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2

이재봉 [한반도 중립화: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2022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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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3 h  · 
≪한반도 중립화: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머리말

  2021년 3월 리인수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이 강연을 요청했다. 부산시의회에서 ‘한반도 중립화’에 관해 얘기해달라는 것이었다. 1년 후 2022년 3월엔 같은 주제로 중립화 전문가들과 함께 책 한 권 써달라고 부탁했다.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중립화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출판 제안 구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분단 100년을 넘기지 말자!”
  2022년 분단 77주년을 맞았는데 언제까지 분단의 사슬을 안고 살아야 하느냐는 한탄이 섞여 있었다. 1990년대부터 통일운동에 앞장서온 그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며 한반도 중립화를 통한 통일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늦어도 2045년까지 ‘중립화 통일’을 이루자는 목표를 세우고 평화통일운동을 적극 펼치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나도 1990년대부터 평화와 통일에 관해 공부하고 소박하게나마 시민운동에 참여해오면서 한반도 중립화와 통일에 관해 글도 쓰고 강연도 해온 터라 그의 제안을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즉각 중립화 전문가들에게 연락했다. 강종일, 김승국, 양재섭, 임상우, 정지웅 선생이 쾌히 승낙했다.
  중립화 관련 소주제를 7-8개 선정하고 그에 관해 누가 가장 잘 쓸지 정했다. 중립화에 관해 적어도 20여 년 연구해온 분들이라 집필기간을 6개월로 잡았다. 수시로 자료를 공유하며 8월까지 초고를 만들어 9월 토론회를 가졌다. 책 제목과 소주제 제목을 다듬고 각각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로 했다. 집필 시작 전 원고 작성 기준을 만들었지만, 두 가지 문제로 토론이 길어졌다.
  첫째, 용어 문제다. 이 책 제1장에서 자세히 다루듯, ‘중립화’는 전쟁이 일어날 때만 ‘일시적 중립’을 지키는 게 아니라 전시든 평시든 ‘영원한 중립’을 지키는 상태다. 국어사전엔 ‘영구중립’과 ‘영세중립’이란 용어를 같이 올려놓고 있다. 둘 다 “나라가 전쟁이나 군사 동맹에 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국제법상 독립 유지와 영토 보전을 보장받는 일”이라 설명해놓고 있는 것이다.
  ‘영구(永久)’와 ‘영세(永世)’는 영원한 기간을 가리키는 같은 뜻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영구 거주’, ‘영구 보존’, ‘영구 귀국’처럼 ‘영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중립’ 앞에서는 흔히 ‘영세’를 쓴다. 예를 들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소개할 때 ‘영세중립국’이란 말은 자연스러운데 ‘영구중립국’이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한편,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겐 ‘영세’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영세민’, ‘영세농’, ‘영세기업’ 등에서처럼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한 상태”를 가리키는 ‘영세(零細)’로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쉽고 널리 쓰이며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영구중립’을 쓰자는 주장과 오랜 관행으로 이미 굳어진 ‘영세중립’을 쓰는 게 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선 것이다. 통일은 이처럼 어려운 모양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쓰기로 했다. 이 때문에 ‘영구중립’이나 ‘영세중립’을 의미하는 ‘중립화’라는 용어를 될수록 많이 썼다.
  둘째, 글의 형식 문제다. 이 책 출판 취지가 통일운동가들도 잘 모르거나 오해하기 쉬운 중립화에 관해 널리 알리고 중립화 통일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일반대중이 되도록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각주와 참고문헌을 생략하자는 방안을 먼저 마련했다. 요즘 가짜뉴스가 많이 나오기에 독자들이 확실한 정보를 갖도록 하고 특히 앞으로 중립화에 관해 공부할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자료 출처를 반드시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는 수정안이 제기됐다. 이 대목에선 통일이 쉽게 이루어졌다.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자료 출처를 표기하되 되도록 본문에 포함해 읽기 편하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위와 같은 출판 취지와 편집 방침에 이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장과 제2장은 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겸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장이 맡았다. 강종일 박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중립화를 주제로 연구하며 10여권의 저서와 자료집을 펴냈는데, 중립화에 관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깊게 공부해온 학자일 듯하다. 제1장에서 중립의 의미와 종류에 관해 설명하며, 원래 전쟁 당사국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중립이 중립화, 영구중립, 비동맹 중립 등 몇 가지로 나뉘어 한 국가의 외교정책으로 발전했다고 밝힌다. 중립화가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외정책이 됐다는 것이다.
  제2장에서는 영구중립국 사례와 현황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세계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4개의 영구중립국이 있다. 과거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영구중립국이었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에 휘말리며 그 지위를 포기했다. 고종의 근세조선과 라오스는 중립화에 실패했다. 몽골이 현재 영구중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제3장은 언론인 출신 철학박사 김승국 평화통일운동가가 썼다. 요즘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확산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중립화가 휴전 또는 종전 조건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김승국 박사는 이 전쟁의 여파로 유럽의 탈중립 움직임이 일어나는 상황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됐듯,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NATO)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두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결 전선이 강화됨으로써 이전의 중립 상태보다 더 큰 안보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그는 예상한다.
  제4장을 맡은 정지웅 아신대학교 교수 겸 통일미래사회연구소장은 문학도였지만 최전방 군복무를 계기로 통일문제에 관심 갖고 정치학자로 변신해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남한의 통일정책과 중립화를 다루며, 먼저 1948년 이승만 정부부터 2022년 윤석열 정부까지 통일·대북정책을 소개 분석한다. 현재 남한의 대북정책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 지원을 지렛대로 북한 핵을 억제하고자 하는데, 이에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기에, 한반도 중립화 방안이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제5장은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양재섭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다. 양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이학박사를 받아 대구대학교에서 30년 이상 가르치고 연구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박사를 받은 북한전문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통일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북한의 통일방안과 중립화정책을 다루는데, 북한은 1960년 잠정적 통일방안으로 연방제를 제안하고, 1980년 중립국가의 정체성을 추가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놓은 후 조금씩 다듬어왔다. 그리고 1997년 ‘조국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그리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모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체계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연방제 중립국 통일방안’을 고수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제6장에서는 이재봉 원광대학교 명예교수가 한반도 중립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짚어본다. 평화학자이며 통일운동가인 그는 남한이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인 미국과의 군사동맹 때문에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며 중립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요즘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커지고 있는데 만약 무력충돌로 이어진다면 주한미군 때문에 남한이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으로는 남한이 자주성을 지니고, 밖으로는 중국의 힘이 미국과 비슷해지거나 커지면 한반도가 영구중립국이 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제7장은 편집과정에서 급히 추가됐다. 이재봉 교수가 2022년 10월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국방전략 보고서들과 중국의 공산당대회 보고서를 비교해 읽어보고 대만을 둘러싼 전쟁 가능성이 머지않아 현실화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남한의 대비책으로 한미동맹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제6장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한반도 중립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기 위해 그대로 싣기로 했다.
  제8장에서는 임상우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한반도 중립화를 위한 당면과제와 전망을 다룬다. 최근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중추사)> 사무총장을 맡았던 그는 한반도 평화와 궁극적 통일은 오직 중립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한반도 중립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여러 과제와 쟁점들을 비교 검토하며, 요즘 급변하는 국제적 패권세력의 재편에 따라 중립화 통일운동이 채택해야 할 전략 및 당면과제를 제시한다. 특히 신냉전이 시작되는 국제질서의 ‘대전환의 시대’에 동아시아와 한반도가 격동의 현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중립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끝에 부록을 달았다. 저자들이 중립화에 관해 글을 발표하거나 강연하면서 받아온 질문과 비판에 대한 간략한 답을 모아 실은 것이다. 대부분 본문에서 다룬 내용이지만, 우리 사회에 ‘중립’에 관해 오해와 편견이 너무 많기에 강조하는 취지로 쉽고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오래 전부터 중립화에 관해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이 책 출판을 제안하고 후원해준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감사드린다. 바쁜 출판 일정 가운데서 기꺼이 교정, 편집, 출판을 맡아준 들녘출판사에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중립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고 한반도 중립화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길 기대한다.

2022년 11월
엮은이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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