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이춘근 박사 “힘을 유지하고 키우고 보여줘야 평화 지킨다”

이춘근 박사 “힘을 유지하고 키우고 보여줘야 평화 지킨다”
[인터뷰] 동북아 ‘신냉전’ 한국의 살길… 이춘근 박사의 진단
이춘근 박사 “힘을 유지하고 키우고 보여줘야 평화 지킨다”中 ‘가짜 자본주의’ 종말로 치닫는 중… 결코 美 이길 수 없어
日은 정세 유지 ‘지렛대’… 北 김주애 후계자說에는 동의 못 해
류혁 기자 기자페이지 +입력 2023-10-04 
▲ 국제정치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이춘근 박사가 서울 중구 모처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중국이 결코 미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며 필연적으로 일본이 미국의 옵션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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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격언과도 같다. 이때 필요한 국가의 행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힘을 유지하라(to keep power) △힘을 키워라(to increase power) △힘을 보여 줘라(to demonstrate power) 이 세 가지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격언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만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이춘근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한미동맹의 지정학적 가치를 역설해 온 학자이자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 철학을 가장 명쾌하게 전달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특히 한미동맹 체결 70주년을 맞이해 10년 만에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이뤄진 완연한 가을에 스카이데일리에서 이춘근 박사를 만나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미·중 패권 경쟁과 대만·일본의 정세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황 예측에 이르기까지 심도 깊은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이춘근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한미동맹 체결 70주년을 맞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펼쳐진 바 있다. 국제정치학자로서 남다른 소회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봤나?

나 역시 시가행진을 보기 위해 비가 오는 현장을 찾았었다. 윤석열정부 들어서 평화의 수수께끼를 한 껍질 풀어 나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격려하는 마음으로 봤다. 오랫동안 내가 주장했듯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금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역시 “선한 사람이 용기를 가질 때 악마는 힘을 잃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10년 만에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시가행진을 통해 우리의 힘을 세계에 보여준 것은 매우 뜻깊은 시도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미국은 굳이 군사 퍼레이드나 열병식과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굳이 그러한 시가행진으로 무력을 과시하지 않아도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미국의 국민을 포함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잘 알기 때문이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서울대학교를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바로 이처럼 무력을 과시할 필요성 자체가 없을 만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진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은 온 정성을 쏟아 무력 과시를 해야 하는 절박함 속에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결국 미·중 패권 경쟁의 승자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질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중국이 미국을 결단코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중국의 성장과 도전을 방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전자의 도발 앞에서 어떤 챔피언도 도발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논리로 여겨지겠지만 초강대국인 미국의 질서 유지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때 비로소 압도적인 전력 차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 미국과 구(舊) 소련의 냉전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미·소 간 경제 체제의 연결성이 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두 국가와 각 맹주국을 따르는 동맹국 또는 위성국들이 경제 체제 면에서 철저하게 분리돼 있었던 것이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경제 시스템 자체가 달랐기에 미국이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무역체제라는 시스템 안에서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2위에 올랐다. 그러니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수출 주도형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진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느라 마구잡이로 건설한 아파트와 철도만 가득하고 내부적으로는 노동 가능 인구가 텅텅 비어 가는 구조다.

이미 ‘한 자녀 정책’으로 한 세대 자체가 사라져 버린 중국은 2015년 이후 15세 이상 64세 이하 노동가능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40년이 되면 전부 노인들밖에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중국의 인구통계학적 모순은 미국에 의존하며 성장해 온 ‘가짜 자본주의’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결국 이 싸움은 결말이 정해져 있는 아마겟돈 전쟁이다.

이러한 미·중 패권 경쟁 가운데 일본과 북한의 움직임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달라.

조지 프리드먼과 같은 학자는 일본을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인정한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혁명이 가능한 나라’라고 평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프리드먼은 2020년대에 들어 일본이 국가의 행보를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시 말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다시 변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단순히 일본의 희망이라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에서 미국이 일본의 역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말하기를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이 참전하겠다”고 했다. 이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이 발언에 대해 미국이 부인하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일본의 군사력을 ‘선량한 힘(force for good)’이라고 표현하며 아시아 정세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지렛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조적으로 북한은 내부 통제와 후계 구도 등 모든 면에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간혹 일각에서 김정은의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예측하는 분석이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나이로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어린이에게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드론을 활용한 암살 위협에 대한 디터런트(억지력)로서 어린이와 동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유럽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한창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흔히 우크라이나를 선의의 피해자로 보고 러시아의 악의 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냉정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는 순수한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같은 행보를 러시아의 침공 명분으로 인정하는 견해도 있을 정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의 보호 약속만을 믿고 독립 당시에 보유하고 있던 수천 대의 전차들을 없애 버린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조치였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라는 맹수와 국경을 접한 나라가 불과 200~300대의 전차만 가지고 있었으니 2014년에 크림반도를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나라의 힘을 뜻하는 ‘국력’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인구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과 같은 것 외에도 지도자의 전략과 국민의 의지와 같은 것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국민 여론이 튼튼하게 받쳐 주는 가운데 현명한 지도자의 전략적 판단이 있어야만이 국가는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국력이 아무리 강해도 보이지 않는 국력이 0이 되면 곱하기의 결괏값도 0이 돼 버리는 이치다. 무엇보다도 강한 국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의 단결이 있어야 대한민국이 존속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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