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박사의 신간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오늘산책)를 요즘 계속 읽고 있다. (조만간 저자와의 심층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일에 유학, 학부 과정부터 공부해 박사를 취득하고 돌아와 대학과 정부에서 독일의 경제 모델 및 정치제도를 낙후된 한국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실천해온 김종인 박사의 ‘독일학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독일 역사를 설명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아데나워와 경제부장관 에르하르트의 업적과 그 의의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현재 유럽 최강국 독일의 고효율 경제와 유연한 민주정치의 기원이 어떤 내력을 가지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경제부장관에 이어 총리에까지 이른 에르하르트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매우 도탑다.)
아울러 저자는 독일의 통일 과정, 노동개혁, 선거제도, 연립내각, 시장경제, 정당, 의회정치, 국고보조금, 헌법 등을 두루 다루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에 연동될 수 있는 문제를 짚으며 해법과 대안을 제시한다. (이를 케말주의적 계몽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특기할 만한 점은 헌법이라는 개념이 없는 독일의 법제를 말하는 대목에서 헌법을 대체하는 기본법의 개념과 의미를 설명한 부분이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에서 최상위 법을 제정할 때 헌법이라는 이름 대신 기본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데 통일이 된 후 헌법을 제정하겠다는 미래적 포석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우리의 현행 헌법은 북한 지역을 국토로 간주하면서 또 UN회원국으로 인정하는 모순을 안고 있으니.)
책 속의 문장은 논리적이고 명쾌해서 흡인력이 아주 뛰어나고, 활자의 배치와 판면의 구성, 그리고 디자인도 가독성을 높인다. 아주 잘 만들어진 기품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저자가 사심이 없고 상당히 쿨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강박적인 내재율로부터 놓여난 자유로운 지식인 같다고 할까. 1940년에 태어나 격동의 한국 현대사 한복판에서 정치 경험과 관료 경험을 가진 그를 혹자들은 얼룩이 묻은 렌즈로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만, 그 얼룩을 닦고 보면 한국 사회에 이만한 내공과 뱃심이 있는 멘토가 있었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을 페이지가 좀 남았지만 자신있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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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차대전 이후 재편된 세계 질서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이룬 나라로 꼽힌다. 자타 공인 ‘독일통’ 김종인 박사는 그 비결을 ‘정치’에서 찾는다. 독일 정치에는 ‘반성과 성찰의 태도’, ‘사람을 키우는 시스템’, ‘혁신과 조화’, 그리고 ‘타협과 포용’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오늘의 독일을 가능케 한 키워드들을 종횡으로 분석하고 소개하면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향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아울러 정치적 극단주의가 횡행하고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며 각국의 이해관계가 나날이 복잡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독일식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우리가 독일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로이 구축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인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목차
프롤로그 벽을 깨고 나아가기 위하여 6
1 아데나워, 비스마르크, 에르하르트가 만든 나라 17
2 보수라고 자랑하지 않는 독일의 보수 45
3 ‘변해야 산다’를 깨달은 독일의 좌파 77
4 좌파와 우파가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나라 107
5 연정 합의서를 보면 독일의 미래가 보인다 139
6 독일은 어떻게 노동개혁에 성공하였나 173
7 성장과 조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독일 211
8 통일을 원한다면, 독일처럼 241
9 헌법, 의회민주주의, 정당정치의 ‘표준’을 만든 나라 271
10 사회국가, 독일 301
에필로그 다시, 혁신의 시대를 향해 336
책속에서
P. 49
독일의 반성은 이러한 모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바이마르공화국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나치 독일과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전후 독일 정치인들은 그것을 고민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독일을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가꾸고 다듬어 이룬 것이 오늘날 독일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다. 접기
P. 73
“보수주의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조화’라고 이야기한다. “정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아도 똑같이 대답한다. 조화를 추구하는 일이 정치다. 정치의 목적과 역할은 사회의 조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고, 그래서 보수주의는 정치의 기본이다.
P. 76
독일에는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오로지 ‘정책’이 있을 따름이다. 각각의 사회적 과제를 놓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선후차를 고민하고 미래를 논증할 따름이지, 특정한 잣대에 따라 ‘보수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진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 같은 도그마가 없다.
P. 124
그동안 독일 정치의 균형은 자민당이 잡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민당은 CDU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싶으면 SPD와 연대해 균형추를 조금 왼쪽으로 당겨놓고, SPD가 너무 왼쪽으로 달려간다 싶으면 CDU와 결합해 사회적 균형을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놓는다.
P. 153
물론 정의는 바로 세워야 하겠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타협이고 협상이다.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끼리 ‘말’로써 푸는 것이 정치다. 합의로 푸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그렇게 굴러가야 사회도 조화롭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정치가 싸움터가 되면 나라 전체가 전쟁터로 변질된다. 거칠게 싸워서 이기려는 사람들만 득세한다. 그게 어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인가. 그런 측면에서 나는 승자 독식의 대통령중심제보다는 독일식 내각책임제가 정치 본연의 성격에 어울리며, 인간과 사회의 본연에도 어울리는 제도라고 말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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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종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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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관철시킨 장본인. 이 조항은 ‘김종인 조항’이라 불리며 우리 헌법 가운데 특정인의 이름으로 별칭을 갖는 유일한 조항이기도 하다.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 조치를 통해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단번에 안정시키며 ‘소방수’로 불렸다. 경제 참모의 영역을 넘어 한소-한중수교와 외교 사안까지 해결하며 ‘만능 수석’이라 불리기도 했다.
재정·조세 전문가로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역임하여 ‘여의도의 포레스트 검프’라 불린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연달아 맡아 매번 정당을 혁신하고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차르’, ‘닥터 K’, ‘경제 할배’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박근혜-문재인 정부 탄생에 모두 기여해 자타공인 ‘킹메이커’로 통한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여러 정부에서 총리 후보 등으로 거론돼 ‘지상紙上 발령 최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194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교수 재직 중 부가가치세 실시 문제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후 근로자재형저축, 사회의료보험 도입 등에 공헌했다. 일제강점기 민족 변호사이자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기틀을 만든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한국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통한다.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 《김종인, 대화》,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 외 다수 접기
최근작 :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김종인, 대화>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국내 최고의 독일 전문가 김종인 박사가 들려주는 독일식 의회민주주의의 정수,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의 미래를 위한 고언
“이제는 토양을 바꿔야 한다.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혁신의 시스템을 갖추자.”
독일은 어떻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재건했는가.
인내와 타협, 토론과 합의의 성숙한 정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독일이 전범국가라는 멍에를 극복하고 합의형 민주주의제를 정착시킨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재편된 세계 질서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이룬 나라로 꼽힌다. 자타 공인 ‘독일통’ 김종인 박사는 그 비결을 ‘정치’에서 찾는다. 독일 정치에는 ‘반성과 성찰의 태도’, ‘사람을 키우는 시스템’, ‘혁신과 조화’, 그리고 ‘타협과 포용’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오늘의 독일을 가능케 한 키워드들을 종횡으로 분석하고 소개하면서, 격변의 시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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