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6

임건순 | 임건순 한국형 무속정치학 2

(2) 임건순 | Facebook



한국인 공부하기 5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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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살자, 같이 먹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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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공동체는 부자들에대한 질시와 관음증, 공격등 다양한 제재와 린치가 허용되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그걸 유교가 거들기도 했다고 하고요.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어떻게 해야한다고 했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것이 강요된다고 했습니까. 과시적 소비와 베푸는 행위가 강제된다고 했지요. 사유재산? 그런거 없습니다, 니꺼 내꺼가 어딨냐? 콩한쪽도 노나 먹어야한다고 하면서 치부와 축재한 사람들의 재물을 털고 당당하게 그 사람에게 거머리처럼 들러 붙어도 되는 사회가 폐쇄적 자급자족 농촌공동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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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하다’, ‘야박하다’ 이런 말이 조선의 부자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거지라도 밥을 배불리 먹어야하고 언제 한번 본적도 없는 길손이 들이닥치면 배불리 먹어야했으며 그 손님이 떠나지 않고 2,3년간 집에서 들러 붙어 있어도 내쫓을 수가 없었는데 아기공룡둘리, 쇼비디오자키에서 지씨 아줌마가 방빼!!하면 못빼!!하고 응수하던 쓰리랑 부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죠. 부자에게는 누구든 뻔뻔하게 들러붙을 수가 있었는데 염치와 명예심 이런거는 개나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부자들에게 베품이 강제되고 과시적 소비를 해야만 지역에서 행세를 하고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는데 이들이 들러붙는 사람들이 늘 하던 소리는 나도 살자, 함께 살자, 더불어 살자 뭐 그런 말들이었죠. 그게 이론적으로 발전하면 대동사회 뭐 그런거고요. 부자들에게 과시적 소비가 강제되는 공동체는 다른 말로하면 모두에게 ‘생계 권리’, ”잠정적 생계권리“ 이런 것이 보장되는 사회였다고 보시면 되는데.......내가 니 사돈의 8촌이고 나도 살어야하니 무전취식이 당연하거고(이게 좀 이해가 안가면 이범수, 박상면이 나온 하면된다 좀 보시면 됩니다) 돈꿔가는게 당연하거고, 내가 마을의 거지고 가난한 자니 내가 살기 위해 부자인 당신이 베풀어야한다는 그런식으로 권리주장을 하는데......우리 조선의 권리 주장이 그러했는데........의료사고 일어나서 법정가면 말이죠 시시비비 제대로 안가립니다, 판사님은 당신이 의사고 이 사람보다 훨씬 잘사니 좀 양보하고 보상금 좀 드려라 하면서 법리적 판단이고 사실관계 확인이고 뭐고 판결하는 경우 많다죠. 가난하고 약자니 선한 것이고 그 사람의 잠정적 생계권리는 부자들의 희생해서 보장하는게 맞다. 그래야 군자고 어짊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인한것이고 불의한 것이다. 그게 우리 알흠다운 조선의 문화고 사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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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이 더욱 목소리를 크게 냅니다, 더욱 뻔뻔하게 자기 권리를 부자에게 주장합니다, 맡긴 돈 찾아가겠다는 사람처럼 나서서 삥을 뜯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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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지방가서 사업체 크게 내고 하면 당장 시민단체를 꽹가리 몰고 들이닥치는데......그 사람들이 기업의 채권자라 그런게 아니죠. 그냥 부자인 니들 좀 내가 뜯어먹어야 쓰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한량, 룸펜들이 기생하고 갈취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걸 유교의 도덕적 수사들이 돕고 그런거죠, 당당하게 뜯어먹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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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만들기, 지역화폐, 친환경급식, 민주시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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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가보면 알흠다운 말들이 난무합니다. 그런데 잠깐이라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힙니다. 알흠다운 말을 빙자하고 공동체성을 팔아먹어 세금을 착복하고 진짜 약자들에게 가야할 국가 재정을 좀 먹고 있는 것인데 시민단체들 만이 아닐것입니다.  PC가 상륙한지 한참되었는데 저마다 자신의 약자됨과 소수자성을 내세워서 이런저런거 달라고 얼마나 난리를 필는지. 남들만큼 누리고 쓰고 싶거들랑 일해야죠, 땀흘리고요. 하지만 무능하고 게으른 자들이 자신이 소수자라고 약자라고 그런 무늬만 약자인 자들의 집단민원에 사회가 병드는데 그런 모습들이 과연 우리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와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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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조선의.....폐쇄적 농촌공동체의 저런 모습들이 유교가 말한 도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도덕의 이름으로 부자들을 패고 기생하고 갈취하고 그렇게해서 강제적 재분배, 즉돈과 재화가 돌고 유통되는 그래서 조선은 도덕경제moral economy가 구현된 알흠다운 사회였는데 도덕을 빙자한 알흠다운 말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뜯어먹고 다리를 붙잡고 생산성과 효율을 파괴하고,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이 먹고 살고 지금 우리가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운동권들이 생각하는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싶은데 남북경제협력이고 뭐고 그것도 다 조선적인 도덕경제가 아닐까 싶어요. 아 우리도 없어서 환장할 판에 왜 백신을 북한과 나누자고 하는지. 우리도 없애려고 하는 원전을 왜 북한에 지어준다고 하고 말이죠. 이조시대의 도덕경제, 폐쇄적 농촌사회의 도덕경제의 유령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게 아닌지. 그리고 그놈의 생계권리는 무슨......일할 의사가 있고 시민으로서 염치와 책임감을 아는자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는거지. 무능과 게으름만 있는 자들을 왜 맥여살려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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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3
한국인 공부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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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으로 소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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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재화’의 세계에 갇힌 농민들은 부자가 등장하고 개인 지위가 향상되는 것을 늘  지역공동체의 안정에 최대 위험 요소로 간주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치부를 위한 모든 노력이 부정적이 인식됩니다. 근검과 절약도 치부와 축재로 인식되지요 아니 웃겨요 치부와 축재 그 자체가 뭐가 나빠요? 조선을 사는게 아닌데 아직도 우리는 치부와 축재를 가치중립적인 말로 생각지 못하는데 그뒤에는 뭐다? 폐쇄적 농경공동체에서 징그럽도록 오래산 세월과 그 세월이 남긴 문화적 DNA가 있다는거죠.
누가 부자되면 누군가가 반드시 빈곤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는 다른 사람의 희생위에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부를 갉아먹는 것이다. 이렇게 한정된 부, 한정된 재화의 사고에서만 살다보면 부자와 축재, 치부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부자가 된 사람을 마구 공격하고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부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앉아서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빼앗겨도 기분 나쁜 방식으로만 빼앗기고 혹은 공동체에서 추방, 축출되면 안되겠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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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소비를 해야합니다. 막 써야해요. 베풀어야해요. 잔치 때 일주일 내내 마을 사람들 놀고 먹게 해주고 지나가는 거지도 밥을 맥여야하고 뭐 그런건데 부자들이 했던 과시적 소비에 대해 설명을 드려보지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마을의 공적이 됩니다. 소문, 험담, 비방, 인신공격,때로는 신체적 공격등이 타겟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숨겨야합니다. 돈 번 것을 숨겨야합니다 그래도 부를 모았단 것이 탄로나면 써야합니다. 아낌없이 자신의 부를 써야하는데 과시적으로 소비해야했지요. 그게 마을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친구접대와 손님접대에 절대 돈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결혼식과 같은 각종 의례에 비용 과다 지출은 기본입니다. 가난한 친척은 무조건 도와주어야하고 밥굷는 이웃이 없게 해야하는데  자식들 결혼할 때 거의 전재산 탕진할 듯이 잔치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가난한 동네 사람이 가서 오늘 부모 제사요 어쩌고하면 쌀을 비롯해 줄 수 있는 음식재료는 다 주는 경우도 많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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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잔치 혹시 나이드신 분들 중에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저만해도 좀 기억이 납니다 동네 유지, 부자의 아들이 장가갑니다 잔치가 일주일을 합니다. 왜 일주일이나 페스티벌을 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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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첫째날부터 손님을 받는게 아닙니다. 다만 동네사람들이 죄다 와서 일을 돕고 요리를 하는데 그날과 다음달, 첫째날, 이튿날 요리를 한것들이요 특히 첫째날에 요리를 한것들은 손님을 접대하는게 아니라 죄다 마을사람들이 집으로 가져가지요. 그렇게 간만에 맛난거 먹고 목구녕에 때 뱃기는것인데........둘째날 혹은 셋째날부터 손님을 받아서 맥이고 그러다가 마지막날에는 동네 사람들 죄다가 먹고 마시는 뒷풀이성 잔치. 이렇게 흥청망청 돈을 썼어야했는데 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들은 판소리 이야기도 기억나요. 할머니 19세기에 태어나서 21세기를 바라보신 분인데 마을의 부자가 정기적으로 판소리꾼을 불러야했다고 했어요. 북잡는 분에 나머지 스텝들까지해서 4인1조를 움직이고 가마꾼 어쩌고해서 보통 쌀 다섯가마는 써야 부를 수 있는데 당시 쌀 다섯가마면 얼마일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정기적으로 돈을 써 동네 사람들 귀를 즐겁게해줘야만 하는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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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부자들에게 하나의 의무였어요. 그렇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온갖 욕과 악평, 조리돌림에 시달려야했는데........이런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재산을 공동체에 강제적으로다가 환원 시키는 노력을 했어야만 했죠.  이렇게 부를 잃는 대신에 존경을 얻기도하고 마을 사람들이 부자의 집에 가서 몸으로 떼우는 소위 노동을 통해 보상을 받기도 했는데 제일 좋은 점은 역시 다 뺏기지 않도록 해주고 부당한 마타도어를 막아주는 것이었죠
이런 과정에서 부자들은 다시 가난해지기도 하는데 뭐랄까요. 평균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라고나할까요. 과시형 소비를 강제해서 부의 차이는 상쇄되고 결국 부는 다시 평균환되는데 글공부해서 과거급제를 통한 계급격차는 좋지만 내새끼도 그래야하지만 부에 근거해 계급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안된다는 인식 때문에 강제적 재분배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사회였지요
과시형 소비가 강제되는 공동체, 이조시대는 이러한 삐뚫어진 재분배 메커니즘, 평균주의 압력이 작용하는 사회였어요. 돈 벌었다하면 그저 돈쓸일만 남고 거머리들이 붙어도 떨쳐낼 수 없는 그저 부를 죄악시하고 치부를 통한 계급격차의 발생을 두눈뜨고 못보는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돈 없는 척 잘하거나 낭비적으로 남들 보는데서 팍팍 쓸 수밖에 없는데 소위 쏘는 문화도 역사가 유구 한게 아닌지 . “돈 번 사람들은 모름지기 자기 친척들과 이웃들과 이익과 재산을 공유해야한다’는 관념이 지배했던 것인데 구한말 조선을 관찰한 외국인들은 공산주의라고 했지요 봉건제적 공산주의. 모처럼 축적된 부가 반강제적으로다가 분배되는 늘 평균의 압력과 평균주의 이상이 늘 알흠답게 실현되는 사회, 과연 지금도 우리가 그런 인식과 문화에서 자유로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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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여러가지로 돈의 축적, 자본의 축적과는 상극인 사회였는데 전 그래서 자생적 근대화니 자본주의맹아론이니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이가 없어요.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이 생명인데 이런 탕진잼의 압력이 작동되고 그 압력이 갈수록 강해져가는 사회가 근대요? 자본주의요? 자본주의 맹아는 개소리잡채입니다. 개혁군주 정조, 동학이니 실학이니 이런것도 아동용 동화밖에 안되는 소리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이야 말로 진짜 개뻘소리지요. 축적과는 상극인 사회에서 무슨놈의 자본주의의 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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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공부하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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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교를 망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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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선생님이 진시황을 원망했다죠. 분서갱유할 때 말입니다, 제대로나 할 것이지 어설프게 해서 유학자들이 살아남앗고 결국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이정도면 남탓 끝판대장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조선의 망국, 우리들 사고의 전근대성에 유교의 책임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비례성의 원칙이란게 있다면서요 잘못했으면 잘못한만큼 패야하고 그러면서 나의 책임과 잘못은 없나 돌아봐야할 것인데 전 가끔 이런 질문 속으로 해봅니다. 유교가 조선을 망친 것일까 조선이 유교를 망친 것일까? 왜 그렇게 유학이 조선에서 교조화되고 5백년동안 버릴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것들이요. 더 나아가 왜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유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갈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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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 농경사회와 너무 잘맞아요. 특히 쌀농사 짓는 농경사회와 생산력이 낮은 쌀농사사회와 너무 잘맞는거 같은데요. 농경사회는 변하를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안전제일 주의에요..  외부세계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고립적 세계인식을 가지기 쉽게 변화가 싫고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생계형 경제에 골몰하다보니 어떠한 모험도 감행하지 않으려는 보수적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환금작물보다는 식용작물을 우선 재배하고 식용작물도 하나에 몰빵하기보다는 콩과 조조, 수수, 보리, 벼등 여러 종륲의 작물재배를 선호하는데 생산성보다는 손실의 최소화를 지향하는거죠. 기후가 어찌되었든 배불리 먹는거보다 중요한 것은 생계선이하의 소출이 나오지 않는 것이니 그렇게 간것인데......생계선이하로 떨어지면 절대 안된다, 안전빵제일주의 사회는 변화를 싫어하고 모험을 터부시하고 그걸 해보려는 사람을 공동체의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데 농민사회는 보수적이어야만 계속 존속할 수 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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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변화와 보수성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은 유교입니다. 생산력을 강조하고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는 법가와 병가사상, 그리고 본래 엔지니어들에게서 기인한 묵가 사상과 쌀농사를 짓는 농경문화권은 잘 맞지 않아요. 춘추시대처럼 여러 열국들로 쪼개져서 총체적 국력 경쟁을 할 때는 필요하지만 하나의 중앙정부가 들어서서 전체 사회를 통괄해갈 때는 이동비용과 물류비용을 높게하고 사람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유교사상이 계층, 계급을 불문하고 적당히 여러 사람 두루 편안하게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유교가 특히 산이 많고 지역과 지역이 서로를 향해 폐쇄적인 이땅에 들어오면서 더욱 뭐랄까 중국에서보다 훨씬 생활양식과 방식과 더욱 궁합이 잘맞았다고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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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같은 경우 양자강하류쪽 상업도시에서 왕안석같은 법가사상가도 심학, 양명학이 흥하기도 했지만 조선은 상업도시들이 없기에 더욱 생산력을 긍정하는 법가나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자유로운 개인을 말하는 양명학이 뿌리 내릴 토양 자체가 없엇는데 신유학 중에서도 정적인 것을 극도로 강조하는 주자의 성리학이 제일 극성을 부릴 토양과 생산양식의 문제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가뜩이나 부자를 싫어했는데 앗 유교는 욕망과 부의 추구를 부정적적으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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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공자님이 말씀하셨지요. 군자는 의에 밝고 의 소인은 리에 밝다요(논어 리인편 16). 부자가 등장하고 치부에 성공한 사람이 나오면 소인으로 낙인찍고 욕하고 매도하고 밟아도 되는 것이요. 그런 부자 혐오에 유교가 자신감을 주었다고나할까요? 세상 사람들 나쁜짓하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다만 그 나쁜 짓에 이념적 정당성을 주고 언어를 주고 그런 사상과 철학이 있느냐 아니냐가 중한것인데 유교는 농촌공동체의 갖은 찌질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그런 짓꺼리들을 하게 했죠.
 그리고 농촌공동체는 가혹할정도로 골고루 가난한 평균의 압력과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곳인데 공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가난함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걱정해야한다(논어 계시편 1장). 유교 자체가 본래 사회주의적 기제를 가진 철학인데 유교를 경멸한 상앙과 한비자는 결과적 평등을 극혐한 우파적 사상이고요. 하여튼 사회주의적 기제가 강한 유교 사상이 절로 봉건적 공산주의를 지향하기 쉬운 농촌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욱 사회의 그런 공산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만들고 잘난놈과 부자 때려잡아 늘 평등하게 가난하게 사는 공동체가 계속되도록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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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닙니다 청빈이니 어쩌고 하면서 게으름과 농땡이질에도 면죄부를 주었고 안빈낙도니 어쩌고하면서 그걸 장려하기도 했는데 유교는요 치부와 축재, 근검, 절약에 자신감을 주지 않아요. 기생과 낭비, 게으름에 자신감을 줬어요, 그랬던거 같아요. 서구는 어느 순간 치부와 축재, 근검과 절약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사상들이 만들어져서 자본의 축적을 도왔던거 같은데 우리 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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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강조하는 도덕의 이름하에 농촌사회의 요소와 특성들이 더욱 강화되고 그것들이 정당화되고 아주 바꿀 수 없는 콘크리트 공구리가 되고...........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유교가 한국을 망친게 아니라 한국이 유교를 망친게 아닐까? 산이 많지 않고 외부세계로 열린 마을 공동체(신기하게도 외부세계와는 철저히 막혀 있는데 마을 내부는 서로에게 정말 잘 오픈되어 있죠. 그래서 오지랖과 관음증, 감시가 참 쉽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마을들은 외부로 열려있지만 각자의 주택들은 철저히 서로를 향해 닫혀 있습니다. 고온다습한 기후의 동아시아 즉 습기와 싸워야하는 문명권과 일교차, 단열과 싸워야하는 문명권은 주거 양식이 상이할 수밖에)에 유교가 들어왔으면 이렇게 괴랄할 정도로 교조적인 사상이 되었을까 하는데..........조선시대 사회사와 생활상을 말하려면 유교적 농업경제, 유교농촌공동체 이런 말을 써서 이해하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유교와 농업문화가 합쳐져서 도덕경제라는 희한한 경제가 만들어지는데......그 도덕경제란 것도 좀 아셔야합니다. 농경과 유교가 만나 화학적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도덕경제가 있었는데 그걸 좀 아셔야 한국경제의 골때린 면들이 이해가 가죠. 무늬만 시장경제, 무늬만 자본주의가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도저히 시장경제라고 할 수 없을만큼 이상한 것들이 많고 나쁜 덫과 올무들이 보이는데 한국인들이 사실 도덕경제를 좋아하는 이상 어쩔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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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공부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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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무조건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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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재화란 사고의 틀 안에서 사는 폐쇄적 자급자족 농촌공동체, 부자가 등장하면 공동체의 위협요소로 간주합니다. 그러면서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가지 제재와 린치가 시작되는데......제재와 린치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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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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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부터가 움직입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몰려가서 기식寄食을 합니다. 거머리처럼 불러 붙어 세월아 네월아 밥을 얻어 먹지요. 그리고 이웃들이 몰려가 돈을 꿔달라고 합니다. 돈 꾸러 갔으면 채무자가 되겠다는 것인데 채권자 행세를 합니다. 아 물론 돈을 꾸어간 이후에는 배짱을 부려도 그 돈을 받기 전까지는 굽신굽신 해야하는데 받기전에 굽신거리는 태도조차 없습니다. 일가 친척중에 누군가가 큰 돈 벌었다. 장사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그래서 갑자기 떼돈 벌었다 싶으면 친척들이 몰려가서 돈꿔달라고 괴롭히는 것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지방에서도 그렇고 상경해서 살고 있는 지방출신 부자들도 겪어야하는 일이죠 아직도 그러합니다. 강남의 비싼 집 처분해서 강북의 신축빌라에 와서 사는 분들 두둑한 현금을 가졌다고 생각해 친척들이 들이 닥치고 돈꿔달라고 와서 징징거리는데 비싼 집 처분해서 싼곳에 가면 그게 아주 골치라죠. 신축빌라촌에 살때 그런 일로 곤욕을 겪는 강남출신 노인들 깨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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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부자가 되면요 친척들이 이렇게 괴롭히는데 사실 친척들이 나서기전에 동네 사람들의 소문, 험담, 비방, 인신공격 등은 기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론 듣는 곳에서 이렇게 입으로 조리돌림을 하고 공격을 해대죠. 이런 행위를 즐겨고 아주 정당하고 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인터넷상의 조리돌림과 신상털이 문화의 역사는 이렇게 유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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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닙니다, 동네 양반과 관이 나서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벌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바로 득달같이 움직입니다. 지방 관아의 장과 이방, 형방 이런 아전들이 움직이고 지역의 양반도 움직입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 서로 행여나 상대보다 늦을세라 움직이는데  최근에 부를 축적한 사람에게 가서 갖은 협박과 공갈로 재사을 강탈하거나 미뤄두었던 각종 부채들을 강요하기 시작하며 철저하게 뜯어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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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한정되어 있다”, “부의 양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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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70% 개울과 시내, 강이 지역과 지역을 갈라 놓고, 나라는 물산과 인력이 오고갈 도로와 물산망도 정비 안해놓고.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이 학을 뗐죠. 여행비용이 만주와 시베리아보다도 4배나 더 든다고. 단순히 농사만 짓는게 아니라 폐쇄적 , 고립적 환경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조선 사람들. 그들은 늘 부의 절대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부자의 등장을 공동체에 대한 위협과 자기 생존의 위기로 간주하고 그러다보니 부자를 미워하고 공격하고 그걸 당연한 권리 내지 정의구현으로 알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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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만 미워했겠습니까 모든 잘난 사람을 미워했어요. 적극적으로 자기 상승을 도모하는 모든 이들을 미워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나쁜 놈보다 잘난 놈을 미워한다는 말이 있지요 소위 ‘나댄다“는 표현이 있고요. 그리고 조직에서 성과를 내고 능력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들에게 마타도어를 당하는 일도 많은데 그 뒤에는 폐쇄적 농경사회로 살아온 아주 긴 세월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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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나 고려시대때만해도 장사와 유통, 수레와 도로의 정비등이 조선정도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폐쇄적, 고립적 농경사회적 특성이 강해져갔고 지방 양반들과 관리들의 횡포가 심해져 갔는데 (일본과 유럽식 봉건제도는 소위 내 나와바리 인식이 있어서 착취와 갈취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건 향후 설명할 기회가)  결국 이조 5백년동안 조선인들은 부, 부자에 대한 질시와 혐오를 DNA에 새기게 되었지요. 부유함만을 미워한 게 아닙니다. 부와 재화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았지요.  명예, 우정, 사랑. 존경 지위, 권력, 안정 따위의 문화적 자원과 사회적 요소들도 ‘한정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존경 받고 명예를 누리고 이런 것들도 싫었던 것이고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사람의 흠과 약점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그런것들이 폭로 되었다고 생각하면 우루루 몰려가 조리돌림 하려고 하는 국민 아니 백성 스포츠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잘난 사람의 몰락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그게 다.........타인의 몰락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는 삐뚫어진 조선인들의 심보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강해졌는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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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공부하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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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살자, 같이 먹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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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공동체는 부자들에대한 질시와 관음증, 공격등 다양한 제재와 린치가 허용되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그걸 유교가 거들기도 했다고 하고요.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어떻게 해야한다고 했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것이 강요된다고 했습니까. 과시적 소비와 베푸는 행위가 강제된다고 했지요. 사유재산? 그런거 없습니다, 니꺼 내꺼가 어딨냐? 콩한쪽도 노나 먹어야한다고 하면서 치부와 축재한 사람들의 재물을 털고 당당하게 그 사람에게 거머리처럼 들러 붙어도 되는 사회가 폐쇄적 자급자족 농촌공동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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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하다’, ‘야박하다’ 이런 말이 조선의 부자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거지라도 밥을 배불리 먹어야하고 언제 한번 본적도 없는 길손이 들이닥치면 배불리 먹어야했으며 그 손님이 떠나지 않고 2,3년간 집에서 들러 붙어 있어도 내쫓을 수가 없었는데 아기공룡둘리, 쇼비디오자키에서 지씨 아줌마가 방빼!!하면 못빼!!하고 응수하던 쓰리랑 부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죠. 부자에게는 누구든 뻔뻔하게 들러붙을 수가 있었는데 염치와 명예심 이런거는 개나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부자들에게 베품이 강제되고 과시적 소비를 해야만 지역에서 행세를 하고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는데 이들이 들러붙는 사람들이 늘 하던 소리는 나도 살자, 함께 살자, 더불어 살자 뭐 그런 말들이었죠. 그게 이론적으로 발전하면 대동사회 뭐 그런거고요. 부자들에게 과시적 소비가 강제되는 공동체는 다른 말로하면 모두에게 ‘생계 권리’, ”잠정적 생계권리“ 이런 것이 보장되는 사회였다고 보시면 되는데.......내가 니 사돈의 8촌이고 나도 살어야하니 무전취식이 당연하거고(이게 좀 이해가 안가면 이범수, 박상면이 나온 하면된다 좀 보시면 됩니다) 돈꿔가는게 당연하거고, 내가 마을의 거지고 가난한 자니 내가 살기 위해 부자인 당신이 베풀어야한다는 그런식으로 권리주장을 하는데......우리 조선의 권리 주장이 그러했는데........의료사고 일어나서 법정가면 말이죠 시시비비 제대로 안가립니다, 판사님은 당신이 의사고 이 사람보다 훨씬 잘사니 좀 양보하고 보상금 좀 드려라 하면서 법리적 판단이고 사실관계 확인이고 뭐고 판결하는 경우 많다죠. 가난하고 약자니 선한 것이고 그 사람의 잠정적 생계권리는 부자들의 희생해서 보장하는게 맞다. 그래야 군자고 어짊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인한것이고 불의한 것이다. 그게 우리 알흠다운 조선의 문화고 사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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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이 더욱 목소리를 크게 냅니다, 더욱 뻔뻔하게 자기 권리를 부자에게 주장합니다, 맡긴 돈 찾아가겠다는 사람처럼 나서서 삥을 뜯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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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지방가서 사업체 크게 내고 하면 당장 시민단체를 꽹가리 몰고 들이닥치는데......그 사람들이 기업의 채권자라 그런게 아니죠. 그냥 부자인 니들 좀 내가 뜯어먹어야 쓰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한량, 룸펜들이 기생하고 갈취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걸 유교의 도덕적 수사들이 돕고 그런거죠, 당당하게 뜯어먹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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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만들기, 지역화폐, 친환경급식, 민주시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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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가보면 알흠다운 말들이 난무합니다. 그런데 잠깐이라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힙니다. 알흠다운 말을 빙자하고 공동체성을 팔아먹어 세금을 착복하고 진짜 약자들에게 가야할 국가 재정을 좀 먹고 있는 것인데 시민단체들 만이 아닐것입니다.  PC가 상륙한지 한참되었는데 저마다 자신의 약자됨과 소수자성을 내세워서 이런저런거 달라고 얼마나 난리를 필는지. 남들만큼 누리고 쓰고 싶거들랑 일해야죠, 땀흘리고요. 하지만 무능하고 게으른 자들이 자신이 소수자라고 약자라고 그런 무늬만 약자인 자들의 집단민원에 사회가 병드는데 그런 모습들이 과연 우리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와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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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조선의.....폐쇄적 농촌공동체의 저런 모습들이 유교가 말한 도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도덕의 이름으로 부자들을 패고 기생하고 갈취하고 그렇게해서 강제적 재분배, 즉돈과 재화가 돌고 유통되는 그래서 조선은 도덕경제moral economy가 구현된 알흠다운 사회였는데 도덕을 빙자한 알흠다운 말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뜯어먹고 다리를 붙잡고 생산성과 효율을 파괴하고, 게으르고 무능한 자들이 먹고 살고 지금 우리가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운동권들이 생각하는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싶은데 아니 그리고 그놈의 생계권리는 무슨......일할 의사가 있고 시민으로서 염치와 책임감을 아는자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는거지. 조금이라도 사회적 효용과 수요에 맞게 뭐라도 만들어내거나 낼 각오가 있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지요. 무능과 게으름만 있는 자들을 왜 그런것을 보장해주고 맥여살려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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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공부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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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무조건 한정되어 있다.”
한국인,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네가지 키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네가지를 알아야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치와 문화, 사회, 경제까지도요
첫번째가 유교입니다, 두번째가 무속이죠. 
세번째가 폐쇄적 농업경제사회의 논리입니다
네번째가 유구한 중앙집권의 역사인데
네번째는 장화홍련전만봐도 알 수 있죠. 압록강 인근 평안북도 철산지방의 실화로 만들어진 동화인데 사또들이 왜 매번 죽어나가야했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중앙의 권력과 맞닿아야만이 해결이 되니 갓 임관한 사또들에게만 가서 원혼이 하소연을 하니 그리 된것이죠. 평안북도 철산지방이 국경부근인것을 보면 꽤나 조선의 중앙집권의 체계가 강력했다는것을 알 수 있는데
전세계에 가장 오래 또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의 전통을 가진 나라인데 한국사회를 독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죠. 그건 그레고리핸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1번 유교로 한국사회 독해하기는 오구라기조가 2번 무속으로 한국사회 독해하기는 제가 곧 출간될 책을 통해서 하고요 3번은 이성우 선생님이 하셨는데 정리한 것을 기억나는대로 썰을 풀어보죠, 제가 벽지 집성촌에서 살았기에 제 경험까지도 섞어서요. 제가 가진 유교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 논의를 거들겁니다.
폐쇄적 농업공동체란 기나긴 전통이 한국인들의 정서, 심보를 만들었다?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한국사회 분석에 있어서요 가끔은 맨위로 놓아야하는게 아닐까할만큼 강력한것인데 정말이지 우리가 농업사회에서 아주 길게 살았죠. 그것도 폐쇄적 농업경제공동체에서 아주 길게 살았는데요 그 때의 역사가 남긴 습속이 정말 강력합니다. 습속은 마음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을 지배하는게 습관이라고 하지요. 한국인이 가진 마음의 습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게 바로 폐쇄적 농업사회 전통인데요 그에 바탕해서 한국, 한국인, 한국사회 이해하기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죠.
한국인 공부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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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닥치고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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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인,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농경사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농경사회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폐쇄적인 농경사회, 외부와 교류가 많지 않은 자급자족형 농경사회에 대해 이해를 해야하는데요 제가 늘 강조했던 표층은 유교요 심층은 무속, 유교와 무속이라는 것도 말이죠 폐쇄적 농경사회적 특성과 연관지어서 이해를 할 때 더욱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칼이 되고 현미경이 될 수 있는데 ......자 폐쇄적 농경사회란 게 뭘까요? 그런 환경 하에서 절로 사람들이 가지는 사고방식이 뭘까요? 일단 좋은 것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한정된 재화’란 세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그런 사고는 절로 부에 대한 질시 잘난 개인에 대한 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요 차근 차근 설명 드려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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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는 19세기 말까지도 서울과 같은 대도시와 인천, 원산과 같은 개항장 등 극히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폐쇄된 농촌공동체에 머문 경우가 많았습니다. 단순히 농사만 짓는 나라가 아니라 산이 아주 많은 반도이고 정부와 지배층이 상업을 억누른 나라였지요. 외부세계와 교통을 하지 않고 자가 생산과 자가 소비에 기초한 농촌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람이나 우마가 오랫동안 같은 방향으로 지나가면서 생긴 자연적인 길 이외에는 인공적으로 닦은 도로는 부재한 상황, 재화와 상품들의 운반과 유통은 남의 나라이야기일 뿐이고요  숱한 농촌마을들은 외부세계와의 사실상 단절된  자족적인 농촌공동체로 살고 있었는데요. 자연히 그러한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자연-사회적-경제적 환경 때문에 인식과 사고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막히니 사고도 막힌다고 절로 폐쇄적 사고체계의 노예가 되는데 그러다보니 ‘절로 좋은 것은 한정되어 있다’. ‘물건과 물산은 한정되어 있고 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토지가 늘어나겠습니까? 갑자기 송아지 수가 늘어나겠습니까? 생산요소든 생산요소가 투입되어 만든 생산물이든 늘어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절로 저런 사고가 머리에 박히는거죠. 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게 폐쇄적 농촌공동체의 사고인데요 외려 인구가 증가하면 토지와 경제적 부는 사람 머리수가 늘어나는 만큼 분할되어갈 뿐이고 각자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부와 재화는 한정되어 잇는데 시간이 갈수록 느는게 아니라 줄어들고 나에게 올 몫은 작아진다. 이런 인식과 사고에서 평생을 살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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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부자가 등장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사람이 재산이 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부의 총량과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부자가 등장하고 잘난놈이 생겨나고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이 생기면 누군가가 굶었구나  혹은 내가 굶어야하고 내가족들에게 올 몫이 줄어드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폐쇄적 농촌공동체에서는 말이죠, 이렇게 누군가가 부자 되면 누군가가 가난해졌다는 것일 뿐입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특정한 개인과 가족의 지위향상과 부의 축재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부자와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 즉 근검절약하는 사람은 마을 사람 전체의 의심과 질투, 질시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은 부를 축적하고 개인지위를 상승시켜 팔자를 고치려는 사람을 공동체를 해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여러 가지 공식적 비공식적. 조직적, 비조직적 제재와 린치에 나서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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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공부하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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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방패 막이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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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비숍이 그랬나요? 조선인들 이상하다고, 조선반도에서 본 조선인들은 하나같이 드럽게들 게으르다고 했죠. 냉담하고 시닐컬하고 비위생적이고 가난에 절은 얼굴로 놀고 먹는다고 농촌에 가나 어촌에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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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걸 만주와 시베리아로 간 조선인들은 죽도록 일하고 앵글로섹슨 남자들보다도 공격적으로 산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민족성이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왜 이렇게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느냐 조선땅과 달리 여기는 뜯어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랬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분은 조선민족은 우수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했다지요.
폐쇄적인 자급자족의 농촌공동체......이조시대는 그렇게 강한 평균의 압력이 작용하는 사회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부를 축적하면 공동의 적이되고 갈취의 대상이 됩니다. 나와 내 가족, 내새끼 먹을 것 그리고 손님 대접을 위한 최소한의 물자의 확보 거기까지!! 거기까지만 일하면 됩니다, 생산과 노동은 그 선까지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요? 부자라는 것이 뽀록나고 그러면 저주스러운 소문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 조선사람들은 생계선까지만 일합니다. 밥 세끼만 먹고 굶지만 않으면 된다.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옷, 더 좋은 먹거리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없애야합니다. 생계선까지만 노동하고 생산하는 것, ”생계형 경제“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냥 삶의 목표는 하루하루 굶지 않는 것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것이죠. 내일과 내년을 위해 조금이라도 축적하면 바로 이웃과 친척, 양반과 관이 들이 닥치니까요. 열심히 일해봤자, 더 나은 방식의 생산기술을 개발해봤자 이익을 보장 받을 수 없고 남좋은 일만 시키는것인데 죽어라 노동하는 것만큼 쓸데 없는 일이 어딨겠습니까 
여기서 이사벨라 누님이 하신 말씀들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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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부들은 아무런 구실도 없이 수탈당할 것이 뻔한 돈을 굳이 벌려고 들지 않고 생산계급 일반과 마찬가지로 가난을 방패막이로 삼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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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리들을 살아 있는 민중의 피를 빠는 흡혈귀이다”
“모든 조선 사람들은 가난이 그들 최고의 방어막이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주는 것 이외에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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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사는 조선 남자들에게서는 고국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풀죽은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토착 조선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과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 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으로 변했다. 아시아인 같지가 않다. 영국남자들과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활발한 움직임이 우쭐대는 양반의 거만함과 농부의 낙담한 빈둥거림을 대체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만다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아낙과 어떤 형태의 부도 더 이상 관리들의 수탈대상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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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헌날 사방 팔방에서 뜯어먹으니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은 방패요 나의 무기입니다. 그러니 나태함과 게으름은 생존에 필수적인 덕목이 됩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도박이고 투전이고 해서 날려야하고요. 아 게으르고 방탕해야 가난해질거 아닙니까?. 유능하고 부지런해지고 똑똑해야 내것을 지키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지고 너저분하게 살아야 나를 지킬 수 있는 세상. 이조시대가 이랬습니다. 폐쇄적 농촌사회의 귀결이 이러했습니다. 생계선까지만 일하는 사회, 생계경제만 관철되는 나라의 모습이 이러했는데 이런 사회에서 직업의 분화, 장인정신과 프로정신이 생길래야 생길수가 없겠죠. 신분상승과 위치의 변화는 오로지 시험을 통한 과거급제만이 길이었고 다른 수단을 통한 상승과 계발은 응징과 린치의 대상이 될 뿐이고. 사士가 되는 것만이 팔자고치는 길이고 농민이든 상민이든 공인이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해서 처지를 개선하고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士가 되는 것만이 길. 그러니 한국인들은 장사하시는 분들이 툭하면 한다는 말이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 아닌데 그러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반신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어떠한 직업적 자부심이나 장인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게 아닌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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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너도 나도 식당하고 밥집들이 많은데 밥맛이 좆도 없다고 했습니다. 대충 보온 밭솝에서 마른 밥 퍼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쌀자체가 문제인지 조리과정 자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자기 업에 대한 자부심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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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선까지 일하는게 당연했던 사람들, 생계형 경제 안에서만 산 사람들, 신분상승은 글 읽어 과거급제라는 단일루트밖에 없었던 사회의 사람들 그걸 이해하면 .....이조시대의 모습들, 폐쇄형 농촌경제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을 이해하면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많은 모습들도 덩달아!! 절로!! 이해되고 감이 잡히고 그런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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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여사님이 그러셨답니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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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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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 and Her Neighbours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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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먹는 인간들만 없으면 동기부여만 되면 괴물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아주 우수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며 조선사람들을 칭찬했습니다 . 비록 지금 조선사람들의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저들은 언제가 아주 부강해지고 잘살거라고 했는데 .......영국의 여류지리학자 비숍여사님께서 ........당시 암울했던 그 때 이렇게 예언하시고 우리를 축복해주셨습니다. 당시 누가 저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을까요 당장 국권상실을 눈앞에 둔 나라, 도성안에 똥물이 천지였던 나라를 보고 말입니다. 비숍여사님 멘트를 보고 전 눈물을 훔치게 되는데............
  폐쇄형 농업공동체, 자급자족형 농촌공동체란 우리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한국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맨처음에 말씀 드렸죠.
한국인, 한국사회를 이해하려면
1)유교 2)무속 3) 폐쇄적 농촌사회 전통 4) 유구한 중앙집권의 역사 이 넷을 알아야한다고. 3번의 논리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1번은 오구라기조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했고요 4번은 그레고리 핸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해냈습니다. 감히 제가 2번을 가지고 한국사회 해부에  나서보자고 장담해 곧 책이 출간되는데요 가제 "한국형 무속 정치학"
많이 팔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임건순의 무속책 많이 팔아주셔야 제가 쏘련 아니 모스크바에 갑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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