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알라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끝나지 않는가 김재명 2019

알라딘: [전자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eBook]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끝나지 않는가
김재명 (지은이) 미지북스 2019-05-10



9.5

책소개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현실을 소개하고, 중동의 역사와 정치를 개괄함으로써 뿌리 깊은 분쟁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 김재명 박사는 20년 가까이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취재한 독보적인 국제분쟁 전문가로, 2000년 이래 지금까지 10여 차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저자는 특히 서방 언론인들도 취재하기 어려웠던 전설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 아라파트(PLO)나 야신(하마스)과도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이번 개정 증보판에서는 100여 장의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미국 트럼프 행정부 이후 달라진 중동 정세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목차


연표
개정 증보판에 부쳐

1부 왜 눈물의 땅인가
1장 팔레스타인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저항
2장 왜 예루살렘인가: 분쟁의 도시인가, 평화의 도시인가

2부 좌절과 분노의 현장
3장 가자지구,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
4장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팔레스타인
5장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여성들
6장 중동의 우울한 초상, 팔레스타인 난민
7장 유대인 게토가 떠오르는 분리 장벽
8장 유대인 정착민, “이곳은 신이 주신 약속의 땅”
9장 팔레스타인의 장기수들
10장 팔레스타인의 내부 갈등을 키우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11장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3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
12장 디아스포라, 시오니즘, 밸푸어 선언
13장 건국과 테러의 어두운 그늘
14장 하마스는 왜 투쟁의 깃발을 올리는가
15장 또 다른 반이스라엘 투쟁 조직: PFLP, 지하드, 헤즈볼라
16장 이스라엘의 고민거리, 아랍계 시민
17장 이스라엘은 민주국가인가
18장 ‘아랍의 봄’은 이스라엘에겐 ‘겨울’

4부 중 동, 미국, 그리고 평화의 전망
19장 실종된 중동 평화 이정표
20장 중동 협상의 뜨거운 감자들
21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
22장 이스라엘과 중동의 군사력 비교
23장 이스라엘에만 허용된 핵무기
24장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
25장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들

5부 팔 레스타인의 눈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6장 작은 변화 속에 비치는 희망의 빛
27장 팔레스타인의 눈물이 그칠 날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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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침몰 넉 달 뒤인 2014년 8월 한국에 왔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말이다.
P.42~43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와 분리 장벽으로 인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농민들은 대대로 지어오던 농토에 쉽게 갈 수 없게 되었다. 가자지구는 이미 콘크리트와 철망으로 둘러싸인 지 오래다. 열린 출구라고는 지중해뿐이지만 바다 역시 이스라엘 해군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이런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팔레스타인 경제는 붕괴 직전이고, 남은 것이라곤 유대인들을 향한 증오와 절망감뿐이다.

P.55
예루살렘의 경건한 유대교 성직자의 잣대로 잰다면, 텔아비브는 21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이다. 물론 텔아비브 시민들 모두가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진 않을 것이다. 서울만 해도 큰 도시의 다양함을 지니지 않는가. 이태원과 압구정동, 홍대 주변만 둘러보고 서울이 어떻다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P.57
이스라엘의 강경파 정치인들은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해왔다. 그는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우리의 것이고, 결코 나뉘거나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P.78
현장에 가보니 타다 남은 구호물자들이 여전히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휴전이 이루어진 직후 가자지구를 방문했던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을 강하게 비난했다. 현장에서 만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소속의 한 실무자는 “UN 마크가 뚜렷이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 부서진 차량들을 바라보는 반 총장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습니다”라고 전했다.

P.121
그 무렵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은 그의 전투적 세계관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습니다.” 전쟁범죄자로 처벌받기는커녕 샤론의 정치생명은 끈질기게 이어져 레바논 학살이 있은 지 20년 뒤인 2002년 이스라엘 총리가 됐고, 팔레스타인 목조르기에 앞장섰다.

P.291
하마스의 중심인물은 창립자이자 조직의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의사 출신의 압둘 아지즈 란티시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2004년 봄 이스라엘군 헬기 미사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야신이 죽기 전에 두 차례의 인터뷰를 했다. 가자 시내에 있는 그의 집에서였다. 야신은 15세 때 사고를 당해 목을 다친 후유증과 하마스 창립 초기인 1989년 이스라엘에 체포되어 7년 동안 옥고를 치른 탓에 하반신과 손가락이 마비됐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재명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큰글자책] 오늘의 세계 분쟁>,<[큰글자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2>,<[큰글자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1> … 총 29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8·15해방 정국에서 극좌 극우를 비판하면서 민족 분단을 막으려 했던 중도파를 집중 취재 보도했다. 한반도 분단 극복에 대한 관심은 국제 분쟁 쪽으로 넓혀졌고,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국민대학교에서 ‘정의의 전쟁 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레시안」의 기획위원(국제 분쟁 전문 기자)이며,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 중동 지역,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15개 분쟁 현장을 취재 보도해왔다. 이 책은 분쟁 지역의 정치 군사 지도자, 병사, 난민 등 유혈 분쟁의 한가운데 놓인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을 담아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지구촌의 평화를 가로막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은 책으로 『한국현대사의 비극, 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년),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2005년), 『20세기 전쟁영화가 남긴 메시지』(2006년), 『석유, 욕망의 샘』(2007년),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2016년), 『시리아 전쟁』(2018년),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2019년, 개정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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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국내 최고의 국제분쟁 전문가가 현장에서 분석한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분쟁의 진실

1차 대전을 폭발시켰고, 1990년대 내내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던 발칸반도가 ‘20세기의 화약고’였다면, 중동은 ‘21세기의 화약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지구촌의 평화를 흔들어대는 뇌관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그곳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강공책, 그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비롯한 무장 대원과 일반 시민들의 죽음을 무릅쓴 격렬한 저항으로 폭력의 악순환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책『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은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현실을 소개하고, 중동의 역사와 정치를 개괄함으로써 뿌리 깊은 분쟁의 원인을 분석한다.
지은이 김재명 박사는 20년 가까이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취재한 독보적인 국제분쟁 전문가로, 2000년 이래 지금까지 10여 차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지은이는 특히 서방 언론인들도 취재하기 어려웠던 전설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 아라파트(PLO)나 야신(하마스)과도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이번 개정 증보판에서는 100여 장의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미국 트럼프 행정부 이후 달라진 중동 정세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눈물과 통곡의 땅, 팔레스타인
포연이 가시지 않은 처참하게 무너진 집과 사원, 이전의 자유조차 박탈해버린 8미터 높이의 분리 장벽, 집도 없이 난민촌을 떠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앞에 호화롭게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 이스라엘의 포격으로 부모를 잃고 아이를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물, 가족의 생계를 위한 희망이 잿더미로 변한 올리브 밭 앞에서 무릎 꿇은 농부, 2등 시민으로 온갖 불평등을 감수하며 희망 없이 살아가는 아랍계 청년들…….
이것이 10여 차례 팔레스타인 현장을 찾은 지은이의 눈에 비친 이른바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의 현장, 팔레스타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테러’라고 몰아붙여왔다. 왜 그들은 테러를 일으키는가? 7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일어나는 피의 분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지은이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이런 물음에 앞서 우리가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잔인한 파괴의 폐허에 흐르는 눈물과 통곡, 이곳 팔레스타인의 대지라고 말한다.

분쟁의 뿌리, 시오니즘
2000년 전 로마제국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유대인들이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 신생국가는 19세기 말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시오니즘)의 결실이었다. 시온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고대 예루살렘의 한 언덕 이름이다. 시오니즘이란 그 옛날 예루살렘에 있던 그 언덕을 상징적인 목표지로 삼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독립국가를 세우자는 것이다. 시오니즘 운동의 창시자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언론인으로, 그는 유대인 랍비처럼 종교적으로 엄격하기는커녕 매우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헤르츨은 1894년 드레퓌스 사건(유대인 프랑스 장교를 증거도 없이 독일 스파이로 몰아세운 사건)으로 반유대 정서가 퍼지는 것을 보고 유대인 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르츨이 시작한 국가 건설 운동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1차 시오니스트 대회로 이어졌고, 거기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무인지대가 아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가고자 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무인지대가 아니었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팔레스타인에는 70~80만 명의 아랍인들과 5~6만 명의 토착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만약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온다면 땅을 두고 필연적으로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1차 대전 당시 영국은 시오니즘 운동을 재정적으로 돕던 금융계 거물인 로스차일드에게 전비 지원을 대가로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이것이 영국 외무부 장관 아서 제임스 벨푸어의 이름을 딴 벨푸어 선언(1917년)이다. 그러나 영국은 또 한편으로 오스만제국과 싸우기 위해 아랍인들의 지원을 필요로 했고, 그들에게도 독립국가를 약속했다. 이것이 영국 고위 관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프 간에 맺어진 맥마흔-후세인 협정(1915년)이다. 이 두 약속은 서로 충돌했다. 결과적으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다른 아랍 국가들은 독립했지만, 유대인 국가가 들어선 곳의 아랍인들만은 집과 땅을 잃고 강제로 내쫓겼다.

하나의 땅, 두 개의 국가
유대인 이주의 물결이 지속되면서, 1940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수는 45만 명에 이르렀다. 아랍인들은 유대인에 편향적인 영국의 정책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 무렵 유대인들은 아랍 원주민들과 총격전을 벌이곤 했는데,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에 나서자 영국은 이를 지원해줬다. 이때 형성된 유대인 민병대 조직들이 ‘하가나’와 ‘이르군’이다. 1944년 무렵 하가나 대원은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고, 몇 년 뒤 벌어진 이스라엘 독립 전쟁에서 주력군이 된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쫓아내려고 빈집에다 수류탄을 던져넣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영국군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 하나의 땅을 놓고 폭력이 오가는 혼란한 상황에서, 유엔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6 대 4의 비율로 분할해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각각 세우기로 결정했다(1947년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않는 개방된 도시로 남겨두고 신탁통치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건국과 4차례의 중동전쟁
그러나 이스라엘 무장 조직인 하가나와 이르군은 그 무렵 팔레스타인 땅의 4분의 3을 이미 점령한 상태였다. 그리고 1948년 5월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무려 87만 명의 아랍인들이 그 땅에서 쫓겨났다. 이에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1차 중동전쟁이 벌어졌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하여 유엔에서 결정되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된다. 뒤이은 3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더 많은 점령지를 갖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국한된 왜소화된 영토에서 반자치 상태로 남겨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식민 통치나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의 압제하에서 양측이 폭력을 상호 교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20세기 전반기만 해도 세계 지도에 없었던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중동에 생겨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지금껏 눈물 속에서 지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인티파다
이스라엘의 압제 아래 슬픔과 좌절의 세월을 보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해묵은 분노가 터져나온 것이 두 번에 걸친 ‘인티파다’다. 인티파다는 번역하면 봉기 또는 저항이라는 뜻이다. 1987년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지프차에 치여 팔레스타인인 4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1차 항쟁은 6년 넘게 이어졌고, 그 결과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고, 90명의 유대인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고, 미국과 유럽의 적극적인 중재하에 제한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우는 것을 뼈대로 하는 오슬로 평화협정(1993년)이 맺어지면서 유혈 사태는 일시적으로 진정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 이스라엘 극우파 정치인 아리엘 샤론이 이슬람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에 난입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이스라엘 군대가 유혈 진압하면서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7년 동안 팔레스타인인 5,000여 명이 사망했고, 이스라엘인도 1,000여 명 사망했다. 2차 인티파다에서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한 것은 팔레스타인 측이 본격적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2000~2018년의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1만 명이 넘고 이스라엘 희생자는 1,000명을 약간 웃돈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유대인 1명당 아랍인 10명꼴이다. 이러한 극심한 비대칭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단순히 분쟁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반인간적인 전쟁범죄와 학살을 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가자 침공과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번갈아가며 일시적 점령, 퇴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온건화되면서,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가자지구를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부상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벌이는 테러를 빌미로 2009년, 2012년, 2014년 3번에 걸쳐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2009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침공 당시 11세 팔레스타인 소년을 인간 방패로 활용했고, 여성과 어린이가 있는 집을 불도저로 밀어버렸으며, 민간인을 몰아넣은 주택에 포격을 가했다. 이스라엘군은 탁 트인 시계를 확보한답시고 그곳 농민들의 생업인 올리브 밭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이집트로 통하는 무기 밀수 지하 터널을 찾는다는 구실로 수많은 민가에 폭격을 가했다.
지은이가 방문한 가자지구의 한 가정에서는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던 15세 소녀 아스마, 바로 곁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던 11세 동생 아흐메드가 대낮에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저격수는 무슨 까닭에 이들 자매를 죽였을까? 팔레스타인 어린이 3명 중 1명은 나중에 자라서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저항이 과격해지는 것은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거대한 분리 장벽
2002년부터 이스라엘은 총 길이 710킬로미터의 분리 장벽 건설을 밀어붙였다. 2014년 말까지 500킬로미터쯤 완성된 상태이다. 장벽을 세우는 명목상의 이유는 ‘보안’이지만, 실제로는 1967년 6일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불법 점령해온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에 합치고, 언젠가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를 더욱 비좁게 만들겠다는 목적이다. 분리 장벽은 6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19년 동안 국경선으로 삼았던 그린 라인보다 더 팔레스타인 영토까지 나아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갇힌 팔레스타인 주민 24만 명은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다.
방벽 안에 갇혀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인간이라면 최소한 누려야 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고,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할 자유 또한 없다. 일자리나 생필품을 구할 수도 없고, 수로가 막혀 농사도 지을 수 없으며, 먹을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정착민이나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 날마다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장벽 안에 사는 갇힌 팔레스타인들은 과거 나치 히틀러 시절의 유대인들처럼 거주 제한을 받는 21세기 게토에서 지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분리하고 다시 장벽 건설로 도시와 마을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분리 장벽에 더해 이스라엘이 펼치는 가혹한 경제봉쇄 정책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극심한 가난에 고통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 5,000달러 정도이나 팔레스타인의 1인당 소득은 겨우 3,000달러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 사람 2명 중 1명이 절대 빈곤 상태이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은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켜 항복을 받아내려는 경제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파괴하지는 못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말려죽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셈법이다. 19세기 미국의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자행했던 잔혹한 강제 이주와 학살, 20세기 남아공 백인 정권의 악명 높았던 흑백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은 이제 아득한 전설이 되었지만, 중동 땅에서는 21세기 이스라엘판 인종 청소와 차별이 벌어지는 중이다.

식민화의 첨병, 유대인 정착촌
60만 명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영토 내 정착촌에 살고 있다. 정착촌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우파들의 정치적 기획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건설사와 입주자들에 대한 금융 지원으로 점령지의 정착촌 건설과 이주를 독려했다. 정착촌이 세워진 곳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이기 때문에, 정착촌 아파트들은 마치 전쟁터의 요새와 같은 모습으로 건설된다.
또 정착촌 주변에서는 자동소총을 멘 가장이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합법적으로 총을 지니고 다닌다.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킨다는 명분에서다. 6일전쟁 뒤 정착촌이 세워지면서 현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마찰이 잦아지자 1973년 이스라엘 국방부는 정착민들의 무장을 허용했다. 1981년에는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검문하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이스라엘 군사명령 898호). 2000년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유대인 정착민들의 권한은 더욱 커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게 했다!
이스라엘 강경파 정치인들의 중동 지배 전략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현상 유지로 요약된다.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강제 점령한 기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시일을 끌며 팔레스타인 지역에 더 많은 유대인 정착촌을 세워 이스라엘 영토를 넓혀간다는 것이다. 지금도 유대인 정착민들은 주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괴롭히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원주민들이 떠나도록 종용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간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아왔다. 1947년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를 통해 예루살렘을 유엔 신탁통치 아래 두는 국제도시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강경파 정치인들은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한다(반면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라고 주장한다).
예루살렘의 인구는 90만 명이다. 서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동예루살렘은 아랍인 6, 유대인 4의 비율로 살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가 동예루살렘의 아랍인 비율을 줄이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여러 정책, 이를테면 강제 철거, 주택 신축 금지 등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아랍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동예루살렘 주변을 둘러싸고 세워지는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파고든 이스라엘의 식민지나 다름없다. 서안지구의 지도를 보면, 유대인 정착촌이 무수한 점처럼 곳곳에 터를 잡은 모습이다.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영토로 삼겠다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사관 이전 결정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정식 수도로 인정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점령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두 개의 국가 해법 카드를 내팽개쳤다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개의 독립국가를 중동 땅에 세우는 대신 한 개의 국가 해법, 다시 말해 이스라엘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와 이란의 핵무기
4차례에 걸친 전쟁 이후 중동의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균형추는 점점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갔다.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에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막고 이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군사적 불균형이 초래된 이유는, 우선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이집트와 맺은 평화협정으로 이스라엘 남서부 전선의 방어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1994년 요르단 후세인 국왕과 맺은 평화협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특히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인 바 있는 아랍 최대의 국가이므로 이집트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큰 이익이다. 평화협정을 대가로 이집트와 요르단은 해마다 엄청난 경제·군사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이와 더불어 1980년대에 8년 동안 치러졌던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아랍권이 분열된 것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뒤이어 1990년대 걸프전으로 이라크 군사력이 약해지고, 아랍권에 군사원조를 하던 소련이 붕괴하자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의 군사적 균형은 깨졌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40만 이라크군이 해체되었고, 그 후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공고해졌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이제 양적인 측면에서 주변 국가들과 균형을 이루고 질적으로는 우세를 지키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이 신경 써야 하는 국가는 핵을 개발하고 있는 이란뿐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란 핵 시설을 불시에 공격한다면 전쟁의 불길이 중동 전체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
지난 2000년 이후 10여 차례 중동 취재를 다녀온 지은이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중동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 단순히 일부 극단적인 테리리스트들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국제 유가를 걱정해서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평화유지군이란 명목의 군대를 파병해야 하는 국제 외교의 복잡한 문제들이 뒤엉켜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문제가 우리에게 평화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평점 분포

9.5


moon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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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는 신이 나타나 너희는 선택받지도 않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준다고 말한 적도 없다고하면 미국산 F-16 전폭기와 M1A1 탱크로 신마저 죽일 민족이다. 이스라엘은. 종교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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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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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독립군'의 숫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제의 농부가 오늘의 '독립군'이 될수 있음을..

멀쩡한 남의 나라를 침입해, 집과 토지를 빼앗는다면 누가 가만히 있겠냐는 말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팔레스타인'분쟁에 대해 '무지'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테러범'들이 날뛰고 '이스라엘'이 그들을 제압한다는..

극히 잘못된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팔레스타인'분쟁은 '테러'가 아니였더라구요..

'깡패국가'인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이였지 말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당시 '승전국'이엿다면...

우리가 지금 '독립'상태였을까? 말이지요..

실제로 '패전국'과 달리 '승전국'들은 전쟁이후에도..

자신들의 '식민지'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현재도 '식민지'상태였다면..

아마 '팔레스타인'사람들처럼..

우리도 '일본'에게 당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테고..

우리가 남의 나라를 침입한 '일본'에 '저항'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람들이 '테러'라고 말한다면...맞는 말일까요?

남의 나라에 침입해, 멋대로 주인행세하고..

집과 토지를 빼앗고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는데..

그들에 대해 '반항'한다면 '테러범'일까 말입니다.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유혈분쟁 이전에,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리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저항'에 대해서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든것을 묵살하는데요..

'UN'의 경고도, '평화주의자'들의 이야기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자꾸 '일본'이 떠오르는것일까요?

'식민지'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읽다보니 남일 같지가 않더라구요,..




참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못한다고'

'나치'들에게 그렇게 당했으면, 자기들은 달라야 할텐데..

'나치'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말입니다..그들의 모습은 너무 잔혹했는데요..




읽다가 여러번 울컥했습니다..

60년동안 벌여진 그들의 슬픈 역사...

언제면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눈물이 그칠지 말이지요..




정말 몰랐던 '팔레스타인'유혈분쟁의 진실과..

그들의 슬픈 역사를 알아서 좋은책이였구요..

얼른 그곳에서도 평화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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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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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왔기 때문에, 유대인에게는 막연한 호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호감도는 모조리 박살나다 못해 지하를 뚫고 나가버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거주 구역에 백린탄을 퍼붓는 것을 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하는 사진과 영상은 자주 봤으니까.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실상은 그보다 더 끔찍했다.

이스라엘은 단지 폭격을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폭격과 불도저로 집을 부수고, 농작물들을 뽑아버리고, 직업을 구하지 못하게 하고, 물 공급을 막고, 심지어 UN과 평화 단체의 구호품까지 공급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것은 이미 땅을 사이에 둔 전쟁이 아니라, 한 민족을 말살하려는 끔찍한 음모다. 아니, 음모라고 할 수도 없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를 이 땅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던 히틀러와 무엇이 다른가?

사실 내가 쓴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이 책 속에는 믿어지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될, 이스라엘의 끔찍한 행위가 끝없이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여행하고, 여러 지도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건, 팔레스타인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평화운동가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목숨을 걸지만, 유대인 로비를 무시할 수 없는 미국 정치권은 놀라울 정도로 이스라엘의 편이다. 그리고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다른 나라들, 심지어 아랍 국가들까지 팔레스타인을 돕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한, 팔레스타인에는 미래가 없다.

+) 역시 이번에도 원흉은 잉글랜드.

++) 가장 놀랬던 사실은 심지어 이스라엘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이 로마에 의해 디아스포라를 당했던, 원래 유대 왕국에 살았던 그 유대인들의 후손이 아니라는 점이다. 8세기, 터키계 카자르 왕국이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유대교를 국가로 받아들였고, 지금 이스라엘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즉, 신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 받은 민족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국가적으로 부동산 사기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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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kim10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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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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