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김대호, 좌파논객의 통합진보당 강령 분석 : 월간조선

[이슈진단] 좌파논객의 통합진보당 강령 분석 : 월간조선:

좌파논객의 통합진보당 강령 분석
진보당의 진짜 문제는 시대착오적 이념


글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한미FTA·강정해군기지 반대 등 야권정책합의는 진보당 정강의 산물
⊙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재벌해체 등 민노당 강령 계승
⊙ 세계화, 노동·고용시스템 변화 등 수용하는 서구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대조적

金大鎬
⊙ 49세. 서울대 공대 졸업.
⊙ 학생·노동운동,《단결의길》 편집장,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차장, 인천광역시장(송영길)
경제사회특보 역임. 현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거리를 바꾸자(fixmystreet.kr) 공동대표.
⊙ 저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한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2013년 이후》.

2008년 2월 3일 민노당 임시전당대회장 앞에서 일심회 간첩단에 연루된 주사파 척결을 요구하는 PD계열 당원들(왼쪽)과 이에 반대하는 주사파 당원들(오른쪽)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강령(綱領)은 정당의 정책적 지혜의 정수(精髓)이다. 가히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열성 지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정당의 많은 공직 후보자들이나 유력 지도자들조차도 자당(自黨)의 강령을 잘 모른다. 강령은 소수의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나 꼼꼼히 읽고 숙지할 사항으로 여겨진다. 이는 진보와 보수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거전(選擧戰)은 정당이나 후보의 비전·정책 대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한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 선거에서는 대체로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방의 부정비리를 들춰내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이 주가 된다. 정당들은 정책공약집을 내고, 일일(一日) 정책브리핑을 하고, 유세(遊說) 과정에서 ‘지역 맞춤형 공약’도 쏟아 내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의 뇌리에는 네거티브 시비들만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는 유권자의 무관심과 망각 탓만은 아니다. 바닥 현실을 아는 전문가도 고개를 끄덕이고 대중이 감동하며 기대에 부풀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그럴듯한 공약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강령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후보들이 거의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생명을 걸고 공약을 연구하고 실현하려는 후보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령은 학교 급훈(級訓)처럼 아무도 보지 않고, 영향력도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사실 네거티브 시비들조차도 철학·가치·비전·정서의 총화(總和)인 강령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4·11총선에서 야권연대(野圈連帶) 지지율의 분수령이 되었던 한미(韓美)FTA와 제주해군기지 반대 주장은 즉흥적 선거 전술(戰術)이 아니었다. 민주통합당(민주당)과 통합진보당(진보당) 두 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백승헌·박석운)가 합의한 3자 공동정책 합의의 산물이다. 동시에 두 당의 강령에 명기된 외교·통상 정책의 산물이자, 강령 전반에 흐르는 철학·가치·비전·정서의 산물이다.


진보당, “종속적 韓美동맹 해체”



윤금순 진보당 비례대표당선자(부정선거파문 후 사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FTA폐기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2년 3월 10일 발표된 <4·11 총선,‘국민 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의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관련 부분은 이렇다.

<2-4.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FTA의 시행 반대

(중략)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한미FTA는… 국가의 존엄과 국민의 자존심에 반하는 굴욕적인 협상으로 무효… 재협상과 폐기라는 양당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체결·비준한 한미FTA의 시행에는 전면 반대한다.>

2-5. 제주 강정마을 군항공사의 중단과 재검토 추진

(중략) 우리는 즉각적인 공사의 중단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는 19대 국회에서 공사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책임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

통합진보당의 강령(2011년 12월 5일) 중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입장과 관련된 부분은 이렇다.

8. (중략) 불평등한 경제협정을 개정·폐지하며… 국가 간 상호 호혜적인 공정무역의 형태로 전환한다.

36.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이와 연동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동맹체제를 해체.(중략)

39. 기존에 맺은 모든 불평등 조약과 협정을 개정·폐기하며…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과 함께, 진보적 국제연대를 적극 실천한다.>


민주당의 모순

이 부분과 관련된 민주통합당의 강령(2011년 12월 16일)은 이렇다.

<22.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 통상·안보정책

우리는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어떤 외교· 통상·안보정책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미FTA를 포함한 모든 통상정책을 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한다.

18. 안정·안전의 농림수산식품정책 수립

(중략) 식량주권과 농축산어민의 생활안정, 안전한 먹거리는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로 한미FTA, 농수축산물 수입문제 등은 이러한 관점에서 정책을 재정립한다.>

이렇듯 한미FTA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민주통합당 강령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민주당의 부정적 입장의 모태가 되는 강령은 없다. 오히려 “19. 새로운 영토주권 확립으로 해양 입국 모색”에서는 “영해 및 공해상의 주권 강화” 등을 천명하고 있어서, 야권연대의 입장과는 다소 상충된다. 따라서 안보불안 심리를 증폭시킨 민주당의 제주해군기지 관련 입장은, 선거연대를 넘어 무리하게 정책연대를 추구한 통합진보당 및 시민사회단체의 과욕을 그대로 받아 안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반면에 개방에 전향적(前向的)인 새누리당 강령(2012년 2월 13일)의 통상정책 관련 부분은 다음과 같다.

<3-1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

(중략) 국제표준에 입각하여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국내·외 기업들이 자기책임원칙 아래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8-1 (굳건한 안보체제의 확립과 군복무시스템 개선)

군의 정예화와 국방력 강화를 통해 자주국방을 지향하며, 미래지향적 국방체제와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유지한다. 주변국과의 안보협력과 평화정착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렇듯 강령은 정당 지도부와 후보들이 그 상세 내용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정당의 주류적 철학·가치·정서 등의 총화이기에, 선거 캠페인과 선거 연대 등 전략전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진보당 강령에 있는 것, 없는 것

정당의 강령은 일종의 대(對)국민 약속이다. 이는 곧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시대인식과 주된 대립물)과 상세한 비전이 양대(兩大) 지주(支柱)이다.

대개 강령 전문(前文)에는 시대인식과 주된 대립물에 대한 통찰이 압축적으로 담긴다. 이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던진 핵심 화두(話頭),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에 대한 응답으로, 강령의 정수(精髓)이다. 정치세력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비전이나 친구(지지자)보다는 주적을 봐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데서 보듯이, 정당이 주된 대립물을 무엇으로 설정하는지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령에서 무엇을 언급하고 무엇을 언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정책적 우선순위와 가치체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통합당은 해외동포와 해양입국 관련 강령은 있으나 통합진보당에는 없다. 반대로 국가 기간(基幹)산업의 민영화 반대 및 국공유화, 핵(核)발전소 단계적 폐지 및 분산형 재생가능 에너지 체제로 전환, 정치제도 개혁(대선 결선투표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 국가보안법 폐지, 7·4남북공동성명 및 남북기본합의서 정신 존중, 한미동맹 해체, 동아시아공동체 건설, 과거사(친독재 행위) 심판 등은 통합진보당 강령에만 있다.

이는 두 당의 안목과 관심사의 차이의 반영이다. 선진국의 주요 정당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확연할 것이다.




슬그머니 사라진 강령 前文

통합진보당 강령(2011년 12월 5일)에는 전문이 없다. 그런데 모체(母體)가 되는 민주노동당 강령(2011년 6월 19일 제2회 정책당대회에서 채택)과 2010년 1월 17일 창당시 제정된 국민참여당 강령은 그렇지 않았다.

두 당의 통합과정에서 강령 전문을 왜 삭제해 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추측건대 강령 전문에 “민주정부 10년의 발자취를 이어, 국민의 민생복지를 살피는 역동적인 복지국가를 실현하고, 계층, 지역, 세대의 차이를 아우르는 균형발전을 추진하며, 참여민주주의를 국정 및 사회 운영의 원리로 뿌리내려 시민주권시대를 열고…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 등을 명기한 국민참여당과 좁힐 수 없는 철학· 가치·정서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정당이 자신의 영혼(?)에 해당하는 강령을 바꾸면서 제대로 된 성찰도 논쟁도 없고, 개정 근거조차 뚜렷이 밝히지 않은 채 슬그머니 바꾼다면, 또 열성 지지자들조차 강령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청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막연한 이미지로 지지를 한다면, 오랜 뿌리가 있는 철학·가치· 정서는 정당의 근저에 도도히 흐르지 않을 리 없다.

그런 점에서 2000년 1월 창당 이후 2011년 12월까지 거의 12년 동안 민주노동당의 영혼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원 강령과 개정 강령을 살펴보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영혼을 이해하는 데 매우 필요하다.


‘민주 평등’에서 ‘자주 평등’으로

민주노동당의 원 강령은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미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시대인식) <우리가 만들 세상>(비전) <민주노동당의 길>과 16개 범주의 세부 정책으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었다. 미션, 시대인식, 주된 대립물, 비전의 핵심 내용은 개정 강령(2011년 6월 19일)에 대부분 녹아 들어가 있다. 다만 ‘사회주의’가 전문에서 살짝 물러나고 ‘자주’가 전면에 왔을 뿐이다. 원 강령의 제목은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였는데, 개정 강령은 <자주 평등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향해>로 바뀌었다. 아무튼 민노당 원 강령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

우리 민중은 제국주의 침략과 민족분단, 독점재벌의 민중수탈, 군사독재로 얼룩져 온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크나큰 희생을 무릅쓰면서 투쟁해 왔다. (중략) 우리는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상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는 바로 자주적 민족통일국가를 좌절시킨 분단의 역사와 만물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중략) 미국을 정점으로 한 외세는 한반도를 분할하고 남북 간에 전쟁을 부추겨 민족상잔의 참극을 야기시켰으며, 남북 모두에게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민중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민주와 자유를 빼앗아 갔다. 또 친일 매국노들을 해방 조국의 지배자로 만들고, 군사독재를 앞세워 민중의 거센 투쟁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 (중략) 매판적인 개발독재는 이제 외환·금융파탄으로 이어지고 이로부터 불거진 한국경제의 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와 정치권력은 이 위기의 본질은 외면한 채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더욱 가증스럽게 민중을 착취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 세상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신자유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투쟁해 나간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하고,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 체제를 건설한다. (중략)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중략)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反美·反자본주의 강조

민노당의 원 강령은 우리 민족과 민중이 당하는 고통은 “자주적 민족통일국가를 좌절시킨 분단의 역사와 만물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외세, 곧 미국의 지배·간섭을 물리치고 반(反)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고,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지배·간섭 극복과 강령 전체에 걸쳐서 18번이나 언급되는 신자유주의로 현상화된 자본주의 체제 극복이 민주노동당의 궁극적 지향인 것이다.

이는 민노당의 개정 강령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정 강령은 전문과 15개 강령 <우리가 만들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문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미국)군사패권(覇權)주의와 비(非)자주적 정부를 우리 시대 총체적 위기의 원흉(元兇)으로 지목하고, 자주적 민주정부, 자본주의 폐해 극복,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 등을 대안(代案)으로 제시한다.

<(중략) 우리 민중은 제국주의 침략과 민족분단, 외래 독점자본과 국내 재벌의 민중수탈, 독재, 사회 불평등과 생태 파괴, 가부장적 폭력으로 얼룩져 온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군사패권주의가 초래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되지 않는 한 민중의 삶은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중이 참주인이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것이다.>


강령 전체의 세계관은 민노당의 것

민주노동당 15개 강령, 국민참여당 40개 강령, 통합진보당 40개 강령을 비교해 보면, 국민참여당의 <사회분야(15개)> <경제분야(12개)> <정치분야(9개)> 강령은 대체로 통합진보당 강령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강령 전체에 흐르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거의 민주노동당의 것이다. 특히 <통일·외교·안보 분야>는 전적으로 민주노동당 강령이 기조(基調)가 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의 통일, 외교 관련 강령(3번, 4번)을 보면 확연하다.

<3. 자주와 단합의 민족공동체 건설을 향해

우리는 외세의 부당한 간섭이나 개입을 반대하고 우리 민족의 주체적 힘에 의한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우리는 7·4남북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통일의 대강으로 삼는다. 우리는 전쟁이나 흡수통일의 방식이 아닌 화해와 단합으로 공존공영할 수 있는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한다.

4. 자주평화, 친선을 위하여

우리는 기존에 맺은 모든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폐기한다. 우리는 남북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통해 한미군사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 우리는 자주, 평화, 친선의 국제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모든 침략전쟁을 반대하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통합진보당 강령에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

<36.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이와 연동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동맹 체제를 해체하여 동북아 다자평화협력 체제로 전환한다. 국군의 해외 파병을 금지하고, 선제적 군비동결과 남북 상호 군비축소를 실현한다.

38.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며,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이행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

39. 기존에 맺은 모든 불평등 조약과 협정을 개정·폐기하며, 미·중 등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과 함께, 진보적 국제연대를 적극 실천한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주류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뜯어보면, 미국과의 경제통합 수준을 한층 높이는 한미FTA 결사반대는 필연이다. 한미동맹 체제도 반드시 해체해야 할 대상이다. 또한 어떤 수식어로 표현해도 중국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동맹, 즉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조선노동당과 유사한 가치체계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친북·종북성의 뿌리는 ‘지령수수 관계(간첩 암약)’라기보다는 조선로동당과 유사한 가치체계가 아닐까 한다. 이 핵심은 인간의 자유, 행복, 인권이 아니라 ‘자주’ 혹은 ‘종속성 극복’을 최상위 가치로 놓는 것이다.

단적으로 민주노동당 강령(2011년 6월 19일)에서 ‘자주’라는 단어가 무려 11번이나 나온다. ‘자주평등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향해’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평등사회’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 ‘자주와 평등, 인간해방’ ‘2. 민생중심의 자주·자립적 경제체제 실현’ ‘3. 자주와 단합의 민족공동체 건설’ ‘4. 자주평화, 친선을 위하여’ 등.

그런데 통합진보당 강령에서는 ‘자주’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온다. 38번 강령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그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주’가 두 번 나온다. 11번 강령의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강령에서 ‘자주’라는 단어 사용을 대폭 줄였다고 해서 그 세계관과 가치관이 바뀐 것은 아니다. ‘자주’ 가치를 풀어서 서술했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경제협정을 개정·폐지”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의 폐해 극복” “상호 호혜적인 공정무역” 등을 강조한 8번 강령이 대표적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6·15와 10·4선언만 강조한 민주통합당과 달리 (새누리당은 아예 언급이 없다),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정신 존중을 강조했는데, 이는 ‘자주’를 특별히 강조한 합의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인간의 자유, 행복, 인권이 아닌 ‘자주’를 최상위 가치로 놓게 되면 역사적 정통성은 항일(무장) 투쟁 세력이 국가의 중추를 이룬 북한에 있기 마련이다. 자랑할 것이 과거밖에 없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역사적 정통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래서 보수우파에 의해, 친북·좌익활동에 대한 역사적·사법적 심판과 역사적 정통성 시비라는 맞대응을 불러일으킬 조항을 과감히 집어넣었다.

<40. 과거 친일·친독재 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확고히 하고, 민족의 해방과 자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선대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역사적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다.>

‘자주’를 최상위 가치로 놓게 되면 북한이 대미(對美) 자위권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핵무장에 관대하게 되어 있다. 반공화국 사범들을 구금한 수용소와 혹독한 인권유린에도 관대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내재적 접근법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되어야 할 북핵(北核) 포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되어야 할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체제 해체―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을 강령에 명기하는 추태를 보인다.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 기조는 2번에 집약되어 있다.

<2. 민생중심의 자주·자립적 경제체제 실현

우리는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는 자주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민중의 주체적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경제체제를 건설한다.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우선하는 경제운영을 통해 민생경제를 확립한다. 또한 재벌중심 경제체제,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를 지양하고 중소기업의 정상적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남북경제협력을 강화하여 통일경제를 이룩하고 호혜평등의 동아시아 지역 경제협력체 구성을 지향한다.>

이는 통합진보당 강령에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 기조는 변함이 없다.

<8. 토빈세 도입 등을 통해 국제 투기독점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불평등한 경제협정을 개정·폐지하며, 내수주도형 경제체제를 강화하여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의 폐해를 극복한다. 통상정책은 자국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국가 간 상호 호혜적인 공정무역의 형태로 전환한다.

9. 물 전력 가스 교육 통신 금융 등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 서비스의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고, 국공유화 등 사회적 개입을 강화해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하며 공공성을 강화한다. 또한 공공부문은 경영 민주화, 투명화를 통해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한다.

10. 재벌의 소유 경영의 독점 해소 등을 통해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를 해체하고,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 근절, 대형유통점 규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내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를 강화한다.>


시장·개방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

요컨대 통합진보당이 규정하는 한국 경제체제의 핵심 특징은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와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이며 그 대안은 경제민주화―재벌의 소유 경영의 독점 해소, 불공정 하도급 근절, 대형유통점 규제 등―와 내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이다.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에서부터 통합진보당 강령에 이르기까지 연면히 내려오는 정서의 기조는 미국, 시장, 개방, 경쟁에 대한 과도한 피해·방어의식이다.

민주통합당도 이에 많이 전염된 것처럼 보인다. 통합전 민주당 강령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던, ‘성장·경쟁 지상주의’ ‘시장·개방 만능주의’ ‘무분별한 세계화’ 같은 피해·방어 의식을 표현한 단어를 강령에 많이 사용한 것이 그 증거다.

어쨌든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개방된 시장환경과 역동적 추격능력에 기대어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휴대폰, 반도체, 선박 등)을 숱하게 만들어 낸 무역대국의 제3당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장, 개방, 자유무역 등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방어의식이 흐르고 있다. 통상정책의 골조를 선진국 좌파 및 시민사회가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 저개발국에 대해 무역을 통한 수탈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강조하는 정책인 ‘국가 간 상호 호혜적인 공정무역’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독점, 자본, 재벌, 민영화에 대한 적의(敵意)가 넘쳐난다. 시장과 경쟁의 그늘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다 보니 그 힘을 살리는 방안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중단’ ‘해체’ ‘해소’ ‘규제’ ‘저지(막고)’라는 표현이 많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철학적 전통인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집착과 노동자 민중의 참여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2.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의료 민영화를 중단

9.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서비스의 민영화 추진 중단, 국공유화 등 생산수단의 소유구조 다원화

10. 재벌의 소유 경영의 독점 해소 독점재벌 중심 경제체제 해체

11. 대안적 소유 지배구조를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

12. 국민연금 등 각종 노동자 연기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참여 강화

15. 과학기술의 성과를 특정기업이나 계층이 독점하는 것을 막고… 과학 기술의 의사결정 과정에 민중의 참여 보장>


영혼을 판 국민참여당



2012년 5월 7일 통합진보당 대표단 회의에서 당권파 이정희 공동대표(왼쪽)가 유시민 공동대표를 쳐다보고 있다.
강령으로만 보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은, 좋게 말하면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제-소선거구제 단순다수 득표제’가 강제하는 정치적 양극화(兩極化)=양당화(兩黨化) 흐름 속에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소수당(少數黨)의 몸부림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저히 함께하면 안 되는 세력들의 정치적 야합(野合)이다. 특히 국민참여당은 생존을 위해 영혼을 팔았다고 할 수 있다. 공천과정에서 원칙과 상식과 시스템을 무참히 짓밟는 민주통합당의 행태는, 국민참여당이 왜 민주통합당이 주도하는 대(大)통합에 응하지 않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통합진보당의 40개 강령에 흩어 놓은 민주노동당의 철학, 가치, 정서는 국민참여당과 비교해도, 선진국의 진보(좌파) 정당과 비교해도 그 후진성(後進性)이 확연하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 일본 민주당, 미국 민주당의 현실인식 혹은 시대인식은 세계화, 시장, 경쟁, 유연화, 민영화 등의 위기와 기회를 균형적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과 민주노동당, 최근 들어서는 민주통합당조차 이 그늘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世界化에 대한 應戰 강조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은 1999년 6월 8일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위해 전진하는 제3의 길>이라는 강령적 선언(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세계화와 과학적 진보라는 거시 흐름을 주목하고, 이것이 초래하는 다양한 기업, 노동(고용), 공공(재정)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응전(應戰)을 강조하고 있다.

<(중략) 1) 현 시대의 과제

- 급속하게 진행되는 세계화와 과학적 진보 속에서 우리는 기업들이 시대에 부응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해야 한다. 동시에 많은 새로운 기업들이 태어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 새로운 기술은 노동의 성격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생산조직을 국제화하고 있다. 또 새로운 기술은 전통기업을 도태시키면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고용기회를 창출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이고, 개인과 기업들이 미래의 지식기반 경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 평생 동일한 직업을 갖는다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제 낡았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시대의 대세이며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중략)

- 정부 재정을 가지고 공공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때문에 공공부문의 현대화와 근본 개혁은 이제 피할 수 없다. (중략) 우리는 과감히 효율, 경쟁, 성과라는 개념을 공공 부문에 도입할 것이다. (중략)>

비슷한 시기(1998년 4월 27일)에 발표된 일본민주당 강령은 “본격적인 소자·고령사회”가 도래하고 있어서 “여유와 풍요” “개성과 활력이 살아나는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주된 대립물을 “우리들의 현상인식”이라는 제목하에 “관 주도의 보호주의·획일주의와 끼리끼리 기대·유착 구조, 구래의 사고와 권리구조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구체제”로 규정했다. 핵심가치(목표)는 5개로 정식화했다.

<1) 투명·공평·공정한 룰에 근거하는 사회

2) 경제사회에 있어서는 시장원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안심·안전을 보장하고, 공평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공생사회의 실현

3)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시민으로·시장으로·지방으로’라는 관점에서 분권사회를 재구축하고, 공동참획(사업·정책 계획에 참여) 사회

4) ‘국민주권·기본적 인권의 존중·평화주의’라고 하는 헌법의 기본정신 더욱 구체화

5) 지구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과 공생의 우애정신에 근거한 국제관계를 확립하고, 신뢰받는 나라>


獨 사민당,“전통적 노동관계 의미 상실”

2007년 10월 28일 독일 사회민주당은 함부르크에서 열린 연방 당대회에서 기본강령을 채택했는데, <1.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이 시대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21세기는 진정으로 세계화된 첫 세기이다. 인류사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나 서로 의존했던 적이 없었다. … 우리는 산업혁명 이래 최대의 역사적 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지식과 기술은 이를 재촉하고 있다. 금세기는 전 인류가 더 많은 부와 정의,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사회적·생태적·경제적 진보의 세기가 되거나, 격렬한 분배투쟁의 세기가 되거나, 고삐 풀린 폭력의 세기가 될 것이다. 더 이상 60억이 아니라 곧 100억 인구가 지금까지 우리 부유한 국가들에서 한 것처럼 생산하고 소비하면, 우리의 오늘날 산업사회 라이프스타일은 지구의 생태적 능력을 초과할 것이다. … 기후변화를 제한하거나 멈추는 것이 21세기의 핵심적 과제 중 하나다.

[세계화의 모순]
세계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와 다른 기술적 혁신은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대부분의 인류가 참여하는 전세계적 분업을 경험하고 있다. … 세계화는 기아와 빈곤,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세계무역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러나 지구화된 자본주의에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육체적 중노동은 대체될 수 있다. (중략)

[노동과 사회의 격변]
자본과 상품의 세계시장과 더불어 최초로 서비스와 노동 부문의 세계적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세계화와 국제경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인도는 우리에게 미래시장이다. 이 나라들의 세계시장 편입은 세계분업이라는 틀에서 엄청난 수의 노동력 증가를 의미한다.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독일은 산업이 강해서 세계화로 이익을 보고 있다. 하지만 모든 독일인이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다. … 혁신의 주기는 빨라지고 고용형태는 다양해져 가고 있다. 능력과 지식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창조적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통적 일반노동관계―정규직―는 그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중략)>


진보당 後進性의 뿌리



2011년 국제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사회주의인터내셔널 회의 모습.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세계화나 노동환경의 변화 등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통합진보당에서 1950~60년대 한국이나 재스민혁명을 부른 아랍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황당한 선거부정이 일어난 것은 민주주의 절차 혹은 수단을 가볍게 여겨도 될 정도로 어떤 고귀한(?) 가치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중심에는 ‘자본주의 질곡 극복’ ‘생산수단의 사회화’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 계승발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민중이 참주인이 되는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 건설’ 같은 혁명적 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7~19세기 소중화(小中華)로 자부하며, 만동묘(萬東廟)를 섬기던 조선의 노론(老論)계 선비들을 연상케 하는 사교(邪敎)집단적 자기 확신(항일무장 투쟁에서 역사적 정통성을 찾고, 우리만이 진보고, 애국자다!)이야말로 합법―비합법, 정수(正手)―꼼수를 넘나드는 유연한(?) 투쟁 전술과 무리한 대중 동원(재적의 50% 이상 투표 규정 등)과 정파 조직원들의 동지적 협조, 방관의 진정한 뿌리인 것이다. 요컨대 강령 아래 깔려 있는 시대착오적인 세계관, 가치관이야말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거의 모든 후진성의 뿌리인 것이다.

위대한 사상이 위대한 정당과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맞다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의 핵심 문제는 위대한 사상이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은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이 중심일 리가 없다. 반(反)신자유주의, 반미자주, 반김반핵(反金反核), 반전체주의든 ….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은 분단, 양극화, 일자리 부족, 억울함, 불안함, 고단함 등으로 집약되는 모순 부조리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종합적인 해결 방안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력 정당의 강령들은 이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모든 사상은 인류의 양심과 지혜(과학)의 총화이자 일개 가설(假說)에 불과하다. 그래서 검증과 실천을 거쳐 해체· 재(再)구성되기도 하고, 눈녹듯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의 지배적인 철학, 가치, 정서 등은 조선로동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뒤처져도 너무 뒤처져 있다. 그것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은 현실에 둔감해도 너무 둔감하다. 지적으로 게을러도 너무 게으르다. 이것은 진보의 재앙이자, 국가적·민족적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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