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통일을 바라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입력 : 2020. 08.03(월) 17:59
배우 권병길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 문화 역사엔 통일담론이 빠질 수 없다. 이는 남북이 언젠가 같이 살아야 할 한 민족이라는 증표다. / 뉴시스
통일은 인간의 원형이다. 온전한 인간은 생각과 몸이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목표 설정에 다다른다. 의지와 행동엔 몸과 맘이 따로 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몸 한 핏줄인 우리의 몸이 잘려 나간 것을 분단이라고 한다. 이는 천추의 한이다. 원형 복원(통일)을 위한 노력이 뜻대로 되지 못함에 통곡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안주하는 민족이 아니다. 수백 년 전 외세의 침략 때마다 보여준 민족의 저력을 보자. 우리는 꿋꿋했음을 안다. 원형의 민족국가를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지는 일이야말로 나와 우리를 찾는 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의 길 위에 서있다. 부끄럽지만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해방 후, 분열과 갈등의 길을 걸어 왔다. 이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일이다. 분단의 원죄는 외세이다. 지금도 우리는 반(反) 외세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 구호는 언제나 허공을 맴돌 뿐이다. 힘도 없고 의지도 약하다. 여기에 내부의 반통일 외세 의존 세력이 구차한 명분을 앞세워 훼방을 놓는다.
우리는 외세를 피할 수 있는가. 늘 분단의 중심 의제다. 지배당함을 알면서도 비굴하게 살아 온 세월이다. 인정할 수 없는 모순을 지도자들과 국민이 나누어 책임을 회피해온, 나약함의 역사다. “세계 평화를 위해 ‘한미 동맹’을 굳건히, 그래서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명분이다. 이는 탈 이념시대에 걸맞지 않다. 우리의 반쪽이 적이 된다는 말이다. 이는 외세의존의 부끄러운 핑계다. 1945년 광복이 되던 날, 우리 민족이 반쪽으로 분열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는 모순이요 변질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았다. 이제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 뉴시스
변질 된 세월, 갈수록 통일의 그리움은 엷어지고 체제에 안주하는 세대가 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산의 뼈저린 세대와는 정서가 다르다. 탈이념 세대임은 맞으나, 한편으로 외세의 영향을 받아 이기적이며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대이기도 하다, ‘지구촌’, ‘세계화’ 같은 단어에 익숙한 나머지 민족개념이 희박할 수 있다. 인륜과 천륜이 엉킨 겨레의 한을 보고도 애써 외면하는 외눈박이로 변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이는 비인간화를 촉진할 뿐이다. 눈앞의 입신출세에만 연연하는 모습이다. 결국 통일담론마저 남의 얘기가 되어가는 현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 문화 역사엔 통일담론이 빠질 수 없다. 통일담론은 언젠가 같이 살아야 될 민족임을 숨길 수 없다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분단 이후 남북이 마주 앉아 나눈 대화가 이를 입증한다. 7·4 공동 성명(1972.7.4), 남북 기본 합의서 합의(1991.12.13), 6·15 공동 성명(2002.6.15), 10·4 공동 선언(2007.10.4), 4·27 판문점 선언(2018.4.27)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은 숨 가쁘게 걸어왔다. 여기에 공통적인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선언’이란 점이다. ‘자주’는 통일의 핵심이다. 이 선언대로라면 통일은 성큼 다가올 테인데, ‘자주 통일’을 지킬 의지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외세의 개입 때문인가, 여전히 우리는 헤매고 있다.
“우리 통일 다 됐어!”
고 문익환 목사가 통일의 꿈을 시적 언어로 수놓은 외침이다. 이는 겨레의 외침이기도 하다. 비록 아직은 분단과 분열이 지배하지만 마음은 이미 통일이 되었다는 메시지다.
‘굽이치는 임진강’의 저자 김낙중 선생은 통일 염원을 실천하고자 북의 지도자와 담판을 짓겠다며 1954년 홀연히 임진강을 건넜다. 하지만 남북 모두에게 간첩으로 몰려 고문과 투옥, 사형선고까지 수차례 곤욕을 치렀다. 그는 ‘살아 있는 통일 지도자’였지만 아쉽게 하늘의 부름을 받아 지난달 29일 세상을 떠났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통일’과 동의어인 인물,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자. 행동과 뜻의 큰 뿌리는 조국의 통일을 실천하려는 의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좌절과 절망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며 동포들 가슴에 민족혼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이 만나 통일의 제반 문제를 의논하고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내가 길을 닦았으니 후임자들을 믿고 물러선다”고 말한 지도자다. “통일 없이는 조국의 미래가 없다”는 확신을 심어준 대통령이다. 이제 후세는 이 뜻을 향해 가야 하는 무거운 사명을 지녔다. 지금 남북의 일시적 단절은 ‘껍질이 깨지는 아픔’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 의지가 반통일 세력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이 또한 하늘이 준 기회이며 시련이다. 어떤 지도자보다 책임이 막중한 인물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의 의지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고 믿는다. 현재의 어려움은 하늘이 준 역사적 소명에 따른 무게감 때문이란 생각이다. 후세는 오늘의 이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중심적 과제였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는 의미가 없다. 오늘이 엄중하고, 귀중하고, 소중하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을 쌓기 전에 /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전에 / 종교를 믿는 마음속에 / 가정의 화목을 지키기 전에 /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이성 간에 사랑을 나누기 전에 / 스포츠로 세계만방에 드높이기 전에 / 문화 예술 발표를 하기 전에 / 부모 효도의 지극한 마음속엔 / 모두가 온전한 인륜과 천륜이 있는 것이듯 / 하나의 핏줄 속에 맺어진 하나의 육신과 정신이 숨을 쉬는 이 땅 / 겨레의 모태 안에서 움켜쥐고 태어난 / 인간 정도의 길을 걸어 / 조국의 통일 성취의 길을 함께 따라 가련다.”
배우 권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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