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인남식 교수 인터뷰]“중동 분쟁 이면에는 ‘힘 빠진 美’… ‘트럼프 2.0’ 가능성도 갈등 키워”

[파워인터뷰/하정민]“중동 분쟁 이면에는 ‘힘 빠진 美’… ‘트럼프 2.0’ 가능성도 갈등 키워”

[파워인터뷰/하정민]“중동 분쟁 이면에는 ‘힘 빠진 美’… ‘트럼프 2.0’ 가능성도 갈등 키워”
하정민 기자입력 2024. 1. 21.
중동전쟁 100일…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교수

《“이스라엘, 하마스, 이란 등 중동 전쟁의 이해당사자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내심 바라고 있다. 노회한 중동 각국 지도자의 장기 집권,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또한 역내의 분쟁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이며 지난해 11월부터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56)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100일을 맞아 내린 진단이다. 그는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전쟁 또한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의 분쟁 강도와 빈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의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야 소피아’ 앞에 선 국내의 대표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지난해 11월부터 이스탄불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현지 연구를 통해 중동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비극을 끝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남식 교수 제공
====

인 교수는 개전 100일 다음 날인 이달 15일 동아일보와 화상 인터뷰에 이어 최근 중동 곳곳을 공격한 이란에 파키스탄이 보복해 서남아시아로도 확전 우려가 고조된 18일 추가 서면 인터뷰를 갖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및 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세력 약화”라고 분석했다.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가 중국 등 다극(多極) 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은 그 대처에도 바빠 ‘세계의 화약고’ 중동을 과거처럼 관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분쟁의 상시화, 일상화, 장기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고립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이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지 않을 때부터 각종 강연과 기고로 중동을 알리며 명성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아랍 주요국을 누볐지만 그럴수록 아랍계가 아닌 중동의 세 나라, 즉 이스라엘(유대계), 튀르키예(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이전 연구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냈고 이번에 튀르키예로 왔으니 다음 연구년은 이란으로 가겠다. 이를 통해 중동 갈등의 연원과 해결 방안을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100일을 넘겼다.

“양측 모두 전쟁을 빨리 끝낼 동기가 부족하다. 하마스는 가자를 넘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대체할 지배세력이 될 속내를 보이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서안지구 내 하마스의 지지율이 올랐다. ‘이스라엘의 부역자 같은 무능한 PA 대신 이스라엘과 맞서는 우리를 선택해 달라’는 주장이 먹히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중 수장을 교체하지 않는다. 단결해야 한다’는 여론에 기대어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네타냐후 내각이 거듭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교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직 총리 최초로 재판을 받고 있고,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비판도 큰 네타냐후 총리는 전선(戰線)이 넓어져야 정치 생명이 연장되는 측면이 있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 또한 ‘외부의 적’을 세력 확장의 명분으로 삼고 있어 사태의 해결이 쉽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75)와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89), 하마스 지도부,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85) 등은 다 장기 집권 중이다. 모두 내부 반대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권 연장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약 2만5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미국의 저강도 작전 요구나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이 거센데도 왜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는가.



“선제공격을 당했으니 면피용으로라도 두 조건 중 최소 1개는 충족돼야 휴전을 검토할 것이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2인자’ 야히야 신와르를 제거하거나 하마스가 억류 중인 약 130명의 인질 중 상당수를 돌려받는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스라엘이 휴전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11월 미 대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사이는 미지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이스라엘 총리가 집권하면 곧바로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관례를 깼다. 2022년 12월 세 번째로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 겨우 만났다.

반면 ‘브로맨스(bromance)’로 불릴 만큼 네타냐후와 가까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첨예한 종교 분쟁지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의 3각 수교도 중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처럼 트럼프와 가까운 내가 총리로 있어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며 버티려 할까 걱정이다.”

―이번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란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후 그 이념을 수호하고 이슬람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고 있다.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에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을 지원하는 이유다. 특히 시아파 정체성을 이용해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생각이 뚜렷하다. 이미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와 자국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고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손발이 묶인 사이에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의 도발 전까지 중동의 주인공은 이란의 경쟁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물밑에서 수교 협상을 벌였고 미국에는 원자력발전소 기술 이전, 동맹 수준의 안보 협력을 요구했다. 수교가 이뤄졌다면 이스라엘이 거침없이 아라비아반도를 넘나들며 이란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으니 이란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제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이 공동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이란은 이 무장단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전략적 입지를 구축했다. 다만 이란의 앞날도 녹록지 않다. 히잡 의문사 규탄 시위 등 사회적 저항이 확인됐고 경제난은 매우 심각하다. 신정일치 체제를 지지해 온 빈곤층이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진짜 위기가 올 것이다.”

―휴전 후 가자지구를 누가 다스릴 것이냐는 문제에 현실적인 해법은….

“230만 명 가자 인구의 절반은 미성년자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를 장악한 후 다른 통치 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반(反)이스라엘, 반미 노선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치러도 하마스와 비슷한 강경 성향의 조직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를 없애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나올 것이다.

미국은 PA가 서안지구와 가자를 모두 통치하는 것을 내심 바란다. 이론적으로 가장 나은 대안이나 무능과 부패로 서안지구에서조차 인기가 낮은 PA가 가자 민심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 창살 없는 수용소에 갇힌 듯 살아왔던 가자 주민들은 PA가 이스라엘에 붙어 호의호식했다고 여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국제사회가 일종의 신탁 통치를 하자고 주장하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동 일대의 다른 전쟁과 분쟁도 장기화, 만성화했다.

“시리아는 2011년부터, 예멘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내전 중이다. 리비아 또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2011년부터 준내전 상태다. 궤멸된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도 아직 건재하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 약화가 주요 원인이다. 싫든 좋든 미국이 단일 패권국으로서 중동에 관여할 때는 최소한의 역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인도태평양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할 것이다. 중동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분쟁의 강도와 빈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다.”

―중동 전문 학자로서 해법이 안 보이는 상황을 볼 때 어떠한가.

“무력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은 더 무섭다. 인간을 구원해야 할 종교가 살상 명분으로 작용하는 것도 비통하다. 하지만 암울한 시기에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켰음을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보여준다. 그런 지도자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1. 특이했던 지난 70여년
2차대전 후, 지난 70여년은 인류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시대였다.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민주주의가 정치발전의 순경로라 믿었다. 자유무역 역시 경제학 교과서의 핵심이자 공동번영을 위한 상식이었다. 타국의 영토를 노획하려는 반칙을 하면 다들 나서서 '그건 안되지' 하며 함께 힘을 모았고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유럽은 한 발 더 나아가 나라들끼리 모여 화폐도 하나로 묶고 정치체제도 합쳐가며 통합이 정해진 미래인것처럼 믿어왔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시대를 살았으니 내겐 이게 상식이었고 자연스러운 귀결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게 아니었다. 당연한줄 알았던 상식들이 이젠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가 더 익숙해지고 있다. 굳이 혼란을 겪으며 민주화하느니 안정된 권위주의가 낫다는 생각들이 굳어지고 있다. WTO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할 정도로 존재감이 낮아졌다. 유럽 각국은 아직은 서로 얽혀있으나 각자 국경을 높이고 있다. 극우 정부의 출현이나 브렉시트는 유럽 통합의 미래에 암울하고도 극적인 전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모습이 인류 역사의 본모습에 가깝다. 상식으로 알았던 민주주의, 자유무역, 통합과 협력이라는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불과 70여년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경험해 본 적도 없었던 체제였다. 제국의 지위를 가진 강대국들이 질서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도적 힘을 가진 제국들은 소위 레벤스라움 경쟁을 확대해가며 정복하고 병합하고 통치하면 그만이었다. 정의는 강자의 규범이라는 트라시마커스의 주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 힘이 다른 이들을 압도하면 베스트팔렌 조약이 간신히 만들어놓은 원칙, 즉 상대국의 주권을 인정할 이유도, 존중하며 질서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품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게 어쩌면 정상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런 제국의 행태였다. 대영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온건한 제국 (benign empire) 미국
지난 70년이 매우 이례적인 시대였던 이유는 제국적 지위를 가졌던 미국의 독특성 때문이었을것이다. 비록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특수 환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미국은 기존 인류 역사의 제국 행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전쟁의 상흔을 본토에서 겪지 않은 (진주만은 예외) 미국은 전후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맘 먹은대로 할 수 있었을 시기다. 그러나 초토화된 유럽 재건을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들어낸 것은 제국의 상식과 통념상 이례적이었다.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부흥을 견인한 것도 지금 되짚어보면 극적이다. 가치를 이야기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공동선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건 제국의 일반적 행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압도적 힘을 가진 나라가 굳이 공을 들여가며 나라들을 모으고 합의하며 함께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그리했다. 행태만 보면 '온건한 제국' (benign empire)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히 냉전때문이었다. 더 이상 약탈적 제국을 인정하지 안겠다는 세계시민 의식의 각성이 도처에서 뒤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라들을 모아 설득을 통해 질서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패권 유지라는 선택은 독특한게 사실이었다. 물론 명확히 해야할 것은 있다. 미국이 본성상 더 선해서, 손해를 감수하며 질서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시간과 품은 많이 들지만 질서를 통해 얻는 이익이 힘의 배타적 사용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큰 시대의 조류에 조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미국의 기독교문화에서 발원한 예외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이른바 "축복받은 요셉의 창고"의식이랄까?
냉전이 무너졌을 때, 미국은 그야말로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많은 이들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야기했다. 마침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응하는 미국 주도의 '사막의 폭풍 작전'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가공할만한 군사력의 미국이 영토침탈의 반칙 (특히 우방국에 대한)을 용납하지 않음을 만방에 알린 계기였다.
3. 중동에서 드러난 한계
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한 신념은 꼭 10년 갔다. 2001년 9.11이 터졌고, 이에 다시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강력한 유일초강대국의 제국적 지위를 현시하려 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두 전장에서의 승리'를 장담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도 이길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라크에서 사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미국을 감히 도발하고, 민주주의 확산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들은 발본색원하겠다는 네오콘 주도의 대외정책은 무모해보였지만 작동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역설이 발생했다. 불량한 정권을 교체하겠노라 선언하며 이슬람권에 개입하면서 기존의 질서 선도자의 이미지에 타격이 왔다. 부시 독트린과 그에 따른 테러와의 전쟁은 911 트라우마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바깥의 시선으로 볼 때는 일방주의로 비쳤다. 전통적 대서양 동맹국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캐나다의 불참도 뼈아팠다.
그리고 탈냉전기... 이미 분화되기 시작한 세상의 복잡성, 그 이면에서 끓고 있던 엔트로피의 세계를 미국이 주도하던 질서로 포획하기엔 이미 너무 어지러웠다. 이라크는 점점 지옥도가 되어갔고, 탈레반의 저항은 20년간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전쟁의 의미와 효용성을 하루하루 되묻고 있었다. 사담을 축출한 이라크는 이란의 영향력에 편입되는 징후가 나타났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알카에다보다 더 극악한 IS가 나타났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동맹국들은 탈레반 하나 없애지 못했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안정화, 관리전략 및 국가건설까지의 역량은 부족했음을 미국 내에서 각성하기 시작했다.
슬픔속에 시신으로 운구되어 장병들의 모습을 10년 넘게 지켜보는 미국 유권자들은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자유주의 질서 수호자... 뭐 다 좋은데 그 명분이 도대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거칠게 되물었다. 트럼프 진영의 도발적인 표현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와 리더십을 주장하는 엘리트들에게 무척 아팠다.
"전쟁은 바닷가 사람들 (워싱턴, 뉴욕, 보스턴) 이 결정하고, 정작 보디백에 담겨 시신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은 중부 어딘가 레드넥의 자녀들이다"
4. 정상적인 (정글의) 시대로
이번 인터뷰는 미국의 이 감정을 반영하고 오고간 이야기다. 미국 힘의 약화는 군사적, 경제적 역량이 줄었다는 뜻이 아니다.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견인하겠노라, 그게 미국과 세계의 공동이익이기에"라 믿는 신념이 약화되었고, 의지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뜻이다.
차라리 무의미한 전장에서 발을 빼고, 미국의 미래 패권에 직접적 위협을 주는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이건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모두 궤가 같다. (물론 트럼프가 가장 민낯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동안 미국의 이중성과 위선적 속내에 관한 비판은 많았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위선적이라는 말은 그래도 '선'하다는 가치에 관한 인식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미국내 학계, 언론, 시민사회에서 자국의 이중성 문제를 제기할 수가 있었다. 그게 미국이 지난 70년간 보여주었던 제국 행태의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보호하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보면 섬칫할 때가 있다. 화학무기를 써도, 자국 백성 50만명의 죽음이 십수년간 이어져도 시종여일 러시아는 아사드를 지키고 지지한다. 위선적이라느니, 이중적이라느니 하는 말 자체가 의미없는 세상이다. 어쩌면 이게 자연스러운 강대국의 모습이다.
물론 이란콘트라나 아부그라이브 등 말과 행동이 달라서 미국이 비난 받은게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하느라고 했는데 위선적이라느니, 왜 이중잣대를 들이대냐느니, 모든게 미국의 음모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나 둘씩 흘러 듣게 되면 미국 유권자들은 '도대체 왜 우리가 이런 소리 들어가며 관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티반군의 홍해 항행 방해에 대해 미군이 대응하자 호전적 행동이라는 내외 비판도 잇따랐다. 이 때 고립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호르무즈 석유 물류 이제 의미없다. 유럽과의 교역은 대서양을 건너고 아시아 교역은 태평양을 건너니 홍해도 큰 의미없다. 그 항로들은 다 동아시아가 절박한 항로들인데 미 함대가 지켜주고도 이 욕을 먹는다면 굳이 왜?'라 말을 꺼낸다. 작년 3월 사우디와 이란이 중국 중재로 국교 정상화를 했을 때 워싱턴 강성인사들은 아예 5함대 빼자는 이야기도 꺼냈다. 사우디가 중국에 내다파는 석유항로를 미국이 지켜주었고 돈은 사우디와 중국이 벌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노때문이었다. 물론 사슬처럼 연결된 국제무역의 본질을 외면한 생각이고 전략가치상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직관적인 비판이었고 관여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정서는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미국도 방향만큼은 점차 관여를 줄이고, '정상적(?)'인 또는 '자연스러운' 대국노릇만 하는 쪽으로 가는 듯 하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더 이상 세상에 관여하며 의미없는 피를 흘리는 일 하지말고, 국경높여 우리끼리 잘 사는게 우선이라는 '미국 민족주의'로 점점 기울고 있는 느낌이다. 그걸 밖에서 누가 탓할 수도 없다.
마을 이곳 저곳 다니며 관리하던 정원사가 일을 접고 자기 집 앞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담을 높이고 있다. 결국 담장 바깥은 알 수 없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로버트 케이건이 말한 '정글이 다시 자라는 세상'이다. 이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식의 국제사회는 더 이상 없다는 의미다. 지난 70년간의 실험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는 비관적 스케치이기도 하다.
어쩌겠는가.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의 질서는 이제 사라지더라도, 정글도 정글 나름의 질서가 있는 법. 하루빨리 그 무시무시한 정글의 생존 질서를 빨리 익히는 것이 시급하지 않겠는가.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