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0

‘팔순의 아나키스트’ 김원식 할아버지와 전쟁과 평화, 섹스를 이야기하다

내가 왜 ‘비전’(非戰)이냐고? : 사람과 사회 : 한겨레21

[ 사람과 사회 ] 2003년03월06일 제449호


내가 왜 ‘비전’(非戰)이냐고?

‘팔순의 아나키스트’ 김원식 할아버지와 전쟁과 평화, 섹스를 이야기하다





2월15일 전 세계 반전행동의 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도 반전 목소리가 드높게 울려퍼졌다. 넘실대는 구호와 슬로건 사이에 유독 눈길을 끄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비전(非戰)’. 이 문구가 쓰인 피킷을 목에 걸고 서 있는 이는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이었다. 발치에는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작은 책자 <非戰-환경과 反차별>이 쌓여 있었다.



자본주의·사회주의에 다 두들겨맞다






사진/ 60여년 사상편력 끝에 김원식 할아버지가 선택한 대안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아나키즘이다. (박승화 기자)


노인의 옆에는 머리를 물들이고 피어싱을 하고 큼지막한 A를 동그라미 안에 써넣은 배지를 가방과 옷에 붙인 젊은이들이 북적댔다. 젊은이들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는 그들을 ‘내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아나키스트 김원식(80) 할아버지는 전쟁·군대 없는 세상을 꿈꾼다.

할아버지는 “기자를 싫어한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왜 반전이 아니라 비전인지 궁금해서 그런다”고 말하자, 그는 일단 만나보자고 했다. 2월27일 오후 서울 역촌동 그의 집을 방문했다. 전화상으로 돌고 도는 주택가 골목길의 너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덕에 집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문에 붙은 주소판에는 김원식·리경구라는 내외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짧게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길게 억압과 차별과 구속 없는 삶을 논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실패한 체제고 그 대안이 아나키즘인데, 두 체제가 하도 두들겨패서 사람들은 아나키즘의 긍정성과 생명력을 삐딱한 눈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은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나와 남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저마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상이자 태도라고 설명했다.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좌익활동을 하고, 남로당에 입당하고, 당 정치 지도원으로 전쟁을 거치고, 사상범으로 10년간 옥고를 치른 이가 하는 말이기에 무게가 남달랐다. 그는 1958년 좌익활동 혐의로 체포됐으나 남한정부가 강요하는 전향서는 끝내 쓰지 않았다. 하지만 68년 마흔 중반의 나이에 감옥에서 나온 뒤 세상을 보는 인식틀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사회주의가 사실은 똑같은 작동원리로 사람을 구속하고 괴롭힌다는 사실에 눈떴다. 양대 체제로 나뉜 세계의 한쪽 주인은 자본가였고, 다른 쪽 주인은 당 엘리트였다.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아나키스트들이 반자본주의 깃발을 들고 대대적으로 활동했지만, 두 체제가 자기들 좋을 데로 기록한 역사에서 이들의 활동은 쏙 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환경주의자이자 과학자다. 할아버지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싫어하는 가장 큰 까닭은 두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동시에 자연과 환경을 억압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출옥 뒤 오랜 동지로 함께 옥고를 치른 리경구 할머니(75)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아들은 “배만 안 곯렸는데 지대로 커서” 지금은 분자생물학 박사로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자신보다 훌륭한 아나키스트라고 믿고 있다. 할머니 역시 이런저런 역사관련 세미나에 참여하며 바쁘게 지낸다.

1970년대 온 국토가 개발 드라이브로 무지막지하게 파헤쳐질 때 일찍부터 환경문제에 눈뜬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나온 환경서와 아나키즘 책자를 많이 번역했다. 책을 내는 것은 신념에 따라 직업을 갖지 않은 할아버지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시민과학자로 살다> <원자력신화로부터의 해방>은 입소문만으로 두꺼운 독자층을 형성한 대표서다.



늘 생각하고 상상하고 토론하고…




사진/ 아나클랜 게시판에 오른 2월15일 할아버지의 비전(非戰) 시위 장면.




할아버지는 누구와도 위계를 두지 않지만, 말을 시작하면 좀 길게 하는 편이다. 귀가 어두운 탓에 오른쪽에 보청기를 끼고 있다. 왼쪽 눈은 15년 전부터 안 보인다. 하지만 누구보다 잘 듣고 잘 본다. 늘 생각하고 상상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이끄는 ‘상계동 모임’(cafe.daum.net/anarchism)은 젊은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인 ‘아나클랜’과 더불어 아나키즘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모임이다. 반전행동의 날, 아나클랜 친구들이 할아버지에게 함께 시위하자고 연락해왔고, 할아버지는 흔쾌히 사과상자를 잘라 자신이 외칠 구호를 쓴 피켓을 만들어 거리로 나온 것이다.

할아버지집 화장실 좌변기 중간 덮개에는 면양말 두짝이 끼워져 있다. 엉덩이 닿는 부분이 차갑지 말라고 끼워놓은 것이다. 낡은 양말을 재활용할 수 있고, 떼어 빨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할아버지는 생명력과 상상력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생명력으로 섹스와 출산이, 상상력으로 수많은 변혁들이 이루어졌다. 볼셰비키 혁명처럼 국가체제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개인의 혁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하나에 고정되지 않는 것, 마음을 열어두고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습관이다. 전쟁이 싫은 것은 생명력과 상상력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80여개 나라의 전쟁에 관여했다. 미국이 개입했거나 점령한 지역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전쟁으로 1800만명이 죽었다. 모두가 체제나 집단 간의 지배권 다툼이었다.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내세워 살육하고 잿더미로 만드는 전쟁을 어찌 긍정할 수 있겠으며, 자유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지배욕을 포장한 미국의 전쟁 책동을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느냐는 것이 할아버지 주장이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군수자본이 만든 무기로 중무장한 이라크 역시 할아버지 눈에는 똑같은 전쟁론자일 뿐이다. 어떤 이유로든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구호는 반전(Anti War)이 아니라 비전(No War)이다. 반전이라는 구호는 전쟁이 있다는 전제로 만든 것이지만, 비전은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구호다.

할아버지의 전쟁반대 방식은 단재 신채호의 “두고 보자론”과도 통한다. 할아버지가 붙인 이름이다. 할아버지에 따르면,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공포분위기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쳐다보기만 해도 때리고, 쳐다보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고 때리는 식이었다. 단재 선생은 “‘이노무 새끼들 어디 두고 보자’는 생각이라도 가져라”고 줄곧 주창했다. 단재 사상은 줄곧 실패를 거듭했으나 결코 실패를 자인하지 않은 도도한 아나키즘의 물결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일평생 ‘자유로운 섹스’ 추구



할아버지가 추구하는 ‘비폭력 직접행동’ 방식은 한마디로 “잡아 뜯자론”이다. “빌빌대면서 지내. 결코 죽지 말고. 존재 자체가 저항이야. 하지만 틈나는 대로 잡아뜯어. 체제를 집단을 국가를. 하지만 대항 체제와 집단과 국가를 만들어 또 다른 지배 형식으로 잡아뜯는 게 아니라 우우 몰려가서 그냥 막 잡아뜯어. 여럿이 막 잡아뜯으면 언젠가는 다 뜯기게 돼 있어.”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할아버지 집을 나와 안국동행 버스를 탔다. 범정치권에 있는 어떤 사람이 할아버지를 만나자고 했다 한다. 할아버지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세 가지 커다란 욕망이 있다. 식욕, 성욕, 그리고 동아리욕이다. 동아리욕이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즐겁게 지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할아버지가 일평생 추구해온 것은 억압과 독점과 지배 없는 자유로운 섹스였다. 한국에서는 아나키즘이 대중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탓에 섹스에 관해 많이 말하고 쓰지 못했지만 할말이 참 많다고 했다. 일부일처제를 절대선으로 놓고 한 사람의 파트너에게만 충실하기를 강요하는 관계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옥죄는지, 관계를 얼마나 해치는지에 관해서도 여러 사례를 들어 얘기했다. 할아버지는 본성이 아닌 제도에 기대어 편하게 안주하려 하면 수많은 가능성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라면 사람에 대한 독점과 질투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어느 날 파트너가 떠났다면, 설사 힘들어도 그것은 남은 자가 감당할 몫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덜컹거리는 도심버스를 타고 우리는 줄곧 섹스를 주제로 얘기했다. 버스 안 승객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멀쩡하게 생긴 30대 여자와 한쪽 귀에 보청기를 낀 80대 노인이 섹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아주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수많은 금기와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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