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4

리종만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2)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2)



주체 105(2016)년 8월 17일 《통일의 메아리》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2)


겨레의 목소리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전시간에 이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이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첫 조국통일상수상자의 한사람이였던 리종만선생의 아들 리형우가 주체99(2010)년 8월에 쓴 글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을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입니다.



사실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려고 애를 썼으나 덧없이 흘러간것이 해방전 아버지의 60평생이였다. 1880년대에 경상남도 울산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아버지는 해방전에 전국적으로 몇손가락안에 드는 큰 기업가가 되였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대동광업주식회사》는 전국각지에 10여개의 광산들과 수백개의 광구들을 두고있었고 《대동농촌사》에 속한 토지도 수백만평에 달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동공업전문학교》, 《대동출판사》를 비롯하여 10여개의 교육기관과 출판사들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소박한 꿈은 민족부흥을 이룩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나라없던 그 세월 그것은 실현될수 없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놈들은 아버지가 저들의 식민지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여러차례 감옥살이를 시켰고 나중에는 숟가락에 이르기까지 재산을 고스란히 몰수하고 경기도에 있는 봉선사라는 사찰에 쫓아 영영 페인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지금도 9살이던 내가 원숭이 세마리를 형상한 조각상을 마당 한구석에 마구 내동댕이치는 아버지에게 영문을 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아버지는 조선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의미에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입을 막은 원숭이조각상을 주어 깊은 산속에 내쫓은 왜놈들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는것이였다.

해방이 되여서야 아버지는 나라의 자연부원을 개발하여 민족의 부강발전에 기여할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산을 내려와 다시 기업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미군정장관 하지와 리승만은 아버지에게 자원개발에 경험과 수완이 있으니 남강원도일대를 맡아달라고 그리고 그쪽 민심이 소란하니 적절한 대책도 세워달라고 구슬리였다.

그것이 나라의 자연부원을 미국놈들에게 섬겨바치고 매국노가 되는 길이라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아버지가 그를 거부하자 그들은 산업운영권을 빼앗아 매판자본가에게 통채로 넘겨주었다. 아버지는 미국놈들이 남조선경제명맥을 틀어쥐고 귀중한 자원을 마구 략탈할뿐아니라 《적산불하》의 미명하에 공장과 산업대상들을 친일, 친미분자들에게 넘겨주고 기계설비들을 뜯어가며 《원조》의 간판아래 저들의 잉여상품이나 들이미는것을 보고 격분하였다.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조선에 물과 전기를 보내주시는 동포애적조치를 취해주시였을 때였다. 물과 전기때문에 고통을 겪는 남조선인민들에게 사랑의 생명수와 전기를 보내주시고 숨진 공장과 기업가들도 살려주시는 뜨거운 혈육의 정에 아버지는 감동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동포애적조치로 송전되는 전기의 대부분을 미군과 군수산업을 위해 쓰고 인민들에게는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망라된 전력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여러차례 하지와 담판하는 과정에 미국의 침략적, 략탈적정체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

20살에 망국의 설음을 안고 노예의 운명을 40여년간 강요당하였는데 이제 또다시 미국의 노예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한탄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점점 김일성장군님 계시는 북으로 향하였다. 바로 이럴즈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시였다. 평양에서 진행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 참가하도록 불러주신것이다. 이렇게 되여 아버지는 북행길에 오르게 되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북에서 기업가인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겠는가 하는 위구심때문이였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 기업가였던 자신의 지난날을 묻지 않고 따뜻이 맞아주시고 애국자로 내세워주시니 아버지는 여생을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다 바칠 마음뿐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버지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서 통일애국사업에 헌신할수 있게 해주시였으며 그후에는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추천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 제기할 때 아버지에 대한 소개를 잘하라고, 우리는 그가 년로하고 건강이 좋지 못하므로 오래동안 휴식도 시켰다고 하시며 제기되는 문제들을 제때에 풀어주어 아버지가 맡겨진 일을 잘하도록 하라고 재삼 당부하시였다.

아버지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이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첫 조국통일상수상자의 한사람이였던 리종만선생의 아들 리형우가 주체99(2010)년 8월에 쓴 글 《민족이 안겨살 통일조국의 품》을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시간이였습니다.

겨레의 목소리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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