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3)
주체 105(2016)년 8월 19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3)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이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첫 조국통일상수상자의 한사람이였던 리종만선생의 아들 리형우가 주체99(2010)년 8월에 쓴 글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을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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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준엄한 전쟁의 시련을 겪고있던 나날 아버지가 외국에 가서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전후의 어느날 아버지를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선생이 몸성히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외국땅이 자기 집만 하였겠는가고 하시며 건강과 생활에 대해 자상히 알아보시고나서 복구건설과 관련하여 의논할것이 있어서 불렀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후복구건설을 하자니 많은 자재와 원료가 요구되는데 그중에서도 동이 제일 필요하다고 하시였다.
일제때 금광업을 하면서 수많은 곳들을 탐사해본 아버지는 《장군님! 문제없습니다. 동도 많고 금도 많습니다.》라고 하면서 북부지역의 학성산에 20만t정도의 동광석이 매장되여있는것으로 알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좋은 자료를 알려주었다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해당 일군을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기술자들을 파견하여 조사해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그날로 아버지를 중공업성 고문으로 임명하시고 일군들에게 잘 도와주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학성산에 대한 탐사사업이 진행되였으나 동은 종시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속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구구한 말이 나돌았다. 지어 로망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일부 사람들의 말이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학성산에 동광석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수령님을 무슨 낯으로 뵈온단 말인가, 내가 왜 이전에 동을 캐지 않고 금만 따라다녔던가, 아버지는 번민에 모대기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조용히 방안을 거니시다가 이렇게 교시하시였다고 한다.
《학성산에 동광석이 20만t이 없다고 해도 동무들이 리종만선생에 대하여 절대로 다르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리종만선생을 믿은것은 학성산의 동광석때문이 아니라 그 선생의 애국적인 지조와 민족적인 량심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믿은것은 아버지의 애국심이고 민족적량심이라고 두번세번 거듭 교시하시며 앞으로도 리종만선생을 잘 도와주라고 하시였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온 아버지에게 수령님 주신 믿음은 얼마나 심장을 울려주는 고마운것이였던가.
동 수십만t보다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해놓으려는 아버지의 자그마한 애국심을 더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것으로 아끼고 내세워주신 수령님.
그것이 바로 인간을 제일로 여기시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최고의 천품으로 체현하신 우리 수령님의 자애로운 덕망이였고 통일애국을 위한 사랑의 정치였다.
그후 수령님께서는 론난이 많은 현지에 몸소 나오시여 비범한 선견지명으로 동광맥을 찾아주시였다. 그리고 광산이 개발되였을 때에는 그 이름을 《3월5일청년광산》이라고 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버지가 광산을 개발하는 경우 투자의 효과성을 높일수 있는 조사자료를 만들어놓았을 때에도 애국심이 높은분이라고 또다시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였다.
아버지는 버럭덩이가 되여 쓸모없이 파묻히게 될번 한 자신의 운명을 건져주시고 애국의 단상에 높이 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에 오열을 쏟았다.
지난날 수백만장자였던 남조선출신의 민족자본가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절대적인 신임은 아버지에 대한 가장 값높은 표창이였다. 하기에 아버지는 지난날 경영하던 《대동광업주식회사》청사를 공화국정부에 희사한다는 《양도증서》를 내놓으며 《저에게는 김일성장군님의 신임이면 그밖에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가장 귀중한 수령님의 신임을 받아안은 나에게는 재산도 귀하지 않으며 명예도 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주신 은정과 믿음을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아버지가 입은 옷과 가지가지의 생활용품, 살림집과 승용차에도 수령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깃들어있었다.
아버지가 88살에 눈수술을 하고 기적적으로 다시 앞을 보게 되였을 때 제일 기뻐하신분도 수령님이시였다.
어느날 아버지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영화를 관람한적이 있었다. 그이께서는 아버지에게 90이 넘었는데 눈은 어떤가고 물어주시고 아버지가 영화보기에는 괜찮다고 말씀올리자 책도 오래 보지 말고 몇페지씩만 보라고 다심하게 일러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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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이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첫 조국통일상수상자의 한사람이였던 리종만선생의 아들 리형우가 주체99(2010)년 8월에 쓴 글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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