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8

(5) Jin Kaneko - 《続・ソウル市の行う慰安婦の歴史操作に憂慮する》  昨日の投稿の続きです。  〝Night of...



(5) Jin Kaneko - 《続・ソウル市の行う慰安婦の歴史操作に憂慮する》  昨日の投稿の続きです。  〝Night of...




Jin Kaneko
48 mins ·



《続・ソウル市の行う慰安婦の歴史操作に憂慮する》

 昨日の投稿の続きです。

 〝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1944年9月13日夜、(脱出に先立ち)日本軍が騰越城内にいた朝鮮人女性30人を銃殺した)という記述のある、1944年9月15日付の雲南遠征軍(中国国民党軍と米軍の合同軍)の作戦日誌の記述があります。
 さて、この1944年9月15日付の雲南遠征軍の作戦日誌の記述(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の事実が、今回発見された動画映像で裏付けられたというのが、ソウル市とソウル大のチームの主張です。これが韓国の各メディアの報道の核心部分になっています。典型的な記事をあげておきます。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33978.html

 ちなみに、この作戦日誌は、ソウル市とソウル大のチームが米国立公文書館で発見したもので、2016年11月に、この資料の存在を発表しました(これは、今回発表された資料ではありません)。以下は、以下はそれを報じた2016年11月6日付の京郷新聞の記事。この時、この資料だけを取り上げて、ソウル市とソウル大チームは大騒ぎをしたわけです。他の発掘資料には目もくれません。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結論から述べます。
 この映像動画を、〝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の証拠と言うのは、とんでもない暴論です。
 まず、この動画が〝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つまり「日本軍による慰安婦の銃殺」を裏付ける根拠にならないことは、皆さんも理解できると思います。これが第一点目です。

 2番目は、この記述は報告や尋問等に基づく伝聞情報であると思われますが、この記述の信憑性についていくつかの疑問があることです。
 謄越の戦いで18名の女性(日本人・台湾人・朝鮮人)が雲南軍の捕虜になったことは、先の投稿で述べた通りです。騰越に30人+生存者2人の朝鮮人慰安婦がいたというのは多すぎます。まずあり得ません。また、映像動画にあるものは朝鮮人慰安婦と特定でき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また日本軍兵士の遺体も一緒に映っています。何をもって、この映像を〝30 Korean girls in the city〟の一部とみなしたのか、たぶんソウル大チームは合理的に説明できないでしょう。

 さらに、雲南軍、日本軍ともに、戦闘日誌、戦闘詳報が残されています。これを突き合わせると、次のような騰越の戦いの経過が浮かび上がってきます。
 以下、かいつまんで、戦いの経過を説明します。
-------------
 日本軍の戦闘員は、歩兵第148連隊および第56師団歩兵団の残存兵、野砲兵第56連隊第1大隊ほか2025名であった。騰越に侵攻してきた雲南軍(米軍、中国国民党軍の合同軍)の兵力は4万9600名です。何と25倍の兵力差であったが、1944年6月27日の戦闘開始(砲撃)から9月13日の玉砕まで守り抜い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戦闘(地上戦闘)はまず騰越周辺のいくつかの日本軍の外郭陣地から始まりました。
 6月27日以降、この外郭陣地の陣取り合戦が行われます。日本軍の外郭陣地は約1カ月持ちこたえます。

 そして、7月27日に日本軍は外郭陣地を放棄・撤退して、城壁陣地(騰越城内=市街)に後退しました。当然、騰越城は雲南軍に包囲されました。翌7月28日には、日本軍(謄越守備隊)に騰越の死守命令が出されます。

 8月2日には、航空機(戦闘機)の援護射撃のもと雲南軍による騰越城に対する総攻撃が始まりました。日本軍はこの攻勢を守りぬきます。雲南軍は苦戦しました。このため、雲南軍は爆撃機を動員して数次にわたる爆撃を開始しました。この爆撃により、謄越守備隊に、大きな損害が生じました。城内には女性ほか非戦闘員もいましたから、たぶん、そうした人々にも被害が出たでしょう。

 8月15日、ついに城壁とトーチカ陣地が破られて、雲南軍が騰越城内に突入しました。以降、市街戦が繰り広げられました。
 8月21日、糧秣は数日分、弾薬、手榴弾は各自の持分しかない状態に追い込まれたようです。残存兵力は640名に減っていました。日本軍は弾薬や手榴弾などの補給を要求しますが届きません。8月25日、日本軍戦闘機12機による手榴弾500発の空輸を成功させました。戦闘機による空輸だからたい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糧秣と弾薬は補給されていません。8月27日、騰越守備隊は夜陰に紛れて、雲南軍のいる騰越城の西門に近づき、手榴弾の投擲攻撃を実施したそうです。銃撃などは弾薬がなくてできなかったわけです。

 9月1~5日、日本軍の騰越守備隊の兵力は350名を割り込み、市街東方に追い詰められていました。9月7日の残存兵力は70名になっていました。
 9月11日、守備隊の弾薬、手榴弾が尽きました。その連絡を師団司令部に行っています。
 9月13日、太田大尉以下、生き残った70名の全将兵が敵陣地に突撃し、全員戦死しました。他の戦場でも日本軍が行った最後の万歳突撃です。
 生き残りは、中国軍に収容された重傷者3名だけだったそうです。

 1944年9月15日付の雲南遠征軍の作戦日誌の記述(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が事実であるとすれば、太田大尉以下の生き残り70名が、最後の突撃前に、慰安婦虐殺を行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凄絶な市街戦の中、30人の朝鮮人慰安婦が生き延び、かつ、日本軍が朝鮮人慰安婦を掌握し、弾薬や手榴弾が尽きた日本軍兵士が、朝鮮人慰安婦30人を〝shot〟し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この作戦日誌の記述の信憑性を疑わなくてはならない理由は、もうお分かりいただけ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번역 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학살’ 영상 처음 나왔다
1944년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 벌거벗은 시신 무더기 쌓여 있어 “조선인 30명 학살”기록 뒷받침 학살 부정한 일본 주장 정면 반박 19초 영상에 처참한 현장 담겨 미군 문서 “일본군이 총살”명시 발굴 교수 “극단적 인권말살...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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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Jin Kaneko ソウル市がソウル大と共同して、真面目に慰安婦関連資料の収集と解析を行っているとは、とても思えません。別の意図に基づく歴史改変を行っている。これが私の受け止め方です。朴ソウル市長は、以下のように言っているそうですが、「あなたこそ、苦痛ではあっても、真実を究明する、真摯な態度を持ちなさい」と言いたいと思います。
http://news.mtn.co.kr/v/2018022811093967529Manage



박원순, 위안부 학살 입증 영상에 “고통스럽더라도…함께 기억 해야한다”
NEWS.M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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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Kaneko 韓国にも、まともに資料収集・解析のできる人材はいるだろうに。

[단독]“일본군,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 위안부 학살 기록 원본 찾았다 - 경향신문



[단독]“일본군,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 위안부 학살 기록 원본 찾았다 - 경향신문



타임라인위안부 합의 그 이후
[단독]“일본군,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 위안부 학살 기록 원본 찾았다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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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6 21:30:01 수정 : 2016.11.07 20:37:11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ㆍ존재와 일부 내용만 알려진 ‘미·중 연합군 작전일지’ 실체 첫 확인
ㆍ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미 문서기록관리청 현지조사 통해 발굴
ㆍ위안부 증언에 입증 문서 나와…‘학살 부정’ 일본에 반박 근거로



일본군의 위안부 총살을 기록한 중·미 연합군 작전일지.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1944년 9월)13일 밤 (탈출에 앞서) 일본군이 성(중국 윈난성 등충) 안에 있는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 사실을 기록한 미·중 연합군 문서 원본이 발굴됐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계속된 증언에도 불구하고, 학살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문서를 요구하면서 학살설을 부정했다. 학살된 위안부들의 시신을 찍은 사진에 대해서도, 미·중 연합군의 포격 및 폭격으로 희생되었거나 자결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위안부 ‘학살’ 문서를 발굴·공개한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지난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현지조사를 실시해 위안부 자료 113건을 수집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일본군 포로 심문보고서를 비롯해 일본군 노획 자료 번역본, 육·해군 정보 및 작전보고서, 포로수용소 명부 및 송환선 승선 명부 자료 등이다. 연구팀은 지난 4일 서울대에서 중간보고 워크숍을 열어 자료 발굴내용과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포로수용소와 일본군 위안부의 귀환’을 주제로 발표한 이정은 연구책임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일본군은 패전 직후 그동안 끌고 다녔던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유기했고, 유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살이었다”면서 학살 근거로 일본군의 위안부 여성 30명 총살을 기록한 중국 윈난원정군의 1944년 9월15일자 작전일지를 공개했다. 윈난원정군은 같은 해 6월부터 중국-미얀마 접경지대인 중국 윈난성 송산과 등충의 일본군 점령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9월7일 송산을, 1주일 뒤인 14일에 등충을 함락했다. 일본군의 위안부 총살은 등충 함락 직전인 13일 밤 탈출에 앞서 이뤄졌다.




미군이 설치한 제1오키나와포로수용소.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여성 다수가 이곳을 거쳤다.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다. 그러나 학문연구 성과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으는 수준에 머물렀다. 연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료수집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재미사학자 방선주씨(82)의 노력으로 위안부 관련 미국 자료가 언론을 통해 단발성으로 공개되곤 했으나 후속 연구는 미흡했다. 위안부 여성 30명 총살을 기록한 작전일지도 1997년 방씨를 통해 국내에 처음 존재가 알려졌지만 정작 문서 소장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알려진 내용도 일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고, 관련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해당 작전일지 원본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 강성현 공동연구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소장 자료에 대한 의존성이 극도로 높은 상황이지만, 국내 연구자가 일본 소장 자료에 접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연합군 작성 자료뿐만 아니라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자료까지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미국 소장 자료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박정애 공동연구원(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초빙교수)은 김소란(가명)·박영심·공점엽·문옥주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살피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관계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가지지만, 국제 외교현장에서 자료로 입증되는 증언의 의미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박 박사는 “연구자는 증언과 유관 자료를 최대한 수렴해서 교차분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데 증언이 어떤 힘과 가치를 가지는지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필리핀과 오키나와에 설치한 일본군 포로수용소 자료를 다수 발굴한 것도 이번 연구의 성과다. 연구팀은 필리핀 수용소에서 작성한 조선인 위안부 43명의 포로등록카드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향한 송환선 승선 명부를 확인했다. 전갑생 공동연구원(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포로등록카드와 승선 명부를 교차분석하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인 위안부 규모는 최대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6명 외에는 어떤 피해여성이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전 연구원은 “포로등록카드에 피해여성의 본적지까지 기록되어 있다”면서 “연구가 진행되면 알려지지 않은 채 돌아가신 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살아계신 분들이 어디서 어떻게 계시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내년 중 발굴자료 영인본과 함께 번역 및 연구해제를 담은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062130015#csidxbe3ad71b509a328900d20680c978d88

2018-02-27

미투를 의심하라? 김어준의 예언은 '유해'하다 - 오마이뉴스



미투를 의심하라? 김어준의 예언은 '유해'하다 - 오마이뉴스




미투를 의심하라? 김어준의 예언은 '유해'하다[주장] 피해자 못 믿게 만드는 나쁜 프레임... #미투는 '주체적 선언'이다
18.02.26 11:13l최종 업데이트 18.02.26 11:13l
글: 심혜진(sweetshim)
편집: 김예지(jeor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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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프로젝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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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릿속엔 늘 '프레임'이 작동한다. 프레임은 복잡한 정보들을 하나의 단순한 구조 안에 넣어 이해하는 뇌의 인식 방식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나름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프레임은 무의식적인 것이라 스스로 그것이 프레임에 의한 사고라는 것을 깨닫기 어렵고, 의식적으로 프레임을 벗어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코끼리가 생각난다는,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다. 프레임은 그만큼 강력하다.

지난 주말, 많은 이들의 뇌 속에 엄청난 프레임 하나가 들어와 버렸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한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 때문이다. 김어준은 "(미투 운동을 공작의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를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 등장시킬 것"이라는 구체적인 실행 방법까지 '예언'했다.

예언일 뿐인데,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금태섭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한 글에, 금 의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자, 26일 김씨는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것이지 미투를 공작이라고 한 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관련 기사 : '미투공작' 예언한 김어준 "금태섭과 싸움 붙이지 마라")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김어준의 발언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 아주 위험하고 심각한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부 쪽 인사의 성폭력 문제는 정치 공작'이라는, 더 넓게는 '정치인의 성폭력 문제는 정치공작'이라는 프레임이다.

앞으로 정치권의 누군가 미투의 대상으로 지목이 된다면, 김어준의 말을 들은 어떤 이는 그것을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보다 이것이 정치공작이냐 아니냐,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프레임은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스스로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기 어렵다.



▲ < SBS 스페셜> '미투 나는 말한다' 편에 출연한 성폭력 예방 강사 손경이씨는 "안전한 사람들이 많을 때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말하기는 배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투 증언을 의심하게 만드는 김어준의 발언은 여성들의 '안전한 말하기 환경'을 해친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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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엔 진보-보수가 없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직접 가해자를 지목하며 확산되고 있다. 검사, 문학, 연극계 인사들이 대상이 되었지만, 그래서 검사집단과 연극계가 범죄 소굴인 양 통째로 매도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성폭력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지인 중에 검사는 한 명도 없고 그저 연극 관객이었을 뿐인 나도 성추행을 당했다. 그것도 여러 번. 장소는 버스, 학교, 길거리였다. 내게 성추행을 한 이들이 모두 검사나 연극계 인사였을까? 천만에.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 쪽'이라고 해서 성폭력 관련된 문제가 없었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상대 정치진영에선 이것을 이용하고 싶을 테고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김어준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 행태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쩌면 김어준은 '공작 계획을 미리 국민들에게 알려서, 혹여 공작을 벌이더라도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아주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공작인지 아닌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 공작인지 아닌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예언으로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게다가 '좋은 의도'란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그가 말한 문재인 정부 쪽 인사일까, 더불어민주당일까, 문재인 지지자일까? 설마 국가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이게 올바른 길이라고,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설마.)

미투 운동이 정치판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했다면, 당 차원에서 논의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것, 그게 정치판이다. 유능한 인재를 키우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전략으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그 당의 책임이다. 설사 공작에 '이용'되더라도 당당하게 맞서거나, 사실인 부분이 있다면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물러나는 것, 이렇게 책임 있는 모습으로 대응할 순 없었을까. 이것이 미투가 바라는 세상일 텐데 말이다.



▲ 미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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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운동 #미투, 정쟁의 '도구'로 쓰지 말라

성폭력 사건을 공작에 이용하려는 것이나 이를 같은 논리로 막아내겠다는 생각, 이 둘은 모두 성폭력을 정쟁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미투는 스스로 피해를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고 운동이다. 미투는 결코 조용한 운동이 아니다. 시끄럽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한 발씩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민주주의와 아주 많이 닮았다. 정치권도 미투 운동을 쇄신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김어준은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프레임을 먼저 내밀어, 미투 운동을 고작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켜 운동의 취지를 훼손하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가 예언한 그 공작은 너무 저급하다. 이를 막고자 한 김어준의 발언이 미투 운동에 더 심각한 프레임을 씌웠다는 점에서, 더군다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 저급한 프레임의 시작은 김어준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Peace Pilgrim - Wikipedia

Peace Pilgrim - Wikipedia

Peace Pilgrim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Peace Pilgrim
Peace Pilgrim-1980-Hawaii.jpg
Peace Pilgrim in Hawaii – 1980
BornJuly 18, 1908
Egg Harbor CityNew Jersey
DiedJuly 7, 1981 (aged 72)
KnoxIndiana
Websitewww.peacepilgrim.org
Peace Pilgrim (July 18, 1908 – July 7, 1981), born Mildred Lisette Norman, was an American non-denominational spiritual teacher,[1] mystic,[2] pacifist,[3] vegetarianactivist[4] and peace activist.[5] In 1952, she became the first woman to walk the entire length of the Appalachian Trail in one season. She also walked across the United States to speak with those she would encounter about peace. She was on her seventh cross-country journey when she died.[6] Starting on January 1, 1953, in PasadenaCalifornia, she adopted the name "Peace Pilgrim" and walked across the United States for 28 years.
A transcript of a 1964 conversation with Peace Pilgrim from a broadcast on KPFK radio in Los AngelesCalifornia, was published as "Steps Toward Inner Peace". She stopped counting miles in that year, having walked more than 40,000 km (25,000 mi) for peace.

Early life[edit]

Mildred Lisette Norman was born on a poultry farm in Egg Harbor CityNew Jersey, in 1908, the oldest of three children. Her mother, Josephine Marie Ranch, was a tailor, and her father, Ernest Norman, a carpenter. Although poor, the family was admired in a community of German immigrants, whose relatives originally settled the area after escaping Germany in 1855.[7]
In 1933 she eloped with Stanley Ryder and moved to Philadelphia in 1939. They divorced in 1946.[8]

Pilgrimage[edit]

In the book, "Peace Pilgrim: Her Life and Work in Her Own Words",[9] she related that her physical journey began after having experienced a "spiritual awakening",[10]following a long period of meditation practice.[11] She said that this awakening was a direct, mystical experience of the "creator's" love.[12] She claimed that this spurred her to then start her decades-long walking journey for peace.[13]
Her pilgrimage spanned almost three decades beginning January 1, 1953, in Pasadena, California. The Korean War was in progress. She continued walking for 28 years, spanning the American involvement in the Vietnam War and beyond. Peace Pilgrim was a frequent speaker at churches, universities, and local and national radio and television.
Expressing her ideas about peace, she referred to herself only as "Peace Pilgrim". Peace Pilgrim's only possessions were the clothes on her back and the few items she carried in the pockets of her blue tunic which read "Peace Pilgrim" on the front and "25,000 Miles on foot for peace" on the back. She had no organizational backing, carried no money, and would not even ask for food or shelter. When she began her pilgrimage she had taken a vow to "remain a wanderer until mankind has learned the way of peace, walking until given shelter and fasting until given food".
On July 7, 1981, while being driven to a speaking engagement near KnoxIndiana, Peace Pilgrim was killed in an automobile accident. At the time of her death, she was crossing the United States for the seventh time. After her death, her body was cremated, and her ashes were interred in a family plot near Egg Harbor CityNew Jersey.

Legacy[edit]

Friends of Peace Pilgrim is an all-volunteer non-profit organization dedicated to making information about the life and message of Peace Pilgrim available freely to all who ask. Since 1983 they have published and distributed over 400,000 copies of the book, Peace Pilgrim: Her Life and Work in Her Own Words, and over one-and-a-half-million copies of the booklet, Steps Toward Inner Peace. Books and booklets have been sent to over 100 countries. The book has been translated into 12 languages and the booklet into over 20 languages.[15]
Peace Pilgrim Park in Egg Harbor City, New Jersey
In 2005 Peace Pilgrim Park was created in her hometown of Egg Harbor City, New Jersey on part of the site of the former Neutral Water Health Resort Sanitarium. Since 2007 an annual Peace Pilgrim Celebration has been observed in the park and at sites throughout Egg Harbor City on September 20–22.[16]
In 2017 she was inducted into the New Jersey Hall of Fame.[17]
In 2017 she was inducted into the Appalachian Trail Hall of Fame.

Awards[edit]

  • Peace Abbey Courage of Conscience Award (1992)[18]
  • Inducted into the New Jersey Hall of Fame (2017)
  • Appalachian Trail Hall of Fame (2017)

Bibliography[edit]

  • Steps Toward Inner Peace (1964)
  • Peace Pilgrim, Her Life and Work in her Own Words (1983)
  • Peace Pilgrim: The Spirit of Peace (1997)
  • Peace Pilgrim: An American Sage Who Walked Her Talk (2000)

See also[edit]

Notes[edit]

  1. Jump up^ Reichenberg-Ullman, Judyth; Robert Ullman, Dalai Lama (2001), Mystics, Masters, Saints, and Sages: Stories of Enlightenment, Ocean Tree Books, ISBN 1-57324-507-0.
  2. Jump up^ Reichenberg-Ullman, Judyth; Robert Ullman, Dalai Lama (2001), Mystics, Masters, Saints, and Sages: Stories of Enlightenment, Ocean Tree Books, ISBN 1-57324-507-0.
  3. Jump up^ Reichenberg-Ullman, Judyth; Robert Ullman, Dalai Lama (2001), Mystics, Masters, Saints, and Sages: Stories of Enlightenment, Ocean Tree Books, ISBN 1-57324-507-0.
  4. Jump up^ Reichenberg-Ullman, Judyth; Robert Ullman, Dalai Lama (2001), Mystics, Masters, Saints, and Sages: Stories of Enlightenment, Ocean Tree Books, ISBN 1-57324-507-0.
  5. Jump up^ Reichenberg-Ullman, Judyth; Robert Ullman, Dalai Lama (2001), Mystics, Masters, Saints, and Sages: Stories of Enlightenment, Ocean Tree Books, ISBN 1-57324-507-0.
  6. Jump up^ "Peace Pilgrim's 28-Year Walk For 'A Meaningful Way Of Life'"NPR. 2013-01-01. Retrieved 2013-01-01.
  7. Jump up^ Daniels, 2005,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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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edit]

External links[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