뜨린다. 그러면서 가족 내에서 되풀이 듣는 “시국을 잘못 만난 사람들”이야기로 갔다가 전설이자 동화와 같은 동네 머슴 ‘야든이’ 등 이름 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로 가서 멈춘다. 어떤 기억과 어떤 기록이 미진하게 멈춰 있다.

2부의 칼럼 및 노트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메모로 남긴, 한 해 동안 영광을 방문하고 경험한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인 작은 이야기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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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회학자 조은의 노트가 있는 칼럼>
기자명 이재봉 주주   
입력 2022.12.31 
 

저는 주문해서 사든 선물로 받든 무슨 책이라도 손에 잡으면 앞뒤 표지부터 훑어보고 차례와 머리말 그리고 끝말을 읽어본 뒤 놓아둘 장소와 독서 순서를 정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책상 위엔 밑줄 쳐가며 읽을 책, 침대 맡엔 가볍게 볼 책, 대여섯 권씩 쌓아놓습니다. 이제 막 받은 책은 대개 맨 밑에 놓기 마련이지만 어떤 때는 맨 위에 올려놓기도 하지요.

며칠 전 선물로 받은 조은 교수의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 사회학자 조은의 노트가 있는 칼럼≫ (파이돈, 2022)은 받자마자 몇 쪽 읽고 침대 맡 맨 위에 놓았습니다. 우선 제 전공분야 전문서적이 아니라 침실로 향했고, 저명한 사회학 원로교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기록영화 감독 및 제작자 그리고 소설가라는 독특한 이력이 덧붙여져 관심과 흥미가 커진 바람에 맨 윗자리를 차지한 거죠.

조은 선생은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제 이메일 받아보며 몇 달 전 통일TV 출자금과 남이랑북이랑 교실 기부금을 보내주시고 이번 주엔 책까지 선물해주신 겁니다. 감사하는 맘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대개 유명 학자들은 필자 소개에 학사-석사-박사로 이어지는 학력 몇 줄 넣기 마련인데,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하고 미국 유학했다는 화려한 학력도 생략한 채 ‘전남 영광 출생’을 맨 먼저 밝히고, 1장에 ‘50년만의 고향 방문’을 실은 게 특이하더군요. 7대조와 6대조 할아버지들부터 문집을 남기신 그야말로 빵빵한 유학자·선비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은근히 뽐내면서요.

이어지는 글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전남 영광을 원불교 성지, 핵발전소, 굴비, 백수 해안도로, 불갑사 상사화 등으로만 알아왔지,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가 인구 당 가장 높은” 역사적 장소라고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거든요. 6.25가 터졌을 때 할아버지부터 큰집 장손까지 스무 살 이상 남자 여섯 가운데 둘만 살아남고, 아버지는 한줌 흙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기막히게 애통한 가족사가 끔찍하게 잔혹한 한국 현대사와 얽혀 있습니다. 스물여섯에 혼자되어 2년 전 아흔여섯에 가실 때까지 ”한반도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만 나와도 마음 졸이며 혹여나 종전 소식이 없을까 뉴스에 채널을 맞추셨던“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 한스럽고요.

가벼운 제목의 묵직한 내용을 읽으며 비참한 가족사와 서글픈 사회현상 등 소설 같은 이야기를 소설 같이 써내려간 사회학자의 글 솜씨 덕에 모처럼 밤을 꼬박 새워버렸습니다. 저는 지난날 밀린 공부가 있으면 밤새우는 게 특기였지만, 20여 년 전 입이 비뚤어지고 눈이 찌그러지는 병으로 한 달 입원하면서 아무리 급한 글이 있어도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길렀는데, 읽던 책을 도저히 놓을 수 없더군요. 쓰던 글도 다음날 끝내야 했고 진지하게 읽던 책도 밀렸는데 말이죠. 먼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타고난 필력에 대학에서 문학도로 다진 실력까지 덧붙여져 한탄도 분노도 꾹 누르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글에 푹 빠져버린 겁니다.

<한겨레> 신문에 4년간 칼럼을 연재하며, 찾기 어려운 여성의 항일운동, 분단과 전쟁의 폐해, 가진 자들의 탐욕과 사당동 빈민의 고달픈 현실을 비롯한 사회계층과 불평등, 주택이 ‘사람 사는 집’에서 ‘사고파는 부동산’으로 소유와 재산 증식 수단이 돼버린 서글픈 현실, 5월광주의 ‘우리 선생님’,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 관한 다른 견해, ≪녹색평론≫을 이끌었던 김종철 선생과 ‘평양 만경대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강정구 교수와의 일화 등을 담고, 칼럼에 노트를 붙이게 된 사연까지 묶어 펴낸 책, 꼭 읽어보시지 않겠어요?

덧붙이는 글: 밤새 읽은 280여쪽 책에 아쉬운 대목도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 사이에 ‘아이클라우드’, ‘필로티식’, ‘알레고리’, ‘젠트리피케이션’ 등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을 영어·외래어가 꽤 많이 나오는군요. 출판 후 오탈자를 바로잡아 정오표를 만들어 보내주며 2쇄 찍으면 고치시겠다는 꼼꼼하고 섬세한 민족 사회학자가 ‘휴대폰’과 ‘백미러’를 서너 번 연거푸 쓴 건 눈에 좀 거슬립니다. 오래 전부터 표준어 같은 일상어가 된지 오래 됐지만요.

15년 전 제가 쓴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휴대폰’이라고 우리말과 영어를 어색하게 섞어 쓰지 말고, ‘cellular phone’이나 ‘mobile phone’으로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든지 우리말 ‘휴대전화’로 쉽게 쓰는 게 좋다..... ‘백미러’ 같은 일본어투 엉터리 외래어를 쓰는 것보다 ‘rear-view mirror’라는 영어를 올바로 쓰든지 ‘후사경 (後寫鏡)’이란 표준어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어차피 우리말은 아무리 적어도 절반 이상 한자어다.”

조정래 선생이 2013년 중국의 급성장을 다룬 ≪정글만리≫를 보내주셨는데, 세 권짜리 소설에 나오는 ‘G1’이나 ‘풀장’이란 단어가 못마땅하더군요. “‘G7’이나 ‘G20’ 등의 ‘G’는 ‘그룹 (group)’을 가리키지 서열을 뜻하는 게 아니기에, ‘G2’까지는 괜찮지만 ‘G1’은 말이 안 됩니다. 하나가 어떻게 그룹을 만듭니까? ‘pool’이 ‘수영장’이란 뜻이니 ‘풀’만 써도 족한데 ‘풀장’으로 묶어 쓰면 ‘해변가’처럼 어휘 중복으로 잘못 쓰는 것 아닙니까“고 천하의 소설가에게 대든 적도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10년 공부하며 살았어도 아름답고 순수하며 정겨운 우리말이 영어·외래어 남용과 오용에 훼손되는 걸 안타깝게 여기거든요.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이재봉 주주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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