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5

북송교포의 딸 리소라 < 말차라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자유일보

북송교포의 딸 리소라 < 말차라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자유일보



북송교포의 딸 리소라
기자명 홍승기 변호사·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
입력 2024.10.14 
홍승기

리소라 씨는 1970년 함경남도 출생이다. 재일교포인 그녀의 어머니는 17세에 ‘공화국 낙원을 찾아’ 북송선을 탔다. 북송동포는, 자본주의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출신성분 탓에 대입절차는 가다가 멈춰 섰다. 포기할 무렵 ‘함흥수리동력대학’에서 입학을 허락했다. ‘혁명력사’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주선했다.

1984년쯤부터 평양 바깥 지역은 배급이 중단됐다. 1989년, 임수경이 월북했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북한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었다(그녀는 ‘북한이 멎었다’고 표현했다). 북한 주민들은 그 축전의 개최를 앞두고 김일성과 김정일 사이에 마찰이 있다고 쑥덕댔다. 대학 기숙사에서도 하루 한 끼만 주고 자체 해결하라고 했다.

리소라 씨는 2007년 12월 13일 중국으로 탈출했다. 아홉 살, 일곱 살 꼬맹이 둘을 안고 나왔으나 남편과는 생이별 했다. 고난의 행군 무렵 겪은 영양실조로 큰애는 갈비뼈가 비틀려 있다. 기상천외한 도피극을 벌이며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을 거쳐 도쿄에 정착했다.

그녀는 집요하고 성실하다. 북한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야간 중고등학교를 거쳐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이 개설한 사이버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6년 만에 졸업했다. 호텔 청소부로 시작해, 도쿄에서 북한식 국수집 사업에 성공했다. 북송교포를 원고로, 김정은과 일본국을 피고로 한 소송을 기획하여 도쿄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대한민국 법원에서 조총련을 피고로 재판을 하고자 서울을 찾았다. 그녀를 만난 건 지난 9일이었다.

리소라 씨에 따르면 북한 인민은 총살장면을 여러 번 경험한다고 했다. 인민학교(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에게 교사가 ‘부모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지 않냐’는 식의 조사를 하고(그녀는 ‘앙케트’라고 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일가족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낸다.

그녀가 본 총살장면 중 하나. "10년 후 아이는 석방이 됐는데 부모는 모두 수용소에서 죽었어요. 아이는 출소 후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전화선 절도라는 중범죄를 저질렀지요. 그 아이가 총살당할 때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 보던." 필자와의 대담에서 씩씩하게 세 시간 이상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던 그녀였는데, 그 순간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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