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타큐멘터리 영화 송환(김동원 감독)을 보고 나서
자유게시판
박상표
Mar 24, 2004 (15:25:39)
[영화평]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을 보고 (푸른영상 김동원 감독)
역사는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망각과의 싸움이며, 거짓으로 기록된 것을 사실로 바로잡는 기록과의 싸움이다. 다큐멘터리는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영상과 음성을 통하여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현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푸른영상 김동원 감독의 [송환]은 우리 현대사의 금기 중의 하나였던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적인 입장으로 비전향장기수들과의 인간적인 만남을 화면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1992년 봄에 송경용 신부의 부탁으로 비전향장기수 조창손 노인과 김석형 노인을 봉천동으로 모셔오면서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두 노인은 북에서 내려온 남파간첩으로 오랜 기간 수형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으나 같은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정이 들게 되고 인간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특히 조창손 노인은 감독의 아이들을 친손주처럼 예뻐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1962년 3월 28일 남파되어 동해로 들어오다 붙잡힐 당시 결혼한지 4년이 된 수줍은 많은 아내와 감독의 아이들만했을 딸과 아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29년 8월 황해도 장연군 후남면 삼가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조창손 노인은 가정이 워낙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시기 동안 몽금포에서 어업을 하는 사촌 매형에게 가서 선박일을 배웠다고 한다. 한국전쟁 시기 인민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인제-양구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기도 했으며, 인민군을 제대하고 강령군 부포 수산사업소에서 해상경비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 무렵 결혼을 하고 수산성 중앙 간부양성소 기관반에서 1년동안 선박기관 일을 배운 후 기관장으로 근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남공작원을 배를 태워 접선 장소로 안내하는 일을 맡아 울산 근해로 상륙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1962년 8월 군법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 위장병, 고혈압, 결핵 등의 질환을 앓는 등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7.4남북공동성명 직후인 1973년에 전향공작반이 생기면서 온갖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거나 전향을 했지만 그를 비롯한 백여명의 장기수들은 전향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1991년 12월 24일 30년의 감옥생활을 접고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출처 :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의 [비전향 장기수 백서])
영화에서 조창손 노인과 같은 배를 탔던 남파간첩 중에서 전향한 동료 진태윤 노인과 김영식 노인을 만나는데 이들 전향자들은 아직까지도 폭력과 강압에 굴복하여 전향한 자괴감이 배어있었다. 진태윤 노인은 얼마전 작고했고, 김영식 노인은 현재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직업 정신으로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감독은 처음부터 작품을 욕심내고 촬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이들의 송환운동에 도움을 주고자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우다가 무산되기도 하고 당국의 허가없이 영화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후 2000년 6월 15일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그해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되었다. 이때 조창손 노인도 북의 가족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감독과 이별하게 되었다.
감독은 북한으로 들어가서 이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지으려 하였으나 방북 직전에 당국으로부터 불허가 통보를 받게 되었다. 결국 민가협의 남규선 총무가 감독의 카메라를 가지고 방북하여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에 인텔리출신 공산주의자 김석형 노인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으나 촬영을 하면서 감독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조창손 노인이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김석형 노인은 북송되기 전에 이항규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받은 구술 내용이 북송된 이후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김석형 구술, 이향규 녹취・정리, 선인, 2001)라는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다.
[송환]은 감독의 가치관이나 주관이 개입된 영화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오테르 다큐멘터리(Auteur Documentary)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테르 다큐멘터리는 선전과 교육적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다큐멘터리 장르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변화를 우선시 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즉 다큐멘터리 작가(감독)과 영화의 대상이 상호 간에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두 대상 간의 심리나 가치관의 변화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오테르 다큐멘타리의 장점은 휴머니즘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상이나 이념 또는 신념을 떠나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편향을 낳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다. 객관성 속에 주관적 가치관이 개입될 수가 있듯이 주관성 속에는 언제나 객관적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술에서는 ‘전형’이라는 것으로 개인의 삶을 통하여 사회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관념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리얼리즘 예술이 그러한 관념의 바탕에서 성립하고 발전하였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리얼리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테르 다큐멘터리는 리얼리즘의 객관성과 작가 자신의 주관성이 결합하여 자칫하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 가능성이 선천적 결함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남북한 현대사의 뇌관과 같은 역사적 문제이다. 해방정국, 한국전쟁, 국가보안법, 전향제도, 사상의 자유, 친일파 청산, 민족 문제, 통일 문제, 인권 문제, 연좌제, 국가 폭력, 친일과 친미, 남북한 정치권력의 정당성, 빨치산, 남파공작원과 북파공작원, 국가기밀과 정보공개, 색깔론(빨갱이 사냥)과 반공이데올로기,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 보도연맹과 민간인학살...... 현대사의 수많은 쟁점들이 비전향장기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비롯한 현대사의 많은 쟁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본 적이 없다. 영화 [송환]을 평하는 많은 기자들과 지식인들도 김동원 감독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인 반면에 현대사의 쟁점에 관한 심층 취재나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진보를 표방하든 보수를 표방하든 상관없이 우리 언론의 가장 큰 특징은 ‘앵무새 언론’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취재와 사실 관계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하고 주로 보도자료에 의존해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을 평하고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얘기하려는 지식인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최소한 기본 자료에 관한 충실한 조사를 한 이후에 글을 쓰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 생명이 거의 다해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비전향장기수의 구술자료를 바탕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남과 북 어느쪽에서도 만족할만한 기록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다음은 영화 ‘송환’을 이해하기 위한 ‘비전향장기수’와 관련된 기록들의 목록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기억의 역사, 기록의 역사를 넘어선 역사적 평가를 내려주기를 고대한다.
- 분단의 철창을 열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1992
; 비전향장기수에 관한 거의 최초의 체계적인 실태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민가협 양심수후원회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비전향장기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비전향 장기수 백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2000
; 인권운동 차원에서 오랫동안 비전향장기수를 후원해왔던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의 종교단체 중에서 감리교회의 ‘고난모임’에서 펴낸 책이다. 비전향장기수의 현황 및 역사적 의미,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 비전향 장기수의 삶과 그 실태, 비전향장기수의 명단과 약력 등이 정리되어 있다.
-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엮음,『현대사 증언록 1 ; 끝나지 않은 여정』, 대동, 1996
; 젊은 역사연구자들이 장기수 노인들의 구술증언을 정리한 책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심산맥으로 뻗친 우공 반세기(전 남로당 청주시당 부위원장 이종)
끝나지 않은 여정(전 청진교원대학교수 최남규)
북한 현대사의 증언(전 북한 최고검찰소 검사 김중종)
44년간의 인민군 전쟁포로(전 남부군 호위대원 김영태)
노부부가 겪은 남한 현대사 1(전 조선공산당 경주군책 최상원)
노부부가 겪은 남한 현대사 2(전 여성빨치산 박순자)
여순을 말한다(전 남로당 순천군당 조직책 윤기남)
- 이수병추모사업회,『암장』, 지리산, 1992
; 국제법학자협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대법원 판결일인 1975년 4월 8일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표현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확정판결 이후 20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8명의 변혁운동가(이수병,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를 전격적으로 '사법살인'에 처했다. 이 책은 인혁당 사건관련 8인 열사중의 한 명인 이수병 선생의 평전이다. 암장(岩將)은 '마그마'라는 뜻으로 부산사범학교 2학년 때인 1954년 9명의 친구들과 함 께 만든 사회과학학습조직의 이름이다.
- 김세원,『비트』상/하비트 : 어느 통일운동가의 육필 수기, 상,하 / 김세원 저 일과 놀이 1993
; 빨치산 생활, 인혁당, 남민전, 광주항쟁을 직접 겪은 노혁명가의 자전 수기. 김세원 선생은 광주-전남지역 현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특히, 광주민중항쟁 때 산화한 윤상원 열사와 나눈 마지막 전화통화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비트는 '비밀아지트'라는 뜻이다.
- 서준식 『옥중 서간집』전3권, 형성사, 1989
; 1971년 둘째형 서승 선생과 함께 '재일교포유학생간첩'으로 체포되어 7년 형기를 다 채우고도 1975년 제정된 악법 '사회안전법'을 소급 적용받아 보안감호처분으로 10년 동안 옥중에서 반사회안전법투쟁을 벌인 서준식 선생의 옥중 편지 모음.
- 서준식,『나의 주장 -반사회안전법 투쟁기록』
; 1988년 5월 25일 이땅에서 최초로 '비전향자'로서 승리자로서 석방되어 살아서 감옥을 나온 서준식 선생이 반민주악법인 '사회안전법' 철폐를 위해 싸운 기록.
- 서승 지음, 김경자 옮김,『서승의 옥중 19년』, 역사비평사, 1999년
; 혹독한 고문에 분신자살로 저항해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얼굴'이 되어 '바깥의 감옥'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사상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직접 몸으로 보여준 재일교포유학생 출신 비전향정치범 서승 선생의 옥중생활 19년의 기록. 서승 선생은 1990년 2월 석방되어 불타는 열정으로 학업에 정진하여 현재 일본의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 법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고성화,『나의 비망록-애국의 길)』, 도서출판 늘함께, 2000 여
; 비전향장기수 고성화 노인의 자서전이다. 제주도의 우도에서 1916년에 출생한 비전향장기수 고성화 노인은 해방직후 조선공산당 우도책임자와 남로당 부산시당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하다가 1949년 체포되었다. 1951년 석방된 후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 1968년 당에 소환되어 비합법 활동을 하면서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다가 1973년 3월 검거되었다. 1993년 3월 석방될 때까지 20년을 수형생활을 하였다. 2003년 11월 10일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인터뷰 기사에 최근 근황과 그의 삶이 잘 요약되어 있다.
- 정순택,『보안관찰자의 꿈』, 한겨레신문사, 1997
; 해방직후 남한정부의 상공부에서 경제관료로 일하다가 월북하여 북한정부의 상업성에서 경제부문 일꾼으로 일하던 중 1958년 7월 통일운동사업에 소환되어 대남정치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어 1989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인생역정
- 조국을 사랑한 죄 - 사형소리 여섯 번, 서옥렬, 연합기획, 1998
; 1928년에 태어난 장기수 서옥렬 노인은 고려대 3학년에 재학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용군에 입대해 인민군으로 참전한 다음 북으로 갔다. 북에서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대학 강사를 하다가 1960년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되어 광주에서 체포되었다. 무기징역을 두 번 선고받았으며 30년동안 복역 후 출옥하였다. 이 책은 지은이가 살아온 삶을 정리한 자서전 성격의 내용이다.
- 심지연 글,『노촌 이구영선생의 살아온 이야기 ; 산정에 배를 매고』, 개마서원, 1998
; 의병의 후손으로 태어나 월악동지회・협동단 등 항일운동, 해방직후 영등포를 중심으 로 한 조직운동과 전설적인 조직활동가 성시백 선에서 조직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시기 월북했다가 통일운동사업에 소환되어 남파되었다가 22년간 감옥생활을 한 후 1980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구영 선생의 살아온 이야기
- 이인모 기록, 신준영 정리,『이인모』, 월간 말, 1992
;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선생의 삶을『월간 말』의 신준영 기자가 정리한 기록.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종군기자였던 이인모 선생은 후퇴 당시 낙오되어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경남도당 선전부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1952년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1959년 만기 출소하여 사회생활을 하던 중 옥중동지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간첩사건으로 둔갑되어 1961년 8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후 27년을 옥중에서 보낸 후 1988년 출옥하여 1993년 3월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 김응교 장편실명소설,『조국』상/하, 풀빛, 1993
; 남파정치공작원 출신 김진계 선생의 삶을 정리한 실명소설.
일제시대 징용에 끌려갔다 해방직전 귀환하여 경찰학교 1기생으로 경찰관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때 최현장군이 이끈 포병부대에서 수송부 장교로 복무한 김진계 선생은 북한에서 전후복구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61년 사회주의적 기업관리 체계로 확립된 '대안의 사업체계'가 나오는 과정과 세부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1958년 중앙당의 소환을 받아 통일운동사업에 참여한 그는 1970년 8월 3일 최고의 영예인 '혁명가 가족' 칭호를 받기도 했다. 1970년 10월 남파도중 거제도 다대포에서 체포되어 1973년 살인적인 전향공작을 체험했다. '고문에 의한 굴복'은 싫었기에 냉기가 지나간 후 스스로 전향한 후 18년의 감옥생활을 한 다음 1988년 12월 21일 석방되었다.
- 류시춘,『안개너머 청진항』, 창작과비평, 1995
; 청진교원대학 지리학과 교수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 故 최남규 선생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 대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통일운동사업에 나선 최남규 선생은 1957년 남으로 내려와 활동을 하던 중 청진출신 공작원 중 변절한 사람의 밀고로 구속되어 15년의 형을 선고 받고 1973년 만기출소하였다. 출소 후 고물 엿장수가 된 선생은 1975년 7월 영문도 모른채 사회안전법으로 구속되어 살인적인 만행을 이기고 살아남아 1989년 출옥하였다. 출옥 후 이북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였으나 1999년 12월 11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 김하기,『완전한 만남』, 창작과비평, 1990
; 부산지역 학생운동권 출신인 소설가가 옥중에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삶을 전해 듣 고 출옥해서 쓴 중・단편 소설을 모은 창작소설집. 소설가는 몇 년 전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했다가 남한으로 돌아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 권운상 장편대하소설,『녹슬은 해방구』1~10, 백산서당, 1993
; 광주학살을 자행한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유치한 '미스 유니버시아드대회'를 포장마 차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폭발해버리겠다는 말을 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故 권운상 선생이 출옥한 후 쓴 대하소설. 옥중에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의 얘기를 듣고서 소설화하였다고 한다. 일제시대 무장투쟁조직인 월악산의 보광당부터 현대까지의 변혁운동을 그렸다. 김대중 정권에서 '미스유니버스아드대회 폭파미수사건'의 무죄를 위해 투쟁하던 소설가 권운상 선생은 노모의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조정래,『태백산맥』1~10, 한길사, 1987
; 빨치산 문학의 붐을 일으킨 대하소설.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법원에 재판이 계속 중인 소설이다. 소설 속의 염상진의 실제 모델은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이 엮은『현대사 증언록 1 ; 끝나지 않은 여정』(대동, 1996)에 나오는 전 남로당 순천군당 조직책 故 윤기남 선생이 아닐까 추측하였는데 작가는 보성출신 비전향장기수 김용규 선생이 염상진의 모델이라고 스스 밝혔다.
- 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 1988
; 통혁당 사건 무기수 신영복 선생의 옥중 편지 모음. 카톨릭 신문인 평화신문에 몇 회분 의 편지가 연재된 후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하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몇 권의 사색집을 추가로 베스트셀러에 올리기도 했다. 일찍 전향을 선택한 저자는 전향문제에 관해 서준식 선생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 『애국시대』상・하, 대동
; 1960년대 창립된 남한의 전위혁명조직 통일혁명당을 그린 소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이문규・최영도・정태묵 등이 희생되었고, 1970년대 말까지 통혁당 지역조직 사건이 공안당국에 의해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남파공작원들은 통혁당 관련 직책으로 남파되었으며 통혁당과 통혁당의 후신이라고 주장하는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실체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통혁당과 관련된 사회과학 서적은『통혁당』(대동출판사),『한국전위조직운동사』(도서출판 동해),『현대국사회운동과 조직』(조희연, 한울, 1993) 등이 있다.
- 이종,『독방』, 일송정, 1995
; 비전향 장기수 이종 노인의 시집. 이종 노인은 일제시대부터 항일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들어 해방공간에서 조선공산당 영동군당 선전책・남로당 영동군당 부책・청주시당 부위원장 겸 선전책으로 활동하다 한국전쟁시기 월북하였다. 1951년 대남정치공작의 임무를 띠고 남파되어 1959년 체포되었다. 간첩미수죄로 10년을 복역한 다음 1969년 출옥하여 사회생활을 하던 중 1975년 반민주악법인 사회안전법으로 보안감호소에 재구금되었다. 1988년 출소하여 봉천동 만남의 집에 거주하다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되었다.
- 김성만 옥중서간집,『사형수 작사 양심수 작곡』
; 1980년대 반미의 무풍지대 남한사회를 반미의 열풍지대로 바꾸었던 지하팜플렛 『예속 과 함성』의 필자인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사형수 김성만 선생의 옥중 편지모음. 『실종』『계엄령』등을 감독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가브라스가『김성만』이라는 영상물을 제작하여 엠네스티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 강용주 옥중서간집,『깊은 물에 큰 배 뜬다』, 도서출판 진원, 1996
; 1985년 전남대 의대에 재학 중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 스물넷의 나이에 구속되어 1999년 2월 서른 여덟의 나이에 석방된 비전향장기수 강용주 선생의 옥중편지모음. 강용주 선생의 어머니 조순선 여사(75)의 살아온 이야기는『금호문화』(1999년 4월호)에 실려 있다. 2004년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 안재구,『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돌베개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 19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경북 대 수학과 교수출신의 변혁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글. 구국전위 사건 때 경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아들과 함께 부자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기도 하였다.
-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1, 비전향장기수들의 수기 한성률...[등편] 평양출판사 2001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에서 쓴 수기를 출판한 책. 남한에서는 북의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선전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비전향 장기수 양희철의)자유의 시, 저항의 노래 양희철 씀 두리미디어 2000
북송을 택하지 않은 비전향장기수 출신 양희철 선생이 출간한 책. 전북 장수 출신의 양희철 선생은 4.19 직후 형을 따라서 월북했다가 5.16 이후 다시 월남하여 학생운동을 하다가 공안당국에 검거되어 수형생활을 했다. 2000년 9월 북송을 선택하지 않고 남한에 남아 현재 봉천동에서 ‘우리탕제원’을 운영하고 있다.
- 비전향 장기수- 0.5평에 갇힌 한반도 최정기 지음 책세상 2002
; 수십년 동안 사회의 침묵과 인권 침탈을 받으며 묵묵히 수형생활을 해온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인권차원의 대중적인 연구보고서다. 비전향장기수의 일상문화, 한국의 반체제범 감옥체계의 역사적 변화, 비전향장기수의 통제 메카니즘과 법률적이고 사회적인 제도, 비전향장기수들이 감옥에서 투쟁으로 생존에 필요한 일상공간을 확보하는 수형과정 등을 규명했다.
-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 김동기 지음 아침이슬 2000
; 비전향장기수 김동기 노인이 송환되기 직전 33년의 감옥생활과 1년 6개월간의 남한 사회생활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점을 기록한 책이다. 1932년 함남 단천에서 태어난 지은이는 평양상업대학을 졸업한 이후 상업성 관료로 근무했다. 1966년 남파되어 경남 진양에서 체포되어 33년간 옥살이를 했다.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되었다.
- (김석형구술자료집)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 김석형 구술 ; 이향규 녹취・정리 선인 2001
; 이향규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5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40여차례의 인터뷰를 통하여 비전향장기수 김석형 노인이 구술한 내용을 정리한 구술사 분야의 기념비적인 연구 결과물이다.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시기, 전쟁시기, 남파시기 동안 김석형 노인이 조선노동당원으로서 겪은 인생여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가감없이 정리했다. 이향규 교수는 "역사의 공식적 기록은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 씌여진 것이다.정사(正史)의 주류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삶을 구술자료 채록을 통해 복원해내는 것은 역사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구술사의 가치를 설명했다. 정신문화연구원의 구술채록작업 실무책임자인 정용욱 교수(민족문화연구팀장)는 "구술자료는 기억의 부정확성, 주관성 등으로 인해 검증과 치밀한 비판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자료제공과 묻혀진 과거사 복원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 우리 다시 꼬옥 만나요 - 비전향 장기수들의 남녘 생활, 신동필 사진집 신동필 사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외 / 창 / 2001년 11월
; 사진작가 신동필이 북으로 송환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찍은 흑백 사진 60여점을 모아서 펴낸 사진집이다.
-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 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조국으로 유학와서 서울법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71년에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 투옥되어 7년 형기를 살고, 사상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10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했던 양심수 서준식의 옥중 편지 모음집이다. 그는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석방된 비전향장기수 제1호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을 이끌어온 운동가이기도 하다.
- 옥중 19년, 서승 지음, 역사비평사, 1999년
;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1971년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사건`으로 체포돼 19년간 감옥생활을 한 비전향장기수 서승 교수가 쓴 옥중생활 수기다. 동생 서준식과 함께 형제가 함께 투옥되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본에서 ‘서씨 형제를 구원하는 회’를 만들어 많은 일본인들이 엠네스티 등의 국제기구에 한국의 양심수와 인권상황을 알리기도 했다. 현재 일본에서 법대 교수로 재직중인 서승은 고문을 받던 중 석유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 깊은 물에 큰 배 뜬다 강용주 / 진원 / 1996년 5월
;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9년에 특사로 출소한 최연소 비전향장기수 강용주의 옥중 서한집이다. 강용주는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전향`을 요구받았지만,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끝내 전향을 거부했다. 올해(2004년)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 해마중 가세 윤희보 지음 / 자주민보 / 2000년 8월
; 1952년 '반전평화운동 전개, 평화통일 사명'을 받고 남으로 내려왔다가 같은 해 구속되어 25년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 윤희보 노인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윤희보 노인은 2000년 9월 2일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한 신영복 교수의 옥중 서간 모음집이다. 일찍 전향을 선택한 신영복 교수는 출옥 후 인권운동사랑방이 서준식 소장과 전향에 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심지연 지음 / 소나무 / 2001년 4월
;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년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장기수이야기이다. [산정에 배를 메고]라는 책의 수정-증보판이다. 충청도 양반가문의 후예로 해방공간에서 성시백 선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남파공작원으로 파견되었다가 체포되어 22년간의 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이문학회’를 통해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수형 생활 중 전향공작과 고문을 견뎌낸 이후 전향하였다. 감옥에서 신영복 교수와 함께 수형생활을 했다.
- 보안관찰자의 꿈 정순택 / 한겨레신문사 / 1997년 12월
- 지옥일기, 정순택, 미출간 원고
; 2000년 북송을 요구하였으나 준법서약서를 써서 전향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서 북송을 거부당한 정순택 노인이 자신의 삶에 관해서 쓴 책이다. 해방 공간에서 남한 정부의 상공부 관료로 근무하다가 월북한 이후 1950년대 말에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 1958년 체포되어 32년간 수형생활을 하고 1989년 12월 석방되었다.
- 국가보안법 연구 1~3, 박원순, 역사비평사, 1992
; 인권변호사인 저자가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판례와 문제점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쓴 책이다. 냉전체제와 국가보안법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고, 중세의 마녀사냥과 현대 한국의 국가보안법 적용은 비슷한 사고체계 속에서 적용되었다.
- 양심수현황, 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92
- 이것이 인생이다 90, 비전향 장기수의 또다른 이별 (2000.8.8). KBS영상사업단 [편] KBS영상사업단 2000
- 다큐이사람 127, 비전향 장기수들의 마지막 선택 (2000.8.13). EBS교육방송 [편] EBS교육방송
- 옥중시 3백수, 김도한
; 작고한 비전향장기수 김도한 노인이 옥중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을 300수의 시를 지어 기억하고 있다가 출옥후 기록으로 남겼다. 전향공작 과정에서 폭력과 고문으로 사망한 동료들에 관한 기록을 생생하게 남겼다.
- , 서씨 형제를 구하는 회 발행, 1980.5.21
- 사상범 전향제도의 합헌성 여부에 관한 연구, 홍경령, 서울대 석사학위논문, 1990
- 자본주의 국가의 감옥과 사회통제에 관한 연구-역사적 형성과 사회적 작용을 중심으로, 한인섭,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1989
- 장기수 입장에서 본 우리 교정시설과 처우방식의 문제점, 안재구, 형사정책 제4호, 1989년
- 사상의 자유, 조국, 살림터, 1992
- 쓰여지지 않은 역사 김민희 지음 대동 1993
- 월간 말,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 역사비평, 민족통신, 전국연합 기관지 ‘민’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연구원 : 김귀옥, 한홍구 등) 구술, 통일광장 구술, 정신문화연구원 구술
- 천주교 양심수후원회, 불교 양심수 후원회, 기독교 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선인, 2001
-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빨치산 자료집』1~7, 한림대, 1996
- 육군본부,『공비토벌사』, 1954
- 육군본부,『공비연혁』, 1971
- 대검찰청 공안부,『좌익사건실록』, 1975
- 홍경령,『사상범 전향제도의 합헌성 여부에 관한 연구』, 1990년 6월 서울대 법학과 석사학위논문
- 이선아,『한국전쟁 전후 빨찌산의 활동과 성격』, 2003년 4월 성균관대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 [영화] 풀은 풀끼리 늙어도 푸르다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소식지』
제72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홍문거 선생 소묘
제91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우리탕제원 양희철 선생님
제93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아녕기 선생을 찾아서
제94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대구 민들레의 집 김창원 선생님
제96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광주 통일의 집 김동기 선생님
제97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광주 통일의 집 리경찬 선생님
제98호 출소장기수를 찾아서 : 과천 한백의 집 장호 선생님
-『평화신문』
1988년 5월 29일-6월 4일 사회안전법 폐지 논의 / 차한잔... 서준식
보안감호 10년만에 석방 서준식씨가 처음 밝힌 '나의 진실 나의 고백'
1988년 8월 21일-8월 27일(제15호) 신영복씨등 시국사범 36명 석방
1988년 10월 2일 2백여 좌익장기수 어떻게 지내나
-『사회평론 길』
1992년 2월 남민전 사형수 신향식(주미사)
-『시사저널』
1995년 8월 31일 장기수 가족, 죽음보다 슬픈 삶 ; 석방된 비전향수 김선명・안학섭・한장호씨 통한의 가족사(김당)
-『레드컴플렉스; 광기가 남긴 아홉개의 초상』, 삼인출판사, 1997
인권 전도사 서준식의 삶과 투쟁 ; 인간은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강준만)
- 민가협 장기수 가족협의회,『분단의 철창을 열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992년 5월 발간
서 - 장기복역양심수의 실태와 문제점
제1부 간첩도 만들어 집니다
제2부 양심을 짓밟고 있는 사상전향제도
제3부 보이지 않는 사슬 '보안관찰법'
제4부 이제는 철조망을 걷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록 - 장기복역양심수 약력
-『참여사회』
1999년 12월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조작간첩 함주명의 빼앗긴 16년(장윤선)
-『역사비평』
1988년 겨울 남로당 지방당 조직의 활동상을 밝힌다 ; 면당위원장 출신 전북도당 산하 4도(전북, 전남, 경남, 충남) 연락책을 맡았던 김문현의 증언(김창우)
-『월간중앙』
1989년 3월 반복되는 고문의 역사 ; 노덕술과 이근안, 그 역사적 계보(김경자)
1989년 5월 남북을 밀행한 사람들 ; 박진목・김낙중・황태성의 경우(허문영)
1989년 5월 식민・분단사의 비탈에서 증언한다 ; 징병・포로・빨치산・토벌대 겪은 황의지씨의 인생역정(한기홍)
이땅의 슬픈 신화 ; 보안감호법(오홍근)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서준식)
간첩을 조작한 경찰관들 ; 무죄판결 난 김성학씨의 경우(선호식) 호
'예속과 함성'의 사형수 김성만의 한과 절규(오연호)
-『한국현대사 3』, 풀빛
1960・70년대 '공안사건'의 전개양상과 평가
- 김동춘,『분단과 한국사회』, 역사비평, 1997
'사상범' 통제의 한국적 특성 -전향공작을 중심으로
-『한겨레21』
1999년 12월 2일 고문의 주인공 바로 너 ; 전향공작의 기술자들을 고발한다(조성곤)
-『월간 말』
1989년 2월 진상! 조작된 간첩사건들(장영석)
1989년 3월 양심수와 간호원의 사랑이야기; 김종삼・황명자(정희상)
1989년 4월 무기수 서승씨의 옥중편지 ; 통일조국에 묻히고 싶다(서승)
1989년 7월 미전향 장기수 통한의 나날들(한백민)
1989년 8월 서준식・김지영부부의 신혼살림(박영은)
1989년 12월 나는 이현상의 호위병이었다(김영태)
1991년 1월 남파공작원 김진계(김응교)
1991년 1월 비전향장기수 55인의 절규(최민희)
1991년 2월 자민통과 한민전(최진섭)
1991년 3월 남민전 중앙위원 안재구 교수(신준영)
1991년 4월 빨치산의 어머니 구성애 : 임방규 선생의 어머니(김당)
1991년 5월 전 북한검사 김중종의 증언 '박헌영은 미국의 간첩이었다'(정희상)
1991년 6월 교수에서 감방의사로, 김대수 박사의 푸른 18년(최민희)
1991년 7월 남파공작원이 된 의병장의 아들, 이구영의 삶(신준영)
1991년 8월 위암 3기로 출소한 남파공작원 왕영안의 삶(최민희)
1991년 10월 장기수 출소자의 족쇄 보안관찰법(정지석)
1991년 11월 굽이치는 임진강 김낙중의 삶(최민희)
1991년 12월 80세 신문배달부 김시중의 이런 삶 ; 전수원군 인민위원회 서기장(최민희)
1992년 2월 자주통일의 꿈, 민족일보와 조용수(정문화)
1992년 1월 비전향장기수 46인의 집단반란(박소연)
1992년 3월 감옥에서 죽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력서(권낙기)
1992년 4월 인민군 출신 장기수 함세환・김인서의 망향가(박래군)
1992년 4월 이수병과 인민혁명당(안영배)
1992년 6월 세계최장기수 김선명의 42주년 옥중기(임종인)
1992년 8월 이재문과 남민전(조유식)
1992년 8월 북의 가족에게 보내는 장기수 김인서의 편지(김찬규)
1993년 3월 이인모 노인 재입원 ; 통일 전에는 눈 못 감아(김택수)
1993년 3월 인민군 포로 방장련과 지리산 토벌대 이성남의 약속(김택수)
1993년 3월 총 6백74명의 양심수 백서(민가협)
1993년 5월 민주제단에 남편 바친 미망인들의 삶(김미현)
1993년 6월 서로 주고받는 배움의 관계, 장기수 자매결연(조일준)
1993년 8월 북한밀사 황태성의 최후 육성 증언 ; 김종중 증언(신준영)
1995년 2월 공로명 외무장관 105부대 전우 방장련의 호소(신준영)
1995년 6월 비운의 변혁운동가 유족들(김종석)
1995년 7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딸 이상진(홍정자)
1995년 7월 빨치산 대장과 인텔리교사의 기구한 인연 ; 전 남로당 경상북도 도당위원장 박종근의 미망인 이숙의씨(박태균)
1995년 10월 세계최장기수 김선명의 증언 ; 야전침대 자루로 때리고 백지에 무인 찍게 한후 45년 징역 살렸다(김선명 구술, 신준영 정리)
1996년 6월 어느 장기수의 세상살이 : 월간 말 독자사업부의 이경구씨(김소희)
1996년 9월 민중의료인 기세문의 한국병 진단과 처방(최진섭)
1996년 11월 장기수 귀한은 분단의 강에 통일의 징검다리 놓는 일 ; 프랑크프루트 게하르트교구에서 김영태・함세환・김인서씨의 북한가족과 해외동포 모임(김정수)
1996년 11월 안재구와 나(안영민)
1997년 2월 변호사 김형태 ; 무장공비에게 성불할 사람이라 한 뜻은(신준영)
1997년 2월 양심수의 숨은 벗 권오헌의 작은 꿈(백창화)
1997년 4월 황장엽 망명 배경은 측근의 4천만달러 횡령(문명자)
1997년 5월 비전향장기수 권양섭의 못다 이룬 염원(이원혜)
1997년 6월 권두 인터뷰 임방규(김경환)
1997년 8월 노동신문이 밝힌 북로당 거물간첩 성시백 일대기(신준영)
1997년 10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선고한 혁명재판관 이회창(김삼웅)
1997년 11월 박정희는 황태성을 세 번 만났다(문명자)
1997년 12월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21세기도 없다(안철흥)
1997년 12월 만남의 집에서 바라본 97년 대선(최강문)
1998년 2월 이 달의 양심수 : 신인영(최강문)
1998년 3월 김대중 대통령 시대, 양심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최강문)
1998년 3월 양심수 사면 정국 비웃는 검찰의 공안몰이(은수미)
1998년 2월 이 달의 양심수 : 박동운(최강문)
1998년 4월 마석 모란공원의 봄 ; 그들은 흔쾌히 산 자들에게 날개를 때어 주었다(김소희)
1998년 4월 이 달의 양심수 : 구국전위 사건 관련 무기수 안재구(최강문)
1998년 4월 비전향 장기수 6명이 출소하던 날 ; 기대, 실망, 분노의 3월 13일
1998년 4월 여성 장기수 변의숙과 함정희(최진섭)
1998년 4월 신영복과 서준식의 '전향에 대하여'(김경환)
1998년 8월 전향과 준법서약(신현칠)
1998년 8월 여성장기수 변의숙의 옥중서신; 나의 희망이 아닌 우리의 희망을 찾아(변의숙)
1998년 8월 이 달의 양심수 : 손병선(최강문)
1998년 9얼 8・15 사면되던 날, 대전교도소의 출소 양심수들(안철흥)
1998년 10월 북한주민접촉신청서를 낸 만남의 집 3인의 망향가 ; 이종・최남규・김석형(한혜영)
1998년 11월 출소자들이 만난 세상 ; 황대권・함정희・박영희・박동운
1998년 11월 이 달의 양심수 : 범민련 부의장 김양무(최강문)
1998년 12월 이 달의 양심수 : 장기수 우용각(최강문)
1999년 2월 전쟁포로로 50년, 죽기 전에 고향땅 밟아 보려나; 김영태・함세환・류운형・김인서(안영민)
1999년 2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김성만 ; 반미자주는 내 삶의 여전한 화두(안영민)
1999년 4월 출소장기수 17인의 삶으로 엮은 분단현대사(안영민)
1999년 4월 최연소 출소 장기수 강용주(정범구)
1999년 4월 장기수 송환 가로막는 7가지 거짓말(신준영)
1999년 4월 전 남북대화 실무주역 이동복 의원의 직격 발언 : 국익 위해서라도 비전향 장기수 무조건 송환해야(최강문)
1999년 4월 2・25사면 그후,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김훈)
1999년 5월 60년대 초 남북을 오고간 두 청년 안영기 양희철, 그들의 진실(신준영)
1999년 7월 두 남민전 전사 홍세화와 박석률(김소희)
1999년 10월 8・15대사면, 아직도 남은 양심수들 ; 대화합조치 무색하게 만든 법무부의 시 대착오(유혜정)
2000년 3월 한단석 교수 간첩사건의 전말(안영민)
2000년 4월 장기수 송환, 해법은 무엇인가 ; 남북관계 개선 위한 열린상호주의 절실(안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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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5, 2004 (06: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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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 향이라도 피우고원혼들에게머리를 숙여집니다.아직도 하늘에서 못다한 원혼들이 떠도는거 같아요.후손들인 우리가웃고히히낭낙할수가 없어요.늘 가숨을 누르는 숙제들입니다.이많은 자료와 글 수고하셨습니다
Mar 25, 2004 (17: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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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박상표씨가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정말 이렇게 아는게 많은 줄은 몰랐어요. 송환을 본 것도 경이로운데, 리뷰를 하고 관련자료를 이렇게 회원들께 선물한 정도라니.. 쩝.. 대단해보일 뿐입니다. 회원여러분. 송환 강추입니다. 상영시간이 좀 긴편인데요. 그래도 훌쩍 지나갈 정도로 감동과 재미가 넘쳐납니다. 마지막 감독의 나레이션이 송환에서 감독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습니다.
Mar 25, 2004 (21: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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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는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게됨니다. 밝혀지기를 두려워 하는 진실들이 때로는 힘의 논리를 제압할수 있는 큰 힘이 될거란 생각 입니다 . 자신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오는 경험 마져도 꺼집어 내 놓기에는 차마 엄두가 나지 않을수 있는것인데..아직도 고통스러운 오욕의 현대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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