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7

알라딘: 김은국 Richard Kim 잃어버린 이름

알라딘: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이름  | 다림 청소년 문학
김은국 (지은이)다림2011-03-16





전자책
7,700원 

312쪽


===

책소개

세계적인 작가 펄 벅이 극찬한 김은국 작가의 자전적 역사 소설. 일제 강점기를 견뎌낸 한 가족과 그 속에서 당차게 성장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고통과 수난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우리네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식민지 국민이라는 굴욕과 혼란에 휩싸인 소년의 내면 성장과 역사적 성찰을 함께 담아내었다.

신사 참배, 창씨개명, 제2차 세계 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닮은 소년을 중심으로 그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시에 소년의 깊은 내면에서 오는 혼란과 갈등, 성장을 밀도 있게 그려내어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에게도 공감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생각의 고리를 던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부모님이 만주로 건너갈 때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기독교인이면서 선비 집안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독립운동 혐의를 받고 옥살이를 하며 수난을 겪다가 만주로 건너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한다. 덕분에 소년은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선교사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지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 하지만 그곳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추천글

나는 이 작품을 김은국의 최고작으로 꼽고 싶다. 그는 한 가족의 눈을 통해서 외세에 의한 강점과 수난을 겪고 마침내 해방되기까지의 한 나라의 국민감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었다. 이 작품은 한국을 소재로 해서 쓴 창작으로선 내가 여태 읽은 그 어느 것보다 훌륭하다. 
- 펄 S. 벅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대지》의 저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은국 (Richard E. Kim) (지은이) 

1932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황해도에서 보냈다. 1945년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복무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매사추세츠 대학교 영문학과 부교수와 서울대학교 교환 교수를 지냈다. 

1964년 발표한 데뷔작『The Martyred』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Lost Names』『The Innocent』등 한국을 무대로 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각각『잃어버린 이름』『순교자』『심판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절박한 현실 속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는 인간적 고뇌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최근작 : <새롭게 만나는 우리 명작 한빛문고 1~20 세트 - 전20권>,<새롭게 만나는 우리 명작 한빛문고 1~22 세트 - 전22권>,<새롭게 만나는 우리 명작 한빛문고 1~21 세트 - 전21권> … 총 1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계적인 작가 펄 벅이 극찬한 우리 작가 김은국의 자전적 역사 소설

일제 강점기를 견뎌낸 한 가족과 그 속에서 당차게 성장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잃어버린 이름』이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고통과 수난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우리네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식민지 국민이라는 굴욕과 혼란에 휩싸인 소년의 내면 성장과 역사적 성찰을 함께 담아내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떠났다가 황해도로 돌아와 해방을 맞은 소년의 이야기는 작가 김은국의 일대기와 닮았다. 김은국은 193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지냈다. 그 후 다시 황해도 해주로 내려와 살다가 해방과 한국 전쟁까지 경험했던 그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에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특히『잃어버린 이름』은 신사 참배, 창씨개명, 제2차 세계 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닮은 소년을 중심으로 그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시에 소년의 깊은 내면에서 오는 혼란과 갈등, 성장을 밀도 있게 그려내어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에게도 공감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생각의 고리를 던진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시대와 싸워야 했던 소년의 분투기

이 작품은 주인공의 부모님이 만주로 건너갈 때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기독교인이면서 선비 집안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독립운동 혐의를 받고 옥살이를 하며 수난을 겪다가 만주로 건너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한다. 덕분에 소년은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선교사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지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 하지만 그곳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 앞 게양대 국기는 당연 일본 국기다.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까만 제복을 입고 있다. 아이들 몇 백 명이 군대처럼 줄을 맞춰 서서 동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다. 천황에 대한 예다. 물론 일본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은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천황 폐하 만세” 같은 문구를 외운다. 얼떨떨하고 낯설고 부당하게 보이는 이런 광경들 속에 들어간 주인공은 만주에서 지낸 시간들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향수에 젖을 시간도 없이 소년은 나라 잃은 민족이 겪어야 할 설움과 마주한다.

옛날에는 우리 것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닌 땅-외국 땅이 아니면서 외국이 되어버린 땅-에 이식되어, 혼자 울적하게, 친구도 없이, 어리둥절하니 앉아 있다. 눈에 눈물이 고여드는 것을 느낀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목구멍에 올라온 커다란 덩어리를 꿀꺽 삼킨다.
(중략)
선생님은 교실 안에 걸린 지도에 관해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조선인이지만 일본말로 얘길 하고, 나도 일본말로 대답하게 되어 있다. 3학년에 올라오면서부터 학교에서는 꼭꼭 일본말을 쓰게 되었고, 집에 가서도 그렇게 하는 걸로 되어 있다. 조선어나 조선 역사는 이제 배우려야 배울 수가 없다.
-본문 59쪽~111쪽 중에서

일본인 교사는 조선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조선말이나 외국어를 쓰면 온몸에 피멍이 들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두들겨 맞는다. 소년은 학교생활을 견뎌내지만 늘 가슴 한쪽에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다. 그리고 스산하고 침묵이 감도는 어느 겨울, 선생님의 입에서 낯선 일본 이름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모두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이 소년의 가슴을 후려친다.

눈앞을 가리는 눈발과 숨이 턱턱 막히는 찬바람 속을 달리며 미끄러지며, 쌓인 눈 더미에 자빠지기도 하면서 허겁지겁 내닫기 시작한다. 나의 새 이름, 나의 옛 이름, 나의 진짜 이름, 진짜가 아닌 이름? 나는 눈발 속을 달리며 부딪치며 생각한다.
‘이제 내 이름을 잃어버리는구나…… 내 이름을 잃어버리는구나…… 모두가 자기 이름을 빼앗기는구나.’
-본문 153쪽 중에서

강제로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소년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런 역사를 만든 이전 세대에 대한 원망도 서린다. 부당한 현실을 견디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답답함도 느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소년은 극복하고 견딜 수 있는 의지를 찾아나간다. 동시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당차게 나아간다. 때로는 누명을 쓰거나 위협적인 매질을 당해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의식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 달랐고, 부당함을 묵묵하게 따라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서 국가의 독립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는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세대 간의 갈등, 입장 차이에서 오는 갈등, 사상의 차이로 빚는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때였다. 그 속에는 시대에 순응하여 일본식 교육을 따르다가 참회하는 조선인 선생님도 있고, 조선 학생에게 가한 부당한 체벌에 맞섰다가 파면 당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패전을 예감하고 자신의 안위를 부탁하는 일본인 선생님도 있다. 소년은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꼿꼿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은 세대가 바뀌었지만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지녀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과 얽혀 살기 위해서 자신만의 의지와 생각을 갖추어야 단단해질 수 있다. ‘성장’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는 어느 시대든지 성장기의 아이들이라면 모두 겪어야 할 숙제다. 더불어 시대의 부조리와 맞서고 이전 세대보다 더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는 ‘청소년’의 당연한 몫이다. 때문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절을 견디고 성장한 소년의 이야기는 당차게 앞길을 열어가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접기

구매자 (1)
전체 (2)
공감순 
     
몇 년전에 순교자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김은국님의 `잃어버린 이름` 은 얼마 전에 읽은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 와 비슷한 시대인 일본제국 강점기때 이야기이다. 아직 읽고 있지만,  구매
세릭 2013-03-05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1)
리뷰쓰기
공감순 
     
잃어버린 이름 
 
일제하의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이란 게 특성상 재미있을 수 없겠지만, 예의 이 작품도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 작품의 맨 마지막 장(章)을 읽기 전까지는, 뭔가 등장인물들의 배경에 은근 불만도 가지고 있었던지라, 이걸 읽고 대체 어떤 감상문을 써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마저 들었었지요. 암튼!  



"1932~1945"로 끝맺음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출생연도1, 출생지 등으로 보아) 자전적 소설이라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작가 김은국은 그렇게, 우리의 부모님 세대를 자신이 대표하여 저희 세대에게, 혹은 종원군의 세대에게 '자신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저의) 할아버지 세대의 변명' 역시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담아내고 있지요. 그러하기에!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시대와 싸워야 했던 소년의 분투기"2로 이 작품을 읽어내기 보다는 --- 자신 세대와 그 윗 세대의 솔직한 변명,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의 당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라고, 또 그리해야만 작가가 영문 제목 「Lost Names」의 이 작품에 <빼앗긴 이름>이 아닌 「잃어버린 이름」으로 번역되기를 원했3었던 이유가 설명이 된다라 생각합니다.



………………………………………………………………



 생명은 죽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이 잔인한 계절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p136)

1932년에 태어난 한 소년이 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의 시간동안 성장해 가며 겪어온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만, 일제의 핍박상이 그리 자세하게/절절하게 그려지고 있다고는 읽히지 않았더랬습니다.4 단지 --- '창씨개명'이라는 특정 사건만을 일제하 조선이 겪어야 했던 치욕의 상징으로 부각시켜놓고 있으며, 그 사건을 일컫는 「잃어버린 이름」이라는 소설의 제목과도 어울리듯, 이 작품에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미야모토'로 창씨개명을 한다는 부분만 빼고는) 그 누구의 '이름'도 등장하질 않습니다. 그 창씨개명을 당하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참배하며 울고 원통해합니다. 이 모습을 본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묻지요.



"이런다고 뭐가 되나요? 다들 이런다고 무슨 수가 생기나요? 이런다고 이미 끝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p175)



이 질문에 대해 아버지는 "네 눈을 대하기가 부끄럽구나. 장차 너희들의 세대가 되면 우릴 용서해줘야 할 거야."5(p169)라고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章)에 가서야, 이 때의 이 대답 속 '용서'에 대한 숨겨진 의미를 모두 밝혀주지요.



·

·

·



물론! 저의 다음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 지금 대한민국에서 주류(主流)로 자리하고 있는 '친일'에 대한 생각에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헌데! 술자리에서 친구에게는 얼마든지 말해낼 수 있었습니다만, 뭔가 뚜렷한 언어로 그러한 저의 동의하지 않음을 표현해낼 수가 없었던 저에게! 이 소설은 그 실체적 해답을 아주 뚜렷하게 안겨주고 있습니다.6  



제가 정말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건, 우리의 해방이 그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이에요. 그걸 뭐 우리가 쟁취했나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거나 다름없지, 선물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건 그거예요.(p279)

물론! 해방 자체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패했다는 결과로 발생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민족 스스로의 투쟁도 있었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투쟁'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지만 --- 예의 우리 민족 스스로의 노력은 단지 거기까지만이었다라는, 그러했기에 '투쟁'으로 쟁취해 낼 '해방'을 맞이할 자체적인 준비와 계획은 거의 전무했었다라는 재반론에는 할 말이 없을 겁니다.7 주인공 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변명이 차라리 그 솔직함에서나마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네 말이 맞아. 우리의 해방은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선물 같은 거지. 나도 그게 마음에 걸려. 우리 어른들이 당황하고 혼란에 빠지고 어쩔 줄 모르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야. 모두 우리의 생존, 더 정확히 말한다면 개인적 생존에만 급급해서 해방이나 독립 같은 궁극적인 사태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거지.(p282)

​이러한 변명에는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개인적 생존'이라는 가치에 대해 절대로 가벼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 생각하는 저이기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란 표현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제 치하를 살아남아내기 위해 취했던 행동들에 대해 지금 현재의 잣대로 '친일'이네 뭐네 재단한다라는 것이 심히 맘에 들지 않는 저이기에 !!!



네 할아버지 세대는 대체로 산만하고 일의 처리 능력이 없었다. 목표가 없었을뿐더러 여러 가지로 어리석기도 했지. … 그러다 나라 꼴을 개망신시키고 마침내 강산을 팔아넘기기까지 한 거야. 그러고 나서는 '이렇게 돼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달리 나라를 구해낼 길은 없었다'면서 나의 세대로 바통을 넘긴 거야.(282) …… 그렇게 해서 우리 차례가 됐을 땐 이미 늦었단 말야.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를 합병한 뒤였고, 그들의 통치는 막강하여 항거할 방법이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도 그때 벌써, 이른바 국제 정치의 흐름은 조선 합병을 하나의 기정 사실,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하기야 해외에 나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다닌 사람도 있었지만, 국내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한 일이란 건 거의 없어. 나라 안에 남아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 정신만을 굳세게 가지면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또 기대해 온 거야. 생존이지. 그야말로 생존, 살아남는 일이었어. … 살아남았다는 것만이 우리 세대의 업적이야. 그것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pp283-284)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기대하고 또 기대하며 살아남는 일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었다'란 아버지의 이 말에 물론! --- 혹자는 "그 세대에 '해방'이 주어졌으니까 성립되는 변명이다"라는 결과론적 비난을 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의 할아버지 세대인 '그들'이 어쨌든 살아남아 주었기에 그들의 후손인 저와 종원군 세대가 이런 해방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또 하나의 결과론적 주장이 오히려, '지금 이 시점의 현재'에선 훨씬 더 합리적이고 온당하다라 생각합니다.8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세대와는 달라서 우린 훨씬 강하고 자신만만한 세대가 될 거예요. 저희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갖지 못했던 해방과 자유를 갖고 출발하니까요. 그게 상당한 차이를 내고 말 거예요.…… 아무도 아버지의 세대가 나빴고, 누구의 세대는 훌륭했다는 식의 얘긴 못할 거예요. 우린 다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아버지? (pp284-285)

​라는, 제가 이 작품의 핵심적 부분이라 생각하는 위 구절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무소불위적 '절대적 선(善)'이라 자칭하고 있는) '친일 단죄'의 기준과 사고에 대해 정확하고 날카롭게 반박하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 해방 정국을 바라보는 강준만 교수의 다음 시각이야말로, 현재 '친일 단죄'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겐, 그들이 쥐고 있는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칼을 겨누고 있지 않나 싶네요. 


​"상호 타협하지 못할 원수는 없다. 우리가 오늘의 시점에서 해방정국의 극렬한 대립구도를 개탄한다면, 훗날의 사람들이 지금의 극렬한 대립구도에 대해서도 개탄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전투적 극단주의를 그대로 방임하는 걸 다시 생각해 볼 때다. 해방정국의 역사가 잘 말해 주듯이 중간에 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중간파'가 겪어야 했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화끈하고 '앗쌀'한 걸 너무 좋아하는 탓인지 여전희 '극단주의 미학'에 심취돼 있다. 이제는 이걸 자제하고 극복해야 한다. 역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일망정, 그것이 40년대 후반의 역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일 것이다."9



▶ 짧은 한두 마디 : "이름만 바꾸면 그 얘기는 당신에 관한 것이다."10 



※ 읽어본, 작가 김은국의 다른 작품 :  「순교자」 

※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들 :  

- 이광수 作, 「무정」

- 복거일 作, 「비명을 찾아서」

- 강준만 著,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 편」

 ------

1932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황해도에서 보냈다. - <작가 소개> 중.
이 책의 뒷표지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작가는 영어로 'Lost'라고 쓴 것을 '빼앗기다'라고 번역되기보다 '잃다'라고 번역되기를 원했습니다. - p311, <작품 해설>중.
이는 주인공의 친가와 외가 모두 부유층이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을 듯.
아버지의 이 말은 사실 다른 곳에서 등장했던 것입니다만, 이야기의 흐름상 주인공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라 이해해도 무방하다라 생각합니다.
그러했기에, 이 재미없는 소설에, 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만족도가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함석헌 옹의 '뜻밖에 도둑같이 찾아온 해방'이라는 표현 역시 해방 자체가 우리 민족이 벌여왔던 '투쟁의 산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 강준만 교수는 '솔직하자. 너와 내가 다 몰랐느니라. 다 자고 있었으니라'라는 또 다른 함석헌의 표현과 함께 그의 진의(眞意)는 반가움의 표현이 아닌 조선인, 특히 엘리트 집단에 대한 질책이었었다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일제의 지배가 끝이 나게 될까?'에 대해 여하히 부정적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일제 치하의 시절 속에서, "'역사의 불가항력'을 이유로 일본 군국주의에 거부할 수 없는 협력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라했던 윤치호의 주장이나 "오늘 해방된 지 38년이 지나도록 분단이 지속될 줄 알았다면 나는 차라리 신탁통치를 수락함으로써 민족분단의 비극을 예방하는 데 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탁통치를 식민지 연장과 같이 생각했던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랬듯이 즉시 독립에의 정열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신탁통치반대'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화물자동차에 올라타고 확성기로 외치고 다녔다"는 이영희 교수의 회고처럼, 당시의 친일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의 미숙이었을 뿐, 그것이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단죄되어야만하는 사상의 문제'였다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강준만 著,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 편」, 인물과사상사 刊, 2009, 중.
복거일 作, 「비명(碑銘)을 찾아서」, p87, 문학과지성사 刊, 1987.
- 접기
가살가죽 2015-11-28 공감(0) 댓글(0)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