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3

대구 이슬람사원 갈등… “주택가엔 안돼” vs “종교의 자유” - 조선일보

대구 이슬람사원 갈등… “주택가엔 안돼” vs “종교의 자유” - 조선일보



대구 이슬람사원 갈등… “주택가엔 안돼” vs “종교의 자유”

인근 주민들과 2년째 충돌
이승규 기자
입력 2022.12.16



15일 이슬람 사원(모스크) 공사가 진행 중인 대구 북구 대현동 주택가 인근 골목길에‘이슬람 사원 건립으로 파괴되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등의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아래 사진은 이슬람 사원(빨간 점선)이 지어지고 있는 대구 북구 대현동 주택가 전경. /김동환 기자

15일 대구 북구 대현동 경북대학교 서문 인근 주택가 골목길. ‘2022 대현동 주민들을 위한 연말 큰잔치’가 열렸다. 골목 곳곳에 ‘어느 양심이 이런 곳에 종교 시설을 짓겠느냐’ ‘이슬람 사원 건축 결사 반대한다’ 등의 글귀가 쓰인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었다. 그 근처엔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지어지고 있었다.

모스크 건설 현장 주변 주택가 주민들은 이날 행사에서 무슬림들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구워먹었다. 돼지머리 3개, 족발과 돼지꼬리 등을 곳곳에 널어 놓기도 했다. 한 주민은 “법원도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으니 주민들 나름대로 공사를 막기 위한 자구책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축 공사를 둘러싼 무슬림 건축주와 주민 간 갈등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주택들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모스크가 지어지자 주민들은 “생활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는 반면 건축주 측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적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주민들과 무슬림의 갈등은 2020년 9월 28일 대구 북구가 대현동 주택 밀집 지역에 모스크 건축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모스크 건축주들이 단독주택이었던 건물을 2종 근린 생활시설 용도로 변경해 건축허가를 받았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는 연면적 245.14㎡(74평)에 지상 2층 규모 모스크가 들어서게 된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지역 내에는 이슬람 사원 10곳(대현동 제외)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이들 사원은 대부분 대로변에 있고 주변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현동에 모스크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곧바로 반대 시위에 들어갔다. 모스크 공사 현장과 접한 주택에 거주하는 박정숙씨는 “처음엔 주택을 증·개축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모스크였다”면서 “일반 상가 건물도 아니고 주민들이 조용히 쉬는 주택 옆에 종교 시설을 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현동 주민들과 무슬림들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무슬림 유학생들은 약 10여 년 전부터 원룸에 거주하는 등 주민과 함께 어우러져 생활해왔다. 주민 김정애씨는 “경북대 서문 인근의 한 빌딩 내에서 기도를 했을 당시엔 주민들도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며 “무슬림 유학생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들이 모스크를 주택가에 짓게 되니 주민들과 사이가 틀어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한 결과 지난해 2월 16일 대구 북구는 모스크 건축 현장에 행정명령인 공사 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모스크 건축주 측은 대구 북구 등을 상대로 ‘이슬람 사원 공사 중지 처분 취소’ 소송을 걸어 맞대응했다. 대구지법은 지난해 12월 1일 “대구 북구는 공사 중지 처분을 하면서 미리 그 내용을 고지하고 의견 제출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므로 절차적 위법 사유가 있다. 단순히 집단 민원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사 중지 처분을 내릴 순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주민들이 즉각 항소하며 재판을 이어갔지만, 결국 올해 9월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이 확정됐다. ‘종교의 자유’를 내세운 모스크 건축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 공사가 재개되는 과정에서 대현동 주민들과 무슬림 측의 갈등은 심화됐다. 지난 8월 30일엔 공사에 사용되는 모래 위에 드러누운 70대와 80대 할머니 2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각각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16일엔 ‘이슬람 사원 건축을 지지한다’는 글귀의 현수막이 걸린 천막을 치우려던 50대 주민을 손으로 밀친 파키스탄인 유학생 30대 B씨가 입건됐다. 입건됐던 할머니 2명은 지난 11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유학생 B씨는 이달 벌금 3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현재 공사는 재개됐지만 주민 반발로 공사 진행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다. 대구 북구 관계자는 “건물 골조는 완성이 됐으나 최근 공사에 진척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구 북구는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수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대구 북구 관계자는 “이슬람 측에 대체 부지 등을 제안했지만 현재 부지와 조건이 비슷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면서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 해결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승규 기자

이곳에서 대구경북의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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