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저런 책이나 글(특히 페북 글)을 보면, 1910년 일본에 의한 한국 강제병합을 '한일합방'이라고 표현한 경우들이 있다. 심지어 교수님들, 작가님들도 '한일합방'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표현이니 주의해야 한다.
'합방(合邦)'은 문자 그대로 나라를 합친다는 뜻의 말이다. 예를 들어 1801년 영국이 아일랜드를 '합방'하였는데, 이때는 나라 이름도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라고 고쳐서 '아일랜드'를 나라 이름 안에 넣었다. '아일랜드'를 상당히 배려해준 것이다. 이렇게 '합방'은 되었지만, 아일랜드에는 여전히 잉글랜드 귀족 출신 '총독'이 상주하면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관리 임용 등에서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차별대우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합방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을 만들었는데, 이때는 각자 주권국가를 유지하면서 그 위에 합방국가를 만들어 '두 주권국가의 이중 군주국' 형태를 띠었다. 두 나라는 군대, 재정, 외교만 공동으로 했고, 나머지는 각자의 정부에서 알아서 했다. 한편 두 나라는 공동으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를 통치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들을 두 나라가 '합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경우는 이 두 사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합방'이란 말이 널리 쓰이고 지금도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은 1909년 일진회가 '합방청원서'라는 것을 발표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진회는 1909년 12월 순종과 내각, 통감부에 합방청원서를 내고,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합방청원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들은 외교, 군사, 재정을 공동으로 하는 대신, 각자 자치권을 갖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주국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당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은 일진회의 합방 청원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후 1910년 2월까지 합방청원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2일 일본의 가쓰라 타로 총리가 일진회의 합방청원서를 일단 수리한다고 하여 논쟁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당시 일본은 그런 식의 '합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은 1909년 3월에 이미 <한국병합에 관한 건>을 작성하여 총리에게 제출하였다. 7월에 일본 내각은 <한국병합의 건>을 통과시켰고, 일왕의 재가도 받았다. 따라서 일본은 처음부터 '병합'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합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병합'이 발표되었다. 물론 그 '병합'은 일진회가 생각한 '합방'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만일 '합방'을 했다면 일본 국명은 '대일본-대한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일본의 '병합지'로서 사실상 '식민지'가 되었다. 1910년대 일본 정부 관료들은 내부적으로는 '조선'을 '식민지'라 지칭하였다. 그리고 척식국 등에서 대만, 사할린 등과 함께 조선을 관리하였다. 1929년 척무성이 들어선 다음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선 사람들이 '식민지'라는 말을 싫어하여,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 관리들은 겉으로는 '식민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을 뿐이다. 1929년 이후에는 '식민지'라는 말 대신 '외지'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지'는 식민지의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또 법령이나 예산, 인사 등 모든 문제에서 그들은 조선을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식민지'로 간주하고, 조선인을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식민지민'으로 대우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한일합방'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그냥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이라고 쓰든지 '경술국치'라고 쓰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강제병합'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을사늑약'이란 말과 짝해서 쓴다면 '경술병합' '경술강제병합'이란 말도 괜찮다고 본다. 어쨌든 이 글을 보는 분들이라도 '한일합방'이라는 말은 쓰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일합방'이란 말은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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