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9

알라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 유창선 2021

알라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극단과 광기의 정치 
유창선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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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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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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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 정권 시대를 비판한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갈기갈기 찢긴 나라 6 | 극단의 열정과 지성주의의 몰락 8 | 광기로 뒤덮인 세상 11

제1부 문재인 시대의 극단과 광기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
‘토착왜구’라는 낙인찍기 21 |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25 | 우리는 언제나 선하다는 착각 27 | 권력을 잡으면 왜 달라지는 걸까? 30
집단사고가 정치적 극단을 낳는다
정치는 왜 사람을 거칠게 만들까? 33 | 집단사고에 갇힌 개인들 37 | 집단사고가 거세시킨 성찰 능력 39
성찰과 회의를 모르는 독선의 정치
정치를 하면 쉽게 오만해지는 이유 42 |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무성찰의 태도 45 | 공룡이 된 여당의 ‘입법 독주’ 47 | 나의 신념을 믿지 말고, 나의 불의를 의심하라 48
사람들이 김어준의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세월호 고의 침몰설’ 51 | ‘N번방 사건’이 정치공작인가? 55 | ‘손혜원 지켜주기’를 위한 음모론 58 | 사람들이 음모론의 신봉자가 되는 이유 60 | 트럼프의 음모론과 미국 민주주의의 굴욕 63
죽은 지식인들의 사회
반지성주의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다 67 |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사회 69 | 자기검열에 길들여진 지식인들 71 | 조지 오웰이 말한 정치적 거리두기 74
권력은 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할까?
조국을 ‘예수’라고 추앙하는 사람들 77 | 추미애가 ‘이순신 장군’이라는 대학 교수 79 | 절대권력의 피해자 코스프레 80 | 책임 회피를 위한 피해자 역할극 82

제2부 정치의 두 얼굴

문재인은 노무현의 꿈을 실현했는가?
문재인에게 노무현은 무엇이었을까? 87 | 노무현이 남긴 ‘통합’을 방기하다 90 | 진영의 좁은 울타리에 갇힌 대통령 92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
나라가 아수라장인데 침묵하는 대통령 95 | 대통령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97 | 박근혜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의 ‘불통’ 98
문재인도 피하지 못하는 레임덕
콘트리트 지지층의 해체 101 | 부동산 민심과 윤석열 몰아내기가 낳은 결과 103 | 대통령이 대답해야 할 시간 105
부동산 시장을 이기겠다는 신념
정부만 모르는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 107 | 규제 만능주의에 대한 시장의 반란 110 | 부동산은 정치가 아닌 정책이다 112 | 부동산은 빵이 아니다 114
강성 지지자들에게 갇힌 민주당
강경파들이 이끌고 가는 민주당 117 | 이낙연은 독배를 든 것일까? 119 | 타이태닉호 같은 민주당 122 |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민주당 123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의 성추행은 왜 계속될까?
민주당의 젠더 감수성 부재 126 | 무공천 원칙을 저버리다 128 | ‘진영’만 남고 ‘사람’은 사라졌다 130 | ‘기게스의 반지’를 낀 권력자들 131 | 부끄러움은 언제나 우리의 몫인가? 133
임미리와 진중권을 향한 민주당의 입막음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 135 | 진중권을 고소한 김용민 137 | 통치받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 139
금태섭을 두 번 죽이는 정치
공천 탈락과 징계라는 이중 보복 141 | 당론 위배가 그렇게도 큰 죄인가? 143 |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민주당 145

제3부 조국과 추미애의 늪에 빠지다

폭주하는 추미애, 브레이크가 없었다
윤석열 몰아내기에 몰두한 추미애 151 | 법치를 무너뜨린 무리한 징계의 후폭풍 153 | 검찰 개혁이 고작 ‘윤석열 몰아내기’였는가? 155 | 왜 아무도 추미애를 말리지 못했을까? 156
선출된 권력은 견제하면 안 되는가?
‘선출된 권력에 대한 쿠데타’라는 주장 159 |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161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163
‘검찰 개혁’이 아닌 ‘검찰 장악’의 길로 가다
‘정권 관련 수사는 하지 마라’는 메시지 165 | 정권 수사 검사들에 대한 숙청 168 | 진혜원 검사 영전은 한 편의 코미디 169 | 가장 불의했던 법무부의 흑역사 171
삼세번 좌천당한 한동훈
한동훈의 기구한 유배지 생활 174 | 박근혜의 ‘유승민 찍어내기’와 닮은 꼴 176 | ‘한동훈 죽이기’의 권언 유착 의혹 177
조국 사태, 대분열의 서막
단절의 장이 되어버린 SNS 179 | 다른 생각에 대한 언어 폭탄 181 |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분열하게 만들었는가? 183 | 플라톤의 왕도적 통치술 184 | 상처뿐인 승리 186
문재인 정부의 변곡점
조국 아니면 검찰 개혁 못한다는 궤변 188 | 국민과 함께 가는 길 191 |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솔로몬의 역설’ 192 | 나라와 개인에게 최악의 상황 194
정경심 판결에 불복하는 사람들
사실을 왜곡하는 혹세무민의 정치 196 | 진실을 말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현실 199 | 사실에는 눈감고 신념만 지키는 사람들 201
어쩌다가 최재형은 ‘제2의 윤석열’이 되었는가?
최재형은 ‘미담 제조기’라더니 204 | “대통령 국정 운영 철학과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 207 | 감사원과 검찰이 독립적이어야 하는 이유 208

제4부 진영의 정치, 분열의 나라

내로남불의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정치의 유혹이 만들어낸 내로남불 213 | 내로남불에는 여야가 없다 215 | 국민을 속이려는 거짓의 정치 218
유시민은 지식인인가, 선동가인가?
노무현재단 계좌 열람, 사실이 아니었다 221 | 거짓말이라는 핵심을 비켜간 사과 225 | 진영에 갇힌 ‘선동하는 지식인’ 227 | 유시민의 어리석었던 언행들 230 | ‘조국 수호’가 노무현 정신인가? 232
애국과 이적의 이분법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 235 | 조국이 일으킨 내전 237 | 진실을 담지 못한 선동 239
윤미향과 정의연의 논란은 무엇을 남겼는가?
할머니들이 소외된 활동가 중심의 인권운동 241 | 할머니들이 활동가들의 목표에 맞춰야 했는가? 243 | 이용수 할머니를 분노하게 만든 것 245 | 누가 이용수 할머니를 모략하는가? 247 |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249
박원순을 조문할 수 없었던 이유
애도할 수 없게 만든 사람들 252 | 피해 여성을 외면한 여성운동가들 254 | 여성의 고통보다 ‘진영 수호’가 우선인가? 257 | 여성운동의 무덤 위에 세워진 ‘진영의 카르텔’ 260
좋은 보수가 좋은 진보를 만든다
보수정당은 왜 비호감이 되었는가? 263 | 김종인 체제는 성공할 수 있을까? 266 | 태극기 부대와 절연할 수 있을까? 268 | 보수의 명예와 지성 269
중도층은 살아 있다
중도는 생명을 다한 것일까? 272 | 중도층이 등 돌린 보수정당 274 | 승부를 가르는 스윙 보터 275

제5부 7080년대생의 정치를 기다린다

20대에게 민주화 세대는 무엇일까?
진영 논리에 갇힌 민주화 세대 281 | 불공정 문제를 제기하는 20대 284 | 새로운 것 대 낡은 것 286
7080년대생의 정치에 건투를 빈다
586세대의 정치적 장기 집권 288 | 586세대에 예속된 7080년대생 291 | 7080년대생의 정치적 독립 295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젊은 정치 297
관용과 공존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까? 301 |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303 | 다원적 민주주의가 후퇴했다 304 | 팬덤의 광기와 정치의 괴물 306 | 민주주의의 길 308

에필로그 : 합리적인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311

참고문헌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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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무슨 일만 있으면 적폐 취급을 한다.



P. 38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은 집단사고를 고취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집단사고는 다양한 판단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이익과 일치하는 하나의 판단만을 정답으로 간주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조국 사태, 윤미향과 정의연 사태, 추미애과 윤석열의 갈등 같은 뜨거운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철저하게 그가 속한 진영에 따라 결정되는 광경을 보았다. 각 사안마다 판단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도 진영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양분되는 것인지 놀라울 정도다. 사안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자유로운 사고의 넘나들기는 불가능했다. 모두가 진영이라는 집단에 구속당한 사람들이 되었다. 「집단사고가 정치적 극단을 낳는다」 접기
P. 65음모론에 맞서 진실을 찾는 노력은 우리 사회의 이성을 지키는 길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극단적인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사실을 우선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신념은 시간이 가면 변하는 주관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다. 사실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극단의 주장을 일단은 의심하면서 나의 눈과 귀와 머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이 김어준의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접기
P. 75~76이제는 단지 진보라는 이념공동체를 넘어 이익을 함께하는 이익공동체가 된 것이다. 정권이 살아야 나의 명예와 입신 출세와 이익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은 나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이 된다. 지난 정권 시절 권력의 조그마한 비리만 있어도 참지 않고 분노의 언어를 쏟아냈던 지식인들이 대부분 입을 닫아버렸다. 오히려 진보임을 자임하던 사람들이 권력과의 거리두기를 포기하고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버렸다. 서로 너무 가까워져서 원팀이 되고 말았다. 「죽은 지식인들의 사회」 접기
P. 81~82진실과 인간적 의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해야 했던 증인들과 제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면서 고뇌했을 은사는 조국 부부의 위법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이었다. 순교자 행세를 할 일이 아니라, 자신들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하며 사과할 일이다. 추미애도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좌천당했던 수많은 검사, 윤석열과 가깝다는 이유로 감찰과 수사를 받아야 했던 검사, 법과 절차를 무시한 장관의 권력에 화를 참으며 견뎌야 했던 많은 국민은 추미애의 일탈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수많은 피해자의 존재를 외면한 채 거꾸로 박해받는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한국 정치는 사실을 밝히는 영역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신앙의 영역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한국 정치가 신앙의 영역에 갇혀 버렸음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권력은 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할까?」 접기
P. 171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의 깜빡이를 켜고 ‘검찰 장악’의 길로 가버렸다. 모름지기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며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그 후과(後果)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후일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 그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를 사사건건 좌지우지했을 때는 뭐라고 할 것인가? 설마하니 그때 가서 다시 검찰 독립을 외칠 것인가? 2020년 7월에 있었던 일들은 가장 정의로움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이 만든 가장 불의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검찰 개혁’이 아닌 ‘검찰 장악’의 길로 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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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유창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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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을 통해 활발히 정치평론을 해온 1세대 정치평론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되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이 아닌 자발적 고독을 선택해 동네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가며 자신을 지켰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저자는 그 진영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다시 배제되었다. 저쪽의 민낯도 보고 이쪽의 민낯도 본 저자의 머릿속은 그래서 회색이다.

젊은 시절에는 진보운동을 했고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그곳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격화되는 진영의 대결 속에서 광기가 이성을 압도하는 세상의 모습을 지켜보며 절망했다. 그것은 자신이 꿈꿨던 세상이 아니었기에 진영의 감옥에 갇힌 삶에서 걸어나왔다. 이제 저자는 증오와 저주만이 넘치는 진영의 굴레에서 벗어나 합리와 이성과 지성을 복권시키자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2019년 뇌종양 수술을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었다. 짧지 않은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보낸 후 방송은 그만두었지만, 정치와 인문학에 이어 문화예술로까지 글쓰기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정치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감정에 치우침 없이 언제나 냉철한 태도로 근본을 말하는 저자의 내공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현재 여러 언론들에서 고정 칼럼을 연재하며 세상과 우리 삶을 위한 좋은 글을 쓰는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치평론집 최근 출간된 『김건희 죽이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정치의 재발견』 등이 있고 인문 에세이 『나를 찾는 시간』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김건희 죽이기>,<나를 찾는 시간>,<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 총 17종 (모두보기)
SNS : //twitter.com/changseon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신념을 과신하지 말고, 나의 불의를 의심하라”

자신의 신념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성찰할 줄 모른다. 이들은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해도 귀를 닫아버린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옳고 내가 선이라는 신념을 지켜야 불굴의 정신세계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과신하지 말고 내가 행했을 수 있는 불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음을 어째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프랑스의 철학자 제라르 벵쉬상은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또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정치적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의 감정이 여과 없이 표현된다. 이는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해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정치적 신앙인’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치가 종교와 다른 이유는 내가 믿는 하나의 것만이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종교화는 맹목과 맹신과 광기만을 부추긴다. 감정과 정념의 정치는 숭고한 대의로 무장할수록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나만이 옳다는, 그리고 너는 모두 틀렸다는 불변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신념 속에서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극단과 광기가 난무하는 문재인 시대를 비판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와 타협은커녕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행태를 계속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세력은 우리만이 선이고 우리만이 옳다는, 성찰과 회의를 모르는 독선의 정치를 해왔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내로남불의 정치를 해왔다. ‘촛불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폐라고 단죄되고, 의견이 다르면 토착왜구라고 낙인찍힌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소통과 공론의 장은 사라졌고, 서로가 극단적인 자기주장만 반복해서 외친다. 더구나 그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리더십은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보다 심하게 분열되었고, 극단의 시대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착한 권력’인데, 왜 야당을 비판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권력을 비판한다는 것이 야당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전혀 아닐 것이다. 다만 한국 정치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보수 야당에 물었다면, 적어도 오늘에 대한 책임은 현재의 집권 세력에 묻는 것이 균형 있는 태도다. 더구나 현재의 집권 세력은 대통령, 행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권력이 아니던가. 그런 권력에 오늘의 현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시대의 극단과 광기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말의 겨울, 나라의 기본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민들은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촛불을 들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는 기대가 가슴속에 충만했다.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이 80퍼센트를 넘었던 현상은 그 기대가 얼마나 컸던지를 말해준다. 정권만 쥐면 권력에 도취되는 한국 정치사의 악순환에 종지부가 찍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소명이었다. 그러나 갈등은 격화되었고, 국민들은 실망에서 체념으로, 다시 절망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극단과 분열의 상처가 깊어만 가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국민들을 비통하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성찰할 줄 모른다. 오직 비판자들을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선악 이분법을 구사한다. 더구나 선악 이분법이 정치적 의도와 맞물릴 때 악마 만들기의 폭력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상대방은 악마로 규정되고 돌팔매질을 당한다. 이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 사이에서 인간의 다양한 생각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본래 정치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국민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서로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반목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광신적인 팬덤 정치가 낳고 있는 온갖 비이성적인 형태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시대의 이성을 욕보이고 있다. 오늘 한국 정치에서는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 토론보다는 감정과 정념의 언어들이 지배하는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의 기강 해이가 연이어 물의를 빚어도,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어도, 조국 사태가 일어났어도, 추미애와 윤석열이 갈등을 했어도,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어도, 입법 독주를 했어도, 결국 문제의 출발은 그렇게 단추를 채웠던 집권 세력의 책임이었건만,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검찰의 탓이요, 검찰 편에 선 기레기들의 책임이며, 정권의 발목을 잡으려는 야당의 탓이다. 이들은 자신들만 도덕적으로 옳고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있다. 상대방의 적폐에 대해 준엄했던 정권이라면 그 이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들에게도 준엄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은 국정 운영에서 진영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집권 초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힘입어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했던 문재인 정부는 이를 자신들에 대한 절대적 지지로 착각해 모든 것을 우리끼리 해나갈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즉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인사 문제도 진영의 울타리에 갇혀 자신들끼리 국정을 운영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추미애와 윤석열의 갈등으로 나라가 혼돈과 분열의 늪에 빠져 있는데, 문재인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무능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것이 부동산 정책일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학자 존 킨은 “민주주의는 겸손한 자들의, 겸손한 자들을 위한, 겸손한 자들에 의한 통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무능하면서 겸손하지도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DNA인 것 같다.

조국과 추미애의 늪에 빠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4일 임기 4개월여를 남겨놓고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세력은 ‘검찰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그것은 ‘검찰 장악’의 다른 이름이었다. 더구나 추미애는 윤석열의 징계를 밀어붙이기까지 1년 내내 무리한 언행을 하면서 법치의 책임자가 법치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특히 윤석열에 대한 징계는 숱한 편법과 위법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검찰 개혁은 국민적 합의처럼 되었던 사안이다. 비대한 권력이 되어 부패한 검사 감싸기를 거듭해온 검찰 권력을 개혁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윤석열 몰아내기가 전부였던 검찰 개혁은 그런 국민적 합의에 심각한 균열을 내고 말았다. 그것은 순수한 의미의 검찰 개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에 칼날을 들이댄 검찰총장에 대한 응징이었다. 앞으로 정권 관련 인사들의 비리가 있다면, 누가 감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당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검찰 개혁이라고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추미애가 윤석열 몰아내기에 몰두해도 집권 세력 내에서 이를 말리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그 난리를 쳐서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거기에 제동을 걸지 못한 문재인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다. 민주당도 무능하고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식과 이성을 갖고 있고 민심을 무섭게 여기는 정당이라면 법무부 장관의 난폭한 언행과 법규를 무시하는 조치에 대해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민심의 편에 서서 조국과 추미애를 비판했던 금태섭이나 조응천 같은 정치인들은 징계를 받았거나 지지자들에게서 돌팔매질을 당했다. 결국 검찰 개혁의 핵심이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쓰레기통에 던져진 채 검찰은 다시 정권의 하수인이 되고 말 것이다.
2019년 여름, ‘조국 사태’라는 말이 정치권과 언론에 등장했다. 역대 장관 임명 시에도 숱한 논란은 있었지만, 이렇게 사태라는 말까지 붙은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조국을 둘러싼 뉴스들은 대한민국의 블랙홀이 되었고, 온 나라가 그의 임명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달아올랐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에도 여론은 호전되지 않았고, 검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난 문제들은 조국이라는 개인을 넘어 문재인 정부의 뇌관이 되어버렸다. 조국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나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해왔지만, 자기 자신은 같은 잣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객관성을 상실했다. 자신이 아니면 이 나라에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겸손하지 못한 착각이다.
정경심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재판부는 입시 비리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기소했던 15개 혐의 가운데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이 내려졌으니, 조국·정경심 부부의 결백 주장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재판부는 조국·정경심 부부가 했던 많은 거짓말을 촘촘히 가려냈다. 그러자 조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경심 1심 재판부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실명을 거론하며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은 11개 혐의가 유죄인 이유와 4개 혐의가 무죄인 이유에 대해 그 내용을 반박하거나 항의하기보다 ‘정치적 판결’이니 ‘검찰 편들기’니 하는 음해성 공격만을 했다. 이들에게 오직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결코 지면 안 되는 싸움이라는 자신들의 신념만이 중요했다. 이들에게는 어떤 사실도 받아들이지 않는 막무가내의 신념이 구축된 것 같다. 조국·정경심 부부 재판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정치의 문제를 넘어선 집단적 정신세계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광신주의에 맞서 이성과 합리의 빛을 보여주었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모든 광신자는 똑같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내로남불의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강변하는 내로남불의 정치는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법이다. 또한 진실을 덮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서라도 승리를 거머쥐려는 비겁한 행태다. 내로남불의 정치는 도덕적 우월의식에서 나오며, 겸손을 모르는 오만의 정치와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내로남불이 여야 불문하고 저질러지고 있으며,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내로남불이라고 비난하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여야가 올바른 정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나쁜가?’를 가지고 싸우는 꼴이다. 그래서 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진보가 없는 것인가?
어느 정권하에서든, 인사청문회만큼 내로남불의 정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도 없다. 여당은 지난 정권하에서는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던 사안들에 대해 감싸주기에 급급하고, 야당은 지난 정권 시절 바로 자신들이 행했던 일들을 단죄하는 정의로운 심판자로 변신한다. 우리 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방패가 되어주려는 정파적 충성을 하기 위해 정치적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일도 다변사다. 여와 야가, 보수와 진보가 서로 욕하면서 닮아버렸다는 비판이 지나치지 않다. 내로남불에 익숙한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변신에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정치인들이란 숙명적으로 낯 뜨거운 존재들인지 모른다.
내로남불의 바탕에는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선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나 자신이든 혹은 같은 진영 내의 누군가의 문제가 드러나도, 그 잘못은 쉽게 이해되고 정당화된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었던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도 다를 바 없다는 회의론을 증폭시켰다.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은 ‘영끌’해서 부동산을 매입해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지난 정권에서 방송 장악을 그렇게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의 집권 세력은 ‘착한 방송 장악’의 수혜자가 되었다. 물론 지난날 자신들이 했던 행동은 눈감은 채, 문재인 정부가 방송 장악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보수 야당도 낯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넓은 의미의 정치학’을 인간의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모든 실천적인 행위를 망라하는 윤리학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윤리학과 정치학을 포괄하는 정치학을 ‘넓은 의미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윤리와 도덕으로만 가능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포기한 정치가 공공의 선에 기여할 수는 없다. 내로남불의 정치는 그 같은 윤리를 포기한 정치다. 그런데 정치의 출발은 윤리여야 하고 그때 비로소 인간의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민주주의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에서 출발해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그러니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다른 생각과 공존할 수 있다는 정신이 사라진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 문화에 기댄 집권 세력의 정파 이기주의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집단적 광기 앞에서 인간들의 합리와 이성이 패배하는 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고 말했다. 이러고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있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자는 결국 민주주의를 죽게 한다. 나와 다른 의견, 그러한 의견들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마음이 있는 사람들만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으며,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않은 중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자기 자신을 진보나 보수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도 결이 서로 다르다. 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념과 가치에 따라, 직업과 계층과 계급에 따라, 혹은 사회정치적 지위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갖는다. 민주주의를 하는 사회에서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그런 차이들을 하나의 것으로 통일시키려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적군 대하듯이 하는 데는 역사의 그늘도 작용했을 것이다. 8·15 해방 이후 분단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좌우의 이념 대결로 점철된 역사를 살아왔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했고, 서로를 죽였고, 그로 인한 증오의 정념은 한국 현대사를 지배해왔다. 더욱이 오랜 독재권력의 시대를 거치면서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에 세상을 흑과 백의 논리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그 중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이념과 생각에 대한 증오가 정치적 DNA가 되어 머릿속에 박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극단과 광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똘레랑스와 공존의 길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 극단과 극단의 사이에서 양쪽의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민주주의는 뒤로 갈 것이며, 발언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는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다. 자신들이 신봉하는 진리를 지키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민주주의는 다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반(反)지성주의를 선동하는 진영의 수호자들에게 맞서 합리와 이성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한국의 정치는 오랫동안 586세대가 지배해왔다. 산업화 세대의 시대를 거쳐 민주화 세대의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건만, 그 이후로는 변화가 지체되고 있다. 586세대는 세상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단순화해 바라보는 관념 속에 머물러 있다. 586세대가 정치적으로 이룬 것도 많지만 실패한 것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586세대의 정치적 장기 집권이 너무 길어졌다. 현실은 이념적 선명성보다는 현실적 실용성을, 과거의 훈장보다는 미래를 감당할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586세대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는 7080년대생들이 정치적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이 속한 권력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 세대의 정치적 소명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독립적인 정치를 하려는 젊은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기꺼이 ‘이단자’가 되는 젊은 정치인이 이들이다. 586세대 이후의 정치를 책임져야 할 다음 세대 정치인이라면 익숙했던 것과 결별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들은 진보정당에도 있고 보수정당에도 있고 소수정당에도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 어디든, 기존 정치 질서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날 때 한국의 정치가 좋아질 수 있다. 접기



평점 분포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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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분열의 시대 필독서!
theruth 2021-03-13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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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하지 않고 별점테러 쓰는 분들때문에 구매하고 씁니다
그분들의 심리가 늘 궁금했는데 명쾌히 해답을 주는 책입니다. 고전에서 인용된 문장들을 보면 오늘의 일은 늘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룰룽이 2021-03-24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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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글쓴이의 소신과 신념, 입장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품위 있는 사회는 아직 멀었는가?
빨간모자 2022-12-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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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유창선 작가님 응원합니다!

이전 저서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를 읽고 너무나 좋았던 1인인데요,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진보 지식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이 시대 양심의 척도라 생각합니다.
muse 2021-03-13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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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문재인 정권의 퇴장에 대한 예언,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또다른 기득권이 돼버린 586 세대에 대한 레퀴엠선과 악, 정과 반이 모호해지고진영의 논리에 갇혀버린 채정작 괴물이 돼버린 서글픈 꼰대들 ㅎㅎ
존재의지 2022-07-02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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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분노의 말들을 쏟아내고 재판을 지영시킨다. 심지어 여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된다,. 허위 인턴 증명서 발급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국회의원은 검찰을 심판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잘못된 사람들이 화를 내고 심판자가 되려는 광경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28-)


김어준의 패덤은 누가 뭐라 해도 그를 믿는다. "김어준이 그러더라."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 팬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의 말이 가르침이고 교리가 되었다.그는 의심받지 않는다. 그의 예언과는 다른 결과가 나와도, 그가 제기한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어도, 그를 의심하지 않고 철석같이 믿는다. (-68-)


서울시 또한 다르지 않았다. 50만명이 넘는 국민이 반대 청원을 해도 굳이 서울특별시장을 고집하며 논란과 갈등에 불을 붙이고 피해 여서이 '위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성추행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고 검토를 못했다"며 입을 닫아버렸다. 그 후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성추행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진상규명보다는 전직 시장의 명예를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129-)


최재형은 '제2의 윤석열'이 되다시피 했다. 최재형의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의원들은 '미담 제조기'라느 말까지 하며 흠잡을 데 없다고 그를 칭송했다. 문재인도 임명장을 주면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최재형 감사원'이 "월성 1호기 폐쇄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여당의 태도는 돌변했다. (-206-)


민주화 세대는 자신들의 과거를 지키려 하고 있고, 20대는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새로웠던 것이 어느새 낡은 것이 되었고, 다시 새로운 것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다. 역사의 눈을 갖고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순리다. 그렇다면 더는 욕심 부리지 말고 기꺼이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옳다. (-287-)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진보진영 최초의 대통령이 되면서, 20여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지형도는 서서히 양극단의 정치를 추구하게 된다. 진보 정치와 보수 정치가 교차되면서, 그들은 이념 정치와 이권 정치를 동시에 추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념 정치는 껍데기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고, 민주정치의 기본조차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 마지막 최악의 순간을 보았던 우리는 새로운 정부, 촛불 정부를 탄생시켰고, 문제인 정부는 2017년 이후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겨 놓고 있다.


과거 정부와 다르게 현재로는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은 없는 상황이다.그건 과거에 비해서 현 정부가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이다.하지만 그것이 상당히 치명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진보 평론가인 유창선씨가 진보를 비판하고, 촛불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즉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라는 단순한 논리도 현 정부, 즉 촛불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보수 정부가 여당이 되면, 정부의 잘잘못을 지적해야 할 언론이 조용하고, 진보가 여당이 되면, 정부의 잘잘뭇을 여당 지지자가 덮어버리는 상황이다. 그 과정들 하나 하나가 진보 평론가 유창선씨의 입장으로 볼 때 씁쓸함이 느껴졌다. 즉 현정부의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즉 대깨문이라 부르는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눈과 귀를 덮어버리는 처세를 낳고 있다. 즉 자신들의 잘못을 덮을 때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똑같다는 점이다. 소위 180석의 국회의석을 가지고 있는 현정부가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고,내부의 반대의 목소리를 덮는 형국이다.그 과정에서 검찰총장 윤석렬 항명사태가 터졌고, 조국 ,추미애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소위 진보의 입이 되었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의 모습과 처세에 대해서 유창선께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즉 외부의 비판의 목소리를 내부의 목소리로 덮고,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도자의 주변에는 항상 예스맨만 모이게 되면서, 지도자의 잘잘못에 대해서 눈과 귀를 덮어버릴 수 있다.그렇게 되면,기존의 촛불 정부를 지지했던 유권자는 떠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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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21-03-3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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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작년에 진중권 3부작을 읽은 후 더 이상 이런 류 책을 돈 주고 사 읽을 생각이 없었다. 관련 기사나 페북글들을 하도 읽었거니와, 이제는, 선관위의 말대로 '국민이 아니까', 흐름이 바뀌어기에 이런 책을 '내가' 구입함으로써 민심을 표출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진중권이 화살받이가 되어 상황을 정리한 마당에, 뒤늦게 민주당의 위선을 비판하는 책을 내는 지식인들의 모습은 상술로만 보였다.




유창선의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그냥 그의 페북을 팔로우해서 읽기 때문에 그 의리 정도로 해두겠다. 게다가 그는 뇌종양 수술 직후였으니 책을 쓸 상황도 아니었을 터.




이 책의 내용들은 더 이상 새롭지가 않다. 문재인, 유시민, 김어준, 조국, 추미애라는, 더 이상 OOO이고, OO하며, OOOO한 이들을 비판하고 있기에 출간이 시기적으로 늦었다(OOO 등은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선관위의 판단으로 유추 가능함). 진중권 3부작의 이후를 다룬다는 최신 업데이트 정도의 의미는 있겠다. 몇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반복되고 있어 단순 칼럼 모음집 같다는 느낌이다.




다만, 7080년생들의 출현을 독려한다는 점과(진중권도 노땅들의 퇴장과 참신한 정치신인들의 등장을 주장하고 있긴 하다, 페북으로),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지식인들을 인용한다는 점이 이 책이 갖는 가치라 하겠다. 알베르 카뮈와 움베르토 에코의 글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과 같이 21세기에 걸맞는 젊은 리더가 도래하길 희망하지만, 일단 이번 보선에서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밑거름 삼아, 다음 대선과 지선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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芽月 2021-04-0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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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극단과 광기의 정치















진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왜곡된 확증편향과 맹목적인 비난이 난무한다. 가짜뉴스는 점점 교묘하게 사실을 위장하여 퍼져나가고 이를 믿는 사람들은 진실인냥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옳고 그름이나 진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 진영에게 유리하게 써먹을만한 소재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남겨진 증거는 이제 조각난 파편처럼 아무 의미없는 공허한 외침만 남발하며 거짓말로 겹겹이 땜질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좌우대립이 극심한 상황이다. 감정의 골은 깊어져서 2016년 불거진 촛불집회와 탄핵 이후 이젠 겉잡을 수 없게 갈라졌다. 이에 따른 정치혐오와 피로감은 정신을 황폐화시킬 뿐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국민의힘 간에 정치 알력 싸움은 수준 이하였다. 내로남불은 극심해서 자신들의 행동만 옳다고 외치고 있다. 말도 안되는 말로 진실을 호도하며 오히려 국민을 양 극단으로 나뉘게 만든 건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중립을 지켜야 할 매체가 진영논리에 빠져서 편파적으로 보도한다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는 것이다. 잘잘못은 분명히 가려야겠지만 좌우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보도를 하지 않다보니 좌우이념이라는 갈등은 전방위적으로 대결구도 양상을 띄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반드시 민주당만의 잘못일까? 정치권의 책임도 크며 다른 사건으로 지워지거나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여전히 성숙한 시민의식은 살아있고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가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십자포화를 퍼부으며 맹공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득권층은 정재계, 언론 가리지 않고 똘똘 뭉쳐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본래 사안보다 부풀리고 더 크게 문제 삼아왔다. 이럴 때일수록 진실을 가려 읽고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결국 공격하는 그들도 더한 일들을 저질렀다는 사실 말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눈과 귀는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된 사람이 될 게 뻔하다. 분열과 좌우대립의 아수라장은 이제 그만 멈춰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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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지기 2021-04-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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