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1

알라딘: 노회찬 평전 이광호,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2023

알라딘: 노회찬 평전

노회찬 평전 
이광호 (지은이),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사회평론2023














































Sales Point : 19,928

9.9 100자평(8)리뷰(6)

목차


발간사 : 노회찬 평전을 펴내며
기록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새로운 정치언어의 탄생

제1장 “나를 키운 8할은 학교였다”
1950∼1972년: 2개의 고향, 반항적 모범생

어머니의 피란길 / 아버지, 하이네를 사랑한 식민지 청년 / 약방 집 아들 / 모범생과 반항아 사이 / 정의감과 무력 행위 / 가난을 벗어나다 / 부산중의 ‘노괴물’ / 부산고 낙방 미스터리 / ▂ 노회찬 가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실향사민

제2장 첼로와 유인물
1972∼1975년: 탈출, 자유, 질풍노도의 3년

1972년 10월 17일 / 낙방의 행운 / 외삼촌의 아우라, 조카를 물들이다 / 14년 후 세계정세를 전망한 까닭 /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잡지 한 권 / 화동에서 평생 벗들을 만나다 / 4·19묘지 참배를 제안하다 /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소년 / 노괴물에서 노지심으로 / 함석헌, 선우휘, 김상현 / 유신 1주년 기념 ‘거사’ / 소년 노회찬의 ‘잡설’ / 새해 첫날 정치를 생각하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 /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입시생

제3장 참당암의 결의
1976∼1983년: 삶의 목표를 세우고 ‘민중의 바다’로

해변 도시의 젊은이들 / 스무 살의 일기 / ‘의지를 앞세우지 않는 직업전투원’ /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생활 / 선운사 참당암에 간 까닭 / 노동 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 / 구원과 깨달음 / ▂ 의형제 김종해더보기



책속에서


사람들은 노회찬의 발언이 가슴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다고 입을 모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발언은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볼수 있게 해주는 안경 같은 역할을 했다.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소설가 조세희가노회찬의 언어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 더보기 - gau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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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광호 (지은이)


1956년생인 노회찬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났다. 1992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 시절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회찬을 처음 만났고,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일했다. 『미디어오늘』, 『노동과 세계』, 『진보정치』, 『레디앙』을 창간하고 편집 책임을 맡았다.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두 수레바퀴가 잘 굴러갈 때 정치가 좋아지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노회찬과 공유하고 함께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고 있다.

최근작 : <노회찬 평전>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

노회찬재단은 노회찬 의원의 정치 철학을 계승하여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국고나 정당의 지원 없이 오직 후원 회원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추모 및 기념 사업, 아카이브 구축 및 운영, 정치학교와 시민교육, 6411 투명인간의 목소리 대변과 조사 연구, 나눔과 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불평등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정신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노회찬의 삶과 꿈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1992년 부모님께 보낸 옥중편지에서, 본문 191~192쪽)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회찬의 삶을 집대성한 『노회찬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 말과 글, 행적을 모아 ‘노회찬 아카이브’를 구성하였으며, 저자 이광호는 여기에 노회찬의 가족, 동지, 친구들의 기억을 보태 방대한 원고를 정리하였다.

노회찬의 삶을 노동운동과 완전히 분리하여 서술할 수는 없으나, ‘운동사’ 그 자체가 아닌,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직접 겪어낸 노회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보여준 휴머니즘,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회찬의 고민과 그 과정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단,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2023년 현시점의 정본 전기’를 지향하며 노회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현재 사회 상황에 적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노회찬이 학생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고,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을 거쳐, 이후 한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진보정치에 몸담기까지, 그가 경험하고 성찰하며 행동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휴머니스트 노회찬은 지금 뭐라고 말할까?”

노회찬의 삶을 통해 엿본 그의 단면은 독재에 저항하고 억압과 착취에 분노한 휴머니스트다. 혐오와 갈등, 차별과 편견, 냉소와 체념을 발견하기가 무척 쉬워진 사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절실해진 지금이다.
노회찬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 부쩍 첨예해진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라면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지금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이 질문은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자는 호소이며, 연대를 요청하는 메아리다.

이 책을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내고,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인간 노회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앞세우는 노회찬 정신은 ‘평등과 공정’이다.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삼겹살 불판’이나 ‘6411 버스’가 그의 생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듯이, 노회찬의 정신을 한 가지 단어나 사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나, 평등과 공정이 현재 사회에 절실한 가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불의가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노회찬의 직업이었고, 그 바탕에는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 책은 노회찬의 휴머니즘이 “구체적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본문 479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노회찬, 우리가 모른 노회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사회·정치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반항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2018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복도에는 조문을 하러 온 사람들의 긴 줄이 계단으로 타고 층층이 이어졌다. 노회찬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먼저 온 사람 나중 온 사람만 있을 뿐 윗사람 아랫사람은 없어서 국회의장도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했다.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저마다 소곤소곤 적당히 복작대는 분위기에는 저잣거리부터 국회의사당까지 평등을 실천하려던 고인의 뜻이 어린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친구 같았던 정치인을 떠나보냈다.

노회찬의 삶은 어땠을까?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모범적인 학생이기도 했고, 시험에 낙방해 분루를 삼킨 수험생이기도 했으며, 어려서부터 사회변혁을 꿈꿨던 될성부른 혁명가이기도 했다.

노회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과서다. “인류가 현재까지 성취해낸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 보편적 가치와 철학으로 채워진 책.”(본문 43쪽) 이것이 노회찬이 말하는 교과서였으며, 그는 자신의 삶에 교과서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감과 인류애는 확고한 가치로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발표한 날, 열여섯 노회찬은 부리나케 집으로 가 교과서를 펼쳤다. 교과서에는 그가 생각한 대로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날로부터 1년 후인 1973년 11월 29일.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을 제작하여 살포했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본문 105쪽)에서 노회찬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반항적 모범생’이었다.

노회찬만큼 운동과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면 대학생 시절에도 학생운동으로 이름깨나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이라는, 당시로선 특권적일 수 있는 지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저항과 변혁의 맹아는 노동 현장에 있다고 판단하고 일찍부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용접을 배우러 다녔고, 83년에 용접 자격증을 따 서울, 부천,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4년부터는 노동 현장으로 가는 대학생 운동가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노회찬은 그보다 조금 빨랐던 셈이다.

그가 얼마나 철저히 노동자로서 생활했는지는 아내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김지선 씨조차 부산의 시어머니를 만나서야 남편이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정도였다. 김 씨도 당시 내로라하는 노동운동가였고, 비혼으로 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노회찬의 절절한 청혼에 마음이 움직여 1988년 부산의 시댁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해 12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제도적 민주화의 길을 살짝 열어주었지만 투쟁의 현장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었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좌경 세력으로만 치부하며 탄압을 했고 노동운동가들은 언제 체포영장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노회찬 역시 1989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대공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김지선 씨는 매일 홍제동 경찰청 대공분실을 찾아가 기어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는 경찰이 알지 못하게 동지들한테 전할 비밀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2년 4개월 남짓 되는 기간 노회찬은 어머니에게 83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두 배가 넘어 172통에 이른다. 비록 징역살이를 하고 있지만 올바른 일을 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고 결연한 ‘위로’를 담은 편지글 말미에는 면회 오실 때 멀미하시지 않게 ‘귀밑에’를 챙기라는 노회찬 특유의 잔정이 서려 있다.

진보정당 역사와 얽힌 삶의 여적

1990년대 노회찬의 삶은 영화로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진보정당의 역사와 겹쳐 펼쳐진다. “불판 갈아보자”는 촌철살인으로 하룻밤 새 화려하게 떠오른 정치 신인으로 비쳤지만 그 뒤에는 기나긴 노력과 활동, 공부가 있었다. 거대정당들에 비하면 덜 알려진 소수정당, 진보정당의 역사가 노회찬의 삶과 얽히고설켜 있음을 평전은 잔잔히 풀어내고 있다.

노회찬은 모범생이자 반항아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이미 모두 알고 있었던 가치를 당당히 외치고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사회가 불의하면 싸우는 게 당연한, 그게 모범이라고 생각한 반항아였다. 그의 부모님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어떻게 피란해 부산까지 오게 되었는지, 노회찬은 부산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쪽 가족 이야기의 실종이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 어떻게 첼로와 책을 좋아하는 모범생이면서 반항아인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는지도 평전은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노회찬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억할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노회찬 평전』이 그의 삶을 톺아보는 여러 평가 중 하나일 뿐 노회찬 전기가 아닌 이유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일터의 노동자로서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들을 나누었는지를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것은 그의 삶을 평가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다. 감히 독자에게 권하건대 조금 더 알아도 좋다. 그럴 만한 사람이다, 노회찬은. 접기


북플 bookple



"이세돌 개인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둔 다음 이세돌이 한 말이라고 한다.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 전체에서는 위대한 도약"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이라고 한다. 노회찬 평전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진보정당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 더보기
kinye91 2023-08-21 공감 (26) 댓글 (0)



지난 월요일밤 몇 권의 책들이 도착했다. <노회찬평전><7번국도revisited><권력과 진보> 진보가 사라진 시대, 노회찬이 그립다. <노회찬평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2018년 여름 대전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전해진 속보의 충격은 아직도 잃을 수 없다. 그 삶속에서 ’부끄러움‘은 일관된 방향이었다. 노회찬... 더보기
mailbird 2023-07-22 공감 (36) 댓글 (0)



제17대 국회 개원 첫날이던 2004년 5월31일, 민주노동당 소속 초선 의원(10명)들이 국회에 등원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노회찬(1956~2018)이 대답했다 “당사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서민들 노동자 농민 대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사실 50년이 걸렸어요.”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1960년 4월혁... 더보기
나와같다면 2023-07-17 공감 (36) 댓글 (2)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 노회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잘 읽어 집니다. 600페이지의 책을 이렇게 휘리릭 읽기는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마지막엔 울면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지금 시기 더욱 그리운 분입니다.
산책 2023-07-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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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평전에 이은 생애 두 번째 평전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노회찬...... 그립습니다
바다 2023-07-05 공감 (2) 댓글 (0)

마이리뷰


[마이리뷰] 노회찬 평전

지난 월요일밤 몇 권의 책들이 도착했다. <노회찬평전><7번국도revisited><권력과 진보>진보가 사라진 시대, 노회찬이 그립다. <노회찬평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2018년 여름 대전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전해진 속보의 충격은 아직도 잃을 수 없다. 그 삶속에서 ’부끄러움‘은 일관된 방향이었다.노회찬은 진보정치의 원칙뿐아니라 유연함의 상징이다. 몇 개 장면은 감동적이다. 마지막 가는 길 배웅은 우리사회 ‘투명인간’ 청소노동자가 함께 했다.
mailbird 2023-07-22 공감(3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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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갔지만, 진보정치는 계속 된다



"이세돌 개인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둔 다음 이세돌이 한 말이라고 한다.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 전체에서는 위대한 도약"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이라고 한다.




노회찬 평전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를 비롯한 진보정당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그들 개인에게도 큰 일이었겠지만 (이는 결코 작은 걸음은 아니다. 다만, 개인보다는 진보주의자들을 대표했다고 할 수 있으니, 이런 말도 통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위대한 도약을 이룬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기대만큼 일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고, 또 진보들이 스스로 고질병이라고 하는 분열로 인해 여러 번 이합집산도 거쳤지만 (오죽하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을까), 그래도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고 본다.




바로 그 중심에 노회찬이 있었다.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슬프지만 그는 갔으니, 과거형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많은 어록을 남긴 정치인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들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세상을 등졌다.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을 하나 고르라면 '교과서'라고 답을 하겠다던 노회찬.




교과서가 무엇인가? 좋은 말만 적혀 있는 책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과서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차별들을 살펴야 한다. 그래도 대체로 교과서는 옳은 말을 하는 책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미래 세대에게 전수했으면 좋은 것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과서가 지니고 있는 편향성이라든지,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지 말고, 그냥 통상 교과서적 인간이라고 할 때 쓰는 그런 비유적 표현으로 쓴다)




노회찬은 교과서대로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을 보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 자신들에게 가르친 대로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가? 그는 그렇게 교과서적 인간이 되었다. 앎과 행동을 하나로 한 인간.




자신의 이익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해야만 할 일을 했던 사람.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렸던 사람.




사회에서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을 우리 눈 앞에 보여준 사람. 그런 정치인이 노회찬이었다. 그러니 어떤 말로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세상을 등졌으리라.




하지만 정치인 누구나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온갖 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법망을 피해가려고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또 법망을 못 피할 것 같으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교과서적 인간 노회찬은 그런 정치인이 될 수 없었다. 그는 교과서에 실린 대로 옳다고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비록 실수라고 해도, 그 실수로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요즘 부쩍 그가 생각났다. 정치판이 참... 그러다 노회찬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의 평전을 샀다. 56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600쪽 내외에 담는다는 일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 정도 두께면 노회찬이 한 많은 일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환경. 교과서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노동운동가로서의 삶. 여기서 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정당의 필요성을 깨닫고,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는 정치가로서의 삶. 진보정당원으로서 국회의원이 되어 한 활동들.




국회의원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변하는 자리, 봉사하는 자리임을 너무도 잘 알고 행했던 사람. 정치를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특히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서 할 줄 알고 또 하려고 했던 사람.




많은 일들을 겪고, 진보정당의 부침도 겪으면서 진보정당이 국민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했던 사람.




그런 그의 삶이 이 책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노회찬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우리 곁에 있었던 우리가 필요로 했던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6411번 버스 연설로 알려진 그의 말. 이 책에 그 연설이 실려 있다. 그가 어떤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연설.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다. 마치 마친 루터 킹 목사가 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습니다 보다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도 기억할 수 있는 연설을 남겨준 노회찬이 고맙기도 하다.



우리가 투명인간 취급했던 사람들을 우리 앞으로 불러내었던 정치인. 하지만 이 연설에서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바로 '투명정당'이라는 말이다. 숨어 있는 정당. 정작 자신들이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는 그런 정당.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은 절대 놓치지 않는 정당. 그런 정당이 투명정당이다.




투명인간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했을 때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약자를 의미하지만, 투명인간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해 이익을 취했던 인물 아닌가. 그러니 노회찬이 말한 투명정당은 바로 그런 투명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 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 분들의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431-432쪽)




통렬하다. 통쾌하다. 투명정당, 진보정당이 투명정당이었다면, 그간 다른 정당들은 보이지 않는 정당이 아니라 아예 드러내 놓고 빼앗아가는 정당이었을 것이다. 한데 어떤 정당 정치인도 노회찬처럼 이렇게 반성하지 않았다.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노회찬이 비판한 투명정당보다 더한 정당으로 남아 있다. 그런 정당들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말, 투명정당. 그래서 이 연설은 더 소중하다.




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촌철살인. 노회찬의 말하기였다. 적절한 비유. 그렇다. 비유는 길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 이쯤에서 마치자. 다만, 앞의 말들을 좀 바꾸어서 끝내고자 한다.




"노회찬의 국회의원 당선은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진보정당 전체에서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노회찬 개인은 죽었지만 진보정당이 죽은 것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말도 이러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5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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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23-08-21 공감(2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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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첫차를 타며 노회찬이 꿈꾸던 세상



"2018월 7월 23일 월요일 오전 9시33분에 수행 차량에서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고, 5분후 아파트 경비원은 투신 사망한 노회찬님을 발견하여 112에 신고했다."(본문 p.543)라는 구절을 읽으며 당시의 비통한 심경이 느껴져 다시 한 번 눈물을 훔쳤다.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농민, 미화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한 노동운동과 의정 활동에 반평생을 바친 정치인, 노회찬! 곧 그의 사망 5주기가 다가오는데 그의 고단했던 정치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자는 취지에서 띠지에 그 마음을 담았다.
제목은 이 책 목차중 본문의 마지막 11장의 "너무 짧았던 마지막 봄 2016~2018년 : 당당한 전진을 위한 '멈춤'"이라는 내용에서 따왔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제대로 '봄'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소위 '학출'임을 철저히 숨기고 용접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인천지역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조용하지만 강단있게 이끌면서 당시 노동운동계 선배였던 김지선씨와 결혼도 하고, 이후 군사독재정권에서 문민정부로의 이양기에 노동운동의 지하조직을 지상 즉, 민중들 사이에서 함께 참여하는 정치조직으로까지의 확대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실천적 지식인, 노회찬.

소위 '드루킹(본명 : 김동원)사건'의 노회찬 후원금 관련 불법 정치 자금 수수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고교 동창 도두형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된 김동원의 인터넷 까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초청 강연으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한 차례씩 총 3회 경공모 초청 강연을 했고, 2016년 2월 23일 창원에서 출마해 선거 운동 중이던 노회찬에게 도두형이 전화를 걸어 와서 '김동원이 선거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상의하기 위해 만났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했고, 3월 7일 파주에 있는 경공모 사무실에서 노회찬은 김동원으로부터 2,000만 원을 전달받았고, 김동원은 이날 경공모 회원 단체 대화방에 자금 전달 사실 공개와 더불어 추가 모금을 위한 강의 개설 비용 기부를 요청하여 17일 창원에서 경공모 회원 200여 명이 모은 2,000만 원을 노회찬 쪽에 전달했다. (...중략) 이렇게 2,000만 원씩 두 차례에 걸쳐 받은 경공모의 후원금은 회계 담당에게 전달되어 선거 비용과 선거 후의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본문 pp.536-536 참조)고 한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아니 어쩌면 그의 인생을 통틀어 스스로에게 가장 수치스러웠던-어떤 정치인은 "자괴감이 든다"라고 표현했던-사건이었는지 고집스럽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던 정치인 노회찬은, 자신의 가족보다 소중하고 목숨만큼 아끼던 당원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던 지지자들에게 '부끄러운 삶' 대신 '당당한 죽음'을 택했다.
금품수수나 뇌물의 금액의 많고 적응이 유죄 여부를 가리는 판단의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집권 세력과 같은 방향에 서 있는 집단의 소위 50억, 100억 등의 뇌물 성격의 자금의 흐름은 흐지부지 묻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며, 죽음으로써 속죄를 구한 의롭고 외로웠던 정치인 故노회찬의 '너무 짧았던 봄'은 한없이 아쉽고 안타깝다.

각종 정치 오류를 어지러운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짧지 않은 시간 고민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갔을 마지막 글에 그가 하려 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18. 7. 23.

노회찬 올림"

(본문 pp.553-554)




본 서평은 사회평론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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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의꿈 2023-06-20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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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정치의 역사



너털웃음이 어울릴 것 같은 위트 넘치는 남자. 한 손에서는 블랙베리, 다른 한 손에는 아이폰을 쥐었던 얼리어답터. 늘 청소 노동자와의 식사로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사람. 백지에 잉크 한 방울 떨어트린 게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온통 검은 색인 정치인들도 널리고 널렸는데.. 최고의 공격은 '농담'이라고 했던 우리 시대 서민의 언어로 정치를 했던 사람의 모습이 궁금해 책을 열었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가 걸어온 길을 만날 수 있었다.

평전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대기라고 해야 할 만큼 사실 위주의 서술을 하고 있는 이 책은 사회평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노회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당 대표 수락 연설로 유명한 '6411 연설'이다. 4시 반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의 풍경을 그리듯 얘기한 즉흥적인 연설이었다. 여전히 그는 우리 시대에 주목받지 못한 사람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이었고 그런 일을 하지 못한 당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노회찬은 삼성 X파일로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 1위 기업과의 대결은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알지만 터트릴 수 없는 사실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하지만 당시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노회찬 뿐이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를 잘 사용했지만 황교안의 검찰은 노회찬을 통신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삼성과 관련자들은 모두 무혐의되었고 이건희는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연이어 노회찬은 우리 사회의 전관예우에 대해 터트렸다. '만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 만 명을 위한 법이다'라는 그의 말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더욱 가옥하 다루는 경제 사범, 법조계 사범들을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여한 ~~', '진심으로 뉘우치고 ~~' 등을 이유로 감형을 시도했다. 하지만 묵묵히 일하며 '사회에 헌신한~~~' 이유로 감형되는 일은 없었다. 가진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커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전관예우는 지금도 여전히 팽배하다.

노회찬을 삶을 드려다 보면 한국 진보 역사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한 명의 십 대가 '교과서와 같은 삶'을 지향하며 시작한 인생이었고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목줄을 걸어보겠다고 목숨 걸고 싸웠던 일생이었다. 위트 넘치고 사람 좋아 보였던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노동자의 안녕과 권리를 사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은 새삼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좌측에 서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과 아주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뿐이다.

아무런 지지 기반도 없이 부딪쳐온 인생이었다. 거대 양당에 치이기 일쑤고 당내에서도 지지기반은 없었다. 개인의 호감으로 선거를 했다면 지지 않았어야 할 순간에도 집단의 결정에 의한 투표에는 번번이 졌다. 대중에게는 호감을 사는 일은 잘했지만 개인에게 호감을 사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시 한번 거대 양당의 소용돌이에 존재감이 사라진 진보정당이지만 그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사에서 국회까지 걸어서 5분 거리. 국회의원을 내기까지 50년이 걸렸다. 노동자는 삶이 힘들어 작은 이익에서도 서로 다툼이 생긴다. 하나의 민의로 이끌어낼 분노가 없다면 이내 사그라든다. 기득권은 살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득이 될 것 같은 긴 시간도 똘똘 뭉친다. 민중이 기득권을 이길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얘기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보수파가 되는지에 대해. 진보와 혁신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변화는 늘 고통이 따른다. 가난할수록 이것을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혁명은 늘 순식간에 이뤄줘야 한다. 눈 떠보니 세상이 바뀐 것처럼.. 다 같이 살자는 메시지가 너무한 것이라면 적어도 사람답게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분단의 특수한 상황은 이념의 편향을 가져다주었고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게 가능했다.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준 철학자가 누구인가는 질문에 '마르크스'는 압도적인 일 위를 차지했다. 그의 사상을 펼치던 많은 정치가들의 방법이 잘못되어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왔지만 그로 인해 복지 국가는 하나씩 정착되어 가기도 한다. 노회찬이 영국 강연을 갔을 때 빨갱이라며 손가락질하던 한 사장은 다음 강연에는 천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노회찬 같은 빨갱이는 필요해'라고 대답했단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 모델은 북유럽이다. 노르웨이, 스웨덴이라는 넓은 땅과 풍족한 자원 그리고 적은 인구는 우리와 같을 순 없지만 그들은 사회 제도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고 있고 사회 제도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더 납부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도 불만은 존재하겠지만 국가의 철학이 사회에 스며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회찬은 그런 면에서 21세기의 진화된 사회민주주의를 우리나라에서 싹을 틔우려 했다. 꿈은 현실과 부딪쳐 나와야 하는 것이고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용접을 배우고 용접공의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 그 일을 잘해야 그들의 삶을 이해할 있다고 생각했다. 신뢰는 논리와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그의 말을 우리 정치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부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짓말. 그건 자신이 지켜온 신뢰를 내다 버리는 일이었기에 그는 참 많이 부끄러웠나 보다. 오십억을 받아도 안 받았다고 떳떳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 행정 업무 실수로 처리하지 못한 두 번의 이천 만원. 그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여전히 험난하고 조금 더 사람다운 사람은 사라져 가는 세상이다. 정치가 실종된 2023년의 현재에 노회찬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서민의 말로 싸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꼰대 정치가들보다 더 기회주의자 젊은 정치인들이 판을 친다. 그래도 용혜인 같은 의원도 있어 희망은 있다.

거대한 기류 속에 내가 해내겠다는 생각은 오만하다고 했다. 자신은 거대한 진보의 기류 속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던 노회찬 의원.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가시고 노무현 정신이 세상에서 자라듯 노회찬 정신도 그렇게 조금씩 움트길 기대해 본다.

6411번 버스를 타고 투명인간처럼 세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세상이 되길 이 책과 함께 기원해 본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조금 먼 길이라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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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py 2023-06-25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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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만큼 그리운 거겠지



예전부터 노회찬과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20대인 나는 노회찬과의 접점은 적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TV 토론에서 노회찬을 보고 난 후 관심을 갖기 시작해 애정 아닌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토론과 연설들을 있는 대로 찾아보며 대학 2학년 시절 ‘현대시창작’과제로 ‘6411버스’와 관련된 시를 쓸 정도였다. 마침 사회평론에서 정식 발매 이전에 <노회찬 평전>서평단을 모집해서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뽑아주셔서 표지와 띠지가 없는 가제본을 먼저 보내주셨다. 드디어 노회찬에 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보 정당을 지지해 달라거나 노회찬을 긍정적으로 봐달란 말도 아니다. 그저 그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정치란 무엇인지,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마음이다. 나의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넘어가도 무방하다.



나에겐 노회찬이란 인물은 정치인이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보게 만든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인물이다. 그에 대해 뭔가 씁쓸함이 남아있다. 일부러 힘든 길을 선택한 그에게 도움 하나 못 주고 응원만 한 아쉬움이랄까. 이번에 나온 <노회찬 평전은> 노회찬과 함께했던 동료 이광호가 쓴 노회찬 인생 이야기다. 세세하고도 감정이 어느 정도 절제되어 그의 인생이 더 잘 다가왔다. 500페이지가 조금 넘어 생각보다 두껍긴 하지만 간결한 문체와 정보 전달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정치인 노회찬. 길고 긴, 다사다난한 인생이다. 노회찬은 피난민 부모 아래서 모범생으로 자랐지만 반항정신이 강해 선생님에게 따져 묻기를 잘했으며, 그런 천성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한 전형적 운동권 국회의원으로, 진보 정당 역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평전에는 그의 정계 입문부터 개혁신당, 국민승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을 거치고 거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정치 역사, 특히 진보 역사는 굉장히 정신없이 돌아갔음을 다시 느끼게 했다. 진보 정치에는 위기도 많았다. 보수는 부패하고 진보는 분열해 망한다고 그러지 않나. 특히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때는 분노와 분열의 최고조를 찍었다. 진보 유권자의 희망과 그의 노력을 배신하는 황당한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논란을 수습 짓고 총대를 매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해법은 동반 사퇴와 같은, 같은 당 의원도 말리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의 성격은 그랬다. 할 때는 해야 하고 손해 보더라도 하는 것. 그는 어려운 길을 일부러 걷는다고 말했다. 안기부 X파일과 검사들의 이름을 모두 공개한 그의 뚝심은 지금 봐도 놀랍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강한 힘을 주진 않았다. 그가 보루로 삼았던 면책특권은 지금처럼 가볍게 불리는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 아니라 노회찬같이 용기 있는 발언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 사회에서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의 모습과 행동이 세련되지는 못했다. 때론 투박했다. 하지만 매우 솔직했다. 또 풍자와 해학이 그의 특징이었다. 많은 국회의원들과도 원만한 사이로 지내면서도 할 말은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런 그는, 나에게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저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인간다운 사람이랄까. 사람 냄새가 풍겼다. 흔히 진보 정치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이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노회찬은 2018년 7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당시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논란이 일었는데, 그것은 정치인 신분이 아닐 때 받은 정치후원금이 문제가 된 것으로,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 위반은 위반이다. 어쩌겠는가. 그는 그 나름대로, 죽음으로 책임을 졌다. 나는 부고 소식을 듣고 굉장히 허무하고 뭔가 쿵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이 그 존재까지 부정할 문제였을까. 그러나 평소 그의 성격을 유추해 보고, 또 유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정도였다. 사실 그의 선택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진보 정당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래봤자 손에 꼽고 그래도 희망으로 남은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정치는 다툼이라지만, 그 끝엔 공공선으로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증발하는 혐오나 비아냥이 아니라 의견을 말하고, 상대를 납득시키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특정 집단이나 나의 의견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 진보 정치엔 일말의 희망이라도 심어줄 수 있는, 해결까진 바라지 않아도 적어도 말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노동자들의 마음을, 억울함을 사회에 인지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우린 그를 통해 6411버스를 타고 다니는 노동자들을 알게 된다.



나는 노회찬이 옳은 말만 했다거나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세련된 엘리트의 모습이나 권위적인 모습보단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고 보통 사람을 대변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서서 개선하지 못하고 힘 하나 못 보탠 미안함이랄까. 많은 이들이 민주당에 투표를 던져도, 비례대표를 정의당에게 준 이유는 그에 대한 응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정치라는 영역에 대중의 시선을 끌게 만들고 직관적 이해를 도와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런 모습은 많은 이들을 정치혐오로 나아가지 않게 했다.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정치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장이다. 다양한 의견은 소음으로 취급받아 목소리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풍자조차, 웃음조차 사라져 대립과 혐오만이 남은 이 시대에 더더욱 그리움이 커져간다. 이제야 조악한 글이라도 쓴다. 잘 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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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2023-06-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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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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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왜 좋아하시나요? 

제17대 국회 개원 첫날이던 2004년 5월31일, 민주노동당 소속 초선 의원(10명)들이 국회에 등원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노회찬(1956~2018)이 대답했다


“당사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서민들 노동자 농민 대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사실 50년이 걸렸어요.”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1960년 4월혁명 직후 치러진 총선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었다.


노회찬은 이날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혁명가’ 노회찬은 미식가, 요리사, 첼로 연주자, 음악·예술 애호가 등 ‘낭만파’이기도 했다.


“그에게 세상은 점진적으로, 혹은 조건이 맞으면 혁명적으로 바꿔야 할 대상인 동시에 도처에 숨어 있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내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국 사회가 한번도 대통령후보 노회찬을 경험하지 못한 채 그와 작별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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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7-17 공감 (3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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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노회찬 전 의원은 고1때 장래 희망을 정치가라고 적었고 줄곧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힘썼다 새창으로 보기
구월동 살던 황광우 선배가 어느 날 저에게 신부름을 시켰어요. 주안 어디 어디 가면 ‘이마 넓고, 농촌스럽게‘ 생긴 사람이 있을건데, 그 사람에게 물건 건네줘라, 이게 끝인 거예요. 길거리에서 만나는데 그렇게만 얘기하면 어떻게 찾느냐고 했더니, 걱정 말고 가라고 했어요. 제 걱정은 기우였어요. 딱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시커먼 얼굴. 낡을 대로 낡은 점퍼, 도시 지식인 냄새라고는 전혀 없던 모습이 지금도 안 잊힙니다. 그때가 86년 이었죠 (홍승기, 인민 노련 활동가)노동운동가 노회찬은 만났던 사람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인상이다노동자... + 더보기
나와같다면 2023-07-09 공감 (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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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바쳐 더 품위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쓴 노회찬 새창으로 보기
사회적 존재로 처음 출발할 딱 제 바탕에 있는 가치는 휴머니즘이었죠. 지금도 여전히 다른 것들은 다 왔다가고, 마치 계절에 따라서 옷이 바뀌는 것처럼 달라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거는 휴머니즘이고요


인간을 실망시키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 또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 없이는 못산다는 생각. 오히려 그것까지 놓아버리게 되면 겁이 나는 거죠. 내가 그걸 놓아버리게 될까 겁나서, 죽어도 그건 쥐고 있는거예요. 두려운 거죠.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할까봐 그것만은 안 놓으려고


그의 휴머니즘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이였고, 사회주의는 휴머니즘과 사상적 동반자가 되었다. 그가 ˝가장 진보적인 이념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회찬 평전]을 받았다
이름만 보아도 가슴이 먹먹하다


앞으로 미완의 꿈이 실현되어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이 근절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걸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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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6-29 공감 (2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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