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0

박정미 -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구속과 항소심 석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21) 박정미 -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구속과 항소심 석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글이 쏟아져나왔지만, 이 글만큼...




박정미 shared Eunhee Kim's post.
6 February at 13:34 ·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구속과 항소심 석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글이 쏟아져나왔지만, 이 글만큼 '정경유착'이라 불리는 사태의 본질을 후련하게 해명하는 글은 처음 본다.
지난해 대통령탄핵과정에서 나온 글인데,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많이 공감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글을 읽고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사회 두 정치세력을 (결과적으로) 한꺼번에 겨냥한 글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를 ‘공동체적 자본주의’ 혹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파악하는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두 정치세력은 한 뿌리 위의 두 줄기로 파악될 수도 있다.


이제야 우리는 사회심리적으로 개인을 발견하고 ‘하늘 아래 홀로 서면서 함께 모여 숲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요구에 직면하는 발전단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평창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정에서 표출된 젊은이들의 우리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이 쉰이 넘어서야 내 자신의 행복과 그에 필수불가결한 돈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당당하게 인정하고 싶어하는 나의 내면을 보면서도 그렇다.
(길어서 겁내하는 분이 있을까봐 공부도 할 겸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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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창업한 60년대는 조선이라는 유교왕국이 패망한지 불과 5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윤추구를 정당하게 보는 자본주의 정신은 희미했고, 유교적 가치관은 부의 축적을 죄악시하였다.
이런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시대에 박정희는 천시받던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에 ‘국가와 민족의 발전’이라는 공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삼성물산 합병사태는 지난 50여년간 지속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이러한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 사기업을 국가대표선수로 인식하는 문화체제에서 기업과 정부의 이기적 결탁을 통상적으로 있어왔던 상호의존적 관행으로부터 분리하여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의혹과 정황은 있지만 인간내면의 동기를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 재벌총수의 뇌물죄를 수사하는 것은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한 정치적 과정의 하나로 바뀌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주주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이재용이 탄핵반대 세력에 의해 ‘자유경제’의 아이콘으로 떠받들어지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반면에 탄핵찬성세력은 반기업적 정서를 부추겨 정부가 대기업들을 보다 강력하게 규제하고 감시할 것을 선거공약으로 약속한다.
이재용의 뇌물죄 여부는 아마도 이 두 정치세력 중 누가 더 우세한가에 따라 많은 부분 달려있을 것이다.

-이재용의 뇌물죄 여부를 떠나 삼성물산 합병사태는 자본주의 한국사회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문화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돈을 버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가? ---부의 축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체가 정경유착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민중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주의 이익추구를 권리로서 인정하지 않을 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현실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이재용의 삼성물산합병이 극명한 예이다.


Eunhee Kim updated her status.
7 March 2017 ·



아래의 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특검의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이전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조금 길게 썼습니다.

"주식회사 한국"에 죄를 물어야...(2)
이재용의 구속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일단 심정적으로 속이 시원해지는 뉴스였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재벌 총수의 구속으로 과연 뭐가 바뀔 것인가 하는 회의가 고개를 든다. 삼성물산 합병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될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온 정치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측근 비리 혹은 대통령 자신의 비리가 터지고, 기업들이 연루되고, 반 기업 정서가 하늘을 찌르고, 재벌 총수들은 너도 나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하고, 대통령 후보들은 한결같이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새 정권이 들어서도 변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왜 반복되는가? 왜 '재벌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왜 온갖 편법을 써서라도 재벌 총수는 자신의 혈육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자 할까?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더 탐욕스러워서? 국민성이 나빠서? 만약 당신이 재벌회장이라면 '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는가? 만약 당신이 재벌회장이라면...


삼성물산합병과 같은 사건을 복기하는데 있어 관련 기업인과 정치인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련의 정치드라마가 배태되어 있는 '주식회사 한국(Korea Inc.)'이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파헤치는 것이다. 기업을 주주들에게 이윤을 창출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사기업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발전이라는 공공목적을 가진 '국가대표선수'로 보는 '주식회사 한국'은 60년대, 70년대 경제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박정희가 창업한 60년대는 조선이라는 유교 왕국이 패망한지 불과 5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윤추구를 정당하게 보는 자본주의 정신은 희미했고 유교적 가치관은 부의 축적을 죄악시하였다. 이런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시대에 박정희는 천시받던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에 '국가와 민족의 발전'이라는 공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정부는 전투에서 이긴 군인에게 무공 훈장을 주듯 기업인들에게 수출많이 했다고 훈장을 수여하였다. 기업인들은 '신바람나게' 일했다. 대통령이 인정해 주는데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들은 더 이상 도덕적으로 불량한 '장사꾼'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식회사 한국'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업을 한다고 공언하는 것이 실제로 애국심때문에 사업을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회사재산을 빼돌리고 공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하고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소위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소규모 사회나 농민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들을 보면 오히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개인의 이익추구를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사익을 편취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오늘날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욕심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옛날의 농촌사회를 그리지만 평화롭고 화목하게 서로 도우며 살아갔던 공동체는 사실 우리들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하나의 허구일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소규모의 공동체적 사회에서 사람들은 겉으로는 공동체의 이익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즉 대의명분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적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이기적인 동기에 대하여 의심하고 서로 시기하고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기적' 동기를 갖고 이런 저런 일을 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적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를 불신하고 상대방의 행동이 이기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고 의심하는 상황에서는 갈등이 생길 경우 추상적인 법이나 규칙 또는 도덕적인 원리원칙을 적용하는 것보다 지지자를 동원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인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중요해진다.

공동체적 자본주의라 불리는 '주식회사 한국' 역시 그 구성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은밀히 사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삼성물산 합병 사태는 지난 50여 년 간 지속된 '주식회사 한국'의 이러한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 2월16일자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사기업을 국가대표선수로 인식하는 문화체제에서 기업과 정부와의 이기적 결탁을 통상적으로 있어왔던 상호의존적 관행으로부터 분리하여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뇌물을 받고 베푸는 특혜일까? 기업이 공공 목적을 가진 각종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협조일까 아니면 뇌물일까? 아니면 정치권력으로부터 강요당한 것일까? 때로는 세상이 다 아는 일도 '주식회사 한국'에서는 입증하지 못할 수 있다. 삼성의 이재용 일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든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언론 다 동원해 여론을 주무르고, 국민연금까지 움직여서 삼성물산 합병을 밀어붙였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하물며 소액주주에게까지 수박 한 통씩 들고 다니며 위임장 받아냈는데 국민연금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무언들 안했으랴. 그러나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으로는 뇌물죄 적용이 어려워 뇌물에 대한 대가를 경영권 승계 전반으로 확대시켰다.

결국 의혹과 정황은 있지만 인간 내면의 동기를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 재벌 총수의 뇌물죄를 수사하는 것은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한 정치적 과정의 하나로 바뀌었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주주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이재용이 탄핵반대 세력에 의해 '자유경제' 의 아이콘으로 떠받들어지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반면에 탄핵 찬성 세력은 반기업적 정서를 부추겨 정부가 대기업들을 보다 강력하게 규제하고 감시할 것을 선거공약으로 약속한다. 이재용의 뇌물죄 여부는 아마도 이 두 정치세력 중 누가 더 우세한가에 많은 부분 달려 있을 것이다. 그가 만약 '법대로' '엄정한' 심판을 받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대중의 반기업적 정서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정치권은 이를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게 사기업의 공공성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재벌개혁' 정책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강화된 반기업적 정서와 함께 도덕적 해이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것이다.

사실 삼성물산 합병 사태에서 핵심 이슈는 삼성이라는 재벌그룹 전체의 승계의 부도덕성 여부가 아니라 합병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주주가치, 즉 회사는 주주의 것이며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본주의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데에 있다. 합병에 강력히 반대했던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였다. "우리가 이건희 일가의 경여권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이재용이 삼성그룹 회장직을 승계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삼성물산 주주들의 주식을 제일모직 주주들에게 헐값으로 넘기는 불공정한 합병비율이다." 이 논의에서 주목할 것은 부도덕한 '먹튀' 투기자본이라고 언론이 비난했던 엘리엇은 돈을 맡긴 사람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국민연금과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국익'이 더 중요하다는 명분하에 (혹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노후대비를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벌은 돈을 맡긴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는 합병에 찬성하였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누가 더 부도덕한가? 엘리엇 헤지펀드인가 아니면 국민연금인가?

그러나 '주식회사 한국'에서 주주권의 침해는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지 못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사유를 찾기 위하여 이재용의 뇌물죄를 수사할 때까지 대부분의 주류 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은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합병 과정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 그 어느 쪽에도 주주가치의 훼손은 딱히 입맛에 맞는 이슈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이 헤지펀드와 다른 주주들을 위해서 시위를 할 것인가? 보수 언론은 주주가 막대한 손해를 봐서 합병에 반대한다는 엘리엇의 입장에 대해 단지 단기 차익을 내기 위해서 반대할 뿐이라고 폄하하였다. 단기 차익이든 장기 차익이든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한국 언론에게는 합병에 반대할 숭고하고 도덕적인 이유가 되지 못했다.

최근 야댱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제안한 재벌개혁안 역시 주주권을 강화하는 대책은 미흡하다. 실망스러운 것은 연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도록 스튜어드 코드쉽의 도입을 제안하면서도 정작 정치권력으로부터 연기금의 운용을 독립시키는 제도적 뒷받침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근로자 이사제도 사기업은 주주의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명제에 어긋난다.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 재벌의 업종확대를 제한하고 골목 상권을 보호하여 대기업의 경제력 집충을 억제하겠다는 정책은 사기업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정부의 통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치권의 기업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정경유착 또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기업경영이 여론의 광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공공 연기금의 운용이 정치권에 종속될 때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정경유착과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이 휭행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 회사'라는 공동체 의식이 충만한 회사에서 경영진이 자기 사람들을 동원하여 공익 대신 사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남을 어떻게 믿어?" 이 불안감은 저신뢰도의 공동체적 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근거없는 불신이 아니다. 따라서 주주의 권리가 확립되지 않고 기업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주식회사 한국'에서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은 지속될 것이다. 재벌개혁이 성공하길 진정 원한다면, '주식회사 한국'이 창업된지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우리는 이제 기업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재용의 뇌물죄 여부를 떠나 삼성물산 합병 사태는 자본주의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문화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돈을 버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적 법제도와 자본주의 체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라는 전제에 입각해서 구성원들간의 이익이 상충될 경우 조정하는 제도, 구성원들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독하는 제도 등을 발전시켜왔다. 부의 축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체가 정경유착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민중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주의 이익추구를 권리로서 인정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현실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이재용의 삼성물산합병이 극명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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