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9

Park Yuha - ”게발트의 성채—-그는 와세다에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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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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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도쿄에서 돌아올 때 시부야의 작은 영화관에 들러,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왔다. ”게발트의 성채—-그는 와세다에서 죽었다“라는 제목의 영화.

70년대초 신좌파끼리의 과격한 린치사건이 만든 정치혐오와 함께 일본의 학생운동이 서서히 사양길에 들었다는 건, 아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비슷한 무렵에 대학가에서도 비슷한 폭력사태가 있었고, 일본에선 그 사태를 우치게바内ゲバ내부폭력(폭력을 게바르트/게발트라고 한다는 독일어를 차용한 말. 그래서 게바棒는 폭력몽둥이, 우리로 치면 죽창이 된다)라고 불렀다.
밖에서 보기엔 다를 게 없는 그룹들이 약간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하고, 스파이라면서 린치 가해 죽게 만들고, 결국 서로 보복하느라 100명 이상을 죽고 죽였던 사건을 소재로 “왜“를 묻는 영화.
그 물음에 답을 내놓데까진 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덮고 싶어한(실제로는 고립된 산장사건보다는 어제까지 친구였던 학생들이 일으킨 폭력사태가 학생들에겐 더 충격이었을 것이고 학생운동 약화도 실은 여기서 기인됐을 것이라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다)사태를 리얼하게 재현하고, 당시 관계자들 목소리를 기록한 시도, 정말 훌륭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치부를 제대로 보려고 한 시도니까. 영화자체 짜임새도 좋았고 음악도 좋았다.
그보다 이틀전인가에 잠깐 짬이 나 찾아간 미술관에서 뜻밖에 (전투정신을 고양시키려는) 전쟁화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의,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이 있었고 하나의 그림으로서는 너무나 훌륭한 그림이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그림을 전시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를 전시를 상설전에서 하고 있댜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조금 놀랐었다.
말하자면 일맥상통하는 시도를 우연히도 영화와 그림에서 연달아 만난 셈이다.
오래전에, 우리는 제대로 ‘애도’한 적이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진정한 애도란 그냥 슬퍼하거나 혹은 가해자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것을 넘어 “왜” 를 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대답이 금방 나올리 없으니, ‘오래’ 생각하는 일.
왜 전쟁을 해야 했는지, 가해자로서도 피해자로서도 끔찍한 ’ 폭력이후‘ 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내내 물었던 게 일본 전후였다. 일본의 그런 부분을 높이 평가 하면서도 “전쟁에 대해 생각한 만큼 식민지에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아니었나” 고 썼던게 <제국의 위안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일본을 향해서 한 소리일 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일본만큼이나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한참 유행했던 <서울의봄>이나 이승만 영화를 둘 다 보지 않았지만, 여러사람의 평을 보건대, 양쪽 다 그런 물음을 담고 있을 것 같진 않다.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사태조차 우리는 제대로 물은 적이 없으니.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책을 쓴 사람은 당시에 그런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학생회 대표였는데, 결국 폭력에 이기지 못했던 사람이다. 패배의 기억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가 그 경험을 쓸 수 있었던 건 이후 50여년이나 지나고서였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이 간 건 원래 폭력의 구조에 관심이 있어서지만, 이 10년간 계속 생각해 온 문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에 책에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을 말한 적이 있기에 내용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내가 경험한 일본의 대학이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 평화로웠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로선 새삼 놀라웠다.
내가 몰랐던 깔끔한 망각,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 있었을 수많은 오열들이.
나를 ’아이히만‘이라 불렀던 이의 댓글을 당시 나한테 태그됐던 글에서 오늘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유사시였다면 그는 나를 죽였을 텐데, 예전엔 그런 상황을 “정의의 폭력”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폭력을 휘두를지 여부는 결국 당사자 내부의 폭력성, 혹은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개인적’ 욕망이 결정한다. “정의”로 치부된 수많은 집단적 개념들은 그저 명분일 뿐. 평화를 집단의 문제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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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omments



Park Yuha

”게바르트의 성채“가 번역으론 좀 더 낫겠다.



류제동

박유하 찾아보니 독어 원어가 gewalt라고 나옵니다. 발음은 '게발트'라고 하는 것이 나을 듯도 합니다.

Park Yuha replied



Park Yuha

오쿠마 강당과 그 옆 학교 건물. 옥상을 학생들이 점령.





박재욱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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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Kim Sungsoo

당시에 대한 관심은 하루키의 소설속 시대배경과 일본 영화등으로부터 시작되었었는데요, 와세다만해도 좌로부터 우까지 이념서클만 백 개가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왜 와세다가 유난히 저리 많았을까 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운동권들은 한국만큼 졸업후 현실정치(국회)에 진출하지 않은 부분도 흥미로왔고요. 야마시타 노부히로감독의 <My back page>도 비슷한 시기 학생운동을 다룬 영화라 또 생각이 나네요.


Park Yuha

Kim Sungsoo 그 영화는 못 봤네요.
하루키는 그 상황에 거리를 둔 셈인데 전 딱히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아요.
와세다는 학생수가 많기도 하고, 원래 정경학부가 센 데다 언론계로 진출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 있겠네요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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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 to Kim Sungsoo…

Park Yuha

물론 당사자 내부의 폭력성도 그가 경험한 폭력과 상처가 만든 것. 다만 그는 자신을 몰랐기에 폭력의 연쇄를 끊지 못했던 것일 터이다.


Bum Choi

산장 사건에서 적군파들이 총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종의 인민재판인데, 철학적 용어를...


Park Yuha

Bum Choi 보셨군요.
’사상‘으로 무장하니까요.

Bum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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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헌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만, 6.25 한국전쟁도 남북한에 각각 수립된 “민족해방운동권” 정부가 너무나 치열하게 비극적으로 싸운 거라고 볼수 있습니다.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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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도광환

질문이 없는 사회가 의문스런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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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독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확증적 편향과 적대적 폭력은 지금도 흔히 보고 겪지요. 특히 이념에 매몰된 사람들의 폭력을...
Park Yuha

이원훈 그걸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이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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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맞습니다 그것으로 입신양명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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