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5

자승이 '소신공양' 했다고? 조계종 정신 차려라 - 오마이뉴스 2312

자승이 '소신공양' 했다고? 조계종 정신 차려라 - 오마이뉴스

자승이 '소신공양' 했다고? 조계종 정신 차려라[주장] 개인적 일탈을 소신공양으로 포장... 한국 불교, 타락의 정점이 보인다
23.12.01
이종범(friscii)

공감1223 댓글99


▲ 자승스님 (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자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조계종이 공식적으로 '소신공양'이라고 정의해 버렸다. 그런데 과연 부처가 분신을 요구했나? 아니 요구를 떠나서 부처가 지금 다시 온다면 분신을 용인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불살생이다. 여기에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생명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내 생명은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교리가 도대체 불교 경전이나 교리 어느 구석에 나온다는 말인가?

물론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약왕보살의 일화를 들고나와 소신공양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전개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분신자살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개념이다. 더구나 약왕보살은 번뇌로 죽은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진리를 위해 보시한 것이고 나중에 다시 화생한다.

이런 '소신공양'이라는 부처의 본래 가르침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뻔뻔한 주장으로 '자살한' 승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종교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다. 조계종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당장 사과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

절간을 불태워가면서 소신공양?

큰사진보기
▲ 경기 안성시 칠장사에서 11월 29일 오후 6시 50분께 화재가 발생해 사찰 내 숙소(요사체)에서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련사진보기

소신공양이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진리를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이다. 근세사에서 가장 유명한 소신공양은 과거 '월남'에서 불교 탄압에 맞서 항의의 뜻으로 승려인 틱쾅득이 분신 자살한 일이다. 그 당시 베트남은 한국처럼 남북으로 갈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이 각각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이데올로기 대리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월남'의 대통령이었던 응오딘지엠은 기득권 세력이었던 지주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였다. 특히 응오딘지엠의 아내는 광신도 수준의 가톨릭 신자로 남편을 사주하여 월남을 가톨릭 국가로 만들 음모를 획책하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을 대리하여 전쟁을 치르던 월남은 불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월남은 잘 알려진 대로 불교 국가였다. 그런데 소수의 월남 권력 지배층은 식민지 시절에 통치 국가인 프랑스와 협력하면서 수입한 종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들이 많았다. 가톨릭을 믿어야 돈벌이가 더 잘 되고 권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톨릭 신자인 기득권층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권력과 돈만 믿고 대다수 민중이 믿고 있는 종교인 불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항의하던 불교를 대표하여 승려 틱쾅득이 1963년 6월 당시 월남의 수도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분신 자살했다. 이 장면을 미국의 맬컴 브라운이 찍은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가톨릭이라는 지배 종교의 탄압에 맞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불교라는 민중의 종교를 지키려 한 틱쾅득의 죽음은 소신공양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승은 그가 남긴 이른바 '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번뇌로 자살했다. 한국의 불교 승려, 특히 조계종 간부로 있는 이들은 탄압은 고사하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거금을 주무르면서 문자 그대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조계종 간부의 노른자위 자리인 총무원장을 지내고 여러 비위와 추문에 연루되었던 자승이 자살한 것을 어찌 틱쾅득의 죽음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승려가 자기 몸만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절간을 불태워 가면서 자살하는 경우는 불교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불교의 승려라면 불교 교리의 으뜸인 사성제를 이루기 위하여 팔정도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마땅한 존재다. 그런데 그 팔정도 어디에도 분신 자살을 촉구하는 내용은 없다. 세상 고통은 모조리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그 집착을, 도를 수행하여 없애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편이 팔정도, 곧 바르게 보고, 사유하고 말하고 실천하고 생활하고 정진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 번뇌를 못 견뎌 분신자살하는 것이 이 팔정도 어디에 들어 있다는 말인가?

현재 한국은 세계적으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줄기차게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특히 종교계가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할 특별한 사명을 지닌 나라다. 그런데 진리를 위해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정진한다고 주장하는 불교의 승려가, 그것도 고위 간부였던 자가 개인적 번뇌로 자살을, 그것도 월남의 틱쾅득처럼 탄압받는 민중의 종교를 지킨다는 올바른 마음에서 자신을 희생시킨 것을 지칭하는 '소신공양'으로 위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에 가까운 짓이다.

살아 있을 때 자승이 저지른 비리를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말을 하는 내 입이 아니 이 글을 쓰는 내 손이 더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승이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여 자신의 비리를 다 덮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수백만 명의 불교 신자에게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다른 가짜 '성직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도덕만이 아니라 상식과 공정, 정의, 원칙이 모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승이 자살한 사건은 문자 그대로 불난 데 기름을 끼얹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로 기가 막히다. 기독교는 이미 여러 추문으로 사회적 욕을 먹은 지 오래다. 그래서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추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혼란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마저 이 지경이라면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인적 일탈을 조계종이 조직적으로 '소신공양'으로 포장하는 짓까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른 것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종교 조직의 이른바 '어른'이 위압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여 신자들의 바른 판단을 막는 이유는 결국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심 때문이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여여한 참 자아를 찾아 니르바나에 이를 길을 부처가 갈파하고 사부대중에게 사자후를 토했는데, 그 진리를 전수받아 대중에게 전한다고 큰소리치는 승려가 보여주는 모습이 온갖 비리에 연루돼 욕을 먹다가 개인적 번뇌로 자살까지 했다. 그런데 그 자살을 '소신공양'으로 호도하는 작태까지 보인다면 이제 한국 불교는 정말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성불하소서'가 헛되지 않도록

큰사진보기
▲ 자승 전 총무원장이 숨진 다음날인 11월 30일 오전 경기 안성시 칠장사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박수림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힘은 이미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한때 국민의 절반이 기독교나 불교 신자였지만 이제는 30%대에 머물고 있고 신자도 점점 더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나 불교나 지극히 세속적인 돈과 권력을 놓고 싸움박질하는 것도 모자라 일반인도 비난받는 패륜을 저지르고 자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한국에서 종교가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발 수천 년 전 부처와 예수가 한 말씀으로, 다시 말해서 각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 '성직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살아도 그 개인의 삶에는 큰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일탈, 더 나아가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행위는 결국 예수와 부처에게 욕을 먹이는 일이 된다. 그런 죄를 짓고 어찌 천국이나 열반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다른 가짜 '성직자'를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불구덩이일 뿐이다. 그런데 죽기도 전에 개인적 번뇌로 그 불구덩이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일까지 벌인다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고, 하늘에 죄를 짓는다면 기도할 대상조차 없게 만드는 일이다.

이제라도 다시 정신 차린 '성직자'가 많은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진리를 위해 용맹정진하기를 기원해 본다. '성불하소서!'라는 구호가 헛되지 말도록 말이다.

추천1223 댓글99 스크랩 공유36
===

소신공양

최근 수정 시각: 
1. 정의2. 사례
2.1. 실제 사례2.2. 가공 매체에서
3. 관련 문서

1. 정의[편집]

소신공양()은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묘법연화경》에서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 앞에서 보의(寶衣)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랐던 데서 유래한다. 경전은 이를 찬양하여, '이것은 참다운 법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길이다. 나라를 다 바치고 처자로 보시하여도 이것이 제일의 보시이다'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약왕보살은 나중에 다시 화생[1]한다.

위의 묘법연화경의 내용을 가지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최고라는 논리를 통해서 미화한다는 일부 인권단체의 주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위에 인용한 묘법연화경의 내용을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을 나타낸 것으로 보며 실제로 자기 몸을 태우는 분신자살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서의 제목은 소신공양이지만 묘법연화경에는 소신공양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살을 금지하고 있다. 석가모니조차 소신공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불교 뿐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라면 순교 급의 대의명분이 있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자살을 권장하지 않는다.[2][3]

불교 내부에서 소신공양, 그러니까 인신공양이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극히 드문일이다. 살생을 금하는 종교가 분신자살을 부추길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간혹 아래 서술과 같이 실제 소신공양 사례는 있으며 자살을 종교로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엄밀히는 분신 자살의 범주에 들어간다.

사실 신자 여부를 떠나서 소신공양으로 알려진 일화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깨달음을 얻으려했던 그 구도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자기변론을 하지 않은 예수가 "자살"한 게 아닌 것처럼, 일화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강권하는 것인 양 이해하는 건 그저 문맥 파악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사례[편집]

2.1. 실제 사례[편집]

  • 태고종 충담스님
    1998년 6월 27일 새벽, 경기도 가평군의 감로사 근처에 손수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불을 붙여 소신공양하였다. 불자로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알려진' 최초 소신공양. 분단된 국토의 통일과 사회의 안녕,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지며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앞당겨지길 기원한다는 내용의 열반송을 남겼다. 세수 85세, 법랍 69세.
  • 조계종 문수스님
    2010년 5월 31일,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사직리 위천잠수교 앞 하천 둔치에서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하였다. 향년 47세. 유서 내용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긴급 기자회견 및 조계사 경내에 31일 밤부터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받았으며,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퇴휴 스님과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스님이 현장에 급파되었다. 평소 스님이 기거하던 선방의 세간은 텔레비전 1대, 서랍장 하나가 전부였고, 식사도 하루에 1끼만 먹을 정도로 수행에 정진해 온 상태였다. 방 한 귀퉁이엔 50cm 높이 2덩이로 스님이 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회의식이 매우 깊었으며, 평소 동료 승려와도 4대강 관련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조계종 총무원은 평소 통도사해인사, 묘관음사 등의 선방에서 참선 정진만 해오던 수좌가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충격적이라는 입장이였으며, 고인이 만생명을 살리기 위한 소신공양을 감행한 만큼 영결식은 조계종단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 조계종 자승스님
    2023년 11월 29일 18시 50분쯤 그가 머물던 경기도 안성시의 칠장사에 있는 요사채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 진압 중 19시 52분경 요사채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향년 69세, 법랍 51세로 사망했다. # 현장에서 본인의 필적으로 쓰인 유서가 발견되어 조계종 종단에서 소신공양으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근거로 제시된 유서에는 여타 자살자와 다를바 없는 도피성 내용밖에 없어, 소신공양으로 지정한 종단에 비판이 일고 있다. 이후 논란이 일자 종단측은 유서를 추가적으로 공개했으나, 기존의 유서 내용과 크게 다를바가 없어 대중의 시선은 싸늘한 편. 그리고 분신 과정도 심야에 몰래 남의 건물을 전소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는 소신공양이 아니라 큰 화재로 번질 위험이 높은 방화범죄에 가깝다. 자승이 '소신공양' 했다고? 조계종 정신 차려라

2.2. 가공 매체에서[편집]

  • 김동리의 등신불
    사실 한국에서 소신공양이 유명해진 이유는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등신불은 소신공양 후 남은 육체에 금물을 부어 불상을 만들었다. 다만 여기서 등장하는 만적이 자신의 어머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소신공양을 하는 것이 순수한 의미에서 소신공양이 아니라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불교에서의 소신공양은 고승이 순수하게 자신의 몸을 공양하는 행위이다.
  •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가을 마지막 장면에서 노승이 소신공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와 함께 몰래 절을 떠났는데 그 여자를 죽이고 돌아온 타락한 제자에게 반야심경을 나무 바닥에 새기라고 명하면서 갱생시킨뒤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닫을 관 자가 쓰인 종이에 물을 발라 눈, 코, 귀, 입을 모두 봉하고 배 위에서 스스로를 불태운다. 이후, 징역을 살고 돌아온 제자가 겨울에 얼어붙은 강의 배에서 스승의 사리를 수습하고 불도를 닦으면서 자신의 스승이 어린 자신을 제자로 삼았던 것처럼 자신도 절에 버려진 어린 아이를 제자로 삼았는데, 그 어린 제자가 물고기와 개구리, 뱀의 입에 돌을 물려서 괴롭히는 것을[5] 보여 주며 영화가 끝난다.

3. 관련 문서[편집]

[1] 의존함이 없이 저절로 태어나는 것을 말함[2] 이슬람교나 가톨릭도 일반적인 자살은 율법에서 굉장한 중죄로 치며, 원불교에서는 믿음을 증명하고자 몸을 다치거나 죽는 일을 금지한다.[3] 구체적으로는 종교-사회에 도움이 되는 자살(행위)는 소신공양, 순교, 희생으로 미화하고 권장하되, 도움이 안되는 자살만 선택적으로 금기시 했다고 보는게 맞다.[4] 제도화된 수사로 소신공양을 수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모호함[5] 이전에 노승은 제자가 동자승 일때 물고기와 개구리, 뱀의 몸에 돌맹이를 실로 매달아 괴롭히는 것을 보고 동자승이 잘 때 등에 돌을 얹고 묶어 놓는다. 아침에 일어난 동자승이 힘들다고 풀어달라 이야기 하자 고통스럽냐고 물은뒤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 묶어 놓은 돌을 모두 풀어주고 돌아와야 동자승의 돌도 풀어주겠다 이야기 하며, 만약 그중 하나라도 죽었다면 평생 마음에 돌을 안고 살 것이라 이야기 한다. 동자승은 묵묵히 배를타고 건너가 산의 개울가로 가서 찾은 물고기가 죽어 있자 땅에 묻어 주고, 개구리의 돌맹이를 풀어준뒤 산을 더 올라 찾은 뱀이 죽어 있는것을 보고 펑펑 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