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 BBC News 코리아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 BBC News 코리아: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이윤녕
BBC 코리아
2020년 11월 18일 오전 10:48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재일조선인 남편과의 결혼식 기념사진을 든 미나카와 미츠코 씨는 현재 북한 원산에서 살고 있다


1959년 시작된 이른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당시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겪던 9만 3000여 명의 재일교포들이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곁에는 '조선인' 남편을 따라 함께 북한행 배에 오른 일본인 여성들이 있었다.

6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느덧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이 있다.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 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1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들이 가슴속에 품어온 삶의 이야기는 최근 출간된 사진집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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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쉽지 않은 선택을 했던 '일본인 아내'들을 만나고 온 노리코 씨를 BBC 코리아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반세기 전의 선택

일본에서 북한 관련 이슈라고 하면 대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떠올린다. 오래전, 어떤 이유에서든 자발적으로 북한에 건너간 이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노리코 씨는 북한 땅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재일 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많은 일본 여성들이 북한에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어요. 살아있다면 대부분 80-90대의 고령일 텐데 어떤 여성이 있었는지, 어떤 이름이었는지, 또 어떤 가족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미 훌쩍 지나버린 세월에 지금이 아니면 그들의 삶을 취재할 수 없을 거라고 노리코 씨는 생각했다.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다들 세상을 떠나버릴 수 있으니 이야기를 들으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정치적, 이념적 판단을 떠나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종의 '선택'을 한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싶었다.

1959년부터 1984년 사이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약 9만 3000여 명의 사람들이 북한으로 떠났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조선인' 남성과 결혼해 남편을 따라 북한행 배에 몸을 실은 일본인 여성 1830명도 있었다. 1962년 북송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 사람 중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의 어머니인 고용희도 있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취업 제한으로 실업률이 일본인의 8배 정도 됐고 민족 차별도 심했죠. 일본에 있으면 아이들도 차별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대학에도 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 북한에서의 집과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은 당시 재일교포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그렇게 북한으로 향한 이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귀국'은 아니었다.

낯선 땅, 북한에서의 삶


일본에서의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북한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았던 일본에서 살아온 '일본인 아내'들은 낯선 땅에서의 적응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일본에서의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북한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정착한 곳이 평양인지 시골인지에 따라 생활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고 해요. 그래도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괜찮게 지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골로 갔던 사람은 삶이 힘들었죠. 밥을 지을 때도 일본에서는 가스불로 밥을 했는데 북한에서는 점토 비슷한 걸 써서 불을 지펴야 했대요. 제가 만난 아내분들이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활 수준이 일본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건 알 수 있었죠."


당시는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등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도 사회주의 학생 운동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 중에는 사회주의인 북한에 가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고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낯선 북한 땅에 내린 '일본인 아내'들은 당시 자신의 남은 삶을 모두 이곳에서 보내게 될지 몰랐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북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간간이 진행되던 고향방문사업이 중단돼 더 이상 모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복잡한 감정인 것 같았어요. 이 50-60년의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어느 날은 엄청 후회를 하며 일본에 돌아가고 싶어 울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느낀 순간도 있었죠. 북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는데 그걸 보면서 '아, 이때는 행복했었지' 하실 때는 저도 그런 감정이 느껴졌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들 복잡한 여러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고향인 일본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된 부분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아쉬워하는 점이었다. 그리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가볼 수 없었고 평범하게 왕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가족들과도 인연이 끊어졌다.

"처음 일본을 떠날 때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인 20대, 30대에 떠났잖아요. 그때는 당연히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희망대로 되지 않았죠. 부모님을 간병조차 하지 못해 너무도 죄송한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2시간 만이라도 좋으니까 일본에 가서 부모님 산소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요."

사라져가는 60년의 기억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국에서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이제 고령이 된 아내들은 노리코 씨의 방문을 반겨줬다. 지나온 세월만큼 변했을 일본의 최근 모습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들을 여러 가지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데 타키코 할머니가 기억에 남아요. 이 사진이 돌아가시기 3주 전쯤 찍은 건데 제가 마지막에 돌아가는 날 왠지 그냥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악수를 하며 '다시 만나요' 하는데 '가지 마세요' 하면서 제 손을 꽉 잡으시더라고요. 그때 잡은 손의 느낌이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아요."



사진 출처,NORIKO HAY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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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이데 타키코 씨

사실 북한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은 일본에서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됐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돼버린 것이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차별을 피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분들이 일본을 떠날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약 나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부모님이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그래도 사랑에 빠진 그 남자가 정말 성실하고 멋진 사람이었다고 했어요. 어쩌다 좋아하게 된 남성이 일본인이 아닌 재일조선인이었고 그 이유만으로 반대에 부딪혔죠."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이를 먼저 가진 사람도 많았어요. 지금도 일본에서는 혼전 임신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이 많은데 5-60년대 당시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의지가 대단했다는 거죠. 일본에 돌아오지 못해 가족과 연을 끊게 돼 가여운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자로서 공감도 가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유


일본인 프리랜서 사진작가로서 북한 현지 취재를 한다는 건 많은 제약이 따르는 일이었다. 양국 간 교류도 거의 없는 데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취재는 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일본 내 북한 관련 NGO 활동을 통해 전문가와 교수 그룹에 동행해 2013년 처음으로 방북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NORIKO HAY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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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 씨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기록하며 흑백 논리로 접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처음에는 제약이 많았죠. 하지만 여러 번 가면서 처음에는 찍을 수 없었던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원래는 이분들을 지정된 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됐어요.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던 분도 있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죠. 나중에는 집에서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 한 경우도 있었고요."


노리코 씨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기록하며 단순한 흑백 논리로 접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전했다. 현실에는 여러 가지 인생이 있는 만큼 무의식중에라도 그들의 선택을 두고 '행복' 혹은 '불행'으로 임의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떠나온 가족을 반평생 넘게 그리워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산가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와도 맞닿아있다.

"한국에도 북한에 있는 가족과 헤어져 있는 이산가족 1세대가 있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그들도 일본인 아내들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산가족도 지금 만날 기회가 없으면 하나둘 세상을 떠나버리게 되는 것처럼 지금 그곳의 일본인 아내들도 그렇거든요. 한반도의 이산가족도 일본인 아내들도 모두 지금이 아니면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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