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30

Chee-Kwan Kim - Germany – Memories of a Nation

Chee-Kwan Kim - [Germany – Memories of a Nation] 1. 독서를 하다 보면... | Facebook

[Germany – Memories of a Nation]
1.
독서를 하다 보면 간혹,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좋아서 끝이 나질 않길 바랄 때가 있다. 내게는 미국 남북전쟁사를 다룬 “Battle Cry of Freedom”, 일본전후사를 다룬 “Embracing Defeat (패배를 껴안고)” 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전자의 경우 미국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고, 8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밑줄을 열심히 쳐가며 3번 읽었을 정도로 지금까지 아끼는 책이다.
최근 읽은 “Germany – Memories of a Nation” (한국에서는 “독일사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또한 그런 경우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출간되었던 해 (2014)에 사두고서는, 집 서재 한 켠에 얌전하게 모시고만 지내다가, 어느 날 저녁 무심코 집어들고선 일주일도 안되어 끝냈다. 소위 책을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는 일본어 표현 “積読”이 10년이었다면, 速読은 7일이었던 셈이다.
2.
영국 박물관장 출신답게 저자 Neil McGregor는 독일사를 단순히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것을 지양하고, 다양한 사물을 통해 독일의 역사, 독일인의 심성을 들여다본다. 가령 그것은 칸트가 사유하고 프러시아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독일 민족의 700년 고도였으나 이차대전 후 러시아 땅이 된 칼린그라드에 남아 있는 맨홀 뚜껑일 수도 있고, 화려한 (그리고 크기가 어마어마한) 중세 맥주잔일 수도 있으며, 16세기 인도에서 리스본으로 보내졌다는 코뿔소를 상상만으로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물들을 통해 독일인들의 근면함, 창의성, 그리고 낭만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뚜렷한 상관관계도 없이, 미래를 향한 함성과 함께 독일인들은 전쟁 속으로 뛰어들고, 마치 영화 필름이 갑자기 2배속으로 빨라지면서 화면도 같이 일그러지 듯이 경제공황, 바이마르의 종언, 나치즘의 대두, 유대인 학살, 그리고 2차대전과 동서분단으로 이어진다. 책의 후반을 장식하는 사물들을 따라서, 가난, 혐오, 학살, 그리고 폐허 뒤 재건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연속으로 등장한다.
3.
독일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치즘과 유태인 학살을 배경음악으로 두고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그 음악소리는 처음에는 작게,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밖에 없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소위 “Sonderweg” 즉, 독일 민족의 특수성을 20세기 독일인이 보인 잔혹성을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즉, 독일 민족은 극단적인 낭만과 이성의 공간을 오가는 민족이며, 낭만의 감성이 보다 더 극대화했을 때 야만으로 돌변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본질주의적인 해석은 그 자체로 아무런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인종청소의 죄과를 온전히 독일인 몫으로 돌릴 뿐,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런 시사점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인들의 경험이 시사하는 것은, 오히려,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가능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똑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20세기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자한다면,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는 다르지 않으며, 가해자의 눈 속에 피해자인 내 눈이 보인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저자는 책 마지막 장을 오늘날 폴란드 땅이 된 이차대전 전 독일영토에서 태어나, 전쟁을 경험하고, 전쟁 중 폭격으로 도시가 전소한 드레스덴에서 자란 Gerard Richter라는 독일 화가가 찍은 딸의 사진으로 장식한다.
사진 속 딸은 카메라를 등지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화가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 속의 그녀는 당장이라도 아빠의 그림에서 얼굴을 돌려 앞을 내다볼 기세이다. 독일 전후 세대는 그녀와 같이 지금은 아버지 세대를 바라보지만, 그리고 때때로 과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겠지만, 머리를 돌려 미래를 보고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언제나 기억과 망각 사이 어디쯤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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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崔明淑 and 8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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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저도 일단은 소개해주신 세권을 적독해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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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애
읽어보고 싶네요. 게하르트 리히터 관련 영화도 혹 안보셨으면 강추요.
이용애 replied
 
2 replies
7 hours ago
Kusto H Jang
유익한 서평 감사합니다
김지원
저 작품 알아요 ^^ 저 작품 아마도 사진아니고 사진같이 그린 그림 일 겁니다. 작가가 예전에 사진 처럼 똑같이 그리는 화풍이 있었거든요. 진짜 사진 같죠? ^^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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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a Jung
김지원 오 저도 보자마자 극사실그림이다 라고생각했는데 본문글보고 아닌가 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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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김지원 77년에 찍은 사진을 원본으로 여러 차례 작업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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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bum Sung
이 책도 읽히지 않고 꽂혀 있네요ㅎㅎ 저도 적독이 정독이나 속독으로 넘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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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
독일의 "특수한 길"이란 건 20세기 들어서 증폭된 독일의 폭력성의 근원을 추적하고자 하는 하나의 이론입니다. 일본의 "무사 지배의 사회"와 비교할 수 있을듯 합니다
Michael Jung
너의 이 통찰을 책으로 좀 써내라. 아깝다 페북에서 나만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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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replied
 
1 reply
2 hours ago
Park Yuha
나역시 같은 환경에 놓인다면 얼마든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경우에 처하면 ”행동하지 않아“야 가해피해자들이 이해/ 용서가능하고 더이상의 폭력을 멈출 수 있을텐데 현실은 대개 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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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박유하 한국이 유달리 심한 것같긴 합니다. 저야 민족주의의 순기능이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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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sung Kwon
이유가 뭘까, 문득 소설가 다카하시 가즈미 高橋和巳의 글 중 "사자의 시야에 있는 것 死者の視野にあるもの”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 글은 わが解體 라는 제목의 그의 에세이집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숨이 끊어진 시체의 망막에 최후의 영상이 계속 남는다 - 그런 문장이 있는. 최근 김 변호사님과 가끔 잠깐씩 스쳐 지나가듯 나눈 몇 가지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의 각각의 주제들이 뭐랄까 갑자기 한꺼번에 죄다 연결되면서 이 글을 통해서 어떤 결론을 만나게 되는 느낌이 생기네요, 그러다 보니 저에게는 생각지도 않았던 다카하시 가즈미의 글이 떠오르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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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치관 다카하시 가즈미까지 읽고 계시군요. 한 때의 필독서인데 가물가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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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Daesung Kwon わが解体…인상적인 제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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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sung Kwon
Chee-Kwan Kim Park Yuha 다카하시 가즈미...솔직히 잘 알지는 못합니다 ^^; 저 역시 가물가물. わが解体는 1969년 부터 잡지에 연재된 에세이를 묶어서 1971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문고판을 판매하고 있고, 심지어 kindle 버전으로 나와 있기도 합니다! 39歳で逝った天才作家が、全共闘運動と自己を〝わが内なる告発〟として追求した最後の長編エッセイ。闘病の記を含む思想的遺書! 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저도 다 읽어본 책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우연히 생각도 난 김에 좀 들여다보고 싶네요. 최근 박 교수님이 보시고 감상을 나누어 주신 영화 ゲバルトの杜 彼は早稲田で死んだ 와도 연결되는 내용이란 생각이 드네요. 결론 - 모든 것은 다 연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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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高橋는 당시 학생들을 지지하느라 사직까지 했어요 . 그 세대에 끼친 영향이 컸다는데 마지막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Daesung Kwon
Park Yuha 아 그랬군요. わが解体에 대한 서평을 보니, 자기 모순에 직면하면서 아주 강렬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 わが解体 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갑자기 高橋和巳란 사람의 삶을 좀 따라가 보고 싶어지기까지 하네요. 그가 세상을 떠난 39세, 1971년까지.
Minseok Woo
좋은 책 소개 너무나 감사합니다. 언급하신 세 권의 책 중에“Embracing Defeat”이 있어서,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번역서는 오래 전에 품절이어서, 원서로 구입했지만… 어느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일단 잠정 보류중인 상태입니다. 다음번에는 시간되신다면 꼭 이 책에 대한 변호사님의 멋진 서평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두 권도 꼭 킵해두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Chee-Kwan Kim
Minseok Woo “패배를 껴안고”는 작년에 국문으로 재출간된다고 어디선가 읽은 것같긴 합니다만…좋은 책들이 번역은 많이 되는데 절판이 되어버리는게 문제인 것같습니다. ㅠ
Minseok Woo
김치관 네, 저도 민음사에서 재출간된다고 들었었는데 또 아닌가봅니다^^; 다시 마음 다잡고 읽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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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Works, In Focus
Perspective
Blurred vision
Gerhard Richter’s “Betty” is arguably the most famous painting by the most influential artist alive

By Sebastian Smee Nov. 20, 2019


Standing in front of Gerhard Richter’s “Betty,” I catch a glimpse, a fragile emanation, of intimacy, which is promptly snuffed out. The intimacy is there, and very real, but it’s simultaneously denied and extinguished, like a fading Polaroid, or a beautiful song on a radio frequency falling out of range.

“Betty,” of course, is not a photograph or a song. It’s a painting, hanging in the St. Louis Art Museum, that Richter, 87, made in 1988. Showing the artist’s 11-year-old daughter, Betty, turning away from us, it is arguably the most famous image by the most acclaimed artist alive.

But for all “Betty’s” fame, the work’s status as a unique piece with the authentic aura of a painting feels vulnerable. That’s partly because it looks like a photograph (and, indeed, it was based on a photograph taken 10 years earlier). It may also be because, even today, it is known to most people as a photographic reproduction. (I saw it for the first time last year, after 25 years of seeing it in reproduction.)

Richter seems to have anticipated all that. As if to emphasize its insubstantial, slightly inauthentic status, he made the painting slightly blurry. By dragging a dry brush across the still-wet paint, he made firm outlines appear feathered and approximate, almost pixelated.



In other works, Richter nudges this blur in the direction of abstraction, which he achieves by dragging a giant squeegee across wet, layered paint, producing gorgeous yet almost arbitrary effects — the visual equivalent of radio static.

Born in Dresden, Germany, in 1932, Richter was a teenager when the Allies firebombed the city. His father and uncle fought for the Nazis (the same regime that sterilized and then starved to death his mentally ill aunt, who is memorialized in another blurry painting by Richter, this one based on a black-and-white photograph).

After the war, Richter studied in communist East Germany. There, art was an arm of the propaganda machine, indentured to state ideology. When the artist moved to Düsseldorf, in West Germany, in 1961 — the heyday of pop art, Andy Warhol and the fantasy of frictionless consumerism — visual culture was in thrall to yet another ideology: capitalism.

Richter questioned all of it. He knew that nothing — certainly not art — could escape politics. But could it not also express feeling? Intimacy? Beauty?

Richter has never been sure. Long experience taught him that when ideology is cranked up, social existence goes haywire, and art’s ability to engage individual inner life is the first thing to fall into eclipse. So his images are tentative. They’re skeptical. They can seem like dried autumn leaves, wispy and brittle. But — as in “Betty” — they can also be intensely, almost unaccountably moving.

“Betty,” twisting away, evokes for me an impossible yearning: a desire to turn away from the din, the debacle, of political life and to dissolve instead — to bleed, to blur — into an intimate, apolitical present.
Great Works, In Focus
A series featuring art critic Sebastian Smee’s favorite works in permanent collections around the United States. “They are things that move me. Part of the fun is trying to figure out why.”



Photo editing and research by Kelsey Ables. Design and development by Junne Alcantara.




Sebastian Smee

Sebastian Smee is a Pulitzer Prize-winning art critic at The Washington Post and the author of “The Art of Rivalry: Four Friendships, Betrayals and Breakthroughs in Modern Art." He has worked at the Boston Globe, and in London and Sydney for the Daily Telegraph (U.K.), the Guardian, the Spectator, and the Sydney Morning 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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